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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오광대'에 해당되는 글 35건

  1. 2015.11.12 박경랑선생 11월 13일 국립극장 춤의 고을 고성사람들 출연
  2. 2015.10.20 박경랑류 문둥북춤(구음/정영만)
  3. 2014.11.27 고성오광대-문둥북춤(Korean Mask Dance of Tragedy)
  4. 2014.07.14 운파 박경랑 소개
  5. 2014.02.01 박경랑의 스승 금산 故조용배옹
  6. 2013.08.31 고성 오광대 - 말뚝이춤
  7. 2013.08.24 박경랑의 외증조부 고성오광대 중시조 故김창후옹입니다
  8. 2013.07.08 고성 오광대 - 양반춤
  9. 2013.06.15 고성오광대(Goseong Ogwangdae)
  10. 2012.12.13 고성오광대 이윤석예능보유자의 덧배기춤(2008 박경랑의 춤 백의백무공연중)
  11. 2012.12.12 고성오광대공연중 박경랑 리허설장면
  12. 2012.12.10 깊이 있는 전통춤의 세계로…춤꾼 박경랑, 부산 무대에
  13. 2012.11.22 문둥북춤 2
  14. 2012.11.21 문둥북춤
  15. 2012.11.10 2012 박경랑의 춤 온고지신 고성오광대 이윤석선생덧배기춤
  16. 2012.10.22 박경랑선생의 외증조부 故 김창후옹의 프로필입니다.
  17. 2012.10.17 2008 박경랑의 춤 공연중 덧배기춤 (백의백무)
  18. 2012.10.11 40년 춤사위 춤을 의식 안 하니 진짜 춤이 나오더라!
  19. 2012.08.31 고성오광대 창동극장 리허설 동영상
  20. 2012.06.21 고성오광대
  21. 2012.06.20 박경랑의 외증조부 故김창후옹
  22. 2012.06.06 <박경랑의 춤 '백의백무'>2008년기사
  23. 2012.05.18 박경랑 춤-크로스오버 국악 '인연'의 무대
  24. 2012.05.10 2012박경랑의 춤 5월 16일 경상남도 문화회관 인연공연
  25. 2012.04.05 2012 박경랑의 춤 (서울)온고지신

1. 공연명 : 춤의 고을 고성사람들
2. 장소 : 국립극장 KB하늘극장
3. 날짜 : 2015년 11월 13일 (금요일)
4. 시간 : 오후 8시

5. 티켓료 : 전석 20000원    

6. 티켓예약 및 공연문의 :  공연기획 MCT   02-2263-4680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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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박경랑의 춤 '인연' 진주공연 (경남문화예술회관) 중 문둥북춤
여성 무용가로서는 박경랑만이 유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고성오광대 제1과장인 문둥북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만든 작품이다.
인간의 어떠한 고통도 참고 견뎌내면 종국에는 모든 것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교훈적인배경을 가지고 있다

                                        2012 05 16   구음 / 남해안 별신굿 예능보유자 정영만 / 영상 서재준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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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mask dance, is a traditional Korean dance which expressed the leper's sorrow and happiness.

The leper is suffering from the karma due to his ancestor's sins in the past.

The dance is mostly about this one leper, who shows misery by eating fly and crops to escape from his starveness.

And after a while, he finds his own small drum and remembers his old days when he wasn't a leper yet.

He tries to play with his small drum but he fails and falls into despair.

But, he finally gets his drum and he plays with it so happily and finds himself in full competence with his own self.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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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破 朴璟娘

 

1961년 경남 고성 출생. 중요 무형 문화재 제 7호 고성 오광대 초대 문화재이셨던 외증조부의 대를 이어 영남 춤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중견 춤꾼으로 보기 드물게 농익은 춤의 기량을 간직하고 있다.


 

4세에 춤에 입문 故 김창후 故 조용배 故황무봉 故김애정 故김수악 김진홍 박성희 강옥남 선생들에게 우리춤을 사사받았고 지금은 서울, 부산을 오가며 개인 공연 및 기획 공연 국악 무용 경연대회 심사 및 우리춤을 연구, 전수 ,보급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수상이력

 

93년 제 18회 전통 예술 경연대회 전체 종합대상 (문화체육부 장관상) 수상, 93년 제4회 대구국악제 전체 종합대상(문화체육부 장관상)수상, 94년 진주 개천 예술제 제12회 개천 한국 무용제 특장부문 대상(문화체육부 장관상)수상, 95년 제21회 전주 대사습 놀이 무용부문 장원(문화체육부 장관상) 수상, 96년 서울 전통 공연예술경연대회 종합 최우수상(국무총리상)수상 등을 거처 97년 제 5회 서울 전통 공연예술경연대회에서 심사위원 19명의 만장일치로 대통령상을 수상 하였다.

