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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2.02.29 정영만 선생님 인터뷰


영남교방청춤의 미학적 특징

임 지 애

국문초록

 

본 논문은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에 나타난 구조적 의미와 미적특징에 관한 고찰을 시도하였다. 전통춤의 구조적, 형태적 미적고찰은 나아가 전통춤 전반의 철학적 구조 연구에 초석과 반석 및 발전의 한 영역이 되리라 사료된다.

영남교방청춤은 조선후기 민중들 삶의 모습과 예술의지가 투영되어 있는 하나의 집결체로서 민속무용의 근원적 미의식의 내재와 함께 한국적 정서를 잘 대변하고 있으므로 한국춤의 원형적 가치가 존중된다. 이 춤은 종교적인 기능보다는 오락적이며 예술적인 색채가 농후한 춤으로 발전하였고, 그 변천과정에서 기방 예인들에 의해 한층 기교적이며 세련된 춤사위를 형성하게 되어 오늘날 비중 있는 전통문화예술로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으로 추어지고 있다. 우선적으로 현재적 시점에서 가까운 조선후기에 집중하여 교방춤의 발생요인을 살펴보면서 영남교방청춤이 가지는 춤사위의 특질과 형태적 측면에서 보여진 미적 특질을 고찰해 보았다.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은 전통의 의식적 환기를 일으키며 연구되어 지고 있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변혁에 상응하는 체계적인 이론의 정립이 미비하고 춤의 기록 또한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

본 연구자는 현재 운파 박경랑에 의해 추어지고 있는 영남교방청춤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작게나마 부분적인 분석과 춤의 미적분석 연구를 통하여 근원적 미의식을 발견하고자 한다. 또, 이를 살펴봄으로써 전통춤의 미의식 영역을 명확히 파악하여 다음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은 춤사위에 녹아든 예술성이 영남지방의 지역성으로 분명하게 나타났다. 삶을 지배하는 배경이 예술의 성향을 지배하듯 영남문화의 특징과 특성은 남성성으로 대변될 만큼, 투박하고 힘 있고 우직한 면이 있어 움직임적인 특징도 춤 속에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외에도 음악과의 혼연일체, 다양하고 풍부한 동작소의 존재감, 비주얼의 현대적 감각 수용, 작품의 무대 과학화, 몸 사용법의 차별화 등 움직임 면에서도 다양한 특징적 요소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은 신체의 사용법에서 기존의 전통춤이 표현해내고 고수해내는 신체운용법을 확연히 뛰어넘는 세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는 교방문화의 시작점부터 내려오는 전통이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으면서도 면면히 잘 고수해 온 영남교방청춤만의 전승의 세계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하겠다.

 

핵심어 : 영남교방청춤, 교방청, 미학적 특징, 운파 박경랑

1.1.1.

목 차

Ⅰ. 서론

Ⅲ. 영남교방청춤의 미학적 특징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1.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

2. 연구방법 및 제한점

2. 영남교방청춤의 외면적 특징

Ⅱ. 교방청춤의 개념

3. 영남교방청춤의 내면적 특징

1. 조선조 후기 교방춤 발생요인

Ⅳ. 결론

2. 교방청춤의 배경

참고문헌

3. 교방청춤의 변화양상

Abstract

1.1.

1.2. Ⅰ. 서론

1.2.1.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춤이라는 것은 인간에 의해 창조된 것이기에 그 내면에는 시대가 풀어내는 역사와 지배원리에 따른 사상적 영향, 그리고 수적으로 우월한 민중들의 소리 없는 움직임들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춤의 구조 속에서 보여 지는 특성은 민족의 정서와 시대적 배경이 바탕을 이룬다.

우리민족의 특성으로 자주 등장하는 ‘한(恨)’은 한으로서 단절된 것이 아니라 한을 풀어내는 과정을 통하여 소극적인 정서와 적극적인 정서가 공존하는 상충적이고도 호환되는 이중구조로 성립되어있다. 소극적인 정서는 맺히고, 삭히고, 움켜 안는 등의 정지된 상태로 본다면 적극적인 정서는 포용하고 풀어내고 떨쳐내는 긍정적인 자세로 움직임이 많으며 적극적인 힘을 표출시켜 예술적으로 충분한 승화를 이루어 숭고의 미로 완결되어진다. 이는 춤이 단순한 행동들의 영속적 나열을 상위하며 동작과 행위에서 표출되는 상징적 의미뿐만 아니라 표출하고자 의도되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내면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교방춤은 조선후기 민중들 삶의 모습과 예술의지가 투영되어 있는 하나의 집결체로서 민속무용의 근원적 미의식을 내재하고 무엇보다 한국적 정서를 잘 대변하고 있으므로 한국춤의 원형적 가치가 존중된다. 이 춤은 종교적인 기능보다는 오락적이며 예술적인 색채가 농후한 춤으로 발전하였고 그 변천과정에서 기방 예인들에 의해 한층 기교적이며 세련된 춤사위를 형성하게 되어 오늘날 비중 있는 전통무로서 운파 박경랑에 의해 승화되고 있다.

