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박경랑 선생 특별 인터뷰-월간 무용과 오페라

 우리 전통무용을 자신의 생명처럼 지켜 온 한국무용가 박경랑 영남교방청춤전수관 관장 특별인터뷰 

 

 

 

현재 우리나라 수많은 전통무용 중 단 3개만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받고 있다. 살풀이, 태평무, 승무다. 그런데 무용계 일부에서는 그 폐해때문에 - 이들이 주장하는 폐해의 대표적인 예를 들면, 첫째는 이렇게 지정된 무용들이 이수증등을 마치 자격증처럼 따게 만들며 우리 전통무용을 상업화시키고, 무용 판이 한 쪽으로만 쏠린다. 두 번째는, 그러면서 지정받지는 못했지만 정말 훌륭한 우리 대부분의 전통무용들이 영원히 사라져 간다는 등이다 - 이 지정도 없애버리자는 주장도 한다. 그 말도 일리가 있을 수 있지만, 평자는 우리 전통무용계 전체의 현실을 볼 때, 기존 3종목의 지정을 없앨 것이 아니라, 우리 전통무용의 무형문화재 지정 몫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즉 왜 현재 우리 문화재청은 국악, 공예, 의식, 제례, 등에는 백여 개 이상의 종목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그것들보다 훨씬 미학적 예술적 의미가 높은 전통무용은 달랑 3개만 지정하고 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 부분에 대해 평자가 약 2년 전인 지난 20167월호 무용과오페라전통무용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제도는 확산되면서 강화되어야 한다라는 타이틀의 문화시론에 게재한 글의 일부를 다시 한 번 인용한다. “현재 문화재청은 우리 전통무용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억제하고 있는 것이 된다. 수백 개의 국가무형문화재를 지정하면서 가장 그 예술적 표현력이 높은 전통무용 분야를 아예 고사시키는 일을 해왔다.

  사실 우리 전통무용의 미학적 예술적 가치와 의미는 각종 민속놀이의 그것과는 비교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높다. 그리고 현재 우리 전통춤 중에 문화재 미 지정 종목은 수백 개가 넘는다. 이들 춤들의 전승자들은 가난과 무관심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들의 춤을 지킨다. 그렇지만 이런 열악한 조건이면 곧 소멸될 수도 있다. 이들을 국가와 사회에서 도와야 한다. 전통무용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은 일부 단세포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제 그만 두어야 될 것이 아니라 훨씬 더 확산되고 강화되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지금도 평자는 문화재청이 정신을 바로 차리고 우리 전통무용 삼사십 개 정도를 새로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막상 실제로 그런 경우가 되었을 때 우리 전통무용계에서는 그 반열에 오를 수 있는 무대 표현 예술로서의 춤들을 잘 안무하여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솔직히 준비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는 아무런 희망 없이, 그리고 아무런 국가 등의 재정보조가 없는 가난 속에, 개인이 우리 전통무용을 보존해 지키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문화재가 되어 국가의 보조를 하나도 받지 못하는 전통예술인들에게 왜 우리 소중한 전통무용을 지키지 않느냐며 아무도 함부로 돌을 던질 수가 없다. 그런데 근래 평자는 정말 놀라운 경우를 확인했다. 산재해 있는 우리 전통무용의 아름답고 유려한 춤사위와 동작들을 자신의 독창적 안무로 개인적으로 정리해 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난 수십 년 동안 자신 고유의 춤들을 스스로 창조해 준비해 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지난한 작업을 한 이유가 문화재 지정을 받기 위해 한 것이 아니다. 사라져 가는 우리 아름답고 유려한 전통 춤사위들이 안타까워서 자신 고유의 춤으로 만들어 보존하고 지켜온 것이다. 그것도 10여개 이상의 다양한 춤들을 말이다.

  무용과오페라는 이번 9월호 표지인물로 자신 고유의 전통춤들을 - 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 박경랑류 영남교방소반춤, 박경랑류 영남소고춤 등등이다 - 지난 20여년 이상동안 자신의 생명처럼 만들고 지켜온 전통무용인 박경랑 영남교방청춤전수관박경랑 관장을 모셨다. 인터뷰 질문을 만들 때부터 이번 인터뷰는 그 진지해야 할 수밖에 없는 내용상 또 그 시간이 정말 길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에 - 실제로 오후 6시가 조금 지나 시작된 이 인터뷰는 약 5시간이 걸려 밤 11시가 조금 지난 다음에 끝났고, 인터뷰가 있었던 박경랑 영남교방청춤전수관 쪽에서 6호선을 탄 다음 약수역에서 3호선을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밤 12시가 다 되어 있었다 - 평자가 바로 첫 질문을 던진다.

 

 

 

- (사실은 이 첫 질문은 이 인터뷰가 있는 건물로 들어오면서 큰 간판을 보고 즉석에서 하게 된 것이다) 영남교방청춤 전수관이 영남에 있지 않고 서울에 있습니다.

 

“(착하고 선한 인상의 박관장이 가만히 대화를 시작한다) 작년까지는 부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서울에서 부산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서울로 옮겼고, 저도 서울에 더 오래 있게 됩니다. 일단 춤 하면 영남춤이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소리는 전라도고 춤은 경상도라고 했습니다. (이때 평자가 그런데 서울의 공연장의 상황을 보면 호남 춤이나 서울 경기도 춤에 비해서는 영남 춤의 공연 빈도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경상도 춤은 전승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문화재 제도가 생기면서 지정 종목 외에는 무용인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영남 춤 중에는 현재 중앙에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받은 춤이 없습니다. 현재 우리 전통 무용계의 분위기는 옛날처럼 예인들의 춤을 학습하는 것이 아니고, 자격증을 따는 현장이 되었습니다.”

 

 

 

- 근래 부산과 서울 등에서 무도회등의 타이틀을 가지고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 부산에서는 지난 6월에 공연했고, 서울에서는 이번 818일에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합니다(이 인터뷰는 무더위가 극성이던 8월 초순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이전에 광주와 진주 그리고 강릉 등에서도 공연했습니다. (이때 평자가 공연의 목적을 말해달라고 했다) 이 공연의 취지는 대중들이 우리 전통춤과 우리 전통문화에 쉽게 다가올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남춤의 맥을 잇고 그 빛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권번 문화의 우수성을 확인하는 현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흔히 아직도 우리 사회 일각에는 우리의 권번 문화를 단순한 기생집정도의 분위기로 폄하합니다. 물론 일제의 우리 문화 말살 정책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 전통무용은 그 소중한 뿌리의 일부가 권번 문화였습니다. 여기에서는 우리 전통춤의 교육이, 지금의 무용예술 고등학교 수준 이상으로 철저하게 이루어졌습니다.(박경랑은 그동안 수많은 원로 교방 무용 지도자들로부터 그런 말을 들어 왔다고 한다) 단순히 여흥을 즐기는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시와 서화가 있었고, 춤으로 감동을 표현했습니다. 지금의 학자인 선비들이 그 춤을 감상했을 것이며 교양 있는 지성적인 대화가 오갔을 것입니다. 원래 교방춤은 결코 일제 강점기 때 우리 문화를 깎아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왜인들이 만든 화류계 문화가 아닙니다. 고고하고 지성적인 표현의 춤입니다. 저가 약 20여 년 전부터 저의 춤에 교방이라는 말을 붙여왔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외롭게 혼자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근래 6~7년 전부터 우리 무용계도 교방이라는 말을 다시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 객석의 반응은 어땠는지요.

 

저는 우리 전통무용이 대중들과 멀어지는 이유가 옛것만 고집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은 현시대에 맞게 새롭게 표현해야 합니다. 그리고 관객들의 이해도를 높이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승무를 하더라도 왜 그 춤이 추어져야 하는지 하는 연출이나 스토리가 장치되어 있어야 합니다. 저는 공연을 할 때 언제나 무대를 생각하고 동시에 관객들을 생각합니다.(이때 평자는 지난 616일 부산국립국악원에서 본 박경랑의 무도회 공연 때 부산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와 박수 소리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다)”

 

 

 

- 국악 등 다른 장르와의 협업도 많았습니다.

 

저는 저의 공연을 다양한 장르의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악기를 쓰더라도 46각을 모두 사용하지 않으면서 개인 악기의 특성을 충분히 살리는 노력 등을 합니다. 대금, 아쟁, 거문고, 등등 개별 악기는 모두 자신의 특별한 소리를 가집니다. 이를 통해 더 현대적이고 창의적인 작품 표현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 우리 전통무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잠시 생각에 깊게 빠진 다음) 저 개인적으로 보면 저는 저가 추는 우리 전통춤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배우고 느낍니다. 저는 언제나 춤을 추면서 왜 우리 전통춤에는 이런 동작이 있는지, 그리고 왜 지금 내가 이 춤을 추고 있는지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전통무용은 그 힘든 수련 과정을 통해 우리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의 격을 정해줍니다. 인내심, 기다림, 참을성, 등을 한 없이 고양시켜 줍니다.”

 

 

 

- 왜 소중한지요?

 

우리 전통무용은 우리 선조의 몸짓이고 우리의 것입니다. 사실 저는 발레도 했습니다(나중에 다시 나오지만 박경랑은 놀랍게도 대학을 클래식발레의 명문인 세종대학교 발레 전공으로 입학해, 1년 후 한국무용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저희 중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학원에서 선생님들께서 발레와 한국무용 그리고 현대무용 등을 함께 가르치셨습니다. 모든 춤이 다 중요하지만 우리 춤을 추면서 우리의 얼과 정신을 지킨다는 희열은 특히 큽니다.”

 

 

 

- 우리 전통무용을 현시대에서 어떻게 발전시켜나가야 하는지요.

 

있는 것은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현대감각에 맞게 고급스러운 예술로 새롭게 표현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전통무용 공연을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관심을 갖게 만들어야 합니다. 저가 새롭게 안무한 문둥북춤도 원래 고성오광대놀이의 일부 이었는데, 저가 현대적으로 새롭게 안무해 무대화시켰습니다.”

 

 

 

- 우리 전통무용의 현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지금 저가 생각하기로는 사라져 가는 전통무용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춤, 소리 등을 정말 잘 하시는 분들이나, 잘 아시는 분들이 그냥 묻혀있습니다. 이분들을 살려내야 합니다. (이분들을) 찾아 가서 구전으로라도 들어 우리 전통춤을 재구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춤추는 사람들이 노력을 안 합니다. 이제 이 분들이 돌아가시기 직전입니다. 사실 저의 춤을 마지막까지 다듬어주신 분은 부산 동래권번의 마지막 춤 선생님이셨던 - 그리고 이매방선생의 제1호 제자였다고 한다 - 강옥남 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이렇게 지도하셨습니다. ‘막내 - 그 당시 기생들은 이름이 없었다고 한다 - 가 소고춤을 잘 추었는데, 이렇게 이렇게 추었다. 그러니까 너도 이렇게 해보아라.’는 등의 방식이었습니다. 완전히 구전 방식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모두 선명했고, 바로 이런 자료들이 저의 박경랑류 교방소고춤등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 우리 전통춤들이 문화재로 더 많은 지정을 받았으면 합니다.

 

당연히 그렇습니다. 더 많은 춤들이 문화재 지정을 받아서 우리 전통춤이 잘 지켜져야 합니다. 사실 근래 무용을 하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듭니다. 전공을 지향하는 학생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예술이 됩니다. 물론 역으로 요즘은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일반 성인 위주인) 문화원 무용 등은 도리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무용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전공을 하는 프로 무용인입니다. 따라서 우리 무용계는 정말 다시 터놓고 새로 정신을 차려 나가야 합니다. 없던 시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인재 양성을 위해 헌신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재능만 있는 학생이 보이면 어떤 조건이라 하더라도 끝까지 키웁니다.”

 

 

 

- 제자들은 어떻게 교육하시는지요.

 

제자들은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사제관계가) 얼마나 진실한가가 소중합니다. 저가 열심히 키웠는데도 (다른 춤으로) ‘이수하러 가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이니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성공하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기본기를 확실히 지도합니다. 동작 지도도 중요하지만 왜 그런 동작을 하는지 하는 것의 지도가 중요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전통무용 지도가 대부분 그냥 따라만 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이 동작을 하는지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무용수들의 감정 유발을 위한 설명을 합니다. ‘승무를 할 때 대북 쪽으로 합장해 엎드리는데, 이때 대북은 임이 될 수도 있고,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먼저 간 동생도 되고, 부처님도 됩니다. 그런 기본 설정이 있어야 감동을 표현하는 움직임이 이루어집니다. 그냥 막 엎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여기서는 일어나고 저기서는 엎드리고 다시 여기서는 몇 장단으로 움직여라 하는 지도만 받는 무용은 감동이 없습니다. 저의 옛날 스승이 저에게 여기는 구름 위다라며 춤추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왜 선생님이 그런 지도를 했는지 잘 알겠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난 다음에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 어떤 보람을 느끼는지요.

 

때로는 보람도 느끼고 또 때로는 속상하기도 합니다. 자신들이 자리를 지키며 커나가는 것이 보람이라기보다는 저에게는 재산처럼 느껴집니다. 제자가 잘 되면 부자가 된 느낌이며, 제자 잘 되는 것이 빌딩보다 더 좋은 재산입니다. 저는 어릴 때 선생님들과 대화하다가 그런 동작은 이렇게 하면 참 좋은데라는 선생님만의 숨겨진동작을 우연히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 하나 하나가 지금의 저가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는 무용 같은 예술 교육은 사숙을 하며 지도하는 방식이 참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 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 등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나왔는데, 자신 춤의 뿌리는 무엇인지요?

 

저의 춤의 뿌리는 여러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배우고 자문 받은 다양하고 풍요로운 춤사위들이었으며, 저가 그 춤사위들을 가지고 하나의 통합적인 저의 춤을 만들었습니다. 여러 분들의 춤사위에는 장단점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선생님들의 춤의 최고의 장점만 추출하고 취합해 저 고유의 춤으로 만드는 노력을 했습니다.”

 

 

 

- 어떤 계기로 자신의 독자적인 춤을 만들게 되었는지요?

 

어떤 지인이 저에게 이제 따라하며 흉내 내는 춤은 그만 추고, 그동안 배워온 여러 선생님의 춤사위들로 자신 고유의 춤을 만들어보라는 조언을 받고 난 다음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저는 저 춤을 창조해 왔습니다.”

 

 

 

- 그 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 박경랑류 교방소반춤, 박경랑류 교방소고무, 박경랑류 교방살풀이춤, 박경랑류 교방승무, 박경랑류 교방검무, 박경랑류 교방수건춤, 박경랑류 징춤, 박경랑류 진쇠춤, 박경랑류 북춤, 등등입니다. 저는 선생님들로 배워 온 이 춤들을 저 스스로 연상하고 기억한 후 저의 고유 춤으로 만들었습니다. 비록 (저의 이 춤들이) 문화재가 되지 않더라도, 저가 여러 선생님 등으로부터 배워 온 이 소중한 춤사위들을 저의 작품으로 만들어 꼭 후세에 남겨야 하겠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가 그동안 만들어 온 이 10개의 춤에 대한 창조 과정을 책으로 엮어 낼 예정입니다.(이때 평자는 그 창조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작품 창조 과정을 다시 한 번 상세히 말해주겠습니까.

 

일단은 여러 선생님들의 춤을 학습해야 합니다. 그런데 설렁탕집도 집마다 맛이 다르듯이 각 선생님들의 춤사위와 느낌도 달랐습니다. 선생님들 춤을 배우면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부분만 추출합니다. 그래서 그 아주 좋은 동작들만 저 나름대로 재구성하고 안무해 저의 춤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이때 구전되어 오는 말들을 채집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예를 들면 판소리 하는 선생님이나 악기 하는 선생님들의 자신들이 오래 전에 본 무용에 대한 기억 등도 소중했습니다. ‘진주 기생이 그때 이런 춤을 이렇게 추었다는 등의 말 하나 하나가 다 저의 창작의 소중한 원천이 되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저가 배웠던 발레의 공간 사용 방식 등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 전통춤도 발레처럼 체계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계의 사람들이 우리 춤에 더 관심을 가지고 심지어는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까지 생길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현재 우리 전통춤 지도 현장의 대부분의 현실은 그냥 따라 해라’, ‘보고 그대로 해라’, 정도의 수준에 그칩니다. 왜 그 동작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교육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자신 춤의 특징은 무엇인지요?

