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리뷰] 박경랑 연출·출연의 '심중소회(心中所懷)'…부산 들썩인 박경랑 춤의
대중적 가치 입증
최근(3월30일(수) 오후7시30분)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박경랑 총구성, 연출, 출연의 '심중소회'가 공연되었다. 악가무의 현재적 가치를 입증시킨 공연은 연희자와 관객이 즐겁게 조우한 품격 있는 대중적 브랜드 가치를 소지하고 있었다. 박경랑의 춤과 연주, 젊은 국악그룹 '바라지'가 음악을 맡은 '심중소회'는 영남춤에 집중한 박경랑의 역량을 재확인 시켰다.
넘실거리는 바다와 달맞이 언덕에 활짝 핀 벚꽃을 곁에 두고 '즐거움'을 같이 나눈 공연은 꽃과 춤, 소리와 노래가 어울린 거대 춤판이었다. '국악포털 아리랑' 주최, 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보존회가 주관한 춤은 박경랑의 예술정신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뒷 담화 무성한 밤까지 춤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생의 환희를 희망하는 춤은 '굿'과 괘를 같이한다.
박경랑(경남무형문화재 제21호 진주교방굿거리춤 이수자, 영남교방청춤보존회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다양한 춤, 인접 장르인 소리, 좌수영 어방놀이, 수영지신밞기, 비나리에 이르는 신명춤판을 열어 화창한 봄날을 영접하였고, 가릉빈가 예술단, '천년 가·무·악' 예술단, '좌수영 어방놀이 보존회' 회원들과 '수영 지신밟기보존회' 회원들이 동참한 공연은 발광(發光) 그 자체였다.
박경랑은 자신의 창의적 예술정신을 지키고자 했던 예인들의 전통을 존중해왔으며, 호남 소리, 영남 춤의 기본 좌표를 이어가는 데 우직하게 몰두해온 내공의 춤꾼이다. 엉겅퀴 같은 투박한 전통의 춤판에서 보랏빛 꽃이 나비를 몰아오듯 구름 관객을 모아 온 그녀는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자존을 지키내며, 자신만의 춤 개성으로 영남교방청춤의 지조의 아이콘이 되어있다.
이날 공연은 거친 사막을 건너온 대상(隊商)들, 사포(沙布)로 마음을 연마한 자들, 모진 운명을 감내하며 내공을 견지한 자들의 연기들로 가득 채워졌다. 세월이 스치고 연륜이 묻어나는 고수들 틈에 '바라지'는 신선한 열정을 불러오는 '젊은 피'였다. 박경랑 춤의 긴 생명력은 이념에 흔들리지 않고, 즐거움을 주는 춤 구사와 따스한 심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중소회'는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장구와 대금의 선도아래 '녹수청산 깊은 골에'의 변진심(경기시조보존회장)의 시조창(독창)으로 시작된다. 연주(2명), 시조창(1명), 춤(2명), 문인화 시연(이응순), 헌다시연 류혜숙(양산시 예다회 대표) 등 아홉 명으로 구성된 도입부는 「녹수청산 깊은 골에 청려완보 들어가니/ 천봉은 백설이요 만학은 만무로다/ 이곳이 경계좋으니 예와 놀려하노라」, 선비는 문인화를 들고 춤추고 주객은 시대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어 연주(2명), 시조창(2명), 주객(5명)이 모두 좌정해 있는 가운데, 조선 시대 십이가사(十二歌詞)의 하나로써 유난히 느리게 불리는 「매화야 옛 등걸에 봄철이 돌아를 온다. (중략) 못다먹는 저 다람의 안과」의 '매화가'가 최영희('천년 가·무·악' 예술감독)가 합세한 이중창으로 이어진다. 악가무의 긴 전통을 보여 주고자 하는 박경랑의 연출이다.
