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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비워서 채우는 길



비워서 채우는 길

최 은 숙

 

1. 삶의 춤결

그는 수업시간마다 외친다. 발목 접고 깊이 눌러라. 무겁게 해라. 바닥에서 발을 떼지 마라. 눌러라. 계속 눌러라. 우리춤이 중력을 뿌리치고 가볍게 날아오르는 서양춤과 다르다고 하지만 이렇게 한없이 누르다간 바닥에 달라 붙다가 땅 밑으로 꺼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천근의 무게를 강조한다. 그의 춤 선은 참 예쁘고 고운데 실제로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호흡과 기교 심지어 얼굴 표정까지도 깊고 진지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마음으로 춤을 추면 저런 묵직한 팔 다리와 진중한 분위기가 나올까 연구하게 만든다.

그는 ‘멈춰, 서’게 한다. 화려한 움직임은 ‘멈춤’에서 이루어짐을 강조한다. 세상에서 정지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침묵이 없는 말은 소음이 되고 어둠이 없으면 밝음의 소중함을 알 수가 없듯이 쉼이 없다면 드러남이 없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위대한 멈춤이다. ‘딱 멈추’지를 못해 몸이 혼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더 중심을 잡아가는 것은 몸보다 정신 쪽이었다.

가식으로 만들어 내지 않고 진정 자신의 무게로만 움직일 때 진국이 되는 춤사위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음을 녹이는 그의 화려한 발 디딤새는 단순한 겉멋이 아닌 진국을 향한 열정의 결과였다. 자신을 향한 진지한 시선으로 내면을 다지고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는 살인적인 연습시간이 있었기에 강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 동안 일 년에 두 번 씩 열리는 연수에 거의 참여했는데 하루는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숙소에서 그와 같은 방을 쓰면서 밤늦도록 이야기를 하다가 잠들었는데 갑자기 잠꼬대로 춤 장단을 치시는 것이 아닌가. 새벽 연수부터 시작해서 저녁 시간까지 꼬박 채우고 피곤한 몸으로 겨우 몇 시간 잠드는데 꿈에서도 장단을 치고 우리 자세를 잡아 주고 있었던 거였다. 허리 펴고 명치 접고 겨드랑이 들어! 시선 옆으로! 쿵 기덕 쿵 따아악. 춤으로 가득 찬 치열한 삶이 그대로 전해졌다.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얼굴은 손에 잡힐 듯이 작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몸은 단단하고 밀도있게 다져진 정갈한 멋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렇게 밤낮없이 하는 춤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2006년 여름 교방춤 연수 장소가 해운대였는데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던 홀이었다. 수평선에 배가 떠있는 그림 같은 장소를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잡으신 것 같았다. 그때 연수의 주제는 바다와 함께 춤을 추라는 것이었다. 파도가 밀려오면 움직이는 물결 따라 추라고 했다. 물결이 내 품으로 밀려들듯이 한 호흡으로 밀어 올리고 내려 앉아라는 말에 나는 또 한 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때 각인된 물결 이미지는 교방춤 속의 하나의 장면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이미지를 주문한다. 춤 속에 각자의 이미지를 만들어 이야기를 풀어내도록 한다. 내가 자연인양 먼 수평선의 아득함과 흐르는 구름을 마음에 담아내라고 했다.

교방춤의 춤사위는 조금 많은 기교가 필요하다. 처음에 복잡한 동작을 배우기 위해서 몸을 혹사시켜야 했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골치가 아파야 했다. 동작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지 않으면 몸이 따라가질 않았다. 그는 동작을 이해시키기 위해 끈질기게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자세하고 논리적인 설명을 듣고 있자면 내 몸의 구조와 관절 하나하나가 다 보이는 느낌이다. 몸을 움직이는 데 따라 자연스럽게 나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을 따라 가면 억지스럽지 않은 편안한 춤길이 나온다 한다. 그렇게 무르익어 편안해진 경지가 되면서 그의 춤사위는 독특하게 멋지다.

춤의 비밀을 조금씩 발견해 가는 이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을 주었다. 그의 춤에 대한 자세는 나의 숨어 있던 열정을 깨우게 했고 이렇게 치열하게 몰입하고 다구쳐 보라고 자극했다.