 

저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많은 분들이 저의 춤을 보고 움직임의 선 등이 아름답고 표현력 있다고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저는 전통은 무겁고 깊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을 저 스스로가 연습하고 연마하며 이해했습니다. 이는 말만 듣고는 결코 경험할 수 없습니다. 저가 한창 연습할 때는 약 8년 동안 하루 2~3시간만 자고 춤을 췄습니다. 그러자 몸이 이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특히 발 디딤을 정말 섬세하고 조신하게 합니다. 전통춤은 상체도 섬세해야 하지만 사실은 발 등의 하체 움직임은 상체보다 더 정교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자들을 가르칠 때 자동차도 바퀴가 잘 굴러야 잘 간다는 말을 해줍니다. 발가락이 벌여져 있는 상태면 당연히 섬세한 디딤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몸의 기운이 흐트러지고 중심이 잡히지 않습니다. 저는 발 디딤 하나를 정확히 하기 위해 하루 종일 반복해 연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조금 되는 경우를 여러 번 겪었습니다.”

 

 

 

- 앞으로 자신의 춤을 어떻게 확산시키고 발전시켜 나갈 예정인지요?

 

저는 이미 1995년부터 - 그렇다면 23년 전이라는 말이 되고 30대 중후반에 벌써 이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 된다 - 저의 영남교방청춤의 연수회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일부에서는 어린 사람이’, ‘문화재 지정 종목도 아닌데등등의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결코 사라져가는 보석 같은 우리 전통춤의 춤사위들을 그대로 날려 보낼 수 없었습니다. 끝까지 함께 공유하고 함께 배우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연수는 이어지고 이제 9월에도 또 저희 전수관에서 (저의 춤에 대한) 연수가 계속됩니다. 저는 저의 연수 2시간 모두를 끝까지 연습시킵니다. 그리고 당연히 저도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들과 함께 움직이고 뜁니다.”

 

 

 

- 영남춤의 특징은 무엇인지요?

 

아무래도 저가 추는 영남춤을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서민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춤이며, 쾌활한듯하면서도 깊은 한을 가지는 춤입니다.”

 

 

 

- 영남춤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지요.

이 질문에 대해서도 저는 아무래도 근대 영남춤의 역사를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원래 영남 쪽 권번에서는 다양하고 풍요로운 춤들이 있었습니다. 부산(동래) - 우리나라의 권번제도가 동래에 제일 오래 남았다고 한다 - , 진주, 대구, 등등에서는 수많은 우리 전통춤들이 풍성하게 추어졌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전국의 춤과 소리와 기악의 명인들이 영남으로 모였습니다. 이매방선생님도 부산에서 활동하고 명창 안숙선선생님도 동래온천 쪽에서 활동하셨습니다. 그런데 동래의 권번 등도 사라지면서, 이제 전국의 예인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올바른 전수교육기관이 없는 영남춤은 - 그리고 앞에서 거론되었지만 영남춤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아무것도 지정받지 못했다 - 소멸의 위기에 빠졌다는 것입니다.(이때 평자는 ! 그래서 박경랑관장이, 문화재 지정과는 관계없이, 그리고 온갖 몰이해와 어려움을 묵묵히 견디며, 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영남춤 보존과 창작에 나섰겠구나 하는 확신을 가진다)”

 

 

- 영남춤을 누구보다 면밀히 연구하고 집중해왔습니다.

“(다시 박경랑이 그 특유의 수줍고 순수한 미소를 지은 다음, 겸손에 가득 찬 대답을 이어간다) 사라져가는 춤을 하나하나 재현하고, 후세에 전달하고 싶었는데, 아직 이것 밖에 못했습니다.

 

 

- 영남춤이 상대적으로 서울 등에서는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중앙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한 것이 큰 요인이 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고 춤도 사라지게 됩니다.”

 

 

- 영남춤 발전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요.

“(다시 박경랑이 담담히 말을 이어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많이 전수교육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영남춤을 사랑하고 출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 (이때쯤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0시가 넘어있다. 이제 빨리 이 소중한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끝내야 한다) 태어난 곳은 어디이고 춤의 동기는 무엇인지요.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주로 마산에서 살았습니다. 춤을 추게 된 동기는 고성오광대놀이를 하신 외할아버지의 - 박경랑의 외조부 고 김창후 옹은 고성오광대의 중시조였다 -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 가족들은 좋아하셨는지요.

반대했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끝까지 저의 뒷바라지를 해주셨지만, 아버님의 반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께서는 이 길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막상 날마다 무용하지 말라고 하시다가도, 저가 상을 받아오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아버님이셨습니다.”

 

 

- 어릴 때 학교는 어디에서 다니셨는지요.

“4살 때부터 마산에서 학교를 다니기 위해 고성에서 통학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는 마산 월영초등학교, 완월초등학교 등을 다녔고, 마산여중과 마산여고를 졸업했습니다.”

 

 

- 어릴 때 어떤 추억이 있는지요.

집에서 저를 잃어버리면 극장 앞에 가면 찾았다고 합니다. 저에게는 극장 간판, 약장수, 등등을 좋아하는 감성적인 기질이 많았겠지요. 영화를 보면 펑펑 울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문예부 학생이기도 했습니다.”

 

 

- 대학교는 어디로 진학했는지요?

“(앞에서 이미 이야기했지만, 평자는 여기서 정말 뜻밖의 대답을 듣는다) 서울로 와서 세종대학교 발레 전공으로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대학 1년을 마치고 한국무용 전공으로 바꿉니다.(물론 이때 평자는 왜 박경랑의 전통춤에 클래식발레 특유의 우아한 기품 같은 것이 자연스럽게 함께 하는지 하는 것을 이해한다)”

 

 

- 무용단에도 근무를 했습니다.

. 1984년도에 창단된 경남도립무용단의 창단 멤버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무용단이 창원시로 이관되면서 창원시립무용단 단원으로 88올림픽 때까지 활동했습니다.”

 

 

- 존경하는 스승을 말해주세요.

김수악 선생님으로부터 진주교방굿거리 검무 오고무 소고춤 등등을 배웠습니다. 김애정선생님으로 부터는 김애정류 살풀이춤과 교방소반춤 등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제자이면서 천하한량이라는 소리를 듣던 조용배 선생님으로 부터는 소고춤, 북춤, 문둥북춤 등의 동작들을 공부했습니다. 강옥남 선생님은 저의 춤의 기법을 다듬어 주신 분이며, 황무봉, 김진홍 선생님 등으로 부터는 수려한 춤사위의 표현 방식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고향 고성 등의 이름을 모르는 선생님들 - 흔히들 꼭지선생님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로부터는 살풀이춤과 소고춤 등등을 배웠습니다.”

 

 

- 수상실적은 어떻게 되는지요.

대표적인 상을 말씀드리면, 1995년 전주대사습놀이 무용부문 장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1997년 서울전통공연예술 경연대회에서는 심사위원 18명 전원의 만장일치로 대통령상을 수상했습니다.”

 

 

- 지난 반세기 이상 한 평생 무용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지요?

“(다시 깊은 생각에 잠시 담긴 다음) 2때 아버님의 사업이 좋지 않게 되었습니다. 경연에 나가야 하는데, 학원에서 작품을 받을 돈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저 스스로 작품을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기존의 흰 의상에 닭털을 씻어 붙여 의상을 만들고 경연에 나가 경상남도 학예발표회에 나가 또 1등을 했습니다. 힘든 때였지만 저에게는 정말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 나는 나의 작품을 스스로 안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나도 나 자신의 춤을 스스로 만들어 출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나의 춤이라는 것은 내가 스스로 창작해 추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해주었습니다. 무용에서 안무의 중요성을 확인했고, 음악을 잘 이해해야 안무가 가능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 저는 음악을 많이 듣습니다. 서울 부산을 오가며 살풀이춤 음악 하나를 계속 수백 번 반복해 듣기도 합니다.”

 

 

- 가장 기쁜 일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저 스스로의 춤을 - 즉 박경랑류의 춤을 -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저가 전통춤 전공 선택을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의 춤 한 개는 - 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 -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는데, 나머지 9개의 춤을 잘 발전 보급시키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 다시 태어나도 춤을 추는지요?

추고 싶습니다. 현세에 못 다한 것을 다음 세상에서 계속 더 해나가고 싶습니다. 춤은 한 번도 나를 배신하지 않았고 물론 저도 춤에 모든 것을 집중했습니다. 친구와 사람들이 변하는 것은 보았지만 춤은 결코 그러지 않았습니다. 춤은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기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나를 지켜봐주고 있습니다.”

 

-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요?

저의 10개 춤을 세상에 전수 보급시켜나가는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저의 춤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춤 출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앞에서 이미 말씀드렸지만 저의 이 10개 무용의 탄생 혹은 안무 창조 과정을 하나하나 상세히 글로 적어 책으로 발간해 후세에 남기는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전국의 무용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십시오.

진정한 춤을 추기 위해서는 진정한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올곧은 마음으로

자신들의 춤에 정진해 나간다면 우리 전통춤의 앞날은 밝기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 힘들어도 더 인내를 가지고, 더 멀리 보고 나는 새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송종건/월간 무용과 오페라발행인/sjkdc@hanmail.net)

 



Posted by 경헌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우리 춤은 맛을 알면 벗어 날 수 없는 마약과 같아요” - 박경랑

“이번에 제대로 된 한 판을 벌여 보자” - 김운태


12일 오후 8시 호암아트홀에서 ‘판굿’의 공연이 있었다. 공연 전 관객들의 질문을 들고 분장실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신 박경랑 선생님과 앞서 공연을 하고 나오신 듯 숨을 고르고 계신 김운태 선생님을 만났다.


Q. 팀을 어떻게 이루셨는지 궁금하고요, 이런 공연들은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경랑) 솔로로 활동 하고 가끔 이렇게 모여서 공연을 해야 될 때는 모여서 연습을 합니다. 같이 연습을 하는 기회는 많이 없죠.

저희들 공연은 마당에서 또 자연스런 분위기에서 공연이 많이 이루어집니다. 정형화된 무대도 중요하지만 우리 것이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보여주고 관객들과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장소를 많이 택합니다.


(김운태) 이런 공연은 서로 재미있어서 오는 거예요. 우리 것이 외국에 소개 돼야 된다는 입장에서의 사명감 그거 아니면 모일 수가 없어요. 각자 솔리스트로 공연 하는 것이 더 많고. 저 같은 경우는 혼자 다니는데 이렇게 쟁이들이 모인다고 하면 언제든지 달려와서 하는 거죠.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공연은 많이 있어요. 국립국악원, 국립무용단도 따로 있고, 남사당도 있고 각 시립 굉장히 많은데 통상적으로 정기공연을 하다 보니 신명감이 덜할 수도 있고. 저희 공연을 하는 목적은 프로들이 모여서 제대로 된 판을 한 번 벌여보자 라는 거예요. 이번에는 외국인을 상대로 우리 공연을 선보이고 내년에는 공식적으로 수출해보자 하는거예요. 이 공연을 준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Q. 2004년에 하셨던 <춤추는 바람꽃 여성농악단> 보다 무대화 됐다는데 그 의미가 무엇이고 또 그 때의 공연과 지금의 공연이 다른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박경랑) 2004년 공연은 흩어졌던 분들이 모여서 형식을 짰던 무대구요, 이번에는 무대화시켜 만든 작업이기 때문에 지난번의 마당놀이의 형식을 그대로 올려놓은 것에 비해 조금 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듬어진 공연이죠.


(김운태) 예전 공연을 복원하는 차원에서 신경을 많이 썼어요. 작품을 만들기 보다는 옛날 사람들을 모아서 다시 한 번 재연하는 쪽이예요. 이번에는 가락도 정리를 하고 춤사위도 정리를 했어요. 흔히 말하는 연풍대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왼발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하는데 전라도는 왠지 오른쪽 발을 사용하면서 흥청거려요. 그런 것도 시도를 했는데 아직 완성은 되지 않았어요. 해가 흐르면 흐를수록 그 부분을 더욱 신경 써서 본격적으로 익히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Q. 한국무용을 잘한다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고 청소년들이 한국무용을 왜 전수해야 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박경랑) 한국무용에도 신무용이 있고 전통무용이 있는데 신무용은 젊은 세대들이 많이 좋아하지만 전통무용은 좀 소외시 되었기 때문에 많이 볼 수 있는 기회도 없었죠. 그런데 요즘은 우리 것을 다시 살리려고 하는 흐름 덕에 전통무용도 많이들 좋아하죠. 우리춤은 깊이가 있어요. 서양 사람들이 따라 할 수 없는 어떤 오묘한 춤의 기법이 있기 때문에 저희가 외국에 가서 외국춤을 배우면 쉽게 따라 하지만 서양분들은 저희 춤을 쉽게 받아들이질 못해요. 우리춤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신체의 모든 부분들을 활용해야만 제대로 된 하나의 춤사위가 나와요. 또 서양춤은 오락성이나 보여지는 춤인데 반해 우리 춤은 보여지기도 하고 인생의 철학이라든지 자기가 살아온 인생의 마음과 정신이 담기지 않으면 한 동작 한 동작이 우러나오질 않아요. 그게 서양춤과의 차이죠.

우리 것이기 때문에 더 소중함을 알고 해야 된다는 걸 알지만 젊은 사람들이 현대리듬 감각에 빠른 것만 좋아하니까 느린 것에 익숙해져 있질 않아요. 하지만 한 번 빠지게 되면 벗어나질 못해요. 왜냐하면 우리의 국민성이 그대로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들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려고만 하지 말고 과감하게 부딪쳐 보면 자기도 모르게 점점 빠져들게 될 거예요. 그 맛을 알게 되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게 마약이나 마찬가지예요 우리 춤은. 단순하지가 않기 때문에.


(김운태) 한국무용이나 서양무용이나 ‘잘한다’는 개념은 똑같아요. 다만 형식미가 조금 다를 뿐이죠. 그리고 체형이 다르기 때문에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요. 서양은 즉흥적이지만 한국은 내면적인 표현이 많아요. 한마디로 제가 공연에 흔쾌히 나가지 않으면 흥을 낼 수 없어요. 동작이 많지가 않으니까요. 한국무용을 잘춘다 라고 하는 것은 우선은 나를 찾아 봐야 해요. 내가 무대에 서는 사람이 맞는가. 또 내 소망과 삶이 무대에 서기를 원하고 있는가를.

한국무용을 잘 추려면 첫 번째 한국적 체형을 놀여야 해요. 또 한 가지 말씀 드리면 절대적으로 음악을 느껴야 해요. 춤에는 장단이 보이고 장단 속에는 춤이 보여야 된다는 거죠. 서양에서는 장단을 비트라고 하는 것 같은데 쌈바를 보면 광장히 강하게 단순하면서도 잠시 동안에 사람을 끌어들이는 강한 비트를 갖고 있지만 우리는 형식에 드러나는 게 적기 때문에 힘들고 내면적으로 힘을 줘야 해요. 그걸 어른들이 속박자라고 해요. 내 속에 박을 품고 있다. 그러니까 한국무용을 잘 추려면 여러 가지 것들을 경험하고 체험해야 돼요.

- 아직 공연을 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다며 친절하게 대답해 주시고 마지막 기념촬영에 멋진 포즈로 마무리 해주신 박경랑 선생님. 한복을 차려입은 고운 자태에서 빛이 나셨다!!

- 공연 중간임에도 불구하고 질문에 대답해주신 김운태 선생님. 마지막 질문을 하나 남겨두고 공연 중간에 인터뷰 한다고 혼난 나를 위해 공연 끝나고 대답 해주시겠다고 하셔서 눈물 났다.


글/영상 시끌이 기자부 이현진

인터뷰 동영상보기 : http://www.sidance.org/bbs.php?table=2007notice&uid=321&query=view

Posted by 경헌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0-03-07
박경랑의 교방춤 인터뷰와 동영상

촬영 : 천승요
원본 소장처 : 예술방송국 (http://www.artsmuseum.org)

Posted by 경헌

댓글을 달아 주세요



[송동선이 만난 사람] 춤꾼 박경랑씨
영남춤 맥 잇는 춤사위… 전통과 퓨전의 어울림

  • 국제신문 2006-06-28 20:39
"춤을 춘다/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몸짓으로/ 호박꽃 같은 춤을 추고 싶다/

한 마리 나비가 되어 훨훨 춤을 추다가/ 춤으로 녹아 흐른 호박꽃 꿀을 따다가/

호박꽃 속에 갇히어 죽을지라도/ 슬픈 영혼을 품은 푸른 별로 남으리/

춤은 내 인생이다, 눈물이다/ 아니 그것은 내 사랑이다, 열정이다."

지난 26일 저녁 부산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살풀이춤, 지전춤, 교방춤(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을 추고 있는 박경랑 씨.
지난 26일 저녁 부산문화회관 대강당 무대. 이하월백(梨下月白)보다 더 파르스름한 소복으로 살풀이춤을 추며 '호국영령'을 위무하고 있는 박경랑. 젊은 광대들이 저어대는 해금 가락은 애간장을 끊는 듯 구슬픈데, 휘어져 감기우고 돌아서 다시 뻗는 춤꾼의 소매 끝을 스치며 너풀너풀 허공을 가르는 수건자락은 길 잃은 영령을 인도하는 구름이 되고, 다리가 되고, 반야용선이 되었다.