 

활동사항

 

현재 경상남도 무형 문화제 제 21호 진주 교방굿거리춤 이수자. 중요 무형문화제 제7호 고성 오광대전수자 이며 한국 영남춤 문화 예술 연구소 대표. 박경랑 전통예술단 단장. 영남춤 보존회 대표. 국립국악원 문화학교 강사, 부산 경남정보대학 및 동서 대학교 사회교육원 전통예술과 한국무용 지도 교수로 부산에술대학 숙명여자대학교 전통문화 예술대학원 전통춤 외래지도교수로 역임한바 있으며 각종 세미나를 통해 영남 춤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박경랑의 영남 교방청춤은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받은 춤으로 지금은 박경랑에 의해 널리 알려진 춤이다. 민속학자 정상박 교수는 박경랑의 춤을 흔히 난초와 대나무에 비교하며 또한 '영남 춤의 규격속의 비규격 정형속의 비정형, 유형속의 강건 절제 속의 자유에서 박경랑의 춤의 멋을 느낀다'라고 표현했다

박경랑은 여러 명인 선생님들의 장단에 익숙해진 영남춤을 추어 왔으며 이제는 음악을 자유자재로 춤 사위에 절묘하게 조화시켜 보는 이로 하여금 전통춤의 깊이를 느끼게 하며 영남춤의 지킴이로서 이미 우리시대의 춤꾼 정동극장 명인전,팔무전,고궁명무전 등의 기획공연을 통하여 명무로서의 인정을 받고 있다.


 


 

박경랑_공연이력.hwp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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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서예 대가로 전국 무대 누벼

당대 춤꾼 고성하면 ‘조한량’ 불려

조용배 그는 1929 9월 거류면 용산리 157번지에 태어났다.

이 때부터 ‘조선의 한량 조용배’의 신화가 싹트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그는 동네 메구패를 따라다니면서

신명을 배웠다.

서당에 다닐 때는 훈장이 없는 때를 틈타 솥뚜껑,

밥그릇, 숟가락으로

농악장단을 맞추며 일찌감치 예인기질을 발산시켰다.

세인들은 한량에도 급수가 있다면 故 조용배 선생은 단연 9단이요, 가장 으뜸일 것이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춤이면 춤, 악이면 악, 그림이면 그림, 글씨면 글씨, 문장이면 문장 이 모두를 두루 섭렵했던 한량 조용배.

그는 타고난 끼를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하다 기어코 한량이라는 이름으로 승화시키면서 91년 예순셋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를 가리켜 고성사람들뿐만 아니라 전국의 풍류객들은 이렇게 이름 지어 놓았다.

‘조한량’ 이라고….

여늬 사람들 같으면 그가 세상을 향해 풀어놓았던 그 출중한 예인기질을
한 가지만 익혀도 감탄을 자아냈을 법 한데 ‘文書畵樂舞’를 모두 겸비했던, 금산 조용배.

그래서 그를 가리켜 한량 9단이라는데 아무런 주저 없이 뜻을 같이하는 것이다.

허리춤에 호리병과 표주박을 메달고 달랑 단소하나 챙기면 전국방방 곡곡을
내집처럼 누빌 수 있었던 이 시대의 마지막 풍류객 조용배.

그의 예술의 세계는 고성보다 부산 동래와 예향의 도시 광주에서 더 극찬했다.

부산 동래에서 생활하는 한 동안은 동래가 술렁거렸다고 한다.

예술인이 모이는 곳이면 금산은 항상 그 모임의 중심이었다고 한다. 많은 예술인들이
그의 춤이며, , 서화를 감상하기 위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금산의 예술세계는 더욱 깊어지고, 높아졌으며, 무르익어 간 것이다.

특히 예향의 도시라고 자부하는 전남 광주는
타지인의 재능을 그리 쉽게 인정하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금산의 춤과 서예, 서화 앞에서는 이들조차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광주 금남로 다방에서 서예전을 가진 뒤 전남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경남 고성산 금산 조용배선생의 글씨는 전남지방에서 보는 문체와는 다른 독특한 개성과 힘이 있다. 특히 그의 서화중에서도 매화는 일품이다’고.

당시 ‘경상도 보리문디’에 대해서는 썩 좋잖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었던데 비해
광주의 예인들은 금산에게만은 절대적인 호의를 베풀며, 그의 실력을 높이 평가했다.

예순셋의 생을 살다 가면서도 결코 단 하루도 평범한 날을 보내지 않았던 조용배.

그는 1929 9월 거류면 용산리 157번지에 태어났다.

이 때부터 ‘조선의 한량 조용배’의 신화가 싹트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그는 동네 메구패를 따라다니면서 신명을 배웠다.

서당에 다닐 때는 훈장이 없는 때를 틈타 솥뚜껑, 밥그릇, 숟가락으로 농악장단을 맞추며
일찌감치 예인기질을 발산시켰다.

청소년기를 접어들면서 부산동래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한국전쟁의 발발로
남해 해관암으로 입산, 잠적해 버린다.

이 입산이 그를 ‘한량’이라는 이름으로 이끌어 내는데 큰 전환점이 된다.

그는 이곳에서 입산수도를 정진하면서 글씨와 그림, 문장을 익히면서 풍류의 기본이 되는 학문에 전념한다.

이후 외아들의 입산을 안타까워하며 하산을 종용하던 부모님에 이끌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이락정(二樂亭)’이라는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읽고 깨우친다.

그러나 그의 가슴 밑바닥에 깔려 있는 풍류의 기질이 꿈틀대며 그를 다시 절 생활로 이끈다.
그 길로 강원도 낙산사, 통도사, 해인사를 거쳐 통영 안정사를 오가며
6
년간의 승려생활이 시작된다.

해관암부터 시작된 그의 승려생활 10년 동안
서예와 사군자, 승무, 장구, , 아쟁, 대금 등을 틈틈이 연마한다.