 그는 엇박자를 즐긴다. 인생이란 대부분 엇나간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엇박이 들어가지 않은 안무가 별로 없다. 세상은 정박이 아니므로 엇박의 묘미를 아는 사람은 인생을 아는 사람이 된다. 나와 님 사이에 사랑의 방향이 다르고 시작점이 다르고 크기도 다르기 때문에 그 엇나감을 인정하지 않으면 인생이 괴롭다는 걸 아는 것처럼. 그 엇나감만큼 우리는 방황하지만 그래서 그만큼 또 성숙한다. 너와 내가 말이 섞이는 데는 몇 번이나 서로 다른 장단을 돌아 나온 끝이다. 내 속에서 나온 자식도 내 품에 안을 수 있는 경지는 수 년이 걸리는 긴 가락을 다 알고 난 뒤다. 하지만 그것은 낭비가 아니다. 맞추지 못한 한 조각은 다른 데서 우리도 모르게 힘을 발휘하면서 아름답게 피어난다고 그는 믿는다. 그의 엇박은 너무 절묘하여 자꾸 보고 싶다. 엇박이 들어가는 순간 세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듯하다. 경계에 끄달렸던 마음들이 부질없어짐을 확인한다.

그런데 그는 자주 서럽다. 무엇을 바랐기 때문에 그렇게 서러운 것일까. 한 시인은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의 설움이 전해져 온다. 언젠가 전화기 저쪽에서 들려오는 울음 섞인 목소리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스승과 제자가 목이 메어 대화를 하지 못할 서러움이 삶의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인간을 너머 선 것을 바랐기 때문에 끝나지 않을 서러움이었다. 그래서 그는 시적이다. 그건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불가능한 것을 항상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현실과 이상의 중간 어디쯤에서 서성이다 잠깐씩 그와 눈빛이 마주칠 때 나를 발견한다. 그에게서 나 자신을 보고야 마는 것이다.

그는 사랑하고 싶다고 했다. 사랑했던 사람과 사랑하고 있는 사람과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다 가슴에 안고 춤을 춘다. 그래서 그가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흰 수건은 날릴 때면 가슴이 복받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사랑했던 아버지와 남동생을 묻고 사랑하는 스승과 님과 떠난 제자까지 가슴에 안았으니 응어리가 너무 깊다. 아무리 풀고 풀어도 남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홀로 법당을 다닌다. 마음이 흔들리거나 누군가 야속할 때는 절을 한다. 이 세상 모든 것에 절합니다. 세상 어떤 것도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는 나올 수가 없는 늪과 같다고 했으니 지나가는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는 주말이면 법당에서 그 누구에게 소중했던 사람을 천도하고 빌어준다. 더불어 참회한다. 나에게 소중한 것임을 몰랐던 죄.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 죄. 돌봐주지 못한 죄. 감싸고 덮어주지 못한 죄. 죄스러운 마음은 북장단을 타고 영남승무 회색빛 장삼을 흔든다. 먹장삼에 빨간 가사를 입고 추는 그의 승무를 처음 보았을 때 소름이 돋았다. 장삼을 던질 때 온 마음을 다하는 진정성이 무대를 꽉 채웠고 뿌린 장삼 끝으로 그려지는 유연한 포물선은 내 마음에도 이어졌다.

오열과 희열이 섞인 그의 북장단은 사람 마음을 찢어 놓는다. 북소리는 작아졌다 커졌다 하면서 인간사 희노애락의 고비를 넘나들다가 다시 숭고하게 울린다.

그는 다 준다. 자기가 가진 것을 언제나 아낌없이 내어 주기 때문에 가난하다. 다 주어라. 전수관 벽면에 그렇게 적어놓았다.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고우니 마음에 욕심을 쌓지 말라고. 자신을 끝없이 비워내어 항상 새롭고자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춤사위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어떤 이는 좋아하고 어떤 이는 괴로워한다. 오늘의 창조적인 박경랑은 당신의 스승이 날마다 춤사위를 바꿔 다양한 동작으로 춤을 익히게 했기 때문이란다. 우리도 그를 따라 하다 보면 그의 반의 반이라도 할 수 있을까.

공공연히 우리는 그를 철인이라 부른다. 무쇠팔 무쇠다리로 전국을 누비는 철의 여인이라고. 수많은 공연과 수업을 뚫고 자기 춤을 선보이는 신비주의자. 언제 울고 언제 사랑했을까. 거미처럼 긴 두 팔로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는 아무래도 길 위에서 생겨난 것 같다.

 그는 어쩔 수 없는 경상도 사람이다. 자분자분하던 말씨가 흥이 나면 인심좋은 경상도 여인이 된다. 주례학원 찬 마룻바닥에 큰 대자로 누워 더운 열기를 식히면서 제자와 같이 어울리는 소탈함이 있다. 밤 수업 뒤 팥빙수를 나누어 먹고 자정이 넘도록 이야기를 즐겼던 편안한 사람이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내 입에 새우를 까서 넣어줄 때 그 다정함에 당황하였던 기억이 난다. 제자들 연습하라고 손수 밥을 지어 먹이는 그런 사람이다. 그의 말은 처음엔 시가 되고 편지가 되었다가 나중엔 춤이 된다. 일상의 말과 행동이 다음에 나올 춤의 집이 된다.

