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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방무'에 해당되는 글 50건

  1. 2014.11.17 제주 同行공연중 박경랑류 영남교방춤 동영상
  2. 2014.11.14 박경랑류 교방소반춤(구음 : 유금선/정영만)
  3. 2014.09.26 '백재화'의 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 - 고운 빛과 소리의 향기
  4. 2014.09.19 박경랑류 영남수건춤 [Korean Classical Dance] KyungRang Park's YeongNam GyoBang SuGun Dance
  5. 2014.07.14 운파 박경랑 소개
  6. 2014.01.07 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덕수궁중화전)
  7. 2013.12.06 2011 종횡무진 박경랑류 영남 교방춤(백재화 박선영 조미나 성예진)
  8. 2013.12.02 2012 박경랑의 춤 온고지신 교방굿거리춤
  9. 2013.09.30 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 (사진)
  10. 2013.08.20 2011박경랑의춤 제주 同行사진모음 (법능스님 찬불가 나무아미타불)
  11. 2013.08.12 [송동선이 만난 사람] 춤꾼 박경랑씨
  12. 2013.02.01 무용평론가/시인 故김영태선생의 무용일기
  13. 2013.01.23 영남교방춤사진(2012박경랑의 춤)
  14. 2012.12.21 하얀나비공연중 진주교방굿거리춤
  15. 2012.12.10 깊이 있는 전통춤의 세계로…춤꾼 박경랑, 부산 무대에
  16. 2012.11.30 2010 박경랑의 춤 리허설장면 2
  17. 2012.11.30 2010 박경랑의 춤 리허설장면 1
  18. 2012.11.14 김수악의 교방굿거리춤
  19. 2012.11.01 진주교방굿거리춤 - 박경랑, 김지성, 김세희
  20. 2012.10.26 교방춤사진
  21. 2012.10.24 비워서 채우는 길
  22. 2012.10.22 박경랑류 영남교방춤 (KBS TV 국악한마당 방영분)
  23. 2012.10.08 웅부무담 풍류가화(雄府舞談 風流家化)(2009년)
  24. 2012.09.04 2012 서울 인연 교방춤(1)
  25. 2012.07.16 7월18~19일 ‘바리바리 촘촘 디딤새’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 영남교방청춤 백재화의 '레테의 강'





2011박경랑의 춤 제주 동행
제주특별자치도 문예회관
2011년 5월 7일      작성자 고원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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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교방에서 추어지던 즉흥무의 일종을 박경랑이 재현하였다.

소품으로 접시를 머리에 이고 추는 아주 고난이도의 춤이며 매우 집중력이요구되는춤으로
교방소반춤으로 불리기도 한다
2012 박경랑의 춤 온고지신 공연 (2월17일국립국악원 우면당)

구음에는 동래학춤문화재  유금선선생님과 남해안별신굿문화재 정영만선생님     영상   서재준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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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古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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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랑의 영남 수건춤
2008 07 19 국립국악원 우면당 '백의백무' 공연

구음 박종호                        영상 서재준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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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破 朴璟娘

 

1961년 경남 고성 출생. 중요 무형 문화재 제 7호 고성 오광대 초대 문화재이셨던 외증조부의 대를 이어 영남 춤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중견 춤꾼으로 보기 드물게 농익은 춤의 기량을 간직하고 있다.


 

4세에 춤에 입문 故 김창후 故 조용배 故황무봉 故김애정 故김수악 김진홍 박성희 강옥남 선생들에게 우리춤을 사사받았고 지금은 서울, 부산을 오가며 개인 공연 및 기획 공연 국악 무용 경연대회 심사 및 우리춤을 연구, 전수 ,보급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수상이력

 

93년 제 18회 전통 예술 경연대회 전체 종합대상 (문화체육부 장관상) 수상, 93년 제4회 대구국악제 전체 종합대상(문화체육부 장관상)수상, 94년 진주 개천 예술제 제12회 개천 한국 무용제 특장부문 대상(문화체육부 장관상)수상, 95년 제21회 전주 대사습 놀이 무용부문 장원(문화체육부 장관상) 수상, 96년 서울 전통 공연예술경연대회 종합 최우수상(국무총리상)수상 등을 거처 97년 제 5회 서울 전통 공연예술경연대회에서 심사위원 19명의 만장일치로 대통령상을 수상 하였다.

 

활동사항

 

현재 경상남도 무형 문화제 제 21호 진주 교방굿거리춤 이수자. 중요 무형문화제 제7호 고성 오광대전수자 이며 한국 영남춤 문화 예술 연구소 대표. 박경랑 전통예술단 단장. 영남춤 보존회 대표. 국립국악원 문화학교 강사, 부산 경남정보대학 및 동서 대학교 사회교육원 전통예술과 한국무용 지도 교수로 부산에술대학 숙명여자대학교 전통문화 예술대학원 전통춤 외래지도교수로 역임한바 있으며 각종 세미나를 통해 영남 춤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박경랑의 영남 교방청춤은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받은 춤으로 지금은 박경랑에 의해 널리 알려진 춤이다. 민속학자 정상박 교수는 박경랑의 춤을 흔히 난초와 대나무에 비교하며 또한 '영남 춤의 규격속의 비규격 정형속의 비정형, 유형속의 강건 절제 속의 자유에서 박경랑의 춤의 멋을 느낀다'라고 표현했다

박경랑은 여러 명인 선생님들의 장단에 익숙해진 영남춤을 추어 왔으며 이제는 음악을 자유자재로 춤 사위에 절묘하게 조화시켜 보는 이로 하여금 전통춤의 깊이를 느끼게 하며 영남춤의 지킴이로서 이미 우리시대의 춤꾼 정동극장 명인전,팔무전,고궁명무전 등의 기획공연을 통하여 명무로서의 인정을 받고 있다.


 


 

박경랑_공연이력.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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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국립 국악원 우면당

백재화 박선영 조미나 성예진 영남교방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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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학춤 구음 예능보유자 유금선선생 남해안별신굿 예능보유자 정영만선생의

장구장단과구음이 같이 하는 진주교방굿거리춤

                                                                         영상   서 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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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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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박경랑의 춤 동행(同行)
2011 05 17 제주특별자치도 문화회관
영상 : 고원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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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선이 만난 사람] 춤꾼 박경랑씨
영남춤 맥 잇는 춤사위… 전통과 퓨전의 어울림

  • 국제신문 2006-06-28 20:39
"춤을 춘다/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몸짓으로/ 호박꽃 같은 춤을 추고 싶다/

한 마리 나비가 되어 훨훨 춤을 추다가/ 춤으로 녹아 흐른 호박꽃 꿀을 따다가/

호박꽃 속에 갇히어 죽을지라도/ 슬픈 영혼을 품은 푸른 별로 남으리/

춤은 내 인생이다, 눈물이다/ 아니 그것은 내 사랑이다, 열정이다."

