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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풀이'에 해당되는 글 29건

  1. 2014.12.07 '백재화'의 춤 - 박경랑류 살풀이
  2. 2014.10.13 故 김수악 선생의 살풀이춤 (1986년 국립극장 대극장)
  3. 2014.09.19 박경랑류 영남수건춤 [Korean Classical Dance] KyungRang Park's YeongNam GyoBang SuGun Dance
  4. 2014.07.28 안숙선 - 살풀이 구음
  5. 2014.05.04 박경랑의 스승 동래 권번의 마지막 춤 선생, 강옥남
  6. 2014.04.16 박선영의 박경랑류 살풀이춤
  7. 2013.11.26 2012 박경랑의 춤중 박경랑류 살풀이
  8. 2013.09.05 박경랑류 즉흥살풀이(2009년 하얀나비 故김수악 선생님 추모공연)
  9. 2013.06.08 박경랑 싱가폴공연(살풀이)
  10. 2013.04.22 박경랑과 더늠 앙상블, 싱가포르 에스플러네이드 초청공연에 나선다
  11. 2013.03.08 박경랑류 살풀이춤 동영상
  12. 2013.01.21 부산수영전통예술대학 수강 모집 안내
  13. 2012.12.24 [차길진의 영혼수첩] 아사히야마 음악제(3)
  14. 2012.12.20 雲破 박경랑 영남교방청춤 전수관 수업안내
  15. 2012.12.16 2002 명인명창 - 살풀이 (이매방)
  16. 2012.12.12 고성오광대공연중 박경랑 리허설장면
  17. 2012.10.26 서울 인연(2)
  18. 2012.08.21 영남교방청춤의 복식
  19. 2012.08.14 조각가 김학제교수와 인터뷰. 재즈에 살풀이를 춰봐
  20. 2012.07.11 7월13일 국립국악원 우면당 국악공연 - 2012 박선영의 춤 '本'
  21. 2012.07.11 2006 남해안 별신굿 (통영 예능 전수관)
  22. 2012.05.31 아라재 콜렉션 (조선서화「보묵(寶墨」)전(2008년)
  23. 2012.05.29 <부산 춤 텃밭을 일군 사람들-10> 전통춤 김진홍
  24. 2012.05.18 박경랑 그의 춤을 보고 와서(2002년 국립극장)
  25. 2012.04.21 한국 무용의 비너스, 박 경랑

Posted by 古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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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TV팟에서 보기              자세히 알기 --> 故 김수악 명인



2012/05/26 - 진주검무,진주교방굿거리춤의 예능보유자 故 김수악 (金壽岳) 선생님
Posted by 古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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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랑의 영남 수건춤
2008 07 19 국립국악원 우면당 '백의백무' 공연

구음 박종호                        영상 서재준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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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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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부산 Vol 63. 2009. 9/10. 49-51쪽 배 학수(경성대 교수/ 철학) --> 블로그보기

“뭣보다 교방이라는 담장, 그 담장이 가두기엔, 너무 큰 예인이었다"(KBS 황진이). 드라마에서는 예인藝人이라고 미화된 황진이 같은 기생들은 조선 시대 궁중이나 관청의 연향宴享에서 춤과 노래를 공연했다. 이들을 관리하는 정부 기관이 교방敎坊인데, 교방은 을사조약으로 폐지되었고, 그 후 교방의 기생들은 새로 생겨난 민간 조직인 기생 조합, 권번券番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권번은 서울, 평양, 부산, 대구, 진주 등 전국 각처에 설립되어 동기童妓들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치고 화대花代를 관리했다.

강 옥남(姜玉南)은 동래 권번의 마지막 춤 선생이다. 그에게는 남기고 기록해야 할 많은 이야기가 있을 터인데 언론에 한번도 대담 기사가 실린 적이 없었다. 중간에 사람을 넣어 여러 번 부탁하여 마침내 그녀를 2009년 6월 15일 부산 서구의 새진주 식당에서 만났다.


어린 시절에 대해 얘기해 달라
.
1938년 일본 나고야 태생이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돌아가시고 대구 출신인 어머니는 자식 셋(오빠, 언니, 나)을 데리고 해방되자 귀국했다. 돈 3만원을 가지고 왔는데 환전하지 못하였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고향인 삼천포로 갔다가 부산으로 나왔다. 부산에서 부민 국민 학교를 다녔고, 가정 형편상 졸업후 학업을 중단하다. 그 당시는 딸은 공부시키지 않았다. 오빠는 동아대학을 졸업했다. 어머니는 국제 시장에서 장사를 했다.

어떻게 무용을 배우게 되었나?

16살쯤 한 순섭(여자. 서울에서 무용 학원을 하고 있다)을 권 명화 학원에서 만났다. 한 순섭의 아버지가 잘 살아서 학원을 차렸는데 거기에 이 매방을 초청하여 춤을 가르치게 되었다. 권 명화 학원에서 딱 한달을 배웠는데, 이건 무용이 아닌 것 같아 한 순섭의 권유를 따라 이 매방 학원으로 옮겼다. 이 매방, 권 명화 두 사람 모두 그 당시 부산에서 학원을 운영했다. 권 명화도 이 매방에게서 배웠다.

이 매방은 어떻게 지냈는가?

이 매방은 학원이 잘 안되어 양춤(스포츠 댄스)추는 사람에게 낮에 학원을 빌려 주었다. 이 당시에는 이렇게 안하면 운영이 안 되었다.

이 매방은 김 진홍, 조 광, 전 무영(스페인춤, 지금 양정에 있다) 등과 함께 하야리야 부대에서 가서 공연을 했다. 그리고 대영 극장에서 공연을 함께 한 기억이 있다. 이 매방, 김 진홍, 성민(이 매방의 제자이며 정 진욱의 스승이다), 그리고 내가 참가했다.

이 매방은 대신동에 어떤 부자가 학원을 차려 주어서 거기로 옮겼다. 나도 따라 갔다. 이 매방은 서울에서 전 무영을 데리고 왔다, 그는 딱춤(스페인춤)을 추는 사람이다. 어린이 시간에는 그분이 가르치고, 학부형 시간(법원장 부인, 변호사 부인 등)에는 내가 가르쳤다. 성 민이가 그 당시 군대에 있었는데, 휴가 나오면 내가 가르쳐 주었다.

강습료는 많이 받았는가?


아니다. 돈을 내라고 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춤을 배우려고 거기에 있었던 거지 돈 벌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춤을 배웠는가?

입춤, 소고춤, 승무, 살풀이 다 배웠다. 그런데 이 매방은 춤을 잘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 매방은 욕쟁이였다.

이 매방은 왜 춤을 잘 가르쳐주지 않았는가?

이 매방은 춤을 잘 추어서 멋이 있었다. 그래서 생짜(기생)들이 좋아한다. 고관 부인들도 돈 보따리를 들고 이 매방을 찾아왔다. 밤만 되면 화장을 똑딱하고 놀러 나갔다. 이 매방은 낮에 온천장, 별장, 호텔에서 기생들과 장구를 치고 놀았다. 김 진홍과 일본말을 하면서 같이 놀았다. 김 진홍은 예뻤다. 화장을 하면 여자 저리가라고 할 정도로 예뻤다.

이 매방 학원에서 언제까지 조교를 했나?

최 장술(노래)이 이 매방 학원을 그만두고 동래 온천장 권번에 춤을 가르쳐 주러 오라고 했다. 권번에 가니 기생이 120명 정도 앉아 있었다. 기생 앞에서 오디션을 보았다. 먼저 권 명화가 춤을 추고 나갔다. 기생 한 사람이 장구를 치고 나는 춤을 추었다. 권 명화가 춤을 춘 줄도 몰랐는데, 기생이 나를 선택했다. 춤 선생이 춤을 추어보이면 기생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생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내 나이 스물 한 두살 정도였다. 4.19이전 자유당 시절이었는데 선거 유세에 기생들 데리고 가서 춤을 추어 주기도 하였다.

이 매방 외 다른 스승은 없는가?

김 온경 아버지가 학원을 할 때 강 태홍(가야금)이 그 뒤에 살았다. 한 순섭을 따라 강태홍에게 놀러갔다. 강태홍은 ‘살풀이는 앉은 사위에서 울고, 승무는 염불 장단에서 완전히 중이라는 것을 객석에 보여주라’라고 하였다. 거기서 나는 많이 배웠다. 울 때는 울고, 웃을 때는 웃고, 표현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권번이란 어떤 곳인가?

기생 조합이다. 동래 호텔. 대성장, 동래 별장으로 기생이 간다. 춤추고 노래한다. 화대를 전표로 받는다. 두 방 들어가면 두장 받는다. 여기 동래 호텔인데 어느 기생 불러 주세요. 이렇게 손님이 주문한다.

권번은 4.19, 5.16과 함께 끝이 난다. 공무원이 술을 마시면 목 날아간다. 동래 권번을 운영한 사람은 이북 출신 여자이다.

기생은 무슨 일을 하나?

출근을 해서 조합장이 이름을 뒤집어 놓으면 오늘 일이 있으니 집에 가서 화장을 한다. 끝까지 이름이 그대로 있으면 공치는 날이다. 화대는 음식 값에 포함되어 있다.

기생은 방에서 상 하나 치우고 춤을 춘다. 동래 호텔은 방문이 두꺼워서 방음이 잘 된다. 단체 손님이 서울에서 많이 온다.

기생은 입춤, 살풀이, 민살풀이(수건을 들지 않고 추는 춤), 소고품을 춘다.

기생의 한이란 무엇인가?

기생 어머니가 기생을 영감에게 돈을 받고 시집을 보낸다. 아침에 남자는 가고 나서 기생은 다음날 잔치를 한다. 동기가 남자와 자고 난 후 조합에서 남자가 없는 상태에서 결혼식 피로연을 동료 기생과 하는 격이다. 이것이 기생의 한이다. 동기는 남자와 자고 나서(머리를 올리고 나서) 다음에 기생 일을 시작한다. 동기 3사람을 머리 올려 주면 극락에 간다는 말이 있다. 그 당시 기생은 가난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을 돌보아주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뜻이다.

동래 권번에서 무엇을 가르쳤나?

기생에게 조합에서 승무, 살풀이를 가르쳤다. 가르치는 기간은 기생의 소질에 따라 다르다. 춤 가르치는 사람, 악기 가르치는 사람, 소리 가르치는 선생이 따로 있었다.

공연을 한 적이 있는가?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작품 공연은 거의 하지 않았다. 지도를 많이 했다. 기생들을 데리고 온천 극장에서 한번 공연을 한 적이 있다.

동래 권번에서 얼마 동안 가르쳤나?

2,3년 있다가 공 대일(공 옥진의 아버지)의 초청으로 광주 호남 국악원에 갔다. 거기에도 주로 기생이 배웠다. 동기는 별로 없었다. 함평, 영광에서도 가르쳤다.

스승인 이 매방의 춤과 당신은 춤은 어떻게 다른가?

생음악을 잡으면 이 매방도 춤이 달라진다. 녹음된 걸로 하면 거기서 꼼짝 못한다. 순서대로 나가야 하거든. 이 매방도 생음악을 추면 떵떵 고개 짓을 한다. 그러나 녹음에 하면 그냥 못출까 싶어서 놀라서 기계적으로 춘다. 나는 항상 춤을 생음악으로 춘다.

강옥남 류의 특징은 무엇인가?

멋과 한의 춤이다. 우선 춤은 멋이 있어야 한다. 춤을 멋있게 추려면 춤 가락이 좋아야 한다. 보통 무용가들이 춤을 추면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춘다. 그런데 하나아 두우울 세에넷 네에엣 이렇게 추어야 한다. 우리 음악은 하나가 삼분박이어서 12분박이면 한 장단이다. 하나둘셋, 둘둘셋, 셋둘셋, 넷둘셋. 삼사 십이가 되어야 온박이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이 그걸 다 줄여버리고 하나 둘 셋 넷, 그냥 이렇게 춘다. 춤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같은 네 박자라도 그 안에서 열 둘을 먹든 열 여덟을 먹던 박자만 안고 가면 된다. 이렇게 추어야 멋있고, 지겹지 않다.