 

2. 다른 빛깔로

그와 처음 마주친 순간은 다른 세상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그 당시 30대 후반의 젊은 그는 자태가 매혹적이었고 말소리며 표정이 가냘프고 정다워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어떤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드는 것 같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이적지 만나보지 못했던 오묘한 감성이 주는 그 떨림을 지금도 기억한다. 곧바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길을 가르쳐 준 이정표가 되었다.

한동안 국어교사의 처지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내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흔들렸고 저쪽 춤의 세계가 부러웠다. 학교를 마치면 모든 시간을 춤에 집중했고 너무 행복했다. 원래 우리 춤이 이렇게 좋은 것이었는지 그의 기운에 홀린 것인지 아니면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지 갈피를 못 잡는 사이에 십 수 년이 흘러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탈을 벗기 위해 탈을 쓴다’는 말에 나를 크게 돌아 본 적이 있다. 춤을 배우면서 몸과 마음이 하나가 안 되고 또 얼마나 굳어 있는지 괴로워하고 있던 때였다. 몸을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새로운 충격이었다. 주어진 신분과 역할에 갇혀 딱딱하게 살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지금까지 틀에 얽매인 줄도 몰랐고 자신을 바로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와의 만남으로 나에게 균열이 생겼다. 벌어진 작은 틈새로 아름다운 물이 스며들면서 나는 다른 빛깔로 물들 수 있는 행운을 잡은 것이다.

 

3. 숙련

 몸으로 하는 공부는 고달프다. 물론 공부 자체가 고달픈 일이고 세상의 모든 공부는 마지막에는 몸으로 승부를 본다. 몸을 쓰는 사람의 가장 큰 강점은 정직함이다. 신체에 새겨진 흔적은 의식하지 않은 순간에도 그대로 표출되어 버리는 투명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자리 잡아 바로 그 사람이 된다.

일주일에 한 번 그의 기를 받으러 두 시간 이상 걸리는 길을 오고 갔다.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태풍이 몰아쳐도 어김없이 그를 찾았다. 새로운 내 인생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기운은 오고가는 고달픔을 덮을 뿐 아니라 일주일을 살아갈 수 있는 양식이 되었다. 새로운 춤을 익힐 때마다 나는 부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거칠게 한 덩어리로 뭉쳐 있던 내 몸은 시간이 흐를수록 부드러운 작은 조각으로 섬세하게 나누어져 갔다. 한 번에 한 가지만 얻어 가면 성공이다는 그의 말을 믿고 먼 길을 오가도 성급하지 않으려 애썼다. 죽을 때까지 나를 구원하는 거라 생각하고 욕심 부리지 말자고 다짐했다.

춤을 배운 지 4년 정도 지나서부터 자신에게 뭐가 부족한지 느껴보라고 그는 의도적으로 무대에 서게 했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배운 것의 반도 표현하지 못했다. 더구나 생음악 앞에 어쩌다 서게 되면 그동안 배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살아 있는 음악 속에 춤가락을 살려 낼 수 있는 힘이 없어서 춤이 무너졌다. 그가 판소리, 산조 등 음악을 많이 들으라고 한 이유를 알았다. 수업 시간에 장구 장단으로 춤 앞에 서게 하는 깊은 뜻을 알았다.

순서를 빨리 익혀서 성급하게 한 판 끝내고 싶은 마음이 앞서면 춤은 거칠어지고 몸만 피곤했다. 잘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춤을 추면 그 잘난 마음이 춤 속에 보인다는 걸 알았다. 추는 사람의 기질과 마음, 심지어 그의 세계관까지 다 드러나는 걸 알고 정말 마음으로 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끝없이 자신을 비우고 내려 놓는 공부를 해야 했다.

기교를 익히는데 3년, 버리는데 30년.

어설픈 우리는 춤은 없고 몸짓만 있다. 우리가 기교를 익힐 때 그는 모든 기교를 버리고 간결해지고 승화되어 갔다. 하루 종일 제자와 춤추면서 자신의 춤을 갈무리해서 정화시켰다. 삶의 굴곡따라 고비고비 춤이 나왔다. 춤이 변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보았다. 스승의 변화 만큼 큰 감동을 주는 공부가 있겠는가. 몸에서 익고 삭아서 나오는 춤. 인생을 묵혀서 깊게 배어 나오는 것이어서 진정 그는 안 보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