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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파 박경랑/박경랑소개

운파, 구름을 모으고 흩는 박경랑의 춤- 1부 : 길 위의 시간들(글쓴이_박경랑류영남교방청춤 보존협회장 최은숙)


운파, 구름을 모으고 흩는 박경랑의 춤

글쓴이 : 최은숙(박경랑류영남교방청춤
보존협회장)

1. 길 위의 시간들

박경랑 선생은 1961년 경남 고성 출생이다. 고성읍 성내동 76번지에서 태어났다. 호는 운파(雲破)이다. 친가와 외가 쪽이 다 고성에서 내로라하는 집안으로, 친가는 사업 외가는 교육자 집안이다.

아버지는 중고등학교를 대구에서 어머니는 부산에서 다니셨고 두 분 다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운수업과 목재업을 하셨고 어머니는 부산에서 교편생활을 하셨다. 박경랑은 두 분이 이룬 유복한 가정의 장녀로 태어났다.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주고 마산으로 거처를 옮긴 할아버지 댁에서 박경랑은 4살부터 유치원을 다니면서 주말이면 고성집으로 오곤 했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객지 생활로, 그렇게 고등학교까지 마산에서 지냈다.

박경랑의 외증조부는 한량으로, 고성권번 교방사범을 지내시다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놀음 초대 예능보유자가 되셨다. 고 김창후 선생이시다. 그 영향으로 4살부터 춤에 입문하여 평생 춤을 추고 있다.

선대의 끼를 태생적으로 이어받아서인지 박경랑은 어릴 적부터 재능이 돋보였다. 각종 대회(진해 군항제, 진주 개천예술제)에 나가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유치원 때부터 무대 공연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학교를 마치고는 경남도립무용단 창단 멤버로 입단하여 활동하다가 88년 올림픽을 마치고 결혼과 함께 무용단을 떠났다. 부산에서 개인 연구실을 열어 제자들을 가르치며 자신의 춤 학습을 이때부터 독하게 다져나간 것이다.

이후 10년을 꼬박 낮에는 제자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스승과 사숙하며 하루 2시간 반 정도 잠자며 실력을 다졌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문화체육부장관상을 5차례나 수상하고 국무총리상을 수상하였다. 1995년 전주대사습놀이 장원과 1997년 서울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명무로서 인정받았다.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수상기념 개인공연을 가졌다. 그때 나이 37세였다. 매년 개인 공연을 했고 여러 명무전, 문화재청 주관 국내외 공연 및 각종 대회 심사위원으로 지금껏 활동해 오고 있다.

스승이 돌아가실 때마다 다른 스승을 찾아가 여러 스승(고 조용배 김수악 김애정 황무봉 강옥남)을 모셨고 김진홍 선생을 거쳐 사사를 받았다. 그 중에 특히 영남 지역의 교방청춤을 자신만의 춤으로 재정립하여 영남교방청춤 명인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제자 양성에 힘쓰고 있다.

부산 연구소를 거쳐 2000년도에는 서울에서도 수업을 시작했다. 잠실, 대학로 등에서 학원을 빌려 수업을 진행하다가 동아문화센타에서 일반인들에게 첫 수업을 했다. 2005년 합정동 연습실을 차렸다가 2011년 지금의 효창동 전수관으로 옮기면서 완전하게 터를 잡았다.

이렇게 서울로 터전을 옮겼지만 매주 부산으로 내려가 수업을 계속했다. 해운대 문화회관, 동서대학교, 수영야류전수관, 김해 문화의전당 등 지방 수업을 다니느라 길 위에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였다. 그 고달프고 먼 길 위에서 춤에 대한 생각과 작품 구상이 대부분 이루어졌다고 한다. 공연 역시 빠짐없이 매년 한두 번씩 했기 때문에 춤에 관한 일을 빼고는 다른 개인사는 없을 정도로 바쁜 날들을 보냈다.

글쓴이: 박경라류영남교방청춤보존협회장 최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