한의 춤은 자기가 슬픔이 많아야 한다. 살풀이에서 수건을 떨어뜨리고 주으러 갈 때 헤어진 연인처럼 생각한다. 감정을 잡고 얼굴의 표정에서 전달해야 한다. 동작 하나 하나에서 어떤 감정인지 생각해서 추도록 한다. 살풀이를 추면 관객을 울려야 한다. 못 울리면 못추는 것이다. 나는 상상하면서 춤을 추도록 한다. 나는 춤을 가르칠 때 상황을 떠 올리도록 한다. 죽고 못사는 연인과 헤어졌을 때를 상상하고. 그것을 느끼고 추라고 강조한다.

강 옥남은 올해 71세이다. 그녀는 등록된 문화재도 아니고, 대학에 자리도 없고 무용 협회에도 나가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언론도 관객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보물처럼 소중한 역사를 품고 있다. 무명의 문화재들에게도 경험과 기억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우리의 문화 유산이 풍성하게 될 것이다.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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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김 광석    모듬북 고 석진    영상 서 재준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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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박경랑 선생의 스승이신 김수악선생님이 돌아가신지 100일째되는날 선생님을 기리며  남산국악당에서 열린 
추모공연  하얀나비중 살풀이                      노래 장사익         곡목 찔레꽃              영상  서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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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용가 박경랑과 전통공연예술 앙상블 더늠이
싱가포르 에스플러네이드의 세이크리드 뮤직 타피스트리 축제(Tapestry of Sacred Music of Esplanade) 초청으로  4월 19일 에스플러네이드 리사이틀 스튜디오에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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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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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뉴스=최진목 기자] 한국무용가 박경랑과 전통공연예술 앙상블 더늠이 싱가포르 에스플러네이드의 세이크리드 뮤직 타피스트리 축제(Tapestry of Sacred Music of Esplanade)' 초청으로 오는 4월 19일 에스플러네이드 리사이틀 스튜디오에서 공연한다.

이번 무대는 승무와 살풀이 등 한국의 종교성 강한 전통춤과 시나위와 같은 음악을 소개하고 싶다는 축제의 요청에 의해 이뤄지게 되었으며 그간 국내외에서 수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박경랑 명인과 더늠 앙상블이 승무, 비나리, 살풀이, 경기시나위 그리고 교방춤을 공연한다.

“종교와 문화를 담아 내는 고유 음악은 명확하게 이유를 알 수 없다 해도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익숙치 않은 이국의 음악이고 너무 먼 과거를 노래한다 할지라도 시간을 거슬러 현대인의 마음까지도 움직일 수 있다.” 는 것에서 착안해 2009년 시작한 '세이크리드 뮤직 타피스트리 축제(Tapestry of Sacred Music)'는 5회째에 이르는 올해까지 다른 땅, 이국의 문화, 세기를 관통하는 종교에 뿌리를 둔 음악을 소개해왔다.

한국에서 참가하는 공연을 통해 샤머니즘, 불교 그리고 유교에 뿌리를 둔 예술을 소개하기 위해 축제는 “문을 열고 영혼을 깨워라! 그 문 안에 들어가는 인간, 우리 모두에게 온 세상의 축복이 함께할 것이다.” 를 카피로 채택하고 있다.

4월 19일부터 21일까지 에스플러네이드 콘서트홀, 시어터 스튜디오, 리사이틀 스튜디오 등을 비롯해 야외무대, 분수대 광장, 건물 내 통로와 복도에 이르기까지 에스플러네이드는 유료와 무료공연, 전시와 세미나 및 워크숍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며 남아프리카 공화국, 미국, 이란,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호주, 한국 그리고 싱가포르 예술가들이 참가한다.

이번 박경랑과 전통공연예술 앙상블 더늠의 공연은 미국 할렘 가스펠 합창단 (halem Gospel Choir), 이란 아미드 레자 누바크쉬 (Hamid Reza Nourbakhsh)의 페르시아 음악, 인도 라이위 앙상블(Laihui Ensemble)과 더불어 4개 메인 프로그램의 하나로 소개될 예정이다.

스테이지뉴스=최진목 기자(realtree99@hanmail.net)[ⓒ www.stagenews.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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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남산국악당 고 김수악선생님 100일 추모공연

'하얀나비'중에서 살풀이 지전춤이 같이한다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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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전통예술대학 수강 모집 안내

2013년도 수영전통예술대학 수강생을 다음과 같이 모집하오니 전통무용, 풍물, 택견에 관심 있는 여러분께서는 참고하시어 수강 신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접수기간

:

1차 접수(기존회원) : 12월 21일까지 2차 접수(신규 수강생) : 12월 28일까지

□ 개강일

:

2013년 1월 8일 화요일

□ 문 의

:

(사) 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 ☎ 051 - 752 – 2974, 051 – 610 - 4066

 

■ 전통무용과 (매주 금요일) (3개월 단위로 접수함)

수업시간

수강 과목

수강료

교육기간

수업정원

1

10 : 00 ~ 11 : 00

한국무용 기초배우기

1개월

2만원

1년

25명

2

11 : 00 ~ 12 : 00

교방춤 배우기

1개월

2만원

1년

25명

3

12 : 40 ~ 13 : 40

살풀이춤 배우기

1개월

2만원

1년

25명

4

13 : 40 ~ 14 : 40

선비춤 배우기

1개월

2만원

1년

25명

 

■ 전통무용과 (매주 화요일) (1년 단위로 접수함)

수업시간

수강 과목

수강료

교육기간

수업정원

1

중급과정

10 : 00 ~ 12 : 00

수영예술대학에서 이수한 작품들 위주로 수업(살풀이, 선비, 진쇠, 북춤 등)

1년

30만원

1년

15명

2

최고과정(영남교방청춤)

12 : 30 ~ 14 : 00

접수 후 오디션 있음

1년

30만원

1년

15명

3

신규과정(응용불교무용)

14 : 00 ~ 15 : 00

천도춤, 고풀이춤, 지전춤, 천도살풀이, 연화무 등 응용 불교무용 수업

1년

50만원

1년

15명

4

작품연구반

15 : 00 ~ 16 : 30

접수 후 오디션 있음

(추후 오디션 합격 후 과목은 정함)

1년

50만원

1년

15명

5

신규과정(실용무용)

16 : 30 ~ 17 : 30

복지관, 노인대학, 유아원 초등학교 등에서 이용할 수 있는 작품을 위주로 수업한다. 덩더쿵춤, 신나는 우리춤

1년

50만원

1년

15명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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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징용 영가들 넋 달래
삿포로 뉴오타니 호텔에서 열린 '한일 문화교류의 밤'이 끝난 후 어떤 행사인지도 몰랐던 호텔 직원들은 행사장에 서서 우리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일본의 전설적인 록그룹 X-japan의 보컬이었던 토시의 출현도 뜻밖이었지만 한국인들은 한복을, 일본인들은 기모노를 입고 손에 손을 잡고 한국의 '고향의 봄'과 일본의 '고향'을 함께 부르자 그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며 악수를 건넸다.

 지금까지 욘사마만 알았던 삿포로 시민들에게 한국 문화사절단의 행보는 또 다른 한류 열풍을 가져왔다. 그들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며 넓은 마음으로 자매결연을 하고 지속적인 교류를 약속했던 한국인들은 한국 드라마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마지막 날, 우리는 한 이름 없는 산에 세운 한국인 위령탑을 찾았다. 일 년에 두 번 작은 제사를 지내는 것 외에는 별다른 위령제를 지내지 않았다는 이 탑은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온 4만 5000여명의 조선인 징용자 영가들 및 홋카이도에서 죽어간 우리 조상을 위한 위령탑이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쓸쓸한 비석에 제사상이 차려지고, 과거사를 사죄하고 미래를 약속하는 의미에서 일본인들이 직접 접은 3800개의 종이학이 제사상에 올려졌다. 위령제가 시작되자 어디선가 영가들이 하나 둘 위령탑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법사님, 여기가 어딘가요? 저는 어딘지도 모르고 끌려왔습니다." 그들은 조선인 징용자 영가들이었다. 15살의 어린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끌려 온 그들은 이곳이 어딘지 몰라 조선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영가들이 대부분이었다.

 '엄마, 보고 싶어요', '배고파요', '고향에 가고 싶다' 등 아직도 홋카이도 곳곳의 탄광에는 조선인들이 남긴 글씨가 선명하다. 그 글씨의 주인공들이 속속 위령탑을 찾아와 내게 길을 물었다. "어떻게 하면 조선 땅에 갈 수 있습니까?"

 내 가슴은 미어졌다. 그들은 극심한 향수병과 중노동의 고통을 잊기 위해 닥치는 대로 술을 마시는 바람에 많은 수가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으며, 하루에도 수백명이 기아와 질병, 폭탄사고로 죽어갔지만 죽은 후에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땅에 시신을 묻어야만 했다.

 한국문화사절단 뿐 아니라 일본인들도 위령제에 참석해 비극적인 과거사를 추도했다. 묵념과 헌화, 헌향의 순서가 끝난 뒤 한국무용의 명인 박경랑씨가 모든 살을 털어버리는 의미에서 살풀이춤을 추자 어디선가 커다란 나비 두 마리가 그녀의 얼굴 위로 날아들었다.

 징용자 영가들이 빙의된 나비였다. 영가들은 박경랑씨와 함께 살풀이춤을 추며 한과 그리움을 달래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손에 손을 잡고 위령탑 주위에 인간띠를 만들어 '고향의 봄'과 '홀로 아리랑'을 부르며 영가들과 문화사절단은 함께 울었다.

 누가 이렇게 뼈아픈 역사를 만들었을까. 문화사절단에는 조부가 홋카이도로 징용을 끌려온 분도 있었고, 북한에 살던 친척이 징용에 끌려가 죽은 분도 있었다. 결국 우리는 우리 조상을 위한 구명시식을 올리는 셈이었다.

 "이제 저희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문화사절단과 함께 고향으로 향하는 조선인 징용자 영가들을 보며 이제는 매년 위령제를 지내겠노라 다짐했다. 올해를 그 원년으로 삼아 내년에는 북한의 백두산에서 통일을 향한 위령제를 올리겠노라 약속해본다.
출처: [후암정사 http://www.hooam.com/ T.02-415-0108]                   2005-08-09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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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雲破 박경랑 영남교방청춤 전수관 수업안내
                      ☞  운파 박경랑선생 소개


박경랑 영남춤 전수관에서는 영남지역에서 이전부터 전승되어 오던 한국의 대표적인 각종춤들 뿐만 아니라 雲破 박경랑선생에 의하여 현대적으로 재구성 재해석 되어진 박경랑류 여러가지춤들을 전수하고 있습니다.
 
월/화/수는 전임 조교 박선영 선생이 주야간
시간별로 기초 및 초급과정의 여러춤을 지도하고 있으며, 운파 박경랑 선생님의 직강은 목/금/토/일 주야간에 있습니다.

수업내용은 초급과정후 다듬기와 개인및 그룹스터디등으로 구분 지도하고 있으며, 모든 수업은 필히 먼저 상담이 이루져야만 각 특성별로 맞춤 교육이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자세한 문의는 전임조교
박선영 선생께 문의하시면 안내 받으실 수도 있고 꼭 필요 하시면 박경랑 선생님과도 직접 상담이 가능합니다.