이런 금산이 잠시 마음을 다잡고 고향땅에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있었으니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움과 아내에 대한 민망함이었다.

이때 그의 나이 31.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월치에 3만평의 농장을 구입, 과수원 농사를 지으며
제법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이도 잠시, 고성읍 남산경로당에서는
지금은 작고하신 김창후, 홍성락, 천세봉옹 등이 모여 고성오광대 명맥을 잇고자
고증과 발굴에 힘쓰는 한편 후진양성에 혼을 기울이고 있던 때다.

이를 놓칠 리 없는 금산은 한달음에 달려와 이들로부터 고성오광대 전수에 몰두한다.

그렇잖아도 잘 타는 마른 장작에 기름까지 껴얹은 양 그의 춤은 마치 신들린듯한 모습으로
승화되기 시작했다.

지금의 고성오광대가 우리나라 민속예술계의 한 산맥으로 우뚝 솟게 한 데는
금산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생전에 그는 “춤사위는 혼이 들어 있어야 하고
춤을 추는 사람이 무아지경에 들어야 보는 사람도 같이 춤에 빠져들게 되는 거야.

“요즘 젊은 놈들은 재주는 있는데 인간이 안되고, 춤은 잘 추는데 멋이 없어.
한마디로 풍류가 뭔지 모르는 게지.”라며 제자들에게 호통을 치며
어깨짓 하나에도, 몸짓 하나에도 혼을 불어넣기를 강조했던 금산.

그 자신이 문둥북춤을 추어 보이면 천형을 안고 사는
문둥이의 골수에 맺힌 원한과 처절한 한이
보는 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듯했다.

고성이 낳은 예술인 조용배의 춤사위를 닮으려 고성오광대 전수생들은 그의 뒤를 이어가고 있다.

원기사보기 : http://goseong.newsk.com/bbs/bbs.asp?exe=view&group_name=403&section=14&category=1&idx_num=1807&page=9&search_category=&search_word=&order_c=bd_idx_num&order_da=desc

한국의 멋진 한량閑良 조용배趙鏞培와 고성오광대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llsteel&logNo=220114337248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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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후(金昌後)

1887(고종 24)∼1965.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 固城五廣大〉의 예능보유자.
경상남도 고성에서 태어나 고성읍 동외동에서 살았다.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였고 이군찬에게서 〈고성오광대〉를 배웠고,
정화경·이윤화·이태준·김성범에게서 배워 원양반역을 잘하였다.
1964년 12월에 〈고성오광대〉 원양반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후계자로 배갑문(裵甲文)·이윤수(李允洙)·최규칠(崔奎七)·조용배(趙容培)·최인순(崔仁淳)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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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19일 고성오광대 이윤석예능보유자의 덧배기춤(2008 박경랑의 춤 백의백무공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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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오광대공연중 박경랑 리허설장면  구음 정영만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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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깔스러운 춤사위로 많은 팬을 몰고 다니는 춤꾼 박경랑이 12일 국립부산국악원 무대를 찾는다.

지난해 11월 열린 국립부산국악원 공연과 올해 4월 열린 서울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모두 매진시키며 열광적인 호응을 얻은 그녀는 국내 춤판에선 유명한 인물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 오광대의 초대 예능 보유자인 고 김창후 선생의 외증손녀로 말을 배우기도 전에 할아버지의 손짓, 발짓을 따라 하며 춤부터 익혔다고 한다. 그녀가 추는 영남교방청춤은 따라올 이가 없다고 할 정도로 특유의 몸짓을 뽐낸다.

12일 국립국악원 '동고동락' 공연
인간문화재 김창후 선생 외증손녀
말 배우기 전 고성오광대 춤 배워


"기생들의 춤인 교방청춤은 우리 춤의 기본이죠. 기생 문화가 조선 이후에 음주문화와 결합하며 퇴폐적인 이미지로 변했는데, 원래 교방청은 예인 육성 관청으로 우리의 춤 문화가 교방에서 많이 다듬어졌어요."

영남지방 기생들의 춤인 교방청춤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사실 그녀는 대학에서 발레를 전공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대학까지 발레를 했지만, 결혼 후 첫 아이를 낳고 결국, 어린 시절 몸으로 익힌 전통춤으로 자연스럽게 돌아왔다. 아이를 등에 업고 동래 권번의 마지막 춤 선생이었던 강옥남 선생에게 교방청춤을 배웠다.

"30대 초반 아이를 업고 교방청춤을 배우러 다니고 연습하며 주변에서 독하다는 소리 많이 들었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춰오던 춤을 꼭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그 이후 50대가 된 지금도 그녀는 '지독한 연습 벌레'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하루 대부분 시간을 연습실에서 춤을 추는 것으로 보낸다. 그런 '지독함'이 오늘날의 박경랑을 만든 셈이다.