교방춤은 한국 민속무용 가운데서도 기방춤의 대표작으로 우리춤의 멋과 태, 신명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춤으로서 춤 안에는 우리 민족의 한의 속성뿐 아니라 흥이나 신명과 같이 상반된 의미가 같은 선상에 공존하고 있다. 이와 같이 상반된 의미의 한과 신명이 어떻게 같은 춤 안에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진다.

본 연구는 한국민속춤의 특징이 무엇인가를 표명하기 위한 하나의 연구방법으로서 운파 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에 나타난 구조적 의미와 미적 특징에 관한 고찰을 시도하였다. 이는 한국민속춤의 지향하는 바를 표명함에 있어서, 현재 전통춤계의 밀도있는 춤으로 호평받는 운파 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에 나타난 구조적 의미와 미적 특징에 관한 고찰과 점진적 해석으로 한국민속춤의 본질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은 근래 들어 널리 알려지며 대중적 관심이 집중되어 지고 있기는 하나 체계적인 이론의 정립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춤의 기록은 상대적으로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 나아가 우리 민족문화의 특성을 재점검, 정비할 시대적 필요성에 기인하여 현재 운파 박경랑에 의해 추어지고 있는 영남교방청춤의 총체적 미적분석을 통하여 미래지향적인 전통춤의 지표로 삼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본 고는 운파 박경랑에 의해 추어지고 있는 영남교방청춤이 내포하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고찰하여 보고 그 춤이 상징하는 미적특질이 내포하는 바를 이끌어 내고자 하는데에 큰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영남교방청춤을 직접 체험하여 학습하는 연구자로서 본 연구를 통하여 제대로 된 춤의 표현원리의 지각과 각각의 춤사위와 춤의 흐름이 지향하는 바를 파악하여 우리춤의 생명력, 역동성, 순박함 등의 형용할 수 없는 철학적 본질을 찾고자 하며, 이로 인해 영남교방청춤의 원형을 찾고, 원활한 전통춤 보급에도 일조 할 수 있을 것이다.

 

1.2.2.

1.2.3. 2. 연구방법 및 한계

본 논문의 연구방법은 첫째, 운파 박경랑에 의해 추어지고 있는 영남교방청춤을 직접 학습하고, 춤의 상황을 기록 및 녹취하여 전체상을 파악한 뒤, 춤의 부분적 특징을 찾는데 주력하였다. 이외에도 영남교방청춤 전 과정의 이해도를 위해 ‘2009 박경랑의 춤 백의백무(白衣百舞)’ 공연영상을 보조자료로 삼았다. 또, 운파 박경랑선생과의 수차례 면접과 무대공연 및 수업참관, 평상시 관찰을 통하여 춤의 특징 및 세부사항에 대한 의문을 풀었다.

둘째, 주제와 관련 있는 참고서적 및 논문, 선행연구자료 등을 참고하였으며 관련문헌이 없는 경우에는 그 분야 전문가들과의 면담을 통해 수행하였다.

셋째, 영남교방청춤의 숙련된 춤꾼 및 학술적 연구자 3인 이상과의 지속적인 연구토론으로 삼중검증법을 택하여 연구자의 주관적 견해의 치우침에 따른 연구의 오류 범주를 좁혀 나가고자 하였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 제기된 문제점은 추후 지속적이고 저변화된 연구로 보완 해 나갈것으로 예견된다. 또한 이번 연구를 계기로 영남교방청춤 원형에 관한 다양한 후속연구가 지속적으로 시도되어지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1.3. Ⅱ. 교방청춤의 개념

 

1.3.1. 1. 조선조 후기 교방청춤 발생요인

교방기(敎坊妓)는 대부분 미(美)와 재예(才藝)를 겸비한 관청의 기생과 관비 또는 무당 등으로 된 하층민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예악의 담당기관이며 교습소였던 교방을 통하여 가무(歌舞)를 전문적으로 교습 받았다.

원래는 무녀는 신 그 자체였으나 신격과 정치권력의 분화과정에서 퇴화함으로써 신에 봉사한 무녀가 지방의 토호와 결부되어 매춘부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무녀가 되고 무악의 예능적인 면에서 익힌 예기로 권력층에 예악의 가척(歌尺), 무척(舞尺)으로 봉사하는 기녀가 되는 것이다.

기녀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궁중에 국한한 교방기(敎坊妓)가 표면적이지만 지방 관청에 속하는 기녀도 포함되었다. 그래서 지방의 큰 고을이나 감영, 주군에도 상당수의 관기가 배치되었다.

고종 때는 기녀들이 어느 시기에 못지않게 자주 진연정재를 베풀었고 출연한 기녀나 무동들은 행사가 끝나면 귀향하여 궁중에서 새로 익힌 가무를 동료들에게 전수시켰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궁중의 가무(歌舞)가 지방에서 파급된 것이다. 이렇게 창우 출신들의 무동들이 어른이 되고 그들이 교방청에 들어가 선생이 되어 기녀들에게 춤을 가르치게 된다. 이와 같이 창우 출신과 기녀들은 선비취향의 춤과 평민취향의 춤을 조화롭게 융합시켜서 근세 전통춤을 형성한 것이다.