시나위 가락이 빨라지면서 춤은 지전춤으로 바뀌고, 지전은 어느새 영령들의 노잣돈이 되었다. 흡사 전통춤에 맞춘 듯한 박경랑의 단아한 몸매에서 솟구쳐 나오는 춤사위는 폭풍이요, 뇌운이었다. 무심한 영령인들 어찌 감응치 않으랴.

박경랑(45) 씨는 영남춤의 맥을 정통으로 잇고 있는 전통 춤꾼이다. 네 살 때부터 춤을 익혔다니 무력(舞歷)으로야 완숙기에 접어든 중견이지만, 마음이 열려있는 신세대 춤꾼이다.

이날 무대는 '박경랑과 광대들의 놀음'이라는 타이틀이 보여주듯 그가 젊은 혈기로 시도하는 섞음(퓨전)무대. 전통 국악기에 신시사이저, 피아노까지 동원되었다. 그리고 고성오광대 전수생들로 이루어진 'the광대'의 사물놀이와 오광대춤 일부가 나왔다. 특히 박경랑의 춤곡 연주를 맡은 '젓광대 공감'은 20대의 신세대 국악도들로, 그들의 발랄함은 구차한 형식을 타파하는 발칙함으로 통한다.

이날 공연은 강당을 가득 채운 관중과 광대들이 함께 어우러진 일종의 마당놀이였다. 관중들이 박수로 박자를 맞춰주고 무대 앞에서는 물론 무대 위에까지 올라가 연희자들과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은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장면. 이날 공연을 기획한 (사)부산문화 박흥주 대표는 "문화대중이 박경랑을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단언했다.

이들 광대의 재치와 익살은 뒤풀이까지 이어졌다. 박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는 그들의 여흥을 깨지 않기 위해 기다려야만 했다. 결국 결례를 무릅쓰고 밤 12시가 훨씬 넘어서야 박 씨와 마주할 수 있었다. 장소는 대연동 뒤풀이 집에서 옮겨 앉은 주례동 기사식당. 박 씨의 무용학원 이웃으로,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이다.

<ㅏ-2>"교방춤에 대한 내력이 궁금하네요."

"예전 기생들이 추었던 춤이죠. 우리 전통춤의 원전이라고 할까요. 이를 기초로 해서 모든 춤이 생성되고 파생된다고 보면 됩니다."

"교방춤을 잘 춰야 다른 춤도 잘 출 수 있겠군요."

"물론입니다. 기생들에 대한 교육을 맡은 곳이 교방청이었고, 영남교방청은 기생으로 명성이 높은 진주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방문화가 가장 오래된 곳은 부산(동래)이랍니다. 그 때는 기생들이 춤선생에 대한 오디션을 봤다네요. 춤선생이 춤을 추어보이면 기생이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해 춤을 배운 거죠."

"살풀이춤은 어떤가요. 그 춤을 보노라면 공연히 눈물이 나올 것만 같던데요."

"일종의 무속춤이지요. 지금은 교방춤으로 편입됐습니다만. 살풀이춤은 가장 섹시한 춤입니다. 소복을 통해 비칠 듯 말 듯 한 여인의 속살은 처절한 한(恨)의 몸짓인데, 그게 섹시미를 더하는 거지요."

"그래서 더욱 슬픈가 봐요. 아까 지전춤은 여느 지전과 다른 것 같던데요?"

"채 양쪽에 지전이 달려 있는 거요? 보통은 한 쪽에만 있는데, 그만큼 힘이 듭니다. 기교도 더 필요하고요."

"그래선지 매우 장엄하고 다이내믹하더군요. 그 춤사위에 해원(解寃) 못할 원혼(寃魂)은 없겠지요?"

"그럴 것으로 믿습니다. 제 춤에 영령들께서 평안을 찾는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지요."

"교방춤에서는 선비가 치마폭에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선비가 멀리 떠나면서 정인(情人)의 증표로 속치마에다 서화를 남기는 모습이죠. 옛 조상들의 운치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요?"

남원에서 한양으로 떠나던 이몽룡이 춘향이에게, 서화담이 동짓달 기나긴 밤 잠 못 드는 황진이에게도 그리 했을까. 이 날 공연에서는 도예가 서종훈(경기도 여주 민예총지부장) 선생이 박경랑의 치마폭에 난초를 치는 일을 대신 했다.

<ㅏ-3>"춤을 추실 땐 무아지경에 빠지겠지요?"

"관객을 의식하면 춤이 되지 않습니다. 무대 위에서는 춤을 춘다는 사실 그 자체마저 잊어야 합니다. 제가 춤의 진가를 알게 된 건 한 5년쯤 됐나 싶어요. 오직 춤을 출 뿐, 일체의 상념을 벗어 던져야 한다는 것을."

"일각에서는 전통의 파괴라거나 격이 낮다는 비판이 없지 않은 줄 압니다만.

"개의치 않습니다. 저는 철저히 전통을 고수하며, 그 정통성을 지키고 전수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대중을 상대로 한 공연에서는 관객들이 흥미를 느끼고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절실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통은 고수하되, 연희형식은 과감히 변화를 해보자 하는 차원에서 이번 섞음공연이 기획됐습니다. 다행히 관객들의 호응이 좋아 성공하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물론 시류에 영합하는 지나친 상업주의는 거부합니다. 그러나 대중의 욕구에 부응하고 시대흐름에 맞춰가는 것이 문화 예술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주로 생음악으로 안무를 하시는데요. 더러는 요란한 음악에 춤이 묻히는 경향도 있지 않는지요.

"그렇다고 음악 없이 할 수는 없지요. 물론 음악에 춤이 빨려들어서는 안 됩니다. 춤이 음악을 이끌어야지요. 지난 93년 처음으로 했던 개인 발표회를 이생강 선생의 대금 독주로 했어요. 그 때 모두가 놀랐지요. 젊은 혈기랄까, 오기랄까 뭐 그런 거였죠."

"공연하랴, 후학 지도하랴 많이 힘드시리라 봅니다. 연습은 어떻게 하시나요."

"1997년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을 때까진 하루 2시간도 채 잠을 자지 않았어요. 먹고 살아야 하기에 낮에는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고, 제대로 춤을 배우기 위해 여러 스승님을 찾아다녔죠. 게다가 서울에도 전수소를 차려 오르내리기도 했고요. 발을 무척이나 혹사시켰죠."

그러면서 그는 부끄러움도 잊은 채 외간남자에게 외씨버선을 벗어 발을 보여줬다. 발가락 마디마디는 말할 것도 없고 발가락 사이에까지 못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발등과 발목은 버선목에 주리를 당해 푸르스름한 멍과 함께 굳은살로 변해 있었다. 처절함 바로 그것, 최고 고수가 되는 과정의 고난이 얼마만큼 치열한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박 씨는 차를 몰고 서울과 부산을 오르내린단다. 운전대를 잡고도 음악을 들으며 어깻짓을 하는 등 잠시도 춤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밤중에 차를 몰고 가다가 여명을 느끼면서, 해돋이를 보면서 형언할 수 없는 환희를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그 감동과 감정을 춤에 끌어들이려 애쓴단다.

몸을 던져 완성해 가는 수도자와 같은 노력이 오늘날 '박경랑에 대한 주목'을 낳게 한 원동력인가 싶었다. 새벽 3시가 돼서야 인터뷰를 마친 기자는 그의 앞에서 감히 졸린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편집위원 songsun@kookje.co.kr
Posted by 경헌

댓글을 달아 주세요



 가끔은 다른 영역의 예술장르와 만나는 것이 창작작업에 큰 도움이 된다.조각가 김학제(오른쪽)와 한국춤꾼 박경랑의 만남도 장르를 넘나들며 한국적 미의식을 다시 생각하고 창작작업으로 연결시키는 자리가 됐다.
재즈에 맞춰 살풀이를 춰봐 

지난 99년 '사형제 폐지를 위한 삶 권력 죽음전'에서 한국춤꾼 박경랑(41·박경랑 영남춤전수소 대표)은 망자의 넋을 달래는 살풀이를 추고 조각가 김학제(45·동아대 교수)는 생명의 저울을 그린 조각작품을 내놓았다. 그렇게 처음 만났던 두 사람이 경성대 부근 라이브재즈클럽 '몽크'에서 다시 만났다. 부산재즈클럽의 회원인 김교수가 이날 '몽크'의 라이브공연 기획을 맡았다며 자신의 '아지트'로 초대한 것이다. 

조각가와 한국춤꾼의 만남에 재즈가 다리를 놓아 그럭저럭 재미있는 그림이 됐다. 재즈의 선율이 몸속으로 휘감겨 들어온다는 느낌이 들자 기자가 농담 섞어 말을 던졌다. '재즈음악에 맞춰 살풀이를 출 수 있을까요?' 

―박경랑 / 이런 음악은 우리 자진모리 장단과 비슷하네요(다소 빠른 템포의 재즈 선율을 듣고는 앉은 자리에서 바로 춤이 나왔다. 농담처럼 말을 던졌는데 너무 진지했다. 기회가 되면 재즈음악에 맞춰 우리춤을 춰보고 싶다는데까지 진도가 나갔다). 

- 김학제 / 재즈는 굉장히 포괄적인 음악이죠. 각 지역의 민족음악을 포괄하는 재즈의 특성에 비춰보면 한국의 선율도 예외는 아니겠죠(재즈 애호가답게 한 수 거들었다). 

―박 / 한국창작춤을 서양춤에 맞추는 것보다 서양음악에 전통춤사위를 맞춰가는 것이 더 올바른 창작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한국창작춤은 방향이 없고 춤의 기틀도 잃어간다는 이야기가 많잖아요(사실 박경랑은 억척스럽게도 영남춤을 고집한다는 데서 중심이 있다. 혹자는 박경랑의 춤을 대나무가 연상되는 수려한 몸매에서 아름다운 난초의 유연한 곡선을 그려낸다해서 대와 난초에 비유하기도 한다). 

- 김 / 현대미술도 전통과 단절돼 있어요. 초상화나 풍속화 등 회화쪽에서는 여러 형태로 한국의 전통이 남아있지만 입체미술 즉 조각에서 한국적인 조형의식을 찾기란 쉽지 않아요. 기껏해야 불상 장승 토우 같은 부분이지만 한계가 있어요. 일제시대 이후 현대미술을 갑자기 수용하다보니 우리 것이 계승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구의 형식이 들어와 혼란스러운 작업을 하고 있죠. 그래도 전통춤은 나은 편 아닌가요. 

―박 / 전통춤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재야에 묻혀 있는 분들을 찾아뵙고 고증을 해내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그런 와중에 많은 토속춤들이 사라지고 있어요(그러면서 갑자기 기생문화 이야기를 꺼냈다). 왜색문화 때문에 잘못 인식돼 왔지만 그들은 정말 풍류를 알던 사람이에요. 소리면 소리, 글씨면 글씨, 춤이면 춤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죠. 저는 춤 하나밖에 모르지만…(교방문화가 우리춤의 원형을 보존한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녀의 이야기가 이해된다. 실제 그녀는 공연때마다 화류놀이하는 장면을 무대화시켜 술과 시, 춤과 노래가 어우러지는 풍류마당을 재연하고 있다). 

―박 / 우리춤의 정신을 잃은 대신 지나치게 사변적으로 무용이 흐르고 있다는 것도 문제죠. 

- 김 / 현대미술도 점차 개념화돼가고 있어요. 사고를 위한 사고를 요하는 것처럼…. 깊이와 대중성 두마리 토끼를 잡기가 쉽진 않지만 그래도 농담 섞어 제 작품의 화두는 '쉽고 깊게'라고 말하곤 해요. 한국인의 조형의식은 곡선의 미학이자 부드러움의 미학이죠. 한국인의 정서를 미술조형적으로 재해석하고 정립할 수 있는 통찰이 필요해요. 

―박 / 제가 김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던 것도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는 선생님의 작품세계 때문이었어요. 

- 김 / 99년 개인전 때 움직이는 작품을 내놓은 적이 있어요. 알몸을 한 원추꼴의 인간상이 공중에서 마치 떠도는 것 같은 느낌을 준 작품인데 정적인데서 동적인 부분을 끌어들인 것이죠. 만약 박 선생과 같이 작업할 기회가 오면 박 선생의 춤사위 움직임에 따라 내 작품도 움직이는,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지는 작품을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박 / 제 신체 움직임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도 괜찮겠지만 선생님이 만든 작품을 제가 그대로 표현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어요. 춤사위를 그린 조각작품 전시회에선 전통음악을 깔고 선생님 작품에 춤을 출 때는 재즈음악을 배경으로 깔고요.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창작본들도 나올 수 있겠지요 (재즈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기자가 끼어들 틈도 없이 전통을 거쳐 새로운 창작작업으로 진전되고 있는 중에 이날의 라이브 공연도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이상헌 기자 ttong@pusanilbo.com 



경북일보 2001.8.13.
Posted by 경헌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국 무용의 비너스, 박 경랑

[예술부산. Vol. 67. 2010. 5/6. 48-49.]

 

2002년 어느 야외 공연에서 박 경랑의 살풀이를 촬영하던 방송국 카메라맨 두 사람은 아주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 그녀의 춤은 남자의 마음 깊이 숨어있는 작은 불덩이를 활활 태워 화염이 온몸을 감쌌던 것이다. 그 들은 박 경랑의 춤이 일반 한국 무용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느낌의 정체가 무엇인지 분간하지는 못했다.

 

당신의 춤이 섹시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모른다.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춤은 하체가 여성 춤이라고 할 수 있다. 발 디딤이 섬세하고 허리 놀음이 많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신체의 미세한 세포까지 움직이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작을 하다가 만다. 팔을 뿌릴 때도 손목만 까딱한다. 그러나 힘이 몸통에서 팔을 지나 마지막에 손목을 뿌려야 한다. 몸 기운이 서서히 손목에 전달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언제 무용을 시작했는가?

발레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이다. 무용은 네 살 때부터 마산에서 유치원에 다니며 시작했다. 마산 월영 초등학교. 마산 여중, 마산 여고를 나와 세종대에서 발레를 전공했다. 이화 여대 출신인 김 청자 교수에게 배웠다. 대학 시절 발레 공연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발레도 잘 했지만, 한국 무용에 더 관심이 있었다. 내가 무릎이 많이 나왔다. 발레는 체격 상의 문제로 포기 하고 한국 무용으로 전환했다.

 

대학 졸업 후 활동은?

1984년도 졸업하고 경남 도립 무용단(지금 창원 시립 무용단)에 들어갔다. 한국 무용을 계속했기 때문에 한국 무용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내 춤을 추고 싶어서 88년에 무용단을 나와, 89년에 부산 사직동에 무용 학원을 차렸다. 그 당시 안무자는 정 양자. 이 경애이다. 전국 8개 시립 무용단 주역 무용수 인터뷰를 객석에서 했다. 거기에 나도 들어갔다.

 

한국 무용을 누구에게 배웠나?

부산은 외가이다. 아버지도 토성동에서 공장을 하셨다. 방학 때 황 무봉에게 무용을 배웠다. 부산에 와서 김 진홍의 공연을 보고 저 분에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 진홍 학원에는 90년도 부산에서 학원 차리고, 결혼하고, 애기 낳고, 다니기 시작했다. 승무, 살풀이, 검무, 지전춤 등을 배웠다. 90년대 중반부터 강 옥남에게 교방춤을 배웠다. 김 현자 안무일 때 부산 시립 무용단 객원으로 출연한 적도 있다.

 

대학까지 발레를 한 것이 한국 무용을 하는데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발레나 한국 무용은 춤의 원리가 동일하다. 나는 발레를 했기 때문에 기초가 좋다. 하체의 힘이 좋다. 발 동작의 업다운이 좋다. 나는 무릎 굴신을 발목을 접으며 한다. 발목을 접으면 무릎이 저절로 굴신이 된다. 무릎만 굽히면 펄떡펄떡 하게 된다. 한국 무용만 했다면 지금처럼 굴신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수상경력은?

전주 대 사습놀이에서 1995년에 5번째 나가서 장원을 받았다. 1995년 장원하고 서울 국립 극장에서 기념 공연을 했다. 대구 국악제에서도 대상을 받았다. 상을 많이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상에 미친 년이라며 비난하지만, 목표가 있어야 연습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 대회 저 대회에 참가했다. 장관 상을 5, 1996년 국무 총리상, 1997년 대통령상(서울 전통 예술 경연대회)을 받았다.

 

대회에서 무슨 춤을 추었나?