지난 26일 저녁 부산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살풀이춤, 지전춤, 교방춤(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을 추고 있는 박경랑 씨.
지난 26일 저녁 부산문화회관 대강당 무대. 이하월백(梨下月白)보다 더 파르스름한 소복으로 살풀이춤을 추며 '호국영령'을 위무하고 있는 박경랑. 젊은 광대들이 저어대는 해금 가락은 애간장을 끊는 듯 구슬픈데, 휘어져 감기우고 돌아서 다시 뻗는 춤꾼의 소매 끝을 스치며 너풀너풀 허공을 가르는 수건자락은 길 잃은 영령을 인도하는 구름이 되고, 다리가 되고, 반야용선이 되었다.

시나위 가락이 빨라지면서 춤은 지전춤으로 바뀌고, 지전은 어느새 영령들의 노잣돈이 되었다. 흡사 전통춤에 맞춘 듯한 박경랑의 단아한 몸매에서 솟구쳐 나오는 춤사위는 폭풍이요, 뇌운이었다. 무심한 영령인들 어찌 감응치 않으랴.

박경랑(45) 씨는 영남춤의 맥을 정통으로 잇고 있는 전통 춤꾼이다. 네 살 때부터 춤을 익혔다니 무력(舞歷)으로야 완숙기에 접어든 중견이지만, 마음이 열려있는 신세대 춤꾼이다.

이날 무대는 '박경랑과 광대들의 놀음'이라는 타이틀이 보여주듯 그가 젊은 혈기로 시도하는 섞음(퓨전)무대. 전통 국악기에 신시사이저, 피아노까지 동원되었다. 그리고 고성오광대 전수생들로 이루어진 'the광대'의 사물놀이와 오광대춤 일부가 나왔다. 특히 박경랑의 춤곡 연주를 맡은 '젓광대 공감'은 20대의 신세대 국악도들로, 그들의 발랄함은 구차한 형식을 타파하는 발칙함으로 통한다.

이날 공연은 강당을 가득 채운 관중과 광대들이 함께 어우러진 일종의 마당놀이였다. 관중들이 박수로 박자를 맞춰주고 무대 앞에서는 물론 무대 위에까지 올라가 연희자들과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은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장면. 이날 공연을 기획한 (사)부산문화 박흥주 대표는 "문화대중이 박경랑을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단언했다.

이들 광대의 재치와 익살은 뒤풀이까지 이어졌다. 박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는 그들의 여흥을 깨지 않기 위해 기다려야만 했다. 결국 결례를 무릅쓰고 밤 12시가 훨씬 넘어서야 박 씨와 마주할 수 있었다. 장소는 대연동 뒤풀이 집에서 옮겨 앉은 주례동 기사식당. 박 씨의 무용학원 이웃으로,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이다.

<ㅏ-2>"교방춤에 대한 내력이 궁금하네요."

"예전 기생들이 추었던 춤이죠. 우리 전통춤의 원전이라고 할까요. 이를 기초로 해서 모든 춤이 생성되고 파생된다고 보면 됩니다."

"교방춤을 잘 춰야 다른 춤도 잘 출 수 있겠군요."

"물론입니다. 기생들에 대한 교육을 맡은 곳이 교방청이었고, 영남교방청은 기생으로 명성이 높은 진주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방문화가 가장 오래된 곳은 부산(동래)이랍니다. 그 때는 기생들이 춤선생에 대한 오디션을 봤다네요. 춤선생이 춤을 추어보이면 기생이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해 춤을 배운 거죠."

"살풀이춤은 어떤가요. 그 춤을 보노라면 공연히 눈물이 나올 것만 같던데요."

"일종의 무속춤이지요. 지금은 교방춤으로 편입됐습니다만. 살풀이춤은 가장 섹시한 춤입니다. 소복을 통해 비칠 듯 말 듯 한 여인의 속살은 처절한 한(恨)의 몸짓인데, 그게 섹시미를 더하는 거지요."

"그래서 더욱 슬픈가 봐요. 아까 지전춤은 여느 지전과 다른 것 같던데요?"

"채 양쪽에 지전이 달려 있는 거요? 보통은 한 쪽에만 있는데, 그만큼 힘이 듭니다. 기교도 더 필요하고요."

"그래선지 매우 장엄하고 다이내믹하더군요. 그 춤사위에 해원(解寃) 못할 원혼(寃魂)은 없겠지요?"

"그럴 것으로 믿습니다. 제 춤에 영령들께서 평안을 찾는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지요."

"교방춤에서는 선비가 치마폭에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선비가 멀리 떠나면서 정인(情人)의 증표로 속치마에다 서화를 남기는 모습이죠. 옛 조상들의 운치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요?"

남원에서 한양으로 떠나던 이몽룡이 춘향이에게, 서화담이 동짓달 기나긴 밤 잠 못 드는 황진이에게도 그리 했을까. 이 날 공연에서는 도예가 서종훈(경기도 여주 민예총지부장) 선생이 박경랑의 치마폭에 난초를 치는 일을 대신 했다.

<ㅏ-3>"춤을 추실 땐 무아지경에 빠지겠지요?"

"관객을 의식하면 춤이 되지 않습니다. 무대 위에서는 춤을 춘다는 사실 그 자체마저 잊어야 합니다. 제가 춤의 진가를 알게 된 건 한 5년쯤 됐나 싶어요. 오직 춤을 출 뿐, 일체의 상념을 벗어 던져야 한다는 것을."

"일각에서는 전통의 파괴라거나 격이 낮다는 비판이 없지 않은 줄 압니다만.

"개의치 않습니다. 저는 철저히 전통을 고수하며, 그 정통성을 지키고 전수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대중을 상대로 한 공연에서는 관객들이 흥미를 느끼고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절실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통은 고수하되, 연희형식은 과감히 변화를 해보자 하는 차원에서 이번 섞음공연이 기획됐습니다. 다행히 관객들의 호응이 좋아 성공하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물론 시류에 영합하는 지나친 상업주의는 거부합니다. 그러나 대중의 욕구에 부응하고 시대흐름에 맞춰가는 것이 문화 예술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주로 생음악으로 안무를 하시는데요. 더러는 요란한 음악에 춤이 묻히는 경향도 있지 않는지요.