문의안내 : 전임조교 박선영 선생  ☎ 010-7102-0205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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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8월 24일 운현궁에서 열린 명인명창 공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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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오광대공연중 박경랑 리허설장면  구음 정영만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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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연(2)

사진/춤사진 2012. 10. 2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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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교방청춤의 복식

조 미 나

국문초록

 

전통무용은 춤을 추어 온 신분과 장소에 따라 궁중무용과 민간무용으로 분류한다. 민속무용은 민중의생활 체험에 기반을 두고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기 때문에 그 표현방식에 있어서 궁중무용에서 볼 수 없는 고정된 형태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짓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 개인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현란한 의상이나 무대장치 없이 세련된 동작만으로 평민계급의 소박한 생활감정을 춤으로 표현한다. 승무, 살풀이, 농악무, 소고춤, 장고춤 등이 대표적이다.

교방춤 복식은 살풀이나 승무 같은 종교적인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무용처럼 정해진 복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부채는 무대화시키면서 의상과의 일치를 위해 때에따라 의상에따라 바뀌기도 하며 의상 또한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바뀌어지기도 하나 대체로 춤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서 또는 여러 교방춤와의 구별을 하기위해 검정치마에 노란저고리, 그리고 고름과 디자인을 특성화시켜다고 본다.

속치마에 글이나 그림을 그린 것을 입기도 하는데 그것은 옛날 선비들과 풍류를 즐기고 시, 서, 화, 악, 가, 무 등으로 여흥을 즐기면서 치마폭이나 부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 시 를 써주기도 하였으며 그것을 들고 흥이나면 춤을 추기도 하였으며 또한 정표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하기에 이것을 무대에서 재현하는 과정에서 부채나 속치마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면서 극적인 효과를 주기도 한다.

부채는 황, 룡, 기, 백, 학, 무라는 한자로 백학이 황룡의 기운처럼 춤춘다. 또는 황룡의 기운처럼 힘차고 백학처럼 부드럽게 춤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교방춤의 이미지나 동작의특성을 살펴보면 다소 답답해 보일수 있는 전통무의 느낌에 비해 시원 시원 하고 여성스러운동작과 남성스러운동작의 조화가 잘 짜여져 있다.

복식의 색과 디자인은 이와 잘 연관되어 있는데 대체로 흑색치마에 노란저고리를 입고 디자인의 특색이라 한다면 저고리가 짧은 편이며 고름은 가슴을 띠 띠우듯 학고 남은 부분을 세로 고름으로 맨다. 치마는 팻치를 입지 않는 홋 치마이며 속바지는 통 속바지를 입는다.

남성스러운 흑색치마, 여성스러운 노란 저고리 그리고 하체동작을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 홋치마를 입으며 빠르게 도는 동작의 효과를 위해 속치마를 겉치마화 시키고 통속바지로 예의를 갖춘다.

또한 색의 내제된 의미를 보면 검정 치마는 물의 성질처럼 무용수의 마음이 관객의 마음 속으로 흘러들어가는 공감을 의미한다. 노란 저고리는 관객의 내면에 에 숨어있는 감흥을 흔들어 끄집어 내는 활동성을 의미한다.

교방무의상의 초기 복식은 기본적으로 검정치마에 노란배색을 선택하였고 중기의 복식어깨부분의 색이 다양해지고 속치마의색이나 문양으로 인해 겉치마 못지않은 의상의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후기의 복식은 저고리가 화려해지고 치마와 속치마에도 변화를 주었다.

영남교방무의복식은 무용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치장이 아닌 관객을 위한 하나의 매개체로써의 역할을 지향한다.

예쁘게 보이려는 디자인보다는 동작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정직함으로 관객의 흥미유발을 위해 즉흥적으로 사용되어지는 의상과 소품의 사용또한 그러할것이다. 그래서 추는 자가 추어 지게 만드는 새로운 공간의 창조가 될수 있다.

1.1.

1.2.

목 차

Ⅰ. 서론

3. 영남교방청춤 복식의 내적의미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2. 연구 방법 및 제한점

Ⅲ. 영남교방청춤이 지향하는 복식의미

 

 

Ⅱ. 영남교방청춤의 복식

 

1. 전통춤의 일반적인 복식

참고문헌

2. 영남 교방청춤 복식패턴의

외형적 변천연구

Abstract

1.3.

1.4. Ⅰ. 서론

1.4.1.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복식은 격식이라는 말이 있다. 이말이 지향하는 뜻은 간결하고도 깊다. 옷이 곧 무엇가를 상징적으로 나타냄을 말하는 것이다. 복식의 상징성은 시대성과 함께 변모되어가고 있다. 춤에 있어서 복식이 갖는 의미와 지향하는 바는 무엇일까? 아마도 일반적인 복식의 의미에서 바라본다면 대동소이하지 않을 것이며,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일반적인 옷과는 상이한 점을 보일 것이다.

춤은 인간육체의 시 공간적인 동작조성을 통해 가시적인 의미체를 형성하는 현상이라고 한다면 순수발생적인 원시무용, 오락무용과 같은 형태에서는 예외가 되겠지만 종합예술로써의 무용에서는 동작 그 자체뿐만 아니라 장치, 조명, 의상과 같은 부수적인 요소들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특히 무용의상은 시각예술의 형태로 종합예술로써의 무용에 새로운 무대를 제시하게 하는 방법이 된다.

무용의상은 무용이 본래 의도하는 주제를 관객에게 쉽게 전달하게 해서 관객의 이해와 흥미를 주며 조명과 장치의 일관성 있는 통일을 통해 무용의 시각적 효과에 도움을 주며 공연자의 신체적 결합 및 배역의 성격을 결정짓는 역할을 한다.

본 연구는 영남교방청춤의 복식에 관하여 복식의 의미와 그 의미가 내포하는 사상 등 복식에 관련하여 면밀하게 연구하고자 한다.

 

1.4.2. 2. 연구 방법 및 제한점

본 연구는 운파 박경랑에 의해서 전승되고 있는 영남교방청춤의 복식에 관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기본적으로 문헌연구에 집중하였으며, 사실적인 묘사와 탐구에 있어서는 운파 박경랑선생님과의 인터뷰를 시도하여 세부적으로 참고하였다.

연구의 제한점은 영남교방청춤의 현 전승자인 운파 박경랑선생의 개인적인 복식의도에 맞추어 복식의 의미를 구현해 내려 했으므로 일반적인 춤 복식의미와 상충하는 부분과 같은 주관적인 해석이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1.5. Ⅱ.영남 교방청춤의 복식

 

1.5.1. 1. 전통춤의 일반적인 복식

 

한국의 전통무용은 춤을 추어 온 신분과 장소에 따라 궁중무용과 민간무용으로 분류한다.

 

1) 궁중무용복(宮中舞踊服)

 

궁중무용은 일명 정재(呈才)라고 하는데 이는 재조(才操)를 드린다는 뜻으로 나 라의 경사, 궁중의 향연, 외국 국빈을 위한 연회 등의 궁중잔치 때에 하던 춤과 노래의 연예(演藝)를 말한다. 이는 신라시대 발생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 이르러 30여종의 무용이 만들어졌고 조선 말기에는 약 50여종에 달했다.

궁중무용은 특히 조선 후기 순조조에 이르러 정리되고 그 종목도 대폭 증대되어 전성기를 이룬다. 궁중에 내외연이 성행될 때에는 외연을 무동(舞童)이, 내연은 여령(女伶)이 각각 거행하게 되며, 대기 무동은 악공 중에서 대치하고 여령은 각도에서 선출하였다.

 

(1) 무동복(舞童服)

상례적으로 궁중에서의 향연에는 여악(女樂)이 주가 되어 왔으나 고려 때부터 있어 왔던 여악에 대한 시비는 세종조에 이르러 새로운 정재무동을 낳게 했다. 그러나 이는 곧 폐지가 되었다가 경오년(문종즉위년, 1450)에 다시 복구 되었다. 조선말기 궁중무용의 전성기까지 이어진 전통무용 중 무동이 등장하는 춤은 29 종이다. 이는 복식의 형태가 동일한 26종의 복식과 첨수무의 복식, 처용무의 복식 그리고 학무의 복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일반무동의 복식

일반적인 무동복식은 정재의 수도 많지만 여기에 참여하는 무동의 수도 상당히 많으므로 이들의 복식이 대표적인 궁중남무복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머리에 화관을 쓰고 중단의(中單衣)에 상(裳)과 각 색의 단령(團領)을 입었으며, 그 위로 야자대(也字帶)를 두르고 흑화자(黑靴子)를 신었다.

 

(2) 첨수무(尖袖舞)의 복식

순조 28년에는 공작깃이 달린 피변(皮弁)을 쓰고 녹문첨수의를 입고 홍자문반비의(紅紫紋半臂衣)를 입었으며 남전대를 두르고 청말에 자색 행전을 두르고 흑화자를 신었다.

첨수의는 일반무동들이 단령 속에 입은 중단의와 같은 형태로 직령에 좁은 소매이며, 반비의는 이 시대의 여령들이 착용했던 양옆과 뒷솔기가 터진 4자락의 쾌자와는 달리, 뒷솔기가 터지지 않은 3자락의 옷이며, 앞자락의 길이가 뒷자락 보다 훨씬 짧은 것이 특징이다.

(3) 처용무(處容舞)의 복식

삼국유사의 처용량조에 의해 처용무가 신라 헌강왕 때 지금의 울산지방에서 발생되었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다.

신라 때는 검은색 도포에 사모를 쓰고 추었으며 뒤에 오방처용무가 되었다.

악학궤범에 나타난 처용무에 대한 복식을 각 위복별로 나누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사모(紗帽)

처용가면을 쓴 다음 사모를 쓰는데 사모에는 수공화(首拱花) 2지를 꽂았다.

이 수공화는 모란꽃을 가리키며 사모 뒤에는 후수가 늘어져 있다.

 

② 의(衣)

의는 오방의 색에 따라 청, 황, 홍, 백, 흑색의 비단으로 만든다. 형태는 앞자락이 짧고 뒷자락이 길며 앞가슴 부분에 모나고 긴 흉배를 달고 앞뒤와 소매에 만화를 그리며, 옆솔기의 밑부분은 거의 허리선까지 터져있다.

 

③ 천의(天衣)

천의는 녹색비단을 쓰고, 만화를 그리며, 안은 홍색 명주를 쓴다.

 

④길경(吉慶)

길경은 안팎 모두 홍색 초를 쓰며, 양 끝에 녹색비단을 잇대어 깁는다.

 

⑤ 상(裳)

상은 황색 초를 쓰며, 상 가운데는 세로 녹색비단으로 첨(簷)을 만들고, 첨 아래는 가로 홍금선과 황색 초를 잇대어 깁고, 첨 위에서 홍색 초 끝 2개를 드리우고 끈 끝에 녹색 비단을 잇대어 깁는다.

 

⑥ 말군(襪裙)

처용무의 말군은 무릎에 채화사각(彩花四角)의 꽃문양이 붙어 있는데 이 문양은 방슬(方膝)을 말한다. 이 방슬에는 수가 놓여져 있으며 오방에 따라 말군과 방슬의 색상이 달라진다.

 

⑦ 한삼(汗衫)

한삼은 도련한 백색비단으로 한다.

 

⑧ 대(帶)

홍색 가죽띠를 쓰고, 고리로는 여주가지를 새긴 나무로 쓰고 쇠를 붙인다.

 

⑨ 화(靴)

백색가죽으로 만들고 끈이 있다.

 

(4) 학무의 복식

학무는 학이 연통을 쪼면 그 속에서 두 동녀가 나오는 춤이다. 학무의 발생 연대는 고려대이고 조선조 성종 때 크게 발전하여 전선말까지 궁중에서 성장하여 전해져 왔다. 사람이 학의 형체를 뒤집어 쓴 형태이다.