대회에 나가면 이 매방 류를 추었다. 다른 춤을 추면 떨어진다. 1997년부터 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당신의 춤은 한국 무용의 주류와 다르다. 어디서 차이가 나는가? 나는 호남류와 영남류를 겸비하려 한다. 호남류의 철학은 아름다움과 기교이다. 영남류는 흥과 신명이 깃들인 춤이다. 호남류는 미를 추구하고 곱게 춘다. 영남류는 시원하고 투박하지만, 흥의 표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 춤은 호남의 안방춤과 영남의 마당춤을 통합하는 춤이다. 그러니 내 춤을 단순히 섹시하게만 보지 말아 달라.

 

박 경랑의 춤에는 여성이 생동하고 있다. 여자의 춤에 여성스러움이 나타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 무용가 대부분은 여자이지만 그들의 춤에는 여성이 없다. 그들의 춤에는 여자의 환희와 슬픔이 없고, 그냥 인간의 막연한 한과 기쁨만 있는 것이다. 그런 중성의 춤과 달리 박 경랑의 춤은 여성의 매력이 폭발한다. 그래서 그녀의 춤을 보는 남자 관객은 남성이 되며, 여자는 여성이 된다. 비너스가 여성의 상징이라면 박 경랑은 한국 무용의 비너스인 것이다.(배 학수)

[출처] 한국 무용의 비너스, 박 경랑|작성자 배학수

Posted by 경헌

댓글을 달아 주세요



http://blog.naver.com/av1000/20101663120

 

Posted by 경헌

댓글을 달아 주세요



창간호 특집 인터뷰

정영만 선생님 인터뷰

(2011년 춘천아트 페스티벌에서의 인터뷰)

 

interview by 백 재 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춤과 음악, 소리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참 좋은 질문이네. 이제까지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춤과 음악과 소리는 따로 구분이 되어 있는 게 아니라, 다만 동작 부분이나 눈으로 봤을 때 저건 춤이다, 소리다, 저건 음악이다 이러는 것이지. 옛날말에 우리 사설에도 나와 “노래가 나면 춤이 난다”라는 이야기가 있어. 소리 없는 춤이 어디 있고, 노래 없는 춤이 없다고, 흥이 나면 먼저 노래를 가지고 흥이 나면 몸이 움직여지잖아. 그건 자연적인 발생인거야. 사람은 자연의 순리대로 가야지 자연의 순리를 역행해서 따로 떼어간다든지 하면은 이것은 이상하다. 그 근본을 모르고 춤을 춘다는 자체가 그것은 춤이 아니다.

춤은 무언의 극인데 무언의 극을 어떻게 동작에 아무 느낌이 춘다는건지, 그러면 그건 춤이 아니다. 그래서 춤과 소리는 같이 간다. 같이 혼합되어야만 제대로 된 예술이 된다. 혼합되어야만! 춤과 소리가 없을 수가 있나? 음악도 소리에 속하지.

소리가 나야 춤이 나거든. 춤이 나야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거든. 그러니까 누군가 하는 말이 “춤을 부르는 소리”라고 하더군. 그게 맞는 말이야. 안그래요?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소리 없는 춤이 어디가 있어요? 소리가 빠르면 빠른대로 춤을 출 것이고, 늦으면 늦은대로 출 것이고, 몸 동작이란 자체가 그렇잖아요. 허나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이 춤이란 자체가 왜 춤을 출까? “왜 춤을 춰?” 이런 질문을 하면 답을 못 내려요. ‘좋으니까?’

 

좋은 것은 기본이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들리는 소리가 몸을 움직이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니까 춤을 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마음을 움직이게 하니까 춤이 추어지는 거예요. 마음에서 우러나는 춤이어야지!

 

누구는 그러더라구요. ‘춤’이라는 글자가 사람이 마음위에 서 있는 형상을 본 따서 만든 글자라구요. 그래서 춤은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고, 또 마음을 움직이게 춤을 추어야 한다고 말하더라구요.

 

그건, 학자들이 해석해서하는 말이고 나는 학자 수준은 못되어서 그렇게 말은 못하고, 나는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또 우리 선생님들이 가르쳐주신 그대로 말하는거예요.

“나는 춤꾼이예요!” “나는 음악가예요!” 이런 말이 나는 참 못마땅해!

 

선생님께서 좀 전에 말씀해주셨듯이, 선생님처럼 오랜 세월 한 분야에 몸담으신 분들은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박사 논문을 선생님처럼 한평생을 예능에 몸담아 오신 예능보유자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그분들이 생각하시는 한국춤에 대한 생각을 interview하는 연구였는데, 너무 흥미롭게도 분야는 각자 다르셔도 한국춤을 생각하시는 카테고리는 일맥상통했습니다.

 

그렇지, 그래 봐야지.

 

공부하시는 분들의 이론이나 생각이 먼저 생겨난 것은 아니라고 봐요. 학자분들이 책을 통해 춤에 대해 음악에 대해 소리에 대해 많은 이론을 펼치셨지만, 그분들도 저처럼 여러 선생님들께 많이 여쭤보고 공부해서 문서화시켰기 때문에 학문적 정의가 나왔지, 실기를 하시는 선생님들보다 앞서서 여러 정의를 내놓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이런 작업(지금의 interview)을 학자들이나 또 자기 선생을 모시는 제자들이 잘못된 것은 밝혀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물론 이 세상이 잘 못되어서 그렇게 하기가 힘든데...

예를 들어 자기 선생이 볼펜을 연필이라고 했어. 그건 아니잖아. 앞에서 아부한다고 볼펜을 연필이라고 하지 말아야지. 세상이 어지러워서 그 앞에서 볼펜을 연필이라고 한단 말이지. 선생님 앞에서 ‘선생님, 이거 혹시 연필 아닐까요?’라고 정중하게 다시 여쭈어봐야지. 제대로 된 선생은 ‘어 그래..연필이었구만, 연필이야.’라고 말해주겠지만 ‘아니야. 그건 볼펜이야!’라고 밀고 나가는 선생은 상당히 선생의 자질에 문제가 있는 거지. 그런 세상이 되어서는 안되겠지.

특히나 춤에 있어서는 전공한 춤꾼... 이 전공이라는 말에, 전공했다는 말에 있어서 나는 참 아이러니한 것을 느끼는데, 난 어릴 때부터 우리 선생님한테 와서 교수나 교수될 사람이나, 박사논문 쓰는 사람들이 와서 몇 시간 취재나 인터뷰하고 가요. 잠깐 몇 시간이야... 그게 전체인 것처럼 다 퍼져서 그게 획일화가 되어서 정론화가 되어 있단 말이예요.

그러면, 물론 그 말은 맞겠지만, 그게 정말 속 맛을 알겠는가? 아니다 이거지. 그래서 춤은 춤대로 장단은 장단대로 음악은 음악대로 가는 거지. 이건 아니라 이거지! 같이 간다. 왜 같이 가느냐? 우리는 권번에서 배울 때 춤이라고 해서 따로 배우고 소리라고 해서 따로 배우고 그러지 않았어요. 소리 속에서 춤이 있었으니까! 그러면 하나만 물어보자! 춤에 호흡이 있나?

 

선생님의 질문에 일상적으로 답을 하자면 춤에 다 호흡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응, 배웠지! 그런데 호흡이 없는 게 어디 있겠어! 그러나 춤에 따르는 호흡은 아니란 말이지.

 

소리에 따르는, 소리와 함께 가는 소리와 같이 가는 호흡이 춤의 호흡이라는 말씀이신거죠?

 

그렇지! 바로 그거야. 잘 봤네. 그러니까 춤에 따로 되어 있는 호흡은 없어! 난 그것은 결론은 내린다.

소리하는 사람들이 “얼씨구나~ 어~ 어~~~으...” 소리에서 거기서 춤이 나오는 거야. 발림에서 춤이 나오는 거야! 발림이 춤이 되는거지. 그 시대에서 어느 한 사람이 “어 여기가 춤이 좋겠구나..이 사위가 좋겠구나..”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어진거야! 음악도 마찬가지야. 거기에 맞춰서 그때 그때 좋아서 지어진거야. 그걸 정리를 하는 가운데 또 교수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니까 어디에서 몇 장단에서는 호흡을 쉬고 끌어올릴 때는 호흡을 내 뱉고 뭐 이렇게 정론화 시킨 것은 잘못 된 것이지. 이건 교과서적이다. 다만 배울 때는 이래 배웠지만 다음에 할 때는 이래 하지 말아라. 이건 기본적으로만 하는 것이지 이게 다는 아니라는 것을 꼭 단서를 달아서 가르쳐주어야해!

그래서 지금 춤꾼들이 거의 중급정도 올라가서 다, 거의 다 뭐.. 이런 춤꾼들이 누굴 가르치는데 있어서 어디에서 몇 장단 올라가서 내뱉어주고 어느 동작에서는 호흡을 팍 쉬어주고.. 이런건 말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 왜 아니냐 하면은 하다보니까 그렇게 하면 더 자연스럽게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춤을 왜 그렇게 지금 새로 정리한다는 명분하에 그 춤을 로봇식으로 만들었냐 그거지!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이거지. 예술은 자유분방하고 그 다음에 제약을 받지 말아야하고, 왜 제약된 예술을 하려고 하느냐, 다만 예(禮)는 꼭 지켜주고 도리는 지켜주어야지!

 

학교에서 오래 배우고, 교수님께 배우고 여러 강사선생님들께 배우고 했단 말이예요. 너무 오랜 시간 학교에서 공연문화를 접할 때, 순서를 정확히 배워서 옷 입듯이 정확히 배워서 MR에 맞춰서 하는 공연 문화가 너무 오랜 세월 몸에 익은거예요. 물론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공연할 때 MR을 가장 많이 썼어요. 여러 큰 선생님께도 많은 배움이 있었지만 박경랑선생님께 배움을 시작하고 나서 가장 큰 변화라고 할까, 인식의 변화라고 할까.. 그런 것을 꼽으라고 하면 소리를 춤과 연결시켜서 생각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음악을 탄다는 것이 무엇인지, 왜 춤이 MR을 떠난 음악이 소리가 춤과 연결되는지... 물론 지금 다 안다는 것은 거짓말일테고..필요성과 그렇게 한다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소리에 따라서 여기서는 이렇게 타주고, 이 소리에서는 이렇게 추어지고 저 소리가 날 때는 이렇게 추어지고 그런 굵직굵직한 것을 가르쳐주어야지. 애들에게 생각할 수 있게, 창의력을 끌어 낼 수 있게 끌고 나가야지. 원래 이런 것이 우리나라 교육인데, 옛날부터 있어왔던.. “아가 니가 한번 지어바라 .” 이렇게 가르쳐줘요. 기본만 가르쳐주고. “자~ 소삼대삼은 요렇게 요렇게 소삼이 들어가고 이럴 때는 대삼이 들어가고 얼르는 춤은 이렇게 들어가는 거다.” 이런 삼요소를 어느 학자님들은, 돌아가신 정병호 선생님께서는 그걸 정중동(靜中動)이렇게 만들어 가지고...설명하셨지.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시잖아요. ‘소리는 호남이요, 춤은 영남이다.’ 제가 워낙 모르니까 책을 통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꺼리나, 옛 어르신들의 말씀 말씀에 귀를 기울여봤는데, 이 말을 보면서 정말 영남과 호남의 특성이 다른가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우리나라는 지역별 특성이 다 각기 다르잖아요. 호남, 영남, 충청, 경기별로 다르잖아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영남지역의 특징, 그러니까 다른 지역과 구분지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특징은 어떤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굳이 특징을 말하자면, 그 지방의 문화적 관습이, 문화적 관습을 먼저 이야기하고 나서 그 지역의 특징을 말해야 해요.

네 맞아요. 문화와 역사와 관습은 항시 같이 가는 거니까요.

 

그렇지, 문화와 역사와 관습은 항상 같이 가지. 그 걸 보고나서야 왜 특징이 그렇게 생겼는가의 이유가 나오는 것이지! 이유 없는 결과는 없거든. 그래서 근본적으로 영남쪽에는 현시대로 근접해서 말하자면 서구문명을 가장 빨리 받아들이는 지리적 조건을 갖은 곳이 영남이야. 일본도 가까워. 인천도 서구문명을 받아들이기에 좋았지만 아무래도 영남쪽에는 부산이 있어서 더 쉽지 않았나. 영남쪽은 서구문물을 받아들이기에 어디 보다도 더 빨랐기에 소리나 전통 문화쪽이 더 빨리 없어져. 선호를 하지 않아. 예술이라는 자체가 얼마만큼 발전되는가는 일반사람들이 얼마만큼 선호하느냐에 따라 달렸는데, 선호가 없으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니까. 전통문화가 그 선호도가 전라도는 많아. 높아! 그런데 우리 경상도는 선호도보다는 경시풍조가 있어. 경시풍조가 만연해서... 시대적으로 정치적으로 그 경시풍조의 이유를 캐보면 더 알게 되겠지만 어쨌든 이곳 경상도에는 전통문화에 대한 선호도가 약해. 영남지역은 일반인들의 전통문화예술 선호도가 떨어져. 춤이든 소리든 이런게 많이 미천한 쪽으로 돌변하다보니까 더딘 발전을 보이고 왕성한 발전을 못했지. 반면 전라도는 많이 발전되었는데, 유독 춤만 그렇게 경상도가 발전되었느냐? 그게 아니고 고급문화는 고급문화대로, 마당문화는 마당문화대로 발전되어왔지만, 경상도에는 거의 통제부, 삼도통제사령부가 발전되어 온데에는 거기가 조선시대에 백제권이기 때문에 그 문화가 통영으로 해서 고성으로 거제, 부산 자갈치까지 그리 봐주면 되지. 그렇게 해서 소리, 춤 문화가 발전되어 올수가 있었지. 그래서 박녹주( 朴綠珠, 1906.2.15.~1979.5.26 본명 명이(命伊). 경북 선산(善山) 출생. 12세 때 박기홍(朴基洪)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고 뒤에 송만갑(宋萬甲)·정정렬(丁貞烈)·유성준(劉成俊)·김정문(金正文) 등에게 배웠다. 1937년 창극좌(唱劇座)에 입단하였으며, 1945년에는 ‘여성국악동호회’를 조직하여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인 판소리 《춘향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가, 1970년 《흥부가》의 예능보유자로 변경, 지정되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선생이 한 이야기가 있어. “통영에 가서 별신굿 소리를 듣다보니까 그 학습이 보통 공력이 아니더라. ”그 만큼 예술의 공력이 범상치 않게 발전되어 왔지만 일반인들의 선호도 측면에서 발전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맥이 끊길 뻔 했어. 자칫하면.. 그래서 춤만 겨우 남아서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였었지. 그러다가 탈춤이 먼저 문화재로 발굴이 돼. 탈춤이 발굴이 되다보니까 영남은 춤이요 호남은 소리라는 말이 나온 것 같애. 나는 거기에 상당히 거부반응을 많이 일으켜. 왜 그렇게 되었느냐 하면은 전라도에 가보면 선호가 부러울 만큼 했을 뿐이라. 물론 소리 같은 것은 전라도에 유명한 사람 많지. 그러나 우리 경상도에도 소리를 유명하신 분 많아요. 안알려져 있어서 그렇지. 이화중선(1898년∼1943년. 여류명창 중의 한 사람. 부산 출생. 김초향(金楚香)과 더불어 당시 여류 창악계의 쌍벽이었다. 17세 때 남원군 수지면 호곡리 홈실박씨 문중으로 출가하여 살던 중, 협률사(協律社)의 공연을 보고 감동하여 집을 나가 장득주(張得周)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천부적인 목소리와 재질로 몇년 만에 〈춘향가〉‧〈수궁가〉‧〈흥보가〉를 공부하였고, 서울로 와서 송만갑(宋萬甲)‧이동백(李東伯)의 지도를 받아 당시 여류명창으로서 가장 인기가 높았다.

아무리 어려운 대목도 거침없이 시원스럽게 불러 청중을 매혹시켰으나, 오히려 거침없이 쉽게 부르는 것이 감동을 덜 주는 단점이 되기도 하였다.

일제 때에 임방울(林芳蔚)과 함께 음반을 가장 많이 녹음한 명창으로 꼽히고 있다. 대동가극단을 조직하여 지방순회공연을 많이 하였고, 일본 공연도 많이 하였다.

1943년 재일교포 위문공연차 일본을 순회하던 중에 죽었다. 그녀의 장기는 〈심청가〉 중에서 ‘추월만정(秋月滿庭)’, 〈춘향가〉 중에서 ‘사랑가’였다. 출처, 참고문헌 : 朝鮮唱劇史(鄭魯湜, 朝鮮日報社, 1940) 판소리小史(朴晃, 新丘文化社, 1974), 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씨 집이 김해야.

 

역사를 보면 유명한 권번들은 다 이쪽 경상도지역에 있었잖아요.

 

다 이쪽에 있었지.