"그렇다고 음악 없이 할 수는 없지요. 물론 음악에 춤이 빨려들어서는 안 됩니다. 춤이 음악을 이끌어야지요. 지난 93년 처음으로 했던 개인 발표회를 이생강 선생의 대금 독주로 했어요. 그 때 모두가 놀랐지요. 젊은 혈기랄까, 오기랄까 뭐 그런 거였죠."

"공연하랴, 후학 지도하랴 많이 힘드시리라 봅니다. 연습은 어떻게 하시나요."

"1997년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을 때까진 하루 2시간도 채 잠을 자지 않았어요. 먹고 살아야 하기에 낮에는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고, 제대로 춤을 배우기 위해 여러 스승님을 찾아다녔죠. 게다가 서울에도 전수소를 차려 오르내리기도 했고요. 발을 무척이나 혹사시켰죠."

그러면서 그는 부끄러움도 잊은 채 외간남자에게 외씨버선을 벗어 발을 보여줬다. 발가락 마디마디는 말할 것도 없고 발가락 사이에까지 못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발등과 발목은 버선목에 주리를 당해 푸르스름한 멍과 함께 굳은살로 변해 있었다. 처절함 바로 그것, 최고 고수가 되는 과정의 고난이 얼마만큼 치열한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박 씨는 차를 몰고 서울과 부산을 오르내린단다. 운전대를 잡고도 음악을 들으며 어깻짓을 하는 등 잠시도 춤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밤중에 차를 몰고 가다가 여명을 느끼면서, 해돋이를 보면서 형언할 수 없는 환희를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그 감동과 감정을 춤에 끌어들이려 애쓴단다.

몸을 던져 완성해 가는 수도자와 같은 노력이 오늘날 '박경랑에 대한 주목'을 낳게 한 원동력인가 싶었다. 새벽 3시가 돼서야 인터뷰를 마친 기자는 그의 앞에서 감히 졸린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편집위원 songsun@kookje.co.kr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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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첫무대에 선을 보인 박경랑은 그의 외증조부 김창후에게서 춤을 배웠고 동래권번 마지막 춤선생 강옥남의 제자이다

요즘 유행을 타는 아무개이수자공연등에서 얼굴을 비춘적이 없다

교방춤을 추었다

굿거리장단이 주가되는 경상도 춤이었다

박경랑에게 “영남춤의 지킴이”라는 별명이 따라 다닌다

박경랑의 춤에서 나는 고고한 품위를 만난다

그품위를 다른말로 풀어쓰면 동작의 크기보다 밀도를 중시하는 그의 춤은 장단에서 조금 삐걱거렸지만 “40대 냉수같은 춤”이었다

휘어감기는 제몸의 버팀에 정결했고 박경랑이 한손으로 뻗어 부채를 잡는 그정중동의 묘(妙)는 굿거리장단을 때묻지 않게 소화하는 흥이요 격이었다

박경랑의 교방춤을 보면서 여러 이수자들이 이춤을 추었지만 이 “냉수같은 여인”의 허심탄회한 춤사위를 능가하지는 못했었다

5주년 공연의 백미였고 또한사람 영남춤후예의 등단이었다

평론가 진옥섭의 “고른 호흡을 불어 넣어 이음새의 틈이 보이지 않게 치밀하게 맞물림했다”는 지적에 동감한다.
 

                                            

                                                   공연과 리뷰 2009년 3월호 봄호  김영태의 무용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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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박경랑의 춤
2012.12.12 국립부산국악원 연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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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깔스러운 춤사위로 많은 팬을 몰고 다니는 춤꾼 박경랑이 12일 국립부산국악원 무대를 찾는다.

지난해 11월 열린 국립부산국악원 공연과 올해 4월 열린 서울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모두 매진시키며 열광적인 호응을 얻은 그녀는 국내 춤판에선 유명한 인물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 오광대의 초대 예능 보유자인 고 김창후 선생의 외증손녀로 말을 배우기도 전에 할아버지의 손짓, 발짓을 따라 하며 춤부터 익혔다고 한다. 그녀가 추는 영남교방청춤은 따라올 이가 없다고 할 정도로 특유의 몸짓을 뽐낸다.

12일 국립국악원 '동고동락' 공연
인간문화재 김창후 선생 외증손녀
말 배우기 전 고성오광대 춤 배워


"기생들의 춤인 교방청춤은 우리 춤의 기본이죠. 기생 문화가 조선 이후에 음주문화와 결합하며 퇴폐적인 이미지로 변했는데, 원래 교방청은 예인 육성 관청으로 우리의 춤 문화가 교방에서 많이 다듬어졌어요."

영남지방 기생들의 춤인 교방청춤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사실 그녀는 대학에서 발레를 전공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대학까지 발레를 했지만, 결혼 후 첫 아이를 낳고 결국, 어린 시절 몸으로 익힌 전통춤으로 자연스럽게 돌아왔다. 아이를 등에 업고 동래 권번의 마지막 춤 선생이었던 강옥남 선생에게 교방청춤을 배웠다.

"30대 초반 아이를 업고 교방청춤을 배우러 다니고 연습하며 주변에서 독하다는 소리 많이 들었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춰오던 춤을 꼭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그 이후 50대가 된 지금도 그녀는 '지독한 연습 벌레'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하루 대부분 시간을 연습실에서 춤을 추는 것으로 보낸다. 그런 '지독함'이 오늘날의 박경랑을 만든 셈이다.



