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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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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부공원에서 시민들과 춤꾼들이 펼치는 잔치판~
전국의 중요문형문화재로 지정된 예능보유자들이 직접 출연

600년 역사의 웅부 안동에서 시민들과 춤꾼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웅부무담 풍류가화’ 잔치판이 6월 12일 저녁 8시부터 안동웅부공원에서 펼쳐진다.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서 잔치가 사라진 이 시대, 말을 넘어선 육체의 언어 춤과 그 너머의 침묵마저 잔치로 끌어들이고픈 춤판, 놀이판이다.

이번 공연은 문굿을 시작으로 서예가 박문환 선생의 만장 퍼포먼스를 비롯해 채선무, 사랑가, 성주풀이 노래, 밀양북춤, 판소리 단가 등 다채로운 풍류마당이 이어진다.

전국적으로 고택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안동, 퇴계 이황 선생을 탄생시킨 정신문화의 태두에 서 있는 안동에서 그 명성에 맞는 명품 공연판으로 꾸며져 있다.

차일치고 멍석 펴고 술 걸이고 떡 치던 잔치, 가족의 경사를 마을의 잔치로 치르던 성대한 축제, 어느덧 옛 풍경이 되어버린 잔치마당의 풍류를 다시 재현하고자 마련하는 무대로 가족과 함께 웅부공원에서 한국의 멋 풍류마당을 만끽하시기 바란다.

※ 출연자
- 박경랑(경남 무형문화재 제21호 김수악류 진주교방굿거리 춤 이수자)
- 정영만(중요무형문화재 제82-라호 남해안별신굿 예능보유자)
- 밀양북춤(하용부/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
- 김지숙(국립 창극단원 주연)
- 왕기철(국립 창극단원)
- 이도열(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 탈제작자)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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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방굿거리춤

교방은 예전 관아에서 예기들의 교육을 관장하던 곳이다.예기활동을 교합했던 이곳은 훈날 예기조합, 그리고 권번으로 이름을 바꾸어가며 그들의 기능을 전수했다. 춤에서 교방의 이름을 내세운 것은, 곧 예기들에 의해 전습된 굿거리춤이란 뜻을 담은 것이다. 특히 굿거리장단에 추는 굿거리춤은 경상도 지역에서 발달하였는데, 영남춤을 찾는 박경랑은 여기저기의 노른자위 춤사위를 엮어 봉합한 흔적 없이 천의 무봉처럼 매끈하게 선보인다.


 

 

 

 

 

 
_춤꾼 박경랑
<고성오광대놀이>의 중시조 김창후의 외증손으로, 박성희와 황무봉을 통해 무용계에 입문하였다. 경남도립 무용단, 창원시립무용단 수석단원을 역임한 후 자신만의 춤길을 가고 있다. 조용배, 김진홍에게 다시 춤을 받는 욕심을 보였고, 현재는 부산 동래온천장의 마지막 춤선생 강옥남에게 춤을 전수받아 춤판을 누빈다. 92년부터 각종 상을 휩쓸었고, 97년에는 서울 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영남춤에 대한 집착이 유별나 옛 영남춤 토리를 찾아내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NIkon F4
TOKINA 70-200mm MF(2.8)
Kodak Gold asa200
사진 - 정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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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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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남춤문화예술연구소 산하단체 “박경랑전통무용단”

 

박경랑전통무용단의 단장 박경랑은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받은 영남 교방청춤으로 널리 알려진 춤꾼이다.

4세에 춤에 입문 故 김창후 故 조용배 故황무봉 故김수악 김진홍 박성희 강옥남 선생들에게 우리춤을 사사받았고 지금은 서울, 부산을 오가며 개인 공연 및 기획 공연 국악 무용 경연대회 심사 및 우리춤을 연구, 전수 ,보급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93년 제 18회 전통 예술 경연대회 전체 종합대상 (문화체육부 장관상) 수상, 93년 제4회 대구국악제 전체 종합대상(문화체육부 장관상)수상, 94년 진주 개천 예술제 제12회 개천 한국 무용제 특장부문 대상(문화체육부 장관상)수상, 95년 제21회 전주 대사습 놀이 무용부문 장원(문화체육부 장관상) 수상, 96년 서울 전통 공연예술경연대회 종합 최우수상(국무총리상)수상 등을 거처 97년 제 5회 서울 전통 공연예술경연대회에서 심사위원 19명의 만장일치로 대통령상을 수상 하였으며, 현재 경상남도 무형 문화제 제 21호 진주 교방굿거리춤 이수자. 중요 무형문화제 제7호 고성 오광대전수자 이며 한국 영남춤 문화 예술 연구소 대표. 박경랑 전통예술단 단장. 영남춤 보존회 대표. 국립국악원 문화학교 강사, 부산 경남정보대학 및 동서 대학교 사회교육원 전통예술과 한국무용 지도 교수로 숙명여자대학교 전통문화 예술대학원 전통춤 외래지도교수로 제직 중이며 각 세미나를 통해 영남 춤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주요 국내·외 공연 연보

 

단장 박경랑을 주축으로 2000년부터 결성된 ‘박경랑전통무용단’은 국내 공연은 물론 일본, 중국 및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등 세계 각국에서 활발한 예술활동을 펼치며 문화강국으로의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전통문화단체입니다.

국내주요 활동상황 : 국립국악원 공원, 남산국악당 공연,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공연 등 다수의 괄목할만한 무대에서 활발한 예술활동을 펼침

국외주요활동상황 : 베트남 공연, 일본 오사카 공연, 일본 요미우리신문사 초청공연, 일본 아시이 초청공연, 북간도 초청공연, 미국덴버공연, 아랍 에미레이트공연, 이스라엘 민속춤 공연등 다수의 공연 참가 경력이 있는 우수한 전통문화예술단체입니다.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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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랑의 2011 풍류 동행

-부산 예술 회관 개관 기념 축하 공연(2011. 5. 15. 부산 예술 회관 공연장)

 

배학수(경성대 교수)

 

선비의 아쟁 소리에 반해 기생은 춤을 춘다. 처음에는 열없게 움직이던 기생은 선비의 마음이 오는 것을 알고는, 목놀림의 교태로 선비를 유혹하고, 사랑의 기쁨을 뿜어낸다. 선비는 기생의 머리를 얹어주고 떠나간다. 이별할 때 선비는 마음을 함께 맺는다는 의미로 ‘동심결’(同心結)을 수건에 써서 기생에게 남긴다. 이날 박경랑은 교방청춤에 이런 사연을 담았다.

박경랑은 전통 무용의 추상성을 구체화하는 데 능하다. 교방청춤이 꼭 이런 사랑이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특정한 상황을 작품에 부여함으로써 일반 관객이 그 춤의 진행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선비와 기생의 이야기는 수건춤으로 이어진다. 기생은 선비가 남긴 사랑의 징표를 안고 그리움의 춤을 춘다. 수건을 두 손으로 받들 때는 기다리는 희망이지만, 한 손으로 뿌릴 때는 미련을 거두려는 의지이다. 마지막 부분에 기생은 탈자적 회전으로 다시 만날 그날의 환상을 펼쳐낸다.

수건춤처럼 박경랑의 문둥북춤에는 두 세계가 얽혀 있다. 하나는 천병으로 고생하며 살아가는 현세이며 다른 하나는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고 싶은 내세이다. 사람은 누구나 육체적, 정신적 결함이 있기 때문에 이 춤은 초월을 꿈꾸는 모든 인간의 영혼을 위로하는 보편적 호소력이 있었다.

그러나 교방청춤은 반주와 춤이 따로 놀아 작품의 정서가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다. 박대성은 춤은 보지 않고 자신만의 아쟁 산조에 심취했고, 박경랑 역시 그 음악에 춤을 맞추는데 실패했다.

공연장 무대 바닥에는 고무판이 깔려있지 않아 문둥북춤을 출 때 무용수가 미끄러져 넘어질 뻔하였다. 예술회관이 개관한지 몇 달 되지 않아 준비가 부족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무용 공연을 초청하려면 댄스 플로어 정도는 갖추어야 하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로 불만이 많은 관객은 박경랑의 다음 공연을 기다려야 한다.

[예술부산 Vol. 73. 2011. 5/6. 35 쪽]

  

[출처]박경랑의 2011 풍류 동행|작성자배학수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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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랑무용단

남해안별신굿중 용선나가는장면


박경랑선생의 스승이신 고 김 수악선생님 돌아가신이후 100일되는 날 추모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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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명 : 2008 박경랑의 춤 백의백무
* 기간 : 2008년 7월 19일 오후 7시 30분
* 주최 : 한국영남춤 문화연구 예술소
* 출연 : 박경랑, 하용부, 이윤석 外
* 장소 : 국립국악원 우면당

춤 속에 깃든 춤 이야기
외적미에만 치중한 전통예술을 탈피했다. 화려한 의상보다 더 화려한 춤 속의 춤 이야기. 전통춤의 멋 그리고 흥(興) 백색의 무수한 의미만큼 각기 다른 춤의 느낌과 멋을 전한다. 어느 무대와 달리 화려함도 없다. 그저 하연 동선만이 살아 움직인다. 춤이다. 화려함, 교태미, 정갈함. 백색(白衣)만의 한(恨)으로 영남 춤을 표현한다.

한국 영남춤 문화예술연구소 박경랑 대표의 ‘2008 박경랑의 춤 백의백무(白依白舞)’. 박경랑은 중요 무형문화재 고성오광대놀이를 재구성한 문둥북춤, 기생들에게 가르쳤던 영남교방청춤, 장녹수 이야기를 풀어낸 살풀이춤 등을 선보인다. 화려한 무대장치와 의상, 장신구 대신 흰 옷이 보여주는 정갈함과 한(恨)으로 영남춤의 무대를 채운다. 白依白舞, 흰 옷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춤사위를 통해 우리가락 우리춤의 느낌을 전하는 박경랑 우리춤전수소 주관의 한국영남춤 공연.

목 차
1. 덩기덕 북을 치며
- 문둥북춤 / 박경랑
2. 도포자락에 드리운 멋 치마폭에 감아돌고
- 밀양 양반춤 / 하용부
- 영남 교방청춤 / 박경랑
- 정가 / 김민정
- 민요 / 최성진
3. 한 맺힌 매듭엮어
- 살풀이춤 / 박경랑
- 지전춤 / 엄선미, 성예진
- 노래 / 김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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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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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 同行공연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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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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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몸이 달구어 지도록 매화향이 그립고,

짙은 유록색과 빨강 하양의 남도 봄빛이 그립다.

미당 서정주님처럼 동백꽃을 보러 선운사 골째기로

갔다가, 동백꽃은 때가 일러 보지 못하고 여염집 아낙의

상기된 육자배기만 듣고 올 지언 정 나도 그렇게 봄 마중을

나가고 싶다.

허퉁한 들녁 너머, 나목의 산등성 너머, 하얀 잔설 덮힌

강얼음 너머 봄님이 오시는 걸 시샘하는 밧데리 방전 직전의

추위가 마지막 용을 쓰던 날,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선 이색

공연이 있었다.

한국영남춤문화예술연구소가 주최하고 박경랑무 영남교방청춤

연구보존계승회가 주관한 공연이었는 데, 주요 출연진은 살아있는 이시대의 마지막 권번출신 소리꾼 유금선, 13대째 세습무의 삶을 살아오면서 전통예악을 이어가는 남해안 별신굿 대사산이 정영만, 고성오광대춤 지도자 이윤석, 밀양백중놀이 북춤의 달인 하용부, 상주아리랑 대가 박수관 그리고 국방방송 최종민 교수가

해설한 명품 공연이었다.

이번 공연은 몇가지 면에서 다른 공연과 큰 차별을 보여줬다.

우선 자연스러움이 돋보였다. 대개의 공연이 사전에 분단위 초단위까지 계산하여 무대에 올렸다면, 박경랑의 춤 공연은 시나위 처럼 물흐르는 듯 흥과 신명에 올라타 그 때 그때의 상황에 맞게 즉흥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살아서 꿈틀대는 공연, 야생을 회복한 공연, 시장경제 논리를 구현한 공연이었다고 감히 평가할 수 있겠다.

다음은 유금선 소리꾼이 세월의 무게를, 한의 무게를 누에가 실을 뽑듯 구음을 토해낼 때 무대는 태초의 무극상태를 보여줬다.

8살에 엄마를 잃고 12살에 아버지를 잃은 천애고아 유금선이 12살의 나이에 고모의 손에 이끌려 동래권번에 들어가 기생의 삶을 살면서 겪었던 그 질곡의 삶이 무대위에 쏟아지고 깔릴 때 관객들은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치원이 금강산을 유람하고 '아름답다.'는 말 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외쳤던 것 처럼, 유금선의 구음은 문자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삼먁삼보리였다.

또다른 특색은 출연진 모두가 마이너리그라는 점이다.

학교에서 강단에서 칠판글씨를 보며 배운 예술가가 아니라, 농부로서 농삿일을 하면서 배운 덧배기 춤이라서 소(逍 : 거닐소)요, 택시운전을 하면서 배운 바라시(굿)라서 요(遙 : 노닐요)요, 할아버지 등에 엎히고 무릎팍과 무릎팍 사이에서 배운 북춤이라서 유(遊 : 놀유)인 생생한 삶속의 공연이라는 점에서 그 어떤 메이저급 공연보다도 명품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뜻 통하고 맘 통하는 분과 인사동 민속주점에서 뒷풀이 막걸리를 마시면서 여진의 흥과 삶에 대한 이야기로 밤을 새다 보니 어느 덧 내 맘엔 매화향이 가득차 올랐다.

참 행복한 날이었다.

더질더질 돌돌 합장 

                                2012년 2월 17일 국립극장 우면당 溫故知新공연관련입니다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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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춤 : 하용부, 태평무 : 박재희, 한량무 : 임이조, 채상소고춤 : 김운태,

살풀이춤 : 정재만, 도살풀이춤 : 이정희, 교방춤 : 박경랑, 승무 : 진유림

 

 

 

팔무전(八舞傳)

               만날수 없었던 만남.

최고의 춤꾼들이 한자리에 서는

팔무전(八舞傳)이 열린다 !

8월 28일(목)부터 9월 1일(월)까지 장장 5일간의 반열의 무대! 기적적으로 성사된 만남!

마침내 장쾌한 춤의 팔폭이 펼쳐진다.

<남무>, <여무>, <전무후무>의 진옥섭 기획 ․ 연출

승무 : 진유림 / 밀양북춤 : 하용부 / 살풀이춤: 정재만 / 한량무 : 임이조

태평무 : 박재희 / 교방춤 : 박경랑 / 도살풀이춤 : 이정희 / 채상소고춤 : 김운태

춤을 보는 최상의 각도, M(마니아)석 전통춤 마니아를 위한 tip

아름다운 자리에서 흠상할 수 있게 KOUS의 관람석을 원목 객석으로 바꾸었다. 주목할 것은 무대 앞 1,2열로 전통 방석에 앉는 M(마니아)석, 춤을 보는 최상의 각도이고 추임새를 불어넣기 좋은 자세다. 가격은 뒷줄 R석의 절반 가격인 15000원이고 매회 40석이 준비된다. 할인보다 더 나은 혜택, 어서 급히 예매를 서두를 일이다.

R석: 30,000원 / S석 : 20,000원 / M석 (Mania석) : 15,000원 / A석(2층) : 10,000원

○ 2008. 8. 28(목) - 9. 1(월)

○ 한국문화의집 KOUS 공연장

○ 평일_오후8:00 주말(토,일)_오후4:30

예약문의 : 02) 567-8026 (AM10:30~PM7:30)

마침내 이뤄진 만날 수 없었던 만남, 팔무전

남무(男舞)와 여무(女舞), 마당춤과 사랑(舍廊)춤, 그간 서로 다른 춤판에서 명성을 쌓았기에 한자리에 만나질 수 없었다. 그리고 누구도 상상 못한 그 만남이 성사된 순간, 전통춤은 이미 새로운 역사에 진입했다. 춤판이란 최강의 상대를 만나야만 최고의 판이 조성되는 법. 무림(舞林)의 최고수들이 자웅을 겨루는 닷새간의 춤판, 인구에 회자될 최고의 무용담(舞踊談)이 될 것이다.

남무, 여무, 전무후무의 명 연출, 진옥섭

그간 초야에 묻힌 명인들을 무대에 세워왔다. 발품으로 명무를 찾은 그 이야기를 담은 ‘노름마치’를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길의 험함을 탓하지 않고 찾았던 명무를 무대에 올려 남무, 여무, 전무후무를 완성했다. 이제 류(流)와 파(派) 사이의 완강한 경계를 허물며, 만날 수 없었던 만남 팔무전을 주선한다. 그리고 주저 없이 ‘우리 시대 우리 춤의 최고 맛있는 부위’라고 말한다.