경남 고성 출신으로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지만 졸업 이후 줄곧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제2의 고향이 된 부산 무대는 그녀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이번 공연 역시 그녀의 특별한 마음을 전하는 몸짓들이 준비돼 있다. 황진이의 시조를 현대적 관점으로 풀어낸 작품과 오랜 숙련의 깊이가 없으면 소화해낼 수 없다는 교방소반춤을 출 예정이다. 자신의 대표춤인 영남교방청춤은 오랜 세월 동고동락해 왔던 영남교방청보존회 회원 50명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부산팬들에게 특별한 무대를 선물하고 싶었던 그녀는 자신의 몸짓 외에도 뛰어난 예인들을 이번 판에 불러 모았다. 지난 10월 전국의 최고 소리꾼 10명을 모아 펼친 판소리 명창 서바이벌에서 최종 우승한 왕기철 명창을 비롯해 젊은 연희 집단 '더 광대', 국립창극단의 서정금, 김미진 명창, 해금 연주자 최태웅, 퓨전 음악 연주자 류아름 등이 출연한다. ▶2012 박경랑의 춤 '동고동락(同苦同樂)=12일 오후 7시 30분 국립부산국악원 연악당. 070-7759-0301.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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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북춤 2

사진/춤사진 2012. 11. 22. 12:37




고성오광대 문둥춤과장중 박경랑이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작품
                                                사진 정 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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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북춤

사진/춤사진 2012. 11. 21. 12:50




                                고성오광대 문둥춤과장중 박경랑이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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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2 17 박경랑의 춤  온고지신 국립국악원 우면당

구음 유금선 정영만  장구반주   최우칠     영상   서재준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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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후 프로필

           사진  
         출생년도  1887년 (고종 24)∼1965년 (경남 고성)
       전공 / 분야  한국무용, 고성오광대
       무형문화재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  예능보유자 (1964년)

       활동 경력  후계자로 배갑문(裵甲文)‧이윤수(李允洙)‧최규칠(崔奎七)‧조용배(趙容培)‧    최인순(崔仁淳) 등이 있다
         특기 사항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였고 이군찬에게서 〈고성오광대〉를 배웠고, 정화경‧
 
이윤화‧이태준‧김성범에게서 배워 원양반역을 잘하였다.

         홈페이지  http://gyobang.tistory.com/entry/박경랑의-외증조부-故김창후옹
           기타  한국무용가 운파 박경랑의 외증조부이다.
Posted by 古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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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제 7호고성오광대 예능 보유자인 이 윤석선생의 덧배기춤
타악기만으로 연주되며 주로 굿거리장단이고, 춤은 즉흥적인 덧배기춤이다.
2008년 7월19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박경랑의 백의백무공연중      영상    서재준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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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춤사위 춤을 의식 안 하니 진짜 춤이 나오더라!

고성 오광대 초대 무형문화재 고 김창후 선생의 외증손녀
말 배우기 전부터 춤 보고 자라 대학 때는 발레 전공


춤꾼 박경랑(50)씨의 춤사위를 처음 본 것은 2년 전 서울시 중구 필동 남산 자락에 자리 잡은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열린 한 공연에서였다. 박씨는 영남지방 기생의 춤, 영남교방청(敎坊廳)춤을 췄다. 느린 장구 장단에 맞춰 상체가 미묘하게 흔들리다가도 장구의 장단이 점차 빨라지면 박씨의 발놀림도 장단을 뒤따랐다. 춤을 추는 박씨의 손끝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신명이 묻어나왔다. 쉴 새 없이 달리던 장구 장단이 갑자기 멎자 박씨가 무대 한편으로 다가갔다.

무대의 왼편엔 도포를 입은 한 시인이 자신 앞에 놓인 화선지에 시를 쓰며 풍류를 읊고 있었다. 박씨는 허리에 둘러맸던 치맛자락을 넓게 펼쳐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시인 앞 화선지 위에 놓았다. 시인은 먹을 듬뿍 묻힌 붓을 들어 박씨의 파란색 비단 치맛자락 위에 시 한 줄을 적었다. 오래전 교방에서의 풍류도를 그대로 무대 위에 옮긴 공연이었다. 공연을 본 한 관객은 “굉장히 여성적인 춤이었다”고 말했고, 한국을 관광 중이던 한 미국인은 “섹시한 무대였다”고 말했다.

지난 5월 2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박경랑 영남춤문화예술연구소’ 연습실에서 중견 춤꾼 박경랑씨를 만났다. 박씨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부산과 경남 김해에서 무용 강의를 하고 서울에 올라온 직후였다. 체중이 50㎏도 되지 않는 작은 체구의 그는 국악인 특유의 거친 목소리로 “날도 더운데 여기(연습실)에선 사진만 찍고 밖에 나가서 시원한 맥주나 한잔 하자”고 말했다.


교방청춤이 우리 춤의 기본

박씨는 국내 무용계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경남 고성 출신의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 오광대의 초대 예능 보유자인 고 김창후 선생의 외증손녀다. 박씨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1호 김수악류 진주교방굿거리 춤 이수자이자 고성오광대(固城五廣大) 전수자이기도 하다.

“제가 언제부터 춤을 췄는지는 별로 의미가 없어요. 어릴 적에 외가에 놀러갈 때마다 외증조할아버지가 하시는 손짓, 발짓을 자연스럽게 따라하면서 움직임을 익힌 것이니까요. 자라면서 그냥 (춤을) 추고 싶,었,어요.”

박씨는 어릴 적 외증조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박씨는 “할아버지는 지금은 음식점이 된 부산의 동래권번(券番·조선시대에 기생을 총괄하던 기생청의 후신)에 자주 드나드시면서 풍류를 익히셨다”며 “할아버지의 예인으로서의 끼가 저한테 남겨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외증조할아버지를 따라 박씨도 어릴 적부터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즐겼다. 동네에 약장수가 와서 창도 하고 춤도 추고 묘기도 부릴 때면 넋을 잃고 바라봤다. “저희 아버지 어머니는 춤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시고 우리 5남매 가운데 춤을 추는 사람도 저 하나뿐이에요.”