경남 고성 출신으로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지만 졸업 이후 줄곧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제2의 고향이 된 부산 무대는 그녀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이번 공연 역시 그녀의 특별한 마음을 전하는 몸짓들이 준비돼 있다. 황진이의 시조를 현대적 관점으로 풀어낸 작품과 오랜 숙련의 깊이가 없으면 소화해낼 수 없다는 교방소반춤을 출 예정이다. 자신의 대표춤인 영남교방청춤은 오랜 세월 동고동락해 왔던 영남교방청보존회 회원 50명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부산팬들에게 특별한 무대를 선물하고 싶었던 그녀는 자신의 몸짓 외에도 뛰어난 예인들을 이번 판에 불러 모았다. 지난 10월 전국의 최고 소리꾼 10명을 모아 펼친 판소리 명창 서바이벌에서 최종 우승한 왕기철 명창을 비롯해 젊은 연희 집단 '더 광대', 국립창극단의 서정금, 김미진 명창, 해금 연주자 최태웅, 퓨전 음악 연주자 류아름 등이 출연한다. ▶2012 박경랑의 춤 '동고동락(同苦同樂)=12일 오후 7시 30분 국립부산국악원 연악당. 070-7759-0301.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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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악이란 예인이 지난주 세상을 떠났다.
진주 검무, 교방굿거리춤으로 일세를 풍미한 진주민속춤의 산증인이고,,
진주권번의 마지막 후예인 김수악선생 (1926년 12월 10일생)이
올해 2009년 3월 1일 향년 84세로 세상을 등진 것이다.

지난 1월 4일 유명을 달리한 운창 성계옥(1927년 경암 산청출생)의 49제를 마치고
일주일만의 슬픔이다.

진주의 두여인, 성계옥, 김수악, 친구이자 스승과 제자이기도 하고, 진주 춤의 라이벌이기도 한 두 여인은 이 세상과의 이별도 나란히 하게 되니...

김수악선생의 구음 시나위가 제일이라는 평을 받는 예인으로 그녀의 가무악은
바로 진주 권번의 마지막 후예로서의 기예이다.

이에 비하여 성계옥 선생은 초등학교 교사출신으로 좀 늦게 예술의 길로 들어섰고,
197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12호 진주검무 예능보유자로 지정,
67년 지정된 김수악선생의 춤의 맥을 이어주었다.

특히 성계옥 선생은 1991년 진주 포구락무, 진주 한량무를 복원하는 등의
활발한 공연과 의기 논개의 의를 기리는 의암별제,
유구한 전통을 지닌 진주 개천예술제등의 행사를 통하여
진주가 민속예술의 본고장이라는 자부심을 높이는데 힘을 쏟은 예인이다.

2009년 봄에 들리는 두 예인과의 이별은 일본 식민지 시절,
남북 이념으로 인한 전쟁, 1인당 개인소득 100달러도 않되는
가난한 나라의 예술을 힘겹게 짊어지고 이어온 우리시대의 예혼의 맥이다.
이제 60년대 초 지정된 인간문화재 1세대 선생님들이 정말 몇 분 남아계시지 않는다.
이런 무형문화유산은 사람과 함께
그가 갖고 있던 예술도 함께 사라지는 안타까운 운명이다.
비록 그 제자를 통해서 이어진다고 하나,
그 본래의 멋과 흥을 이제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무척 큰 상실이 된다.

이번 주(3월 21일) 이런 1세대 춤꾼의 영남교방춤의 계보를 잇는
박경랑의 춤을 다시 보게 되어 안심이 된다.


뛰어난 춤꾼의 전통을 지닌 영남지방의 춤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춤꾼 박경랑은
부지런히 자신의 춤을 가꾸어 나가고 있는 중견 춤꾼이다.
그녀의 춤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의 한없이 넓어 보이는 치마폭에 푸웅덩 하고 빠져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해준다'는 평을 받도 있는 춤꾼이다.
두 1세대 어른을 일어버린 상실감을 그래도 위안이 되게 하는 박경랑의 교방굿거리,
그녀의 춤이 있어 그래도 숨을 돌리게 한다.

그리고 지난주 녹화했던 김혜란명창의 ‘가인’이 하이라이트로
짧게 편집이 되어 방송되었다.


신곡에 가까운 뱃띄워라, 우리 비나리같은 곡을 중심으로 방송되었다.
그녀의 센스있는 의상과 무대 진행이 돗보이는 공연이다.
보여지는 공연에 무척 힘을 들이는 명창이 바로 김혜란 명인이다.
무대뿐만 아니라 함께 공연하는 제자들의 의상이나 악세서리인 장신구까지
깔끔하게 챙겨서 무대에 오르는 치밀함이 있다.

관련내용원본 :http://blog.kbs.co.kr/thankiss/781481
                                                                                 2009/03/23 13:19:11 KBS 국악한마당 최공섭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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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방춤사진

사진/춤사진 2012. 10. 2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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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성대홀 교방무사진  (0) 2012.10.18
광주 MBC 얼씨구학당 녹화장면  (0) 2012.10.16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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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서 채우는 길

최 은 숙

 

1. 삶의 춤결

그는 수업시간마다 외친다. 발목 접고 깊이 눌러라. 무겁게 해라. 바닥에서 발을 떼지 마라. 눌러라. 계속 눌러라. 우리춤이 중력을 뿌리치고 가볍게 날아오르는 서양춤과 다르다고 하지만 이렇게 한없이 누르다간 바닥에 달라 붙다가 땅 밑으로 꺼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천근의 무게를 강조한다. 그의 춤 선은 참 예쁘고 고운데 실제로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호흡과 기교 심지어 얼굴 표정까지도 깊고 진지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마음으로 춤을 추면 저런 묵직한 팔 다리와 진중한 분위기가 나올까 연구하게 만든다.

그는 ‘멈춰, 서’게 한다. 화려한 움직임은 ‘멈춤’에서 이루어짐을 강조한다. 세상에서 정지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침묵이 없는 말은 소음이 되고 어둠이 없으면 밝음의 소중함을 알 수가 없듯이 쉼이 없다면 드러남이 없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위대한 멈춤이다. ‘딱 멈추’지를 못해 몸이 혼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더 중심을 잡아가는 것은 몸보다 정신 쪽이었다.

