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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17.04.17 광주 심중소회공연중 승무
  2. 2015.08.26 박경랑-영남지성승무 (1995년)
  3. 2015.08.17 박경랑 8월 25일 오후 8시 코우스 팔무전 출연 (승무)
  4. 2015.08.13 박경랑선생 승무사진2
  5. 2015.07.31 박경랑선생 승무사진1
  6. 2014.05.04 박경랑의 스승 동래 권번의 마지막 춤 선생, 강옥남
  7. 2013.09.09 하얀나비공연중 박경랑류 영남지성승무[Korean Classical Dance] KyungRang Park's YeongNam SeungMu (Buddhist Dance)
  8. 2013.04.22 박경랑과 더늠 앙상블, 싱가포르 에스플러네이드 초청공연에 나선다
  9. 2012.09.29 박경랑-김수악선생님 추모공연 "하얀나비"공연중 승무북가락 동영상
  10. 2012.08.21 영남교방청춤의 복식
  11. 2012.07.18 영남 교방춤 등 전통 춤을 현대시각으로( 2010년 수성아트피아 어버이날‘조율 TUNE’공연)
  12. 2012.07.11 7월13일 국립국악원 우면당 국악공연 - 2012 박선영의 춤 '本'
  13. 2012.06.13 [춤과 그들]몸에서 우러나오는 ‘無心의 춤’ 김진홍
  14. 2012.06.12 해설이 있는 한여름 밤의 오색춤판 (2006년기사)
  15. 2012.05.30 09.07.27 [춤! 조갑녀, 그리고 이장선] 晴峰 님 글중에서
  16. 2012.05.30 구담무담(九潭無譚) 2007 09 08
  17. 2012.05.18 박경랑 그의 춤을 보고 와서(2002년 국립극장)
  18. 2012.03.09 박경랑의 춤 21세기 한국 전통무용의 창조, 풍류의 춤, 서사의 춤
  19. 2012.03.01 2008 팔무전
  20. 2012.02.29 춤! 조갑녀
  21. 2012.02.28 2006년 박경랑 과 영남춤 의 향기 (코우스 오인오색)

 

2017.03.27
광주 심중소회 공연中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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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무

'화무' 지금 춤 역사의 위대한 순간이 시작되고 있다.

춤판이란 최강의 상대를 만나야만 최고의 판이 된다.

그간 서로의 예술세계와 자존심 때문에 한자리에 서지

않았던 무림舞林의 최고수들이 만나 자웅을 겨루는

한판이 화무가 품은 춤바람이다.

 

''화무火舞', 화무십이홍 火舞十二紅을 만들

춤판의 서막으로 팔무전' 을 연다.

일시 : 2015. 8.25 | 9.01 | 9.08 () 오후 8

장소 : 한국문화의집KOUS_2호선 삼성역 섬유센터 뒤

표값 : VIP3만원 | R2만원 | A1만원 | M매니아석 15천원  

예매 : http://www.kous.or.kr

문의 : 02) 3011-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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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부산 Vol 63. 2009. 9/10. 49-51쪽 배 학수(경성대 교수/ 철학) --> 블로그보기

“뭣보다 교방이라는 담장, 그 담장이 가두기엔, 너무 큰 예인이었다"(KBS 황진이). 드라마에서는 예인藝人이라고 미화된 황진이 같은 기생들은 조선 시대 궁중이나 관청의 연향宴享에서 춤과 노래를 공연했다. 이들을 관리하는 정부 기관이 교방敎坊인데, 교방은 을사조약으로 폐지되었고, 그 후 교방의 기생들은 새로 생겨난 민간 조직인 기생 조합, 권번券番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권번은 서울, 평양, 부산, 대구, 진주 등 전국 각처에 설립되어 동기童妓들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치고 화대花代를 관리했다.

강 옥남(姜玉南)은 동래 권번의 마지막 춤 선생이다. 그에게는 남기고 기록해야 할 많은 이야기가 있을 터인데 언론에 한번도 대담 기사가 실린 적이 없었다. 중간에 사람을 넣어 여러 번 부탁하여 마침내 그녀를 2009년 6월 15일 부산 서구의 새진주 식당에서 만났다.


어린 시절에 대해 얘기해 달라
.
1938년 일본 나고야 태생이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돌아가시고 대구 출신인 어머니는 자식 셋(오빠, 언니, 나)을 데리고 해방되자 귀국했다. 돈 3만원을 가지고 왔는데 환전하지 못하였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고향인 삼천포로 갔다가 부산으로 나왔다. 부산에서 부민 국민 학교를 다녔고, 가정 형편상 졸업후 학업을 중단하다. 그 당시는 딸은 공부시키지 않았다. 오빠는 동아대학을 졸업했다. 어머니는 국제 시장에서 장사를 했다.

어떻게 무용을 배우게 되었나?

16살쯤 한 순섭(여자. 서울에서 무용 학원을 하고 있다)을 권 명화 학원에서 만났다. 한 순섭의 아버지가 잘 살아서 학원을 차렸는데 거기에 이 매방을 초청하여 춤을 가르치게 되었다. 권 명화 학원에서 딱 한달을 배웠는데, 이건 무용이 아닌 것 같아 한 순섭의 권유를 따라 이 매방 학원으로 옮겼다. 이 매방, 권 명화 두 사람 모두 그 당시 부산에서 학원을 운영했다. 권 명화도 이 매방에게서 배웠다.

이 매방은 어떻게 지냈는가?

이 매방은 학원이 잘 안되어 양춤(스포츠 댄스)추는 사람에게 낮에 학원을 빌려 주었다. 이 당시에는 이렇게 안하면 운영이 안 되었다.

이 매방은 김 진홍, 조 광, 전 무영(스페인춤, 지금 양정에 있다) 등과 함께 하야리야 부대에서 가서 공연을 했다. 그리고 대영 극장에서 공연을 함께 한 기억이 있다. 이 매방, 김 진홍, 성민(이 매방의 제자이며 정 진욱의 스승이다), 그리고 내가 참가했다.

이 매방은 대신동에 어떤 부자가 학원을 차려 주어서 거기로 옮겼다. 나도 따라 갔다. 이 매방은 서울에서 전 무영을 데리고 왔다, 그는 딱춤(스페인춤)을 추는 사람이다. 어린이 시간에는 그분이 가르치고, 학부형 시간(법원장 부인, 변호사 부인 등)에는 내가 가르쳤다. 성 민이가 그 당시 군대에 있었는데, 휴가 나오면 내가 가르쳐 주었다.

강습료는 많이 받았는가?


아니다. 돈을 내라고 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춤을 배우려고 거기에 있었던 거지 돈 벌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춤을 배웠는가?

입춤, 소고춤, 승무, 살풀이 다 배웠다. 그런데 이 매방은 춤을 잘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 매방은 욕쟁이였다.

이 매방은 왜 춤을 잘 가르쳐주지 않았는가?

이 매방은 춤을 잘 추어서 멋이 있었다. 그래서 생짜(기생)들이 좋아한다. 고관 부인들도 돈 보따리를 들고 이 매방을 찾아왔다. 밤만 되면 화장을 똑딱하고 놀러 나갔다. 이 매방은 낮에 온천장, 별장, 호텔에서 기생들과 장구를 치고 놀았다. 김 진홍과 일본말을 하면서 같이 놀았다. 김 진홍은 예뻤다. 화장을 하면 여자 저리가라고 할 정도로 예뻤다.

이 매방 학원에서 언제까지 조교를 했나?

최 장술(노래)이 이 매방 학원을 그만두고 동래 온천장 권번에 춤을 가르쳐 주러 오라고 했다. 권번에 가니 기생이 120명 정도 앉아 있었다. 기생 앞에서 오디션을 보았다. 먼저 권 명화가 춤을 추고 나갔다. 기생 한 사람이 장구를 치고 나는 춤을 추었다. 권 명화가 춤을 춘 줄도 몰랐는데, 기생이 나를 선택했다. 춤 선생이 춤을 추어보이면 기생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생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내 나이 스물 한 두살 정도였다. 4.19이전 자유당 시절이었는데 선거 유세에 기생들 데리고 가서 춤을 추어 주기도 하였다.

이 매방 외 다른 스승은 없는가?

김 온경 아버지가 학원을 할 때 강 태홍(가야금)이 그 뒤에 살았다. 한 순섭을 따라 강태홍에게 놀러갔다. 강태홍은 ‘살풀이는 앉은 사위에서 울고, 승무는 염불 장단에서 완전히 중이라는 것을 객석에 보여주라’라고 하였다. 거기서 나는 많이 배웠다. 울 때는 울고, 웃을 때는 웃고, 표현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권번이란 어떤 곳인가?

기생 조합이다. 동래 호텔. 대성장, 동래 별장으로 기생이 간다. 춤추고 노래한다. 화대를 전표로 받는다. 두 방 들어가면 두장 받는다. 여기 동래 호텔인데 어느 기생 불러 주세요. 이렇게 손님이 주문한다.

권번은 4.19, 5.16과 함께 끝이 난다. 공무원이 술을 마시면 목 날아간다. 동래 권번을 운영한 사람은 이북 출신 여자이다.

기생은 무슨 일을 하나?

출근을 해서 조합장이 이름을 뒤집어 놓으면 오늘 일이 있으니 집에 가서 화장을 한다. 끝까지 이름이 그대로 있으면 공치는 날이다. 화대는 음식 값에 포함되어 있다.

기생은 방에서 상 하나 치우고 춤을 춘다. 동래 호텔은 방문이 두꺼워서 방음이 잘 된다. 단체 손님이 서울에서 많이 온다.

기생은 입춤, 살풀이, 민살풀이(수건을 들지 않고 추는 춤), 소고품을 춘다.

기생의 한이란 무엇인가?

기생 어머니가 기생을 영감에게 돈을 받고 시집을 보낸다. 아침에 남자는 가고 나서 기생은 다음날 잔치를 한다. 동기가 남자와 자고 난 후 조합에서 남자가 없는 상태에서 결혼식 피로연을 동료 기생과 하는 격이다. 이것이 기생의 한이다. 동기는 남자와 자고 나서(머리를 올리고 나서) 다음에 기생 일을 시작한다. 동기 3사람을 머리 올려 주면 극락에 간다는 말이 있다. 그 당시 기생은 가난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을 돌보아주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뜻이다.

동래 권번에서 무엇을 가르쳤나?

기생에게 조합에서 승무, 살풀이를 가르쳤다. 가르치는 기간은 기생의 소질에 따라 다르다. 춤 가르치는 사람, 악기 가르치는 사람, 소리 가르치는 선생이 따로 있었다.

공연을 한 적이 있는가?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작품 공연은 거의 하지 않았다. 지도를 많이 했다. 기생들을 데리고 온천 극장에서 한번 공연을 한 적이 있다.

동래 권번에서 얼마 동안 가르쳤나?

2,3년 있다가 공 대일(공 옥진의 아버지)의 초청으로 광주 호남 국악원에 갔다. 거기에도 주로 기생이 배웠다. 동기는 별로 없었다. 함평, 영광에서도 가르쳤다.

스승인 이 매방의 춤과 당신은 춤은 어떻게 다른가?

생음악을 잡으면 이 매방도 춤이 달라진다. 녹음된 걸로 하면 거기서 꼼짝 못한다. 순서대로 나가야 하거든. 이 매방도 생음악을 추면 떵떵 고개 짓을 한다. 그러나 녹음에 하면 그냥 못출까 싶어서 놀라서 기계적으로 춘다. 나는 항상 춤을 생음악으로 춘다.

강옥남 류의 특징은 무엇인가?

멋과 한의 춤이다. 우선 춤은 멋이 있어야 한다. 춤을 멋있게 추려면 춤 가락이 좋아야 한다. 보통 무용가들이 춤을 추면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춘다. 그런데 하나아 두우울 세에넷 네에엣 이렇게 추어야 한다. 우리 음악은 하나가 삼분박이어서 12분박이면 한 장단이다. 하나둘셋, 둘둘셋, 셋둘셋, 넷둘셋. 삼사 십이가 되어야 온박이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이 그걸 다 줄여버리고 하나 둘 셋 넷, 그냥 이렇게 춘다. 춤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같은 네 박자라도 그 안에서 열 둘을 먹든 열 여덟을 먹던 박자만 안고 가면 된다. 이렇게 추어야 멋있고, 지겹지 않다.

한의 춤은 자기가 슬픔이 많아야 한다. 살풀이에서 수건을 떨어뜨리고 주으러 갈 때 헤어진 연인처럼 생각한다. 감정을 잡고 얼굴의 표정에서 전달해야 한다. 동작 하나 하나에서 어떤 감정인지 생각해서 추도록 한다. 살풀이를 추면 관객을 울려야 한다. 못 울리면 못추는 것이다. 나는 상상하면서 춤을 추도록 한다. 나는 춤을 가르칠 때 상황을 떠 올리도록 한다. 죽고 못사는 연인과 헤어졌을 때를 상상하고. 그것을 느끼고 추라고 강조한다.

강 옥남은 올해 71세이다. 그녀는 등록된 문화재도 아니고, 대학에 자리도 없고 무용 협회에도 나가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언론도 관객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보물처럼 소중한 역사를 품고 있다. 무명의 문화재들에게도 경험과 기억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우리의 문화 유산이 풍성하게 될 것이다.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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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악선생님 추모공연 남산국악당 하얀나비공연중 영남지성승무

 

2009년 박경랑 선생의 스승이신 김수악선생님이 돌아가신지 100일째되는날 선생님을 기리며 남산국악당에서 열린 추모공연 "하얀나비"중 영남지성승무 영상 서재준

승무의 아름다움은 정면을 등지고 양팔을 서서히 무겁게 올릴 때 생기는 유연한 능선 및 긴 장삼을 얼기설기하여 공간으로 뿌리치는 춤사위와 하늘을 향하여 길게 솟구치는 장삼자락 등이 볼 만하다. 그리고 비스듬히 내딛는 보법(步法)이며 미끄러지는 듯 내딛다가 날 듯하는 세련미는 거추장스런 긴 장삼을 더 할 수 없이 가볍게 만들어준다.

또한 자진모리와 당악(堂樂) 장단에 맞추어 시작하는 북의 연타는 주술적(呪術的) 힘을 발하여 관객을 몰아지경(沒我之境)으로 이끈다. 이 북소리가 멎으면 다시 긴 장삼이 허공에 뿌려지고 연풍대(筵風臺)가 있은 후 어깨춤에 사뿐한 걸음이 곁들여지고 합장하면서 춤은 끝난다. 반주하는 악기는 삼현육각(三絃六角), 곧 피리 2, 대금 1, 해금 1, 장구 1, 북 1의 편성이며, 악곡은 염불·타령·자진모리·굿거리·당악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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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뉴스=최진목 기자] 한국무용가 박경랑과 전통공연예술 앙상블 더늠이 싱가포르 에스플러네이드의 세이크리드 뮤직 타피스트리 축제(Tapestry of Sacred Music of Esplanade)' 초청으로 오는 4월 19일 에스플러네이드 리사이틀 스튜디오에서 공연한다.