 

선생님 말씀을 듣다보니까 든 생각인데, 어느 한쪽만 치우쳐서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소리도 보면 서편제, 동편제 나뉘어서 말들 하는데, 뭐 워낙 분류를 해서 그렇지 그건 아니지! 지금, 이매방류 뭐 이렇게들 분류해서 말들 하는데 그렇게 하면 안되지. 세상이 자꾸 이렇게 변해져 버리는데.. 뭐 그렇게 분류해서 좋은 점도 있겠지. 그러나 내가 볼 때는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어느 편에 서게 되면, 편견 된 입장으로 볼 수 있다는 거지. ‘어 전라도 지방에 가면 당연히 소리가 잘할 것이고, 잘해! 경상도 지역에 가면 당연히 춤이 좋아. 춤을 잘춰!’ 그건 아니지! 그런 걸 배우는 입장에서나, 가르치는 입장에서나 이런 걸 바로 짚고 넘어가 주어야 해요.

우리는 기성세대잖아. 기성세대는 무언가? 기성세대는 자기입장을 구축하는 자기를 위한 욕심이 아무래도 많은 집단인데, 그 아래에서 이렇게 구분되는 분류가 나오는게 아닌가? 생각해요. 정론화 시키는 이론화 시키는 입장에서만 바라보다보니까, 손쉽게 ‘호남은 소리요, 영남은 춤이다.’라는 말이 나온 것 같아요. 영남쪽에 춤이 발달했다..춤이 발달했다. 발달이라는 용어 자체가 나는 거부반응이 일어나요.

‘소리문화는 영남도 있었지만 오히려 더 선호가 되고 호남은 발달되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고 생각해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영남지역의 특징, 그러니까 호남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영남지역만의 예술적 특징, 영남만이 갖고 있는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그 장점은 영남지역의 예술의 장점은... 문화는 마을, 사람들이 사는 마을의 문화적 관습 이런 것들이 다 영향을 받거든. 말, 행동 같은 문화적 요소들이 영향을 끼친단 말이예요. 경상도 말씨가 어때요? 굉장히 우직스럽지?

 

네.

 

그러니까 경상도는 말씨 자체가 우조.

 

우조? 우조가 뭐예요?

 

우조가 굵직한 소리를 우조라고 하거든. 그러니까 우조의 소리 형태가 잔잔할 때는 잔잔하지만은 그러니까 춤도 아주 영향을 많이 받지. 아주 섬세한 부분도 있지만 아주 우직스럽게 추어 나가는 부분도 있지. 이건 말씨와 같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말하자면 음악이, 소리가... 우리는 “밥 먹으러 가자~!!” “음악~!” 이렇게 턱 단박에 자르지? 춤도 턱 맺지? 그렇지? 덧배기, 배김사위 있지? 이런 게 특징이라!

예를 들어, 똑같은 선생 밑에서 춤을 배우더라도 전라도 사람은 전라도 사람만의 특징이 나와. 부드러워~ 나긋나긋하고, 물론 경상도에는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면도 있지만 아주 우직스럽게 확 차고 나가는 것도 있어. 그런게 지방색에 따라 다 틀리지. 소리도 마찬가지야. 어떤 예술적 요소가 자기 지방색을 낸다는 것이지. 그게 특징이야. 다른 것은 없어!

함경도 사람을 데려다가 경상도 소리를 가르치면 경상도 소리를 다할 것 같나?

함경도 소리가 보태져.

  

   

선생님 권번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권번 이야기전에 교방이야기를 해줄께.

 

그럼 권번하고 교방의 차이점을 말씀해주세요.

 

쉽게 이야기해서 권번은 보수적이야. 국가의 녹을 먹고 나라에서 기생을 키운 자리거든. 거기에 교육하고..딱딱해. 정악처럼... 교방에서 굿거리춤이 있었는가? 없어. 권번은 음악은 정악이야. 딱딱해. 제도화된 춤이 없어. 굿거리라는 자체가 무속에서 나온거거든. 굿거리라는 자체가 굿의 거리라는 말이거든. 굿에 많이 쓰이는 장단이름이 굿거리장단이 된거야. 모든게 세습문화에서 전부 전파되었다고 보면 돼. 모든 춤, 소리, 장단이 모두 전파되었다고 보면 돼. 굿거리는 무엇이냐? 굿은 있는 그래도 판을 벌리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거리라는 자체는 한 과장을 말해. 일장, 이장, 삼장.. 한거리, 두거리.. 이게 장단 이름이 되었지.

그래서 음악과 춤을 같이 알아야 한다는거야. 춤꾼이 음악을 모르다는게 말이 안돼.

 

제 경우만 돌아보아도 음악을 알아야 춤을 제대로 알 수 있는게, 그 교육이 처음부터 제대로 되지를 못했습니다. 음악과 함께 춤을 이해하고 배워야 하는데, 음악보다는 춤이 위에 있다고 잘못 인식하면서 지냈습니다. 음악을 알아야 춤을 더 잘 알아갈수 있는데....물론 몰라서 못가르쳐주시는 선생님들이 태반이예요. 지금의 대학교육을 담당하시는 여러선생님들이... 소위 말해서 장단하나 제대로 못쳐요.

 

우리나라 제도가 잘못된게, 우리나라 국악원도 생기고 좋아... 그런데 무용과 선생이 관현악과 가서 춤을 가르치고 관현악과 선생이 무용과가서 음악을 가르쳐야돼. 우리는 그렇게 배웠거든. 종합적으로...

 

물론 국악원이 그런 시스템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국악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의 무용과도 마찬가지야. 국악과에서 해금하는 놈이 해금만 하는거..이건 아니거든. 이건 서양방식이라...

 

그렇게 배움을 끌어간다면 음악의 이해도, 춤을 향한 이해도가 함께 발전해서 좋을텐데요..

 

그러니까 이해도도 떨어질뿐더러, 집약된 예술문화가 안돼. 나는 권번에서 배웠던거하고 사회 나와서 보는게 이해가 안됐어. 춤을 추는 아이가 구음하나 제대로 못하고, 장단치는 놈이 춤도 제대로 못춰.

 

일례로 모대학은 한국무용전공자가 4년 내내 졸업할때까지 장구채 한번 못잡아보고 장구한번 못 쳐보고 졸업한대요. 장구장단, 북장단을 왜 배워야하냐고 교수가 말했대요.

 

그게 무슨 대학이고, 장단치다가 흥이 돋우면 뛰어나와야지, 춤도 추는 그러는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춤도 못춰. 환경에 지배를 받거든. 피리, 대금도 주변환경에 지배를 받거든. 소리로서 춤을 춰야하고, 몸으로서 음악을 할 줄 알아야 하거든. 이런건 지금 꼬맹이들한테 어찌 해야할거고, 이해를 못해. 손자 같은 아이들은 놓고 무슨 이야기를 할꺼나. 이런 이야기를 하면 지금의 자기교수들을 욕하는 꼴 밖에 안되는데...

 

선생님, 저도 지금보다 어릴적에 지금의 말씀을 들었다면 이해를 못했을꺼에요. 대학의 교수가 되면, 어찌보면 항해사와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해요. 배를 좋은곳으로 안전하게 운행을 잘하면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교수라는 자리는 너무 좋은 선생님들을 모셔다가 좋은 교육을 학생들이 받을 수 있도록 조정하는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교수들이 좋은 선생님들을 모셔다가 교육하는걸 꺼려해요. 자신의 실력과 비교되고 아이들에게 자신이 최고가 아니라는걸 보여주게 될까바...그런 하찮은 이유때문에 아이들은 4년 내내, 너무 좋은 선생님들을 뒤꼭지도 못쳐다보고 또한 좋은 교수법을 지닌 선생님들을 못 만나보고 졸업하는거 같아요.

 

나는 대학교수는 교수다워야해. 가르치는 방법을, 잘 가르쳐주는 방법을, 한마디로 전달자가 되어야해. 좋은 선생님을 모셔다가 가르침을 베풀때 자신의 실력이 들통난다는 생각을 버리고 같이 배우는 입장으로 ‘애들아, 이렇게 좋은 선생님들이 계시단다. 이렇게 좋은걸 잘 배워라’라고 말해주어야해.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선생님을 평생에 한번 만나볼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게 너무 가슴 아파요.

 

내가 이런말하면 아주 모나게 내려깐다..하겠지만, 양심적으로 말하는거야. 물론 나도 말한걸 다 실행하지는 못하지만, 실행할려고 노력한 사람이야. 우리나라에 교육에 적극적으로 실행해야한다고 생각해.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물은 흘러가는대로 놔두어야 한다’ 그러는데 이런 생각이 일제강점기때 나온거야. 일본놈들의 근성을 본받아서 그리해. 그때의 아주 몹쓸 배경이 있어서 그래. 못된 관습이 고대로 남아 있어. 그래서 시대적 배경은 환경의 지배한다는 말이 맞아.

 

그럼 선생님, 권번과 교방은 차이점이 뭐예요?

 

권번은 민간에서 쉽게 이야기해서 기생조합이라고 하지. 나중에는 예기조합이라고 하거든. 쉽게 말하면 요즘 춤패, 마루니..그런 형태가 각 고을마다 있었어.

꼭 예를 들자면 교방은 지금의 국악원처럼 나라에서 운영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고, 권번은 뜻 맞는 예인들이 모여서 지역별 예술연합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서로 전달하고 배우고, 사실은 교방에 있던 사람이 권번에 있던 사람이고 쉽게 말하면 국립국악원에 있으면서 개인단체에도 속해 있고 그런거야. 교방에서는 딱딱한 획인한 문화행사가 많았지만, 권번은 그것보다는 자유로운면이 있었으니까.

교육은 혹독하다.

 

예술은 그 혹독한 훈련의 시간을 거쳐야하는것 같아요. 필수적인것 같아요. 그래야지 예술은 입을수 있고, 그 다음에 자기색을 낼 수 있으니까요.

 

나이먹은 사람들은 퇴기라해서 활동을 안해. 그리고 일정한 나이가 되면 젊은 사람들을 위해 물러나. ‘그래 네가 노름을 좀 할 줄 아네.. 이제부터 네가 해라~’그러면서 물러나. 지금처럼 늙었는데도 죽도록 물고 늘어지지는 않아.

 

선생님 ‘신청’이라는 권번같은 곳이 있었어요?

 

신청이라는 자체가 무당도 키우고, 채선무도 키우고, 기생도 키우고... 매나 소리나고 하던 곳이니까, 통영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권번, 뭐 그런 이름이 ‘신청’이지.

 

선생님, 여기서 공부하셨어요?

 

공부한게 아니고.... 여기서 그냥 살았지.. 허허

 

아...강아지도 과일 안물어 가는 곳이요?(평소에 우스개소리로 정영만 선생님께서는 어릴적 굿판에서 살다시피해서 집에 과일과 떡이 너무 흔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들은 귀하게 보는 과일과 떡이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별만 귀하게 안쳐다보았다는 농담을 잘 하셨다.)

 

허허...... 그렇지.

 

저는 책에서 봤을때 동래권번, 이런걸 봤는데 신청은 처음 봤어요.

 

통영권번이나 부산에 동래권번이나 룰은 그게 다 비슷비슷해요. 동래권번이 70년때 중반까지 있었지. 가장 늦게까지 있었지. 신청권번 그 비슷하게 없어졌지. 동래권번이 없어지기전에 신청이 없어졌으니까...

 

신청권번에 대한 자료가 어디 있을까요?

 

자료가 거의 전무한 상태다. 사진 몇장 남아있고.., 사람들 명단이라든지, 회원들 명단이 다 있었는데 다 사라져 버렸다. 불에 사라져버렸다.

 

왜 사라져버렸어요?

 

글쎄, 다 불에 사라져서 없어졌다. 불에 타 버렸다고...

 

너무 중요한 자료인데, 왜 불에 타 버렸을까요?

 

뭐, 중요한 거라고....불에 타버렸지.

 

지금은 너무 중요한 자료이잖아요. 그때 당시에 활동하셨던 분들의 이야기도 그렇고...

 

그래도 그 자리며 그런거 내가 다 알고 있지.

옛날에 권번출신이나 권번에서 배운 사람들은, 우리끼리 쓰는 ‘변’을 써. ‘변’을 모르면 우리끼리는 치지를 않아. 인정을 안해. 기생은 생자라고 하고, 여자를 아줌라고 해주고 시집안간 여자는 자동이라고 해주고, 디딤이라는 말도 우리 ‘변어’에서 나온말이야.

‘참, 육갑사람 좋다’, ‘손짓 잘한다...’ 이런 용어를 쓰는 사람이 별로 없어. 나이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권번출신하고 아닌사람하고는 구별이 돼.

옥섭이가 나한테 ‘저 사람 권번 출신 맞아? 나랑 한번 같이 가보자~’해서 가서 몇마디 나눠보면 대번에 알아. 진짜인지 가짜인지...

 

권번에서 쓰는 용어가 뭐가 있을까요?

 

권번에서 쓰는 용어? 다 똑같다. 전국적으로 통일이 되어있다. 무당, 기생 이런 사람들이 쓰는 거하고 똑같아. 강신무는 엉터리다. 무당 아니라고 봐.

 

예전에는 이북은 강신무고 남한은 세습무잖아요.

난 강신쪽은 인정안한다. 제대로 배운 사람은 괜찮은데, 대부분이 엉터리다. 왜 이 굿을 하는지 그 자체를 몰라. 신이 시켜서 한대...

 

아, 맞다. 위쪽이 강신이고 아랫쪽이 세습이였는데, 지금은 다 아래지방도 강신이 많아졌죠? 내림굿 받고 하는게 강신이죠? 선생님 말씀대로 어릴적부터 알든 모른든 보면서 자라면서 배운게 참 많은 영향을 미칠텐데...하루아침에 되는게 아니라서~

 

우리쪽은 정치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지. 물론 나도 정치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러다 보니까 주눅도 많이 들고, 욕하는것도 많이 잃어버렸지....

여자 성기를 보성이라고 하고 남자 성기를 장식기라고 하고...

 

보통은 국어국문학과, 민속학과 이쪽 선생님들이 그런 연구를 많이 하시잖아요.

 

많이들 할려고 하지, 와서 물어보면 대답을 많이 해주지...굳이 찾아다니면서 해줄 필요는 없고..

 

그 분들이 오셔서 많이 연구하고, 정립을 해주셔야죠. 선생님대가 지나면 묻힐 이야기들이잖아요.

 

내대(代가) 지나면 없어져버리고 말지. 이제 되었나?

 

네에, 하루아침에 다 여쭈어볼수가 없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여쭈어보겠습니다. 너무 많은걸 지니고 계신 선생님이라서 하루, 하루 찾아뵈면서 여쭙고 알아갈게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소중한 이야기 너무 감사했습니다.

Posted by 경헌

댓글을 달아 주세요



창간호 특집 인터뷰

박경랑선생님께 듣는 춤이 풀어내는, 춤으로 감아드는 인생이야기

 

2010년 2월 5일 합정동 연습실에서

interview by 백 재 화

 

선생님, 몇 살 때부터 춤에 입문하셨어요?

춤은 네 살 때부터 시작했지.

그때만 해도 상당히 이른 시기인데, 춤의 길에 들어선 동기 같은 거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어릴 때 꼭 전통을 꼭해야겠다는 생각보다 내가 어릴 적에는 발레가 막 일본에서 건너와서 많이 성행했기 때문에 나도 발레를 배우게 된 것 같애. 전공이라기보다 어릴 때부터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를 쭉 했으니까.. 발레 쪽으로 많이 기울어졌다 다시 전통춤을 집중적으로 시작한건 필요성을 느끼고 이제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이 들어서지. 또 무엇보다도 우리 할아버지의 맥도 내가 이어야하니까!

 

어쨌든 우리춤의 정기와 맥은 항상 내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었던 것 같고, 우리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점차 많이 들었고 그리고 우리 것을 해야만 내가 춤을 출 수 있는 그 시간들이 오래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 아무래도 발레는 전통춤보다는 생명이 짧으니까 보통 40넘어가면 발레는 아무래도 힘으로써도 딸리게 되잖아. 춤의 테크닉 특성상...

학교 졸업 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어요?

졸업하고 무용단 생활 시작하면서부터 창작춤 추다가 사실 결혼을 하고나서 전통춤으로 몰입했지.

내가 아무래도 아래쪽 출신이다 보니까, 영남, 호남이 역사적으로나 전통적으로 예술의 혼과 맥이 강해.

음... 도립무용단이 처음으로 창단 되고, 경상남도 도립무용단 창단멤버로 들어 가게 되었고 그러다가 도의 재정문제로 창원시립무용단으로 이관되었고, 88년까지 활동하다가 89년 부산으로 오면서 개인연구실 운영하면서 결혼하고 그러면서 전통춤에 혼신을 다해 몰입하게 되었지.