가식으로 만들어 내지 않고 진정 자신의 무게로만 움직일 때 진국이 되는 춤사위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음을 녹이는 그의 화려한 발 디딤새는 단순한 겉멋이 아닌 진국을 향한 열정의 결과였다. 자신을 향한 진지한 시선으로 내면을 다지고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는 살인적인 연습시간이 있었기에 강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 동안 일 년에 두 번 씩 열리는 연수에 거의 참여했는데 하루는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숙소에서 그와 같은 방을 쓰면서 밤늦도록 이야기를 하다가 잠들었는데 갑자기 잠꼬대로 춤 장단을 치시는 것이 아닌가. 새벽 연수부터 시작해서 저녁 시간까지 꼬박 채우고 피곤한 몸으로 겨우 몇 시간 잠드는데 꿈에서도 장단을 치고 우리 자세를 잡아 주고 있었던 거였다. 허리 펴고 명치 접고 겨드랑이 들어! 시선 옆으로! 쿵 기덕 쿵 따아악. 춤으로 가득 찬 치열한 삶이 그대로 전해졌다.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얼굴은 손에 잡힐 듯이 작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몸은 단단하고 밀도있게 다져진 정갈한 멋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렇게 밤낮없이 하는 춤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2006년 여름 교방춤 연수 장소가 해운대였는데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던 홀이었다. 수평선에 배가 떠있는 그림 같은 장소를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잡으신 것 같았다. 그때 연수의 주제는 바다와 함께 춤을 추라는 것이었다. 파도가 밀려오면 움직이는 물결 따라 추라고 했다. 물결이 내 품으로 밀려들듯이 한 호흡으로 밀어 올리고 내려 앉아라는 말에 나는 또 한 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때 각인된 물결 이미지는 교방춤 속의 하나의 장면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이미지를 주문한다. 춤 속에 각자의 이미지를 만들어 이야기를 풀어내도록 한다. 내가 자연인양 먼 수평선의 아득함과 흐르는 구름을 마음에 담아내라고 했다.

교방춤의 춤사위는 조금 많은 기교가 필요하다. 처음에 복잡한 동작을 배우기 위해서 몸을 혹사시켜야 했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골치가 아파야 했다. 동작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지 않으면 몸이 따라가질 않았다. 그는 동작을 이해시키기 위해 끈질기게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자세하고 논리적인 설명을 듣고 있자면 내 몸의 구조와 관절 하나하나가 다 보이는 느낌이다. 몸을 움직이는 데 따라 자연스럽게 나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을 따라 가면 억지스럽지 않은 편안한 춤길이 나온다 한다. 그렇게 무르익어 편안해진 경지가 되면서 그의 춤사위는 독특하게 멋지다.

춤의 비밀을 조금씩 발견해 가는 이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을 주었다. 그의 춤에 대한 자세는 나의 숨어 있던 열정을 깨우게 했고 이렇게 치열하게 몰입하고 다구쳐 보라고 자극했다.

 그는 엇박자를 즐긴다. 인생이란 대부분 엇나간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엇박이 들어가지 않은 안무가 별로 없다. 세상은 정박이 아니므로 엇박의 묘미를 아는 사람은 인생을 아는 사람이 된다. 나와 님 사이에 사랑의 방향이 다르고 시작점이 다르고 크기도 다르기 때문에 그 엇나감을 인정하지 않으면 인생이 괴롭다는 걸 아는 것처럼. 그 엇나감만큼 우리는 방황하지만 그래서 그만큼 또 성숙한다. 너와 내가 말이 섞이는 데는 몇 번이나 서로 다른 장단을 돌아 나온 끝이다. 내 속에서 나온 자식도 내 품에 안을 수 있는 경지는 수 년이 걸리는 긴 가락을 다 알고 난 뒤다. 하지만 그것은 낭비가 아니다. 맞추지 못한 한 조각은 다른 데서 우리도 모르게 힘을 발휘하면서 아름답게 피어난다고 그는 믿는다. 그의 엇박은 너무 절묘하여 자꾸 보고 싶다. 엇박이 들어가는 순간 세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듯하다. 경계에 끄달렸던 마음들이 부질없어짐을 확인한다.

그런데 그는 자주 서럽다. 무엇을 바랐기 때문에 그렇게 서러운 것일까. 한 시인은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의 설움이 전해져 온다. 언젠가 전화기 저쪽에서 들려오는 울음 섞인 목소리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스승과 제자가 목이 메어 대화를 하지 못할 서러움이 삶의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인간을 너머 선 것을 바랐기 때문에 끝나지 않을 서러움이었다. 그래서 그는 시적이다. 그건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불가능한 것을 항상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현실과 이상의 중간 어디쯤에서 서성이다 잠깐씩 그와 눈빛이 마주칠 때 나를 발견한다. 그에게서 나 자신을 보고야 마는 것이다.

그는 사랑하고 싶다고 했다. 사랑했던 사람과 사랑하고 있는 사람과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다 가슴에 안고 춤을 춘다. 그래서 그가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흰 수건은 날릴 때면 가슴이 복받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사랑했던 아버지와 남동생을 묻고 사랑하는 스승과 님과 떠난 제자까지 가슴에 안았으니 응어리가 너무 깊다. 아무리 풀고 풀어도 남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홀로 법당을 다닌다. 마음이 흔들리거나 누군가 야속할 때는 절을 한다. 이 세상 모든 것에 절합니다. 세상 어떤 것도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는 나올 수가 없는 늪과 같다고 했으니 지나가는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는 주말이면 법당에서 그 누구에게 소중했던 사람을 천도하고 빌어준다. 더불어 참회한다. 나에게 소중한 것임을 몰랐던 죄.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 죄. 돌봐주지 못한 죄. 감싸고 덮어주지 못한 죄. 죄스러운 마음은 북장단을 타고 영남승무 회색빛 장삼을 흔든다. 먹장삼에 빨간 가사를 입고 추는 그의 승무를 처음 보았을 때 소름이 돋았다. 장삼을 던질 때 온 마음을 다하는 진정성이 무대를 꽉 채웠고 뿌린 장삼 끝으로 그려지는 유연한 포물선은 내 마음에도 이어졌다.

오열과 희열이 섞인 그의 북장단은 사람 마음을 찢어 놓는다. 북소리는 작아졌다 커졌다 하면서 인간사 희노애락의 고비를 넘나들다가 다시 숭고하게 울린다.

그는 다 준다. 자기가 가진 것을 언제나 아낌없이 내어 주기 때문에 가난하다. 다 주어라. 전수관 벽면에 그렇게 적어놓았다.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고우니 마음에 욕심을 쌓지 말라고. 자신을 끝없이 비워내어 항상 새롭고자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춤사위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어떤 이는 좋아하고 어떤 이는 괴로워한다. 오늘의 창조적인 박경랑은 당신의 스승이 날마다 춤사위를 바꿔 다양한 동작으로 춤을 익히게 했기 때문이란다. 우리도 그를 따라 하다 보면 그의 반의 반이라도 할 수 있을까.