춤을 부르는 최고의 소리, 드림 시나위

춤은 발로 노닐고 악은 손으로 하니 춤판이란 손발이 척척 맞아야 한다. 춤을 보면 음악이 들리고, 음악을 들으면 춤이 보이는 판, 그것이 격이다. 음악감독 김청만이 만드는 ‘대풍류’와 ‘시나위’의 격이 그렇다. 대금 원장현, 아쟁 박종선, 해금 김성아, 가아금 박준호 피리 이호진, 정석진 등 쟁쟁한 이들이 함께한다. 또 실팍한 타악인 박종호, 박종훈, 이동헌, 류정호 등이 나서서 태평무와 도살풀이춤을 연주하고 통영의 정영만이 6박에 구음을 한다. ‘털끝 하나 안 들어가는’ 꽉 찬 소리에 춤이 둥실 뜰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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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 특집 인터뷰

정영만 선생님 인터뷰

(2011년 춘천아트 페스티벌에서의 인터뷰)

 

interview by 백 재 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춤과 음악, 소리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참 좋은 질문이네. 이제까지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춤과 음악과 소리는 따로 구분이 되어 있는 게 아니라, 다만 동작 부분이나 눈으로 봤을 때 저건 춤이다, 소리다, 저건 음악이다 이러는 것이지. 옛날말에 우리 사설에도 나와 “노래가 나면 춤이 난다”라는 이야기가 있어. 소리 없는 춤이 어디 있고, 노래 없는 춤이 없다고, 흥이 나면 먼저 노래를 가지고 흥이 나면 몸이 움직여지잖아. 그건 자연적인 발생인거야. 사람은 자연의 순리대로 가야지 자연의 순리를 역행해서 따로 떼어간다든지 하면은 이것은 이상하다. 그 근본을 모르고 춤을 춘다는 자체가 그것은 춤이 아니다.

춤은 무언의 극인데 무언의 극을 어떻게 동작에 아무 느낌이 춘다는건지, 그러면 그건 춤이 아니다. 그래서 춤과 소리는 같이 간다. 같이 혼합되어야만 제대로 된 예술이 된다. 혼합되어야만! 춤과 소리가 없을 수가 있나? 음악도 소리에 속하지.

소리가 나야 춤이 나거든. 춤이 나야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거든. 그러니까 누군가 하는 말이 “춤을 부르는 소리”라고 하더군. 그게 맞는 말이야. 안그래요?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소리 없는 춤이 어디가 있어요? 소리가 빠르면 빠른대로 춤을 출 것이고, 늦으면 늦은대로 출 것이고, 몸 동작이란 자체가 그렇잖아요. 허나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이 춤이란 자체가 왜 춤을 출까? “왜 춤을 춰?” 이런 질문을 하면 답을 못 내려요. ‘좋으니까?’

 

좋은 것은 기본이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들리는 소리가 몸을 움직이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니까 춤을 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마음을 움직이게 하니까 춤이 추어지는 거예요. 마음에서 우러나는 춤이어야지!

 

누구는 그러더라구요. ‘춤’이라는 글자가 사람이 마음위에 서 있는 형상을 본 따서 만든 글자라구요. 그래서 춤은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고, 또 마음을 움직이게 춤을 추어야 한다고 말하더라구요.

 

그건, 학자들이 해석해서하는 말이고 나는 학자 수준은 못되어서 그렇게 말은 못하고, 나는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또 우리 선생님들이 가르쳐주신 그대로 말하는거예요.

“나는 춤꾼이예요!” “나는 음악가예요!” 이런 말이 나는 참 못마땅해!

 

선생님께서 좀 전에 말씀해주셨듯이, 선생님처럼 오랜 세월 한 분야에 몸담으신 분들은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박사 논문을 선생님처럼 한평생을 예능에 몸담아 오신 예능보유자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그분들이 생각하시는 한국춤에 대한 생각을 interview하는 연구였는데, 너무 흥미롭게도 분야는 각자 다르셔도 한국춤을 생각하시는 카테고리는 일맥상통했습니다.

 

그렇지, 그래 봐야지.

 

공부하시는 분들의 이론이나 생각이 먼저 생겨난 것은 아니라고 봐요. 학자분들이 책을 통해 춤에 대해 음악에 대해 소리에 대해 많은 이론을 펼치셨지만, 그분들도 저처럼 여러 선생님들께 많이 여쭤보고 공부해서 문서화시켰기 때문에 학문적 정의가 나왔지, 실기를 하시는 선생님들보다 앞서서 여러 정의를 내놓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이런 작업(지금의 interview)을 학자들이나 또 자기 선생을 모시는 제자들이 잘못된 것은 밝혀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물론 이 세상이 잘 못되어서 그렇게 하기가 힘든데...

예를 들어 자기 선생이 볼펜을 연필이라고 했어. 그건 아니잖아. 앞에서 아부한다고 볼펜을 연필이라고 하지 말아야지. 세상이 어지러워서 그 앞에서 볼펜을 연필이라고 한단 말이지. 선생님 앞에서 ‘선생님, 이거 혹시 연필 아닐까요?’라고 정중하게 다시 여쭈어봐야지. 제대로 된 선생은 ‘어 그래..연필이었구만, 연필이야.’라고 말해주겠지만 ‘아니야. 그건 볼펜이야!’라고 밀고 나가는 선생은 상당히 선생의 자질에 문제가 있는 거지. 그런 세상이 되어서는 안되겠지.

특히나 춤에 있어서는 전공한 춤꾼... 이 전공이라는 말에, 전공했다는 말에 있어서 나는 참 아이러니한 것을 느끼는데, 난 어릴 때부터 우리 선생님한테 와서 교수나 교수될 사람이나, 박사논문 쓰는 사람들이 와서 몇 시간 취재나 인터뷰하고 가요. 잠깐 몇 시간이야... 그게 전체인 것처럼 다 퍼져서 그게 획일화가 되어서 정론화가 되어 있단 말이예요.

그러면, 물론 그 말은 맞겠지만, 그게 정말 속 맛을 알겠는가? 아니다 이거지. 그래서 춤은 춤대로 장단은 장단대로 음악은 음악대로 가는 거지. 이건 아니라 이거지! 같이 간다. 왜 같이 가느냐? 우리는 권번에서 배울 때 춤이라고 해서 따로 배우고 소리라고 해서 따로 배우고 그러지 않았어요. 소리 속에서 춤이 있었으니까! 그러면 하나만 물어보자! 춤에 호흡이 있나?

 

선생님의 질문에 일상적으로 답을 하자면 춤에 다 호흡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응, 배웠지! 그런데 호흡이 없는 게 어디 있겠어! 그러나 춤에 따르는 호흡은 아니란 말이지.

 

소리에 따르는, 소리와 함께 가는 소리와 같이 가는 호흡이 춤의 호흡이라는 말씀이신거죠?

 

그렇지! 바로 그거야. 잘 봤네. 그러니까 춤에 따로 되어 있는 호흡은 없어! 난 그것은 결론은 내린다.

소리하는 사람들이 “얼씨구나~ 어~ 어~~~으...” 소리에서 거기서 춤이 나오는 거야. 발림에서 춤이 나오는 거야! 발림이 춤이 되는거지. 그 시대에서 어느 한 사람이 “어 여기가 춤이 좋겠구나..이 사위가 좋겠구나..”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어진거야! 음악도 마찬가지야. 거기에 맞춰서 그때 그때 좋아서 지어진거야. 그걸 정리를 하는 가운데 또 교수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니까 어디에서 몇 장단에서는 호흡을 쉬고 끌어올릴 때는 호흡을 내 뱉고 뭐 이렇게 정론화 시킨 것은 잘못 된 것이지. 이건 교과서적이다. 다만 배울 때는 이래 배웠지만 다음에 할 때는 이래 하지 말아라. 이건 기본적으로만 하는 것이지 이게 다는 아니라는 것을 꼭 단서를 달아서 가르쳐주어야해!

그래서 지금 춤꾼들이 거의 중급정도 올라가서 다, 거의 다 뭐.. 이런 춤꾼들이 누굴 가르치는데 있어서 어디에서 몇 장단 올라가서 내뱉어주고 어느 동작에서는 호흡을 팍 쉬어주고.. 이런건 말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 왜 아니냐 하면은 하다보니까 그렇게 하면 더 자연스럽게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춤을 왜 그렇게 지금 새로 정리한다는 명분하에 그 춤을 로봇식으로 만들었냐 그거지!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이거지. 예술은 자유분방하고 그 다음에 제약을 받지 말아야하고, 왜 제약된 예술을 하려고 하느냐, 다만 예(禮)는 꼭 지켜주고 도리는 지켜주어야지!

 

학교에서 오래 배우고, 교수님께 배우고 여러 강사선생님들께 배우고 했단 말이예요. 너무 오랜 시간 학교에서 공연문화를 접할 때, 순서를 정확히 배워서 옷 입듯이 정확히 배워서 MR에 맞춰서 하는 공연 문화가 너무 오랜 세월 몸에 익은거예요. 물론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공연할 때 MR을 가장 많이 썼어요. 여러 큰 선생님께도 많은 배움이 있었지만 박경랑선생님께 배움을 시작하고 나서 가장 큰 변화라고 할까, 인식의 변화라고 할까.. 그런 것을 꼽으라고 하면 소리를 춤과 연결시켜서 생각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음악을 탄다는 것이 무엇인지, 왜 춤이 MR을 떠난 음악이 소리가 춤과 연결되는지... 물론 지금 다 안다는 것은 거짓말일테고..필요성과 그렇게 한다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소리에 따라서 여기서는 이렇게 타주고, 이 소리에서는 이렇게 추어지고 저 소리가 날 때는 이렇게 추어지고 그런 굵직굵직한 것을 가르쳐주어야지. 애들에게 생각할 수 있게, 창의력을 끌어 낼 수 있게 끌고 나가야지. 원래 이런 것이 우리나라 교육인데, 옛날부터 있어왔던.. “아가 니가 한번 지어바라 .” 이렇게 가르쳐줘요. 기본만 가르쳐주고. “자~ 소삼대삼은 요렇게 요렇게 소삼이 들어가고 이럴 때는 대삼이 들어가고 얼르는 춤은 이렇게 들어가는 거다.” 이런 삼요소를 어느 학자님들은, 돌아가신 정병호 선생님께서는 그걸 정중동(靜中動)이렇게 만들어 가지고...설명하셨지.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시잖아요. ‘소리는 호남이요, 춤은 영남이다.’ 제가 워낙 모르니까 책을 통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꺼리나, 옛 어르신들의 말씀 말씀에 귀를 기울여봤는데, 이 말을 보면서 정말 영남과 호남의 특성이 다른가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우리나라는 지역별 특성이 다 각기 다르잖아요. 호남, 영남, 충청, 경기별로 다르잖아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영남지역의 특징, 그러니까 다른 지역과 구분지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특징은 어떤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굳이 특징을 말하자면, 그 지방의 문화적 관습이, 문화적 관습을 먼저 이야기하고 나서 그 지역의 특징을 말해야 해요.

네 맞아요. 문화와 역사와 관습은 항시 같이 가는 거니까요.

 

그렇지, 문화와 역사와 관습은 항상 같이 가지. 그 걸 보고나서야 왜 특징이 그렇게 생겼는가의 이유가 나오는 것이지! 이유 없는 결과는 없거든. 그래서 근본적으로 영남쪽에는 현시대로 근접해서 말하자면 서구문명을 가장 빨리 받아들이는 지리적 조건을 갖은 곳이 영남이야. 일본도 가까워. 인천도 서구문명을 받아들이기에 좋았지만 아무래도 영남쪽에는 부산이 있어서 더 쉽지 않았나. 영남쪽은 서구문물을 받아들이기에 어디 보다도 더 빨랐기에 소리나 전통 문화쪽이 더 빨리 없어져. 선호를 하지 않아. 예술이라는 자체가 얼마만큼 발전되는가는 일반사람들이 얼마만큼 선호하느냐에 따라 달렸는데, 선호가 없으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니까. 전통문화가 그 선호도가 전라도는 많아. 높아! 그런데 우리 경상도는 선호도보다는 경시풍조가 있어. 경시풍조가 만연해서... 시대적으로 정치적으로 그 경시풍조의 이유를 캐보면 더 알게 되겠지만 어쨌든 이곳 경상도에는 전통문화에 대한 선호도가 약해. 영남지역은 일반인들의 전통문화예술 선호도가 떨어져. 춤이든 소리든 이런게 많이 미천한 쪽으로 돌변하다보니까 더딘 발전을 보이고 왕성한 발전을 못했지. 반면 전라도는 많이 발전되었는데, 유독 춤만 그렇게 경상도가 발전되었느냐? 그게 아니고 고급문화는 고급문화대로, 마당문화는 마당문화대로 발전되어왔지만, 경상도에는 거의 통제부, 삼도통제사령부가 발전되어 온데에는 거기가 조선시대에 백제권이기 때문에 그 문화가 통영으로 해서 고성으로 거제, 부산 자갈치까지 그리 봐주면 되지. 그렇게 해서 소리, 춤 문화가 발전되어 올수가 있었지. 그래서 박녹주( 朴綠珠, 1906.2.15.~1979.5.26 본명 명이(命伊). 경북 선산(善山) 출생. 12세 때 박기홍(朴基洪)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고 뒤에 송만갑(宋萬甲)·정정렬(丁貞烈)·유성준(劉成俊)·김정문(金正文) 등에게 배웠다. 1937년 창극좌(唱劇座)에 입단하였으며, 1945년에는 ‘여성국악동호회’를 조직하여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인 판소리 《춘향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가, 1970년 《흥부가》의 예능보유자로 변경, 지정되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선생이 한 이야기가 있어. “통영에 가서 별신굿 소리를 듣다보니까 그 학습이 보통 공력이 아니더라. ”그 만큼 예술의 공력이 범상치 않게 발전되어 왔지만 일반인들의 선호도 측면에서 발전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맥이 끊길 뻔 했어. 자칫하면.. 그래서 춤만 겨우 남아서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였었지. 그러다가 탈춤이 먼저 문화재로 발굴이 돼. 탈춤이 발굴이 되다보니까 영남은 춤이요 호남은 소리라는 말이 나온 것 같애. 나는 거기에 상당히 거부반응을 많이 일으켜. 왜 그렇게 되었느냐 하면은 전라도에 가보면 선호가 부러울 만큼 했을 뿐이라. 물론 소리 같은 것은 전라도에 유명한 사람 많지. 그러나 우리 경상도에도 소리를 유명하신 분 많아요. 안알려져 있어서 그렇지. 이화중선(1898년∼1943년. 여류명창 중의 한 사람. 부산 출생. 김초향(金楚香)과 더불어 당시 여류 창악계의 쌍벽이었다. 17세 때 남원군 수지면 호곡리 홈실박씨 문중으로 출가하여 살던 중, 협률사(協律社)의 공연을 보고 감동하여 집을 나가 장득주(張得周)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천부적인 목소리와 재질로 몇년 만에 〈춘향가〉‧〈수궁가〉‧〈흥보가〉를 공부하였고, 서울로 와서 송만갑(宋萬甲)‧이동백(李東伯)의 지도를 받아 당시 여류명창으로서 가장 인기가 높았다.

아무리 어려운 대목도 거침없이 시원스럽게 불러 청중을 매혹시켰으나, 오히려 거침없이 쉽게 부르는 것이 감동을 덜 주는 단점이 되기도 하였다.

일제 때에 임방울(林芳蔚)과 함께 음반을 가장 많이 녹음한 명창으로 꼽히고 있다. 대동가극단을 조직하여 지방순회공연을 많이 하였고, 일본 공연도 많이 하였다.

1943년 재일교포 위문공연차 일본을 순회하던 중에 죽었다. 그녀의 장기는 〈심청가〉 중에서 ‘추월만정(秋月滿庭)’, 〈춘향가〉 중에서 ‘사랑가’였다. 출처, 참고문헌 : 朝鮮唱劇史(鄭魯湜, 朝鮮日報社, 1940) 판소리小史(朴晃, 新丘文化社, 1974), 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씨 집이 김해야.

 

역사를 보면 유명한 권번들은 다 이쪽 경상도지역에 있었잖아요.

 

다 이쪽에 있었지.

 

선생님 말씀을 듣다보니까 든 생각인데, 어느 한쪽만 치우쳐서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소리도 보면 서편제, 동편제 나뉘어서 말들 하는데, 뭐 워낙 분류를 해서 그렇지 그건 아니지! 지금, 이매방류 뭐 이렇게들 분류해서 말들 하는데 그렇게 하면 안되지. 세상이 자꾸 이렇게 변해져 버리는데.. 뭐 그렇게 분류해서 좋은 점도 있겠지. 그러나 내가 볼 때는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어느 편에 서게 되면, 편견 된 입장으로 볼 수 있다는 거지. ‘어 전라도 지방에 가면 당연히 소리가 잘할 것이고, 잘해! 경상도 지역에 가면 당연히 춤이 좋아. 춤을 잘춰!’ 그건 아니지! 그런 걸 배우는 입장에서나, 가르치는 입장에서나 이런 걸 바로 짚고 넘어가 주어야 해요.

우리는 기성세대잖아. 기성세대는 무언가? 기성세대는 자기입장을 구축하는 자기를 위한 욕심이 아무래도 많은 집단인데, 그 아래에서 이렇게 구분되는 분류가 나오는게 아닌가? 생각해요. 정론화 시키는 이론화 시키는 입장에서만 바라보다보니까, 손쉽게 ‘호남은 소리요, 영남은 춤이다.’라는 말이 나온 것 같아요. 영남쪽에 춤이 발달했다..춤이 발달했다. 발달이라는 용어 자체가 나는 거부반응이 일어나요.

‘소리문화는 영남도 있었지만 오히려 더 선호가 되고 호남은 발달되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고 생각해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영남지역의 특징, 그러니까 호남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영남지역만의 예술적 특징, 영남만이 갖고 있는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그 장점은 영남지역의 예술의 장점은... 문화는 마을, 사람들이 사는 마을의 문화적 관습 이런 것들이 다 영향을 받거든. 말, 행동 같은 문화적 요소들이 영향을 끼친단 말이예요. 경상도 말씨가 어때요? 굉장히 우직스럽지?

 

네.

 

그러니까 경상도는 말씨 자체가 우조.