선생님과 관련된 글을 읽어보면, 할아버지 이야기가 늘 나오는데, 가족 중에 같은 길을 가신 분이 계셨어요?

부모님 대에는 없고 그 전 세대 외삼촌도 조금 기여를 하셨구, 외할아버지 때 그때는 내가 어렸을 때니까 잘 모르지만...

고성오광대 초대 문화재셨고 할아버님 무릎팍에서 그냥 응얼거려주셨던 그 느낌은 아직도 가지고 있지.

할아버님 존함이 어찌 되세요?

김(자) 창(자) 후(자) 김창후 선생님!

박경랑 선생님의 춤 선생님은 어느, 어느 분이 계신지 다 말씀해주세요.

사사받은 선생님... 춤 공부한 선생님 존함을 다 말하려면 너무 긴 시간이 필요한데...

첫 스승님은 내가 고성에서 네 살 춤에 입문하게 되었을 때, 그냥 고성에서 나름대로 활동하셨던 선생님이신 이이자 선생님!

조용배 선생님께는 초등학교 4, 5, 6학년 때까지 전통춤을 배웠고,

정식적으로 배우게 된 것은 지금 마산에 계시는 박성희 선생님께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학원에서 수업을 받게 되었지. 또, 박성희 선생님의 남편이신 설수석 선생님께 발레를 배웠었지.

타계하신 황무봉 선생님이 아버님 친구 분이셨기 때문에 초, 중, 고등학교 때 부산으로 주말마다, 방학 때마다 찾아가서 공부했었고,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 집에서 합숙하면서 춤 공부를 했었지.

80년대는 학교생활하고, 졸업 후에 무용단 생활을 좀 했지.

84년, 85년에는 마산에 사셨던 고 김애정 선생님께 춤 공부를 했었고, 졸업 후 88년 창원으로 옮겨오면서 김진홍 선생님을 찾아가서 다시 전통에 열정을 쏟기 시작했지. 그 다음에는 실제 동래권번의 춤 선생이셨던 강옥남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지. 또 작년에 타계하신 김수악 선생님께도 사사 받았고... 이외에도 많은 선생님께 공부를 했지.

선생님 호 가 ‘운파’ 잖아요. ‘운파’라고 호를 정한 이유나 사연이 있나요?

운파 호는 구름 雲 / 파괴할 破 구름을 파괴할 정도로 춤을 잘 추라는 뜻으로, 아는 분께서 지어주셨지. 호가 남다르게 좀 강한 느낌인데, 나한테는 강한 호가 맞는다고 하시면서 지어주신 호!

저도 박경랑 선생님의 춤의 명성은 '영남교방춤'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어요. 영남 교방춤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세요.

영남지역 교방에서 췄던 입춤이지. 사실 입춤이라고 하면 가장 쉽게 가장 기본적인 춤이라고 하는데, 근데 어떻게 보면 가장 기본적인 춤이 어렵지! 가장 중요하다는 건 기본춤을 잘 춰야만 다른 여러 가지를 잘 출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보통 춤추시는 분들이 입춤이라면 기본무로 생각하고 예사롭게 생각하는데 내가 춤을 추면서 느껴 오고 지금 이 시간까지 느끼고 있는 거지.

물론 우리나라 춤의 백미가 승무지만 기본이 없으면 안 되잖아. 그래서 입춤을 완전히 소화해야만 살풀이 승무도 똑같이 소화해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돼. 여하튼 난 그리 생각하구, 다른 사람들과 상반된 생각일지도 모르고...

 

내가 교방춤을 쭉 추면서 춤의 기본법 이라 던지 중요성도 많이 느끼는 것 같아. 이 춤을 감상할 때 어떤 기능 위주보다는 자유자제로 어떤 동작이던 어떤 음악에 맞추든지 나름대로 감정을 자유자재로 표출해서 출 수 있다는 것, 또한 관객들도 그런 감정으로 느끼면서 봐준다면 최고의 춤이 아닐까 생각하지.

 

교방은 기녀들을 중심으로 노래와 춤을 관장하는 기관이지. 조선시대에는 장악원 소속의 좌방, 우방을 교방이라 불렀었고, 교방에 소속된 사람들은 노래, 악기, 춤 등 모든 예기를 두루 익혀서 각종 공적인 연희에 참여했었지.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교방춤은 교방청이 폐지된 후 지방으로 흩어졌던 관기들이 이어받기도 했고, 지방의 무악과 같은 민속악에 맞추어 추는 민속춤이 가미되기도 했었고..

여하튼 이 춤의 특징은 음, 양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춤이지. 남성적인 활달한 상체의 동작과 밀도라고 표현하면 이해가 잘 될까? 밀도가 높은 여성적인 섬세함을 지닌 하체 중심과 발 놀음 즉 디딤 사위가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영남지역 교방춤의 기교가 잘 나타난 춤이지.

 

교방춤의 매력을 설명해주세요.

어..매력적인 동작이 몇 군데가 있긴 한데 사실 부채를 펴는 장면이 그냥 보면 아무렇지 않게 보이는데.. 어떻게 보면 쉽게 얘기해서 교방춤을 보통 분들이 기생의 이미지만 살리다보니까 아주 섹시한 춤.. 이성적인 것 관련해서 표현하시는데요

 

근데 교방춤이란 의미가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물론 많은 동작들에서 여러 가지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가장 다소곳하고 정적이고 가장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부채를 살짝 집어 들어서 펴는 장면.. 그 부채를 펴면서 수 만 가지 생각을 할 수 있거든.

괜찮은 동작이 많지만 부채를 살짝 집어 들어서 펴는 장면에서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아. 보는 분들도 또 그 장면을 보시고 나름대로 상상하시고 재미있는 표현을 하곤 하시더라구..

교방춤의 장단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음악은 상황에 따라 좀 바뀌기는 하는데, 주로 남도굿거리 자진모리 다시 굿거리로 가긴 하지만 느낌에 따라서 조금씩 중중모리에서부터 시작하기도 하구, 음악의 변화는 그때마다 즉흥적인 게 강하지 .정해져서 틀에 박혀져 있는 것이 아니고 교방춤이 즐거운 춤이기도 하면서 어떤 분들은 또 아주 슬프게 느끼시는 분들도 계셔그건 내가 공연하면서 공연평을 듣고, 왜 그렇게 느낄까 생각을 해보기도 했는데 기생들의 애환이라고 할까?? 남들에게 들어내지 못하고 자기 감정을 삭혀야하고 사랑하는 님이 있어도 한번 머리 올리고나면 오로지 기다려야 되고 어쩌면 살풀이춤보다 더 슬픈 게 교방춤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언젠가는 한번 해봤어. 어떤 분들은 흥겹게 느끼고 아주 슬프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개인적인 반응이 상반된 게 또 교방춤인 것 같애.

박경랑 선생님, 끝으로 춤을 어찌 추는 게 잘 추는 것이며,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야 되는지 선생님의 경험에 비추어 말씀 해 주세요.

춤...

출려고 들지 말고, 출려고 하지 말고, 춤을 추려고 들어야지. 그게 춤이지.

이게 무슨 말인지 느낌이 오면서도 잘 모르겠지??

한마디로 가식적으로, 가증스럽게, 억지로 만들어서 춤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춤이 저절로 추어지게, 흥이 나게 추어야 춤이지.

또, 내가 경험에서 우러나서 말하는 건데, 작년에 타계하신 김수악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 중에...

춤은 자연의 이치에서 찾아야해. 산과 들의 펼침처럼 강, 약이 있고 기복이 있게 추어야해. 또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처럼 넘치치도 모자라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힘을 빼고 추어야한다고 언젠가 내 차안에서 말씀해 주신 적이 있었지.

매번 무대에서 춤 추시는 박경랑 선생님을 바라 보면서 강하게 느낀 게 춤에서 힘을 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요즘 느껴요.

최고의 아름다운 동작은 최소한의 에너지로 표현 된다는 말을 선생님의 춤을 보면서 진하게 느낄 수가 있어요. 말은 쉬운데, 동작에서 힘을 빼고 주고가 너무 어려워요.

그러니까 지속적으로 연습해야지!

가장 쉬운 게 가장 어려운거니까...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한국 춤의 최고의 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한국 춤의 미... 최고의 미....

마음이지!

서울 굿의 김금화 선생님께서 언젠가 내게 건네신 말씀이, ‘만인의 꽃이 되어라’ 고 말씀 하셨어. 이 말씀이 그 순간에 가슴에 와 닿았는데...

춤은 마음에 있는 거야.

활짝 흐드러진 꽃처럼 춤을 찬란하게, 춤을 마음으로 표현해야해.

물론, 실력이 출중하시니까 그렇겠지만 선생님은 무대에서의 자신의 춤을 즐기시는 것 같아요.

무대....

무대는 정말 무서운 곳이야. 너무나 정직하고 무서운 곳이야.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곳이야. 그러기에 죽을 힘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야해. 그리고 요즘, 정형화된 무대에서의 춤만 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생각을 버려야해.

내가 춤 출 수 있는 곳은 모두 춤 무대가 되어야해.

모래 위에서, 진흙 위에서, 비탈길 위에서, 자갈밭 위에서.... 다 춤을 자유롭게 출 수 있는 무대가 되어야해.

이래서 못 추겠고, 저래서 못 추겠고... 이러해서 오늘 실수를 했고, 이러해서 춤이 잘 안되었고.... 그건 다 자신의 춤 실력이 모자람의 변명이야.

완벽을 향해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해.

그게 무대 위에서 춤꾼의 자세야.

 

한국 춤에 대해서 그냥 하고 싶으신 말씀... 묻고 싶은 게 많은데, 그냥 문득 떠오른 질문 이예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다보면 자꾸 동하게 되고, 또 질문도 새록새록 생각나고 그래요... 말씀 중에 또 묻고 픈 게 생각날 것 같아요.

한국 춤, 우리춤은 자연스럽게 추어야해. 또 자기만의 춤을 추어야해.

이 말이 참 어렵고, 오해하고 잘못 이해하기 쉬운 말인데,

춤이 처음부터 끝까지 똑 부러지게 정형화된 순서가 있는 게 아니지! 요즘 문화재로 전승되는 제도와 서양식 무대의 정형화, 일정시간의 공연 시간이라는 공연문화의 흐름 때문에 순서가 정형화 되는거지.

 

작품마다 순서가 백 만명이 똑같이 취는 순서가 있는 춤은 아니지.. 우리춤이라는게...

자기만의 춤이라는 것은

물론, 춤마다의 색깔, 특색에 맞는 규격화되고 정형화된 기본이 있지. 그 기본을 다 배운 후에, 한마디로 다 터득한 후에는 그 기본위에, 기법위에서 자연스럽게 춤을 추라는 거야. 자기 맘대로 마음대로, 만들어서 추라는 뜻이 아니고.

 

잘못 이해하면 자기춤을 추라는 말이 지 맘대로 추라는 말로 오해할 수 있단 말이야.

무엇보다 중요한 게 기본 틀을 깨우치고 나서 자기만의 춤을 추어야 하지.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기본적인 것을 토대로 하는 춤 말이야.

자유자재로 출 수 있어야 해.

쉽게 말해서 자기가 다 섭렵한 후에 자유자재로 출 수 있는 게 자기만의 춤이라는 거야!

자유롭게 추라는 말.... 그러기 위해서는 그렇게 되기 까지는 힘겨운 길을 걸어야하고 많은 노력을 해야지. 너무 당연한거지?

 

자연스럽게 추라는 말!

그건 일단 일정 시간을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 보내야 만이 자연스럽게 터득하면서 나오게 돼.

억지로 터득하면 자연스러운 춤이 절대 안나와.

있는 그대로 추어야지. 그게 또 자연스럽게 추라는 선생님들의 말씀의 참 뜻이기도 해!

김수악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자연의 이치.. 이 모든 것이 춤의 핵심이야.

자연은 억지스러움이 없잖아. 춤이 그래야 한다는 거야!

선생님! 제가 언제부터인가 느낀 점 중에, 선생님의 춤의 정신세계나, 춤의 세계관.. 가치관.. 또 제자들을 향한 마음, 제자들을 챙기시는 마음... 이런 모든 것들은 60세 이상 70대의 선생님들과 거의 비슷해요. 제가 박사과정 때 논문주제 정하고 한참 논문 쓸 때 춤 분야의 인간문화재 선생님들과의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때 춤 인생 60년이 넘으신 분들이 대부분 이었는데, 그 분들의 춤을 통한 경험, 춤에 대한 모든 인생관... 말씀과 거의 흡사해요.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았어요.

선생님께서 연배의 다른 선생님들보다 큰 선생님들을 많이 모시고 춤 공부를 해서 그런가바요.. 이건 제 생각 이예요.

그럴 수도 있고, 그런 걸 배제 시키지 못하지.

큰 선생님들은 또 그 선생님들의 선생님께 배웠고...

우리의 정신세계가 고스란히 전해지니까... 그래서 예전에 다 선생님 댁에 기거하면서 공부했던거야. 선생님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춤 한자락, 노래 한자락 차근 차근 배웠어.

지금처럼 순서를 쭈~욱 나가고... 그렇게 배우지 않았어.

머리로 배우려 들지 말고, 마음으로 배워야해. 마음으로 느껴야 하고!!

내가 대통령상 받을 때 있었던 이야기 해줬었나??

97년도에 대통령상 받을 때 였어.

대회가 있기 전, 내가 태어난 고성에 들렸었어. 그때 모셨던 강옥남 선생님과 엄마랑 이렇게 셋이서..

고성 전체를 한 바퀴 돌면서 고성의 정기를 받아서 대회에 나가려는 생각에..

그러다가 어느 향교 앞에 다다랐는데, 그냥 거기 들어가 보고 싶더라구

그래서 다 들어갔지...

그 때 마침, 향교를 관리하시는 분이셨는데, 딱 마주쳤어.

그 분은 장에 나가려고 나서다가 우리랑 마주쳤던 거지. 그날 책거리를 해야 해서 장에 나가시는 길이었다고 하시더라고,

당연히 어찌 왔냐고 물으셨지. 그래서 이차저차 사연을 말했더니

그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

자기도 여기에서 공부하면서 느끼는 게 많아져서 춤에는 문외한이지만 그냥 하는 말이라고, 처음 보았을 때 그냥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었고...

여기 향교에 들린 이유가 그러하다기에 해주는 자신만의 생각의 말이라고 하면서...

나한테 향교 앞에 펼쳐진 산을 가르치면서 해주셨던 말인데, 아직까지 기억에 많이 남아. 춤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고

 

‘앞에 펼쳐진 자연을 보세요. 저 산을 보세요. 산 등성이가 움푹 패인 곳은 사람의 목이라고 생각하고, 산이 평평하게 시원하게 펼쳐진 곳은 사람이 두 팔을 쭉 펼친 거라고 생각해 보세요. 춤을 저렇게 추세요. 시원하게 쭉 쭉 펼치면서 그렇게 춰 보세요. 그럼 좋은 춤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그 말이 참 가슴에 폭~ 와 닿으면서 춤을 시원시원하게.. 자연의 형상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또 시원하게 추어야겠다란 깨달음이 있었지.

그렇게 추었는지, 그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을 수 있었어.

 

선생님, 하루에 단번에 들을 분량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요. 매번 선생님과 이런 지난 이야기 나눌 때는 필히 녹음하고 기록해야겠어요.

선생님의 춤만 무보를 만들게 아니라, 이런 이야기도 또 하나의 무보가 되는 것 같아요.

춤 배우랴, 기록하랴... 채록하랴... 할 게 너무 많아요.

요즘 특히 춤 공부하면서 할 게 얼마나 많고, 많은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고, 그래서 마음이 더 다급해지곤 해요.

이제까지 학위에 많은 시간을 할애 하면서 지냈었는데, 이젠 그 공부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이 엄청난 춤 공부에 매진하고 싶어져요. 더욱더 강렬하게요.

지금처럼, 그렇게 강인하게 저희를 이끌어 주시고, 춤꾼 박경랑, 도전하는 박경랑, 언제나 무대를 신선하게 채우는 춤꾼 박경랑으로 계셔주세요.

보통은 춤 공연에 가보면 일명 가족잔치라고 명명할 수 있게 친구, 제자, 친지, 지인으로 형성된 객석 형태인데, 선생님의 무대는 항상 객석에 남다른 객석점유가 전 좋아요.

일반인들이 더 환호하고, 더 알아주는 춤꾼이 진정한 춤꾼이라고 생각해요.

아... 그래서 서울 굿 김금화 선생님께서 ‘만인의 꽃이 되어라’라고 말씀 하셨나바요??

방금 생각난 거예요.

 

2011년 1월 5일 효창동 연습실에서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춤은 무엇이세요?