 

2) 여령복(女伶服)

 

순조 29년부터 고종말까지 내연에서 거행된 총 34종 중 처용무와 학무를 제외 하면 여령이 추는 무용은 32종이다. 이들 여령무복은 6종류의 복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1) 일반 여령무의 복식

 

아박무, 향발무, 헌선도, 무고, 가인전목단, 선유락, 연화대무, 첨수무, 몽금척 등 25종의 일반 여령무는 정재의 수도 많지만 여기에 참여하는 무기(舞妓)의 수도 상당히 많으므로 이들의 복식이 곧 이 시대의 궁중여무의 대표적인 복식을 말해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평복차림에 화관을 쓰고 홍초상(紅梢裳)과 황초삼(黃梢衫)을 입은 위로 수대(繡帶)를 매었으며 오색한삼을 끼우고 초록화를 신었다. 이 차림은 일반 여령들과도 같으며 무(舞)의 종류에 따라 필요한 의물이나 악기를 들었다.

 

(2) 춘앵전(春鶯囀)의 복식

 

이 춤은 순조의 세자 익종이 순종숙황후의 보령 40세를 경축하기 위하여 지은 것으로 1인이 추는 독무이다.

이의 복식으로는 평복차림에 화관을 쓰고 홍초상과 황초삼을 입은 위로 홍수대(紅繡帶)를 매었으며 비구(臂構)를 차고 오색한삼을 끼었으며 어깨에 하피(霞帔)를 두르고 비두리(飛頭履)를 신었다.

 

(3) 검기무(劍器舞)의 복식

 

검기무는 검무 또는 황창랑무라고도 하는 무무(武舞)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검기무는 민간에서 가면무로 연희되기 시작하다가 궁중에 들어가면서 가면이 없어지고 여령에 의해 이조말까지 전승되어 옷 듯하다.

이들의 복식으로는 전립(氈笠)을 쓰고 금향협수 위로 괘자(掛子)를 입고 남전대를 띠었으며 양손에 무검을 들었다.

 

(4) 선유락 집사(船遊樂 執事)의 복식

 

선유락이란 채선(彩船)을 끌고 배 떠나는 정경을 그린 춤으로서 2명의 동기(童妓)는 닻과 돛을 잡으면 나머지 여령들은 2명의 집사의 행선령(行船令)에 따라 배를 끌게 된다.

이들 집사들은 주립(朱笠)을 쓰고 협수(挾袖)를 입은 위로 철릭을 입고 진홍광대(眞紅廣帶)를 띠었으며 수화자(水靴子)를 신고 등에는 통개(筒箇), 양손에는 환도와 등편(籐鞭)을 들고 있다. 이것은 무관의 복식과도 같다.

 

(5) 무산향(舞山香)의 복식(服飾)

 

무산향은 익종이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대모반(玳瑁盤)을 놓고 1인이 추는 독무로서 춘앵전과 비슷한 점이 많다.

이의 복식으로는 춘앵전에서와 같은 화관을 쓰고 홍착수의를 입은 위로 초록괘자를 입고 금사자를 두르고 남전대를 띠었으며 오색한삼을 끼우고 홍수혜를 신었다.

 

(6) 동기(童妓)의 복식(服飾)

 

여러 의궤의 정재도를 보면 동기는 3개의 무용에 참여하고 있다. 즉 연화대무 에 2명, 선유락에 2명 그리고 학무에서 연꽃 속에 2명의 동기가 보인다.

이들의 복식을 보면 홍초말군(紅綃襪裙)과 홍라상을 입은 위에 단의(丹衣)를 입고 금화라대(金花羅帶)를 띠었으며 한삼을 끼우고 수초혜를 신었다. 이러한 복식은 3개의 무용에 참여한 동기가 모두 같았는데 다만 서로 다른 것은 관이다.

연화대무의 동기는 고종 24년 진찬까지는 합립(蛤笠)을 썼으나 그 이후는 연화관을 썼다.

 

1.5.2. 2. 민속무용복(民俗舞踊服)

 

무속무용, 사찰무용, 가면무용과 농악 기타 살풀이, 강강수월래 등이 있다. 이중에서 실용성과 표현성을 고루 갖추고 우리 민족의 문화적 배경인 무속, 불교, 군의 요소가 습합된 놀이복식으로서의 농악복식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1) 농악의 유래와 유형

농악의 기원은 고대의 제천의식이라 할 수 있다.

농악은 그 내용이나 구조, 형식 그리고 연희하는 목적과 기능에 따라 성립과정에 대해 말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축원형태의 농악에서 시작하여 농경적인 노작농악(勞作農樂), 걸립농악(乞粒農樂), 연예적인 형태의 농악 등 네 단계로 변천하였다고 볼 수 있다.

 

2) 농악의 복식유형

 

농악대는 기본적으로 사물(꽹과리 ․ 징 ․ 장구 ․ 북)과 기(旗)대 ․ 소고 ․ 잡색 ․나팔 등으로 편성되는데 그 조직은 대체적으로 농기(農旗) 1인, 영기 2인, 쇠 2인, 징 1인, 장구 2인, 북 2인, 소고 8인과 무동 ․ 중 ․ 각시 ․ 양반 ․ 대포수(총잽이) 등의 잡색으로 구성된다.

① 상쇠

상쇠는 농악단을 지휘하는 사람이기에 옷이나 장식품이 가장 화려하다.

이 상쇠의 복식은 지방마다 약간씩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호남우도(湖南右道)의 경우 전립에 부포(꽃상모)를 달고 반소매 창옷(홍동지기)를 입으며 등에는 원형의 쇠붙이인 거울을 양 옆에 달고 안에는 적황녹색의 천을 늘어뜨리며 청색띠를 허리에 맨다.

 

② 쇠꾼

상쇠와 비슷하며 장식이 없고, 모자는 전립을 쓰거나 고깔을 쓴다.

 

③ 징수

 

쇠꾼과 비슷하며 패랭이나 고깔을 쓴다. 색띠는 한쪽만 매거나 삼색띠를 감고매는 것이 있다.

 

④ 장구수 ․ 북수

쇠꾼의 복식과 같이 전립을 쓰거나 고깔을 쓴다.

 

⑤ 소고잽이

쇠꾼과 복식이 기본적으로 동일하나 종이로 만든 꼬리가 달린 채상모를 쓰는 경우와 고깔을 쓰는 경우가 있다.

 

⑥ 농기수

흰 옷에 패랭이를 쓰거나 꽃수건 그리고 고깔을 쓰는 경우도 있고 삼색띠를 허리에 두르거나 맨다. 걸립농악에서는 먹장삼과 홍장삼을 입는 경우도 있다.

 

⑦ 영기수

농기와 같으나, 지역에 따라 쾌자나 더그레를 입거나, 상모 없이 전립을 쓰고 꽃두건을 쓰는 경우도 있다.

 

⑧ 잡색

기본적인 잡색은 무동, 대포수, 각시, 중, 양반 등이다.

● 무동: 고깔을 쓰고 남쾌자를 입으나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 대포수: 옷의 색깔이나 옷차림이 일정하지 않으나 장식품은 공통적이다.

● 양반: 경기․ 충청에서는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으며, 호남에서는 정자관을 쓴다.

● 각시(색시); 지역마다 색상이 일정치 않으나 저고리에는 치마를 걸치고 일부 지방에서는 바가지로 만든 탈을 쓰기도 한다.

 

● 중: 장삼에 송낙을 쓰고 허리에는 바랑을 진다. 장삼이 없으면 색두루마기를 입기도 한다. 송낙은「조리」라고도 하는데 짚으로 주저리같이 엮어 만들며 꼭대기에 꽃을 길게 달기도 한다. 일부지방에선 탈을 쓰기도 한다.

 

● 참봉: 도포를 입고 탈을 쓰며 큰 갓을 쓰며 홍적삼은 붉은 장삼에 붉은 탈을 쓰고 붉은 고깔과 버선을 신는다.

이 밖에도 얼굴에다 방울을 달아 소리를 내는 방울쇠, 쇠옷에 부포 상모를 쓴 농구, 붉은 창옷에 초립을 쓴 화동(花童), 쾌자를 입고 전립을 쓴 집사(執事), 나팔수, 새납 등이 있다.

 

3) 기타 복색

 

전립(戰笠), 상모, 고깔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상모는 부포상모와 채상모가 있는데 부포상모는 뻣뻣하게 서 있는 뻣상모와 부드러운 부들상모가 있다. 채상모는 부포와 같이 전립꼭대기에 석조시를 붙 이고 구슬을 단다.

마을 농악에서 볼 수 있는 고깔은 삼각형 형태로서 꽃을 다는데 당배꽃, 모란, 함박꽃, 백일홍 등을 달며 잎이 달린 것도 있다.

지역별로 양상이 다른 농악복식은 복식유형의 특징은 다르나, 기본으로 잡색과 무동을 제외한 전원이 고깔이나 전립을 쓰고 흰색 바지저고리를 입고 3색 띠를 맨다.

또한 편성에 있어 잡색들은 복색이 화려하며 꽹과리수를 제외한 모두는 채상모나 고깔을 쓴다. 색띠 매는 방법은 지방에 따라 다르며 고깔이나 띠, 전립, 더그레, 쾌자 등의 요소들은 불교적 군, 무속적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으며, 백, 청, 홍, 흑, 황색의 오방색(五方色)이 사용되고 지방에 따라 색채의 선호가 상이함을 볼 수 있다.

 

4) 승무

 

승무는 한국민속무용의 백미라고 할만큼 춤의 기교와 예술성이 뛰어나며 민속춤 특유의 ‘정 중 동’ ‘동 중 정’의 정취가 가장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어, 앞서 연구 민속무용을 대표하는 춤이다. 승무의 무복은 장삼, 가사, 고깔로 이루어져 있는데 옷감은 갑사로 만들고 속옷은 무명으로 만들며, 버선은 옥양목으로 만들어 신는다. 원레 남자와 여자는 같은 의상으로 바지,저고리를 입었지만, 현재 남자는 바지,저고리,여자는 치마저고리에 긴소매가 달린 장삼을 입고 머리에 고깔을 쓰고 어깨에 사선으로 홍가사를 입는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양손에 북채를 든다. 승무에 있어 무복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승무의 무복이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승복은 아니고, 장삼의 명칭은 조선시대전부터 사용되었다.

 

5) 살풀이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해의 나쁜 운을 쫓기 위해 굿판을 벌였는데 그 곳에서 무당이 즉흥적으로 나쁜 기운을 푸는 춤을 추는 것을 살풀이춤이라 하며 ‘도살풀이춤’‘허튼춤’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수건춤, 산조춤, 즉흥춤이라는 이름의 수건춤이었으나 춤꿈 한성준이 1903년에 극장공연에서 살풀이춤이라는 말을 쓴데서부터 이름이 비롯되었다. 춤꾼은 고운 쪽머리에 비녀를 꽃고 멋스러움과 감정을 한껏나타내기 위해 수건을 들고 살풀이곡에 맞추어 춤을 춘다. 살풀이 춤은 춤꾼의 치마와 저고리가 모두 흰색이다. 흰색은 곧 무색無色이며 있는 그대로의 의미를 간직한 색이다. 무색, 있는 그대로의 색 곧 자연 그 자체이다.

 

1.5.3. 2. 영남 교방청춤 복식패턴의 외형적 변천연구

 

1) 영남교방청춤의 고유복식패턴의 특징

 

교방춤복식은 살풀이나 승무 같은 종교적인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무용처럼 정해진 복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부채는 무대화시키면서 의상과의 일치를 위해 때에 따라 의상에 따라 바뀌기도 하며 의상 또한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바뀌어 지기도 하나 대체로 춤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서 또는 여러 교방춤와의 구별을 하기위해 검정치마에 노란저고리,그리고 고름과 디자인을 특성화 시켰다고 본다.