공공연히 우리는 그를 철인이라 부른다. 무쇠팔 무쇠다리로 전국을 누비는 철의 여인이라고. 수많은 공연과 수업을 뚫고 자기 춤을 선보이는 신비주의자. 언제 울고 언제 사랑했을까. 거미처럼 긴 두 팔로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는 아무래도 길 위에서 생겨난 것 같다.

 그는 어쩔 수 없는 경상도 사람이다. 자분자분하던 말씨가 흥이 나면 인심좋은 경상도 여인이 된다. 주례학원 찬 마룻바닥에 큰 대자로 누워 더운 열기를 식히면서 제자와 같이 어울리는 소탈함이 있다. 밤 수업 뒤 팥빙수를 나누어 먹고 자정이 넘도록 이야기를 즐겼던 편안한 사람이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내 입에 새우를 까서 넣어줄 때 그 다정함에 당황하였던 기억이 난다. 제자들 연습하라고 손수 밥을 지어 먹이는 그런 사람이다. 그의 말은 처음엔 시가 되고 편지가 되었다가 나중엔 춤이 된다. 일상의 말과 행동이 다음에 나올 춤의 집이 된다.

 

2. 다른 빛깔로

그와 처음 마주친 순간은 다른 세상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그 당시 30대 후반의 젊은 그는 자태가 매혹적이었고 말소리며 표정이 가냘프고 정다워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어떤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드는 것 같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이적지 만나보지 못했던 오묘한 감성이 주는 그 떨림을 지금도 기억한다. 곧바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길을 가르쳐 준 이정표가 되었다.

한동안 국어교사의 처지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내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흔들렸고 저쪽 춤의 세계가 부러웠다. 학교를 마치면 모든 시간을 춤에 집중했고 너무 행복했다. 원래 우리 춤이 이렇게 좋은 것이었는지 그의 기운에 홀린 것인지 아니면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지 갈피를 못 잡는 사이에 십 수 년이 흘러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탈을 벗기 위해 탈을 쓴다’는 말에 나를 크게 돌아 본 적이 있다. 춤을 배우면서 몸과 마음이 하나가 안 되고 또 얼마나 굳어 있는지 괴로워하고 있던 때였다. 몸을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새로운 충격이었다. 주어진 신분과 역할에 갇혀 딱딱하게 살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지금까지 틀에 얽매인 줄도 몰랐고 자신을 바로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와의 만남으로 나에게 균열이 생겼다. 벌어진 작은 틈새로 아름다운 물이 스며들면서 나는 다른 빛깔로 물들 수 있는 행운을 잡은 것이다.

 

3. 숙련

 몸으로 하는 공부는 고달프다. 물론 공부 자체가 고달픈 일이고 세상의 모든 공부는 마지막에는 몸으로 승부를 본다. 몸을 쓰는 사람의 가장 큰 강점은 정직함이다. 신체에 새겨진 흔적은 의식하지 않은 순간에도 그대로 표출되어 버리는 투명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자리 잡아 바로 그 사람이 된다.

일주일에 한 번 그의 기를 받으러 두 시간 이상 걸리는 길을 오고 갔다.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태풍이 몰아쳐도 어김없이 그를 찾았다. 새로운 내 인생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기운은 오고가는 고달픔을 덮을 뿐 아니라 일주일을 살아갈 수 있는 양식이 되었다. 새로운 춤을 익힐 때마다 나는 부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거칠게 한 덩어리로 뭉쳐 있던 내 몸은 시간이 흐를수록 부드러운 작은 조각으로 섬세하게 나누어져 갔다. 한 번에 한 가지만 얻어 가면 성공이다는 그의 말을 믿고 먼 길을 오가도 성급하지 않으려 애썼다. 죽을 때까지 나를 구원하는 거라 생각하고 욕심 부리지 말자고 다짐했다.

춤을 배운 지 4년 정도 지나서부터 자신에게 뭐가 부족한지 느껴보라고 그는 의도적으로 무대에 서게 했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배운 것의 반도 표현하지 못했다. 더구나 생음악 앞에 어쩌다 서게 되면 그동안 배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살아 있는 음악 속에 춤가락을 살려 낼 수 있는 힘이 없어서 춤이 무너졌다. 그가 판소리, 산조 등 음악을 많이 들으라고 한 이유를 알았다. 수업 시간에 장구 장단으로 춤 앞에 서게 하는 깊은 뜻을 알았다.

순서를 빨리 익혀서 성급하게 한 판 끝내고 싶은 마음이 앞서면 춤은 거칠어지고 몸만 피곤했다. 잘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춤을 추면 그 잘난 마음이 춤 속에 보인다는 걸 알았다. 추는 사람의 기질과 마음, 심지어 그의 세계관까지 다 드러나는 걸 알고 정말 마음으로 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끝없이 자신을 비우고 내려 놓는 공부를 해야 했다.

기교를 익히는데 3년, 버리는데 30년.

어설픈 우리는 춤은 없고 몸짓만 있다. 우리가 기교를 익힐 때 그는 모든 기교를 버리고 간결해지고 승화되어 갔다. 하루 종일 제자와 춤추면서 자신의 춤을 갈무리해서 정화시켰다. 삶의 굴곡따라 고비고비 춤이 나왔다. 춤이 변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보았다. 스승의 변화 만큼 큰 감동을 주는 공부가 있겠는가. 몸에서 익고 삭아서 나오는 춤. 인생을 묵혀서 깊게 배어 나오는 것이어서 진정 그는 안 보이인다.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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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Posted by LittleSil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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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부무담 풍류가화(雄府舞談 風流家化)
연출 : 강병규 PD

오랜만에 만날 수 있었던 잔치였다. 10년 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다녀간 가장 한국적인 고장 안동, 퇴계 이황 선생을 탄생시킨 한국 정신문화의 태두에 서 있는 안동에서 만난 잔치였다. 지난 6월 12일 안동 대도호부 관아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웅부공원에서 잃어버린 우리 잔치를 찾는 춤판이 열렸다. 안동MBC가 마련한 잔치판, 웅부무담 풍류가화(雄府舞談 風流家化). 이 날 잔치에는 웅부공원을 가득 메운 500여 명의 관객들은 예전 우리 잔치의 모습 그대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옛날 차일치고 멍석 펴고, 한 편에서는 술 빚고 떡을 치며 거방지게 놀았던 잔치. 가족의 경사를 마을의 잔치로 치르던 성대한 축제. 어느덧 사라져 이제는 옛 풍경이 되어버린 잔치마당을 다시 재현하고자 마련한 무대였다.