박씨가 추는 영남교방청춤은 김창후 선생과 그의 제자 고 조용배 선생을 통해 전수됐다. 교,방청춤은 교방청(고려·조선 시대 기생들을 중심으로 춤과 노래를 관장하던 기관)이 폐지된 후 지방으로 흩어졌던 관기들이 권번을 중심으로 췄다. 활달한 상체 동작과 섬세한 발놀림이 특징이다. 박씨는 이어서 “기생들의 춤인 교방청춤은 우리 춤의 기본”이라며 “기생 문화가 조선 이후에 음주 문화와 결합하며 퇴폐적인 이미지로 변했는데 원래 교방청은 예인 육성 관청으로 우리의 춤 문화는 교방에서 많이 가다듬어졌다”고 말했다.


진정한 춤은 뭘까

지금은 영남지방의 춤으로 유명한 박씨지만 대학에선 발레를 공부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발레를 시작해 세종대에서 발레를 전공했다. 하지만 무릎과 팔 관절이 발레를 하기엔 적합한 체격이 아니었다. “제 아버지도 제가 평생 발레를 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힘든 무용은 그만하고 결혼해서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길 바라셨죠.”

박씨의 생각은 달랐다. 29세에 첫아이를 낳고 한국 전통춤에 몰입했다. 아이를 등에 업고 다니며 동래권번의 마지막 춤 선생이었던 강옥남 선생에게서 교방청춤을 배웠다. 주변에서 “독하다”는 소리도 들었다. 박씨는 “그땐 ‘지금이 아니면 영영 춤을 출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제가 어릴 적부터 춰오던 춤을 완성하고 싶기도 했다”고 말했다.

오로지 춤에만 매달려 지금까지 달려온 그에게도 슬럼프가 있었을지 궁금했다. “지금까지 춤을 그만둔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슬럼프는 간혹 찾아왔습니다. 특히 ‘내가 지금 왜 춤을 추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지난해 말 박경랑씨의 춤 인생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50세를 넘긴 해부터 체력이 예전과 같지 않았고 ‘지금 내가 추는 게 진정한 춤일까’ 의문도 들었다. 6개월 정도 이어진 정신적 슬럼프였다. 그런 박씨에게 지난 3월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일본의 소아마비 환자, 정신지체인 등 몸이 조금 불편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극단 타이핸에서 갑작스럽게 연락이 왔어요.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한국의 근대무용가 최승희 역을 맡아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재일 동포 2세인 김말리 극단 타이핸 대표가 조선의 기생이었던 자신의 어머니와 재야의 독립운동가 함웅도의 사랑 이야기를 모티프로 만든 창작극 ‘함웅도 잠복기’란 작품이었다.


“이제야 춤을 알겠다”



“작품 속에 팔다리가 불편한 소아마비 무용수들이 자신의 느낌만으로 살풀이를 추는 장면이 있어요. 그런데 그들의 움직임이 사지 멀쩡한 제가 추는 춤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곤 충격을 받았죠. 그때까지 장애인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표현하지 못하는 걸 그들은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거다’란 생각이 들었죠.”

박씨는 이 극단과의 공연을 준비하며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박씨는 “서로 표현하는 형태미는 달라도 ‘공감’을 통해 같은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다”며 “이 작품에 무용의 요소를 좀 더 가미해 오는 9월 공연으로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이른 박경랑씨는 새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박씨는 “시간 날 때마다 새로 나온 국악과 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을 들으면서 작품을 생각한다”며 “할 줄 아는 게 춤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춤은 가장 쉬운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박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춤을 추기 시작한 지는 40년이 넘었고 한국무용만 추기 시작한 지는 20년이 넘었지만 이제야 춤추는 느낌을 조금 알겠어요.”

40여년간 춤을 춰온 그에게서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나왔다. 매일 8시간 정도 다른 사람들에게 한국무용을 가르치고 남는 시간에 틈틈이 자신의 춤을 춰온 ‘연습벌레’로 알려진 그였다. 박씨는 “그전까진 여전히 내 몸동작과 음악을 의식하는 춤을 추고 있었다”며 “2년 전부터야 내 몸이 내 맘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젠 음악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춤이 나오고 음악이 멈추면 자연스럽게 몸이 멈춰 “춤출 맛 난다”는 박씨는 “제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했다.
                                                                                                                 2011년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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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오광대

국악 2012. 6. 21. 14:11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이 놀이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구전자료와 학자들의 조사결과를 종합하면, 조선 말기까지 고성읍에는 관속들이 놀던 가면극이 있었고, 1910년경에 남촌파(南村派) 한량들이 통영오광대를 보고 오광대놀이를 하였고, 그 뒤 창원오광대(昌原五廣大)의 영향을 받으면서 오늘날과 같은 탈놀이로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연희자는 서민층에 속하는 주민 가운데 음악과 춤에 능하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고, 그 중에서 연장자가 주관을 하였다. 이들 연희자가 주동이 되어 일심계(一心契)를 조직하여 음력 정초에 고성 몰디 뒷산 도독골 잔디밭에서 연습을 하는 한편, 지신밟기를 하여 경비를 염출해서 음력 정월 보름날 저녁에 장터 또는 객사 마당에서 놀이를 하였다.