 

우조? 우조가 뭐예요?

 

우조가 굵직한 소리를 우조라고 하거든. 그러니까 우조의 소리 형태가 잔잔할 때는 잔잔하지만은 그러니까 춤도 아주 영향을 많이 받지. 아주 섬세한 부분도 있지만 아주 우직스럽게 추어 나가는 부분도 있지. 이건 말씨와 같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말하자면 음악이, 소리가... 우리는 “밥 먹으러 가자~!!” “음악~!” 이렇게 턱 단박에 자르지? 춤도 턱 맺지? 그렇지? 덧배기, 배김사위 있지? 이런 게 특징이라!

예를 들어, 똑같은 선생 밑에서 춤을 배우더라도 전라도 사람은 전라도 사람만의 특징이 나와. 부드러워~ 나긋나긋하고, 물론 경상도에는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면도 있지만 아주 우직스럽게 확 차고 나가는 것도 있어. 그런게 지방색에 따라 다 틀리지. 소리도 마찬가지야. 어떤 예술적 요소가 자기 지방색을 낸다는 것이지. 그게 특징이야. 다른 것은 없어!

함경도 사람을 데려다가 경상도 소리를 가르치면 경상도 소리를 다할 것 같나?

함경도 소리가 보태져.

  

   

선생님 권번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권번 이야기전에 교방이야기를 해줄께.

 

그럼 권번하고 교방의 차이점을 말씀해주세요.

 

쉽게 이야기해서 권번은 보수적이야. 국가의 녹을 먹고 나라에서 기생을 키운 자리거든. 거기에 교육하고..딱딱해. 정악처럼... 교방에서 굿거리춤이 있었는가? 없어. 권번은 음악은 정악이야. 딱딱해. 제도화된 춤이 없어. 굿거리라는 자체가 무속에서 나온거거든. 굿거리라는 자체가 굿의 거리라는 말이거든. 굿에 많이 쓰이는 장단이름이 굿거리장단이 된거야. 모든게 세습문화에서 전부 전파되었다고 보면 돼. 모든 춤, 소리, 장단이 모두 전파되었다고 보면 돼. 굿거리는 무엇이냐? 굿은 있는 그래도 판을 벌리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거리라는 자체는 한 과장을 말해. 일장, 이장, 삼장.. 한거리, 두거리.. 이게 장단 이름이 되었지.

그래서 음악과 춤을 같이 알아야 한다는거야. 춤꾼이 음악을 모르다는게 말이 안돼.

 

제 경우만 돌아보아도 음악을 알아야 춤을 제대로 알 수 있는게, 그 교육이 처음부터 제대로 되지를 못했습니다. 음악과 함께 춤을 이해하고 배워야 하는데, 음악보다는 춤이 위에 있다고 잘못 인식하면서 지냈습니다. 음악을 알아야 춤을 더 잘 알아갈수 있는데....물론 몰라서 못가르쳐주시는 선생님들이 태반이예요. 지금의 대학교육을 담당하시는 여러선생님들이... 소위 말해서 장단하나 제대로 못쳐요.

 

우리나라 제도가 잘못된게, 우리나라 국악원도 생기고 좋아... 그런데 무용과 선생이 관현악과 가서 춤을 가르치고 관현악과 선생이 무용과가서 음악을 가르쳐야돼. 우리는 그렇게 배웠거든. 종합적으로...

 

물론 국악원이 그런 시스템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국악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의 무용과도 마찬가지야. 국악과에서 해금하는 놈이 해금만 하는거..이건 아니거든. 이건 서양방식이라...

 

그렇게 배움을 끌어간다면 음악의 이해도, 춤을 향한 이해도가 함께 발전해서 좋을텐데요..

 

그러니까 이해도도 떨어질뿐더러, 집약된 예술문화가 안돼. 나는 권번에서 배웠던거하고 사회 나와서 보는게 이해가 안됐어. 춤을 추는 아이가 구음하나 제대로 못하고, 장단치는 놈이 춤도 제대로 못춰.

 

일례로 모대학은 한국무용전공자가 4년 내내 졸업할때까지 장구채 한번 못잡아보고 장구한번 못 쳐보고 졸업한대요. 장구장단, 북장단을 왜 배워야하냐고 교수가 말했대요.

 

그게 무슨 대학이고, 장단치다가 흥이 돋우면 뛰어나와야지, 춤도 추는 그러는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춤도 못춰. 환경에 지배를 받거든. 피리, 대금도 주변환경에 지배를 받거든. 소리로서 춤을 춰야하고, 몸으로서 음악을 할 줄 알아야 하거든. 이런건 지금 꼬맹이들한테 어찌 해야할거고, 이해를 못해. 손자 같은 아이들은 놓고 무슨 이야기를 할꺼나. 이런 이야기를 하면 지금의 자기교수들을 욕하는 꼴 밖에 안되는데...

 

선생님, 저도 지금보다 어릴적에 지금의 말씀을 들었다면 이해를 못했을꺼에요. 대학의 교수가 되면, 어찌보면 항해사와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해요. 배를 좋은곳으로 안전하게 운행을 잘하면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교수라는 자리는 너무 좋은 선생님들을 모셔다가 좋은 교육을 학생들이 받을 수 있도록 조정하는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교수들이 좋은 선생님들을 모셔다가 교육하는걸 꺼려해요. 자신의 실력과 비교되고 아이들에게 자신이 최고가 아니라는걸 보여주게 될까바...그런 하찮은 이유때문에 아이들은 4년 내내, 너무 좋은 선생님들을 뒤꼭지도 못쳐다보고 또한 좋은 교수법을 지닌 선생님들을 못 만나보고 졸업하는거 같아요.

 

나는 대학교수는 교수다워야해. 가르치는 방법을, 잘 가르쳐주는 방법을, 한마디로 전달자가 되어야해. 좋은 선생님을 모셔다가 가르침을 베풀때 자신의 실력이 들통난다는 생각을 버리고 같이 배우는 입장으로 ‘애들아, 이렇게 좋은 선생님들이 계시단다. 이렇게 좋은걸 잘 배워라’라고 말해주어야해.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선생님을 평생에 한번 만나볼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게 너무 가슴 아파요.

 

내가 이런말하면 아주 모나게 내려깐다..하겠지만, 양심적으로 말하는거야. 물론 나도 말한걸 다 실행하지는 못하지만, 실행할려고 노력한 사람이야. 우리나라에 교육에 적극적으로 실행해야한다고 생각해.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물은 흘러가는대로 놔두어야 한다’ 그러는데 이런 생각이 일제강점기때 나온거야. 일본놈들의 근성을 본받아서 그리해. 그때의 아주 몹쓸 배경이 있어서 그래. 못된 관습이 고대로 남아 있어. 그래서 시대적 배경은 환경의 지배한다는 말이 맞아.

 

그럼 선생님, 권번과 교방은 차이점이 뭐예요?

 

권번은 민간에서 쉽게 이야기해서 기생조합이라고 하지. 나중에는 예기조합이라고 하거든. 쉽게 말하면 요즘 춤패, 마루니..그런 형태가 각 고을마다 있었어.

꼭 예를 들자면 교방은 지금의 국악원처럼 나라에서 운영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고, 권번은 뜻 맞는 예인들이 모여서 지역별 예술연합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서로 전달하고 배우고, 사실은 교방에 있던 사람이 권번에 있던 사람이고 쉽게 말하면 국립국악원에 있으면서 개인단체에도 속해 있고 그런거야. 교방에서는 딱딱한 획인한 문화행사가 많았지만, 권번은 그것보다는 자유로운면이 있었으니까.

교육은 혹독하다.

 

예술은 그 혹독한 훈련의 시간을 거쳐야하는것 같아요. 필수적인것 같아요. 그래야지 예술은 입을수 있고, 그 다음에 자기색을 낼 수 있으니까요.

 

나이먹은 사람들은 퇴기라해서 활동을 안해. 그리고 일정한 나이가 되면 젊은 사람들을 위해 물러나. ‘그래 네가 노름을 좀 할 줄 아네.. 이제부터 네가 해라~’그러면서 물러나. 지금처럼 늙었는데도 죽도록 물고 늘어지지는 않아.

 

선생님 ‘신청’이라는 권번같은 곳이 있었어요?

 

신청이라는 자체가 무당도 키우고, 채선무도 키우고, 기생도 키우고... 매나 소리나고 하던 곳이니까, 통영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권번, 뭐 그런 이름이 ‘신청’이지.

 

선생님, 여기서 공부하셨어요?

 

공부한게 아니고.... 여기서 그냥 살았지.. 허허

 

아...강아지도 과일 안물어 가는 곳이요?(평소에 우스개소리로 정영만 선생님께서는 어릴적 굿판에서 살다시피해서 집에 과일과 떡이 너무 흔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들은 귀하게 보는 과일과 떡이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별만 귀하게 안쳐다보았다는 농담을 잘 하셨다.)

 

허허...... 그렇지.

 

저는 책에서 봤을때 동래권번, 이런걸 봤는데 신청은 처음 봤어요.

 

통영권번이나 부산에 동래권번이나 룰은 그게 다 비슷비슷해요. 동래권번이 70년때 중반까지 있었지. 가장 늦게까지 있었지. 신청권번 그 비슷하게 없어졌지. 동래권번이 없어지기전에 신청이 없어졌으니까...

 

신청권번에 대한 자료가 어디 있을까요?

 

자료가 거의 전무한 상태다. 사진 몇장 남아있고.., 사람들 명단이라든지, 회원들 명단이 다 있었는데 다 사라져 버렸다. 불에 사라져버렸다.

 

왜 사라져버렸어요?

 

글쎄, 다 불에 사라져서 없어졌다. 불에 타 버렸다고...

 

너무 중요한 자료인데, 왜 불에 타 버렸을까요?

 

뭐, 중요한 거라고....불에 타버렸지.

 

지금은 너무 중요한 자료이잖아요. 그때 당시에 활동하셨던 분들의 이야기도 그렇고...

 

그래도 그 자리며 그런거 내가 다 알고 있지.

옛날에 권번출신이나 권번에서 배운 사람들은, 우리끼리 쓰는 ‘변’을 써. ‘변’을 모르면 우리끼리는 치지를 않아. 인정을 안해. 기생은 생자라고 하고, 여자를 아줌라고 해주고 시집안간 여자는 자동이라고 해주고, 디딤이라는 말도 우리 ‘변어’에서 나온말이야.

‘참, 육갑사람 좋다’, ‘손짓 잘한다...’ 이런 용어를 쓰는 사람이 별로 없어. 나이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권번출신하고 아닌사람하고는 구별이 돼.

옥섭이가 나한테 ‘저 사람 권번 출신 맞아? 나랑 한번 같이 가보자~’해서 가서 몇마디 나눠보면 대번에 알아. 진짜인지 가짜인지...

 

권번에서 쓰는 용어가 뭐가 있을까요?

 

권번에서 쓰는 용어? 다 똑같다. 전국적으로 통일이 되어있다. 무당, 기생 이런 사람들이 쓰는 거하고 똑같아. 강신무는 엉터리다. 무당 아니라고 봐.

 

예전에는 이북은 강신무고 남한은 세습무잖아요.

난 강신쪽은 인정안한다. 제대로 배운 사람은 괜찮은데, 대부분이 엉터리다. 왜 이 굿을 하는지 그 자체를 몰라. 신이 시켜서 한대...

 

아, 맞다. 위쪽이 강신이고 아랫쪽이 세습이였는데, 지금은 다 아래지방도 강신이 많아졌죠? 내림굿 받고 하는게 강신이죠? 선생님 말씀대로 어릴적부터 알든 모른든 보면서 자라면서 배운게 참 많은 영향을 미칠텐데...하루아침에 되는게 아니라서~

 

우리쪽은 정치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지. 물론 나도 정치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러다 보니까 주눅도 많이 들고, 욕하는것도 많이 잃어버렸지....

여자 성기를 보성이라고 하고 남자 성기를 장식기라고 하고...

 

보통은 국어국문학과, 민속학과 이쪽 선생님들이 그런 연구를 많이 하시잖아요.

 

많이들 할려고 하지, 와서 물어보면 대답을 많이 해주지...굳이 찾아다니면서 해줄 필요는 없고..

 

그 분들이 오셔서 많이 연구하고, 정립을 해주셔야죠. 선생님대가 지나면 묻힐 이야기들이잖아요.

 

내대(代가) 지나면 없어져버리고 말지. 이제 되었나?

 

네에, 하루아침에 다 여쭈어볼수가 없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여쭈어보겠습니다. 너무 많은걸 지니고 계신 선생님이라서 하루, 하루 찾아뵈면서 여쭙고 알아갈게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소중한 이야기 너무 감사했습니다.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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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 특집 인터뷰

박경랑선생님께 듣는 춤이 풀어내는, 춤으로 감아드는 인생이야기

 

2010년 2월 5일 합정동 연습실에서

interview by 백 재 화

 

선생님, 몇 살 때부터 춤에 입문하셨어요?

춤은 네 살 때부터 시작했지.

그때만 해도 상당히 이른 시기인데, 춤의 길에 들어선 동기 같은 거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어릴 때 꼭 전통을 꼭해야겠다는 생각보다 내가 어릴 적에는 발레가 막 일본에서 건너와서 많이 성행했기 때문에 나도 발레를 배우게 된 것 같애. 전공이라기보다 어릴 때부터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를 쭉 했으니까.. 발레 쪽으로 많이 기울어졌다 다시 전통춤을 집중적으로 시작한건 필요성을 느끼고 이제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이 들어서지. 또 무엇보다도 우리 할아버지의 맥도 내가 이어야하니까!

 

어쨌든 우리춤의 정기와 맥은 항상 내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었던 것 같고, 우리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점차 많이 들었고 그리고 우리 것을 해야만 내가 춤을 출 수 있는 그 시간들이 오래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 아무래도 발레는 전통춤보다는 생명이 짧으니까 보통 40넘어가면 발레는 아무래도 힘으로써도 딸리게 되잖아. 춤의 테크닉 특성상...

학교 졸업 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어요?

졸업하고 무용단 생활 시작하면서부터 창작춤 추다가 사실 결혼을 하고나서 전통춤으로 몰입했지.

내가 아무래도 아래쪽 출신이다 보니까, 영남, 호남이 역사적으로나 전통적으로 예술의 혼과 맥이 강해.

음... 도립무용단이 처음으로 창단 되고, 경상남도 도립무용단 창단멤버로 들어 가게 되었고 그러다가 도의 재정문제로 창원시립무용단으로 이관되었고, 88년까지 활동하다가 89년 부산으로 오면서 개인연구실 운영하면서 결혼하고 그러면서 전통춤에 혼신을 다해 몰입하게 되었지.

선생님과 관련된 글을 읽어보면, 할아버지 이야기가 늘 나오는데, 가족 중에 같은 길을 가신 분이 계셨어요?

부모님 대에는 없고 그 전 세대 외삼촌도 조금 기여를 하셨구, 외할아버지 때 그때는 내가 어렸을 때니까 잘 모르지만...

고성오광대 초대 문화재셨고 할아버님 무릎팍에서 그냥 응얼거려주셨던 그 느낌은 아직도 가지고 있지.

할아버님 존함이 어찌 되세요?

김(자) 창(자) 후(자) 김창후 선생님!

박경랑 선생님의 춤 선생님은 어느, 어느 분이 계신지 다 말씀해주세요.

사사받은 선생님... 춤 공부한 선생님 존함을 다 말하려면 너무 긴 시간이 필요한데...

첫 스승님은 내가 고성에서 네 살 춤에 입문하게 되었을 때, 그냥 고성에서 나름대로 활동하셨던 선생님이신 이이자 선생님!

조용배 선생님께는 초등학교 4, 5, 6학년 때까지 전통춤을 배웠고,

정식적으로 배우게 된 것은 지금 마산에 계시는 박성희 선생님께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학원에서 수업을 받게 되었지. 또, 박성희 선생님의 남편이신 설수석 선생님께 발레를 배웠었지.

타계하신 황무봉 선생님이 아버님 친구 분이셨기 때문에 초, 중, 고등학교 때 부산으로 주말마다, 방학 때마다 찾아가서 공부했었고,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 집에서 합숙하면서 춤 공부를 했었지.

80년대는 학교생활하고, 졸업 후에 무용단 생활을 좀 했지.

84년, 85년에는 마산에 사셨던 고 김애정 선생님께 춤 공부를 했었고, 졸업 후 88년 창원으로 옮겨오면서 김진홍 선생님을 찾아가서 다시 전통에 열정을 쏟기 시작했지. 그 다음에는 실제 동래권번의 춤 선생이셨던 강옥남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지. 또 작년에 타계하신 김수악 선생님께도 사사 받았고... 이외에도 많은 선생님께 공부를 했지.

선생님 호 가 ‘운파’ 잖아요. ‘운파’라고 호를 정한 이유나 사연이 있나요?

운파 호는 구름 雲 / 파괴할 破 구름을 파괴할 정도로 춤을 잘 추라는 뜻으로, 아는 분께서 지어주셨지. 호가 남다르게 좀 강한 느낌인데, 나한테는 강한 호가 맞는다고 하시면서 지어주신 호!

저도 박경랑 선생님의 춤의 명성은 '영남교방춤'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어요. 영남 교방춤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세요.

영남지역 교방에서 췄던 입춤이지. 사실 입춤이라고 하면 가장 쉽게 가장 기본적인 춤이라고 하는데, 근데 어떻게 보면 가장 기본적인 춤이 어렵지! 가장 중요하다는 건 기본춤을 잘 춰야만 다른 여러 가지를 잘 출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보통 춤추시는 분들이 입춤이라면 기본무로 생각하고 예사롭게 생각하는데 내가 춤을 추면서 느껴 오고 지금 이 시간까지 느끼고 있는 거지.