2년 전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에 있는 300년 고택 구담정사에서 벌어졌던 잔치를 잊지 못해 언젠가 다시 한 번 잔치 마당을 펼쳐보고자 했던 것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 어느 곳보다 고택이 많이 남아 있는 안동의 오래된 종택을 찾아 올려보고 싶었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함께 참여하고 즐기는 잔치판을 마련하고자 웅부공원을 택했다. 다행이도 그곳은 고려 공민왕이 원의 침략을 피해 몽진을 온 인연으로 대도호부가 설치되었던 안동의 관아 자리였다. 600년 역사의 웅부(雄府) 안동의 관아 터에서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잔치판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2007년 구담에서의 인연 덕분에 우리 고유의 잔치 풍경이 조금 낯설기도 했었던 연출자에게, 이번 잔치판을 꾸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영남춤을 이어가고 있는 박경랑이라는 걸출한 춤꾼과, 북 하나에 사람 좋은 웃음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무형문화재 밀양북춤의 하용부 선생, 그리고 역시 무형문화재 남해안 별신굿의 정영만 선생 등이 주축을 이뤄 판을 벌여 나가기로 했다. 여기에 국립창극단 주역을 맡고 있는 왕기철, 김지숙 두 명창과 최우칠 민속악 반주단의 흥에 겨운 우리 악기 연주야 말로 더 이상의 명품 잔치 마당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 주는 요소였다. 물론 거기에는 대중가요가 판을 치는 현대사회에서도 우리 것에 대한 신명과 흥이 찾아오는 관객들과 함께 호흡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공연판이었다.

 

 

 

초여름이라 하기에는 꽤나 열기가 뜨거웠던 6월의 태양이 지기를 기다려 안동도호부를 지켜주고 있었던 부신목(府神木)의 신령께 고하는 꽹과리 소리는 시작됐다. 정영만(중요 무형문화재 제82-라호 남해안 별신굿 예능보유자)선생의 구슬픈 구음으로 잔치를 치러낼 모든 춤꾼들과 소리꾼들이 함께 마당의 성공을 기원하고, 잔치판을 찾아 함께할 관객들과 시민들의 안녕을 비는 들맞이 굿이 올려졌다. 그러는 동안 무대에서는 청․홍 두 폭의 천에 각각 잔치마당의 이름과 옛날 선비들이 즐겨했던 난을 치고 마당에 거는 만장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백연 박문환 선생과 안동서화원의 라창교 원장이 각각 잔치마당의 이름과 난을 올렸는데, 그 방법 또한 독특해서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달걀 흰자를 풀어 큰 붓으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린 후 밀가루(옛날에는 들깨 가루를 썼다고 한다)를 뿌리고 달걀의 점성에 의해 글씨가 나타나면 나머지를 털어내는 방식이었다. 청․홍의 만장이 영가헌에 걸리자 관객과 시민들을 대표해 김휘동 안동시장이 환영의 인사로 별신굿패를 맞이했고, 곧이어 올림춤이 펼쳐졌다. 올림굿은 사방팔방 모든 잡신을 물리치며 노는 마당을 정갈하게 하고 부정을 가시며 천지신명에게 고을 사람들의 정성을 기원하고 무수대길 안가태평을 기원하며 올림(바치는)하는, 즉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신을 높이 칭호하는 굿이다

 

 

 

 

출연자들과 관객들이 고사를 올리며 한 판 춤을 펼친 후, 역시 청․홍의 두 마리 용선이 무대에 올랐다. 용선은 춤판에 참가하는 예인들이 직접 수백조각의 종이를 오려붙여 만든 배다. 용선이 올림춤을 추는 춤꾼들과 함께 춘 용선춤은 당산신령을 용선이라고 하는 최상의 배에 모셔 와서 살아있는 고을 백성들에게 명과 복, 행운을 주고 가며 액운은 거두어가고 물을 건너가는 형상을 춤으로 표현한 화려하고 아름다운 춤이다. 이로서 웅부무담 풍류가화의 잔치마당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할 준비를 마치게 되었다.

곧이어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최종민교수로부터 오늘 벌어지는 잔치마당에 대한 해설이 곁들여졌다. 안동 출신이기도 한 최교수는 이 춤판이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고, 신과 사람이 하나 되며, 너와 내가 하나 되는 축제를 뜻한다고 했다. 또한 천인합일의 정신을 구현하고자 했던 풍류정신은 고려와 조선을 거쳐 내려오면서, 고려 때는 차(茶)문화를 발달시켰고, 조선조에는 놀이문화 특히 수양음악과 춤을 발달시켰다고 전했다.

 

 

 

원래 풍류란 춤이든 노래든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 겨레는 과거에 한 해 동안 살면서 또는 봄철 한 해 농사를 시작할 때 축제로 하나 되는 체험을 하면서 묵은 때를 벗겨내고 새로운 다짐을 하며 살아왔다. 이런 풍류를 잔치가 사라져 버린 지금 현대사회에서 오늘의 춤판을 빌어 재현하고자하는 마당이 웅부무담 풍류가화라 하겠다.

최우질 민속악 반주단과 남해안 별신굿 악사들의 즉흥적인 시나위 합주로 본격적인 마당을 시작했다. 무대 옆 한쪽에서는 이수다원이 마련한 다상(茶床)에서 차를 우려 관객들의 목을 축여주면서 잔치 마당의 풍미를 더해주고 있었다. 분위기 넘치는 시조창에 맞춰 여인들의 설레는 마음 부채에 담아 그린 채선무와 멋과 흥을 아는 양반 사대부들의 여유로움과 자재(自在)로움이 담긴 영남 선비춤이 주 무대와 종각 앞에 마련된 작은 무대에서 펼쳐졌다. 마당에 모여 앉은 관객들은 무대에 모여 앉았던 기생들이 직접 건네는 술 한 모금과 흥겨움에 취해 모두들 어깨춤을 들썩거리고 있었다. 우리의 악, 가, 무를 한데 모아 선조들의 예기와 멋, 흥과 한의 조화를 한무대에 재현하며 선조들의 문화정서를 느껴 보고자 구성한 작품이다.