 

내가 생각하는 춤?

 

선생님의 인생을 통틀어서, 지금 연세가 50인데 인생의 4/5 이상을 춤만 추셨잖아요. 선생님은 춤으로 세상을 공부하셨고, 춤으로 세상을 수 놓으셨고...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춤, 철학적인 답변을 떠나서 가장 쉽게 떠오르는 생각, 춤,,하면 생각나는 말?

 

춤은 내 생활이지.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되는 생활로 변해버린거지.

 

춤이 선생님이고 선생님이고 춤이 되고!

 

그렇지... 내가 추고 내가 깨달은것을 너희들에게 전해주는것이고, 그게 전부이지.

춤 공부하는데 있어서 가장 포인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떤데에 있어서?

 

마음가짐도 있을수 있겠고... 기능적인 부분에서도 말할수 있겠고...정신적인 부분..

 

기능적인 부분이야 단숨에 안되는것이니까 무조건 반복적인 연습을 해야하는 것이고, 시간과 내공이 쌓여야 하는 것이지. 정신적인것은, 내가 갖고 있는 춤의 정신적인 것은 그냥 자만심만 없애면 된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항상 자만심을 버리는것... 그러니까 기능이 좋아졌다고해서 자만하지 말고 계속 나 자신을 낮추면서 춤추는 것. 자꾸 자꾸 추는것 밖에는

 

다른분들이 박경랑 선생님의 좋은점을 말씀하실때 보면, 물론 모든 중견춤꾼부터 큰 선생님들까지 헤아릴수 없을 만큼 좋은점, 배울점을 갖고 계시지만, 유독 박경랑선생님을 향한 좋은점, 본받을점을 말하는 부분에서 이구동성으로 하시는 말씀들이 있어요. ‘개인 연습이 무지 많은 사람’, ‘독하게 연습하는 사람’..등 연습량에 있어서는 정말 숨쉴겨를도 없이 연습에 연습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씀들하세요. 근데 큰 어르신들은 연습 안하시잖아요. 물론 절대적인 경지에 다다르신분들이여서 그렇겠지만... 제가 가끔 매체에서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연습시간에 관련된 인터뷰를 볼때면 장한나도 그렇고 강수진도 그렇고 하루에 6~8시간 넘게 연습하더라구요. 강수진 같은 경우엔 아침에 2시간 스트레칭하고 눈 떠있는 시간은 춤으로 채우더라구요.

 

연습을 안할수는 없지. 선생님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이미 몸에 배여서 내 스스로 자연스럽게 나오는 부분은 특별히 연습이 필요없다는 말씀이지. 그래도 나온다는 거지. 그게 연습이 안된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이 새로운것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연습을 해야하는거지. 다만 예를 들어서 그 누구도 흉내 낼수 없는 그 사람만의 특유의 동작이 있다고하면 그건 그 사람만의 특징이란 말이야. 그 특징이 남들이 봐서 어설프면 안되지만 이미 자기것으로 소화해내서 누구도 쉽사리 흉내낼수 없는 것으로 기능적인 부분에서 자신의 몸에 배여있다면 그것은 따로 연습할 필요가 없지. 내가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그 선생님들의 말씀이(연습을 안하신다는 말씀) 그렇다고 봐.

나도 공연을 계속하고 그러면, 내가 평소에 연습할때 안되던 것들이 공연하는 순간 음악과 춤과 한순간 딱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 올때가 있어. 백일을 연습한다고 해서 백일동안 내내 같은 동작이 똑같이 되는것은 아니거든. 매일 매일 느낌이 틀려. 그런데 어느순간에 똑같은 동작을 하면서도 ‘아, 이거다...’라고 느낌이 올때가 있어. 그러면 그때는 그 동작이 완전히 내동작이 되는거야. 그때부터는 그게 자연스럽게 내안에서 나와. 연습의 유무를 떠나서 그 다음부터는 안바뀌더라구.

내가 공연을 하면서 한동작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연습하고, 공연하고 그래. 공연을 하면서 몇가지 동작밖에 내것으로 만들지 못해. 백번을 공연을 올린다고하면 99가지, 98가지 또는 101가지... 그 정도만 내 동작으로 만들수 있어. 그렇게 내 몸속에 저절로 저장되는, 인위적으로 저장되는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저장되는 것은 절대로 몸이 잃어버리지 않다는것이지.

다시 말해서 쉽게 이야기하자면, 그동안 연습하는 동안 잠재적으로 연마되던 부분이 어느 한순간 확 발휘되어 나온다는 것이지. 그때는 자신도 모르게 모든게 일치가 된다고 보면 돼. 음악에 대한 감정이나, 내 춤에 대한 동작이나...

어느 순간 되는 느낌이 오고 나서, ‘어떻게 이게 되었지...’하고 공연 다음날 다시한번 추어보면 그때의 그느낌대로 동작이 나와. 그때가 바로 완벽한 자기자신의 동작이 되는 것이라고 봐. 내가 늘 제자들에게 하는 말중에 ‘공연을 올려야한다.’ ‘공연을 해봐야 한다’라고 말하는 이유중에 하나가, 공연을 하면 느는 이유가 이런거야. 이런데서 공연을 하면서 실력적으로 기술적으로 한발짝씩 늘어가는 이유가 있어.

몇백씩 아니 몇천씩 되는 돈을 투자하면서 공연을 올려도 전혀 금액적으로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꼭 하나씩은 얻는게 있으니까!

예를 들어서, 백번의 공연을 올린다면 많아야 백여가지 동작을 내것으로 만들겠지. 그런데 춤사위는 200여가지가 넘는 춤사위로 구성되어 있잖아. 그러니까 어찌보면 자신의 춤사위는 다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못만들고 죽는다고 보면 되는거야. 남이 흉내낼수 없는 자신만의 동작으로 되고나면 죽어도 남들이 흉내내지 못하지. 백번 천번을 해도 못 따라하니까...

이미 자신의 것으로 된 동작은 엄청난 연습이나 연마가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는 차원하는 큰 선생님들이 연습을 안해도 동작이 나온다, 된다..그리 말씀하시는 거라고 난 생각해요. 몸만 풀면 그 동작이 나와!. 완벽하게 내 동작으로만 되어 있다면 몸만 풀면 얼마든지 내동작으로 나오지만, 그렇지 않을때는 될때, 안될때가 오락가락 하겠지. 그 완벽함을 위해서 끊임없이 연습을 하는 거지.

그리고 내가 계속 연습을 쉬지 않는 이유가 또 있어. 예를 들어 제자가 연습을 해. 내 동작을 흉내내는거지. 그런데 그 제자가 언제까지 흉내만 내겠어. 계속 연습하다보면 언젠가는 나를 뛰어넘지 않겠어. 그래서 난 힘들지만 또 연습을 해. 스승이 제자보다 뒤쳐질수는 없잖아. 나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힘겨움을 느끼지...그래도 연습을 할 수 있을때 까지는 계속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게으름 피지 않고 계속 연습을 하는 거야. 또 안하면 몸이 처질수 밖에 없기에 난 계속 연습을 하고, 연습의 중요성을 잊지 않으려고 해. 계속 해주어야 발전하는것도 있고, 또 적어도 현재이 춤실력이 줄지는 않으니까..어느 부분에서는 체력단력적인 이유도 있고 그래.

사실, 요즘 가르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가 제자들에게 내가 연습하는 시간을 따로 안보여주는것 같애. 요즘 들어서 한 생각인데, 내가 연습하는 시간을 제자들에게 안보여주어서 제자들이 연습을 게을리하나...라는 생각에 이제는 가시적으로라도 나의 개인연습을 보여주어야 하나..라고 생각해. 내가 연습하는 모습을 많이들 봐야지 제자들이 ‘아 나도 선생님처럼 연습해야지...’라는 생각을 갖을건데... 혹시 선생이 매일 노는것처럼 보이는것 아닐까라고 생각해.

 

사실, 저 처음 선생님 뵈었을때, 너무 바쁘시고 수업 많으시고, 서울 부산 오가시고... 그런데 공연스케줄은 너무 촘촘하고... 도대체 저 선생님은 언제 개인연습을 하시고 공연준비를 하실까?? 라는 의문이 너무 컸습니다. 감히 선생님께 여쭙지도 못하겠고 혼자서 내내 궁금해하면서 일정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면서 선생님의 수업을 지켜보고, 선생님의 생활을 들여다보면서 그 의문점이 서서히 풀려갔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공연을 목전에 두고서는 일상생활을 전폐하신단 말이예요. 자신의 맡은 수업도 제자들이 가서 해내고, 모든게 공연을 위한 시간으로 바뀌어요.

그런데 선생님의 경우에는 내 공연연습시간, 내 공연준비시간... 이런게 존재하는게 아니라, 그냥 선생님의 생활에서, 너무 평이하게 선생님이 맡으신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는 누구보다도 가장 열심히 춤추시고, 가장 열심히 공연준비를 하신다는 것을 선생님의 일상생활을 관찰하면서 느끼면서 해답을 얻게 된 부분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냥 생활이 춤이고, 춤이 생활이 된 사람처럼 그렇게 누구보다도 가장 철저하게 열심히 공연준비, 공연연습을 하신다는 것을 관찰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이런식으로 궁금한걸 묻지 않고 일정시간 선생님을 보면서 깨달은게 좀 많아요. 선생님의 경우에는요...

 

수업시간에 구령을 붙여주고, 시범을 보이는거...그게 실질적으로는 내것을 다지는것이고 내 춤의, 내동작의 정확성을 다시한번 다지는 것이라고 난 생각해.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자들이 내 연습을 못봐서 제자들이 게을러지나...그러면 내가 연습하는 시간을 보여주고, 제자들과 함께 하는 연습을 올해부터는 다시 잡아야겠다..라고 생각해. 사실 나는 스승이 연습하는걸 많이 보면서 커왔어.

나는 수업시간에 또 다른 나 스스의 연습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는데, 제자들은 그걸 그냥 수업이라고만 생각하는것 같애. 백선생처럼 연습시간에 또 하나의 내 연습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깨달으면 다행인데. 그냥 수업하시는 선생님, 수업이라고만 생각들 하니까, 일반적인 제자들은...

백선생이 처음에 날 보면서 관찰하면서 생각한것처럼 저게 우리 선생님 연습이고,국악원가서 수업하는게 선생님 연습하는 시간이다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수업은 수업이고 연습은 연습이다라고 따로 따로 꼭 분리해서 생각한다니까. 그러니까 이런점에서는 너희들은 아직 숙련도가 덜 되었기 때문에 수업을 받고, 또 수업을 하고 나서 힘들어도 따로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개인연습시간을 갖어야만 거지. 꼭 따로 시간을 내고, 어느시간을 정해서 연습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생활이 춤이 되고, 춤이 일상생활이 녹아들게 연습하는 것도 어찌보면 더 완벽한 공연준비 자세이고, 춤을 향한 마음 가짐이라고 생각해.

굳이 내가 연습시간을 따로 안갖어도 수업을 하면서 계속 몸을 쓰고, 몸을 풀고, 그 동작을 반복적으로 행하다보면 그게 최고의 연습이라고 생각해.

 

그 예전에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중에, ‘자연처럼 춤을 추어라’라는 말씀처럼, 연습시간, 공연준비시간 이렇게 인위적으로 일상생활속에서 행하는게 아니라, 연습이 생활이고, 춤이 생활이게 일생생활에 녹아드는 그런 연습을 갖어야 할것 같아요. ‘지금부터 딱 공부하는 시간!’, ‘공부는 몇시부터 몇시까지..’이런 인위적인 스케줄에 의한 한정적인 연습이나 공부가 아니고, 생각하는것도 공부고, 흘러가면서 듣고 보는것도 공부고 선생님의 동작을 보면서 느끼는것도 공부고... 일상생활속에 어디나 연습과 공부는 존재하는것 같아요. 어디서나 몸을 움직움직이는 곳이면 자연스럽게 연습이 되고, 가르치면서 또 배우면서 모든걸 연마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품어야 할것 같아요. 그때 선생님이 해주신 ‘대자연처럼 춤추어라’는 말씀이 아직도 제게는 배우고 느낄것이 많은 세계의 조언으로 자리잡고 있어요.

 

어제 권오춘회장님이 오랜만에 오셔서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구. 예전에 나한테 ‘왜 부산을 차를 몰고 가세요? ktx있는데, 쉽고 편하게 다니세요. 굳이 손수 운전해서 다니지마시고..’라는 말씀을 내게 하신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이렇게 답했거든. ‘저는 운전하면서 음악듣고, 공연아이템 생각하고, 동작도 다시한번 생각해보고, 제게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운전하는 시간은 절대적인 생각의 시간이예요. 그 순간에 정말 많은 것을 얻어내고 정말 많은것을 깨닫고 그래요.’라고 말씀 드렸었어.

요즘 회장님이 내가 한말이 뭔지, 그 말의 뜻이 어떤것인지 아시겠대. 회장님도 운전하시면서 음악을 들으시면서 다니시게 되었대. 내말을 듣고, 그러다보니까 춤추는 절대적인 시간이 없으면서도 요 박자에 이런 동작이 들어가면 되겠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음악을 이해하는 면이 점점 커지더라는거야. 어제 이런 말씀을 잠깐 하시고 가시더라구.

 

그러니까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도, 몸이 쉬는 시간에도 생각은 춤을 향해, 춤과 관련된 생각으로 머리는 바쁘신것 같아요. 몸이 움직일수 없는 고정된 상황에서는 머리는 이미지트레이닝을 계속 하시는것 같애요. 그러니까 의식이 있는 시간에는 계속 춤을 추시는것 같아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이미지트레이닝의 중요성이랄까? 물론 이미지트레이닝이 너무 중요하지만... 이미지트레이닝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글쎄... 예를 들어서 ‘저런 동작을 이럴때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 등을 오고가면서(서울과 부산) 다 하지. 이번 공연에는 어떤컨셉으로 가야겠다라든지, ‘아 저거랑 이거랑(아이템) 함께 해주면 좋겠네’ 라든지 모든걸 생각해내지. 사실, 앉아서 생각해내는것보다 오고가며 생활속에서 문득 문득 꺼내게 되는 생각이 많고, 아이템이 거의 대부분이지. 글도 쓸려고 앉아서 쓰는것보다 아이템이 평상시의 생각에서 느낌에서 많이 오는거잖아. 내가 앉아서 무대도면을 어찌 그리지, 어찌 가면 좋지~ 이렇게 하다보면 이게 더 좋은것 같고 아니 저게 더 좋은것 같고 헷갈리기만 하고 결론이 안나. 그런데 운전하면서 자연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면서 거기서 색감의 조화도 깨닫고, 또 의상의 색감 아이템도 덩달아 얻게 되고, 그때 그때 생각이 나는걸 놓치지 않고 바로 바로 접목시켜서 공연아이템이나 공연연출 그런거 얻게 돼. 그런 공연의 성공과 실패의 여부는 관객이 해주는거지. 나도 내 입장에서 이번 공연은 관객이 이렇게 느끼는것 같으니까 다음번 공연에는 이렇게 참고해야지라고 생각이 또 들고... 그런데 이제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올린 공연이 거의 다 성공이란걸 했지. 내 생각에서 빗나가서 된 공연은 없었어.

그러니까 앉아서 아이템 짜려고 해낸 생각보다는 자연스럽게 일생생활속에서 터저나오는 발상, 자연스러운 생각에서 더 효과가 컸지.

예를 들어서 지나가면서 단풍이 든 나뭇잎의 색을 보면서 밑에서부터 든 단풍잎도 있을테고,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단풍잎도 있을테고... 그러면 위에서부터 든 단풍잎의 주황색, 아직 덜든 잎의 연두색과의 조화와 농도, 아니면 거꾸로 든 잎을 보면서 아 저색의 무게감이 더 좋겠다..뭐 이런 비교도 자연스럽게 들면서 내 신체와 접목해서 생각을 하게 되는거야. ‘나는 아무래도 하체보다 상체의 어깨선이 약하니까 약한 부하게 보이는 색상을 선택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에 이번에는 이렇게 가볼까~ 끝동 색깔을 이렇게 해볼까..이러면서 가는거지.

난 아직도 운전하면서 생각하고 생각할께 또 많고, 그러니까 나한테서도 운전대를 뺏지 말아주세요. 내가 집중할수 있는 시간이야. 내가 아직도 기력은 있으니까...(웃음)

 

선생님의 공연문화를 쭈욱 살펴보면서 든 생각인데, 선생님은 연출력도 남다르세요. 한마디로 공연문화의 새장을 여시고 공연문화를 새롭게 선도하시는 분이시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해설이 있는 해설자 문화도 선도하셨다고 생각해요.