물론 우리나라 춤의 백미가 승무지만 기본이 없으면 안 되잖아. 그래서 입춤을 완전히 소화해야만 살풀이 승무도 똑같이 소화해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돼. 여하튼 난 그리 생각하구, 다른 사람들과 상반된 생각일지도 모르고...

 

내가 교방춤을 쭉 추면서 춤의 기본법 이라 던지 중요성도 많이 느끼는 것 같아. 이 춤을 감상할 때 어떤 기능 위주보다는 자유자제로 어떤 동작이던 어떤 음악에 맞추든지 나름대로 감정을 자유자재로 표출해서 출 수 있다는 것, 또한 관객들도 그런 감정으로 느끼면서 봐준다면 최고의 춤이 아닐까 생각하지.

 

교방은 기녀들을 중심으로 노래와 춤을 관장하는 기관이지. 조선시대에는 장악원 소속의 좌방, 우방을 교방이라 불렀었고, 교방에 소속된 사람들은 노래, 악기, 춤 등 모든 예기를 두루 익혀서 각종 공적인 연희에 참여했었지.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교방춤은 교방청이 폐지된 후 지방으로 흩어졌던 관기들이 이어받기도 했고, 지방의 무악과 같은 민속악에 맞추어 추는 민속춤이 가미되기도 했었고..

여하튼 이 춤의 특징은 음, 양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춤이지. 남성적인 활달한 상체의 동작과 밀도라고 표현하면 이해가 잘 될까? 밀도가 높은 여성적인 섬세함을 지닌 하체 중심과 발 놀음 즉 디딤 사위가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영남지역 교방춤의 기교가 잘 나타난 춤이지.

 

교방춤의 매력을 설명해주세요.

어..매력적인 동작이 몇 군데가 있긴 한데 사실 부채를 펴는 장면이 그냥 보면 아무렇지 않게 보이는데.. 어떻게 보면 쉽게 얘기해서 교방춤을 보통 분들이 기생의 이미지만 살리다보니까 아주 섹시한 춤.. 이성적인 것 관련해서 표현하시는데요

 

근데 교방춤이란 의미가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물론 많은 동작들에서 여러 가지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가장 다소곳하고 정적이고 가장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부채를 살짝 집어 들어서 펴는 장면.. 그 부채를 펴면서 수 만 가지 생각을 할 수 있거든.

괜찮은 동작이 많지만 부채를 살짝 집어 들어서 펴는 장면에서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아. 보는 분들도 또 그 장면을 보시고 나름대로 상상하시고 재미있는 표현을 하곤 하시더라구..

교방춤의 장단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음악은 상황에 따라 좀 바뀌기는 하는데, 주로 남도굿거리 자진모리 다시 굿거리로 가긴 하지만 느낌에 따라서 조금씩 중중모리에서부터 시작하기도 하구, 음악의 변화는 그때마다 즉흥적인 게 강하지 .정해져서 틀에 박혀져 있는 것이 아니고 교방춤이 즐거운 춤이기도 하면서 어떤 분들은 또 아주 슬프게 느끼시는 분들도 계셔그건 내가 공연하면서 공연평을 듣고, 왜 그렇게 느낄까 생각을 해보기도 했는데 기생들의 애환이라고 할까?? 남들에게 들어내지 못하고 자기 감정을 삭혀야하고 사랑하는 님이 있어도 한번 머리 올리고나면 오로지 기다려야 되고 어쩌면 살풀이춤보다 더 슬픈 게 교방춤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언젠가는 한번 해봤어. 어떤 분들은 흥겹게 느끼고 아주 슬프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개인적인 반응이 상반된 게 또 교방춤인 것 같애.

박경랑 선생님, 끝으로 춤을 어찌 추는 게 잘 추는 것이며,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야 되는지 선생님의 경험에 비추어 말씀 해 주세요.

춤...

출려고 들지 말고, 출려고 하지 말고, 춤을 추려고 들어야지. 그게 춤이지.

이게 무슨 말인지 느낌이 오면서도 잘 모르겠지??

한마디로 가식적으로, 가증스럽게, 억지로 만들어서 춤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춤이 저절로 추어지게, 흥이 나게 추어야 춤이지.

또, 내가 경험에서 우러나서 말하는 건데, 작년에 타계하신 김수악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 중에...

춤은 자연의 이치에서 찾아야해. 산과 들의 펼침처럼 강, 약이 있고 기복이 있게 추어야해. 또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처럼 넘치치도 모자라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힘을 빼고 추어야한다고 언젠가 내 차안에서 말씀해 주신 적이 있었지.

매번 무대에서 춤 추시는 박경랑 선생님을 바라 보면서 강하게 느낀 게 춤에서 힘을 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요즘 느껴요.

최고의 아름다운 동작은 최소한의 에너지로 표현 된다는 말을 선생님의 춤을 보면서 진하게 느낄 수가 있어요. 말은 쉬운데, 동작에서 힘을 빼고 주고가 너무 어려워요.

그러니까 지속적으로 연습해야지!

가장 쉬운 게 가장 어려운거니까...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한국 춤의 최고의 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한국 춤의 미... 최고의 미....

마음이지!

서울 굿의 김금화 선생님께서 언젠가 내게 건네신 말씀이, ‘만인의 꽃이 되어라’ 고 말씀 하셨어. 이 말씀이 그 순간에 가슴에 와 닿았는데...

춤은 마음에 있는 거야.

활짝 흐드러진 꽃처럼 춤을 찬란하게, 춤을 마음으로 표현해야해.

물론, 실력이 출중하시니까 그렇겠지만 선생님은 무대에서의 자신의 춤을 즐기시는 것 같아요.

무대....

무대는 정말 무서운 곳이야. 너무나 정직하고 무서운 곳이야.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곳이야. 그러기에 죽을 힘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야해. 그리고 요즘, 정형화된 무대에서의 춤만 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생각을 버려야해.

내가 춤 출 수 있는 곳은 모두 춤 무대가 되어야해.

모래 위에서, 진흙 위에서, 비탈길 위에서, 자갈밭 위에서.... 다 춤을 자유롭게 출 수 있는 무대가 되어야해.

이래서 못 추겠고, 저래서 못 추겠고... 이러해서 오늘 실수를 했고, 이러해서 춤이 잘 안되었고.... 그건 다 자신의 춤 실력이 모자람의 변명이야.

완벽을 향해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해.

그게 무대 위에서 춤꾼의 자세야.

 

한국 춤에 대해서 그냥 하고 싶으신 말씀... 묻고 싶은 게 많은데, 그냥 문득 떠오른 질문 이예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다보면 자꾸 동하게 되고, 또 질문도 새록새록 생각나고 그래요... 말씀 중에 또 묻고 픈 게 생각날 것 같아요.

한국 춤, 우리춤은 자연스럽게 추어야해. 또 자기만의 춤을 추어야해.

이 말이 참 어렵고, 오해하고 잘못 이해하기 쉬운 말인데,

춤이 처음부터 끝까지 똑 부러지게 정형화된 순서가 있는 게 아니지! 요즘 문화재로 전승되는 제도와 서양식 무대의 정형화, 일정시간의 공연 시간이라는 공연문화의 흐름 때문에 순서가 정형화 되는거지.

 

작품마다 순서가 백 만명이 똑같이 취는 순서가 있는 춤은 아니지.. 우리춤이라는게...

자기만의 춤이라는 것은

물론, 춤마다의 색깔, 특색에 맞는 규격화되고 정형화된 기본이 있지. 그 기본을 다 배운 후에, 한마디로 다 터득한 후에는 그 기본위에, 기법위에서 자연스럽게 춤을 추라는 거야. 자기 맘대로 마음대로, 만들어서 추라는 뜻이 아니고.

 

잘못 이해하면 자기춤을 추라는 말이 지 맘대로 추라는 말로 오해할 수 있단 말이야.

무엇보다 중요한 게 기본 틀을 깨우치고 나서 자기만의 춤을 추어야 하지.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기본적인 것을 토대로 하는 춤 말이야.

자유자재로 출 수 있어야 해.

쉽게 말해서 자기가 다 섭렵한 후에 자유자재로 출 수 있는 게 자기만의 춤이라는 거야!

자유롭게 추라는 말.... 그러기 위해서는 그렇게 되기 까지는 힘겨운 길을 걸어야하고 많은 노력을 해야지. 너무 당연한거지?

 

자연스럽게 추라는 말!

그건 일단 일정 시간을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 보내야 만이 자연스럽게 터득하면서 나오게 돼.

억지로 터득하면 자연스러운 춤이 절대 안나와.

있는 그대로 추어야지. 그게 또 자연스럽게 추라는 선생님들의 말씀의 참 뜻이기도 해!

김수악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자연의 이치.. 이 모든 것이 춤의 핵심이야.

자연은 억지스러움이 없잖아. 춤이 그래야 한다는 거야!

선생님! 제가 언제부터인가 느낀 점 중에, 선생님의 춤의 정신세계나, 춤의 세계관.. 가치관.. 또 제자들을 향한 마음, 제자들을 챙기시는 마음... 이런 모든 것들은 60세 이상 70대의 선생님들과 거의 비슷해요. 제가 박사과정 때 논문주제 정하고 한참 논문 쓸 때 춤 분야의 인간문화재 선생님들과의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때 춤 인생 60년이 넘으신 분들이 대부분 이었는데, 그 분들의 춤을 통한 경험, 춤에 대한 모든 인생관... 말씀과 거의 흡사해요.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았어요.

선생님께서 연배의 다른 선생님들보다 큰 선생님들을 많이 모시고 춤 공부를 해서 그런가바요.. 이건 제 생각 이예요.

그럴 수도 있고, 그런 걸 배제 시키지 못하지.

큰 선생님들은 또 그 선생님들의 선생님께 배웠고...

우리의 정신세계가 고스란히 전해지니까... 그래서 예전에 다 선생님 댁에 기거하면서 공부했던거야. 선생님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춤 한자락, 노래 한자락 차근 차근 배웠어.

지금처럼 순서를 쭈~욱 나가고... 그렇게 배우지 않았어.

머리로 배우려 들지 말고, 마음으로 배워야해. 마음으로 느껴야 하고!!

내가 대통령상 받을 때 있었던 이야기 해줬었나??

97년도에 대통령상 받을 때 였어.

대회가 있기 전, 내가 태어난 고성에 들렸었어. 그때 모셨던 강옥남 선생님과 엄마랑 이렇게 셋이서..

고성 전체를 한 바퀴 돌면서 고성의 정기를 받아서 대회에 나가려는 생각에..

그러다가 어느 향교 앞에 다다랐는데, 그냥 거기 들어가 보고 싶더라구

그래서 다 들어갔지...

그 때 마침, 향교를 관리하시는 분이셨는데, 딱 마주쳤어.

그 분은 장에 나가려고 나서다가 우리랑 마주쳤던 거지. 그날 책거리를 해야 해서 장에 나가시는 길이었다고 하시더라고,

당연히 어찌 왔냐고 물으셨지. 그래서 이차저차 사연을 말했더니

그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

자기도 여기에서 공부하면서 느끼는 게 많아져서 춤에는 문외한이지만 그냥 하는 말이라고, 처음 보았을 때 그냥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었고...

여기 향교에 들린 이유가 그러하다기에 해주는 자신만의 생각의 말이라고 하면서...

나한테 향교 앞에 펼쳐진 산을 가르치면서 해주셨던 말인데, 아직까지 기억에 많이 남아. 춤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고

 

‘앞에 펼쳐진 자연을 보세요. 저 산을 보세요. 산 등성이가 움푹 패인 곳은 사람의 목이라고 생각하고, 산이 평평하게 시원하게 펼쳐진 곳은 사람이 두 팔을 쭉 펼친 거라고 생각해 보세요. 춤을 저렇게 추세요. 시원하게 쭉 쭉 펼치면서 그렇게 춰 보세요. 그럼 좋은 춤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그 말이 참 가슴에 폭~ 와 닿으면서 춤을 시원시원하게.. 자연의 형상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또 시원하게 추어야겠다란 깨달음이 있었지.

그렇게 추었는지, 그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을 수 있었어.

 

선생님, 하루에 단번에 들을 분량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요. 매번 선생님과 이런 지난 이야기 나눌 때는 필히 녹음하고 기록해야겠어요.

선생님의 춤만 무보를 만들게 아니라, 이런 이야기도 또 하나의 무보가 되는 것 같아요.

춤 배우랴, 기록하랴... 채록하랴... 할 게 너무 많아요.

요즘 특히 춤 공부하면서 할 게 얼마나 많고, 많은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고, 그래서 마음이 더 다급해지곤 해요.

이제까지 학위에 많은 시간을 할애 하면서 지냈었는데, 이젠 그 공부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이 엄청난 춤 공부에 매진하고 싶어져요. 더욱더 강렬하게요.

지금처럼, 그렇게 강인하게 저희를 이끌어 주시고, 춤꾼 박경랑, 도전하는 박경랑, 언제나 무대를 신선하게 채우는 춤꾼 박경랑으로 계셔주세요.

보통은 춤 공연에 가보면 일명 가족잔치라고 명명할 수 있게 친구, 제자, 친지, 지인으로 형성된 객석 형태인데, 선생님의 무대는 항상 객석에 남다른 객석점유가 전 좋아요.

일반인들이 더 환호하고, 더 알아주는 춤꾼이 진정한 춤꾼이라고 생각해요.

아... 그래서 서울 굿 김금화 선생님께서 ‘만인의 꽃이 되어라’라고 말씀 하셨나바요??

방금 생각난 거예요.

 

2011년 1월 5일 효창동 연습실에서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춤은 무엇이세요?

 

내가 생각하는 춤?

 

선생님의 인생을 통틀어서, 지금 연세가 50인데 인생의 4/5 이상을 춤만 추셨잖아요. 선생님은 춤으로 세상을 공부하셨고, 춤으로 세상을 수 놓으셨고...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춤, 철학적인 답변을 떠나서 가장 쉽게 떠오르는 생각, 춤,,하면 생각나는 말?

 

춤은 내 생활이지.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되는 생활로 변해버린거지.

 

춤이 선생님이고 선생님이고 춤이 되고!

 

그렇지... 내가 추고 내가 깨달은것을 너희들에게 전해주는것이고, 그게 전부이지.

춤 공부하는데 있어서 가장 포인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떤데에 있어서?

 

마음가짐도 있을수 있겠고... 기능적인 부분에서도 말할수 있겠고...정신적인 부분..

 

기능적인 부분이야 단숨에 안되는것이니까 무조건 반복적인 연습을 해야하는 것이고, 시간과 내공이 쌓여야 하는 것이지. 정신적인것은, 내가 갖고 있는 춤의 정신적인 것은 그냥 자만심만 없애면 된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항상 자만심을 버리는것... 그러니까 기능이 좋아졌다고해서 자만하지 말고 계속 나 자신을 낮추면서 춤추는 것. 자꾸 자꾸 추는것 밖에는

 

다른분들이 박경랑 선생님의 좋은점을 말씀하실때 보면, 물론 모든 중견춤꾼부터 큰 선생님들까지 헤아릴수 없을 만큼 좋은점, 배울점을 갖고 계시지만, 유독 박경랑선생님을 향한 좋은점, 본받을점을 말하는 부분에서 이구동성으로 하시는 말씀들이 있어요. ‘개인 연습이 무지 많은 사람’, ‘독하게 연습하는 사람’..등 연습량에 있어서는 정말 숨쉴겨를도 없이 연습에 연습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씀들하세요. 근데 큰 어르신들은 연습 안하시잖아요. 물론 절대적인 경지에 다다르신분들이여서 그렇겠지만... 제가 가끔 매체에서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연습시간에 관련된 인터뷰를 볼때면 장한나도 그렇고 강수진도 그렇고 하루에 6~8시간 넘게 연습하더라구요. 강수진 같은 경우엔 아침에 2시간 스트레칭하고 눈 떠있는 시간은 춤으로 채우더라구요.

 

연습을 안할수는 없지. 선생님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이미 몸에 배여서 내 스스로 자연스럽게 나오는 부분은 특별히 연습이 필요없다는 말씀이지. 그래도 나온다는 거지. 그게 연습이 안된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이 새로운것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연습을 해야하는거지. 다만 예를 들어서 그 누구도 흉내 낼수 없는 그 사람만의 특유의 동작이 있다고하면 그건 그 사람만의 특징이란 말이야. 그 특징이 남들이 봐서 어설프면 안되지만 이미 자기것으로 소화해내서 누구도 쉽사리 흉내낼수 없는 것으로 기능적인 부분에서 자신의 몸에 배여있다면 그것은 따로 연습할 필요가 없지. 내가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그 선생님들의 말씀이(연습을 안하신다는 말씀) 그렇다고 봐.

나도 공연을 계속하고 그러면, 내가 평소에 연습할때 안되던 것들이 공연하는 순간 음악과 춤과 한순간 딱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 올때가 있어. 백일을 연습한다고 해서 백일동안 내내 같은 동작이 똑같이 되는것은 아니거든. 매일 매일 느낌이 틀려. 그런데 어느순간에 똑같은 동작을 하면서도 ‘아, 이거다...’라고 느낌이 올때가 있어. 그러면 그때는 그 동작이 완전히 내동작이 되는거야. 그때부터는 그게 자연스럽게 내안에서 나와. 연습의 유무를 떠나서 그 다음부터는 안바뀌더라구.