이번 무대는 승무와 살풀이 등 한국의 종교성 강한 전통춤과 시나위와 같은 음악을 소개하고 싶다는 축제의 요청에 의해 이뤄지게 되었으며 그간 국내외에서 수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박경랑 명인과 더늠 앙상블이 승무, 비나리, 살풀이, 경기시나위 그리고 교방춤을 공연한다.

“종교와 문화를 담아 내는 고유 음악은 명확하게 이유를 알 수 없다 해도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익숙치 않은 이국의 음악이고 너무 먼 과거를 노래한다 할지라도 시간을 거슬러 현대인의 마음까지도 움직일 수 있다.” 는 것에서 착안해 2009년 시작한 '세이크리드 뮤직 타피스트리 축제(Tapestry of Sacred Music)'는 5회째에 이르는 올해까지 다른 땅, 이국의 문화, 세기를 관통하는 종교에 뿌리를 둔 음악을 소개해왔다.

한국에서 참가하는 공연을 통해 샤머니즘, 불교 그리고 유교에 뿌리를 둔 예술을 소개하기 위해 축제는 “문을 열고 영혼을 깨워라! 그 문 안에 들어가는 인간, 우리 모두에게 온 세상의 축복이 함께할 것이다.” 를 카피로 채택하고 있다.

4월 19일부터 21일까지 에스플러네이드 콘서트홀, 시어터 스튜디오, 리사이틀 스튜디오 등을 비롯해 야외무대, 분수대 광장, 건물 내 통로와 복도에 이르기까지 에스플러네이드는 유료와 무료공연, 전시와 세미나 및 워크숍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며 남아프리카 공화국, 미국, 이란,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호주, 한국 그리고 싱가포르 예술가들이 참가한다.

이번 박경랑과 전통공연예술 앙상블 더늠의 공연은 미국 할렘 가스펠 합창단 (halem Gospel Choir), 이란 아미드 레자 누바크쉬 (Hamid Reza Nourbakhsh)의 페르시아 음악, 인도 라이위 앙상블(Laihui Ensemble)과 더불어 4개 메인 프로그램의 하나로 소개될 예정이다.

스테이지뉴스=최진목 기자(realtree99@hanmail.net)[ⓒ www.stagenews.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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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박경랑 선생의 스승이신 김수악선생님이 돌아가신지 100일째되는날 선생님을 기리며 남산국악당에서 열린
추모공연 하얀나비중 승무 북가락 영상 서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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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교방청춤의 복식

조 미 나

국문초록

 

전통무용은 춤을 추어 온 신분과 장소에 따라 궁중무용과 민간무용으로 분류한다. 민속무용은 민중의생활 체험에 기반을 두고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기 때문에 그 표현방식에 있어서 궁중무용에서 볼 수 없는 고정된 형태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짓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 개인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현란한 의상이나 무대장치 없이 세련된 동작만으로 평민계급의 소박한 생활감정을 춤으로 표현한다. 승무, 살풀이, 농악무, 소고춤, 장고춤 등이 대표적이다.

교방춤 복식은 살풀이나 승무 같은 종교적인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무용처럼 정해진 복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부채는 무대화시키면서 의상과의 일치를 위해 때에따라 의상에따라 바뀌기도 하며 의상 또한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바뀌어지기도 하나 대체로 춤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서 또는 여러 교방춤와의 구별을 하기위해 검정치마에 노란저고리, 그리고 고름과 디자인을 특성화시켜다고 본다.

속치마에 글이나 그림을 그린 것을 입기도 하는데 그것은 옛날 선비들과 풍류를 즐기고 시, 서, 화, 악, 가, 무 등으로 여흥을 즐기면서 치마폭이나 부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 시 를 써주기도 하였으며 그것을 들고 흥이나면 춤을 추기도 하였으며 또한 정표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하기에 이것을 무대에서 재현하는 과정에서 부채나 속치마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면서 극적인 효과를 주기도 한다.

부채는 황, 룡, 기, 백, 학, 무라는 한자로 백학이 황룡의 기운처럼 춤춘다. 또는 황룡의 기운처럼 힘차고 백학처럼 부드럽게 춤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교방춤의 이미지나 동작의특성을 살펴보면 다소 답답해 보일수 있는 전통무의 느낌에 비해 시원 시원 하고 여성스러운동작과 남성스러운동작의 조화가 잘 짜여져 있다.

복식의 색과 디자인은 이와 잘 연관되어 있는데 대체로 흑색치마에 노란저고리를 입고 디자인의 특색이라 한다면 저고리가 짧은 편이며 고름은 가슴을 띠 띠우듯 학고 남은 부분을 세로 고름으로 맨다. 치마는 팻치를 입지 않는 홋 치마이며 속바지는 통 속바지를 입는다.

남성스러운 흑색치마, 여성스러운 노란 저고리 그리고 하체동작을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 홋치마를 입으며 빠르게 도는 동작의 효과를 위해 속치마를 겉치마화 시키고 통속바지로 예의를 갖춘다.

또한 색의 내제된 의미를 보면 검정 치마는 물의 성질처럼 무용수의 마음이 관객의 마음 속으로 흘러들어가는 공감을 의미한다. 노란 저고리는 관객의 내면에 에 숨어있는 감흥을 흔들어 끄집어 내는 활동성을 의미한다.

교방무의상의 초기 복식은 기본적으로 검정치마에 노란배색을 선택하였고 중기의 복식어깨부분의 색이 다양해지고 속치마의색이나 문양으로 인해 겉치마 못지않은 의상의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후기의 복식은 저고리가 화려해지고 치마와 속치마에도 변화를 주었다.

영남교방무의복식은 무용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치장이 아닌 관객을 위한 하나의 매개체로써의 역할을 지향한다.

예쁘게 보이려는 디자인보다는 동작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정직함으로 관객의 흥미유발을 위해 즉흥적으로 사용되어지는 의상과 소품의 사용또한 그러할것이다. 그래서 추는 자가 추어 지게 만드는 새로운 공간의 창조가 될수 있다.

1.1.

1.2.

목 차

Ⅰ. 서론

3. 영남교방청춤 복식의 내적의미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2. 연구 방법 및 제한점

Ⅲ. 영남교방청춤이 지향하는 복식의미

 

 

Ⅱ. 영남교방청춤의 복식

 

1. 전통춤의 일반적인 복식

참고문헌

2. 영남 교방청춤 복식패턴의

외형적 변천연구

Abstract

1.3.

1.4. Ⅰ. 서론

1.4.1.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복식은 격식이라는 말이 있다. 이말이 지향하는 뜻은 간결하고도 깊다. 옷이 곧 무엇가를 상징적으로 나타냄을 말하는 것이다. 복식의 상징성은 시대성과 함께 변모되어가고 있다. 춤에 있어서 복식이 갖는 의미와 지향하는 바는 무엇일까? 아마도 일반적인 복식의 의미에서 바라본다면 대동소이하지 않을 것이며,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일반적인 옷과는 상이한 점을 보일 것이다.

춤은 인간육체의 시 공간적인 동작조성을 통해 가시적인 의미체를 형성하는 현상이라고 한다면 순수발생적인 원시무용, 오락무용과 같은 형태에서는 예외가 되겠지만 종합예술로써의 무용에서는 동작 그 자체뿐만 아니라 장치, 조명, 의상과 같은 부수적인 요소들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특히 무용의상은 시각예술의 형태로 종합예술로써의 무용에 새로운 무대를 제시하게 하는 방법이 된다.

무용의상은 무용이 본래 의도하는 주제를 관객에게 쉽게 전달하게 해서 관객의 이해와 흥미를 주며 조명과 장치의 일관성 있는 통일을 통해 무용의 시각적 효과에 도움을 주며 공연자의 신체적 결합 및 배역의 성격을 결정짓는 역할을 한다.

본 연구는 영남교방청춤의 복식에 관하여 복식의 의미와 그 의미가 내포하는 사상 등 복식에 관련하여 면밀하게 연구하고자 한다.

 

1.4.2. 2. 연구 방법 및 제한점

본 연구는 운파 박경랑에 의해서 전승되고 있는 영남교방청춤의 복식에 관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기본적으로 문헌연구에 집중하였으며, 사실적인 묘사와 탐구에 있어서는 운파 박경랑선생님과의 인터뷰를 시도하여 세부적으로 참고하였다.

연구의 제한점은 영남교방청춤의 현 전승자인 운파 박경랑선생의 개인적인 복식의도에 맞추어 복식의 의미를 구현해 내려 했으므로 일반적인 춤 복식의미와 상충하는 부분과 같은 주관적인 해석이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1.5. Ⅱ.영남 교방청춤의 복식

 

1.5.1. 1. 전통춤의 일반적인 복식

 

한국의 전통무용은 춤을 추어 온 신분과 장소에 따라 궁중무용과 민간무용으로 분류한다.

 

1) 궁중무용복(宮中舞踊服)

 

궁중무용은 일명 정재(呈才)라고 하는데 이는 재조(才操)를 드린다는 뜻으로 나 라의 경사, 궁중의 향연, 외국 국빈을 위한 연회 등의 궁중잔치 때에 하던 춤과 노래의 연예(演藝)를 말한다. 이는 신라시대 발생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 이르러 30여종의 무용이 만들어졌고 조선 말기에는 약 50여종에 달했다.

궁중무용은 특히 조선 후기 순조조에 이르러 정리되고 그 종목도 대폭 증대되어 전성기를 이룬다. 궁중에 내외연이 성행될 때에는 외연을 무동(舞童)이, 내연은 여령(女伶)이 각각 거행하게 되며, 대기 무동은 악공 중에서 대치하고 여령은 각도에서 선출하였다.

 

(1) 무동복(舞童服)

상례적으로 궁중에서의 향연에는 여악(女樂)이 주가 되어 왔으나 고려 때부터 있어 왔던 여악에 대한 시비는 세종조에 이르러 새로운 정재무동을 낳게 했다. 그러나 이는 곧 폐지가 되었다가 경오년(문종즉위년, 1450)에 다시 복구 되었다. 조선말기 궁중무용의 전성기까지 이어진 전통무용 중 무동이 등장하는 춤은 29 종이다. 이는 복식의 형태가 동일한 26종의 복식과 첨수무의 복식, 처용무의 복식 그리고 학무의 복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일반무동의 복식

일반적인 무동복식은 정재의 수도 많지만 여기에 참여하는 무동의 수도 상당히 많으므로 이들의 복식이 대표적인 궁중남무복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머리에 화관을 쓰고 중단의(中單衣)에 상(裳)과 각 색의 단령(團領)을 입었으며, 그 위로 야자대(也字帶)를 두르고 흑화자(黑靴子)를 신었다.

 

(2) 첨수무(尖袖舞)의 복식

순조 28년에는 공작깃이 달린 피변(皮弁)을 쓰고 녹문첨수의를 입고 홍자문반비의(紅紫紋半臂衣)를 입었으며 남전대를 두르고 청말에 자색 행전을 두르고 흑화자를 신었다.

첨수의는 일반무동들이 단령 속에 입은 중단의와 같은 형태로 직령에 좁은 소매이며, 반비의는 이 시대의 여령들이 착용했던 양옆과 뒷솔기가 터진 4자락의 쾌자와는 달리, 뒷솔기가 터지지 않은 3자락의 옷이며, 앞자락의 길이가 뒷자락 보다 훨씬 짧은 것이 특징이다.

(3) 처용무(處容舞)의 복식

삼국유사의 처용량조에 의해 처용무가 신라 헌강왕 때 지금의 울산지방에서 발생되었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다.

신라 때는 검은색 도포에 사모를 쓰고 추었으며 뒤에 오방처용무가 되었다.

악학궤범에 나타난 처용무에 대한 복식을 각 위복별로 나누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사모(紗帽)

처용가면을 쓴 다음 사모를 쓰는데 사모에는 수공화(首拱花) 2지를 꽂았다.

이 수공화는 모란꽃을 가리키며 사모 뒤에는 후수가 늘어져 있다.

 

② 의(衣)

의는 오방의 색에 따라 청, 황, 홍, 백, 흑색의 비단으로 만든다. 형태는 앞자락이 짧고 뒷자락이 길며 앞가슴 부분에 모나고 긴 흉배를 달고 앞뒤와 소매에 만화를 그리며, 옆솔기의 밑부분은 거의 허리선까지 터져있다.

 

③ 천의(天衣)

천의는 녹색비단을 쓰고, 만화를 그리며, 안은 홍색 명주를 쓴다.

 

④길경(吉慶)

길경은 안팎 모두 홍색 초를 쓰며, 양 끝에 녹색비단을 잇대어 깁는다.

 

⑤ 상(裳)

상은 황색 초를 쓰며, 상 가운데는 세로 녹색비단으로 첨(簷)을 만들고, 첨 아래는 가로 홍금선과 황색 초를 잇대어 깁고, 첨 위에서 홍색 초 끝 2개를 드리우고 끈 끝에 녹색 비단을 잇대어 깁는다.

 

⑥ 말군(襪裙)

처용무의 말군은 무릎에 채화사각(彩花四角)의 꽃문양이 붙어 있는데 이 문양은 방슬(方膝)을 말한다. 이 방슬에는 수가 놓여져 있으며 오방에 따라 말군과 방슬의 색상이 달라진다.

 

⑦ 한삼(汗衫)

한삼은 도련한 백색비단으로 한다.

 

⑧ 대(帶)

홍색 가죽띠를 쓰고, 고리로는 여주가지를 새긴 나무로 쓰고 쇠를 붙인다.

 

⑨ 화(靴)

백색가죽으로 만들고 끈이 있다.

 

(4) 학무의 복식

학무는 학이 연통을 쪼면 그 속에서 두 동녀가 나오는 춤이다. 학무의 발생 연대는 고려대이고 조선조 성종 때 크게 발전하여 전선말까지 궁중에서 성장하여 전해져 왔다. 사람이 학의 형체를 뒤집어 쓴 형태이다.

 

2) 여령복(女伶服)

 

순조 29년부터 고종말까지 내연에서 거행된 총 34종 중 처용무와 학무를 제외 하면 여령이 추는 무용은 32종이다. 이들 여령무복은 6종류의 복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1) 일반 여령무의 복식

 

아박무, 향발무, 헌선도, 무고, 가인전목단, 선유락, 연화대무, 첨수무, 몽금척 등 25종의 일반 여령무는 정재의 수도 많지만 여기에 참여하는 무기(舞妓)의 수도 상당히 많으므로 이들의 복식이 곧 이 시대의 궁중여무의 대표적인 복식을 말해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평복차림에 화관을 쓰고 홍초상(紅梢裳)과 황초삼(黃梢衫)을 입은 위로 수대(繡帶)를 매었으며 오색한삼을 끼우고 초록화를 신었다. 이 차림은 일반 여령들과도 같으며 무(舞)의 종류에 따라 필요한 의물이나 악기를 들었다.