오광대가 인기가 있자 추석에도 논 적이 있었고, 일심계의 봄철놀이를 할 때도 밤내 자갈밭에서 놀기도 하였다. 무대는 특별한 장치가 없이 땅에서 그대로 연희하며, 악사는 놀이마당 가장자리에 앉고 관객은 그 주위를 원형으로 둘러싸고 구경한다. 조명은 놀이마당 가운데 두서너 곳에 장작불을 놓아서 밝힌다.

놀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마당은 ‘중춤’이다. 중과 각시가 굿거리장단에 맞추어서 춤을 춘다. 중이 각시를 유혹하고 각시는 마주보고 그에 응하는 요염한 춤을 춘다. 둘째마당은 ‘문둥이’로, 오그라진 손으로 소고(小鼓)를 들고 등장하여 벌벌 떨면서 문둥이의 흉내를 내며 춤을 춘다.

셋째마당은 ‘오광대’로 양반이 위엄을 부리고 마부인 말뚝이에게 인사를 강요하지만 말뚝이는 반항한다. 양반이 말뚝이를 윽박지르면 슬그머니 말을 돌려서 변명하고, 양반은 그것을 듣고 속아서 더욱 바보스럽게 된다. 다른 지방 오광대의 양반마당에 해당하는 것이다.

넷째마당은 ‘비비’이다. 비비는 무엇이든지 잘 잡아먹는 상상의 동물로 영노라고도 한다. 고성오광대에서는 호드기와 비슷한 것을 불어 ‘비―비―’하고 소리를 내며 양반을 혼내기 때문에 ‘비비’ 혹은 ‘비비촐촐이’라고 한다.

이 마당은 다른 지방 오광대의 영노마당에 해당한다. 비비가 양반을 만나 무엇이든지 잘 잡아먹는다고 위협한다. 양반은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양반이라고 하자 비비가 양반은 더 잘 잡아먹는다고 한다. 양반이 궁여지책으로 너의 할아버지라고 하니 비비는 잡아먹지 못한 채 욕설만 하고 서로 어울려 덧뵈기춤을 추고 퇴장한다.

다섯째마당은 ‘제밀주’이다. 본처인 할미가 등장하여 집을 나간 영감을 찾아다니고, 영감은 제밀주(혹은 제밀지)라는 첩을 데리고 나타난다. 제밀주가 득남하고 할미가 그 아이를 어르다가 떨어뜨려 죽여서 제밀주에게 맞아죽고 할미의 상여가 출상한다. 이것은 다른 지방 오광대의 영감·할미마당에 해당한다.

탈은 조선 후기에는 나무로 만들어 썼다고 하나 광복 이후에는 마분지를 짓이겨서 만들어 쓰다가 다시 일부 가면을 나무로 만들기도 했는데, 다른 지방에 비해 극채색(極彩色)을 많이 쓴다.

현재 사용하는 탈은 문둥이·말뚝이·원양반·청제양반·적제양반·백제양반·흑제양반·홍백양반·종가도령·비비·비비양반·중·각시·영감·할미·제밀주·마당쇠 등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쓰고, 봉사·상주·상두꾼은 탈을 쓰지 않는다. 현재 사용하는 나무로 만든 탈은 마분지로 만든 것보다 사실적으로 변모하였다.

춤의 반주음악으로는 주로 굿거리장단이 쓰이고, 반주악기는 원래 피리·젓대·해금·가야금·거문고·장구·북·꽹과리 등이었다고 하나 근년에는 꽹과리·징·장구·북 등 농악기를 사용하고 있다.

춤은 ‘덧베기춤’이라고 부르는데, 배역에 따라서 그 인물의 성격이 춤으로 표현되어 종류가 나눠진다. 즉, 말뚝이 춤은 동작이 크고 도약이 심하고 베김새가 힘찬 건무(健舞)이고, 양반춤은 유연한 춤사위를 보인다.

문둥이춤은 문둥이가 파리 잡아먹는 모습 등 그 생태를 익살스럽게 표현한다. 제밀주와 소무의 춤은 남성이 추지만 맵시를 부리는 여성무를 추고, 할미춤은 팔을 크게 벌리고 엉덩이를 심하게 흔들며 외설적인 동작으로 익살스럽게 춘다.

극의 줄거리는 항상 같지만 대사는 엄격히 고정된 것이 아니고 연희자의 흥취와 관객의 반응에 따라서 놀이할 때마다 첨삭되는데, 연희자였던 천세봉(千世鳳)의 필사본 <오광대흥유순서급자담 五廣大興遊順序及諮談>과 그것을 옮겨쓴 것으로 보이는 홍성락(洪成洛)의 같은 이름의 필사본에는 놀이마당의 순서가 위와 같이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는 첫째마당 문둥북춤, 둘째마당 오광대, 셋째마당 비비, 넷째마당 중춤, 다섯째마당 제밀주로 연희하고 있다.

노래는 극의 줄거리와 직접 관계가 없는 내용의 시조·잡가·민요 등을 극을 전개하면서 필요에 따라 부른다. 노는 순서도 고정되지 않아 놀이할 때에 따라서 바뀌기도 한다.