조선후기 19세기부터는 넓은 광장이나 마당에서 추었던 것이 상업화 내지는 도시화됨에 따라 한층 공연예술로 급속히 변화하여 춤판이 옥내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하여 부잣집 대청마루를 무대화로 하는 좁은 공간에서 춤을 춤으로서 자연히 뛰는 동작이 없어지고 정적 지향의 춤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훗날 소리광대의 판소리판에서도 추는 경우가 많아짐으로서 그 춤들이 판소리와도 상호관계가 있는 공연예술로서의 고전적 춤이 된 것이다.

교방청춤은 교방청에서 다듬어졌지만 예술적으로 발전한 것은 교방이 폐지된 후의 기방(妓房)이였으므로 이른바 판소리, 가야금산조, 삼현육각과 같은 개인적 멋과 기예능이 높은 수준에 있는 춤으로 발전한 것이다. 따라서 교방청춤은 서민들의 심성과 양반들의 심성을 조화시켜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춤이라 할 수 있다.

1.3.2.

1.3.3. 2. 영남교방청춤의 배경

‘영남교방청춤’은 춤 명칭에서 보이듯이 ‘영남’이라는 지역성과 ‘교방청춤’이라는 계층성이 도드라진 춤이 만나서 형성된 명칭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예로부터 지역성이 확연히 구별되어 제 각기 발전하고 발달한 문화와 역사를 지녀왔다. 그 지역성은 땅의 기질과 사람의 기질이 시간성 위에서 변화와 대처를 탄력적으로 이끌어 냄으로 생기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춤의 특징 가운데 지역적, 시대적 특징이라고 좀 더 면밀히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영남교방청춤은 교방이라는 예능관장전문기관에서 영남의 우직스럽고 기개가 넘치는 활달함과 섬세함이 잦아들어 있는 춤의 성향을 지닌 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교방은 한마디로 전문예능인의 교육기관이자, 내·외의 연희에서 악(樂)·가(歌)·무(舞)를 담당하는 곳이었다. 이렇듯 교방은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예능기관이며 그곳에서 시대상을 반영한 악(樂)·가(歌)·무(舞)이 발전되었으며, 그 명맥을 오래도록 유지하였다고 하겠다. 나중에 권번과 기생조합으로 그 명칭과 기능이 다소 분리 발전되었지만, 예능을 관장하고, 예능을 교육하고, 예능을 향유하였던 기관이라는 점에는 상이점이 없다.

 

1.3.4. 3. 영남교방청춤의 변화양상

교방은 쉽게 말해서 정부관하소속이었기에 개성, 평양교방부터 남쪽으로 모두 소속관청이 있었다. 다만 시대적 영향으로 가장 오래 잔재해 있던 교방이 진주, 고성, 통영, 마산, 부산, 대구를 포함한 영남권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그 중 가장 최근까지 남아 있던 것이 부산 동래권번이었다. 그러기에 교방청에서 교육받은 관기들이 관기제도가 폐지되면서 여러 곳으로 권번(기생조합, 예기조합)소속의 기방으로 전속되면서 이동이 많았을 것으로 보아진다. 그런 영향으로 영남권의 교방에서 추어오던 춤사위의 흐름이 엇비슷하거나 동일한 춤사위가 많으며 박경랑의 스승 또한 이곳저곳을 다니던 이름 높던 한량이었기에 총체적인 교방의 입춤 ‘영남교방청춤’으로 명명하게 된 것이다.

영남교방청춤은 현재 운파 박경랑에 의해 활발히 보급, 전수되고 있으며 대중에게 그 인지도를 끊임없이 드넓히고 있다.

또, 영남교방청춤은 가계도의 명맥에서 영남교방청춤의 정통성을 다시 한 번 찾을 수 있겠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초대문화재였던 故 김창후 선생이 박경랑의 외증조부이며, 그의 제자 故 금산 조용배에게로 이어지는 맥을 지금은 운파 박경랑에 의해 추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운파 박경랑은 영남교방청춤의 춤사위가 여느 춤보다 어렵다는 점과 옛 멋을 찾기 위해 동래권번의 마지막 춤 선생 이었던 춘정 강옥남선생을 모셔 동고동락하면서 이 춤을 다듬고 정리하여 무대화시키는 영남교방청춤에 대한 각별한 열정과 가계도를 잇고 있다.

 

1.4. Ⅲ. 운파 박경랑 영남교방청춤의 미학적 특징

 

운파 박경랑은 경남 고성 출신으로, 1993년 제18회 전통 예술 경연대회 대상, 1994년 제12회 개천 한국무용제 특장부문 대상, 전주대사습놀이 무용부문 장원을 비롯한 다수의 수상을 거쳐 제5회 서울 전통 공연예술경연대회에서 심사위원 19명의 만장일치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명무로서의 위치를 굳혔던 운파 박경랑은 타고난 춤꾼이며 현재 영남교방춤을 보급하고 있는 명무이다. 경남고성 출신으로 고성오광대 초대 문화재였던 외증조부의 대를 이어 영남 춤의 맥을 잇고 있는 춤꾼으로 4세에 춤에 입문해 故 김창후, 故 조용배, 故 황무봉, 故 김수악, 김진홍, 박성희, 강옥남 선생에게서 전통춤과 발레 등을 사사한 운파 박경랑은 경남도립무용단, 창원시립무용단 수석단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경상남도 무형 문화재 제21호 진주 교방굿거리춤 이수자, 중요 무형문화제 제7호 고성 오광대전수자로 우리 춤의 연구·전수·보급에 노력하고 있다.