시조창이 끝나면 영남교방청춤의 형성과 박경랑의 현재의 춤을 있게 한 예술가들의 이름이 영상으로 투사된다. 춤을 사사한 박경랑의 외증조부인 고성오광대의 예인 김창후를 비롯한 김애정, 조용배, 황무봉, 김수악, 김진홍, 문장원, 유금선, 정영만, 강옥남 선생 등이다. 그들의 예혼(藝魂)을 이어받은 운파(雲波) 박경랑이 오늘 그들을 기리며 '춤올림'을 고한다. 각질처럼 파고드는 인연의 소중함을 가슴에 챙겨, 자양분으로 삼은 그녀는 여러 면에서 빛난다.
박경랑은 김소월의 시 초혼을 주제로 나운규(1902년생), 안중근(1879년생), 최승희(1911년)를 초혼하여 자신이 닦은 선근 공덕을 그들에게 돌리고, 달래며 바치는 헌무를 이어간다. '영혼의 몸부림'이라는 주제 아래 부채가 던져지고, 웅장한 사운드의 혼재 속, 장검의 쌍검무가 요염한 시선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대중적 허밍과 더불어 김소월의 '초혼'이 낭송된다. 여섯 악사(대금, 해금, 가야금, 장고, 징, 피리)의 반주로 초혼 의식이 시작된다.
방울을 든 세 여인과 고풀이 천을 든 여인의 4인무가 펼쳐진다. 박경랑은 양 쪽 손에 수건을 들고 독무로 신을 영접한다. 독무 주변으로 모이는 방울을 든 여섯 남녀, 신명의 굿거리장단이 동반한다. 박경랑은 등·퇴를 반복한다. 갓을 쓴 여인들, 그들의 초상을 목에 걸고 등장한다. 남해안 별신굿의 혼을 실어 보내는 용선춤(그 속에 사람), 4인의 대형 학을 든 여인들, 배에는 언급된 예인들의 초상 등이 배에 실리고, 박경랑은 혼신의 춤으로 배를 떠나보낸다.
애절함을 담은 춤은 '찾아가보니 찾아온 곳 없네. 돌아와 보니 돌아온 곳 없네.'로 시작하는 정호승 시, 장사익 노래의 '허허바다'가 대변하며, 허무와 그리움으로 모두의 가슴을 아리면서 종료된다. 이어 부채춤의 화려한 군무를 연상시키는 두 손에 무궁화를 든 스무 여명에 이르는 '아리랑' 군무가 이어진다. 영상은 시대를 앞서 간 예술 영웅들을 다시 보여준다. 박경랑은 장사익의 애절한 노래를 자신의 춤에 수용함으로써 춤과 소리의 어울림을 즐긴다.
'바라지'의 '소리'는 가볍게 울려오는 정주소리와 함께 이어진다. 홍일점 여자 악사의 축원은 거룩한 기도와 합장을 이어가고, 남성 악사 2인의 소리 도움을 받는다. 소리는 4인으로 확대되고, '승무'가 추어진다. 연주와 노래를 섞어가는 '바라지'는 대사를 넣어가며 분위기를 창출하고, 반복되는 후렴구는 "상봉길경 불봉만재 만재수 발원(相逢吉慶不逢萬災滿財數發願)"이다. 박경랑의 음감은 거대한 음악 생태계 속에서 '바라지'를 불러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길하고 경사스런 일만 만나고 온갖 재난은 비껴가며 재수 좋은 일만 가득 하소서"라는 의미로 평온과 풍요의 삶을 기원한다. 발원이 끄나갈 무렵 박경랑은 악사들과 다시 합류하고 타북한다. 박경랑이 퇴장하고 다시 축원이 시작된다. 축원이 끝나고 네 명의 북 꾼들이 판소리 '흥보가'를 이어간다. 젊은 국인인들, 한계를 벗어나 있는 젊은 악사들의 공생(共生)이 있는 북 운용과 소리는 자연스럽게 동참과 신명을 촉발하는 창조적 수단이 되었다.