내가 공연을 하면서 한동작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연습하고, 공연하고 그래. 공연을 하면서 몇가지 동작밖에 내것으로 만들지 못해. 백번을 공연을 올린다고하면 99가지, 98가지 또는 101가지... 그 정도만 내 동작으로 만들수 있어. 그렇게 내 몸속에 저절로 저장되는, 인위적으로 저장되는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저장되는 것은 절대로 몸이 잃어버리지 않다는것이지.

다시 말해서 쉽게 이야기하자면, 그동안 연습하는 동안 잠재적으로 연마되던 부분이 어느 한순간 확 발휘되어 나온다는 것이지. 그때는 자신도 모르게 모든게 일치가 된다고 보면 돼. 음악에 대한 감정이나, 내 춤에 대한 동작이나...

어느 순간 되는 느낌이 오고 나서, ‘어떻게 이게 되었지...’하고 공연 다음날 다시한번 추어보면 그때의 그느낌대로 동작이 나와. 그때가 바로 완벽한 자기자신의 동작이 되는 것이라고 봐. 내가 늘 제자들에게 하는 말중에 ‘공연을 올려야한다.’ ‘공연을 해봐야 한다’라고 말하는 이유중에 하나가, 공연을 하면 느는 이유가 이런거야. 이런데서 공연을 하면서 실력적으로 기술적으로 한발짝씩 늘어가는 이유가 있어.

몇백씩 아니 몇천씩 되는 돈을 투자하면서 공연을 올려도 전혀 금액적으로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꼭 하나씩은 얻는게 있으니까!

예를 들어서, 백번의 공연을 올린다면 많아야 백여가지 동작을 내것으로 만들겠지. 그런데 춤사위는 200여가지가 넘는 춤사위로 구성되어 있잖아. 그러니까 어찌보면 자신의 춤사위는 다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못만들고 죽는다고 보면 되는거야. 남이 흉내낼수 없는 자신만의 동작으로 되고나면 죽어도 남들이 흉내내지 못하지. 백번 천번을 해도 못 따라하니까...

이미 자신의 것으로 된 동작은 엄청난 연습이나 연마가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는 차원하는 큰 선생님들이 연습을 안해도 동작이 나온다, 된다..그리 말씀하시는 거라고 난 생각해요. 몸만 풀면 그 동작이 나와!. 완벽하게 내 동작으로만 되어 있다면 몸만 풀면 얼마든지 내동작으로 나오지만, 그렇지 않을때는 될때, 안될때가 오락가락 하겠지. 그 완벽함을 위해서 끊임없이 연습을 하는 거지.

그리고 내가 계속 연습을 쉬지 않는 이유가 또 있어. 예를 들어 제자가 연습을 해. 내 동작을 흉내내는거지. 그런데 그 제자가 언제까지 흉내만 내겠어. 계속 연습하다보면 언젠가는 나를 뛰어넘지 않겠어. 그래서 난 힘들지만 또 연습을 해. 스승이 제자보다 뒤쳐질수는 없잖아. 나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힘겨움을 느끼지...그래도 연습을 할 수 있을때 까지는 계속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게으름 피지 않고 계속 연습을 하는 거야. 또 안하면 몸이 처질수 밖에 없기에 난 계속 연습을 하고, 연습의 중요성을 잊지 않으려고 해. 계속 해주어야 발전하는것도 있고, 또 적어도 현재이 춤실력이 줄지는 않으니까..어느 부분에서는 체력단력적인 이유도 있고 그래.

사실, 요즘 가르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가 제자들에게 내가 연습하는 시간을 따로 안보여주는것 같애. 요즘 들어서 한 생각인데, 내가 연습하는 시간을 제자들에게 안보여주어서 제자들이 연습을 게을리하나...라는 생각에 이제는 가시적으로라도 나의 개인연습을 보여주어야 하나..라고 생각해. 내가 연습하는 모습을 많이들 봐야지 제자들이 ‘아 나도 선생님처럼 연습해야지...’라는 생각을 갖을건데... 혹시 선생이 매일 노는것처럼 보이는것 아닐까라고 생각해.

 

사실, 저 처음 선생님 뵈었을때, 너무 바쁘시고 수업 많으시고, 서울 부산 오가시고... 그런데 공연스케줄은 너무 촘촘하고... 도대체 저 선생님은 언제 개인연습을 하시고 공연준비를 하실까?? 라는 의문이 너무 컸습니다. 감히 선생님께 여쭙지도 못하겠고 혼자서 내내 궁금해하면서 일정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면서 선생님의 수업을 지켜보고, 선생님의 생활을 들여다보면서 그 의문점이 서서히 풀려갔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공연을 목전에 두고서는 일상생활을 전폐하신단 말이예요. 자신의 맡은 수업도 제자들이 가서 해내고, 모든게 공연을 위한 시간으로 바뀌어요.

그런데 선생님의 경우에는 내 공연연습시간, 내 공연준비시간... 이런게 존재하는게 아니라, 그냥 선생님의 생활에서, 너무 평이하게 선생님이 맡으신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는 누구보다도 가장 열심히 춤추시고, 가장 열심히 공연준비를 하신다는 것을 선생님의 일상생활을 관찰하면서 느끼면서 해답을 얻게 된 부분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냥 생활이 춤이고, 춤이 생활이 된 사람처럼 그렇게 누구보다도 가장 철저하게 열심히 공연준비, 공연연습을 하신다는 것을 관찰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이런식으로 궁금한걸 묻지 않고 일정시간 선생님을 보면서 깨달은게 좀 많아요. 선생님의 경우에는요...

 

수업시간에 구령을 붙여주고, 시범을 보이는거...그게 실질적으로는 내것을 다지는것이고 내 춤의, 내동작의 정확성을 다시한번 다지는 것이라고 난 생각해.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자들이 내 연습을 못봐서 제자들이 게을러지나...그러면 내가 연습하는 시간을 보여주고, 제자들과 함께 하는 연습을 올해부터는 다시 잡아야겠다..라고 생각해. 사실 나는 스승이 연습하는걸 많이 보면서 커왔어.

나는 수업시간에 또 다른 나 스스의 연습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는데, 제자들은 그걸 그냥 수업이라고만 생각하는것 같애. 백선생처럼 연습시간에 또 하나의 내 연습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깨달으면 다행인데. 그냥 수업하시는 선생님, 수업이라고만 생각들 하니까, 일반적인 제자들은...

백선생이 처음에 날 보면서 관찰하면서 생각한것처럼 저게 우리 선생님 연습이고,국악원가서 수업하는게 선생님 연습하는 시간이다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수업은 수업이고 연습은 연습이다라고 따로 따로 꼭 분리해서 생각한다니까. 그러니까 이런점에서는 너희들은 아직 숙련도가 덜 되었기 때문에 수업을 받고, 또 수업을 하고 나서 힘들어도 따로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개인연습시간을 갖어야만 거지. 꼭 따로 시간을 내고, 어느시간을 정해서 연습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생활이 춤이 되고, 춤이 일상생활이 녹아들게 연습하는 것도 어찌보면 더 완벽한 공연준비 자세이고, 춤을 향한 마음 가짐이라고 생각해.

굳이 내가 연습시간을 따로 안갖어도 수업을 하면서 계속 몸을 쓰고, 몸을 풀고, 그 동작을 반복적으로 행하다보면 그게 최고의 연습이라고 생각해.

 

그 예전에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중에, ‘자연처럼 춤을 추어라’라는 말씀처럼, 연습시간, 공연준비시간 이렇게 인위적으로 일상생활속에서 행하는게 아니라, 연습이 생활이고, 춤이 생활이게 일생생활에 녹아드는 그런 연습을 갖어야 할것 같아요. ‘지금부터 딱 공부하는 시간!’, ‘공부는 몇시부터 몇시까지..’이런 인위적인 스케줄에 의한 한정적인 연습이나 공부가 아니고, 생각하는것도 공부고, 흘러가면서 듣고 보는것도 공부고 선생님의 동작을 보면서 느끼는것도 공부고... 일상생활속에 어디나 연습과 공부는 존재하는것 같아요. 어디서나 몸을 움직움직이는 곳이면 자연스럽게 연습이 되고, 가르치면서 또 배우면서 모든걸 연마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품어야 할것 같아요. 그때 선생님이 해주신 ‘대자연처럼 춤추어라’는 말씀이 아직도 제게는 배우고 느낄것이 많은 세계의 조언으로 자리잡고 있어요.

 

어제 권오춘회장님이 오랜만에 오셔서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구. 예전에 나한테 ‘왜 부산을 차를 몰고 가세요? ktx있는데, 쉽고 편하게 다니세요. 굳이 손수 운전해서 다니지마시고..’라는 말씀을 내게 하신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이렇게 답했거든. ‘저는 운전하면서 음악듣고, 공연아이템 생각하고, 동작도 다시한번 생각해보고, 제게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운전하는 시간은 절대적인 생각의 시간이예요. 그 순간에 정말 많은 것을 얻어내고 정말 많은것을 깨닫고 그래요.’라고 말씀 드렸었어.

요즘 회장님이 내가 한말이 뭔지, 그 말의 뜻이 어떤것인지 아시겠대. 회장님도 운전하시면서 음악을 들으시면서 다니시게 되었대. 내말을 듣고, 그러다보니까 춤추는 절대적인 시간이 없으면서도 요 박자에 이런 동작이 들어가면 되겠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음악을 이해하는 면이 점점 커지더라는거야. 어제 이런 말씀을 잠깐 하시고 가시더라구.

 

그러니까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도, 몸이 쉬는 시간에도 생각은 춤을 향해, 춤과 관련된 생각으로 머리는 바쁘신것 같아요. 몸이 움직일수 없는 고정된 상황에서는 머리는 이미지트레이닝을 계속 하시는것 같애요. 그러니까 의식이 있는 시간에는 계속 춤을 추시는것 같아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이미지트레이닝의 중요성이랄까? 물론 이미지트레이닝이 너무 중요하지만... 이미지트레이닝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글쎄... 예를 들어서 ‘저런 동작을 이럴때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 등을 오고가면서(서울과 부산) 다 하지. 이번 공연에는 어떤컨셉으로 가야겠다라든지, ‘아 저거랑 이거랑(아이템) 함께 해주면 좋겠네’ 라든지 모든걸 생각해내지. 사실, 앉아서 생각해내는것보다 오고가며 생활속에서 문득 문득 꺼내게 되는 생각이 많고, 아이템이 거의 대부분이지. 글도 쓸려고 앉아서 쓰는것보다 아이템이 평상시의 생각에서 느낌에서 많이 오는거잖아. 내가 앉아서 무대도면을 어찌 그리지, 어찌 가면 좋지~ 이렇게 하다보면 이게 더 좋은것 같고 아니 저게 더 좋은것 같고 헷갈리기만 하고 결론이 안나. 그런데 운전하면서 자연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면서 거기서 색감의 조화도 깨닫고, 또 의상의 색감 아이템도 덩달아 얻게 되고, 그때 그때 생각이 나는걸 놓치지 않고 바로 바로 접목시켜서 공연아이템이나 공연연출 그런거 얻게 돼. 그런 공연의 성공과 실패의 여부는 관객이 해주는거지. 나도 내 입장에서 이번 공연은 관객이 이렇게 느끼는것 같으니까 다음번 공연에는 이렇게 참고해야지라고 생각이 또 들고... 그런데 이제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올린 공연이 거의 다 성공이란걸 했지. 내 생각에서 빗나가서 된 공연은 없었어.

그러니까 앉아서 아이템 짜려고 해낸 생각보다는 자연스럽게 일생생활속에서 터저나오는 발상, 자연스러운 생각에서 더 효과가 컸지.

예를 들어서 지나가면서 단풍이 든 나뭇잎의 색을 보면서 밑에서부터 든 단풍잎도 있을테고,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단풍잎도 있을테고... 그러면 위에서부터 든 단풍잎의 주황색, 아직 덜든 잎의 연두색과의 조화와 농도, 아니면 거꾸로 든 잎을 보면서 아 저색의 무게감이 더 좋겠다..뭐 이런 비교도 자연스럽게 들면서 내 신체와 접목해서 생각을 하게 되는거야. ‘나는 아무래도 하체보다 상체의 어깨선이 약하니까 약한 부하게 보이는 색상을 선택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에 이번에는 이렇게 가볼까~ 끝동 색깔을 이렇게 해볼까..이러면서 가는거지.

난 아직도 운전하면서 생각하고 생각할께 또 많고, 그러니까 나한테서도 운전대를 뺏지 말아주세요. 내가 집중할수 있는 시간이야. 내가 아직도 기력은 있으니까...(웃음)

 

선생님의 공연문화를 쭈욱 살펴보면서 든 생각인데, 선생님은 연출력도 남다르세요. 한마디로 공연문화의 새장을 여시고 공연문화를 새롭게 선도하시는 분이시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해설이 있는 해설자 문화도 선도하셨다고 생각해요.

또 며칠전에 해주셨던 말씀중에, ‘풍류’판에 비전공자를 세우시는 이유가, 그 옛날의 풍류판에서 흥을 즐기던 사람이 다 완벽한 예인이 아니고 그냥 일반이이었다는 발상에서 기술적으로 완벽을 기하는 전공인보다는 기술적으로 미흡해도 일반인을 세우는게 ‘풍류’의 진정한 의미라는 말씀이 참으로 충격과도 같은 신선함이였습니다. 저는 계속 공연은 전공자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곳, 이런식의 생각에만 빠져있었는데, 사실 그때 선생님의 말씀에 다시한번 놀랬고, 다시한번 생각의 전환이라는걸 갖었어요.

그래서 말씀인데, 사실 저 같은 생각을 관객에 입장에서 대부분이 할거라고 생각해요. 저처럼... 그래서 공연에서 해설자분이 부연 설명을 해주신다거나, 팜프렛이나 그와 비슷한 공연에 관련된 글에서 부차적으로 설명을 해주어야, 선생님의 깊고 디테일한 공연의도가 제대로 살아날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공연에서는 여러 큰 선생님들과의 인터뷰형식으로 가는 것이고, 그런 이야기속에서 자연스럽게 그 옛날 우리선조들이 즐겼던 ‘풍류’판의 의미가 다시한번 제대로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거야.

이윤석, 정영만 선생님들처럼 진짜 풍류판을 즐기셨던 선생님의 진솔한 이야기와 또 ‘우리 풍류나 한번 즐겨봅시다~’라는 멘트와 함께 하는 선생님의 춤을 보면서 관객들은 기량적인 춤을 떠난 진정한 ‘흥’을 즐기게 되는거야. 사실 우리는 춤공연이라고 하면 객석에 앉아서 다들 심사위원이 되잖아. 기량적으로 어디가 어떤지, 연출력은 어떤지, 연기력은 어떤지... 다들 심사위원의 눈으로 춤을 대할려고 하거든. 그게 아니라 흥을 느끼는 무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해.

이번 공연을 통해서 또 내가 춤추는 영남교방청춤의 재조명으로 ‘교방’, ‘권번’의 이야기를 사실적이면서도 또 어찌보면 올바르게 대중에게 전달하는게 이번 공연의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해.

 

선생님, 요즘 들어서 ‘우리것, 우리의 것’하면서 이제까지 전통을 대했던 시선이나 생각보다는 좀 한결 푸근해진 생각으로 우리의 전통을 바라보는것 같아요. 물론 우리가 전통의 한가운데 서 있어서 아직도 너무나 차가운 현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많이 진일보하고 또 앞으로 더 많이 개선되는 전통을 향한 시선과 사고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전통을 향한 정책, 전통을 대하는 시선들이 이렇게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보시는 것들이 무엇인지 여쭙고 싶어요.

 

이번 공연이 또 내게는 중요한 의미이자, 어찌보면 다시한번 공연문화에 새바람을 일으키게 되는 공연이 되지 않을까 싶어.

어제 강소영회장님과, 신동숙이사님께 이번 공연의 연출이나 취지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해 드렸어. 그랬더니 신동숙이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번공연이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공연형태인 학술적인 성격과 함께하는 첫 공연이 될거라고, 색다른 공연이 될거라고 말씀하시더라구.

이번에 내가 하는 공연이(2월 17일 국립국악원 우면당공연 ‘2012 박경랑의 춤- 영남교방청춤 /부제 : 온고지신) 자주 이루어져야해. 이렇게 학술적인 접근을 이루는 전통공연이 더욱더 활성화될때 첫째, 우리가 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재미가 없단 말이야. 새로운 대본 쓰고, 새로운 레퍼토리짜서 하는것도 좋지만, 이제까지의 공연문화를 돌이켜보면, 황진이, 심청이를 소재로 하는 공연이 왜 그토록 인기일까를 한번 생각해봐야해. 다른 이야기도 많은데 왜 심청이일까? 다른 기생들도 무수히 많았는데 왜 황진이일까? 이유는 간단해. 누구나 아는 내용이고, 스토리이기때문에 관객이 입장에서 이해도가 높고 빨리 받아들여서 함께 할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러면 우리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할때는 관객입장에서 이해도를 높일수 있는 어떤것이 함께 수반되는 공연을 해줘야해. 쉽게 받아들이고 ‘아~ 저래서 그랬구나.’ 하고 얻어갈수 있는 공연이여야지. 그냥 한순간 보고 즐기는 공연은 일회성의 공연에서 끝나는 거라고 봐.