1930년경 일제의 금지로 중단되었다가 광복 후 재연하여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69년 사단법인 고성오광대연수회를 만들었고, 1973년 고성오광대 전수회관을 마련하였다.

역대 예능보유자로는 김창후(金昌後, 양반)·천세봉(가면제작)·배갑문(裵甲文, 원양반)·홍익수(洪益洙 또는 成洛, 문둥이)·남상국(南相國, 장구)·최응두(崔應斗, 연출지도) 등이 있었다.

 

<기본>: 청노새 -> 큰걸음 -> 잔걸음 -> 뒤로 큰걸음 -> 뒤로 잔걸음 -> 일차뛰기 -> 이쁜짓 -> 잔걸음(어깨 흔들며 걷기) -> 이차뛰기(가위뛰기) -> 도포말기 -> 삼차뛰기 -> 사선 -> 찍기 -> 베기기 -> 달맞이 -> 큰걸음 -> 변형 잔걸음 -> 뛰어 앉기 -> 서서 베기기 -> 사선 -> 엉덩이치기 -> 변형 큰걸음 -> 변형 잔걸음 -> 앉아 베기기 -> 변형 잔걸음 -> 덧베기

조선시대 정월 대보름에 놀았으며 뒤에는 봄, 가을 놀이로 놀았다

제1과장에서는 문둥이가 북춤을 구성지게 추고

제2과장에서는 양반이 춤을 추는데 하인 말뚝이가 양반을 조롱하고

제3과장에서는 괴물 비비가 양반을 잡아먹고

제4과장에서는 중이 선녀를 희롱하고

제5과장에서는 큰어미가 작은 어미(첩)와 영감을 두고 싸우다가 죽게 되니 상여가 나간다.

탈과 춤사위 연기 놀이구성이 소박하여 옛 경상도 탈놀음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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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고종 24)∼196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固城五廣大)〉의 예능보유자. 경상남도 고성에서 태어나 고성읍 동외동에서 살았다.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였고 이군찬에게서 〈고성오광대〉를 배웠고, 정화경이윤화이태준김성범에게서 배워 원양반역을 잘하였다.

1964년 12월에 〈고성오광대〉 원양반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후계자로 배갑문(裵甲文)이윤수(李允洙)최규칠(崔奎七)조용배(趙容培)최인순(崔仁淳) 등이 있다.

 

출처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조용배와 천세봉의 전설

 

하지만 고성엔 희한하게도 어느 시절 어느 난국에도 언제나 ‘춤에 환장한 영감’ 한둘이 반드시 있었다. 그들이 오광대 춤을 끈질기게 이어갔다. 권번 춤선생이던 김창후(1887~1965), 홍성락(1887~1970), 천세봉(1892~1967)이 모두 타계하자 이어서 전세대보다 더욱 탁월한 춤꾼 조용배(1929~91)와 허종목(1930~95)이 등장했다. 이윤석은 바로 이들에게서 춤을 배웠다. 이윤석뿐 아니라 현재 오광대 춤꾼 모두 두 사람의 문하생이다. 고성읍 동외리 ‘고성 오광대 보존회’ 강당엔 그 어른들의 노랗게 낡은 사진이 액틀에 담겨 드높이 걸려 있다.

 

조용배와 허종목의 행적은 이미 전설이 됐다. 고성 사람들은 군수 이름은 몰라도 애어른 없이 등 뒤에 피리(단소) 꽂고 초서와 매난국죽에 능란한 붓 한 자루 괴춤에 차고 풀 먹인 도포 입고 논길을 휘적휘적 걸어가던 조한량(조용배의 별명)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조한량은 한때 승려생활을 하다 고성 인근에 은거하던 석암 선생에게 한학을 배우던 중 오광대에 입문했고, 허종목 또한 마산상고 재학시절 기방 춤선생에게서 굿거리춤, 지성승무, 양반춤, 학춤을 고루 배운 후 고향에 돌아와 오광대에 입문한다. 그들은 매일 30리 길을 다니며 김창후에게서 양반춤을, 천세봉에게서는 말뚝이와 승무를, 홍성락에게서는 가면제작을 배웠다.

 

신동아 2005년 8월호 [이사람의 삶] 이윤석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발췌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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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랑의 춤 '백의백무'>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한국 영남춤 문화예술연구소 박경랑 대표의 '2008 박경랑의 춤 백의백무'가 19일 오후 7시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 무대에 오른다.

박경랑은 징춤 '바람꽃'과 중요 무형문화재 고성오광대놀이를 재구성한 문둥북춤, 기생들에게 가르쳤던 영남 교방청춤, 장녹수 이야기를 풀어낸 살풀이춤 등을 춘다.

화려한 무대장치와 의상, 장신구 대신 흰옷이 보여주는 정갈함과 한으로 무대를 채운다.

고성오광대 예능보유자인 이윤석과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 하용부가 특별출연하고,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최종민 교수가 해설을 맡았다.

3만-5만원. ☎ 02-334-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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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랑 춤-크로스오버 국악 '인연'의 무대
전통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 대금 이생강·가야금 백인영
- 기타·드럼 연주자들과 협연
- 오늘 경남 진주 문화예술회관

우리 시대 명인들이 펼치는 '크로스오버' 국악과 박경랑 영남춤문화예술연구소 대표의 춤이 '인연'의 무대에서 만난다.