 

1.4.1. 1.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

영남교방청춤의 춤 특성을 보면 곡선이나 원형의 무대진행법을 사용하였으며 사방의 어느 방향에서도 감상할 수 있는 원형적인 춤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뒷모습을 보여주는 동작은 보통의 전통춤에서 나타나는 초연한 모습이나 담담함 또는 한을 승화시키는 미보다는 ‘뒷태’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정도로 관객을 의식하고 일면 교태스럽기까지하며, 또한 사대부의 귀족적인 취향과 멋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이 춤은 닫혀진 좁은 공간의 가까운 거리에 있는 관객의 시선을 의식한 듯 각 동작의 움직임이 짜임새 있게 명확해야 하며 많은 기교와 기술이 필요한 춤이다.

영남교방청춤은 다른 전통춤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단박에 휘어잡는 매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춤이다. 그 매력을 살펴보면 대체로 간략하게 다음의 몇 가지를 짚어 볼 수 있다.

첫째, 음악과의 혼연일체이다. 보통 우리는 악(樂)·가(歌)·무(舞)라 칭한다. 악이 노래가, 춤이 서열화 된 것도 아니요, 어느 한 대복 처지거나 앞서거나 하지 않고 정삼각형의 도형을 이루는 것처럼, 악(樂)·가(歌)·무(舞)는 그렇게 다함께 어우러짐을 표출해야 한다.

둘째, 다양한 동작소의 존재감이다. 한국전통춤의 특징을 말할 때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부분이 반복성이다. 이 뜻의 이면에는 다양한 춤태의 부재가 숨어 있다. 다른 춤에서 쉽사리 찾아 볼 수 없는 다양한 동작소, 춤태를 지니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다양한 표현체의 개체수가 넉넉한 동작소의 저장고를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기에 다른 전통춤보다도 음악의 한 장단 안에 존재하는 춤태가 현격하게 많음을 알 수 있다.

셋째, 비주얼의 현대적 감각 수용이다. 이 부분은 전통문화예술의 미래의 존재성과 생명력을 가늠하는 중요요소이다. 느림의 미학과 경쾌함의 적절한 충족, 이 둘의 완급조절이 현시점에서 전통문화예술이 풀어내야 할 과제라고 볼 수 있겠다. 영남교방청춤은 느림으로 일관되지 않으며, 또한 빠름으로 치우치지도 않는다. 영남의 지역적 맥과 교방청춤의 맥을 살리면서도 현대 대중들의 전통문화예술을 향한 목마름과 갈증을 해소시키는 변모를 적절히 배합하는 춤태를 감각적으로 지니고 있다.

넷째, 작품의 무대 과학화이다. 현대 예술은 서구의 무대예술인 프로시니엄의 무대를 기본형으로 하여 많은 무대장비의 첨단 과학화를 수용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는 춤이 되고자 노력하는 춤이 영남교방청춤이다. 안방문화의 사방위 방향성을 고려하는 춤태에서 프로시니엄 무대로의 전환을 고려하는 춤태로의 다각적 변화를 이룬 춤이다. 프로시니엄 무대의 특성과 관객의 시선을 전적으로 고려하여 몸 방향과 팔 사용법에 사선의 선사용을 감각적으로 이루어냈으며, 시선의 사용 역시 맞물려가며 춤꾼의 신체활용도가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영남의 활달함에 남성성과 섬세함의 여성성을 내포하게 되었다.

다섯째, 네 번째 항목의 세부적인 설명이라 할 수 있겠는데, 몸 사용법의 차별화이다.

 

1.4.2. 2.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의 외형미

영남교방청춤은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야 하며, 곡선과 직선의 조화, 여성미와 남성미를 표출하며 몸통 전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춤의 강·약이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 즉, 다른 교방춤과는 달리 활달하면서도 휘감아 들어가는 허리의 곡선, 어깨의 곡선미가 여성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춤이다. 또, 호흡은 소리의 호흡과 동일하게 하여야 한다.

판소리의 호흡법과 민요풍의 토속적인 호흡법이 병행되어 단전에서부터 공굴려 깊이 있게 끌어 올리면서 대삼소삼(大三小三)에서 다시 호흡의 세분법이 음악의 세분법과 일치하여야 움직이는 듯, 정지되는 듯 하는 이 춤의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다.

시선은 어느 춤이나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이춤은 반드시 시선을 던지면서 가며, 턱선과 어깨선이 거의 일치되면서 자연적으로 턱선이 낮게 드리워지고 다소곳한 느낌이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렇게 할 때 몸의 동작선도 곡선미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영남교방청춤의 여러 특징 중 외면적 특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춤사위를 중심으로 크게 상·하체의 움직임으로 구분하면서 의상이 주는 외형미를 주력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상체

① 상체의 손사위 : 활궁체 사위, ,, 훼치기 사위, 터벌림사위(일자로 뻗기형, 사선형), 휘몰이사위, 학체사위, 버들가지사위, 회뿌림사위 등이 상체 손사위의 위주이며

손동작들은 두 팔을 펼치며 크게 추어야하며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손목놀음 또한 이 춤의 주된 특징들이다.