또 며칠전에 해주셨던 말씀중에, ‘풍류’판에 비전공자를 세우시는 이유가, 그 옛날의 풍류판에서 흥을 즐기던 사람이 다 완벽한 예인이 아니고 그냥 일반이이었다는 발상에서 기술적으로 완벽을 기하는 전공인보다는 기술적으로 미흡해도 일반인을 세우는게 ‘풍류’의 진정한 의미라는 말씀이 참으로 충격과도 같은 신선함이였습니다. 저는 계속 공연은 전공자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곳, 이런식의 생각에만 빠져있었는데, 사실 그때 선생님의 말씀에 다시한번 놀랬고, 다시한번 생각의 전환이라는걸 갖었어요.

그래서 말씀인데, 사실 저 같은 생각을 관객에 입장에서 대부분이 할거라고 생각해요. 저처럼... 그래서 공연에서 해설자분이 부연 설명을 해주신다거나, 팜프렛이나 그와 비슷한 공연에 관련된 글에서 부차적으로 설명을 해주어야, 선생님의 깊고 디테일한 공연의도가 제대로 살아날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공연에서는 여러 큰 선생님들과의 인터뷰형식으로 가는 것이고, 그런 이야기속에서 자연스럽게 그 옛날 우리선조들이 즐겼던 ‘풍류’판의 의미가 다시한번 제대로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거야.

이윤석, 정영만 선생님들처럼 진짜 풍류판을 즐기셨던 선생님의 진솔한 이야기와 또 ‘우리 풍류나 한번 즐겨봅시다~’라는 멘트와 함께 하는 선생님의 춤을 보면서 관객들은 기량적인 춤을 떠난 진정한 ‘흥’을 즐기게 되는거야. 사실 우리는 춤공연이라고 하면 객석에 앉아서 다들 심사위원이 되잖아. 기량적으로 어디가 어떤지, 연출력은 어떤지, 연기력은 어떤지... 다들 심사위원의 눈으로 춤을 대할려고 하거든. 그게 아니라 흥을 느끼는 무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해.

이번 공연을 통해서 또 내가 춤추는 영남교방청춤의 재조명으로 ‘교방’, ‘권번’의 이야기를 사실적이면서도 또 어찌보면 올바르게 대중에게 전달하는게 이번 공연의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해.

 

선생님, 요즘 들어서 ‘우리것, 우리의 것’하면서 이제까지 전통을 대했던 시선이나 생각보다는 좀 한결 푸근해진 생각으로 우리의 전통을 바라보는것 같아요. 물론 우리가 전통의 한가운데 서 있어서 아직도 너무나 차가운 현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많이 진일보하고 또 앞으로 더 많이 개선되는 전통을 향한 시선과 사고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전통을 향한 정책, 전통을 대하는 시선들이 이렇게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보시는 것들이 무엇인지 여쭙고 싶어요.

 

이번 공연이 또 내게는 중요한 의미이자, 어찌보면 다시한번 공연문화에 새바람을 일으키게 되는 공연이 되지 않을까 싶어.

어제 강소영회장님과, 신동숙이사님께 이번 공연의 연출이나 취지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해 드렸어. 그랬더니 신동숙이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번공연이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공연형태인 학술적인 성격과 함께하는 첫 공연이 될거라고, 색다른 공연이 될거라고 말씀하시더라구.

이번에 내가 하는 공연이(2월 17일 국립국악원 우면당공연 ‘2012 박경랑의 춤- 영남교방청춤 /부제 : 온고지신) 자주 이루어져야해. 이렇게 학술적인 접근을 이루는 전통공연이 더욱더 활성화될때 첫째, 우리가 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재미가 없단 말이야. 새로운 대본 쓰고, 새로운 레퍼토리짜서 하는것도 좋지만, 이제까지의 공연문화를 돌이켜보면, 황진이, 심청이를 소재로 하는 공연이 왜 그토록 인기일까를 한번 생각해봐야해. 다른 이야기도 많은데 왜 심청이일까? 다른 기생들도 무수히 많았는데 왜 황진이일까? 이유는 간단해. 누구나 아는 내용이고, 스토리이기때문에 관객이 입장에서 이해도가 높고 빨리 받아들여서 함께 할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러면 우리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할때는 관객입장에서 이해도를 높일수 있는 어떤것이 함께 수반되는 공연을 해줘야해. 쉽게 받아들이고 ‘아~ 저래서 그랬구나.’ 하고 얻어갈수 있는 공연이여야지. 그냥 한순간 보고 즐기는 공연은 일회성의 공연에서 끝나는 거라고 봐.

‘잘추네, 재미있었네’ ‘아 맞네, 저기서 저래서 그런 춤이 나왔구나~’ ‘그래 저래 가지고 옛날에는 저렇게 놀았구나~’하고 시각적으로 보면 이해도가 더 높아지겠지. 이런쪽으로 해서 이해도가 높은 공연을 자꾸 해줘야 많은 사람들이 전통공연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지.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전통을 접하고, 그러다보면 전통을 향한 정책들이 좀 더 따스한 현실적인 정책으로 갈수 있다는 말씀이죠?

 

그렇지, 누구나가 다가설수 있고 관심을 갖게 되는 전통, 특정인이 향유하는 전통이 아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즐길수 있는 전통이여야지. 그래서 전문가가 필요한것이지만은 전문가들만으로도 다 해결되는 문제는 또 아니야.

대중가요가 왜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을까? 대중들이 쉽게 다가가고, 또 쉽게 즐길수 있으니까 인기가 있다고 봐.

춤보다는 노래는 쉽게 흥얼거릴수 있지만, 춤은 몸으로 하는것이기 때문에 잘못 따라하게 되면 바로 눈에 거슬려 보이기 때문에 더 무서운거란 말이야. 그래서 사람들이 춤은 전문적인 분야의 것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애. 그런데 그 옛날 우리의 춤과 문화는 전문적인 집단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일반인들에 의한 문화였었다고 봐. 다만 끝까지하고 있는 사람이 전문성을 갖고 남게되었다는것이지.

그러니까 아마추어들도 몇십년씩하면 전문성을 갖을수 있다고 봐. 다만 우리가 학부제도가 나오면서부터 전공인, 비전공인의 잣대가 생겨났지만, 난 오래전부터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왔어.

옛날의 큰 선생님들을 보아도 그래, 김수악선생님 등 선생님들 소위 말해서 가방끈 긴게 아니잖아. 김수악선생님 같은 경우에도 8살때부터 기생수업을 받으면서 계속 해왔기 때문에 선생님의 소리가 알려지고 춤이 알려진거지. 만약, 선생님이 일개 기생으로만 살고 말았다면 선생님의 소리, 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겠지. 끝까지 계속 하셨기때문에 알려지고 또 인정받는 분이 되실수 있었지.

그래서 그런 문화를 자주 봐주고, 접해보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번공연의 컨셉이랄까, 공연아이템을 잡은거야.

 

이번 2월 17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 올려지는 공연이 무엇보다도 중요한점이 선생님을 스타로 만들었고, 선생님을 세상에 내놓게 했던 영남교방청춤을 학술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모인, 창단된 ‘영남교방청춤 연구, 보존, 계승학회’가 함께 하기 때문에 공연의 의미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지는것 같아요.

또 요즘, 한동안 멸시되어지고, 그 존재가치가 홀대 받아왔던 ‘교방’문화가 각광받기 시작한것 같아요. 이 교방이라는 것이 선생님의 춤을 떠나서 교방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역사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위해서 만들어진 학회라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 말씀하신대로 해설이 있는 공연이 관객에게 한발짝 더 다가섰듯이, 우리 ‘영남교방청춤 연구, 보존, 계승학회’의 활동으로 인해서, 이 학회가 함께 하는 공연이 해설이 있는 공연이 이끌어냈던 결과처럼 인식의 새물결, 인식의 새바람을 촉구하는 견인차 역할을 해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될것 같애. 솔직히 이 작업은 어찌보면 내가 시작했어야 하는건데, 또 다른면에서 생각해보면 내가 시작했으면 남들로부터 고운 시선으로 안 봐주었을것이라고 봐. 제자들이 너무나 고맙게도 내가 선듯 하지 못하는 부분을 좋은 취지로 시작해 주어서 나로서는 기특하고 고맙고 그래. 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하는것보다 제자들이 하는게 더 낫겠지.

내가 추는 춤이 학회를 통해 더 많이 알려지고, 또 다음, 다음 세대로도 전해지고 하는게 난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어쨋든 이번의 이런 기획이 우리가 하고 나면 또 유행처럼 번져 나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 옛날 내가 해설자가 있는 공연을 하고 난 후에, 전통공연이나 일반 춤 공연에서 해설자가 나타나는 문화가 생겨났던것처럼 말이야.

관객들은 이제 너무 똑똑해지고 객석에서의 경험, 또 다른 매체를 통한 경험이 많아져서 다 알아. 전통의 레파토리에 대해서 많이 알아. 수건들고 나오면 살풀이인줄 알고, 부채들고 나오면 부채춤인줄 알고, 다 알아. 그러니까 더욱더 서면이나 지면이 아닌 현장에서 듣고 바로 이해하는 그런 이해도가 높아지는 공연,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그 즉시 이해하고 느끼게 되는 공연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내가 사실 해설이 있는 공연도 음악공연을 보러 갔다가 해설자가 해주는 설명에 더 이해도가 높아지길래, ‘아 춤도 해설이 있으면 좋겠구나’하고 착안해서 시작하게 된 거야.

춤공 연에서 해설은 간혹 옷갈아 입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게 다는 아니지. 물론 그런 이유도 없지 않아 존재하지만, 더 중요한것은 사람들에게 더 깊게 볼수 있고, 더 잘 느끼게 해주는 포인트를 짚어주는 시간이거든.

 

요즘 관객들은 어찌보면 너무 영악해지고, 문화적 수준도 나날이 높아져가고, 교양이 높아져서 참 무서운 존재인것 같애요. 관객의 입장에서 해설자의 용도나 해설자의 존재이유가 옷갈아 입는 시간을 벌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고, 또는 해설자의 의미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것 같애요. 천차만별의 관객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래. 그런데 또, 현실적으로 해설자가 해설자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주고 그냥 팜프렛의 내용을 쭈욱 읽어나가는 그냥 읽어주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 그건 해설자가 아니지. 그래서 더욱더 관객들은 그 해설이 있어야 하는 시간이 단순히 출연진의 작품전환시간이고 생각하게 되는것 같애. 물론 그 해설이 진행되는 동안에 출연자는 옷도 갈아 입게 되고, 다음 작품을 위해 숨도 고르고 최선을 다할 수 있게 준비하는 시간이 되곤 해. 그래도 해설자의 시간은 그런 출연자를 위해 벌어주는 시간이 아닌, 공연의 포커스에 대한 설명, 공연의 의미, 춤에 대한 깊은 설명 등을 전해주는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봐.

그래서 최종민 교수님같은 분이 최고의 해설자가 되는것 같애. 말씀이 느리셔도 박식하신 분이시니까 많은것을 전달해주고, 또 간혹 본인 스스로가 흥을 돋구어서 흥얼거리는 해설자가 되니까... 진옥섭씨는 최종민 교수님과는 또 분위기가 다르지. 한쪽은 너무 무겁고, 한쪽은 너무 가볍고... 이 두분의 중간에 가는 또 다른 해설자가 나와야 한다고 봐. 아직까지는 없지만...

 

맞아요.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몇가지를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생각하시는게 무엇인지? 개인적인 생각, 제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무엇이신지...

 

내가 저기(족자)에 글 써놨듯이,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것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욕심이 있어야해. 이왕 하는것이니까 다른사람들 보다 더 좋은 위치에 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은 다 기본적으로 깔고 가는거야. 기본 베이스야. 그러나 그 기본베이스 위에 꾸준히 열심히 해 나가는 정신, 마음가짐... 그런게 있어야 한다고 봐. 남들이 할수 없는거, 남들이 하지 않은 무언가를 해보는거, 추진해 가는게 중요한거지, 남들이 이미 했던것을 흉내내서 따라하는 것은 그런것은 아니라고 봐.

그러니까 자기춤을 만들어라하는 말은, 똑같은 춤사위를 가지고 체격이 다 다르고, 성격이 다 다르기때문에 다르게 표현할수 있단 말이야. 또 그렇게 표현되어지고 있고, 그런데 그 실상이 남이 보았을때 거부 반응이 오면 안된다는 거야. 어느 누가 보아도 자연스럽게, 걸려지는 부분이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춤이 되도록 계속 연마하는 수밖에 없다고 봐. 진짜 연습밖에 없어. 이런말은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다 그렇게 말할꺼야. 그러니까 계속 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야.

힘이 들어도, 힘에 부쳐도 이런 이유에서 계속 해나가고 있는것 같애. 내 경우에는.. 이것밖에 할수 있는게 없기 때문에, 이것만큼 잘할수 있는게 없다고 생각했기에 이제까지 이걸 쥐고 왔다고 봐. 분명 다른게 할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그 길로 갔을지도 몰라. 그래서 꾸준히 하는것이고, 다 일등 될수는 없고 또 다 꼴지가 되는 것도 아니잖아. 마음가짐은 일등을 향해서 달려가고 그러면서 단계적으로 그 마음가짐에 가까이 갈수 있다고 생각해. 누구나가 중도하차 하지않고 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만약에 중도하차했다가 다시 시작하게 되면, 그만큼 남들에게 뒤지게 되니까, 내가 쉬는 동안 다른사람은 계속 가고 있었으니까... 쉽게 말해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지.

조금 늦추면서 가도라도 계속 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하루에 열번할거 열한번 하고, 그러면서 가능성을 늘려가는 거지.

 

선생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쭈어 볼께요. 박경랑하면 많은 사람들이 교방춤, 영남교방춤을 열명이면 여덟명이 떠올리지만, 사실 선생님이 추시는 춤이 영남교방청춤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너무나 많은 주옥같은 춤을 추시고, 레파토리로 갖고 계신데 그래도 많은 분들이 선생님하면 떠올리는 춤이 바로 영남교방청춤이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학술적인 정의를 떠나서, 문득 색깔론적으로 설명할수도 있고, 인생론으로도 정의내릴수 있고, 누구보다도 본인 박경랑이 생각하는 영남교방청춤은 무엇인지, 어떤 정의를 내리시는지 궁금해요.

 

내가 느끼는 영남교방청춤...?

 

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영남교방청춤...

 

춤쪽으로?

 

춤쪽이든, 철학적이든, 선생님께 있어서 의미랄까? 영남교방청춤의 의미, 정의 이런것들이요.

 

내가 영남교방청춤이라고 추어서 각인화가 되어서 그렇겠지만, 어쨋든 내가 이 춤을 출 기회가 많아. 어느 공연에 초대 되어도 이춤을 추게 되고, 좋든 싫든..

그러다보니까 이 춤을 출수 밖에 없고, 실력이 나날이 늘 수 밖에 없어.

 

네, 선생님은 곧 영남교방청춤이라는 공식이 되어 있는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디서 공연을 해달라고 초청이 들어와도, 나는 이번 초청공연은 살풀이를 하고 싶어도, 영남교방청춤을 춰야하는 경우가 많아. 내춤이 교방춤만 있는것은 아닌데 말이야. 그러다보니까 다른춤보다 이춤이 잘 춰질수 밖에 없는것 같애. 절대적으로 많은 무대에 서게 되고, 많은 연습을 하게 되고하니까...

내가 알고 내가 느낀 교방춤은 계속 이 춤을 추면서 내 자신을 다스리는 것도 되고, 그러다보면 아, 이춤은 박경랑만의 특유의 춤사위가 있는, 박경랑만이 할수 있는 춤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어찌보면 거만해질수도 있는 말인데, 거만해지기보다는 그 소리가 더 무서워지는 거지.

어떤 목표를 향해서 앞만 보고 올라갔는데, 그 목표치에 어느정도 도달하고 나니까 그게 더 무서워지는 거야. ‘어~ 왜 저것밖에 못추지?’ 이런 소리를 들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되는 거지. 이럴때 순간순간 내가 그런 생각을 어떻게 차고 나가느냐, 버티고 나가느냐... 마음다스림... 그러니까 거기서 ‘더도 덜도 말고’라는 말을 내가 딱 생각해낸게, 더 잘출려고 하면 어찌보면 더 추해지겠구나.

그냥 남들이 편하게, ‘아 저 춤’하면 박경랑이라고 봐주는 것으로 만족해하고, 계속 그 자리를 지켜주는거, 그리고 처음 배울때의 그 마음으로 계속 가주는게 좋지. 거기서 부담을 느끼고 더 잘해야지 더 잘해야지라고 생각하는것은 아니라고...

그래서 최근에 느낀것 중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라는 말이 이런뜻인가보다라고 생각해요.

 

네,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좋은 말씀... 다음에도 다시한번 좋은 경험, 좋은 말씀 나눠주세요.


Posted by 경헌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