 

속치마에 글이나 그림을 그린 것을 입기도 하는데 그것은 옛날 선비들과 풍류를 즐기고 시,서, 화, 악, 가, 무 등으로 여흥을 즐기면서 치마폭이나 부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시 를

써주기도 하였으며 그것을 들고 흥이 나면 춤을 추기도 하였으며 또한 정표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하기에 이것을 무대에서 재현하는 과정에서 부채나 속치마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면서 극적인 효과를 주기도 한다.

 

부채는 황, 룡, 기, 백, 학, 무라는 한자로 백학이 황룡의 기운처럼 춤춘다. 또는 황룡의 기운처럼 힘차고 백학처럼 부드럽게 춤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박경랑선생의 인터뷰내용<2011년 11월 29일 PM.12시. 박경랑류 영남 교방청 춤전수관>)

(1) 저고리의 특징

먼저 색의 배색에서 저고리와 어깨부분의 배색을 대비되는 색을 사용한다. 전체적인 노란색에 자주색을 덴다던지 초록계통의 녹두색이나 공연자의 이미지에 맞게 여러 색을 선택하기도 한다. 저고리의 배레선은 통이 좁은편이며 소매와 동정 둘레 부분의 색도 대비되는 색을 사용한다.가장 차별화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저고리의 고름은 일반적으로 매어지는 형식과는 다르게 가슴B.P선을 높이로 전체 돌레로 띠 띠우듯 두르고 나머지 남아있는 부분으로 중앙보다 조금 오른쪽에 가로 고름이 아닌 세로 고름을 맨다.

 

(2) 치마

치마또한 디자인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치마의 주름은 치마 윗 부분부터 시작이 되지만 교방복식의 치마는 속 치마의 가슴 말기처럼 겨드랑이 높이부터 시작하여 젖가슴 아래 부분까지 흰색민무늬 천으로 되어 있고 그 아래부터 치마의 주름이 잡혀있다 치마의 색은 기본적으로 검정을 사용한다. 하지만 속치마의 색깔이 비추어 지는 무늬의 감을 선택하기도 한다.

 

(3) 속치마

속치마는 일반적인 속치마와 기능적인 면에서 아주 차이가 있다. 그야말로 겉옷을 살려주기 위한 속 옷 이라기 보다는 겉옷 못지 않는 의상의 역할을 한다. 광택이 나는 소재에 큰 꽃 자수가 그려지기도 하고 아주 선명한 색또는 다양한 색깔을 사용하기도 하면서 속치마의 개념이 아닌 또 하나의 치마의 역할을 한다.

 

(4) 속바지

속바지 또한 차별성을 갖고 있다. 다른 속바지에 비해서 통이 아주 넓고 아랫단의 모양은 사각이다. 그리고 보통 속에 속바지를 하나 더 입어서 비춰지지 않게 하는 것 도 있지만 더 풍성해 보이게 하려는 의도도 가지고 있다.

1.5.4.

1.5.5. 3. 영남 교방청춤이 의미하는 복식의 내적의미

 

한국전통무용, 외국무용, 그리고 대중가요와 함께 공연되어지는 댄스도 그 동작을 잘 부각시켜주고 이미지전달을 극대화 시키는데 절대적인 역할이 바로 의상이다.

대표적인 전통무용을 예를 들면 살풀이는 기원의 뜻이 있는 다소 정신적인 춤사위를 가지고 있어 우리나라 전통 민복을 바탕으로 하얀 치마와 저고리를 입는 것이 대체로 정형화 되어있다. 한복의 형태는 특별한 것이 없으나 흰색이 주는 경건함으로 춤의 깊이와 기원의 마음을 잘 나타내어준다.

승무는 남자는 바지저고리 여자일 경우는 치마저고리를 안에 받치고 위는 긴 장삼을 입는다. 승무동작은 염불장단부터 아주 느리게 시작하는데 오래 정지되어 있는 것 같이 보이는 동작을 진행하다가 한꺼번에 큰 동작을 한다. 이때 한삼을 크게 뿌리는데 장삼이

허공을 가로지르면서 그림 그려지듯 뿌려진다.(춤은, 인간의 신체 움직임을 이용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에 그리는 하나의 그림과도 같다.)

이 처럼 의상은 그 춤의 이미지나 동작을 잘 살려내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박 경랑 류 교방 춤의 이미지나 동작의 특성을 살펴보자.

먼저 춤의 이미지를 보면 다소 답답해 보일 수 있는 전통무의 느낌에 비해 시원 시원 하고 선이 확연히 드러나 보여서 가끔씩 상체동작에서는 남성스러운 굵직한 선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곡선과 직선을 번갈아 조화롭게 짜여 져 있어 적당히 시원스럽고 적당한 무계감이 느껴지게 한다. 전체적인 동작 선(자신이 위치한 공간속에서 동작의 이동을 통해 그 공간을 채웠다 비웠다 하는 연희자의 움직임으로 해서 끊임없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수 많은 공간 여백 활동 까지 포함하며, 이러한 움직임이 만드는 선을 ‘동작선’이라 정의한다)은 크고 확실한 편이지만 중간 중간 잔재주를 부리듯 아주 여성적인 동작이 간간이 있어서 남성과 여성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있는 춤이다.

박 경랑 류 교방무의상은 일단 검정치마에 노란 저고리를 입는 경우가 많다.

저고리색은 여성적인 황색계통이며 치마색은 남성적인 흑색이다. 저고리는 배래선이 좁은 편이며 치마는 완전히 흑색을 입기도 하지만 속치마가 약간씩 비추어지는 무늬가 그려진 치마를 입기도 한다. 그리고 속바지는 보통 두 개 정도를 입는데 가장 겉에 입는 속바지는 통이 넓은 통속바지를 입는다.

그러면 앞에서 말했듯이 남성과 여성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있는 춤의 이미지와 황색의 여성스러움과 흑색의 남성적인 이미지의 색이 서로 잘 연관되어 있다.

좁은 배래선의 저고리는 시원스러운 상체동작과 사선과 직선의 팔 사위를 할 때 팔선이 더 길어 보이는 효과를 준다. 그리고 교방 춤 후반부엔 큰 원을 돌면서 다시 작은 원을 함께 도는 동작이 있는데 이때 동작이 다소 크고 빠르기 때문에 속바지가 보여 지는 부분이 다른 춤에 비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통속바지를 입고 속에 다른 속바지를 하나 더 입어 비치지 않게 하므로 관객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

검정치마에 노랑저고리의 한복배색은 그리 흔한 배색의 조합은 아니다. 보통은 교방무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다소 화려하고 원색적인 색을 많이 입는다. 황색저고리에는 금박이나 수를 놓아 다소 화려하게 하기도 하지만 흑색치마가 무계 감을 줌으로써 잔재주를 부리는 동작이나 어깨춤이 있는 동작처럼 기교를 부리는 동작에서도 애교가 있어 보이기는 하나 절대 가벼워 보이지는 않고 넘치지 않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민속무용은 일반 서민이나 대중과 왕후, 귀족 등이 있는 계층화된 사회에 있어서 그 민족의 시층 사회에 있어서 그 민족의 기층사회에서 전승된 무용을 말한다. 기층사회의 전승자는 서민이나 대중이며, 이사회의 문화는 유형적, 일상적, 반복적으로 전승이 강한 문화이다. 즉, 민속무용이란 직업적으로 무용가나 특정의 작가나 안무가에 의해 만들어진 춤이 아니라 그 민족의 공동체적 성격을 갖는 무용으로써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춤이 아닌 상당히 오렌 기간동안 전승된 무용을 말하며 남에게 보이기 위한 춤이 아닌 자기들 스스로가 즐기는 춤이다.

민속무용은 민중의생활 체험에 기반을 두고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기 때문에 그 표현방식에 있어서 궁중무용에서 볼 수 없는 고정된 형태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짓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 개인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현란한 의상이나 무대장치 없이 세련된 동작만으로 평민계급의 소박한 생활감정을 춤으로 표현한다.

박경랑류 영남 교방무는 민속무용의 성격을 많이 표현하려 한다. 보통 전통무용처럼 춤만 행하여지는 형식을 벗어나 극적인 구성을 만들고 등장인물에 각각 독특한 캐릭터를 부여함으로써 춤추는 공연자와 예를 들어 반주를 하는 악사들도 같은 이야기의 인물들로 묶어 보는 사람들에게 더욱 흥미를 유발하게 한다. 등장인물이 반주를 하는 악사 단 1인 일 때도 있고 여러 등장인물이 있을 때는 수 십 명이 있을 때도 있다.

반주자와 춤추는 공연자만 있을 때는 때로는 춤만 추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반주자에게도 약간의 대사 없는 연기를 행하게 하여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이때 악사는 오랜만에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러 온 선비이고 춤추는 공연자는 오랫동안 기다린 님을 반기는 여인이 되어 춤을 춰 나간다. 이럴 때는 보통 입어지는 흑색 치마에 황색 저고리는 입지 않고 그 어느 색보다 화려한 색을 선택하여 보고 싶은 님을 맞이하는 여인의 설레는 마음과 사랑의 열정을 표현한다.

이런 경우에는 선명한 보라색과 미색저고리를 입기도 하고 옛날 시집가기 전에 쳐녀들이 가장 많이 입었던 홍색치마에 연두저고리같이 아주 선명한 색 그 외에도 다양하게 화려한 장신구나 머리 모양의 변형을 하기도 하여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는데 다양성을 준다.

그리고 교방 무 에서는 잘 선택하지 않는 흰색저고리와 치마를 입을 때도 있다. 처음 등장할 때 는 살풀이의상처럼 아주 깨끗하고 전갈한 이미지이기 때문에 보통의 교방무보다 더 차분한 춤이 행하여 질것 같은 느낌을 먼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흰 치마와 저고리는 춤이 행하여 지는 동안 변화 무쌍하게 변화를 한다.

이때에도 극적인 요소가 사용되어 지는데 무대의 상황은 잔치가 벌어 지고 있는 연희장면이며 한쪽에서는 걸쭉한 술판이 벌어지고 또 한쪽에서는 춤판이 벌어지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화선지에 시를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방무가 행하여 지는데 부채또한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부채를 들고 춘다.

초반부는 똑같이 진행하다가 자연스럽게 붓을 들고 있는 선비에게로 가서 살포시 앉아 팔을 내밀어 저고리 배래에 글 한줄 써 줄 것을 요청한다. 선비는 아주 흥쾌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흰 저고리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이 다 써지면 글이 쓰여진 부분을 관객에게 보여주며 관객에 대한 하나의 이벤트를 선사한다. 그렇게 되면 흰 저고리는 글씨가 쓰여 진 다른 옷으로 변화를 한다. 같은 방법으로 치마에 또는 속치마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흰 부채에 글씨를 쓰기도 한다.

이 같은 방법은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의상에 변화를 줌으로써 의상을 활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즉흥적인 변화를 줌으로써 관객과의 소통거리를 더 좁히는 하나의 매계체가 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즉흥이란 어느 자극에 대하여 복잡한 사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즉각적이고 반사적인 신체활동은 통하여 표현하는 것이며 순간적인 창작으로써 표현형식이 불완전해도 새롭게 만들어 내는데 가치가 있다.)

 

그리고 소품이 사용되는 경우에서도 단지 춤을 추기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도 하지만 관객에게 더 가까이 접근하여 춤판으로 끌어 들이는 흥을 돋구어 내는 즉흥적인 요소 또한 가질수 있게 한다.(여러 이미지와 소품들도 즉흥무를 경험하는데 적합하게 사용 될 수 있다)대표적인 예로는 탈춤이나 농악, 북춤이 있다. 살풀이나 승무 같은 경우도 마당에서 자주 행하여 지던 때에는 즉흥무가 많이 행하여 졌지만 무대공연으로 많이 공연되어 지면서부터 즉흥적인 부분이 많이 사라져 가고 있다.