② 어깨 사용법 : 신체역학 측면에서의 어깨는 팔과 몸통을 이어주는 이음새 역할과 함께 팔의 지지대 역할을 수행하는 중요부위이다. 영남교방청춤은 사선의 팔사용의 기본형을 어깨에서부터 다르게 사용한다. 어깨를 누르면서 가하는 롤링의 변화는 팔의 각도와 높이를 조절하게 된다. 이 점이 좀 더 시원한 상체의 표현, 활달함과 섬세함이 교차 표현되는 점이며, 안정감 있는 상체의 고저 변화를 이끌어 낸다.,

③ 시선과 턱과 어깨의 조합 : 영남교방청춤에서 시선과 턱과 어깨의 세 신체 부위는 동작 가운데 합일점을 보여주는 부분이 등장한다. 시선을 지향하는 춤태 가운데 시선과 턱과 어깨의 합일점을 보여주는 동작에서 관객이 느끼는 감정은 다소곳함과 세련미의 공존일 것이다. 춤의 향기를 담당하는 듯 한 이 세 신체부위의 합일은 고혹적인 매력을 내적발산하는 영남교방청춤의 일등공신과도 같은 부분이라고 본다.

④ 허리사용법의 다양화 : 다양한 춤사위의 급감과 함께 신체 부위의 사용법, 빈도의 급감이 허리사용법이다. 신체 중심의 정점인 허리사용법은 다른 춤에서는 이제는 보기 드문 신체 활용법이 되어버렸지만 영남교방청춤에서는 세밀하게 잘 나타나 있다. 활궁체사위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사선의 방향성에 또 다른 매력을 첨가하는 신체 사용법이 허리사용법이라고 하겠다. 허리 양 옆의 굴곡 있는 선의 사용법이 쉬운 신체사용법은 아닌 것처럼 다양한 허리사용법의 백미는 고혹적 매력의 발산을 넘는 광풍매력의 발산이라고 칭할 만큼 관객에게 색다른 깊이가 있다.

몸을 사용하는 법에 있어서 교방청춤은 굉장한 유연함을 필요로 한다. 하체는 객석정면을 향하고 허리를 비틀어 상체는 감았던 손을 천천히 펴면서 태극을 그려내며 천천히 회전하는 동작을 비롯하여 모든 동작소에는 유연함이 요구됨을 알 수 있다. 또, 유연함에 이어 자진모리의 빠른 장단에서는 흥과 신명이 어우러지는 동적인 동작을 연출하여 민첩한 기교 역시 요구되는 춤이다.

⑤ 손목사용 : 맺고 풀고 어르는 동작을 넘어 강·약의 완급조절이 손목과 손끝에서 나타나는데, 손목의 사용법에 각도가 부여됨으로 그 묘미가 살아난다. 역시 여느 춤에서는 쉽게 만나기 힘든, 풀고 조이고의 자연스러움의 교차가 손목에서 나타난다.

2) 하체

① 하체움직임 : 교방이라는 의미와 함께 안방춤이였기 때문에 아주 좁은 공간에서 얼마나 춤의 묘미를 살리며 보는 이의 마음을 앗아갈 수 있고 흥과 멋을 전해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러기에 아주 미세한 버선발의 움직임과 섬세한 디딤과 작은 움직임을 주는 발디딤은 작은 동선을 이용하면서 크게 보이는 굴신법과 호흡법을 일치 시키는 순간 미묘한 동선의 차이가 나타나는 춤이다.

② 발목 사용범위 강화 : 일반적인 춤보다는 발목사용에 있어서 각도의 범위가 큰 편이다. 이러한 사용법은 급격한 신체의 높낮이를 줄여줄 뿐만 아니라, 무릎에 가해지는 하중을 분산시키는 효과도 있다. 물 흐르듯이 안정감 있게 변모하는 신체중심과 신체의 고저 변화는 각이 큰 발목의 사용법에서 찾을 수 있는 점이다.

③ 발바닥의 세분법 : 발은 다리의 자유로운 이동과 지지에 첫 단계와 같다. 이러한 첫 단계의 발에서 발바닥의 세분법은 춤의 중심을 좀 더 잘게(여러개) 쪼개어 사용할 수 있을뿐더러, 이로 인해 춤의 안정성이 더 강화되고, 호흡 또한 세밀하게 표현 할 수 있게 되는 원천의 힘이다. 영남교방청춤에서 발바닥의 세분화된 표현법은 어찌 보면 다양한 동작소와 맞물려있기에, 다양성의 동작소, 춤사위를 소화해 낼 수 있는 원천이라고 본다.

④ 발의 움직임 : 발사위에 있어서는 발을 들어 살짝 돌려 뒤로 딛는 동작을 비롯하여 디딜방아 사위, 좌·우 달걸음사위, 홍두깨걸음사위, 덧배김사위, 외발들기사위, 용트림사위(용이 물에서 몸을 휘감아 돌며 승천하는 느낌의 공회전하는 동작)가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첫 박에 솟아올라 잔걸음으로 걸으면서 숨을 내려 앉혀 다시 첫 박에 맺는 것으로 관객의 춤의 즐거움, 호흡의 맛과 멋을 동시에 보고 느낄 수 있게 하여 준다.