 

(2) 춘앵전(春鶯囀)의 복식

 

이 춤은 순조의 세자 익종이 순종숙황후의 보령 40세를 경축하기 위하여 지은 것으로 1인이 추는 독무이다.

이의 복식으로는 평복차림에 화관을 쓰고 홍초상과 황초삼을 입은 위로 홍수대(紅繡帶)를 매었으며 비구(臂構)를 차고 오색한삼을 끼었으며 어깨에 하피(霞帔)를 두르고 비두리(飛頭履)를 신었다.

 

(3) 검기무(劍器舞)의 복식

 

검기무는 검무 또는 황창랑무라고도 하는 무무(武舞)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검기무는 민간에서 가면무로 연희되기 시작하다가 궁중에 들어가면서 가면이 없어지고 여령에 의해 이조말까지 전승되어 옷 듯하다.

이들의 복식으로는 전립(氈笠)을 쓰고 금향협수 위로 괘자(掛子)를 입고 남전대를 띠었으며 양손에 무검을 들었다.

 

(4) 선유락 집사(船遊樂 執事)의 복식

 

선유락이란 채선(彩船)을 끌고 배 떠나는 정경을 그린 춤으로서 2명의 동기(童妓)는 닻과 돛을 잡으면 나머지 여령들은 2명의 집사의 행선령(行船令)에 따라 배를 끌게 된다.

이들 집사들은 주립(朱笠)을 쓰고 협수(挾袖)를 입은 위로 철릭을 입고 진홍광대(眞紅廣帶)를 띠었으며 수화자(水靴子)를 신고 등에는 통개(筒箇), 양손에는 환도와 등편(籐鞭)을 들고 있다. 이것은 무관의 복식과도 같다.

 

(5) 무산향(舞山香)의 복식(服飾)

 

무산향은 익종이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대모반(玳瑁盤)을 놓고 1인이 추는 독무로서 춘앵전과 비슷한 점이 많다.

이의 복식으로는 춘앵전에서와 같은 화관을 쓰고 홍착수의를 입은 위로 초록괘자를 입고 금사자를 두르고 남전대를 띠었으며 오색한삼을 끼우고 홍수혜를 신었다.

 

(6) 동기(童妓)의 복식(服飾)

 

여러 의궤의 정재도를 보면 동기는 3개의 무용에 참여하고 있다. 즉 연화대무 에 2명, 선유락에 2명 그리고 학무에서 연꽃 속에 2명의 동기가 보인다.

이들의 복식을 보면 홍초말군(紅綃襪裙)과 홍라상을 입은 위에 단의(丹衣)를 입고 금화라대(金花羅帶)를 띠었으며 한삼을 끼우고 수초혜를 신었다. 이러한 복식은 3개의 무용에 참여한 동기가 모두 같았는데 다만 서로 다른 것은 관이다.

연화대무의 동기는 고종 24년 진찬까지는 합립(蛤笠)을 썼으나 그 이후는 연화관을 썼다.

 

1.5.2. 2. 민속무용복(民俗舞踊服)

 

무속무용, 사찰무용, 가면무용과 농악 기타 살풀이, 강강수월래 등이 있다. 이중에서 실용성과 표현성을 고루 갖추고 우리 민족의 문화적 배경인 무속, 불교, 군의 요소가 습합된 놀이복식으로서의 농악복식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1) 농악의 유래와 유형

농악의 기원은 고대의 제천의식이라 할 수 있다.

농악은 그 내용이나 구조, 형식 그리고 연희하는 목적과 기능에 따라 성립과정에 대해 말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축원형태의 농악에서 시작하여 농경적인 노작농악(勞作農樂), 걸립농악(乞粒農樂), 연예적인 형태의 농악 등 네 단계로 변천하였다고 볼 수 있다.

 

2) 농악의 복식유형

 

농악대는 기본적으로 사물(꽹과리 ․ 징 ․ 장구 ․ 북)과 기(旗)대 ․ 소고 ․ 잡색 ․나팔 등으로 편성되는데 그 조직은 대체적으로 농기(農旗) 1인, 영기 2인, 쇠 2인, 징 1인, 장구 2인, 북 2인, 소고 8인과 무동 ․ 중 ․ 각시 ․ 양반 ․ 대포수(총잽이) 등의 잡색으로 구성된다.

① 상쇠

상쇠는 농악단을 지휘하는 사람이기에 옷이나 장식품이 가장 화려하다.

이 상쇠의 복식은 지방마다 약간씩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호남우도(湖南右道)의 경우 전립에 부포(꽃상모)를 달고 반소매 창옷(홍동지기)를 입으며 등에는 원형의 쇠붙이인 거울을 양 옆에 달고 안에는 적황녹색의 천을 늘어뜨리며 청색띠를 허리에 맨다.

 

② 쇠꾼

상쇠와 비슷하며 장식이 없고, 모자는 전립을 쓰거나 고깔을 쓴다.

 

③ 징수

 

쇠꾼과 비슷하며 패랭이나 고깔을 쓴다. 색띠는 한쪽만 매거나 삼색띠를 감고매는 것이 있다.

 

④ 장구수 ․ 북수

쇠꾼의 복식과 같이 전립을 쓰거나 고깔을 쓴다.

 

⑤ 소고잽이

쇠꾼과 복식이 기본적으로 동일하나 종이로 만든 꼬리가 달린 채상모를 쓰는 경우와 고깔을 쓰는 경우가 있다.

 

⑥ 농기수

흰 옷에 패랭이를 쓰거나 꽃수건 그리고 고깔을 쓰는 경우도 있고 삼색띠를 허리에 두르거나 맨다. 걸립농악에서는 먹장삼과 홍장삼을 입는 경우도 있다.

 

⑦ 영기수

농기와 같으나, 지역에 따라 쾌자나 더그레를 입거나, 상모 없이 전립을 쓰고 꽃두건을 쓰는 경우도 있다.

 

⑧ 잡색

기본적인 잡색은 무동, 대포수, 각시, 중, 양반 등이다.

● 무동: 고깔을 쓰고 남쾌자를 입으나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 대포수: 옷의 색깔이나 옷차림이 일정하지 않으나 장식품은 공통적이다.

● 양반: 경기․ 충청에서는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으며, 호남에서는 정자관을 쓴다.

● 각시(색시); 지역마다 색상이 일정치 않으나 저고리에는 치마를 걸치고 일부 지방에서는 바가지로 만든 탈을 쓰기도 한다.

 

● 중: 장삼에 송낙을 쓰고 허리에는 바랑을 진다. 장삼이 없으면 색두루마기를 입기도 한다. 송낙은「조리」라고도 하는데 짚으로 주저리같이 엮어 만들며 꼭대기에 꽃을 길게 달기도 한다. 일부지방에선 탈을 쓰기도 한다.

 

● 참봉: 도포를 입고 탈을 쓰며 큰 갓을 쓰며 홍적삼은 붉은 장삼에 붉은 탈을 쓰고 붉은 고깔과 버선을 신는다.

이 밖에도 얼굴에다 방울을 달아 소리를 내는 방울쇠, 쇠옷에 부포 상모를 쓴 농구, 붉은 창옷에 초립을 쓴 화동(花童), 쾌자를 입고 전립을 쓴 집사(執事), 나팔수, 새납 등이 있다.

 

3) 기타 복색

 

전립(戰笠), 상모, 고깔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상모는 부포상모와 채상모가 있는데 부포상모는 뻣뻣하게 서 있는 뻣상모와 부드러운 부들상모가 있다. 채상모는 부포와 같이 전립꼭대기에 석조시를 붙 이고 구슬을 단다.

마을 농악에서 볼 수 있는 고깔은 삼각형 형태로서 꽃을 다는데 당배꽃, 모란, 함박꽃, 백일홍 등을 달며 잎이 달린 것도 있다.

지역별로 양상이 다른 농악복식은 복식유형의 특징은 다르나, 기본으로 잡색과 무동을 제외한 전원이 고깔이나 전립을 쓰고 흰색 바지저고리를 입고 3색 띠를 맨다.

또한 편성에 있어 잡색들은 복색이 화려하며 꽹과리수를 제외한 모두는 채상모나 고깔을 쓴다. 색띠 매는 방법은 지방에 따라 다르며 고깔이나 띠, 전립, 더그레, 쾌자 등의 요소들은 불교적 군, 무속적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으며, 백, 청, 홍, 흑, 황색의 오방색(五方色)이 사용되고 지방에 따라 색채의 선호가 상이함을 볼 수 있다.

 

4) 승무

 

승무는 한국민속무용의 백미라고 할만큼 춤의 기교와 예술성이 뛰어나며 민속춤 특유의 ‘정 중 동’ ‘동 중 정’의 정취가 가장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어, 앞서 연구 민속무용을 대표하는 춤이다. 승무의 무복은 장삼, 가사, 고깔로 이루어져 있는데 옷감은 갑사로 만들고 속옷은 무명으로 만들며, 버선은 옥양목으로 만들어 신는다. 원레 남자와 여자는 같은 의상으로 바지,저고리를 입었지만, 현재 남자는 바지,저고리,여자는 치마저고리에 긴소매가 달린 장삼을 입고 머리에 고깔을 쓰고 어깨에 사선으로 홍가사를 입는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양손에 북채를 든다. 승무에 있어 무복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승무의 무복이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승복은 아니고, 장삼의 명칭은 조선시대전부터 사용되었다.

 

5) 살풀이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해의 나쁜 운을 쫓기 위해 굿판을 벌였는데 그 곳에서 무당이 즉흥적으로 나쁜 기운을 푸는 춤을 추는 것을 살풀이춤이라 하며 ‘도살풀이춤’‘허튼춤’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수건춤, 산조춤, 즉흥춤이라는 이름의 수건춤이었으나 춤꿈 한성준이 1903년에 극장공연에서 살풀이춤이라는 말을 쓴데서부터 이름이 비롯되었다. 춤꾼은 고운 쪽머리에 비녀를 꽃고 멋스러움과 감정을 한껏나타내기 위해 수건을 들고 살풀이곡에 맞추어 춤을 춘다. 살풀이 춤은 춤꾼의 치마와 저고리가 모두 흰색이다. 흰색은 곧 무색無色이며 있는 그대로의 의미를 간직한 색이다. 무색, 있는 그대로의 색 곧 자연 그 자체이다.

 

1.5.3. 2. 영남 교방청춤 복식패턴의 외형적 변천연구

 

1) 영남교방청춤의 고유복식패턴의 특징

 

교방춤복식은 살풀이나 승무 같은 종교적인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무용처럼 정해진 복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부채는 무대화시키면서 의상과의 일치를 위해 때에 따라 의상에 따라 바뀌기도 하며 의상 또한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바뀌어 지기도 하나 대체로 춤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서 또는 여러 교방춤와의 구별을 하기위해 검정치마에 노란저고리,그리고 고름과 디자인을 특성화 시켰다고 본다.

 

속치마에 글이나 그림을 그린 것을 입기도 하는데 그것은 옛날 선비들과 풍류를 즐기고 시,서, 화, 악, 가, 무 등으로 여흥을 즐기면서 치마폭이나 부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시 를

써주기도 하였으며 그것을 들고 흥이 나면 춤을 추기도 하였으며 또한 정표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하기에 이것을 무대에서 재현하는 과정에서 부채나 속치마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면서 극적인 효과를 주기도 한다.

 

부채는 황, 룡, 기, 백, 학, 무라는 한자로 백학이 황룡의 기운처럼 춤춘다. 또는 황룡의 기운처럼 힘차고 백학처럼 부드럽게 춤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박경랑선생의 인터뷰내용<2011년 11월 29일 PM.12시. 박경랑류 영남 교방청 춤전수관>)

(1) 저고리의 특징

먼저 색의 배색에서 저고리와 어깨부분의 배색을 대비되는 색을 사용한다. 전체적인 노란색에 자주색을 덴다던지 초록계통의 녹두색이나 공연자의 이미지에 맞게 여러 색을 선택하기도 한다. 저고리의 배레선은 통이 좁은편이며 소매와 동정 둘레 부분의 색도 대비되는 색을 사용한다.가장 차별화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저고리의 고름은 일반적으로 매어지는 형식과는 다르게 가슴B.P선을 높이로 전체 돌레로 띠 띠우듯 두르고 나머지 남아있는 부분으로 중앙보다 조금 오른쪽에 가로 고름이 아닌 세로 고름을 맨다.

 

(2) 치마

치마또한 디자인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치마의 주름은 치마 윗 부분부터 시작이 되지만 교방복식의 치마는 속 치마의 가슴 말기처럼 겨드랑이 높이부터 시작하여 젖가슴 아래 부분까지 흰색민무늬 천으로 되어 있고 그 아래부터 치마의 주름이 잡혀있다 치마의 색은 기본적으로 검정을 사용한다. 하지만 속치마의 색깔이 비추어 지는 무늬의 감을 선택하기도 한다.

 

(3) 속치마

속치마는 일반적인 속치마와 기능적인 면에서 아주 차이가 있다. 그야말로 겉옷을 살려주기 위한 속 옷 이라기 보다는 겉옷 못지 않는 의상의 역할을 한다. 광택이 나는 소재에 큰 꽃 자수가 그려지기도 하고 아주 선명한 색또는 다양한 색깔을 사용하기도 하면서 속치마의 개념이 아닌 또 하나의 치마의 역할을 한다.

 

(4) 속바지

속바지 또한 차별성을 갖고 있다. 다른 속바지에 비해서 통이 아주 넓고 아랫단의 모양은 사각이다. 그리고 보통 속에 속바지를 하나 더 입어서 비춰지지 않게 하는 것 도 있지만 더 풍성해 보이게 하려는 의도도 가지고 있다.

1.5.4.

1.5.5. 3. 영남 교방청춤이 의미하는 복식의 내적의미

 

한국전통무용, 외국무용, 그리고 대중가요와 함께 공연되어지는 댄스도 그 동작을 잘 부각시켜주고 이미지전달을 극대화 시키는데 절대적인 역할이 바로 의상이다.

대표적인 전통무용을 예를 들면 살풀이는 기원의 뜻이 있는 다소 정신적인 춤사위를 가지고 있어 우리나라 전통 민복을 바탕으로 하얀 치마와 저고리를 입는 것이 대체로 정형화 되어있다. 한복의 형태는 특별한 것이 없으나 흰색이 주는 경건함으로 춤의 깊이와 기원의 마음을 잘 나타내어준다.