영남교방무의 소품은 부채이다. 굿 거리 장단에는 부채가 사용되어지지 않고 자진모리장단으로 변할 때 부터 부채가 사용되어 지는데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부터는 춤의 동작도 빨라지고 동작선이 더더욱 커진다. 이렇게 흥이 점점 더 고조 되어 가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지면 관객가까이로 다가와서 부채를 내밀고 잠깐의 무언의 대화가 오간다. 그리고 어깨춤이나 잔재주를 부리면서 흥을 돋운다. 이때 부채는 소품으로써의 역할 보다 더 큰 영역을 넘나들어 관객과 춤추는 공연자를 합일 시키며 무대와 객석으로 분리되었던 공간을 같은 흥을 가진 하나의 공간으로 변화시킨다. 그 공간은 더 이상 무대가 아닌 원래 우리의 문화인 마당의 문화로 공간이 재 창조 되어 진다.(마당은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모든 것, 세상의 모든 사람과 모든일을 제 각각 분리 시키는 분업적 관점을 파기하며 나아가서는 하나의 총체로 결속 시킨다)

영남교방무의복식에서 특징적인 디자인이 있다면 고름이다. 보통 가슴앞에서 매어지는 고름과는

영남교방무의 다르게 가슴을 띠 띠우듯 두르고 남겨진 띠로 고름을 매는데 새로 방향으로 맨다. 그리고 저고리의 풀어서 벗으려면 안쪽에 한번 더 매어져 있는 작은 고름을 풀어야 벗을수 있다.

가로로 매어지는 고름에 비해 세로로 매어지는 고름은 야무지게 매어진다.

이것은 정조를 지키려는 의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복식에서는 치마를 더 풍성하게 보이기 위해서 팻치를 입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영남 교방무 복식에서는 패치를 입지 않고 속치마와 속바지만 입는다. 하지만 다른 속치마처럼 흰색이나 단색이 아니고 꽃수가 들어 가거나 화려한 무늬가 들어 가기도 하는데 치마의 풍성함 때문에 가려지는 발디딤이나 하체동작들을 드러내기 위함도 있다. 살짝 살짝 보였다 보이지 않았다 하는 하체 동작들이 아니기 때문에 춤을 추는 사람은 자신있게 내 보여 줄수 있을만큼의 실력을 갖추어야 하는 책임이 따르게 된다.

교방무의 가장후반부에는 빠르게 돌아 가는 동작을 하는데 이때 속치마의 역할이 나타나게 된다. 이때는 두가지 색의 치마가 마치 두가지 색을 가진 하나의 치마가 돌아가는 형상처럼 보이기도 해서 마치 두가지 의상을 본것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고 가장 상승되는 분위기를 더 상승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교방청춤의 의상은 대개 검정치마나 노란 저고리이다. 일반적으로 검정은 오행 중 수이다. “흑색은 방위로는 북쪽, 계절로는 겨울에 속한다. 오행 중 수(水)로서,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고 스며들기를 좋아하는 물과 같이 음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검정 치마는 이러한 물의 성질처럼 무용수의 마음이 관객의 마음 속으로 흘러들어가는 공감을 의미한다. 노란색은 감정을 자극하는 화려한 색이다. “일반적으로 황색은 환하고 자극성 있는 따뜻한 느낌을 가지고 있어서 자유스럽고 개방된 감정과 상응하며, 적극적인 감정으로부터 변화되어 가는 자유로운 관계를 찾는 색이다.“ 노란 저고리는 관객의 내면에 에 숨어있는 감흥을 흔들어 끄집어 내는 활동성을 의미한다.

 

교방무에서 선명한 보라색이 자주 사용된다. 보라색은 이중적 의미가 있다. “보라색은 고급스러움, 비정상적인 등의 이중적 의미가 강하며,...“ 기생은 매우 고급스러우면서도 일반적인 가정생활로부터 벗어난 사람이므로, 교방무의 보라색은 고상함과 비정상성이란 긍정성과 부정성을 동시에 의미한다.

교방무에게 가끔씩 흰색 저고리와 치마가 사용된다. 흰색은 일반적으로 순결이다. “흰색은 순결, 청렴 등을 상징하며 우리 민족의 심성과 기질에 부합되어 한민족의 대표색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교방무의 백색은 여자의 순결과 정조를 의미한다.

 

 

 

(2)영남교방청춤의 복식의 변천

 

①초기 : 교방무의상의 초기 복식은 기본적으로 검정치마에 노란저고리의 배색을 사용한다.

 

● 저고리 : 기본형태는 일반적인 복식과 비슷하나 다른 특징이 있다면 길이가 조금 짧은 편이어서 가슴아래까지 다 덮이지 않고 거의 반만 덮여지는 높이이다. 그리고 저고리 배래선이 넓지 않고 좁다. 저고리 동정을 중심으로 어깨 부분에 자주색으로 천이 덧 대어져 있어 색이 확연히 대비를 이룬다.

그리고 고름도 일반적으로 매는 형식이 아닌 가슴부분을 가로로 띠 띠우듯하고 남겨진 띠로 가로 고름을 매지 않고 세로 고름을 맨다.

● 치마 : 저고리의 길이가 짧은 편이기 때문에 가슴부위는 하얀색 굵은 띠처럼 단단하게 되어있고 그 아래부터 치마의 주름이 만들어져 나간다.

속치마는 흰색속치마를 입는데 다른 속 치마와는 다르게 광택이 나는 소재를 사용한다. 속바지는 기본 속바지 위에 통이 넓고 아래부분이 사각모양인 통속바지를 입는다.

 

② 중기 : 중기의 복식은 색의 다양성으로 변화를 주었다.

 

● 저고리 : 초기의저고리는 전체적인 노란색에 어깨부분에는 자주색,그리고 가슴띠 부분의 자주색이 전부였다. 중기에 와서는 동정돌레로 녹두색을 덫 대기도 하고 다양하게 대비대는 색을 사용한다. 그리고 어깨부분에는 꽃자수를 놓아서 더 여성스러운 느낌을 강조하기도 한다.

● 치마 : 치마의 색이나 다지인의 변화는 없지만 초기의 치마는 저고리의 길이에 맞춰 가슴부위 흰색천의 길이도 정해져있어 팔을 올리지 않으면 보여지지 않았다. 중기에 와서는 흰색천의길이가 조금더 길어져 저고리 아래로 조금 보여지게 되었다. 이것은 상체를 더 길고 가늘게 보여지는 효과가 있다.

●속치마,: 중기때부는 속치마의 변화가 가장 큰 변화를 하고 있었다.

아무런 무늬가 없는 민무늬 치마에서 아주 큼직한 꽃수가 전체 둘레로 놓아지기도 하고 먹으로 그린 그림이나 글씨가 쓰여지기도 하면서 단순한 속옷의 역활에서 겉치마 못지 않은 의상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③ 후기 : 후기의 복식은 저고리가 화려해지고 치마와 속치마에도 변화를 준다.

 

●저고리: 후기에 와서는 저고리가 매우 화려해진다. 기본적인 노란색도 다양한 채도를 이용하여 밝은 개나리색을 쓰기도 하고 장중한 황금색을 쓰기도 한다.

그리고 금박이나 은박을 찍어 빛을 주기도 하고 어깨쪽에 놓는 수는 물론이고 배래에 큰 꽃수를 놓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소매도 점점 넓어지고 한색이 아닌 여러색을 단계적으로 덫덴다. 이처럼 후기의 저고리는 오히려 다른 복식의 저고리보다 더 화려해졌다.

●치마 : 후기에 와서는 치마가 단순한 검정치마일때도 있지만 속 치마가 비치는 무늬의 검정 치마를 입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떤 속치마를 입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이미지 변화의 효과도 있고 더 여성스러워 보이는 효과도 가지게 되었다.

●속치마 : 후기에 와서의 속치마는 흰색에서 여러 색으로 변화가 시작되었다.

노란저고리와 배색이 어울리는 녹두색 속치마를 받쳐 입기도 하고 입는 사람의 이미지에 따라 어울리는 다양한색을 선택한다. 속치마의색이 드러나는 겉치마를 입음으로써 속치마를 입었다기 보다는 치마를 두 개 입은 것 같은 효과를 준다.

 

(3) 영남교방청춤의 복식과 소품

 

1.6. Ⅲ. 영남 교방청춤이 지향하는 복식의미

 

영남 교방청춤의 복식은 색의 의미에서도 언급 되었듯이 먼저 흘러 들어 가고 다시 함께 흘러 나오는 분리가 아닌 교감과 합일이다.

그저 관객에게 예쁘게만 보이려는 자신의 치장을 넘어서는 교방의 복식은 관객을 위한 복식 그 이상의 의미도 될수 있다.

숙련된 동작을 보여주기 위해 예쁜 한복의 디자인을 과감히 포기 하기도 하고, 관객을 위한 볼 꺼리를 제공하기 위해 단 한번밖에 입을수 없는 일회성 의상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영남 교방 춤의 복식은 관객과의 소통과 교감을 하기 위한 하나의 매개체로 역할을 지향한다.

그리고 가장 좋은 목적으로 춤을 추는 자가 춤을 추어지게 만드는 것이라면 춤추는 자의 목적은 그 이상이 없을 듯 하다.

 

 

 

 

 

 

 

 

 

 

 

 

 

참 고 문 헌

 

1) 출처;다음까페 한복 스튜디오 <한복의변천사,한국의전통무용복식>

 

2) 임성수 2004 승무의 동작선을 이용한 한국 민속 무용 극장계획

 

3) 이화진 20005 살풀이 춤에 내제된 음향오행 사상에 관한 연구

 

임성수 2004 승무의 동작선을 이용한 한국 민속 무용 극장계획

 

채희완,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길사, p.34

 

조성환 1990 민속무용 정의와 기능을 중심으로

 

남윤경 2001 피나바우쉬 작품에 나타난 즉흥성 연구

 

남윤경 2001 피나바우쉬 작품에 나타난 즉흥성 연구

 

김채현 1989 춤과 삶의 문화 서울: 민음사

 

황경숙,윤미정 2011 한국무용에 내제된 색채의 의미

 

황경숙,윤미정 2011 한국무용에 내제된 색채의 의미

 

한귀자 2011 보라색의 고급스러운 연상에 관한 연구

 

 

 

The Costume of Park Gyeongrang Yeongnam-Gyobang Dance

 

Cho mi nah

 

Depending on the social status and venue of choreography, traditional Korean dances are categorized into court dance and folk dance. The folk dance originated from ordinary folks' life experiences and is hence native-born in origin. As such, in terms of its method of expression, the folk dance features free body movements that are usually absent in more formalistic court dance. Also, the folk dance conveys the ingenuous life emotions of the common folks through refined moves without the aid of flowery costumes or stage apparatus.

The folk dance includes Seung-mu, Salpuri-chum, Nongakmu, Sogo-chum, and Jango-chum.

 

The costume of Gyobang dance lacks any fixed design unlike religious ritual based dances such as Sungmu or Salpuli. The fan is staged and changes from time to time to match the overall costume. The costume itself also changes from season to season, but typically features a black skirt and a yellow top, as well as knots and other design patterns as distinguishing features from other Gyobang dances.

 

On occasions, the females dancer wears an undergarment with calligraphy or drawings thereon. This practice is effective in creating a dramatic ambience and reenacts the ancient custom that while entertaining with confucian scholars by means of poems, paintings, songs, dances, etc, the scholars sometimes drew a painting on the surface of the dancer's skirt or fan, and the dancer danced with such decorated skirt or fan afterwards as a symbol of affection.

 

The fan represents the six Chinese characters of 黃, 龍, 飛, 白, 鶴, 舞, and denotes a flying yellow dragon and a dancing white crane or the crane dancing like the force of the dragon. If one examines the image and bodily movements of Kyobang dance, one can see that, unlike the traditional dance, it feature breezy movements and seamless intertwining of both masculine and feminine moves.