다재다능을 넘어서 비범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형상, '바라지'의 '회향', 요란한 사운드, 박경량의 어깨에 멘 북, 두루마기 벗고 다시 바라 들고 춤, 악사들이 있는 단까지 진출한 춤, 다시 소고, 소고 놓고 다시 징, 징 머리에 이고 춤, 징 무대에 세우고 합장, 징 주변을 돌면서 춤, 징 들고 춤, 다시 꽹가리를 치며 회전하며 춤으로 현란한 기교를 선보인다. 박경랑은 영남교방청춤의 기교의 일부를 보여주고, 관객들이 유혹에 빠지지 않고 즐기는 방법을 제시한다.
2부는 붉은 잔나비 해를 맞이하여, 중요무형문화재 제62호 좌수영 어방놀이와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22호 수영 지신밟기보존회 회원들과 함께 청명절과 한식날을 앞두고 조상께 예를 올리는 어울림의 '복나누러가세' 의식을 베풀었다. 묵은 액을 물리치고 국가, 가정, 개인의 안녕과 복을 비는 행위는 예인들의 생의 약동이었다. 악단의 소리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좌수영어방(左水營漁坊)이라는 휘장을 앞세우고 객석으로 부터 등장하는 좌수영어방 놀이패가 등장한다. 관객과 교감하며 무대로 등장한다. 무대의 수영 지신밟기패는 그들을 영접하고 순식간에 출연진 모두가 함께하는 신명의 판으로 변한다.
북청사자놀이 꼽추춤 연기자 김미자의 사설이 있는 진행으로 놀이, 풀이 의식이 어울려 서로 춤추게 만든다. 꼽추춤과 각설이가 두엣을 이루는 가운데 '좌수영어방 놀이'는 '내왕소리', '사리소리', '칭칭소리'의 세 마당을 연기해내며, 바닷가에서 어부들이 후릿그물로 고기를 잡으며 여러 가지 노래를 부르는 내용을 대표하는 소리가 소리꾼에 의해 불려진다.
'수영 지신밟기'는 250여 년 전에 수영야류라는 민속가면극에서 '지신밟기'를 한 것을 계승 발전시킨 네 마당으로 구성된다. 이번 공연에서는 전체적 분위기를 압축한 무대용으로 치러졌다. 이 축원풀이는 넷째 마당에 이르면 모든 풀이가 끝나고 주인이 내어 놓은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의식으로 관객들에게 떡과 복쌀이 나눠지며, 거대한 액막이가 끝난다.
모두가 앉아있는 가운데 박경랑의 영남교방춤이 매혹을 뿌리면서 회전무로 마무리된다. 김미자의 코믹 멘트로 노래방 분위기가 연출되고, 어울림 속에 가요가 불려진다. 잔칫집 분위기 속에서 악사는 흥을 돋운다. 가릉빈가 예술단, 서경선(경기민요 소리숨 부산지회장) 등의 우정 출연 및 출연진 모두와 관객이 호응한 '심중소회'가 의도한 고단한 마음을 풀어내고 희망의 세상을 향해가는 모습이었다.
박경랑, 영남춤으로써 흥신을 불러일으키는 고수이다. 그녀의 춤은 춤결의 화사 밑에 숨은 엄청난 수련의 결과로 빚은 것이다. 고수(高手)들은 늘 유연함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그녀의 춤은 사유와 성찰이 낳은 성과물이다. 그녀는 바른 심성으로 전통의 가치를 숭상하고 이 세상의 모든 영남춤의 추출물들을 자기화 시키고, 발레로 터 잡은 균형 잡힌 몸은 손짓, 발 디딤, 춤사위의 다양한 수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우리 춤이 도구로 쓰는 악기들은 그녀의 몸과 더불어 춤 출 때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고, 다른 장르와 어울릴 때도 어색함이 없었다. '심중소회'는 그녀의 춤 퇴적층에 가장 윗부분에 위치한 작품이다. 다음에 그 위에 얹힐 작품들의 구성력과 세련됨의 차이를 보고 싶고, 그녀의 신작이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춤이 되기를 기원한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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