승무는 남자는 바지저고리 여자일 경우는 치마저고리를 안에 받치고 위는 긴 장삼을 입는다. 승무동작은 염불장단부터 아주 느리게 시작하는데 오래 정지되어 있는 것 같이 보이는 동작을 진행하다가 한꺼번에 큰 동작을 한다. 이때 한삼을 크게 뿌리는데 장삼이

허공을 가로지르면서 그림 그려지듯 뿌려진다.(춤은, 인간의 신체 움직임을 이용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에 그리는 하나의 그림과도 같다.)

이 처럼 의상은 그 춤의 이미지나 동작을 잘 살려내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박 경랑 류 교방 춤의 이미지나 동작의 특성을 살펴보자.

먼저 춤의 이미지를 보면 다소 답답해 보일 수 있는 전통무의 느낌에 비해 시원 시원 하고 선이 확연히 드러나 보여서 가끔씩 상체동작에서는 남성스러운 굵직한 선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곡선과 직선을 번갈아 조화롭게 짜여 져 있어 적당히 시원스럽고 적당한 무계감이 느껴지게 한다. 전체적인 동작 선(자신이 위치한 공간속에서 동작의 이동을 통해 그 공간을 채웠다 비웠다 하는 연희자의 움직임으로 해서 끊임없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수 많은 공간 여백 활동 까지 포함하며, 이러한 움직임이 만드는 선을 ‘동작선’이라 정의한다)은 크고 확실한 편이지만 중간 중간 잔재주를 부리듯 아주 여성적인 동작이 간간이 있어서 남성과 여성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있는 춤이다.

박 경랑 류 교방무의상은 일단 검정치마에 노란 저고리를 입는 경우가 많다.

저고리색은 여성적인 황색계통이며 치마색은 남성적인 흑색이다. 저고리는 배래선이 좁은 편이며 치마는 완전히 흑색을 입기도 하지만 속치마가 약간씩 비추어지는 무늬가 그려진 치마를 입기도 한다. 그리고 속바지는 보통 두 개 정도를 입는데 가장 겉에 입는 속바지는 통이 넓은 통속바지를 입는다.

그러면 앞에서 말했듯이 남성과 여성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있는 춤의 이미지와 황색의 여성스러움과 흑색의 남성적인 이미지의 색이 서로 잘 연관되어 있다.

좁은 배래선의 저고리는 시원스러운 상체동작과 사선과 직선의 팔 사위를 할 때 팔선이 더 길어 보이는 효과를 준다. 그리고 교방 춤 후반부엔 큰 원을 돌면서 다시 작은 원을 함께 도는 동작이 있는데 이때 동작이 다소 크고 빠르기 때문에 속바지가 보여 지는 부분이 다른 춤에 비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통속바지를 입고 속에 다른 속바지를 하나 더 입어 비치지 않게 하므로 관객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

검정치마에 노랑저고리의 한복배색은 그리 흔한 배색의 조합은 아니다. 보통은 교방무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다소 화려하고 원색적인 색을 많이 입는다. 황색저고리에는 금박이나 수를 놓아 다소 화려하게 하기도 하지만 흑색치마가 무계 감을 줌으로써 잔재주를 부리는 동작이나 어깨춤이 있는 동작처럼 기교를 부리는 동작에서도 애교가 있어 보이기는 하나 절대 가벼워 보이지는 않고 넘치지 않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민속무용은 일반 서민이나 대중과 왕후, 귀족 등이 있는 계층화된 사회에 있어서 그 민족의 시층 사회에 있어서 그 민족의 기층사회에서 전승된 무용을 말한다. 기층사회의 전승자는 서민이나 대중이며, 이사회의 문화는 유형적, 일상적, 반복적으로 전승이 강한 문화이다. 즉, 민속무용이란 직업적으로 무용가나 특정의 작가나 안무가에 의해 만들어진 춤이 아니라 그 민족의 공동체적 성격을 갖는 무용으로써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춤이 아닌 상당히 오렌 기간동안 전승된 무용을 말하며 남에게 보이기 위한 춤이 아닌 자기들 스스로가 즐기는 춤이다.

민속무용은 민중의생활 체험에 기반을 두고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기 때문에 그 표현방식에 있어서 궁중무용에서 볼 수 없는 고정된 형태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짓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 개인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현란한 의상이나 무대장치 없이 세련된 동작만으로 평민계급의 소박한 생활감정을 춤으로 표현한다.

박경랑류 영남 교방무는 민속무용의 성격을 많이 표현하려 한다. 보통 전통무용처럼 춤만 행하여지는 형식을 벗어나 극적인 구성을 만들고 등장인물에 각각 독특한 캐릭터를 부여함으로써 춤추는 공연자와 예를 들어 반주를 하는 악사들도 같은 이야기의 인물들로 묶어 보는 사람들에게 더욱 흥미를 유발하게 한다. 등장인물이 반주를 하는 악사 단 1인 일 때도 있고 여러 등장인물이 있을 때는 수 십 명이 있을 때도 있다.

반주자와 춤추는 공연자만 있을 때는 때로는 춤만 추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반주자에게도 약간의 대사 없는 연기를 행하게 하여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이때 악사는 오랜만에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러 온 선비이고 춤추는 공연자는 오랫동안 기다린 님을 반기는 여인이 되어 춤을 춰 나간다. 이럴 때는 보통 입어지는 흑색 치마에 황색 저고리는 입지 않고 그 어느 색보다 화려한 색을 선택하여 보고 싶은 님을 맞이하는 여인의 설레는 마음과 사랑의 열정을 표현한다.

이런 경우에는 선명한 보라색과 미색저고리를 입기도 하고 옛날 시집가기 전에 쳐녀들이 가장 많이 입었던 홍색치마에 연두저고리같이 아주 선명한 색 그 외에도 다양하게 화려한 장신구나 머리 모양의 변형을 하기도 하여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는데 다양성을 준다.

그리고 교방 무 에서는 잘 선택하지 않는 흰색저고리와 치마를 입을 때도 있다. 처음 등장할 때 는 살풀이의상처럼 아주 깨끗하고 전갈한 이미지이기 때문에 보통의 교방무보다 더 차분한 춤이 행하여 질것 같은 느낌을 먼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흰 치마와 저고리는 춤이 행하여 지는 동안 변화 무쌍하게 변화를 한다.

이때에도 극적인 요소가 사용되어 지는데 무대의 상황은 잔치가 벌어 지고 있는 연희장면이며 한쪽에서는 걸쭉한 술판이 벌어지고 또 한쪽에서는 춤판이 벌어지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화선지에 시를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방무가 행하여 지는데 부채또한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부채를 들고 춘다.

초반부는 똑같이 진행하다가 자연스럽게 붓을 들고 있는 선비에게로 가서 살포시 앉아 팔을 내밀어 저고리 배래에 글 한줄 써 줄 것을 요청한다. 선비는 아주 흥쾌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흰 저고리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이 다 써지면 글이 쓰여진 부분을 관객에게 보여주며 관객에 대한 하나의 이벤트를 선사한다. 그렇게 되면 흰 저고리는 글씨가 쓰여 진 다른 옷으로 변화를 한다. 같은 방법으로 치마에 또는 속치마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흰 부채에 글씨를 쓰기도 한다.

이 같은 방법은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의상에 변화를 줌으로써 의상을 활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즉흥적인 변화를 줌으로써 관객과의 소통거리를 더 좁히는 하나의 매계체가 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즉흥이란 어느 자극에 대하여 복잡한 사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즉각적이고 반사적인 신체활동은 통하여 표현하는 것이며 순간적인 창작으로써 표현형식이 불완전해도 새롭게 만들어 내는데 가치가 있다.)

 

그리고 소품이 사용되는 경우에서도 단지 춤을 추기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도 하지만 관객에게 더 가까이 접근하여 춤판으로 끌어 들이는 흥을 돋구어 내는 즉흥적인 요소 또한 가질수 있게 한다.(여러 이미지와 소품들도 즉흥무를 경험하는데 적합하게 사용 될 수 있다)대표적인 예로는 탈춤이나 농악, 북춤이 있다. 살풀이나 승무 같은 경우도 마당에서 자주 행하여 지던 때에는 즉흥무가 많이 행하여 졌지만 무대공연으로 많이 공연되어 지면서부터 즉흥적인 부분이 많이 사라져 가고 있다.

영남교방무의 소품은 부채이다. 굿 거리 장단에는 부채가 사용되어지지 않고 자진모리장단으로 변할 때 부터 부채가 사용되어 지는데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부터는 춤의 동작도 빨라지고 동작선이 더더욱 커진다. 이렇게 흥이 점점 더 고조 되어 가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지면 관객가까이로 다가와서 부채를 내밀고 잠깐의 무언의 대화가 오간다. 그리고 어깨춤이나 잔재주를 부리면서 흥을 돋운다. 이때 부채는 소품으로써의 역할 보다 더 큰 영역을 넘나들어 관객과 춤추는 공연자를 합일 시키며 무대와 객석으로 분리되었던 공간을 같은 흥을 가진 하나의 공간으로 변화시킨다. 그 공간은 더 이상 무대가 아닌 원래 우리의 문화인 마당의 문화로 공간이 재 창조 되어 진다.(마당은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모든 것, 세상의 모든 사람과 모든일을 제 각각 분리 시키는 분업적 관점을 파기하며 나아가서는 하나의 총체로 결속 시킨다)

영남교방무의복식에서 특징적인 디자인이 있다면 고름이다. 보통 가슴앞에서 매어지는 고름과는

영남교방무의 다르게 가슴을 띠 띠우듯 두르고 남겨진 띠로 고름을 매는데 새로 방향으로 맨다. 그리고 저고리의 풀어서 벗으려면 안쪽에 한번 더 매어져 있는 작은 고름을 풀어야 벗을수 있다.

가로로 매어지는 고름에 비해 세로로 매어지는 고름은 야무지게 매어진다.

이것은 정조를 지키려는 의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복식에서는 치마를 더 풍성하게 보이기 위해서 팻치를 입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영남 교방무 복식에서는 패치를 입지 않고 속치마와 속바지만 입는다. 하지만 다른 속치마처럼 흰색이나 단색이 아니고 꽃수가 들어 가거나 화려한 무늬가 들어 가기도 하는데 치마의 풍성함 때문에 가려지는 발디딤이나 하체동작들을 드러내기 위함도 있다. 살짝 살짝 보였다 보이지 않았다 하는 하체 동작들이 아니기 때문에 춤을 추는 사람은 자신있게 내 보여 줄수 있을만큼의 실력을 갖추어야 하는 책임이 따르게 된다.

교방무의 가장후반부에는 빠르게 돌아 가는 동작을 하는데 이때 속치마의 역할이 나타나게 된다. 이때는 두가지 색의 치마가 마치 두가지 색을 가진 하나의 치마가 돌아가는 형상처럼 보이기도 해서 마치 두가지 의상을 본것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고 가장 상승되는 분위기를 더 상승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교방청춤의 의상은 대개 검정치마나 노란 저고리이다. 일반적으로 검정은 오행 중 수이다. “흑색은 방위로는 북쪽, 계절로는 겨울에 속한다. 오행 중 수(水)로서,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고 스며들기를 좋아하는 물과 같이 음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검정 치마는 이러한 물의 성질처럼 무용수의 마음이 관객의 마음 속으로 흘러들어가는 공감을 의미한다. 노란색은 감정을 자극하는 화려한 색이다. “일반적으로 황색은 환하고 자극성 있는 따뜻한 느낌을 가지고 있어서 자유스럽고 개방된 감정과 상응하며, 적극적인 감정으로부터 변화되어 가는 자유로운 관계를 찾는 색이다.“ 노란 저고리는 관객의 내면에 에 숨어있는 감흥을 흔들어 끄집어 내는 활동성을 의미한다.

 

교방무에서 선명한 보라색이 자주 사용된다. 보라색은 이중적 의미가 있다. “보라색은 고급스러움, 비정상적인 등의 이중적 의미가 강하며,...“ 기생은 매우 고급스러우면서도 일반적인 가정생활로부터 벗어난 사람이므로, 교방무의 보라색은 고상함과 비정상성이란 긍정성과 부정성을 동시에 의미한다.

교방무에게 가끔씩 흰색 저고리와 치마가 사용된다. 흰색은 일반적으로 순결이다. “흰색은 순결, 청렴 등을 상징하며 우리 민족의 심성과 기질에 부합되어 한민족의 대표색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교방무의 백색은 여자의 순결과 정조를 의미한다.

 

 

 

(2)영남교방청춤의 복식의 변천

 

①초기 : 교방무의상의 초기 복식은 기본적으로 검정치마에 노란저고리의 배색을 사용한다.

 

● 저고리 : 기본형태는 일반적인 복식과 비슷하나 다른 특징이 있다면 길이가 조금 짧은 편이어서 가슴아래까지 다 덮이지 않고 거의 반만 덮여지는 높이이다. 그리고 저고리 배래선이 넓지 않고 좁다. 저고리 동정을 중심으로 어깨 부분에 자주색으로 천이 덧 대어져 있어 색이 확연히 대비를 이룬다.

그리고 고름도 일반적으로 매는 형식이 아닌 가슴부분을 가로로 띠 띠우듯하고 남겨진 띠로 가로 고름을 매지 않고 세로 고름을 맨다.

● 치마 : 저고리의 길이가 짧은 편이기 때문에 가슴부위는 하얀색 굵은 띠처럼 단단하게 되어있고 그 아래부터 치마의 주름이 만들어져 나간다.

속치마는 흰색속치마를 입는데 다른 속 치마와는 다르게 광택이 나는 소재를 사용한다. 속바지는 기본 속바지 위에 통이 넓고 아래부분이 사각모양인 통속바지를 입는다.

 

② 중기 : 중기의 복식은 색의 다양성으로 변화를 주었다.

 

● 저고리 : 초기의저고리는 전체적인 노란색에 어깨부분에는 자주색,그리고 가슴띠 부분의 자주색이 전부였다. 중기에 와서는 동정돌레로 녹두색을 덫 대기도 하고 다양하게 대비대는 색을 사용한다. 그리고 어깨부분에는 꽃자수를 놓아서 더 여성스러운 느낌을 강조하기도 한다.

● 치마 : 치마의 색이나 다지인의 변화는 없지만 초기의 치마는 저고리의 길이에 맞춰 가슴부위 흰색천의 길이도 정해져있어 팔을 올리지 않으면 보여지지 않았다. 중기에 와서는 흰색천의길이가 조금더 길어져 저고리 아래로 조금 보여지게 되었다. 이것은 상체를 더 길고 가늘게 보여지는 효과가 있다.

●속치마,: 중기때부는 속치마의 변화가 가장 큰 변화를 하고 있었다.

아무런 무늬가 없는 민무늬 치마에서 아주 큼직한 꽃수가 전체 둘레로 놓아지기도 하고 먹으로 그린 그림이나 글씨가 쓰여지기도 하면서 단순한 속옷의 역활에서 겉치마 못지 않은 의상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③ 후기 : 후기의 복식은 저고리가 화려해지고 치마와 속치마에도 변화를 준다.