 

Color and design-wise, the dancer usually puts on a black skirt with a yellow top. In terms of certain signature features of design, the top is relatively short, and the knot is tied as if tying around the chest with the remaining finished off as a vertical knot. The skirt is single layered without any patch, and the undergarment is one-piece.

 

The dancer hence puts on a masculine black skit and the feminine yellow top. The single layered skirt makes lower body moves more readily visible, and the undergarment is externalized to enable swifty circular moves. The one-piece undergarment shows courtesy.

 

Also, if ones probes into hidden meanings behind each color, the black skirt represents water-like consensus through which the mind of the dancer flows out unto and captures the mind of the audience. And the yellow top symbolizes energy with which the dancer can arouse and instill a sense of inspiration among the audience.

 

In its early phase, the Kyobang dance costume featured the black skirt with yellow coloring. In the intermediate phase, the color around shoulder areas diversified gradually, and the undergarment increasingly played a role of outer skirt due to its color and design patterns. In its advanced phase, the top became more colorful which in turn had an impact on the skirt and undergarment alike.

   

The Kyobang dance costume is not a mere extraneous accessory, but serves as a medium for mutual interaction with the audience. Its functional integrity certainly enables the dancer to cre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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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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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은 다른 영역의 예술장르와 만나는 것이 창작작업에 큰 도움이 된다.조각가 김학제(오른쪽)와 한국춤꾼 박경랑의 만남도 장르를 넘나들며 한국적 미의식을 다시 생각하고 창작작업으로 연결시키는 자리가 됐다.
재즈에 맞춰 살풀이를 춰봐 

지난 99년 '사형제 폐지를 위한 삶 권력 죽음전'에서 한국춤꾼 박경랑(41·박경랑 영남춤전수소 대표)은 망자의 넋을 달래는 살풀이를 추고 조각가 김학제(45·동아대 교수)는 생명의 저울을 그린 조각작품을 내놓았다. 그렇게 처음 만났던 두 사람이 경성대 부근 라이브재즈클럽 '몽크'에서 다시 만났다. 부산재즈클럽의 회원인 김교수가 이날 '몽크'의 라이브공연 기획을 맡았다며 자신의 '아지트'로 초대한 것이다. 

조각가와 한국춤꾼의 만남에 재즈가 다리를 놓아 그럭저럭 재미있는 그림이 됐다. 재즈의 선율이 몸속으로 휘감겨 들어온다는 느낌이 들자 기자가 농담 섞어 말을 던졌다. '재즈음악에 맞춰 살풀이를 출 수 있을까요?' 

―박경랑 / 이런 음악은 우리 자진모리 장단과 비슷하네요(다소 빠른 템포의 재즈 선율을 듣고는 앉은 자리에서 바로 춤이 나왔다. 농담처럼 말을 던졌는데 너무 진지했다. 기회가 되면 재즈음악에 맞춰 우리춤을 춰보고 싶다는데까지 진도가 나갔다). 

- 김학제 / 재즈는 굉장히 포괄적인 음악이죠. 각 지역의 민족음악을 포괄하는 재즈의 특성에 비춰보면 한국의 선율도 예외는 아니겠죠(재즈 애호가답게 한 수 거들었다). 

―박 / 한국창작춤을 서양춤에 맞추는 것보다 서양음악에 전통춤사위를 맞춰가는 것이 더 올바른 창작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한국창작춤은 방향이 없고 춤의 기틀도 잃어간다는 이야기가 많잖아요(사실 박경랑은 억척스럽게도 영남춤을 고집한다는 데서 중심이 있다. 혹자는 박경랑의 춤을 대나무가 연상되는 수려한 몸매에서 아름다운 난초의 유연한 곡선을 그려낸다해서 대와 난초에 비유하기도 한다). 

- 김 / 현대미술도 전통과 단절돼 있어요. 초상화나 풍속화 등 회화쪽에서는 여러 형태로 한국의 전통이 남아있지만 입체미술 즉 조각에서 한국적인 조형의식을 찾기란 쉽지 않아요. 기껏해야 불상 장승 토우 같은 부분이지만 한계가 있어요. 일제시대 이후 현대미술을 갑자기 수용하다보니 우리 것이 계승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구의 형식이 들어와 혼란스러운 작업을 하고 있죠. 그래도 전통춤은 나은 편 아닌가요. 

―박 / 전통춤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재야에 묻혀 있는 분들을 찾아뵙고 고증을 해내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그런 와중에 많은 토속춤들이 사라지고 있어요(그러면서 갑자기 기생문화 이야기를 꺼냈다). 왜색문화 때문에 잘못 인식돼 왔지만 그들은 정말 풍류를 알던 사람이에요. 소리면 소리, 글씨면 글씨, 춤이면 춤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죠. 저는 춤 하나밖에 모르지만…(교방문화가 우리춤의 원형을 보존한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녀의 이야기가 이해된다. 실제 그녀는 공연때마다 화류놀이하는 장면을 무대화시켜 술과 시, 춤과 노래가 어우러지는 풍류마당을 재연하고 있다). 

―박 / 우리춤의 정신을 잃은 대신 지나치게 사변적으로 무용이 흐르고 있다는 것도 문제죠. 

- 김 / 현대미술도 점차 개념화돼가고 있어요. 사고를 위한 사고를 요하는 것처럼…. 깊이와 대중성 두마리 토끼를 잡기가 쉽진 않지만 그래도 농담 섞어 제 작품의 화두는 '쉽고 깊게'라고 말하곤 해요. 한국인의 조형의식은 곡선의 미학이자 부드러움의 미학이죠. 한국인의 정서를 미술조형적으로 재해석하고 정립할 수 있는 통찰이 필요해요. 

―박 / 제가 김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던 것도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는 선생님의 작품세계 때문이었어요. 

- 김 / 99년 개인전 때 움직이는 작품을 내놓은 적이 있어요. 알몸을 한 원추꼴의 인간상이 공중에서 마치 떠도는 것 같은 느낌을 준 작품인데 정적인데서 동적인 부분을 끌어들인 것이죠. 만약 박 선생과 같이 작업할 기회가 오면 박 선생의 춤사위 움직임에 따라 내 작품도 움직이는,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지는 작품을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박 / 제 신체 움직임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도 괜찮겠지만 선생님이 만든 작품을 제가 그대로 표현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어요. 춤사위를 그린 조각작품 전시회에선 전통음악을 깔고 선생님 작품에 춤을 출 때는 재즈음악을 배경으로 깔고요.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창작본들도 나올 수 있겠지요 (재즈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기자가 끼어들 틈도 없이 전통을 거쳐 새로운 창작작업으로 진전되고 있는 중에 이날의 라이브 공연도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이상헌 기자 ttong@pusanilbo.com 



경북일보 200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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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 2012 박선영의 춤 '本'
주최 : 영남교방청춤 연구보존계승학회 http://gyobang.com
주관
: 한국영남춤 문화예술연구소, 영남춤보존회
기획 : korak 코락™
장소 : 국립국악원 우면당
일시 : 2012년 7월 13일 (금) 오후 7시 30분
문의 : 010-7102-0205, 02-702-4604


 

공연의 구성과 내용

 

♧ 살풀이춤(禮)

▷ 슬픔의 춤이 아니라 슬픔과 한이 바탕이 되어 이것을 환희의 세계로 승화시킨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둔다.

    느리지만 잔잔하며 강인하고 부드러우면서 섬세한 한 사위 한 사위를 빚으며 모순을 풀고

    맺힌 살을 풀어내어 한을 달래고 온몸으로 자기를 공간과 일치시켜 수 없는 맺고 푸는

    몸짓으로 자기 삶을 표현한다.

    먼저 가신 조상님께 예를 올리고 고를 풀어 산자들을 위한 액풀이로 구성해 보았다.

 

♧ 교방춤(凡)

▷ 경상도의 특유한 춤사위가 잘 짜여져 있고, 음․양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춤이며,

    남성적인 활달한 상체의 동작과 밀도가 높은 여성적인 섬세함을 지닌 하체 중심과

    발놀음(디딤사위)이 묘한 매력이 깃든 춤이다.

    운파 박경랑 선생에 의해 권번에서 전해져오던 춤가락을 한데 묶어 정리한 

    영남지역 교방의 총체적 춤이라 할 수 있다.

    예, 범이 기능보다 더 중시되었으며, 춤에도 예를 갖추어 품위와 격이 있어

    맑은 마음으로 춤을 추어야 올곧은 춤이 나온다.

    그래서 교방춤은 노는 데에도 예, 범을 갖고 즐겼던 풍류 속의 교방춤을 구성해보았다.

 

♧ 승무(道)

▷ 박경랑 선생의 스승인 故 조용배 선생으로부터 사사 받은 춤으로 지성승무라고 일컬어진다.

    복식과 춤사위가 호남형과는 다르며, 영남지역의 특색 있는 승무로 법고와 춤사위가 한데 어우러진다.

    작법이 여러 가지로 바라춤, 나비춤 등 여러 춤이 있으나, 도를 닦으며 힘든 과정을

    춤을 통해 인내하는 뜻을 내포하며, 북 두드림으로써 만중성을 일깨운다는 의미로

    승무를 법고가락을 치며 마음을 비운다는 뜻으로 구성해 보았다.

 

♣ 특별출연 - 운파 박경랑

▷ 박경랑의 소반춤, 북춤, 진쇠춤, 선비춤

 

♧ 초대손님 - 남상일 (現 국립창극단 단원, 민속악회‘수리’대표)

▷ 판소리 - 흥보가 중 흥보 박타는 대목

 

♧ 악사 - 민속악회‘수리’

▷ 기악 - 대금 아쟁 산조 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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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4.29

아라재 콜렉션 (조선서화「보묵(寶墨」)전

예술의전당-서예박물관.

중략

여러 인상깊은 공연이 많았지만,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공연은 영남춤의

명인인 박경랑의 "교방춤" 이었습니다. 교방은 고려이후로 관아에서 예기에게

가무악을 전습하던 교육기관이었는데, 교방춤은 이곳에서 추어지던 춤을 말합니다.

맨손으로 추다가 중반에 부채를 들고 춤을 추는데, 처음에는 느린 살풀이장단으로

춤을 시작하고 중간에는 빠른 자진모리장단, 그리고 다시 느린 살풀이장단으로 끝을

맺는 이 춤을 눈앞에서 보니, 그 형용할 수 없는 정중동(靜中動)의 아름다움은 가히

사람의 혼을 뺏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http://cafe.daum.net/csac/Mc0/397

 

 

 

기러기 60마리가 혹은 호방하게 날아오르고 혹은 한가롭게 물가를 노니는

장면을 화폭 하나에 담아낸 장승업의〈노안도(蘆雁圖) 십폭병〉. 종이에 담채.

144×41.3cm×10폭. 1886년작. 아라재(亞羅齋) 소장.

 

퇴계 이황(1501~1570)이 회재 이언적(李彦迪)의 "임거십오영(林居十五詠)"이라는

연작시 중 유거(幽居)를 행서로 썼다.

지본묵서(紙本墨書), 52×66.9cm. 아라재(亞羅齋) 소장.

                                                                                           출처: 청실산여회 여명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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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 한량춤의 1인자 김진홍씨(.1935~ )는 부산춤계의 흐름을 더듬어갈 때 1.5세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인물이다.

초창기 부산춤이 몇몇 선구자들에 의해 막 자리를 잡아갈 즈음 춤 하나 잘추는 신인으로 등장한 그는 50여년간 이 고장을 지키면서 부산 전통춤의 맥을 꿋꿋이 이어가고 있다.

부산의 춤을 이야기할 때 그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연륜이 덧씌여진 춤사위가 "가장 이 고장 춤답다"는 평가로 대변할 수 있다.

이 고장의 춤은 어떤 것인가.

그는 "안으로 삭일수 있는 춤,내재율과 내면세계가 깊이있고 무게있게 녹아나는 춤"으로 부산춤(혹은 영남춤)을 정의한다.