⑤ 신체 각 부위 : 영남교방청춤은 춤 안에서도 즉흥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흐르는 대로 춤은 추어야한다. 몸의 흐름을 느낄 수 있어야 하며, 춤을 추는 사람이 어느 한 부분이라도 매끄럽지 못함을 느낀다면 영남교방청춤 안에서 그것은 정확한 동작의 완성도가 결여된 것이다. 몸의 중심인 골반이 빠지면 춤의 자세는 흐트러진 상태이기에 골반을 시작하여 등은 곧아야하며 가슴(흉부)은 안으로 감기우고 어깨선은 흘러야 하며, 상·하체가 동작의 형태미를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고는 특별한 동작 외에는 분리되면 되어서는 안된다. 발끝에서 머리까지 모든 신체의 기운이 같이 흘러야 정확하게 맥의 풀고 맺음을 확연하게 표현할 수 있다. 천박하지 않으면서도 교태미가 흘러나와야 하며 춤을 보면서 마음을 앗아 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의 특성을 살펴보면 먼저 무대를 철저하게 의식하고 항상 관객을 존중하는 면을 찾아 볼 수 있다. 무대진행법에 있어서 무대 중앙에서 시작하여 긴장감 있게 천천히 제자리에서 추다가 오른쪽 사선 방향으로 전진하고 다시 무대 중앙으로 왼쪽 사선 방향으로 전진한다. 다시 무대 중앙에서 무대 중앙 정면으로 전진하다 다시 제자리로 이동하는 등 대부분의 관객을 향한 사선이나 직선, 원형을 사용하여 관객이 춤을 감상하기에 가장 편안한 선을 사용하고 있어 관객을 존중한 춤이라는 점을 확인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단순한 선을 사용하는 무대 사용법은 영남교방청춤을 더 깨끗하고 담백한 맛을 느끼게 하는 반면에 꼿꼿함과 숭고함이 함께 깃들어 있어 깊이 있고, 감성적이다.

 

3) 의상

이 춤의 춤사위에서 가장 두드러진 동작은 부채를 드는 장면이다. 무대 중앙에서 부채를 들어 춤을 추는 것은 이 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와 함께 이 춤의 외형적인 미는 의상과 부채의 관계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사진 1, 2>와 같이 춤의 의상을 살펴보면 운파 박경랑은 검정 겉치마에 노란저고리를 주의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공연의 의미와 계절별로 색을 달리 할 수 있다. 세부적으로는 속바지 두벌, 허리 묶는 속치마 두 벌, 겉치마, 저고리, 천노리개를 덧댄다. 다른 민속무용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데, 검정치마에 노란 저고리와 천노리개를 매치하는 것은 시각적 미를 보여주기 위함이며 색사로 수를 놓은 천노리개를 더함으로 복식의 미를 더 화려하게 장식한다. 또, 춤에 사용되는 부채는 교방에서 전해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바탕으로 특징적으로 사용하였으며, 글체는 놀음판에서 선비가 춤을 보고 써주었을것을 전제하에 운파 박경랑이 고정이미지화 시켰다. ‘황룡백학무(黃龍氣白鶴舞)’ 라는 의미로 ‘황용의 날아갈 듯 한 기운을 받아 백학이 춤춘다.’ 또는 ‘백학이 용과 같이 힘찬 기운으로 춤추며 움직이라’는 뜻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춤은 기운으로 추는 것이고, 힘으로 추는 것이 아니며 또한 백학처럼 부드럽게 긴 선을 나타내며 곡선과 유연함을 가르친 뜻이다. 또한 이면에는 사랑의 정표를 상징하기도 하며 부채를 살짝 펴고 얼굴을 가리면서 이어지는 동작의 의미는 여러 가지의 상징점이 내포되어 있다. 순백의 기면(器面) 위에 코발트계의 청색 안료로 그림을 그려 만들어냈던 청화백자와 같이 부채를 펴 들어 얼굴을 가리며 이어지는 동작들은 단아하면서도 화려하고 도도한 품위가 흐르는 청화백자와 같다. 지나치지도 않고 너무 쳐지지도 않으며 언제나 중도를 지켜 균형을 잃지 않는다.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은 우리의 토속 맛이 절로 베어 나오며 교방의 멋이 진하게 우러나오는 춤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의상에서도 볼거리를 제공하는 이 춤은 흐르는 듯 한 유연한 선이 춤동작의 민첩함을 더하고, 자태를 뽐내듯 강렬한 빛을 발하는 청화백자와 같이 그 당당함이 기방예술문화의 영향을 받아 오랫동안 숙련된 고도의 춤 동작과 기술, 그리고 화려하고 귀족취향적인 면도 보여주고 있다.

 

<사진 1, 2>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

 

1.4.3. 3.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의 내면미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은 드러나지 않고 삭혀도 내면에 흐르고, 젖어드는 멋과 흥이 호기심을 알 듯, 말 듯 유발해야한다. 상대방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내면의 감정표출이 분명해야하며 각자의 생각에서 보이지 않는 내면의 속내음이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내면미가 있어야 한다.