 

●저고리: 후기에 와서는 저고리가 매우 화려해진다. 기본적인 노란색도 다양한 채도를 이용하여 밝은 개나리색을 쓰기도 하고 장중한 황금색을 쓰기도 한다.

그리고 금박이나 은박을 찍어 빛을 주기도 하고 어깨쪽에 놓는 수는 물론이고 배래에 큰 꽃수를 놓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소매도 점점 넓어지고 한색이 아닌 여러색을 단계적으로 덫덴다. 이처럼 후기의 저고리는 오히려 다른 복식의 저고리보다 더 화려해졌다.

●치마 : 후기에 와서는 치마가 단순한 검정치마일때도 있지만 속 치마가 비치는 무늬의 검정 치마를 입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떤 속치마를 입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이미지 변화의 효과도 있고 더 여성스러워 보이는 효과도 가지게 되었다.

●속치마 : 후기에 와서의 속치마는 흰색에서 여러 색으로 변화가 시작되었다.

노란저고리와 배색이 어울리는 녹두색 속치마를 받쳐 입기도 하고 입는 사람의 이미지에 따라 어울리는 다양한색을 선택한다. 속치마의색이 드러나는 겉치마를 입음으로써 속치마를 입었다기 보다는 치마를 두 개 입은 것 같은 효과를 준다.

 

(3) 영남교방청춤의 복식과 소품

 

1.6. Ⅲ. 영남 교방청춤이 지향하는 복식의미

 

영남 교방청춤의 복식은 색의 의미에서도 언급 되었듯이 먼저 흘러 들어 가고 다시 함께 흘러 나오는 분리가 아닌 교감과 합일이다.

그저 관객에게 예쁘게만 보이려는 자신의 치장을 넘어서는 교방의 복식은 관객을 위한 복식 그 이상의 의미도 될수 있다.

숙련된 동작을 보여주기 위해 예쁜 한복의 디자인을 과감히 포기 하기도 하고, 관객을 위한 볼 꺼리를 제공하기 위해 단 한번밖에 입을수 없는 일회성 의상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영남 교방 춤의 복식은 관객과의 소통과 교감을 하기 위한 하나의 매개체로 역할을 지향한다.

그리고 가장 좋은 목적으로 춤을 추는 자가 춤을 추어지게 만드는 것이라면 춤추는 자의 목적은 그 이상이 없을 듯 하다.

 

 

 

 

 

 

 

 

 

 

 

 

 

참 고 문 헌

 

1) 출처;다음까페 한복 스튜디오 <한복의변천사,한국의전통무용복식>

 

2) 임성수 2004 승무의 동작선을 이용한 한국 민속 무용 극장계획

 

3) 이화진 20005 살풀이 춤에 내제된 음향오행 사상에 관한 연구

 

임성수 2004 승무의 동작선을 이용한 한국 민속 무용 극장계획

 

채희완,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길사, p.34

 

조성환 1990 민속무용 정의와 기능을 중심으로

 

남윤경 2001 피나바우쉬 작품에 나타난 즉흥성 연구

 

남윤경 2001 피나바우쉬 작품에 나타난 즉흥성 연구

 

김채현 1989 춤과 삶의 문화 서울: 민음사

 

황경숙,윤미정 2011 한국무용에 내제된 색채의 의미

 

황경숙,윤미정 2011 한국무용에 내제된 색채의 의미

 

한귀자 2011 보라색의 고급스러운 연상에 관한 연구

 

 

 

The Costume of Park Gyeongrang Yeongnam-Gyobang Dance

 

Cho mi nah

 

Depending on the social status and venue of choreography, traditional Korean dances are categorized into court dance and folk dance. The folk dance originated from ordinary folks' life experiences and is hence native-born in origin. As such, in terms of its method of expression, the folk dance features free body movements that are usually absent in more formalistic court dance. Also, the folk dance conveys the ingenuous life emotions of the common folks through refined moves without the aid of flowery costumes or stage apparatus.

The folk dance includes Seung-mu, Salpuri-chum, Nongakmu, Sogo-chum, and Jango-chum.

 

The costume of Gyobang dance lacks any fixed design unlike religious ritual based dances such as Sungmu or Salpuli. The fan is staged and changes from time to time to match the overall costume. The costume itself also changes from season to season, but typically features a black skirt and a yellow top, as well as knots and other design patterns as distinguishing features from other Gyobang dances.

 

On occasions, the females dancer wears an undergarment with calligraphy or drawings thereon. This practice is effective in creating a dramatic ambience and reenacts the ancient custom that while entertaining with confucian scholars by means of poems, paintings, songs, dances, etc, the scholars sometimes drew a painting on the surface of the dancer's skirt or fan, and the dancer danced with such decorated skirt or fan afterwards as a symbol of affection.

 

The fan represents the six Chinese characters of 黃, 龍, 飛, 白, 鶴, 舞, and denotes a flying yellow dragon and a dancing white crane or the crane dancing like the force of the dragon. If one examines the image and bodily movements of Kyobang dance, one can see that, unlike the traditional dance, it feature breezy movements and seamless intertwining of both masculine and feminine moves.

 

Color and design-wise, the dancer usually puts on a black skirt with a yellow top. In terms of certain signature features of design, the top is relatively short, and the knot is tied as if tying around the chest with the remaining finished off as a vertical knot. The skirt is single layered without any patch, and the undergarment is one-piece.

 

The dancer hence puts on a masculine black skit and the feminine yellow top. The single layered skirt makes lower body moves more readily visible, and the undergarment is externalized to enable swifty circular moves. The one-piece undergarment shows courtesy.

 

Also, if ones probes into hidden meanings behind each color, the black skirt represents water-like consensus through which the mind of the dancer flows out unto and captures the mind of the audience. And the yellow top symbolizes energy with which the dancer can arouse and instill a sense of inspiration among the audience.

 

In its early phase, the Kyobang dance costume featured the black skirt with yellow coloring. In the intermediate phase, the color around shoulder areas diversified gradually, and the undergarment increasingly played a role of outer skirt due to its color and design patterns. In its advanced phase, the top became more colorful which in turn had an impact on the skirt and undergarment alike.

   

The Kyobang dance costume is not a mere extraneous accessory, but serves as a medium for mutual interaction with the audience. Its functional integrity certainly enables the dancer to cre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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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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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교방춤 등 전통 춤을 현대시각으로
수성아트피아 어버이날‘조율 TUNE’공연

 

 
 

 
수성아트피아가 어버이날 기획 공연으로‘조율 TUNE’을 8일 오후 7시 수성아트피아 용지홀에서 연다. 이번 공연은 ‘매혹’‘구도’‘신명’을 주제로 한국 전통 춤의 대표적인 명인들과 현대무용가들이 춤사위를 나누게 된다.

이번에 공연될 작품은 영남 교방춤, 승무, 밀양백중놀이 등 시간을 넘어 한국의 고유한 정신이 살아있는 전통 춤의 주제와 미감을 현대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한 작품들이다.

박경랑이 보여주는 영남 교방춤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예인집단인 기생들의 춤으로서 기품 있으면서도 고혹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반면 김은희는 이 미감을 현대 사회의 도발적인 이미지로 새롭게 해석한 창작춤을 선보인다. 두 번째 무대는 채상묵과 현대 무용가 이용우가 ‘구도’라는 화두를 파격적으로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 무대인 ‘신명’은 밀양백중놀이의 하용부와 현대무용가 차진엽의 만남이다. 하용부의 북춤, 범부춤은 토속적인 흥취를 한껏 느끼게 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와 고전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공연의 음악은 정영만이 이끄는 ‘남해안 별신굿 보존회’ ‘김주홍과 노름마치’ 음악극 집단 ‘바람곶’이 맡았으며, 소리꾼 장사익이 출연하여 춤과 함께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VIP석 5만원, R석 4만원, S석 3만원(초등학생 이상 관람가), 053)666-3300, 티켓링크.

조두진기자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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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 2012 박선영의 춤 '本'
주최 : 영남교방청춤 연구보존계승학회 http://gyobang.com
주관
: 한국영남춤 문화예술연구소, 영남춤보존회
기획 : korak 코락™
장소 : 국립국악원 우면당
일시 : 2012년 7월 13일 (금) 오후 7시 30분
문의 : 010-7102-0205, 02-702-4604


 

공연의 구성과 내용

 

♧ 살풀이춤(禮)

▷ 슬픔의 춤이 아니라 슬픔과 한이 바탕이 되어 이것을 환희의 세계로 승화시킨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둔다.

    느리지만 잔잔하며 강인하고 부드러우면서 섬세한 한 사위 한 사위를 빚으며 모순을 풀고

    맺힌 살을 풀어내어 한을 달래고 온몸으로 자기를 공간과 일치시켜 수 없는 맺고 푸는

    몸짓으로 자기 삶을 표현한다.

    먼저 가신 조상님께 예를 올리고 고를 풀어 산자들을 위한 액풀이로 구성해 보았다.

 

♧ 교방춤(凡)

▷ 경상도의 특유한 춤사위가 잘 짜여져 있고, 음․양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춤이며,

    남성적인 활달한 상체의 동작과 밀도가 높은 여성적인 섬세함을 지닌 하체 중심과

    발놀음(디딤사위)이 묘한 매력이 깃든 춤이다.

    운파 박경랑 선생에 의해 권번에서 전해져오던 춤가락을 한데 묶어 정리한 

    영남지역 교방의 총체적 춤이라 할 수 있다.

    예, 범이 기능보다 더 중시되었으며, 춤에도 예를 갖추어 품위와 격이 있어

    맑은 마음으로 춤을 추어야 올곧은 춤이 나온다.

    그래서 교방춤은 노는 데에도 예, 범을 갖고 즐겼던 풍류 속의 교방춤을 구성해보았다.

 

♧ 승무(道)

▷ 박경랑 선생의 스승인 故 조용배 선생으로부터 사사 받은 춤으로 지성승무라고 일컬어진다.

    복식과 춤사위가 호남형과는 다르며, 영남지역의 특색 있는 승무로 법고와 춤사위가 한데 어우러진다.

    작법이 여러 가지로 바라춤, 나비춤 등 여러 춤이 있으나, 도를 닦으며 힘든 과정을

    춤을 통해 인내하는 뜻을 내포하며, 북 두드림으로써 만중성을 일깨운다는 의미로

    승무를 법고가락을 치며 마음을 비운다는 뜻으로 구성해 보았다.

 

♣ 특별출연 - 운파 박경랑

▷ 박경랑의 소반춤, 북춤, 진쇠춤, 선비춤

 

♧ 초대손님 - 남상일 (現 국립창극단 단원, 민속악회‘수리’대표)

▷ 판소리 - 흥보가 중 흥보 박타는 대목

 

♧ 악사 - 민속악회‘수리’

▷ 기악 - 대금 아쟁 산조 병주

Posted by 古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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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운(浮雲) 김진홍(72·김진홍전통춤연구회 예술감독)은 손바닥으로 감은 두 눈을 마구 두드렸다. 뜬구름처럼 욕심없이, 기약없이 춤만 춰온 60년 세월. 춤 이야기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예인. 기자 앞에서 더 이상의 눈물을 자제하며 제자가 건네준 수건으로 두 눈을 꼭꼭 누른다. 춤에 빠져, 춤에 미쳐, 춤만 알고 살아온 세월을 가슴에서 꺼낼 때마다 순수함이 묻어났다.

# 화려한 세계를 탐한 3대 독자

김진홍은 김종명과 강매결의 3대 독자로 부산 범일동에서 출생했다. 4살 위인 누나 김연홍과 남매였다.

출생 직후 가족은 일본 오사카로 이주했다. 세상을 향한 아버지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모친은 하숙을 쳤고 아버지는 고물상을 했다. 밤에는 가족끼리 공연장에 갔다. 김진홍의 고백. “그런데 아들이 춤추는 건 싫어하셨습니다. 예술을 업으로 하면 가난해진다며 못하게 하셨어요. 6·25전쟁 당시 제가 출연하는 공연초대권을 부모님께 드렸는데, 무대에서 춤춘 이가 저인 줄 모르고 ‘젊은 남자가 춤을 잘추더라’하시는 거예요. 나중에 이매방 선생이 부모님께 ‘그 남자가 아드님이셨다’고 알렸죠. 아버님께선 그때 당신의 꿈을 포기하시고 저를 놓아주셨습니다.”

다시 3살의 김진홍. 일본 다카라스카 소녀가극단 공연을 봤는데, 무대 위 선녀가 옆으로 누워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고 진홍은 신기하기만 했다. 프랑스 영화 ‘백조의 죽음’을 비롯해 발레 영화 ‘빈사의 백조’, 일본 가부키, 악극단의 버라이어티쇼 등…. 어린 진홍은 남들이 일생 해도 못할 문화를 누렸다.

“한살부터 일곱살까지 멋진 구경만 하다 한국에 오니, 아이들 옷소매는 콧물을 닦아 반질반질 딱딱하고, 전차 밑바닥은 구멍이 나있어요. 현실을 잊고 싶어 공연보러 많이 다녔죠.”

부산 동아중학교 입학 후에는 영화감상과 노래가 취미였다. ‘카라반’ ‘카르멘’을 보고 급우들에 둘러싸여 영화이야기를 하면 담임선생에게 고자질하는 친구가 있었다. 중학생에겐 금지된 영화관람. 진홍은 복도에 손들고 벌 서면서 ‘예술을 아는 애’로 유명해졌다.

“학예회때 ‘산타루치아’ 등을 부르면 인기가 좋았습니다. 음악부 선배들이 손수건에 귀한 양과자를 싸주면서 음악부에 가입하라고 꼬드기곤 했어요. 그런데 변성기로 노래를 못부르게 되자 상급생들이 긴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라고 하대요. 저를 가만두지 않더군요. 하하하….”

# 남방춤에 빠진 일급 타자수

피아노를 연습할 때 6·25전쟁이 터졌다. 등교한 진홍이 복도를 지나가는데 교실마다 피란민들로 꽉 차있어 전쟁난 걸 알았다. 학교가 문을 닫자 손가락을 쉬게 하지 말라는 선배들의 충고로 타자를 배웠다. 타자솜씨가 좋은 그는 미군부대 타자수로 취직, 목공부들 출퇴근 일수에 따라 액수가 정해지는 급여봉투를 작성했다. 소문은 빨랐다. 부대에서 타자를 가장 빨리 치는 미군과 진홍의 대결. “제가 영어는 몰라도 알파벳을 보는 대로 빨리 쳤더니 미군 타자수와 비겼어요. 그날 저녁 목공부 담당 미군장교와 장교클럽에서 돈가스를 먹었습니다. 일본에서 먹었던, 귀한 음식이었죠. 그때 미8군 쇼도 보았어요.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이난영도 한국노래와 영어노래를 부르고 그 아들과 딸로 구성된 8명 밴드도 출연해 노래하더군요.”