‘잘추네, 재미있었네’ ‘아 맞네, 저기서 저래서 그런 춤이 나왔구나~’ ‘그래 저래 가지고 옛날에는 저렇게 놀았구나~’하고 시각적으로 보면 이해도가 더 높아지겠지. 이런쪽으로 해서 이해도가 높은 공연을 자꾸 해줘야 많은 사람들이 전통공연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지.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전통을 접하고, 그러다보면 전통을 향한 정책들이 좀 더 따스한 현실적인 정책으로 갈수 있다는 말씀이죠?

 

그렇지, 누구나가 다가설수 있고 관심을 갖게 되는 전통, 특정인이 향유하는 전통이 아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즐길수 있는 전통이여야지. 그래서 전문가가 필요한것이지만은 전문가들만으로도 다 해결되는 문제는 또 아니야.

대중가요가 왜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을까? 대중들이 쉽게 다가가고, 또 쉽게 즐길수 있으니까 인기가 있다고 봐.

춤보다는 노래는 쉽게 흥얼거릴수 있지만, 춤은 몸으로 하는것이기 때문에 잘못 따라하게 되면 바로 눈에 거슬려 보이기 때문에 더 무서운거란 말이야. 그래서 사람들이 춤은 전문적인 분야의 것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애. 그런데 그 옛날 우리의 춤과 문화는 전문적인 집단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일반인들에 의한 문화였었다고 봐. 다만 끝까지하고 있는 사람이 전문성을 갖고 남게되었다는것이지.

그러니까 아마추어들도 몇십년씩하면 전문성을 갖을수 있다고 봐. 다만 우리가 학부제도가 나오면서부터 전공인, 비전공인의 잣대가 생겨났지만, 난 오래전부터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왔어.

옛날의 큰 선생님들을 보아도 그래, 김수악선생님 등 선생님들 소위 말해서 가방끈 긴게 아니잖아. 김수악선생님 같은 경우에도 8살때부터 기생수업을 받으면서 계속 해왔기 때문에 선생님의 소리가 알려지고 춤이 알려진거지. 만약, 선생님이 일개 기생으로만 살고 말았다면 선생님의 소리, 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겠지. 끝까지 계속 하셨기때문에 알려지고 또 인정받는 분이 되실수 있었지.

그래서 그런 문화를 자주 봐주고, 접해보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번공연의 컨셉이랄까, 공연아이템을 잡은거야.

 

이번 2월 17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 올려지는 공연이 무엇보다도 중요한점이 선생님을 스타로 만들었고, 선생님을 세상에 내놓게 했던 영남교방청춤을 학술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모인, 창단된 ‘영남교방청춤 연구, 보존, 계승학회’가 함께 하기 때문에 공연의 의미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지는것 같아요.

또 요즘, 한동안 멸시되어지고, 그 존재가치가 홀대 받아왔던 ‘교방’문화가 각광받기 시작한것 같아요. 이 교방이라는 것이 선생님의 춤을 떠나서 교방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역사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위해서 만들어진 학회라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 말씀하신대로 해설이 있는 공연이 관객에게 한발짝 더 다가섰듯이, 우리 ‘영남교방청춤 연구, 보존, 계승학회’의 활동으로 인해서, 이 학회가 함께 하는 공연이 해설이 있는 공연이 이끌어냈던 결과처럼 인식의 새물결, 인식의 새바람을 촉구하는 견인차 역할을 해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될것 같애. 솔직히 이 작업은 어찌보면 내가 시작했어야 하는건데, 또 다른면에서 생각해보면 내가 시작했으면 남들로부터 고운 시선으로 안 봐주었을것이라고 봐. 제자들이 너무나 고맙게도 내가 선듯 하지 못하는 부분을 좋은 취지로 시작해 주어서 나로서는 기특하고 고맙고 그래. 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하는것보다 제자들이 하는게 더 낫겠지.

내가 추는 춤이 학회를 통해 더 많이 알려지고, 또 다음, 다음 세대로도 전해지고 하는게 난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어쨋든 이번의 이런 기획이 우리가 하고 나면 또 유행처럼 번져 나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 옛날 내가 해설자가 있는 공연을 하고 난 후에, 전통공연이나 일반 춤 공연에서 해설자가 나타나는 문화가 생겨났던것처럼 말이야.

관객들은 이제 너무 똑똑해지고 객석에서의 경험, 또 다른 매체를 통한 경험이 많아져서 다 알아. 전통의 레파토리에 대해서 많이 알아. 수건들고 나오면 살풀이인줄 알고, 부채들고 나오면 부채춤인줄 알고, 다 알아. 그러니까 더욱더 서면이나 지면이 아닌 현장에서 듣고 바로 이해하는 그런 이해도가 높아지는 공연,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그 즉시 이해하고 느끼게 되는 공연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내가 사실 해설이 있는 공연도 음악공연을 보러 갔다가 해설자가 해주는 설명에 더 이해도가 높아지길래, ‘아 춤도 해설이 있으면 좋겠구나’하고 착안해서 시작하게 된 거야.

춤공 연에서 해설은 간혹 옷갈아 입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게 다는 아니지. 물론 그런 이유도 없지 않아 존재하지만, 더 중요한것은 사람들에게 더 깊게 볼수 있고, 더 잘 느끼게 해주는 포인트를 짚어주는 시간이거든.

 

요즘 관객들은 어찌보면 너무 영악해지고, 문화적 수준도 나날이 높아져가고, 교양이 높아져서 참 무서운 존재인것 같애요. 관객의 입장에서 해설자의 용도나 해설자의 존재이유가 옷갈아 입는 시간을 벌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고, 또는 해설자의 의미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것 같애요. 천차만별의 관객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래. 그런데 또, 현실적으로 해설자가 해설자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주고 그냥 팜프렛의 내용을 쭈욱 읽어나가는 그냥 읽어주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 그건 해설자가 아니지. 그래서 더욱더 관객들은 그 해설이 있어야 하는 시간이 단순히 출연진의 작품전환시간이고 생각하게 되는것 같애. 물론 그 해설이 진행되는 동안에 출연자는 옷도 갈아 입게 되고, 다음 작품을 위해 숨도 고르고 최선을 다할 수 있게 준비하는 시간이 되곤 해. 그래도 해설자의 시간은 그런 출연자를 위해 벌어주는 시간이 아닌, 공연의 포커스에 대한 설명, 공연의 의미, 춤에 대한 깊은 설명 등을 전해주는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봐.

그래서 최종민 교수님같은 분이 최고의 해설자가 되는것 같애. 말씀이 느리셔도 박식하신 분이시니까 많은것을 전달해주고, 또 간혹 본인 스스로가 흥을 돋구어서 흥얼거리는 해설자가 되니까... 진옥섭씨는 최종민 교수님과는 또 분위기가 다르지. 한쪽은 너무 무겁고, 한쪽은 너무 가볍고... 이 두분의 중간에 가는 또 다른 해설자가 나와야 한다고 봐. 아직까지는 없지만...

 

맞아요.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몇가지를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생각하시는게 무엇인지? 개인적인 생각, 제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무엇이신지...

 

내가 저기(족자)에 글 써놨듯이,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것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욕심이 있어야해. 이왕 하는것이니까 다른사람들 보다 더 좋은 위치에 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은 다 기본적으로 깔고 가는거야. 기본 베이스야. 그러나 그 기본베이스 위에 꾸준히 열심히 해 나가는 정신, 마음가짐... 그런게 있어야 한다고 봐. 남들이 할수 없는거, 남들이 하지 않은 무언가를 해보는거, 추진해 가는게 중요한거지, 남들이 이미 했던것을 흉내내서 따라하는 것은 그런것은 아니라고 봐.

그러니까 자기춤을 만들어라하는 말은, 똑같은 춤사위를 가지고 체격이 다 다르고, 성격이 다 다르기때문에 다르게 표현할수 있단 말이야. 또 그렇게 표현되어지고 있고, 그런데 그 실상이 남이 보았을때 거부 반응이 오면 안된다는 거야. 어느 누가 보아도 자연스럽게, 걸려지는 부분이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춤이 되도록 계속 연마하는 수밖에 없다고 봐. 진짜 연습밖에 없어. 이런말은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다 그렇게 말할꺼야. 그러니까 계속 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야.

힘이 들어도, 힘에 부쳐도 이런 이유에서 계속 해나가고 있는것 같애. 내 경우에는.. 이것밖에 할수 있는게 없기 때문에, 이것만큼 잘할수 있는게 없다고 생각했기에 이제까지 이걸 쥐고 왔다고 봐. 분명 다른게 할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그 길로 갔을지도 몰라. 그래서 꾸준히 하는것이고, 다 일등 될수는 없고 또 다 꼴지가 되는 것도 아니잖아. 마음가짐은 일등을 향해서 달려가고 그러면서 단계적으로 그 마음가짐에 가까이 갈수 있다고 생각해. 누구나가 중도하차 하지않고 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만약에 중도하차했다가 다시 시작하게 되면, 그만큼 남들에게 뒤지게 되니까, 내가 쉬는 동안 다른사람은 계속 가고 있었으니까... 쉽게 말해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지.

조금 늦추면서 가도라도 계속 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하루에 열번할거 열한번 하고, 그러면서 가능성을 늘려가는 거지.

 

선생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쭈어 볼께요. 박경랑하면 많은 사람들이 교방춤, 영남교방춤을 열명이면 여덟명이 떠올리지만, 사실 선생님이 추시는 춤이 영남교방청춤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너무나 많은 주옥같은 춤을 추시고, 레파토리로 갖고 계신데 그래도 많은 분들이 선생님하면 떠올리는 춤이 바로 영남교방청춤이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학술적인 정의를 떠나서, 문득 색깔론적으로 설명할수도 있고, 인생론으로도 정의내릴수 있고, 누구보다도 본인 박경랑이 생각하는 영남교방청춤은 무엇인지, 어떤 정의를 내리시는지 궁금해요.

 

내가 느끼는 영남교방청춤...?

 

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영남교방청춤...

 

춤쪽으로?

 

춤쪽이든, 철학적이든, 선생님께 있어서 의미랄까? 영남교방청춤의 의미, 정의 이런것들이요.

 

내가 영남교방청춤이라고 추어서 각인화가 되어서 그렇겠지만, 어쨋든 내가 이 춤을 출 기회가 많아. 어느 공연에 초대 되어도 이춤을 추게 되고, 좋든 싫든..

그러다보니까 이 춤을 출수 밖에 없고, 실력이 나날이 늘 수 밖에 없어.

 

네, 선생님은 곧 영남교방청춤이라는 공식이 되어 있는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디서 공연을 해달라고 초청이 들어와도, 나는 이번 초청공연은 살풀이를 하고 싶어도, 영남교방청춤을 춰야하는 경우가 많아. 내춤이 교방춤만 있는것은 아닌데 말이야. 그러다보니까 다른춤보다 이춤이 잘 춰질수 밖에 없는것 같애. 절대적으로 많은 무대에 서게 되고, 많은 연습을 하게 되고하니까...

내가 알고 내가 느낀 교방춤은 계속 이 춤을 추면서 내 자신을 다스리는 것도 되고, 그러다보면 아, 이춤은 박경랑만의 특유의 춤사위가 있는, 박경랑만이 할수 있는 춤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어찌보면 거만해질수도 있는 말인데, 거만해지기보다는 그 소리가 더 무서워지는 거지.

어떤 목표를 향해서 앞만 보고 올라갔는데, 그 목표치에 어느정도 도달하고 나니까 그게 더 무서워지는 거야. ‘어~ 왜 저것밖에 못추지?’ 이런 소리를 들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되는 거지. 이럴때 순간순간 내가 그런 생각을 어떻게 차고 나가느냐, 버티고 나가느냐... 마음다스림... 그러니까 거기서 ‘더도 덜도 말고’라는 말을 내가 딱 생각해낸게, 더 잘출려고 하면 어찌보면 더 추해지겠구나.

그냥 남들이 편하게, ‘아 저 춤’하면 박경랑이라고 봐주는 것으로 만족해하고, 계속 그 자리를 지켜주는거, 그리고 처음 배울때의 그 마음으로 계속 가주는게 좋지. 거기서 부담을 느끼고 더 잘해야지 더 잘해야지라고 생각하는것은 아니라고...

그래서 최근에 느낀것 중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라는 말이 이런뜻인가보다라고 생각해요.

 

네,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좋은 말씀... 다음에도 다시한번 좋은 경험, 좋은 말씀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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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女の座標

연구논문 2012. 2. 29. 16:06


彼女の座標

いまこの時点での韓国舞踊界とパクキョンランの立ち位置

 

李 美 喜

 

ある日の夕刻のこと、わたしは孝昌洞の彼女のスタジオの前にいた。まだ移転して半年たらずのスタジオは、比較的新しい高層マンションのそばの、やはり新しい四角い建物の3階にある。1階と2階は不動産だが、上のフロアは詩調を教えるやはり伝統芸能のスタジオであることが彼女は入居当初かなり気に入っているようだった。約束の時間に十分間に合っていることを確認して、わたしは階段を上り始めた。伝統を意識した雅な文字体で書かれた、看板に明かりが灯る頃だった。

 

その週末は、普段彼女が釜山で教えているお弟子さんたちがソウルにやってきて一泊二日の特別授業が行なわれていることは知っていた。レッスンが終わる時間に合わせて約束をしていたのだが、薄暗い階段を上るにつれなんだか、どうやらいつもと雰囲気が違う。いつもは舞踊の練習曲、つまりオーディオでかける伝統音楽が漏れ聞こえているか、まったく静かな場合は彼女はひとりで床の雑巾がけをしていたりする。わたしは耳を潜めて、今日がそのどちらなのかを前もって判断するのであったが…。何かが聞こえる、だがクッコリ長短のシナウィではない。遠慮なく開け放したドアから聞こえてくるのはポンチャック、演歌歌謡だった。

 

中に入ると阿鼻叫喚図だった。中年をゆうに超える弟子の女性たちと彼女がディスコ入れ子状態で踊り狂っていたのだ。呆気にとられていると若いお弟子さんが訳を話してくれた。レッスンが終わり食事をして、腹ごなしに踊っていたところだったのだという。彼女はDJよろしく次々と曲をかえては同世代の、もしくは彼女よりずっと年上に見える教え子たちをヒートアップさせるのに夢中だ。妖しいダンスはやがて、群舞のエアロビクスへと変わっていった。各々踊っていた女性たち、先生の後ろに列をつくっては、「さあ!さあ!」という彼女の掛け声にあわせて額に汗を浮かべている。小さな体躯から次々と繰り出されるアクションとキレのいい一連の動作、迷いのない振り付け。彼女のエアロビがあまりに堂に入っているのでもう一度訊ねてみた。

 

「先生はね、伝統舞踊だけで生計を維持するのが難しかった頃はエアロビの講師もやっていたの」。今でも若い舞踊家たちがヨガやピラティスなどの講師をバイト感覚でするのはよくあることだが、幼い頃から正統派の舞踊一筋のお姫さまのように見えていた彼女に、そんな過去があったとは知らなかった。正直面食らった。が同時に、もしかしたら彼女はその過去を恥ずかしがるかもしれないが、わたしが彼女に対して抱いていた或るひとつの憶測が確かなものになった瞬間でもあった。彼女は、身体とは何か、を知っている。

 

■ x=身体性

 

わたしは殆どの韓国舞踊家たちと違って、幼い頃から踊りを学んできたのではなかった。オーケストラやインドネシアなどの民族音楽の楽器に触れるうち、楽器を演奏する音楽家の姿勢、それも精神的な意味での姿勢ではなく肉体的な姿勢、動作が気になり始めた。マリンバ奏者の目にも留まらぬ素早いスティックさばきから生まれるアルペジオの連続や、ガムラン奏者がちょっとした音の隙間で空いた手を空中で揺らす動きなど、一流の音楽家たちの動きや身体のブレのなさは一流の舞踊家にも匹敵すると考えていたのだ。やがて演奏することと踊ることは非だが似るもの、音楽を奏でることと踊ることの原初の目的やその根本は同じなのではないか、という予感を抱くようになったのだった。特に韓国音楽をやっていると、楽師は踊りを理解し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亦逆も然り、ということをよく耳にした。その言葉を頭では理解できるような気がした。だが頭を超えて身体で理解することとは何か。つまり音楽にも踊りにも流暢になることは可能だろうか。例えば、ソンバンソルチャングの名人などのように。ミュージシャンの身体がダンサーの身体にどれだけ近づけるのだろうか。その二つのからだはまったく別のものなのか?もっと視野を広げて、あるからだを韓国舞踊の身体、バリ舞踊の身体と分け隔てるものとは一体何なのか。身体性に近づくためのその実験を自ら試してみたくなったとき、わたしは最早居てもたってもいられなくなって、チャングチェを置いてポソンを履いていた。

 

しかし韓国の伝統舞踊家たちのほとんどは、身体性に対してあまり意識的ではないようだった。年配の舞踊家には太っている人も多いことは意外だった。跳躍や俊敏でアクロバティックな動きがないせいか、なにか特別な身体能力を兼ね揃えているようにも見えない。韓国舞踊は気の流れや呼吸、という言葉でよく説明されるように、踊りの動きそのものを概念で言い表すことが多く、筋肉がどう関節がどうという言い方をまずしない。バレエやコンテンポラリーダンスの踊り手たちのように練習前後に入念なストレッチをするなどということも見かけない。その理由のひとつには、韓国舞踊家たちは幼い頃から学生時代を終えるまで終始一貫して伝統舞踊科を卒業し、以降も伝統舞踊のみを続けるいわばエリートたちであることも関連しているだろう。伝統舞踊に必要な身体というのが、あらかじめ出来上がっているということだ。しかしそれは一人のダンサーとしてはどうなのだろう。韓国の伝統舞踊手たちはあまりに自分の身体性について無自覚なのではないだろうか、という不満がいつも頭の片隅どこかにあった。