영남춤문화예술연구소는 16일 오후 7시 경남 진주 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2012 박경랑의 춤 인연(因緣)'이라는 공연을 연다. 이 공연은 앞서 지난해 11월 국립부산국악원, 지난달 서울 세종문화회관 공연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국내외 팬들의 호평을 받았다.

박경랑은 자신의 대표 춤인 영남교방청춤과 여성 무용가로서는 유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고성오광대 제1과장인 문둥북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무대에 올린다. 남해안 별신굿 예능보유자 정영만 선생과 동래학춤 구음예능보유자인 유금선 선생의 춤이 어우러져 요즘 보기 드문 무대를 선사한다.

이번 공연은 수십 년 내공의 명인들이 전통의 참맛을 느끼도록 현대적 감각으로 잘 버무려 고루하고 지겹다는 지금까지의 국악 공연에 관한 편견을 깨는 크로스오버 국악 무대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번 공연에 출연하는 대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 이생강 선생은 기타리스트 김광석 씨와 호흡을 맞춘다.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미국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 '즉흥 연주의 달인'으로 불리는 가야금의 백인영 선생은 젊은 층에 널리 알려진 드럼 연주자 오흥선 씨와 협연한다. 여기에 경남 고성 출신의 젊은 타악기 연주자 고석진의 열정적인 모듬 북 연주도 곁들여진다.

사회는 최종민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가 맡아 국악에 관한 이해를 높여줄 계획이다. R석 7만 원, S석 5만 원, A석 3만 원. 010-7314-0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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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박경랑의 춤 因緣

현대의 관점에서 본 전통의 재해석 그리고 새로운 탄생

 

-이시대 명인들이 펼치는 크로스 오브국악과 박경랑의 춤이 因緣의 무대에서 만난다-

 

한국무용가 박경랑은 인연(因緣)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가지고 2012 박경랑의 춤이란 제목으로 40여년 춤인생중 짧게는 십여년 길게는 이삼십년씩 교류를 가져온 여러 국악인들과 스승 故김수악선생의 체취가 배인 예향 경남 진주에서 2012년 5월 16일 오후 7시 경상남도 문화예술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

작년 11월 국립부산국악원 지난4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공연에서 전석매진을 기록하며 내국인관객 뿐 아니라 수많은 외국인팬들을 양산해낸 공연이기도하다

이번공연의 특징은 수십년 내공의 명인들이 전통의 참맛을 느끼도록 하면서 현대적인 감각으로 잘융합시켜 고루하고 지겹다는 지금까지의 국악공연에 관한 편견을 완전히 무너뜨린 크로스오브 국악무대를 표현한다는데 있다

대금산조 중요무형문화재 이생강 선생은 기타리스트인 김광석씨와 호흡을 맞추고

뉴욕링컨센터에서 미국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즉흥 연주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백인영선생은 거문고와 아쟁으로 이미 젊은층에 널리 알려진 드러머인 오흥선씨와 환상적인 협연을 한다

여기에 경남 고성출신 젊은 타악연주자 고석진의 열정적인 모듬북 연주도 같이하며

특히 박경랑은 자신의 대표춤인 영남교방청춤과 여성무용가로서는 유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고성오광대 제1과장인 문둥북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무대에 올린다

그리고 남해안별신굿 예능보유자 정영만선생과 동래학춤 구음예능보유자인 유금선선생의

남녀구음과 춤이 어우러지는 장면은 요즈음 보기드문 무대가 될 것이다

현장서예는 신구 윤효석선생이 민요에는 신정혜 김문희 피리 천성대 25현가야금은 김민영이 출연하며 18명의 박경랑전통무용단의 군무 또한 볼거리가 될 것이다

사회에는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최종민교수가 맡았다

티켓가격은 R석 7만원 S석 5만원 A석 3만원

공연문의 010 7314 0260/010 2050 7077/011 9924 9561/011 9523 4604/

02 730 0301

공연기획 코락 (www.kora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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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 - 溫故知新(온고지신)

장소 : 국립국악원 우면당
일시 : 2012년 2월 17일 (금) 오후 7시 30분
문의 : 011-9924-9561, 011-9523-4604


김애정류 교방수건춤, 조용배류 교방 소고춤과 더불어 김창후, 조용배의 맥을 이으며 박경랑에 의해 세상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영남교방청춤의 세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는 공연입니다.

이번무대는 동래학춤의 구음 유금선 선생님, 남해안 별신굿의 정영만 선생님, 고성오광대의 이윤석 선생님, 밀양북춤의 하용부선생님, 동부민요의 박수관선생님과 함께 영남에 면면히 흐르는 예술혼이 올곧게 투영되는 두 번 다시 있기 어려울만큼 진귀한 무한매력의 무대가 관객에게 다가갑니다.

공연해설을 맡은 최종민 교수님의 수려하면서도 담백한 진행으로 관객의 공연이해도 및 무대와 관객과의 호흡마저 예사무대 사뭇 다를 것입니다.

타고난 춤꾼이자 또한 전통의 맥이 길러낸 춤꾼 박경랑이 옛 '교방청'의 춤가락을 흥과 멋의 감각으로 현재적 시점에서 재현해내는 걸출의 무대가 될 것입니다. 이번 공연은 새로운 연출시도와 진행으로 또 다시 박경랑을 통한, 박경랑에 의한 전통의 거방진 한판을 기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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