동래 한량춤

노래에 이어 타부음악에 맞춘 춤이 공연됐다. ‘타부라의 리듬’이라는 남방춤을 여성무용수가 추는데 신비스러운 음악에 맞춰 손목도 잘 꺾고 목도 잘 꺾었다. 황홀한 전율. 집으로 돌아간 진홍은 거울 앞에서 그 춤을 흉내냈다. 열네살 때였다. 타자칠 때도 그 춤만 머리에서 맴돌았다. 부대에선 발레영화 ‘분홍신’, 뮤지컬 영화 ‘파리의 아메리카인’ ‘화이트 크리스마스’ ‘스타탄생’을 보며 춤출 결심을 굳혔다. 누가 알았을까. 미8군 장교클럽에서 김진홍의 춤운명이 이미 시작됐음을.

“1951년 범일동 3·1극장에서 무용콩쿠르가 열린대요. 참을 수 없더군요. 남방춤을 추려고 누나에게 하늘하늘한 인조천으로 밑이 퍼지는 바지를 만들어달라 하고 초록색 셔츠에 허리끈을 묶고 그물같은 천으로 터번을 만들어 썼습니다. 뿐인가요. 미군부대 통조림 깡통을 동그랗게 오린 후 실에 꿰어 목걸이로 만들고 춤을 추었죠. 사실 춤은 신경쓰지 않았어요. 그저 타부음악 멜로디에 빠져 춤을 추었죠. 입상했어요. 기대도 안했는데….”

콩쿠르가 ‘문제’였다. 해병대 군악대도 진홍에게 연락을 취해 전방순회공연을 가자고 했다. 그는 더 이상 일급 타자수가 아니었다. 춤추며 전방을 돌았다. 산중에서 얼음 깨어 세수하고 머리감는 데도 춤이 좋았다.

# 고교진학을 포기하고 이룬 김진홍류 명무

당시 진홍의 춤을 본 악사들은 ‘군예대에서 활동하는 이매방과 진홍이 많이 닮았다’며 이매방을 아느냐고 묻곤 했다. 휴전후 김진홍은 이매방을 만났다. 이매방은 부산 영주동에서 2층 다다미방을 개조해 무용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부산진시장 가설무대에서 펼쳐진 명인명창대회의 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 출연자 대기실에서 명창 임방울과 환담을 나누던 이매방. 그저 놀러 온 줄 착각할 정도로 긴장감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진홍에게 ‘잠깐 있어라’ 하더니 학원에서 의상을 가져와 입고 무대에 오르는데,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흰 장삼, 흰 고깔, 흰 버선, 흰 바지저고리 차림에 홍가사를 걸치고 ‘승무’를 추시는데, 발 맵시가 너무 멋져요. 장삼을 뿌리지 않고 가만히 놀리는 정중동의 느낌도 학처럼, 하얀 나비처럼 고고했습니다. ‘아, 내가 기다리던 춤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감동에 겨워 이매방춤을 적극적으로 배우게 됐죠.”

동네 엄마들을 모집해 이매방 학원에서 춤을 배우게 하고 방학에는 여교사들에게 춤강습을 권했다. 대신 김진홍은 무료로 이매방을 사사했다. 6·25직후에는 친구처럼 지냈다. ‘고향벗은 5년, 객지벗은 10년’이라고, 술을 함께 마시고 담배도 같이 피웠다.

“이매방 선생에게 승무와 살풀이를 배우고 부산 무용평론가 고 강이문에게 3년동안 무대 공간구성, 연극적 요소, 작품구성 등 무용이론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춤공부만 했다. 춤 이외에는 알아야 할 것도, 알 필요도 없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이유. 너무 단순하다. 무대에서 춤춰야 하는데 빡빡대머리로는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진학도, 결혼도 하지 않고 춤만 추었으니 교류하는 이가 없지요. 여기서(범일동 무용학원) 30년 살아도 아는 이가 없어요. 그래도 고독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있고, 음악듣고 소설과 시를 읽고….”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살풀이춤’, 제97호 ‘승무’ 이수자이며,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이매방의 예혼을 잇는 제1호 제자이다. 스승 이춘우의 춤기본과 산조춤, 문장원의 동래 한량춤과 동래 입춤, 박동진·김소희의 소리도 배웠다. 김소희는 ‘예술은 모방이 아니다. 스승을 따라하면 원숭이지 예술이 아니다’라고 했었다.

이매방의 최고 제자임에도 이매방의 춤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춤향기를 품게 된 후 그는 김진홍류 승무와 살풀이 춤을 집대성했다. 스승으로부터의 독립. 의도적이진 않았지만 자신만의 춤길을 찾게 됐다. 무용평론가 채희완은 그의 ‘승무’를 ‘하늘과 내통하는 장삼자락의 춤’이라 평했다. 그의 살풀이춤은 정중동의 춤. 추는 듯 안추는 듯, 춤 혈은 흐르듯이, 춤 맥은 일정한 끊어짐으로 엮어져 있다.

1979년에는 동래에서 문장원의 춤을 보고 무용선비의 경지를 느낀 그는 문장원의 ‘동래한량춤’에 몰입했다. 부운의 한량춤은 활발하면서도 젊잖다. 겸손하면서도 은근하다. 현재 그는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14호 동래한량춤 예능보유자 지정을 신청한 상태이다.

# 하늘과 닿아있는 무심의 춤

부운의 춤 키워드는 ‘무심(無心)’이다. ‘김진홍춤에 격이 살아있다’는 평. 생각하며 추는 춤이 아니고, 생각없이 마음을 비우고 추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의 ‘무심’은 삶의 체험과 통한다. 고상한 춤을 추기 위해 뽕짝이나 팝송을 거부하는 건 안될 일. 고통, 배고픔, 슬픔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이 무심의 춤과 만나야 예술이라고 했다.

그가 제자들에게 하는 잔소리에도 ‘무심’이 화두로 담겨 있다. ‘추는 춤 말고 추어지는 춤’을 추라고 강조한다. 몸에서 우러나오는 춤을 추라고 잔소리한다. 같은 춤을 추어도 일곱, 여덟번은 추어야 자연스러운 감정이 살아난다고 했다.

“감정표현을 위해 한국무용가들은 아래로 시선을 두는데 외국 영화에선 배우들이 시선을 위로 하더군요. 저도 시선을 하늘쪽에 두고 춤춥니다. 그리고 대부분 웃거나 슬픈 표정 등 얼굴에 표정을 많이 두는데 저는 내면의 감정을 보여주지 않고 무표정한 채 춤추는 걸 좋아합니다.”

무표정한 무대 위 얼굴처럼 그는 ‘무뚝뚝하고 사교성은 제로’라고 고백한다. 이사람 저사람 비위 맞추다보면 춤출 때 에너지를 모을 수 없어 그렇다고 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대신 혼자 하늘을 향해 시선을 주다보니 호를 작명하는 분이 제 호를 ‘부운’이라고 지어주었습니다. 이름도 원래 김자홍인데 그 분이 제 관상을 보고 김진홍(眞弘)으로 하래요. 호적도 고쳤죠.”

그런데 요즘처럼 몸이 지치다 보면 이름을 고쳐도 소용없는 듯하다. 왼쪽 무릎뒤 신경통 때문에 허리까지 아프다. 물리치료를 받는데 나이 때문인지 큰 차도는 없다.

“이상하지요. 죽기살기로 무대에 나가면 아무도 아픈 사람인 줄 모릅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몸이 아픈데 춤추면 잊어요. 나 원 참….”

춤도 인간의 일이어서 고단하련만… 부운은 그저 무심의 춤을 고집한다. 삶의 체험을 무심으로 보듬고 춤추기. 참 힘들다. 그래도 가장 높은 곳에 뜬구름이 어두운 밤에는 가장 빛나기에 부운의 춤여정, 아름답다.

-30년 넘게 학원서 숙식 “자는 시간이 아까워요”-

부운 김진홍에겐 제자들과 함께 춤을 연습하고 춤을 창작하는 범일동 무용학원이 유일한 자랑거리다. 김진홍 전통춤 연구회가 자리한 춤 공간인 만큼 그의 전부이기도 하다.

무용학원은 1955년 부산 범일동에서 시작했다. 학원 정식인가가 난 62년부터는 부산 교통부에 학원을 개설했다. 그후 70년대 중반 부산 진시장으로 학원을 옮겼고, 다시 범일동 자유시장에서 학원을 경영하며 고 강이문에게 춤 이론을 배웠다. 지금의 학원은 70년대 후반 위치가 좋아 입주했다. 요즘처럼 공구상 골목이 아니었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해 냉·난방비가 절약됐다. 학원 전체 규모는 48평. 춤 연습하는 마루 면적은 20평 남짓이다. 부운 김진홍은 30년 이상 20평 마루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겨울밤에는 옷 좀 껴입고 자면 되고…’ ‘여름에는 시원해서 좋았다.’ 그는 30여년 전부터 조방(조선방직)터를 맴돌고 있는 셈이다.

김진홍 무용학원은 동네 무용교습소처럼 초보자나 아마추어 무용가들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무용 교사들과 전문 무용수들이 전통춤을 연마한다. 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학원에 찾아갔을 때도 김갑용씨(42)와 김필분씨(51)가 스승의 춤을 연마하고 있었다. 부운은 미혼으로 혼자 살아왔지만 제자들이 자식이다. 13살부터 30년 동안 스승을 아버지로 존경해 온 양아들 김갑용씨와 며느리 서정숙씨(41·부산시립무용단 총무)가 한국무용을 전공했고 서정숙씨의 올케 두 명도 한국무용가이다.

“부모님 모시고 집에서 살 때도 한 달에 하루쯤 집에 들어갔을 겁니다. 제가 50줄에 접어들었을 때 부친은 78세, 모친은 81세로 돌아가셨는데…. 맘껏 춤출 수 있고 제자들에게 춤 가르칠 수 있는 학원 공간이 좋았습니다. 제 꿈이 무용학원에서 하루가 다 가도록 가르치고 먹고 자는 건데, 그 소원대로 학원에서 살고 있어요. 자다가도 춤추고 싶으면 금방 춤출 수 있잖아요. 춤과 생활이 한 공간에 공존한다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겨울에는 추워도 솜바지 입고 자면 되고요. 학원 근처에 공구상 사람들이 일 끝내고 고단함을 푸는 주점이 있고 노래방이 있어요. 주위에서 노랫소리 나고 사람들이 밤 늦게까지 다니기 때문에 저도 새벽 2시 30분쯤 잠을 청하고 오전 11시쯤 일어납니다. 사실 주위환경 탓을 하지만 솔직히 저는 그냥 자기가 싫어서 늦게 잡니다. 자는 시간이 아까워요. 물론 눈 뜨고 있어도 별로 할 일은 없는데… 그래서 몸이 많이 상했어요. 어쨌든 저는 몸이 망가져도 좋으니 춤 잘추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기도합니다. 다른 이들은 몸 망가질 만큼 춤 잘추게 해달라고는 기도하지 않을 거예요. 하하하….”

무용학원의 공간은 언제나 그의 요람이었다. 저녁까지 한국무용을 가르치던 공간이 밤에는 문화와 예술을 논하는 교류의 장이 되곤 했다. 학원에서 거의 격일로 술을 마셨고 마음맞는 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도 했다. 고 황무봉, 고 강이문 등과 함께 반되들이 소주 두 병씩을 마시고도 모자라 빈
대떡집 ‘만리장성’으로 몰려가곤 했다. 20여년 전 황달에 걸려 매일 한갑씩 피우던 담배와 술을 끊기 전까지 그랬다.

김진홍 이력

1935년 부산 범일동 김종명과 강매결의 3대독자로 출생
1948년 부산 부산 동아중학교 입학·51년 졸업
1962년 부산 경남고 출강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27호 승무 이수자
1993년 부산 경성대 무용과 출강
1993~94년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겸 상임안무자
1994 한국무용협회 부산지회장
1996~2000년 부산민속예술보존회 이사
199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97호 살풀이춤 이수자
200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출강

<수상>
부산시장 감사장(1977년), 부산광역시 문화상(1987년), 제 9회 전주 대사습 무용부문 장원(1983년), 제 33회 진주 개천예술제 특장부문 최우수상("), 춤의해 운영위원장 감사패(1992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감사패("), 국립민속박물관 감사장(1998년), 광주광역시장 공로패("), 일본 후쿠오카 남장원주지 감사장(1999년)


〈유인화 선임기자|부산에서 rhe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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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이 있는 한여름 밤의 오색춤판

[노컷뉴스 2006-07-25 14:28]


5인의 명인들이 펼치는 ‘오인오색(五人五色) -해설이 있는 흥겨운 우리무대’
승무, 한풀이춤, 매헌춤 등 지역적 특색을 살린 명인 5인의 춤사위가 한여름밤 춤판을 뜨겁게 달군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사장 이동식)이 마련한 ‘오인오색(五人五色) -해설이 있는 흥겨운 우리무대’ 세번째 마당 공연이 오는 7월 26일부터 8월 30일까지 5주 동안 매주 수요일 오후7시 30분부터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한국문화의집(KOUS)에서 펼쳐진다.

명인들의 전통춤 역시 출신지역과 춤이 이어져 오는 계통에 따라 춤사위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인다.

예를 들어 중부 이북의 춤사위는 손동작과 팔을 많이 쓰는데 비해 남부지방의 춤은 무릎과 팔을 함께 쓰는 온 몸 동작이 많다.

따라서 춤사위의 지역적 특색을 살려 기획한 이번 공연은 전통춤의 춤사위가 지역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 공연은 각 공연마다 해설이 곁들여져 관람객들의 공연에 대한 이해를 돕는 한편 전통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다.

이번 공연의 첫 주자인 매헌춤의 이정희는 무형문화재 제97호 도살풀이 예능보유자 김숙자(1926~1991)명무의 제자로, 경기도 안성지방의 무속에 바탕을 둔 매헌춤의 정수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8월 2일 두 번째 무대에 나서는 정재만(숙명여대 교수)은 제27호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보유자로 승무 예능보유자였던 한영숙을 사사해 충청도의 춤사위의 특성을 살린 무대를 펼쳐 보인 것으로 기대된다.

정재만은 "춤을 도의 경지에 까지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8월 9일 세 번째 공연은 박경랑이 나서 영남의 춤가락을 선보인다.

박경랑은 영남지방의 춤을 한국 춤의 한 갈래로 자리잡게 만든 주인공으로 이번 공연에서는 ‘영남승무’, 김수악류의 ‘교방굿거리’, 오성광대의 중시조인 김창후류의 ‘굿거리’ 등을 펼쳐 보인다.

8월 16일 네 번째 무대는 명무 이동안(1906~1995)의 춤을 온전히 전수받은 제자 이승희의 재인청 춤이 펼쳐진다.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춰버린 재인청 춤은 기방춤이나 무(巫)의식의 춤과는 전혀 다른 동작들로 구성되었다.