 

彼女は踊る身体について、言葉で説明するのが巧みだ。ひじの関節の角度について、腹筋の使い方について、彼女なりのオリジナルな説明理論というのを確固している。その言葉は、彼女がどれだけたくさんの教える時間を過ごしてきたか、また彼女がひとり練習室の鏡の前でどれだけ孤独な時間を過ごしてきたかをこっそりと打ち明けているようなものだ。エアロビクスを教えていたと聞くと、他の舞踊家たちなら卒倒してしまうだろう。「バレエや体操、他のダンスやスポーツをすると、韓国舞踊に不必要な筋肉がついてしまう。韓国舞踊以外の身体を使うこと全般を避けるべきである」というのはこの世界の不問律なのだが、そういう荒唐無稽なことを言ってはばからない人に彼女の踊りを見てもらいたい。そもそも身体とはなにか、という問いを投げかけるのに伝統舞踊、エアロビクスというジャンルは不問なのではないだろうか。むしろジャンルを超えた一個のからだとしての身体性をより深く追求したことがある点で、他の伝統舞踊家たちよりも経験値は抜きん出ているかもしれないとすら思う。華奢な体躯を見れば誰でもわかると思うが、徹底的に抑制された身体を持っている。それは彼女が踊りのために身体を作ってきた、歴史の証明だ。

 

身体の本質に触れれば、バリ舞踊も韓国舞踊も、さほど差異はないのではないか、と思うことがあった。それは例えば、ある和音にもう一音加えるとジャズ風になったり、抜くと古典的になったりする程度の差なのではないか、ということだ。振り付け方の美学や音楽との約束が少々違うだけで、結局ダンサーに必要な身体性への目覚めという点では踊りという行為はなにかひとつのものに集約されてもいいのではないか、という推測だ。その推理が彼女によってひとつの臨床例を得たというような、そんな気分だった。多くの伝統舞踊家たちがあまりにも当たり前に、なんとなく享受している身体感覚を、彼女は非常に自覚的に意識している。それは彼女の運動量の多さ、首や肩の線の見せ方などに顕著に現れている。鋭い計算を可能にする身体能力を、彼女は持っている。身体に対する研究、さまざまな方法で実際に身体を動かしてきた時間が故の技術だと断言できるだろう。

 

■ y=独創性

 

彼女の踊りには、しばしばたっぷりのサービス精神が表れる。観客と踊り手という垣根を越え、客席にアピールしたり、時には観客と手をとって踊ってみたり、という舞台の上から降りてきてのサービスを惜しまない。エアロビクスも、教え子たちに楽しんでもらいたいという彼女のサービス精神のあらわれだったのだろう。もっと身体を動かしてもらいたい、日ごろのストレスを吹き飛ばしてもらいたい。楽しく遊んでもらいたい。レッスンだからといって手を抜いたりリハーサルだからといって加減をして踊ることを許さない、練習と舞台とを区別しない舞踊家としての気持ちが、そんな形で表出したのではなかったか。遊びの心を伝えたいという思い。遊びとは、必ずしもお金を使ったり、酒を酌み交わすことだけではない、風流を楽しむ粋を解する心のことを指すことを、伝統舞踊を志向する者同士、風流を酌み交わそうではないか。という彼女からのメッセージが読み取られる。

 

彼女は風流の場づくり、風流を楽しむということに一層こだわりがあるように見られる。何故ならば彼女の踊り自体が、風流の場から生まれたものであるからだ。教坊舞とはつまり、芸妓の踊り、芸妓が風流を解する者たちの集いの場所で、踊っていた舞が継承されているものだ。しばしば作品の中でもかつての風流の場の再現、教坊舞の根源への問いかけが見られる。舞台の上を風流房と見立てて書道家とのセッション、民謡とのコラボレーション、舞台上で車座に座った客たちが順番に踊りを披露していくように見立てた作り、などがそうだ。かつての教坊とは何だったか、という想像をかき立ててくれると共に、ひとつの作品を毎回踊り続ける伝統を見守る観客たちへの、飽きさせないためのサービスであったことは間違いない。

 

作品数が多くない伝統舞踊は、ともすれば毎公演が同じことの繰り返しだ。ひとりで踊るのか、弟子が踊るのか、ソロなのか、群舞なのか。CDか、生演奏か。サルプリと、僧舞、チャングチュム、太平舞、いくつかのレパートリーを繰り返すばかりだ。例えばバリ舞踊と比べて見ると、

バリ舞踊には女舞、中世的な舞、男舞というのがある。中性的な舞には女性が男装をして踊るものというトランスジェンダー的な設定があり、これは女性が踊るものである。寺院で奉納の際に踊られるものだけでなく、娯楽目的のもの、舞踊劇形式になっていて歌いながら踊るものなど、形式の数も作品の数も大変多い。村で、また学校で今なお新作が作り続けられていおり新作も人気があれば、瞬く間にバリ全土に広がって古典作品と同じように踊られるようになる。

 

そんな中で彼女の公演には、飽きさせないための装置が非常に豊かだ。燕山君の寵愛を受けたジャン・ノクス、稀代の芸妓として歴史に名を残すファン・ジニをモチーフにした舞踊劇への挑戦はその最たるものだ。観客に新鮮なステージを見せたい、という思いと共に教坊舞がこの世に存在する理由に対する解釈を解りやすく切り取ってみたい、という熱意が感じられる。作品の中に出てくるのはサルプリ、教坊舞など古典作品で、踊りに関しては伝統そのものであった。いたずらに伝統をもとに現代的な創作をしたり、捏造したりなどしなくても伝統そのままで本来のすばらしさを現代に伝えることは出来る、という姿勢は、創作舞踊に傾きがちな韓国の舞踊界で異色の光を放っている。

 

こんなエピソードもある。流派の違う現代の名舞踊家8人の作品を一度に鑑賞できる「八舞伝」(2009年・KOUS)では五日間にわたって全8回の公演がなされたのだが、彼女は舞台に立つ度に衣装を変えた、つまり八着の衣装を用意したのだった。舞踊家として毎回新鮮な心持ちで舞台に挑みたいという意欲と、すべての舞台を見に来るマニアックな観客のためのサービス精神が現れた例だ。また、こんなことも言っていた「かつての芸妓たちが毎日同じ衣装で踊っていたかしら」。

 

伝統をいかに大衆化するのか、というのも彼女の舞台からしばしば読み取れるテーマでもある。

伝統を過去のある時点での化石にしてしまうのではなく、今なお息づき人々から愛される伝統の継承の仕方とは何か、という試みだ。伝統芸能の大衆化、現代化というときにすぐに想像されるのは、透けた素材のモダンなチマチョゴリを着た舞踊手たちが飛んだり跳ねたり、パンソリをバックに男性ダンサーが床を転げ回ったり、という方向性に傾きがちなのだが、彼女の試みはかなり赴きが違う。先に述べた舞踊劇形式の公演もそうだが、踊りそのものは決して変えない。見せ方を工夫するだけで伝統舞踊の可能性は無限に広がるのだ、ということを彼女は示したいのだろう。

 

音楽についても彼女の独特な思想が反映されている。長い時間培われた伝統芸能そのものの力を存分に発揮できるように、生伴奏にこだわる彼女だが、コムンゴ一台の独奏に合わせて踊ったり、ときには歌謡曲を作品に使ったりもする。歌謡曲の登用は伝統から遠ざかった大衆へのひとつのアプローチだ。伝統舞踊界の中ではひときわ毛色の異なった手法であり、賛否両論も大きいだろうが、彼女のこだわりも垣間見える。歌謡曲だからといって勿論ポップスやロックを使うのではない。彼女が見つめているのは今も昔も変わらない、韓国人を韓国人たらしめる精神世界の原点-情緒。韓国的な情緒を感じさせてくれる現代の音楽を使って、古典を親近感あるものとしてよみがえらせようとする挑戦を試みる果敢な姿だ。

 

そのように、彼女の作品づくりには、「これはこういうもの」「これは以前からこうして来た不変のもの」という概念がない。固定概念や、常識と信じて疑わなかった事柄に対する姿勢が非常に柔軟なのだ。あの日のエアロビクスも、彼女らしいやわらかい発想に基づいたものだったのだろう。かつての風流の場には、酒と詩と古典舞踊があった。現代の風流の場なら、歌謡曲とエアロビクスがあってもいいんじゃない?そんな茶目っ気の効いた提案だったのではなかっただろうか。

 

■ z=冒険心

 

なによりも彼女の舞踊を唯一無二なものに特徴づけていることといえば、流派がないということだろう。韓国舞踊の世界において、流派への所属は絶対だ。よく目にするのはイ・メバン流、カン・ソンヨン流、ハン・ヨンスク流あたりではないだろうか。理由はいたって簡単で、この三つの流派の「サルプリ」「僧舞」「太平舞」三つの作品が重要無形文化財の指定を受けているからだ。からくりはこうだ。それらの流派の文化財該当作品を何年か学んでいると、免許皆伝つまり資格を取ることが出来る。資格至上主義はなにもMBAや会計、経済、法律などの分野に限った話ではなく社会全体の傾向であるから、舞踊家たちも肩書きを望むのは同じところである。そうやってこの三つの流派の三つの作品に、舞踊家たちは集中するのだ。

 

彼女ももちろん、かつて師匠たちの下で学んでいた頃にそれらの流派に接したことがないわけではない。学生時代を一貫して舞踊科で過ごしていたから、授業ではそれらの作品を長い間踊っていたであろうことは間違いないし、コンクールに出場していた頃はイ・メバン流サルプリを踊っていたこともあった。コンクールに出場する際の作品は以上の三つのどれかで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のは暗黙の了解であり、舞踊科入試のときにはそれを明記して指示することがほとんどだ。先にも書いた通り、韓国舞踊のレパートリーはいつの間にか非常に貧弱なものになってしまった。いつしか、そのような流派という大きな力の庇護から離れてオリジナルな踊りを求めるようになったところに、彼女の彼女たる所以がある。

 

オリジナルといえども、彼女の独創的なという意味よりは、原始的なという意味の方が合っている気がするのは、彼女が常に「教坊舞とは何だったのか」という探求を続けているからだ。もしかしたら彼女は、流派から疎外された踊りたちの復活を目論んでいるといっても過言ではないかもしれない。舞踊界の視線が三つの作品に集中するほどに、それ意外の作品が関心を引かなくなっていったことは否めない。キム・スクジャ流やイ・ドンアン流などかつての名人たちの名前を冠した流派ももちろん存在するが、圧倒的に少数なのが現実だ。カウンターカルチャー的に人気を集める地方のサルプリ(トルクボル・サルプリや湖南サルプリなど)もあるが、やはり地方の行政地区ごとに定めた文化財に指定されている作品である。いくつかの代表的なレパートリーに飽き足らない若手たちが、踊りの原点を探して昔の作品を復刻している例もある。チョ・ガムニョ流僧舞がそうだ。チョ・ガムニョは若い時分に芸妓であった。芸妓を辞めて数十年踊りから遠ざかっていたが、近年請われて度々舞台に立っている。そのような踊りを研究することは、およそ50年程前の舞台芸術化される以前の伝統舞踊はどのようなものであったかを分析するには役に立つだろうが、技巧が発達した現代の舞台で公演するには、芸術性においてかなり物足りない印象を与えるのも事実だ。

 

そんな中にあって人気を集めながらも、主流ではなく独自の路線を歩く彼女の姿は、前例がないことを避け、師匠の言い伝えを忠実に守り、肩書きや社会的地位に弱い、そんな伝統芸能の世界では非常に異質な存在である。だからこれまでの道のりも決して平たんではなかっただろう。ただでさえ厳しい伝統芸能の世界で、誰も歩まなかった道を歩くというのはどれだけの覚悟を必要としたことが解らない。舞踊家の道というのはおよそ、舞踊団に所属するのか、師匠の下で研鑽を積むのか、博士号を取得して学校教授を目指すのか、くらいに集約されるのだが、彼女の場合はそのどれにも当てはまらない。それでエアロビクスの講師をやっていたことも、すんなりと納得がいったのだった。

 

彼女ほど踊り手らしい踊り手はいないのではないか。まず、公演の数の多さに驚く。請われて踊る、というのは踊り手冥利に尽きるし、ギャランティも発生するわけだから多くなくては困る。実際に外部の企画公演への出演は多い。だが、驚くべきなのは彼女自身が企画する、自主公演の多さだ。ソウル、釜山などを中心に全国規模でおよど年に2,3回のペースで独自公演を行っている。それも、毎回趣向を変えながら-これはレパートリーが少なく、公演の形式事体が形骸化している伝統芸能の世界では本当に珍しいことだ。前述の舞踊劇や、歌謡曲や書道など異なるジャンルと舞踊の融合、彼女は「初めてのこと」にとり組むことに非常に旺盛で、果敢だ。

 

記憶に新しいのは2010年に大阪で活躍する前衛身体表現の劇団である「態変」との共同作業だ。

第二次大戦中、日本の植民地化にあった朝鮮で独立運動の士であったファン・ウンドとその妻で伝統舞踊の名手であったキム・ノッチュを題材にとったストーリーは彼女をすぐに虜にした。

韓国初演に縁あって参加した彼女は、すぐに伝統音楽の生演奏をバックに、自らも出演しての再演を申し込んだ。相手は言葉の通じない前衛パフォーマンスアート集団。作品は韓国伝統をテーマにはしているが、伝統芸能への理解はどう見ても乏しかった。それが彼女には残念で、もっと彼らに伝統芸能の真髄を知ってほしい、そうすればもっとすばらしい作品になるのに、という思いが強かったのだろう。伝統を愛する者として放っておけなかったのではないか。それにしても彼女の思い切りと行動力には舌を巻く。態変とその作品に、出会ったその日にはもうバージョンアップしての再演の提案をしていたのだから。

 

印象に残っている中では、固城五広大に登場する踊りのひとつであるムンドゥンイ・プクチュムを彼女が自らのレパートリー化した作品が強烈だ。国家重要無形文化財7号にも指定されている 固城五広大は、慶南の海沿いの街固城で古くより伝わる仮面をつけた男たちの舞踊である。

その中のムンドゥンイ・プクチュムとは、ハンセン病患者が小さい太鼓を手に持って踊る作品だ。彼女の生まれが固城で、外祖父が五広大の名人であったこととは無関係ではないだろう。

実際に固城五広大の面々たちと共にしてきた公演の数は大変多い。だが、美しい女性の媚態を表現する教坊舞の専門である彼女が、お笑いやコメディ的な文脈で踊られる病身チュムに自ら挑戦したのには何か特別な思いがあったはずだ。

■ 突き抜ける放物線

 

伝統舞踊という枠組みを超えたい、伝統と外の世界の垣根を取り払ってみたい。そうしながら何度でも伝統に立ち返る。彼女の作品づくりからはいつもそのような思いが伝わってくる。流派はなんだって韓国舞踊であることは同じ、ただひたすらに「巧い」「上手い」踊りを目指すのみであるというストイックさ。前衛でも古典でも、身体の真実を追及する心は同じ。男踊りも女舞も、教坊の中での踊りもマダンで踊られる汗臭い踊りも、風流の精神から生まれた同じ踊り。その信念を公演やレッスンを通して実現させていく行動力と、前代未聞の挑戦を次々と成し遂げていく冒険心。だが、彼女ならあっさりとこう言うに違いない。伝統の世界で新しいことをやっているから前代未聞のように思われるだけ。広く芸術の世界を見れば、そんなこともたいした問題ではないのだ、と。

 

果敢な挑戦を続けているわりに、本人はいつも涼しそうな顔なのだ。その表情が、彼女の舞踊への探求がまだまだ止どまることを知らないのを物語っている。小さな体躯とほとばしるエネルギー、大胆不敵な行動力とその舞の繊細さ、そのギャップに魅せられて、今日も孝昌洞のスタジオに人々が足を運んでいることだろう。

국 문 초 록

 

그녀의 좌표 –지금 이 시점에서의 한국무용계와 박경랑의 위치

 

저자는 2006년부터 서울에 살면서 전통예술, 특히 연희와 민속무용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박경랑선생님과는 수많은 공연을 보고 공연장을 돌아다니다가 아는 사이가 되었다. 어떤 공연장에 가도 박경랑선생님은 무대위에 항상 계셨다. 그 만큼 공연이 많은 실력으로 인정은 받은 인기 무용수이시다.

 

저자는 학교에서 연희를 배우면서 동료인 전통예술을 지향하는 젊은이들이 감각을 알게되었지만 그 것은 알면 알수록 실망스러웠다. 그들은 전통에 워한 경의나 탐구심을 품지도 않고 매일 사물놀이를 가지고 용돈을 벌으면서 술을 마시며 재미있게 사는 것에 밖에 관심이 없었다. 편한 친구들과 팀을 만들어 현대인의 감각에 맞게 재구성한 전통연희 공연을 펼치며 스타가 되기를 꿈 꾸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것은 조금 희한하고 복잡한 가락을 사용한 사물놀이일 뿐이었거나 단순한 코메디 연극에 탈춤이나 상모를 돌리는 장면이 나올 뿐인 깊이가 없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무용과 접하면서 무용가들의 정신세계에 지쳐버렸다. 그녀들은 이쁘게 꾸미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것이 지상의 기쁨이라고 생각하여 거짓말을 하고 어떻게 하면 선생님이나 선배한테 잘 보일까에 무척 신경을 많이 쓴다. 어릴때부터 춤을 추워 춤밖에 모르는데 남다른 자존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너무나 술을 좋아하고 연습에 개을리며 정신적으로 독립되지 못하고 항상 누군가에게 기대고 있었다. 예를 들면 공연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연습을 절처히 하고 몸을 아끼며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고, 쓸떼없는 남의 소문이나 욕을 안하고 삶에 열정적이고 춤에 대해서 진지하고, 사람으로써 독립적이고 그러면서도 사람다운 맛도 있는 그런 제가 꿈에 꾸던 무용가는 이제 한국에는 찾을 수 없을 것인가.