어떤 이는 박경랑의 춤을 “살아있는 영혼이었고 그 춤이 만들어 내는 절정과 내적 에너지는 관객의 혼을 끌어 올린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교방청춤을 비롯하여 춤을 추는 사람은 예(禮), 법(法), 도(道)를 갖춘 의식 있는 춤이 되어야하며, 기품이 있어야 한다고 운파 박경랑은 언급했다. 춤은 수련의 내공을 쌓아 이루어지기 때문에 예(禮), 법(法), 도(道)에 따른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 했다. 또, 천박한 이미지를 주어서는 안되기에 조선의 기생들은 가(歌), 무(舞), 악(樂), 시(詩), 서(書), 화(畵)를 잘 아는 사람이 많았다. 그 때문에 선비들과의 교류가 가능하였듯이 모든 예능적인 면에 기예능이 높은 수준에 있어야 했다.

 

1) 정서적 측면

이제까지 언급한 내용들을 전제로 영남교방청춤의 미적 특질을 살펴본다면 첫째, 영남교방청춤은 언어의 본질처럼 기방적인 것이며, 기교가 넘친다. 둘째, 춤사위에 녹아든 예술성은 지방색(지역성)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셋째, 우리춤의 기본 정신인 예(禮), 법(法), 도(道의 세계가 내포되어 있다. 넷째, 다양한 동작소의 존재감. 다섯째, 몸 사용법의 차별화 등 움직임면에서도 다양한 특징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위에서 살펴본 미적 특질 가운데 영남교방청춤의 내면세계에 함축된 정서적 측면을 언급해보는 것은 한국 민속무용의 특징을 밝혀보는 과제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민족정서를 표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심리학자 데이비츠(Davitz)는 “정서의 정의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정서의 본질 때문에 대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정서의 의미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으나 본 논문에서는 정서의 정의를 ‘행동하게끔 동기를 부여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외적표현과 내적 감각과 관련된 복합된 인식상태’로 규정짓고자 한다. 이에 따라서 민족정서를 춤으로 그 민족이 고유하게 간직하고 있는 정서라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성에 나타나는 한과 신명은 우리민족의 고유한 민족정서라 할 수 있는가?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무수한 외세의 침입 속에서 한이 맺힌 민족이며, 양반제도, 노비제도 등을 통해 사회의 하층계급 또한 한을 간직한 채 살아 왔으며, 남존여비의 불평등한 가치관 속에서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한이 있었다.

계층적인 핍박과 문화적인 억압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주어진 사회의 멍이 되고 맺힘이 된다. 즉 응어리진 사회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운파 박경랑은 춤으로서의 심리적인 해방감, 생리적인 발산에 사회적 자유 등과 같은 풀림의 현상이 극대화되는 현장에서 다 같이 해결 될 수 있음을 뜻하여 영남교방청춤을 재구성하게 되었다. 즉, 춤을 통해 한이 풀리고 흥이 있고, 정이 되살아나고 신명이 솟는다. 영남교방청춤의 기능은 종교성보다는 오락적이며, 예술적 색채가 농후한 춤으로 형성하게 되어 오늘날 비중 있는 전통무로서 추어지고 있다. 우리춤의 미적 특질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요소인 소위 예(禮), 법(法), 도(道)의 모습을 현시한다. 또한,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은 곧장 정(靜)·동(動)의 관계에 조용된다. 고요하면서 그 고요가 단순한 죽음의 고요가 아니라 무수한 생명력을 내포하는 역동적 고요, 곧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그 움직임 속에 무한한 고요를 내포한 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마음, 갖은 뜻을 다해 추는 춤”이라 그는 언급하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저절로 베어 나오게끔 자연적인 멋으로 추어져야 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 밖에도 “직접 춤을 추는 춤사위의 태도는 다소곳하면서, 정갈하고, 단아하면서도 도도하게 버들가지가 거센 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바람에 거센 파도가 일어도 부서지지(흐트러지지 않는)않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마음으로 추어야한다.”는 그의 말 속에서 춤의 미적 특질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영남교방청춤은 무기교의 기교라는 한국적 자연주의를 즉흥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며 ‘고요’과 ‘움직임’의 역설적 관계는 정서적 측면에서 보여 지는 영남교방청춤의 미적 특질임을 알 수 있다.

 

2) 지역적 측면

영남이라는 지역의 명칭은 경상도 지역을 뜻하는데, 경상도 지역은 동쪽과 남쪽이 바다와 접하고 있으며 내륙은 해안선과 일직선으로 뻗어 내린 태백산맥과 태백산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소백산맥에 의하여 한반도의 중·서부지역과 나누어지므로 영남지역이라고 불린다. 산세가 험준한 소백산맥은 강원도, 충청북도, 전라북도와의 경계를 이룬다. 또한 조령의 남쪽 대덕산 부근에서 동쪽으로 뻗은 가야산맥은 경북과 경남을 가르는 역할을 한다. 태백, 소백산맥과 그리고 낙동과 그 지류들에 의해 영남지역은 크고 작은 분지와 평야가 많이 형성되어 있다. 이들 지역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비교적 좋은 환경이 되었으나 외부와의 교통이 불편하였기 때문에 외래문화와의 유입은 반도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는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영남지역의 이러한 지리적 특징으로 선사시대부터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문화적 특성과 전통을 갖게 되었을 것을 간주된다.

