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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리뷰/ 무용

박경랑의 우리춤




구히서 / 연극평론가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춤꾼 박경랑씨가 2월14일 국립극장 대극장에서「96 박경랑의 우리춤」이라는 제목으로 서울공연을 가졌다. 서울에서는 낯선 얼굴이지만 지난해 전주대사습에서 무용 부문 장원이었고 이매방 승무의 맥을 잇는 김진홍씨에게 사사한 춤꾼이라는 소개와 함께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를 마련한 자세가 만만치 않았다. 이 무대는 박경랑씨의 입춤, 살풀이춤, 승무 등 세 개의 춤을 주축으로 해서 무대를 대강 단락으로 묶어서 펼쳤고 상당히 든든한 특별출연진들의 춤과 노래 연주가 함께 그 단락을 도와 각각의 부피를 만들어 냈다.

첫째 단락은 서용석, 김청만, 박종선, 원장현, 한세현, 서용호씨 등 국립국악원민속연주단원의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자진줏거리 성주풀이를 시작으로 해서 박경랑의 교방입춤과 김진홍의 동래 한량춤으로 이어졌다.

둘째 단락은 진도굿의 춤을 모은 것으로 군무로 추어진 반야용선, 김진홍의 독무로 추어진 지전춤, 그리고 박경랑의 독무 살풀이춤으로 꾸몄고, 셋째 단락의 춤은 불교의식무를 중심으로 바라춤, 법고춤, 승무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임이조의 허튼춤과 이명희의 판소리를 배치했다.

이런 구성은 이 무대의 주인공인 박경랑씨의 3개의 춤을 내놓으면서 그 춤들이 풍성하고 여유있게 보일 수 있도록 주변을 감싸는 장식이 든든해서 그런 꾸밈 속에서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있게 꾸민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꾸밈으로 해서 박경랑씨의 춤들은 상당히 큼직하게 부피를 얻어낼 수가 있었다. 하나의 독립된 소품으로 그가 추는 세 개의 춤만을 등장시켰을 대 무대는 훨씬 가난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 국악 춤무대의 명인들, 자리잡은 춤꾼들, 박경랑씨의 스승이나 선배 어른들이 그를 도와 큰 무대, 듬직한 무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 무대에서 스스로 동래한량춤과 지전춤을 추었고 안무지도로 나선 김진홍씨는 물론 바라춤의 지도와 반주음악을 맡아 출연한 한동희 스님(중요무형무화재 50호 영산제 이수자)등의 특별출연이 모두 이 무대의 규격을 큼직하게 만들어 준 요소들이다. 이 무대에서 추어진 춤들은 이미 전통무용의 명무로 인정되고 있는 여러 어른들의 춤으로 조금씩 짐작이 가는 춤들이다.

동래 권번에서 많이 추어졌다는 교방입춤이나 동래 한량춤은 문장환, 김계화씨 등 동래품의 유명한 춤꾼들의 춤에서 볼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인상을 느낄 수 있는 춤이고 진도굿의 춤으로 꾸민 반야용선, 지전춤, 살풀이춤 등은 박병천, 김대례, 정숙자 등 진도의 명무를 떠올릴 수 있는 춤이며 바라, 법고, 승무는 박승암 스님을 비롯한 영산제 범패로 유명한 스님들의 춤과 소리를 생각할 수 있는 춤이었다. 이 무대의 춤들은 그러므로 새로운 이름, 새로운 춤 솜씨로 보는 새로운 춤이면서 우리 춤의 전통적인 뿌리를 생각하며 옛 춤의 명무들의 솜씨를 앞에 놓고 비교를 해볼 수 있는 무대였다. 우리 춤 옛 춤 명무의 그림자를 오늘과 내일의 명무를 기대하며 볼 수 있는 무대였다.

그런 눈에 비친 박경랑씨의 춤은 아직 영글지 않은 열매를 보면서 풍성한 수확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조금은 불안하고 조금은 기대가 가는 아슬아슬한 것이었다. 그의 춤은 얌전하고 단정한 데가 있지만 춤의 부피가 부족하며 멋의 여유가 없고 활달함이 부족한 오종종한 것이었다. 춤의 재주와 함께 춤의 나이가 왜 필요한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춤이었다. 다행스럽게 보이는 것은 그가 잔재주로 얼버무리거나 요령과 화사한 꾸밈으로 춤을 망치는 미련함을 부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승무의 장삼놀음은 그런 대로 격식을 찾아 닦아낸 모습이 보였지만 입춤이나 살풀이는 줄기와 뿌리를 느끼기에는 여러 모로 약한 모습이었다.

특별출연으로 제자의 춤과 무대를 도운 김진홍씨의 춤과 안무는 깨끗하고 깔끔한 맛의 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춤의 부피가 부족했고 춤사위의 활용이 큼직하지 못했다. 진도굿의 춤을 모아 만든 반야용선은 살풀이나 지전춤의 배경으로 꾸민 것이므로 밀어두더라도 스스로가 춘 지전춤에서는 지전춤의 볼만한 춤사위의 여러 종목이 골고루 활용되지 못한 느낌이었다. 동래한량춤에서는 그의 선대 명무들의 춤이 지닌 활달한 멋이 잔재미 위주로 부서져서 나온 모습이었다.

역시 특별출연으로 허튼춤을 춘 임이조씨는 늘 보아서 낯익은 춤과 신명이지만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에 나선 걸음에 신바람이 얹혀져서 조금씩 잔재미를 느낄 수 있는 춤을 보여주었다.

이 무대는 매 순서마다 최종민씨의 해설을 곁들여져 좀 느리게 진행돼 전체 공연시간이 2시간 40분 가량 소요되었다. 해설을 곁들인 무용무대는 국립극장의 한국의 명무전 이후 상당히 유행하는 형식이지만 이 무대는 그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출연진에 대해서 특별히 설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의 구성도 중요하지만 속도감 있는 진행도 무대를 감상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능숙하고 친절한 해설이긴 했지만 이 무대 전체의 흐름으로 보아 별로 효과적인 진행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부산 춤꾼의 서울무대, 옛 춤의 잔재주, 새로운 춤꾼의 본격적인 등장무대로서「96 박경랑의 우리춤」무대는 서울의 많은 관객을 만나는데 성공했다.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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