 

박경랑선생님은 여러가지로 한국 전통무용계에서 독특한 무용가다. 수업중에는 열정적이고 대충 춤 출줄 모르는 모습은 아름답다. 샘물 처럼 넘치는 새로운 작품 이미지를 들면 언제나 놀리게 된다. 류파에 속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서는 아주 힘겹고 고독한 선택이지만 모둔 일을 해내고 있다. 그리고 춤 실력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가끔 술에 춰하여 눈가를 붉게 물드린 모습을 보면 사랑스럽기도 한다.

 

이 에세이에서는 박경랑선생님의 특칭을 x축을 신체성, y축을 독창성, z축을 모험정신에 설정하고 분석을 해보았다. 선생님이 한국무용계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가 죄표위에 입체적으로 떠오를것이다. 일상 생활속에서 또한 무대위에 펼치는 작품을 통해서 박경랑선생님의 매력과 그 예술세계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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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의 집(KOUS)

8월 9일 수요일
박경랑 과 영남춤 의 향기


● 공연일시 : 2006.7.26~8.30 총 5회
(매주 수요일 오후 7:30)
※ 8월 23일은 KOUS 방학맞이 체험으로 인해 공연이 없습니다.

● 장 소 : 한국문화의집 KOUS (코우스) 2층
● 주 최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 관람문의 : 02)567-4055
● 예약방법 : 인터넷 예매 만 가능 www.kous.or.kr

프로그램

8. 9 박경랑, 춤사위에 묻어나는 향기

공연내용 및 순서
1. 산조춤
산조 음악은 시나위 음악에서 재구성된 음악으로써 여러형식의 음악이 있으나 오늘 박경랑은 거문고 산조에 맞추어 추는 산조춤이며 여인의 마음을 표현하는 춤이다.
출연: 박경랑

2. 용선놀이 춤과 오방풀이 춤
고기잡이 가기 전 오방신들에게 제를 올리며 기원할 때 액막음 춤으로도 추어 왔으며 또한 망망대해의 억울한 넋이 된 망자의 혼령을 천도할 때 추기도 했던 남해안 별신굿에서 나오는 용선춤과 살풀이춤 그리고 오색지전 춤을 엮어서 추어지는 남해안 일대 어방굿에서 전해오는 춤이다.
출연: 정석진 (용선놀이)
박경랑 (오방풀이춤)

3. 진주 교방굿거리춤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 2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진주 지역의 권번에서 추어져 내려온 굿거리 춤으로 대개는 굿거리 장단에 맞추어 끝나는 춤이지만 흥이나면 소고를 들고 자진굿거리 에 맞추어 추기도 한다.
출연: 박경랑

4. 승무(지성성무)
수도승의 고해와 번뇌를 표현한 영남형의 승무로 회색무복과 가사장삼의 복식이나 춤사위 또한 다른류의 승무와 다르며 박경랑의 스승인 고 조용배류의 영남형 승무를 재구성한 춤이다.
출연: 박경랑

5. 풍류가 흐르는 곳

“매화 그림자 드린창에
비녀꽂은 미인 앉았고
두, 세명 선비들 거문고와 노래로다 이윽고 잔들어 권할제
달이 또한 오르더라“
-안민영의 매화사 中 에서-
풍류를 모르는 선비를 어찌 선비라 말할 수 있으며, 멋과 풍류를 모르는 사람을, 또한 문화를 모르는 이가 어찌 문화인이라 하랴. 거문고를 타고 느릿느릿 흥겹게 오래하고 술 한잔 권하고 덩실덩실 춤추며 글도 쓰고 시로 옲고 둥근 달이 둥실 둥실 떠올라 풍류을 더합니다.
우리의 악, 가, 무를 한데 모아 선조들의 예기와 멋, 흥과 한의 조화를 무대에 재현하며 선조들의 문화 정서를 느껴보고자 구성한 작품이며 그 가운데 박경랑의 대표적 춤 영남 교방청무가 선보이다. 이춤은 영남 지역의 허튼 춤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인 섬세함으로 박경랑의 외증조부인 중요 무형문화재 제 7호 고성오광대 탈놀음의 대가의 故 김창후, 박경랑의 스승인 故 조용배, 그리고 박경랑에 이어져 오고 있다.

영남 교방청춤: 박경랑
서화: 전기중(서예가)
글 : 서종훈(도예가)
성주풀이춤: 영남춤보존회 회원
가야금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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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간 일본 나고야의 ‘놀이판’을 방문하여 한국의 전통예술을 가르쳐 온 한국의 명인들이 함께 <판굿>으로 눈앞에서 재현된다.

채상소고춤의 명인 김운태, 통영굿의 지킴이 정영만, 춤추는 농사꾼 이윤석, 영남춤의 편력자 박경랑, 우리시대 최고의 가객 장사익,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꾼들이 나서는 것이다. 또한 도살풀이춤의 이정희가 이나가키 마사토를 춤으로 해원하고, 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훈훈한 연출이 가미되어, 광복절 기념을 넘어서서 자이니치(在日) 민족문화의 미래진행형을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잔치를 빚어낼 것이다.


일시 2010.8.14(토) 오후 3시 30분, 7시 30분 (2회)

장소 코우스(KOUS)-한국문화의 집

기획연출 진옥섭

출연 장사익, 이윤석, 이정희, 변인자, 김운태, 박경랑, 채효

일본 나고야 놀이판-이즈미야 다이스케 외 26명

한국 노리안 - 양호성 외 16명

 

징소리를 통해 한국의 소리와 춤에 빠져 든 사람이었다. 놀이판의 공동 창설자 이나가끼 마사토. 늘 태평소 부는 가수 장사익을 동경이나 나고야 보다 먼저 초청하여 공연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친구들은 암으로 죽음을 앞둔 그에게 장사익의 콘서트를 선물하였다. 2000. 2. 25일, 이나가키마사토는 이승 친구들의 마지막 선물을 받았고 5일 후 세상을 떠났다.

죽어 가는 친구를 위해 콘서트를 선물한 사람들, 멋이 사라지는 시대 멋을 아는 사람들의 멋진 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콘서트”라 명명되었던 사연이 2003년 8월 17일 KBS 일요스페셜 ‘자이니치(在日)의 축제’로 방영되었다.

그리고 7년 후 2010년 여름. 그 감동이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던 나고야 ‘놀이판’초청하여 15년 간 일본 나고야의 ‘놀이판’을 방문하여 한국의 전통예술을 가르쳐 온 한국의 명인들이 함께 <판굿>으로 눈앞에서 재현된다.

채상소고춤의 명인 김운태, 통영굿의 지킴이 정영만, 춤추는 농사꾼 이윤석, 영남춤의 편력자 박경랑, 우리시대 최고의 가객 장사익,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꾼들이 나서는 것이다. 또한 도살풀이춤의 이정희가 이나가키 마사토를 춤으로 해원하고, KOUS 예술감독 진옥섭의 훈훈한 연출이 가미되어, 광복절 기념을 넘어서서 자이니치(在日) 민족문화의 미래진행형을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잔치를 빚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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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 연구.보존.계승학회에서는 영남교방청춤을 계승해 나갈 역량있는 영재 발굴을 위해 청소년 대상 제 1기 영남교방청춤 전수 장학생을 선발하여 모집합니다.

모집대상 : 만 10세 이상의 청소년 남녀 (지방학생 응시 가능)
모집인원 : 10명
모집방법 : 면접 및 상담 후 선발
모집기간 : 2월1일~29일까지
문의처 : 02-702-4604, 011-9523-4604, 011-9924-9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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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랑


고성 오광대 초대 문화재 김창후의 대를 이어 영남 춤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중견 춤꾼으로 보기 드물게 농익은 춤의 기량을 간직하고 있다. 4세에 춤에 입문했으며, 활발한 공연 활동과 우리 춤을 연구, 전수, 보급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박경랑은 여러 명인 선생님들의 장단에 익숙해진 영남춤을 추어 왔으며 이제는 음악을 자유자재로 춤사위에 절묘하게 조화시켜 보는 이로 하여금 전통춤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영남춤의 지킴이로서 이미 우리시대의 춤꾼 정동극장 명인전, 팔무전, 고궁명무전 등의 기획공연을 통하여 명무로서의 인정을 받고 있다.


현재 경상남도 무형 문화제 제 21호 진주 교방굿거리춤 이수자, 중요 무형문화제 제7호 고성 오광대전수자이며 한국 영남춤 문화 예술 연구소 대표, 박경랑 전통예술단 단장, 영남춤 보존회 대표를 맡아서 인재양성과 보급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 전통 공연예술경연대회 대상(1997), 서울 전통 공연예술경연대회 종합 최우수상(1996), 전주 대사습놀이 무용부문 장원(1995), 개천 한국 무용제 특장부문 대상(1994), 전통 예술 경연대회 전체 종합대상(1993), 대구국악제 전체 종합대상(1993)등을 수상했다.


http://cafe.daum.net/pkrang/


  • 2011춘천아트페스티벌 _ 2011년 8월 5일(금) 오후 8시

<영남교방청춤>

안무 및 구성: 박경랑 | 출연: 박경랑


교방은 조선시대 기녀들을 중심으로 하여 노래와 춤을 관장하는 기관으로 교방청은 원래 중구 당나라 때 궁중 내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관기들과 악공들에게 가, 무, 악을 가르치던 기관이다. 오늘날 전하고 있는 교방춤은 교방청이 폐지된 후 지방으로 흩어졌던 관기들이 권번이나 기생조합을 만들어 기방을 중심으로 추었던 춤으로부터 본격적으로 발전되었고 정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영남교방청춤은 진주, 동래, 마산 통영 등의 권번에서 전해져 오던 춤가락을 한 데 묶어 정리한 춤이다. 음, 양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춤으로 남성적인 활달한 상체의 동작과 밀도가 높은 여성적인 섬세함을 지닌 하체 중심과 발놀음이 특징이며 영남지역 교방 춤의 기교가 얼마나 발달되어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은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받은 춤으로 지금은 박경랑에 의해 널리 알려진 춤이다. ‘난초와 대나무’에 빗대어 ‘규격 속의 비규격, 정형 속의 비정형, 유형 속의 강건, 절제 속의 자유’에서 춤의 멋을 느낀다고 민속학자 정상박 교수는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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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랑의 춤 '백의백무']

한국 영남춤 문화예술연구소 박경랑 대표의 '2008 박경랑의 춤 백의백무'가 19일 오후 7시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 무대에 오른다.


박경랑은 징춤 '바람꽃'과 중요 무형문화재 고성오광대놀이를 재구성한 문둥북춤,
기생들에게 가르쳤던 영남 교방청춤, 장녹수 이야기를 풀어낸 살풀이춤 등을 춘다.


화려한 무대장치와 의상, 장신구 대신 흰옷이 보여주는 정갈함과 한으로 무대를 채운다.

고성오광대 예능보유자인 이윤석과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 하용부가 특별출연하고,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최종민 교수가 해설을 맡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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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리뷰/ 무용

박경랑의 우리춤




구히서 / 연극평론가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춤꾼 박경랑씨가 2월14일 국립극장 대극장에서「96 박경랑의 우리춤」이라는 제목으로 서울공연을 가졌다. 서울에서는 낯선 얼굴이지만 지난해 전주대사습에서 무용 부문 장원이었고 이매방 승무의 맥을 잇는 김진홍씨에게 사사한 춤꾼이라는 소개와 함께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를 마련한 자세가 만만치 않았다. 이 무대는 박경랑씨의 입춤, 살풀이춤, 승무 등 세 개의 춤을 주축으로 해서 무대를 대강 단락으로 묶어서 펼쳤고 상당히 든든한 특별출연진들의 춤과 노래 연주가 함께 그 단락을 도와 각각의 부피를 만들어 냈다.

첫째 단락은 서용석, 김청만, 박종선, 원장현, 한세현, 서용호씨 등 국립국악원민속연주단원의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자진줏거리 성주풀이를 시작으로 해서 박경랑의 교방입춤과 김진홍의 동래 한량춤으로 이어졌다.

둘째 단락은 진도굿의 춤을 모은 것으로 군무로 추어진 반야용선, 김진홍의 독무로 추어진 지전춤, 그리고 박경랑의 독무 살풀이춤으로 꾸몄고, 셋째 단락의 춤은 불교의식무를 중심으로 바라춤, 법고춤, 승무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임이조의 허튼춤과 이명희의 판소리를 배치했다.

이런 구성은 이 무대의 주인공인 박경랑씨의 3개의 춤을 내놓으면서 그 춤들이 풍성하고 여유있게 보일 수 있도록 주변을 감싸는 장식이 든든해서 그런 꾸밈 속에서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있게 꾸민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꾸밈으로 해서 박경랑씨의 춤들은 상당히 큼직하게 부피를 얻어낼 수가 있었다. 하나의 독립된 소품으로 그가 추는 세 개의 춤만을 등장시켰을 대 무대는 훨씬 가난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 국악 춤무대의 명인들, 자리잡은 춤꾼들, 박경랑씨의 스승이나 선배 어른들이 그를 도와 큰 무대, 듬직한 무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 무대에서 스스로 동래한량춤과 지전춤을 추었고 안무지도로 나선 김진홍씨는 물론 바라춤의 지도와 반주음악을 맡아 출연한 한동희 스님(중요무형무화재 50호 영산제 이수자)등의 특별출연이 모두 이 무대의 규격을 큼직하게 만들어 준 요소들이다. 이 무대에서 추어진 춤들은 이미 전통무용의 명무로 인정되고 있는 여러 어른들의 춤으로 조금씩 짐작이 가는 춤들이다.

동래 권번에서 많이 추어졌다는 교방입춤이나 동래 한량춤은 문장환, 김계화씨 등 동래품의 유명한 춤꾼들의 춤에서 볼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인상을 느낄 수 있는 춤이고 진도굿의 춤으로 꾸민 반야용선, 지전춤, 살풀이춤 등은 박병천, 김대례, 정숙자 등 진도의 명무를 떠올릴 수 있는 춤이며 바라, 법고, 승무는 박승암 스님을 비롯한 영산제 범패로 유명한 스님들의 춤과 소리를 생각할 수 있는 춤이었다. 이 무대의 춤들은 그러므로 새로운 이름, 새로운 춤 솜씨로 보는 새로운 춤이면서 우리 춤의 전통적인 뿌리를 생각하며 옛 춤의 명무들의 솜씨를 앞에 놓고 비교를 해볼 수 있는 무대였다. 우리 춤 옛 춤 명무의 그림자를 오늘과 내일의 명무를 기대하며 볼 수 있는 무대였다.

그런 눈에 비친 박경랑씨의 춤은 아직 영글지 않은 열매를 보면서 풍성한 수확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조금은 불안하고 조금은 기대가 가는 아슬아슬한 것이었다. 그의 춤은 얌전하고 단정한 데가 있지만 춤의 부피가 부족하며 멋의 여유가 없고 활달함이 부족한 오종종한 것이었다. 춤의 재주와 함께 춤의 나이가 왜 필요한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춤이었다. 다행스럽게 보이는 것은 그가 잔재주로 얼버무리거나 요령과 화사한 꾸밈으로 춤을 망치는 미련함을 부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승무의 장삼놀음은 그런 대로 격식을 찾아 닦아낸 모습이 보였지만 입춤이나 살풀이는 줄기와 뿌리를 느끼기에는 여러 모로 약한 모습이었다.

특별출연으로 제자의 춤과 무대를 도운 김진홍씨의 춤과 안무는 깨끗하고 깔끔한 맛의 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춤의 부피가 부족했고 춤사위의 활용이 큼직하지 못했다. 진도굿의 춤을 모아 만든 반야용선은 살풀이나 지전춤의 배경으로 꾸민 것이므로 밀어두더라도 스스로가 춘 지전춤에서는 지전춤의 볼만한 춤사위의 여러 종목이 골고루 활용되지 못한 느낌이었다. 동래한량춤에서는 그의 선대 명무들의 춤이 지닌 활달한 멋이 잔재미 위주로 부서져서 나온 모습이었다.

역시 특별출연으로 허튼춤을 춘 임이조씨는 늘 보아서 낯익은 춤과 신명이지만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에 나선 걸음에 신바람이 얹혀져서 조금씩 잔재미를 느낄 수 있는 춤을 보여주었다.

이 무대는 매 순서마다 최종민씨의 해설을 곁들여져 좀 느리게 진행돼 전체 공연시간이 2시간 40분 가량 소요되었다. 해설을 곁들인 무용무대는 국립극장의 한국의 명무전 이후 상당히 유행하는 형식이지만 이 무대는 그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출연진에 대해서 특별히 설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의 구성도 중요하지만 속도감 있는 진행도 무대를 감상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능숙하고 친절한 해설이긴 했지만 이 무대 전체의 흐름으로 보아 별로 효과적인 진행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부산 춤꾼의 서울무대, 옛 춤의 잔재주, 새로운 춤꾼의 본격적인 등장무대로서「96 박경랑의 우리춤」무대는 서울의 많은 관객을 만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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