산뜻하고 깨끗한 중부지방의 춤과 솔직담백하게 감정처리를 하는 전라도 지방의 춤에 비해 이 고장의 춤은 멋과 흥,한을 마음으로 삭여서 추는 춤이라는 것이다.

김씨가,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끊임없는 상념의 길 인 춤의 세계에 접어 든 것은 51년 삼일극장에서 열렸던 무용콩쿠르에 입상한 것이 큰 계기가 되었다.

35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4세 때부터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그곳의 소녀가극단공연과 뮤지컬 영화,극장무대의 공연을 접하면서 예술적 감성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노래와 피아노에도 소질을 보였던 어린 소년은 독학으로 콩쿠르에 입상한 후부터 여러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춤꾼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오늘날 그의 춤이 있기까지 크게 영향을 미쳤던 스승들로 김씨는 이춘우 이매방 문장원 박동진 김소희선생을 든다.

춤의 기본과 허튼춤은 춘우선생,승무와 살풀이는 매방선생,한량춤과 덧배기춤은 장원선생을 좇았던 그는 명창 박동진선생과 김소희선생을 대하면서 흐트러짐없는 그들의 치열한 예술가 정신에 크게 감명받았다고 한다.

"마음으로 삭였던 정신세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것이 바로 춤"이듯,그는 단순한 테크닉의 습득에만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춤집을 채워갈 수 있는 정신적 풍요함도 동시에 갖추어 나갔다.

한량춤 에 관한한 독보적인 위치를 인정받고 있는 그는 승무 살풀이 지전춤 에 있어서도 수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통춤은 창작과는 달리 같은 춤사위의 반복인 것 같지만 추면 출수록 어렵다고 춤꾼들은 한결같이 말한다.춤을 출 때마다 춤꾼의 마음상태가 다르고 정신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춤꾼이 된 원죄 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도 춤을 출 때마다 마음을 한결같이 다잡지 못하는 번뇌에는 별 차이가 없다.

50년이 넘게 춤을 추어온 그는 춤을 출 때마다 하나의 시를 떠올린다.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남성적인 춤으로 활달한 느낌이 나야 제맛인 한량춤 을 출 때면 박목월의 <나그네>가 되고,애잔하고 절제된 동작과 마음이 기본요소인 살풀이 를 출 때면 노천명의,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 <사슴>을 떠올린다.긴 장삼 공중에 흩뿌리며 그 움직임으로 자유와 영원을 상징하고 한 획,한 줄 붓으로 공간을 그리듯,선의 의미가 움직임의 극치를 이루는 승무 를 출 때면 역시 조지훈의 시 <승무>를 떠올리는 것이 제격이라고 한다.

이순을 넘어선 나이.

잘보이기 위해 추었던 춤,관객에 몰입해 추던 춤은 이제 춤에 안겨 음악에 몸을 맡기고 나에게 몰입하는 춤으로 원숙함을 더해가고 있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춤 마음을 비움으로써 편안하게 출 수 있는 춤 추어지는 춤보다 우러나는 춤 을 추리라는 그의 마음은 김진홍 전통춤 연구회 회원을 비롯한 제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지고 있다.

강호경(무용협 김해시지부장) 최성희(" 강원도지부장) 박성희(" 경남부지부장) 홍복순 박영미 장선희 박경랑씨 등이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춤을 접해야 제대로 된 춤을 출 수있다"는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다.

어느덧 부산춤의 원로로 자리하고 있는 그는 요즘도 재목이 아닌데 춤을 추고 있는 건 아닌지,춤꾼으로서 손색이 없는지,과연 제대로 된 춤을 추고 있는 지 혼란스러움이 더해간다고 한다.또 끝도 없고 답도 없는 춤의 길이 초조하고 불안하게 다가와 일탈 하고 싶은 마음도 문득문득 든다고 한다.

하지만 춤이 있는 언저리 어디에서건 혼신을 다해 춤사위를 펼쳐내고자 하는 김씨의 이같은 치열한 예술혼이 이 고장에 자리하기에 부산춤 의 뿌리는 더욱 단단히 굳어지는 것이다.

그는 부산춤계 1세대와 2세대를 잇는 튼튼가교로서 부산 전통춤의 텃밭을 일구고 가꾸어 왔으며 이 지방의 춤을 대표하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하고 있다.

부산일보 <노정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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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랑 그의 춤을 보고 와서

 

| 삶의이야기 초하  2002.07.28. 16:12

 

춤을 보면서 무엇을 느낄까..

어떤 예술무대를 관람할땐 난 언제나
최대한 무염(無念)하는 자세로 앉는다
아무것도 보아 오지않은 처음 보는 자세로
편안히 그져 바라 볼뿐이다...

바라 보다 졸리면 그대로 졸아 버리고
잠속으로 빠져들어도 난 깨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무대란
배우란
관객이 빠져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몰입할수 있는 무대가 되었을때
관객은 흔열(欣悅)을 느낀다.

살풀이와 바라춤 나비춤그리고 승무...
어떤맥락에서 어떤연유로 지금까지 이어온 춤인지
그져 바라 볼뿐이다...

깊은 산사에서 곡차에 혼을 싣고
스님들이 추는 춤을 바라보면서
나도 몰래 눈물이 흘러 발길 멈추고
그산사에서 잠을 청했던 기억이 전부다

고전춤은 버선발 끝이 하늘로 날아 오를듯
함박눈이 세상에 사뿐히 내려 앉듯
그러나...발끝을 크게 들어 올리는 법이 없다
손끝과 발끝의 절제의 미속에 정중동을 느끼게 한다

가끔 어깨에 한을 실은듯한 흔들림이 가슴을 떨리게 할뿐이다

관객을 향해 한을 풀어 내지 못한다
돌아서서 소지를 올리며 한을 삭인다
안으로 안으로 조여드는 한을 어찌 할길없어
몸으로 소리 내지 못하고 긴수건에 타리타리 한을 실어낸다

승무또한 관객을 향해 서지 못하고
돌아서서 북을 두드리는 고깔 쓴여인
클라이 막스를 주지않고 엇박을 느끼게하며 음을 끊는다

더이상 관객을 끌어 냄을 자제하고
조용히 버선발끝으로 절제의 미를 끝까지 실어 간다

바라 나비 승무 살풀이....
모두 손끝에 표현동작을 실어줄 물건을 하나씩 들고 있다
곁들여지는 음악의 흥겨움에 반행으로 이어지는 조용하고 사뿐한 춤사위는
눈을 감고 있어도 떠오를 만큼 나비를 닮은 눈사위 였다.

박경랑의 춤꾼의 어깨에서 난 눈물이 났다
박경랑의 장삼자락에 내눈길은 함께 춤을 추었다
박경랑의 발끝에서 나비같이 한을 밟고가는 체념을 보았다.
(이생강의 대금연주와 임이조의 한량무를 볼수 있어서
더욱 보람된 관람이 였다.)
2002.7.26.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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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용의 비너스, 박 경랑

[예술부산. Vol. 67. 2010. 5/6. 48-49.]

 

2002년 어느 야외 공연에서 박 경랑의 살풀이를 촬영하던 방송국 카메라맨 두 사람은 아주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 그녀의 춤은 남자의 마음 깊이 숨어있는 작은 불덩이를 활활 태워 화염이 온몸을 감쌌던 것이다. 그 들은 박 경랑의 춤이 일반 한국 무용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느낌의 정체가 무엇인지 분간하지는 못했다.

 

당신의 춤이 섹시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모른다.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춤은 하체가 여성 춤이라고 할 수 있다. 발 디딤이 섬세하고 허리 놀음이 많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신체의 미세한 세포까지 움직이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작을 하다가 만다. 팔을 뿌릴 때도 손목만 까딱한다. 그러나 힘이 몸통에서 팔을 지나 마지막에 손목을 뿌려야 한다. 몸 기운이 서서히 손목에 전달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언제 무용을 시작했는가?

발레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이다. 무용은 네 살 때부터 마산에서 유치원에 다니며 시작했다. 마산 월영 초등학교. 마산 여중, 마산 여고를 나와 세종대에서 발레를 전공했다. 이화 여대 출신인 김 청자 교수에게 배웠다. 대학 시절 발레 공연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발레도 잘 했지만, 한국 무용에 더 관심이 있었다. 내가 무릎이 많이 나왔다. 발레는 체격 상의 문제로 포기 하고 한국 무용으로 전환했다.

 

대학 졸업 후 활동은?

1984년도 졸업하고 경남 도립 무용단(지금 창원 시립 무용단)에 들어갔다. 한국 무용을 계속했기 때문에 한국 무용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내 춤을 추고 싶어서 88년에 무용단을 나와, 89년에 부산 사직동에 무용 학원을 차렸다. 그 당시 안무자는 정 양자. 이 경애이다. 전국 8개 시립 무용단 주역 무용수 인터뷰를 객석에서 했다. 거기에 나도 들어갔다.

 

한국 무용을 누구에게 배웠나?

부산은 외가이다. 아버지도 토성동에서 공장을 하셨다. 방학 때 황 무봉에게 무용을 배웠다. 부산에 와서 김 진홍의 공연을 보고 저 분에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 진홍 학원에는 90년도 부산에서 학원 차리고, 결혼하고, 애기 낳고, 다니기 시작했다. 승무, 살풀이, 검무, 지전춤 등을 배웠다. 90년대 중반부터 강 옥남에게 교방춤을 배웠다. 김 현자 안무일 때 부산 시립 무용단 객원으로 출연한 적도 있다.

 

대학까지 발레를 한 것이 한국 무용을 하는데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발레나 한국 무용은 춤의 원리가 동일하다. 나는 발레를 했기 때문에 기초가 좋다. 하체의 힘이 좋다. 발 동작의 업다운이 좋다. 나는 무릎 굴신을 발목을 접으며 한다. 발목을 접으면 무릎이 저절로 굴신이 된다. 무릎만 굽히면 펄떡펄떡 하게 된다. 한국 무용만 했다면 지금처럼 굴신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수상경력은?

전주 대 사습놀이에서 1995년에 5번째 나가서 장원을 받았다. 1995년 장원하고 서울 국립 극장에서 기념 공연을 했다. 대구 국악제에서도 대상을 받았다. 상을 많이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상에 미친 년이라며 비난하지만, 목표가 있어야 연습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 대회 저 대회에 참가했다. 장관 상을 5, 1996년 국무 총리상, 1997년 대통령상(서울 전통 예술 경연대회)을 받았다.

 

대회에서 무슨 춤을 추었나?

대회에 나가면 이 매방 류를 추었다. 다른 춤을 추면 떨어진다. 1997년부터 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당신의 춤은 한국 무용의 주류와 다르다. 어디서 차이가 나는가? 나는 호남류와 영남류를 겸비하려 한다. 호남류의 철학은 아름다움과 기교이다. 영남류는 흥과 신명이 깃들인 춤이다. 호남류는 미를 추구하고 곱게 춘다. 영남류는 시원하고 투박하지만, 흥의 표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 춤은 호남의 안방춤과 영남의 마당춤을 통합하는 춤이다. 그러니 내 춤을 단순히 섹시하게만 보지 말아 달라.

 

박 경랑의 춤에는 여성이 생동하고 있다. 여자의 춤에 여성스러움이 나타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 무용가 대부분은 여자이지만 그들의 춤에는 여성이 없다. 그들의 춤에는 여자의 환희와 슬픔이 없고, 그냥 인간의 막연한 한과 기쁨만 있는 것이다. 그런 중성의 춤과 달리 박 경랑의 춤은 여성의 매력이 폭발한다. 그래서 그녀의 춤을 보는 남자 관객은 남성이 되며, 여자는 여성이 된다. 비너스가 여성의 상징이라면 박 경랑은 한국 무용의 비너스인 것이다.(배 학수)

[출처] 한국 무용의 비너스, 박 경랑|작성자 배학수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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