마지막 공연은 임이조의 무대다. 임이조는 호남지역, 특히 목포를 중심으로 한 호남 서남지역의 기방춤 전통을 이어받았으며 섬세하고, 기교가 뛰어나면서도 긴장감을 극대화한 춤사위로 관람객들의 신비감을 자아낼 예정이다.

공연은 오는 7월 26일부터 8월 30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30분에 한국문화의집(KOUS)에서 펼쳐진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전화나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예약한 후 관람할 수 있다.

문의 : 02) 567-4055~6, www.kous.or.kr


노컷뉴스 윤여진 기자 vivid@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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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옥섭은 홍보 카피를 이렇게 썼다. ‘와 보라! 흉곽을 드르륵 열고 심장을 덥석 쥐는 그 5분’. ‘와 보라!’ 성경 구절이다. 이 친구가 언제 신앙부흥회 현수막도 눈여겨보았던가! ‘흉곽’ 어려운 한자를 일상어처럼 써대는 그다운 선택이다. ‘가슴을 드르륵 열고 심장을 덥석 쥐는 춤’ 정도면 충분히 쉽고 가슴팍에 새겨질 터인데. 그나저나 춤판을 여는 승무의 강성민은 지나치다. 이매방의 승무를 원형 그대로 추고 있다. 승무 하나만으로도 족히 30분을 메울 태세다. 결국 예상을 한 치도 비껴가지 않았다. 왜 이매방 제자들의 춤에는 이매방만 보이는지. 그렇지 않아도 예악당 3층에서 내려다보는 무대는 천 길 낭떠러지인데 나는 30분이 넘도록 저 아래로 참혹하게 떨어져 내렸다.

박경랑의 교방춤이다. 본 적이 없는 교방춤이었다. 분명 박경랑의 안무일 것이다. 하지만 앞서의 승무에 지친 나를 회복시켜주고 있었다. 연전에 보았던 박경랑의 춤보다 한결 농익었다. 이제 눈가를 넘어 뺨까지 자글자글 잔주름이 퍼지고는 있으나 그녀의 우아한 춤태 앞에서는 아무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역시 최상의 춤태를 지닌 그녀다. 더구나 그의 춤사위에 더해진 도도함은 그녀의 춤에 생명력을 부여할 것이다.

대구의 춤꾼 권명화의 살풀이춤이다. 그의 제자들이 추는 살풀이춤은 여럿 보았으나 정작 보유자의 춤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여느 살풀이춤에 비해 경상의 개성은 뚜렷해 보인다. 하지만 이 춤은 춤의 구성과 몇몇 사위에서 너무 투박한가 하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작위적인 모습이 튀어나온다. 즉흥성의 이면에 감추어진 정교한 멋을 전면적으로 버리고 질박한 멋을 추구하였다면 차라리 경상의 춤으로 우뚝 설 수 있었을 것을. 못내 아쉬웠다.


강선영류의 태평무다. 누가 이 춤을 추더라도 나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이 태평무는 보유자 강선영 선생만 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남무도 여무도 아닌 춤. 이제 막 남자에서 여자로 변신한 트랜스젠더가 추는 듯한 춤. 내게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전통의 미학을 경험하기 보다는 퍼포먼스에 가깝고 어떤 때는 전위적이기까지 하다는 게 솔직한 내 생각이다.


도살풀이춤의 이정희다. 그야말로 경기제다. 시원시원한가 하면, 어르고 감치는 춤사위가 오감을 쥐락펴락한다. 멋과 흥이 살짝살짝 내비치는 눈물과 한을 걷어차고 있다. 이제 저 아래의 무대가 멀지 않다. 통영의 정영만 선생이 보탠 구음은 처음 경험하는 남창이었지만, 글쎄! 이렇게 말하겠다. 2% 부족한 느낌이었다.


‘춤! 조갑녀’의 이번 공연 글씨를 쓴 장사익이 해설자 진옥섭의 호명으로 무대로 올라왔다. ‘봄날은 간다.’, ‘동백꽃’ 두 곡을 불렀다. 항상 그러하듯 그의 노래는 첫 소절만으로도 숨이 턱 막힌다. 언제나 그의 노래를 듣는 것은 행운이지만, 오늘만은 사족이다.

사풍정감이다. 이매방 선생은 어려서부터 권번 뜨락을 놀이터로 삼은 터라 한량의 기방 출입을 그리도 보았나보다. 앉아 치는 술이나 받아먹고 무릎을 치면서 기생의 고혹적인 춤자락을 따라 오늘밤은 네가 수청 들라 번득이는 눈매를 던지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은 치들이 기녀의 춤사위에 섞여 도는 모습을 그렇게 마음에 새겼던지. 그런데 목포 권번의 한량무는 나풀거리기만 하고, 동래 권번의 한량무는 그 쪽 말로 그늘을 치는 연유는 무엇일까? 전라 한량은 여인보다 더 여인스러웠던가! 그나저나 드림팀이라는 악사들은 두 박은 더 쳐주어야 할 굿거리장단을 잦은몰이 장단으로 넘겨버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특히 장고를 잡은 김청만 선생은 춤 매디를 만들지 못하는 게 오늘도 거슬린다. 이 세기적인 악사가 춤만은 몰라도 너무 모른다.

김운태의 채상소고춤. 김운태에게 채상소고춤은 그의 상표다. 하도 많이 봐서 채상소고는 이제 김운태만 추는 것으로 여길 정도다. 언제 한 번 제대로 쓸 기회가 올 것이다. 오늘은 이렇게만 하자. 조갑녀, 그가 오고 계시므로.

 

http://cafe.daum.net/kordance/S6Ap/5?docid=1EnKp|S6Ap|5|20090727174456&q=%B9%DA%B0%E6%B6%FB&srchid=CCB1EnKp|S6Ap|5|20090727174456

 

                                                                                         출처:우리춤연구회 청봉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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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도

목하 잔치가 사라진 시대입니다. 환갑이니 칠순이니 하는 잔치들도 이젠 시들해졌고, 옛 법도를 잃었습니다.
차일치고 멍석 펴고 술 걸이고 떡 치던 잔치가 사라진 것입니다. 가족의 경사를 마을의 잔치로 치르던 성대한 축제, 어느덧 옛 풍경이 되었고,
그 풍경 속에서 누리던 풍류역시 지난일이 되었습니다. 이에 사라진 옛 잔치를 복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구담무담(九潭無譚)에 담았습니다.

놀이의 이름을 구담무담(九潭無譚)이라 했습니다. 안동의 구담리(九潭里)에 있는
구담정사(九潭精舍)에서 벌이는 무담(無譚)이란 이야기입니다. 무담(無譚), 원래
무(無)자는 ‘춤을 춘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차 ‘없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
습니다. 하여 새로이 무(舞)를 만들어 춤춘다는 뜻으로 쓰고, 무(無)자는 없다는
뜻으로 쓰게 된 것입니다. 말을 넘어선 육체의 언어 춤과 그 너머의 침묵마저 잔치로
끌어들이 고픈 마음에 지은 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마음을 담아 여러분에게
선사하고자 합니다.

판놀음 순차
<문굿>으로 풍물패가 당도함을 알리면, 구담정사의 주인이 놀음마치 풍물패를 맞아
들이고는 집주인과 마을 유지가 두 폭에 잔치를 기리는 글을 내려 만장을 씁니다.
이어 김주홍의 <비나리>로 판을 엽니다. 액을 소멸하고 만복을 받아들이는 판을 여는 것입니다. 이어 잔치판이 벌어지는데, 박종선 명인과
김무길 명인이 <아쟁·거문고 병주>의 선율로 가을밤을 수놓습니다. 다음으로 춤판이 벌어지는데, 박경랑의 <승무>, 이난초 명창의 판소리
<춘향가>,하용부의 <북춤>, 김운태 명인의 <채상소고춤>, 박경랑의 <교방춤>이 추어집니다.
무대는 마당에 마련했지만 때로 대청마루로 올라가 끝동과 기둥을 만나고 버선코와 나뭇결이 어우러지는 장면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무릇
잔치란 스스로 누려야 하는 법이기에 잔치 마당에 함께한 이들이 같이 어울리도록 했습니다.

출연진
▶ 박경랑 : 고성 오광대의 중시조 김창후의 외증손. 박성희와 황무봉을 통해 무용계 입문, 부산의 전통춤꾼 김진홍과 동래원천장의 마지막
춤 선생 강옥남에게 영남춤 사사. 1997년 ‘서울전통 공예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 수상.

▶ 김운태 : 호남여성농악단의 단장이었던 부친 김칠선의 영향으로 7살 때부터 전국 순회 공연. 1993년 노름마치 창단 초대 단장 역임.
김운태류의 채상소고춤으로 불리는 명무.

▶ 하용부 : 영남춤의 거두 하보경의 손자. 아버지 또한 흥이 과한 한량이었음. 밀양백중놀이가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본격적인 춤꾼으로
나섰고, 이윤택 연희단 거리패와 합세하여 우리 연기법을 수련해나갔으며, 더불어 우리 춤을 세계에 전함.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보유자.

▶ 이난초 : 동편제의 명창
▶ 김무길 : 거문고 산조의 명인
▶ 박종선 : 아쟁의 명인
▶ 김주홍 : 노름마치 풍물패

출 처 : 안동문화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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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랑 그의 춤을 보고 와서

 

| 삶의이야기 초하  2002.07.28. 16:12

 

춤을 보면서 무엇을 느낄까..

어떤 예술무대를 관람할땐 난 언제나
최대한 무염(無念)하는 자세로 앉는다
아무것도 보아 오지않은 처음 보는 자세로
편안히 그져 바라 볼뿐이다...

바라 보다 졸리면 그대로 졸아 버리고
잠속으로 빠져들어도 난 깨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무대란
배우란
관객이 빠져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몰입할수 있는 무대가 되었을때
관객은 흔열(欣悅)을 느낀다.

살풀이와 바라춤 나비춤그리고 승무...
어떤맥락에서 어떤연유로 지금까지 이어온 춤인지
그져 바라 볼뿐이다...

깊은 산사에서 곡차에 혼을 싣고
스님들이 추는 춤을 바라보면서
나도 몰래 눈물이 흘러 발길 멈추고
그산사에서 잠을 청했던 기억이 전부다

고전춤은 버선발 끝이 하늘로 날아 오를듯
함박눈이 세상에 사뿐히 내려 앉듯
그러나...발끝을 크게 들어 올리는 법이 없다
손끝과 발끝의 절제의 미속에 정중동을 느끼게 한다

가끔 어깨에 한을 실은듯한 흔들림이 가슴을 떨리게 할뿐이다

관객을 향해 한을 풀어 내지 못한다
돌아서서 소지를 올리며 한을 삭인다
안으로 안으로 조여드는 한을 어찌 할길없어
몸으로 소리 내지 못하고 긴수건에 타리타리 한을 실어낸다

승무또한 관객을 향해 서지 못하고
돌아서서 북을 두드리는 고깔 쓴여인
클라이 막스를 주지않고 엇박을 느끼게하며 음을 끊는다

더이상 관객을 끌어 냄을 자제하고
조용히 버선발끝으로 절제의 미를 끝까지 실어 간다

바라 나비 승무 살풀이....
모두 손끝에 표현동작을 실어줄 물건을 하나씩 들고 있다
곁들여지는 음악의 흥겨움에 반행으로 이어지는 조용하고 사뿐한 춤사위는
눈을 감고 있어도 떠오를 만큼 나비를 닮은 눈사위 였다.

박경랑의 춤꾼의 어깨에서 난 눈물이 났다
박경랑의 장삼자락에 내눈길은 함께 춤을 추었다
박경랑의 발끝에서 나비같이 한을 밟고가는 체념을 보았다.
(이생강의 대금연주와 임이조의 한량무를 볼수 있어서
더욱 보람된 관람이 였다.)
2002.7.26.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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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랑의 춤

21세기 한국 전통무용의 창조, 풍류의 춤, 서사의 춤


배학수 / 경성대 철학과 교수


이 선생! 어제 잘 들어가셨나요? 저는 뒤풀이에 갔다가 너무 많이 먹고 마셨나 봅니다. 아직 머리가 띵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박경랑의 뒤풀이는 그냥 먹고 마시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가끔 공연 뒤풀이에 가 보면 결혼식 음식점에 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결혼 음식점에서 하객들은 신랑 신부에 대해서 예쁘다는 둥, 너무 키가 작다는 둥 시시한 말을 몇 마디 주고받고는, 결혼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자신들의 이야기에 몰두하지 않습니까? 무용 공연 뒤풀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석자들은 그날의 공연에 대해서는 좋았다 재미있었다는 식의 간단한 평가만 던지고 공연이나 발표자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자신들의 교제에 전념하죠. 그러나 박경랑의 뒤풀이는 특이합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거기서 박경랑이 춤을 춥니다. 분장은 지우고 의상은 평복이고 살풀이 수건은 없지만, 두루마리 휴지를 말아들고도, 접시를 입에 물고도 살풀이를 춥니다. 다른 출연자들도 나름의 재주를 보여주는 일도 많기 때문에 뒤풀이 모임은 무대 공연이 방 안으로 들어온 미니 공연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박경랑의 뒤풀이는 손님이 춤을 바로 가까이서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공연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 특별한 뒤풀이는 박경랑의 '풍류 마당' 자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풍류 마당이란 박경랑이 자주 추는 교방무용을 말합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기생들과 어울려 노는 교방 문화는 박경랑의 풍류 마당에서 새롭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기생들은 노래 부르고, 춤 추고, 선비들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립니다. 선비들이 먼 길을 떠날 때는 마음을 두는 기생의 치마에 그림을 그려서 정표를 남깁니다. 2001년 진주 공연에서는 박경랑의 부채에 서예가가 한시를 쓰고, 치마폭에 그림을 그리더군요. 박경랑은 그 부채로 춤에 화려함을 더하고, 그 치마를 흔들며 관객을 아찔한 혼란으로 몰아넣더군요.