이어진 왕기철, 김지숙 명창의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 마당은 두 사람이 펼친 연기와 함께 관객들의 많은 호응을 얻어냈다. 아마도 판소리 중 가장 대중적인 대목이라 모여 있는 관객들 그 어느 누구도 모르는 사람이 없어서 더했으리라 생각되는 대목이다. 사랑가를 마친 왕기철 명창의 ‘아니리’는 여느 대중가요 공연처럼 굳이 따로 진행자를 두지 않더라도 객석과 호흡하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다음 판을 이어주기에 충분했다.

다음 마당 역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성주풀이였다. 원래 ‘성주의 본향은 경상도 안동 땅에 제비원이라’고 하는 사설에도 있듯이 웅부 안동을 찾은 춤꾼들은 성주풀이로 제비원 미륵불에 대한 예를 갖췄다. 본래 성주풀이는 무당이 성주 받이를 할 때 복을 빌려고 부르는 노래였다. 우리 민속에서 집터를 맡은 신령인 성조왕신과 그의 아내인 성조 부인은 집을 짓는 일로부터 일문일족의 번영에 이르기까지 그 집의 길한 일이나 흉사를 도맡아 직접 다스린다고 믿어왔다. 김지숙 명창이 부른 성주풀이는 경상도 노래다운 꿋꿋한 멋과 시원스런 느낌을 준다. 굿거리장단에 맞춰 부르는데, 춤을 곁들이기도 한다. 5음 음계로 되어 있으며 장절 형식이다. 연이어 왕기철 명창이 부른 판소리 단가 흥부가 중 박타는 장면은 관객들과 함께 잔치 마당의 신명을 적절히 살려내는 분위기 메이커로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이제 공연은 서서히 절정으로 다다르며 춤판을 이어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 백중놀이 예능보유자인 하용부 선생이 북 하나를 들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밀양북춤은 일양 백중놀이 중 ‘신명놀이’ 과장에 있는 춤으로 오체가 성하고 오곡이 잘되어 만사가 순조롭기를 빌며 온 백성이 오복을 우릴 수 있기를 기원하며 신명나게 한 판 추었던 북놀음이다. 춤을 추며 간간히 흘러나오는 하용부 선생의 추임새와 북채 끝에서 웃음 띤 그의 눈빛으로 이어지는 섬세하면서도 흥이 묻어나는 선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넘쳐흘렀다. 객석의 흥이 점점 더 차오르자 하용부는 북을 내려놓고 객석으로 뛰어 내려왔다. 앉아서 바라보는 관객들을 향해 눈길을 주며 던졌던 몸짓은 이러고도 마냥 앉아만 있겠느냐면서 무언의 압력으로 느껴졌다. 때로는 어르신들과 그리고 또 때로는 우유병을 든 어린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진 그의 춤사위는 웅부공원에 모여든 관객들을 하나로 만들기에 그만이었다.

이윽고 이날 잔치판의 백미 박경랑의 영남교방청 춤이 선을 보였다. 교방은 원래 조선시대 기녀들을 중심으로 노래와 춤을 관장하는 기관이었다. 이곳을 통해 전해진 춤이 교방춤이며 영남교방청 춤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초대문화재이셨던 박경랑의 외증조부인 故김창후 선생, 그리고 그의 제자 故금산 조용배에게로 이어져 지금은 박경랑에 의해 추어지고 있다. 이 춤의 특징은 음․양의 조화가 잘 이루어졌고, 남성적인 활달한 상체의 동작과 밀도가 높은 여성적인 섬세함을 지는 하체 중심의 발 놀음(디딤사위)이며, 이를 통해 영남지역 교방춤의 기교가 얼마나 발달되어 있는 지를 엿볼 수 있었다. 부채 하나를 들고 무대를 누비며 치맛자락 사이로 드러난 버선발의 모양새에서 미 춤의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다. 영가헌의 대청으로 올라간 기생은 수줍게 속치마를 내밀어 정표를 청했고, 선비는 유려하게 흘러가는 초서로 자신의 마음을 담아 기생의 속내를 받아주었다. 어느새 관객들은 저도 모르게 손을 올리고 입을 벌려 교방춤의 정점을 감탄했다. 치마폭에 글을 내려받아든 박경랑은 그대로 객석으로 내려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잔치마당에 참가한 모든 이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고 저절로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올리고 소리를 높여 춤을 추게 했다.

이런 마당에 그 누가 하나 되지 않겠느냐며 우리 전통의 잔치판을 찬양하는 최종민 교수의 다음번 새로운 마당을 기약하는 맺음말로 공연을 마친 춤꾼들은 왕기철 김지숙 명창의 남도민요 진도아리랑을 관객들과 함께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며 대미를 장식했다. 이 날 웅부공원은 말 그대로 잃어버린 우리의 잔치판을 되찾아준 그 곳이었다. 그리고 초여름 밤하늘에는 보름을 조금 넘긴 달이 사람들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었다.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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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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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은 오는 4일부터 19일까지 국립무용단(예술감독 윤성주)의 신인 안무가 발굴 프로젝트 ‘바리바리 촘촘 디딤새’를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 올린다.

'바리바리 촘촘 디딤새'는 12년간 관객들에게 해설과 시연이 있는 전통춤과 창작춤을 소개해 프로젝트로, 올해는 영호남 지역의 독특한 전통춤을 총 5명의 안무가들을 통해 선보인다.

공연의 마지막은 백재화의 '영남교방청춤'으로 18~19일 이틀간 선보인다. 교방청은 과거 역사 속에서 전문예능기관의 역할을 수행한 곳이다. '교방청춤'을 바탕으로 선보이는 창작춤은 '레테의 강'이다.

생과 사, 삶과 죽음의 세계는 엄숙하면서도 성스러운 세계이다.죽음은 또 다른 삶의로의 시작이라는 암묵적 제시로 동서고금에 공통적인 인식의 한 조각으로 자리 잡고 있다.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망각의 강이 레테의 강이다. 이승에서의 모든 번뇌와 추억까지 모두 잊게 만드는 레테의 강!
 
이번 작품의 주된 의도는 레테의 강을 건너가는 망자를 위로하며 또 다른 생으로의 탄생을 축원하는 두 가지 상반적이고 상충적인 행위가 끝내는 조화와 조율을 이끌어내는데 있다.  그 조화와 조율 속에서 동서양의 인식세계를 무리 없이 넘나드는 우리 전통 민속 문화의 우수성과 세계성, 더 나아가 우리 전통문화의 궁극의 어울림을 제시한다.
 

Posted by 古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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