교방무용에서는 성의 매력이 흘러 넘칩니다. 왼손으로 치마를 치켜들며 오른발을 살짝 내어 미는 것은 여성의 성적 상징을 슬쩍 보여주어 남자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듯하고, 팔을 세우며 오른쪽으로 사뿐 돌아가는 것은 남자에게 연정의 눈빛을 흘리면서도 외면하는 척하여 남자 마음을 애태우는 듯하고, 부채를 펼치는 부드러운 손길은 마치 저고리를 푸는 것처럼 야릇한 상상을 일으킵니다. 저는 지금껏 스트립쇼나 다름없이 벗어 던지는 무용을 예술인 양 포장하는 사이비 작품을 많이 보았지만, 박경랑의 교방무용처럼 성적 매력이 넘치는 춤은 없었습니다. 노출의 정도와 직접성이 성적 유혹의 정도와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방무용의 성적 표출 때문에 박경랑의 춤은 질이 낮은 것처럼 비난받기도 합니다. 비판자들은 박경랑의 무용이 이미 사라진 기생방을 현대의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저는 박경랑에게 그 점을 물어 보았습니다. "기생은 하류이고

 예술은 상류라면, 기생춤은 저질이 아닌가요? 당신은 왜 그런 품위 없는 춤을 추십니까? 박경랑은 자부심 가득한 답변을 주었습니다. "한국 전통무용 중에서 기방무용 아닌 것이 있나요? 승무, 살풀이, 태평무, 모두 기방에서 전승된 거예요. 대학에 계신 분들이 아무리 근엄한 척 하여도 한국 무용이 교방 예술가를 거쳐서 우리에게 넘어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답니다." 한국 전통무용은 기생들이 배우고 추면서 현대에 전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기방 예술의 기교와 구성을 살리는 춤이 한국 무용의 정통이라는 점에 대하여 박경랑은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선생! 박경랑의 춤이 기생춤의 냄새가 나기 때문에 저질이라는 비판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럼 문둥이춤이나 병신춤은 모두 다 무대에 올려서는 안 되는 저질 춤이 아닌가요? 어떤 춤이 저질인지 예술적 가치가 있는지는 춤이 묘사하는 대상이 사회에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임금춤이 노예춤 보다 당연히 수준이 높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더구나 무용가가 기생춤을 춘다고 기생처럼 천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왕비춤을 춘다고 왕비처럼 품위가 생기는 것은 전혀 아니죠.

교방무용의 가치 평가는 교방무용이 현대 사회에서 차지하는 의미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저는 교방무용의 매력은 현대인에게 풍류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에는 풍류가 없습니다. 풍류는 단순히 노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그 차이는 교양과 자제입니다. 아무런 지식과 훈련도 없이 누구라도 즐길 수 있는 술자리나, 광란의 댄스 파티는 풍류가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절제와 교양이 요구되는 놀이를 싫어합니다. 통제와 지식은 돈 버는 데에 필요한 것이지, 놀 때에는 그냥 아무렇게나 즐겨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교방무용을 구성하는 춤과 노래, 그림, 문학은 아무나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을 즐기기 위해서는 교육과 훈련, 그리고 자기 통제가 필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교방무용은 노동과 레저라는 양 극단의 현대 사회에서 새로운 놀이 문화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풍류 마당이 옛날의 기방 문화를 무대에 재현함으로써 현대에 풍류의 가치를 재고하게 만들었다면, 박경랑은 전통무용을 조금 바꾸어 현대 대중의 감각에 맞게 새롭게 구성하기도 합니다. 원래 승무나 살풀이에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박경랑은 전통무용에 특정한 상황을 약간 부여하여 작품에 스토리를 일으킵니다.

어제 '천궁'(2006. 6. 26 부산문화회관 대강당)이라는 작품은 살풀이입니다. 그런데 뒤에 무엇이 있었던가요? 호국 영령에게 바친다는 내용의 문장이 배경에 걸려 있고, 바닥에 하얀 꽃이 놓여 있어서 어제의 살풀이는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바친 고귀한 사람들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춤이 되었습니다.

2001년 진주 공연에서는 살풀이가 다른 맥락 속에서 나타납니다. 고성오광대 제밀주 과장에서 큰어미가 죽고 상여가 나갑니다. 박경랑의 살풀이는 이 상여 앞에서 벌어집니다. 그러면 이때의 살풀이는 젊은 여자에게 남편을 빼앗긴 나이든 여자의 원한을 위로하는 춤이 됩니다.

2005년 서울 공연에서는 살풀이의 상황이 다시 바뀝니다. 이때는 황진이를 짝사랑하다가 죽은 순진한 청년의 상여를 배경으로 살풀이가 공연됩니다. 그럼 이 살풀이는 사랑의 상처로 고뇌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춤이 됩니다. 이런 기법은 승무에서도 사용됩니다.

2001년 진주 공연에서 승무의 앞부분에 두 줄로 늘어서서 공부하는 부처님들이 오페라의 서곡처럼 등장합니다. 그래서 승무가 막연한 한의 춤이 아니라 공부에 정진하지만 속세의 인연을 잘 끊지 못하는 학승의 고민을 표출하는 춤이 되어 버립니다. 박경랑은 보통 사람에게 지루한 승무에 이렇게 서두를 갖다 붙여 승무의 추상성을 구체화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살을 푼다는 것은 현대인에게는 너무 먼, 잡히지 않는 모호한 말입니다. 그러나 박경랑은 전통무용을 특정한 상황 속에 투입하여 전통 무용의 추상성을 절묘하게 구체화하였습니다.

박경랑의 풍류와 서사의 춤에 대하여 전통성을 따지는 사람들은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전통무용이 아니라 박경랑이 제 멋대로 바꾼 것이라고 비난하는 말이 나올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춤의 동작에 대해서는 아무도 전통성에 의심을 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한국 전통무용 동작의 본질은 '작은 것 속에서 거대한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박 경랑의 춤동작을 보면, 당기는 작은 손에 수천 근의 삶의 무게가 걸려 있는 듯하고, 슬며시 돌아서는 어깨에는 사랑하는 남자를 아내에게 돌려보내는 기생의 엄청난 몸부림이 담겨 있고, 잔잔하게 내려앉는 무릎에는 거부할 수 없는 좌절이 암시되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동작 속에 측량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을 움켜 넣는 한국 전통무용의 본질은 박경랑의 춤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이 선생! 박경랑의 춤은 전통이면서 창작입니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전통을 받아들이되 재창조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말은 매끄럽지만 실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 방도는 모릅니다. 사람들은 경복궁의 박물관처럼 현대식 건물에다가 기와를 덮어놓고 전통의 현대적 창조라고들 떠듭니다. 무용에도 이런 얼치기가 많습니다. 한복을 입고 자세나 동작은 현대무용으로 춘다든지, 발레도 하지요. 이런 것은 모두 현대무용이나 발레이지 전통 무용의 현대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통무용의 진정한 현대화는 동작의 전통성을 간직하면서도 현대에 결여된 풍류의 의미를 제시하거나 현대 상황에 어울리는 선명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박경랑의 춤 같은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박경랑의 춤은 21세기 한국 전통무용의 전형일 것입니다.

이 선생! 어제는 공연 끝나고 너무 황급히 헤어져서 서로 감상을 나눌 시간이 없었습니다. 밤 10시는 남자에게는 아직 여유가 있지만, 여자에게는 늦은 시간인가 봅니다. 현대 사회에서 남자와 여자의 평등과 우정 같은 주제들도 좋지 않습니까? 박경랑의 무용에서 더욱 현대스런 주제도 우리 기대하여 봅시다.

[출처] 풍류의 춤: 박경랑|작성자 배학수 「예술부산 Vol.44. 2006년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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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춤 : 하용부, 태평무 : 박재희, 한량무 : 임이조, 채상소고춤 : 김운태,

살풀이춤 : 정재만, 도살풀이춤 : 이정희, 교방춤 : 박경랑, 승무 : 진유림

 

 

 

팔무전(八舞傳)

               만날수 없었던 만남.

최고의 춤꾼들이 한자리에 서는

팔무전(八舞傳)이 열린다 !

8월 28일(목)부터 9월 1일(월)까지 장장 5일간의 반열의 무대! 기적적으로 성사된 만남!

마침내 장쾌한 춤의 팔폭이 펼쳐진다.

<남무>, <여무>, <전무후무>의 진옥섭 기획 ․ 연출

승무 : 진유림 / 밀양북춤 : 하용부 / 살풀이춤: 정재만 / 한량무 : 임이조

태평무 : 박재희 / 교방춤 : 박경랑 / 도살풀이춤 : 이정희 / 채상소고춤 : 김운태

춤을 보는 최상의 각도, M(마니아)석 전통춤 마니아를 위한 tip

아름다운 자리에서 흠상할 수 있게 KOUS의 관람석을 원목 객석으로 바꾸었다. 주목할 것은 무대 앞 1,2열로 전통 방석에 앉는 M(마니아)석, 춤을 보는 최상의 각도이고 추임새를 불어넣기 좋은 자세다. 가격은 뒷줄 R석의 절반 가격인 15000원이고 매회 40석이 준비된다. 할인보다 더 나은 혜택, 어서 급히 예매를 서두를 일이다.

R석: 30,000원 / S석 : 20,000원 / M석 (Mania석) : 15,000원 / A석(2층) : 10,000원

○ 2008. 8. 28(목) - 9. 1(월)

○ 한국문화의집 KOUS 공연장

○ 평일_오후8:00 주말(토,일)_오후4:30

예약문의 : 02) 567-8026 (AM10:30~PM7:30)

마침내 이뤄진 만날 수 없었던 만남, 팔무전

남무(男舞)와 여무(女舞), 마당춤과 사랑(舍廊)춤, 그간 서로 다른 춤판에서 명성을 쌓았기에 한자리에 만나질 수 없었다. 그리고 누구도 상상 못한 그 만남이 성사된 순간, 전통춤은 이미 새로운 역사에 진입했다. 춤판이란 최강의 상대를 만나야만 최고의 판이 조성되는 법. 무림(舞林)의 최고수들이 자웅을 겨루는 닷새간의 춤판, 인구에 회자될 최고의 무용담(舞踊談)이 될 것이다.

남무, 여무, 전무후무의 명 연출, 진옥섭

그간 초야에 묻힌 명인들을 무대에 세워왔다. 발품으로 명무를 찾은 그 이야기를 담은 ‘노름마치’를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길의 험함을 탓하지 않고 찾았던 명무를 무대에 올려 남무, 여무, 전무후무를 완성했다. 이제 류(流)와 파(派) 사이의 완강한 경계를 허물며, 만날 수 없었던 만남 팔무전을 주선한다. 그리고 주저 없이 ‘우리 시대 우리 춤의 최고 맛있는 부위’라고 말한다.

춤을 부르는 최고의 소리, 드림 시나위

춤은 발로 노닐고 악은 손으로 하니 춤판이란 손발이 척척 맞아야 한다. 춤을 보면 음악이 들리고, 음악을 들으면 춤이 보이는 판, 그것이 격이다. 음악감독 김청만이 만드는 ‘대풍류’와 ‘시나위’의 격이 그렇다. 대금 원장현, 아쟁 박종선, 해금 김성아, 가아금 박준호 피리 이호진, 정석진 등 쟁쟁한 이들이 함께한다. 또 실팍한 타악인 박종호, 박종훈, 이동헌, 류정호 등이 나서서 태평무와 도살풀이춤을 연주하고 통영의 정영만이 6박에 구음을 한다. ‘털끝 하나 안 들어가는’ 꽉 찬 소리에 춤이 둥실 뜰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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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을 바라보는 조갑녀(87세) 명인에게 바치는 헌정무대

강성민이 이매방류의 '승무'를 박경랑이 '교방춤'을 권명화가 '살풀이춤'을 이현자가 '태평무'를 추었다. 진옥섭의 말을 빌면 "털 하나 안들어가게 잘 짜여 진 우리시대 최고의 '시나위 드림팀'"을 이룬 쟁쟁한 잽이들이 모여 탱탱한 음악을 연주해주었다. 장구의 김청만, 아쟁의 박종선, 대금의 원장현, 거문고의 김무길, 피리의 한세현, 가야금의 박준호, 해금의 김성아. 구음 정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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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의 집(KOUS)

8월 9일 수요일
박경랑 과 영남춤 의 향기


● 공연일시 : 2006.7.26~8.30 총 5회
(매주 수요일 오후 7:30)
※ 8월 23일은 KOUS 방학맞이 체험으로 인해 공연이 없습니다.

● 장 소 : 한국문화의집 KOUS (코우스) 2층
● 주 최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 관람문의 : 02)567-4055
● 예약방법 : 인터넷 예매 만 가능 www.kous.or.kr

프로그램

8. 9 박경랑, 춤사위에 묻어나는 향기

공연내용 및 순서
1. 산조춤
산조 음악은 시나위 음악에서 재구성된 음악으로써 여러형식의 음악이 있으나 오늘 박경랑은 거문고 산조에 맞추어 추는 산조춤이며 여인의 마음을 표현하는 춤이다.
출연: 박경랑

2. 용선놀이 춤과 오방풀이 춤
고기잡이 가기 전 오방신들에게 제를 올리며 기원할 때 액막음 춤으로도 추어 왔으며 또한 망망대해의 억울한 넋이 된 망자의 혼령을 천도할 때 추기도 했던 남해안 별신굿에서 나오는 용선춤과 살풀이춤 그리고 오색지전 춤을 엮어서 추어지는 남해안 일대 어방굿에서 전해오는 춤이다.
출연: 정석진 (용선놀이)
박경랑 (오방풀이춤)

3. 진주 교방굿거리춤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 2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진주 지역의 권번에서 추어져 내려온 굿거리 춤으로 대개는 굿거리 장단에 맞추어 끝나는 춤이지만 흥이나면 소고를 들고 자진굿거리 에 맞추어 추기도 한다.
출연: 박경랑

4. 승무(지성성무)
수도승의 고해와 번뇌를 표현한 영남형의 승무로 회색무복과 가사장삼의 복식이나 춤사위 또한 다른류의 승무와 다르며 박경랑의 스승인 고 조용배류의 영남형 승무를 재구성한 춤이다.
출연: 박경랑

5. 풍류가 흐르는 곳

“매화 그림자 드린창에
비녀꽂은 미인 앉았고
두, 세명 선비들 거문고와 노래로다 이윽고 잔들어 권할제
달이 또한 오르더라“
-안민영의 매화사 中 에서-
풍류를 모르는 선비를 어찌 선비라 말할 수 있으며, 멋과 풍류를 모르는 사람을, 또한 문화를 모르는 이가 어찌 문화인이라 하랴. 거문고를 타고 느릿느릿 흥겹게 오래하고 술 한잔 권하고 덩실덩실 춤추며 글도 쓰고 시로 옲고 둥근 달이 둥실 둥실 떠올라 풍류을 더합니다.
우리의 악, 가, 무를 한데 모아 선조들의 예기와 멋, 흥과 한의 조화를 무대에 재현하며 선조들의 문화 정서를 느껴보고자 구성한 작품이며 그 가운데 박경랑의 대표적 춤 영남 교방청무가 선보이다. 이춤은 영남 지역의 허튼 춤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인 섬세함으로 박경랑의 외증조부인 중요 무형문화재 제 7호 고성오광대 탈놀음의 대가의 故 김창후, 박경랑의 스승인 故 조용배, 그리고 박경랑에 이어져 오고 있다.

영남 교방청춤: 박경랑
서화: 전기중(서예가)
글 : 서종훈(도예가)
성주풀이춤: 영남춤보존회 회원
가야금병창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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