이렇듯 영남지역의 예술성향은 지역적 특성에 의해 오랜 시간 개별적으로 변모되어온 그들만의 특성화가 되어 오늘까지 영남의 대표적 성격을 지배해왔다.

영남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지니는 춤사위의 특질과 미의식은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사료된다.

우선적으로 경상도라는 지역은 야류를 비롯한 경남농악, 학춤, 한량무 등이 발달되었던 지역이다. 또한 이와 더불어 많은 예능인들이 배출되어 우리나라의 전통예술 또한 널리 보급,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한다.

영남지역의 음악적 특징을 살펴보면 정교하고 감칠맛이 있으며, 부드럽고 굴곡이 많고 남성적인 수식과 기교가 많다. 또 장구장단의 경우 장단의 붙임새에 변화가 많으며 사설과 장단이 서로 엇물리는 엇붙임을 많이 쓴다.

해안지방에 위치한 영남지역은 지방색이 강하여 농악에서의 가락도 상당히 빨리 몰아내며, 진모리(덧뵈기) 가락이 많고 빨라서 전체적으로 씩씩한 느낌을 준다. 그와 함께 향토적이며 소박함을 내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듯 영남지역은 보통 음악이나 춤에 있어서 생동감과 뛰어난 짜임새를 갖추고 있다. 춤동작은 나긋나긋하기보다 민첩하며 세련된 편으로 개인놀음이 발달해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러한 소리의 특징과 같이 춤에 있어서도 잔기교가 많고 변화가 다양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흥미로움을 자아내며 엑센트가 강하게 표출되어 부드러움이 있으면서도 굴곡이 많아 전체적 흐름이 단순함과 평면적인 선율보다는 입체적 선율로 보여 지는 것이 특징이다.

예술성은 지방색(지역성)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삶을 지배하는 배경이 예술의 성향을 지배한다. 이렇듯 영남지역의 예술성향은 지역적 특성에 의해 오랜 시간 개별적으로 변모되어온 그들만의 특성화가 되어 오늘까지 영남의 대표적 성격을 지배해왔다. 한마디로 영남문화의 특징과 특성은 남성성으로 대변될 만큼, 투박하고 힘 있고 우직한 면이 있다.

이러한 음악의 지역적 특성들이 춤에서도 그 지역색으로 여실히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은 영남지역의 지역성이 내포된 잔잔하면서도 엑센트를 지닌 특성과 감칠맛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충동질하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또, 고도로 다듬어진 전형적인 기방예술의 산물로서 춤사위의 기교가 뛰어나며 한과 멋과 흥을 다른 어떤 춤보다 몸의 사용이 많고 춤사위가 원형지향적임을 알 수 있다.

춤의 기법에서도 호흡을 맺고 푸는 춤사위의 빈도수가 많이 드러나는 점, 그 외에 발끝, 손끝, 시선, 몸통사용 등 섬세하게 마무리 되어지는 점 등의 특징이 강하게 표출되는 춤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다른 교방춤에 비해 춤사위가 많고 까다로운 편으로서 부채의 테크닉과 발놀음이 고도의 기교를 요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듯 그의 춤의 멋은 정교한 발디딤과 다양한 몸 사용법에 있으며 깊은 단전에서부터 에너지를 출발시키고 절제하는 호흡은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에서 느낄 수 있는 우아미와 절제미를 나타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

특히 내면적 상징성은 호흡과 발디딤을 통해 표출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호흡과 발디딤은 이 춤의 정적인 특성에 역동성을 더해주는 요인으로서 발디딤은 발뒤꿈치, 발끝, 발허리의 세부분이 각각 섬세하게 움직여져 선명한 정확도를 보여준다.

또, 용트림사위를 보면 용의 용트림처럼 세찬 힘으로 곡선을 그리기도 하는 남성성과 학체사위와 같이 새의 날개짓처럼 가볍게 허공을 가르기도 하는 여성성의 교태로움이 더하여 남성성의 힘 있고 우직한 면과 여성성의 기교스러움이 모두 갖춰진 복합적 요소를 잘 조화시킨 춤태가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영남교방청춤은 영남지역의 특징이 잘 어우러져, 음과 양이 잘 조화된 춤이며 여성적이지도 남성적이지도 않게 한쪽으로 쏠린 춤사위가 아니며 상체는 남성적인 활달함이 강조되고 하체는 여성적인 섬세함이 강조되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춤이라 일컫는다. 그러면서 도도하고 가볍지 않고 무게가 있으면서도 둔탁하지 않는 춤이다. 또한 무엇보다 이러한 영남지역의 특성은 곧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의 춤의 특성과 밀접한 연계성을 지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3) 형태적 측면

교방청춤, 안방의 춤은 무대의 격식이 없는 춤이었으나 보는 이가 자리한 각도에 따라 각각 다른 느낌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무대화 되어가는 우리전통공연은 극장형식에 맞추어 삼면(앞, 양측면)에 따른 춤의 감상척도가 거의 비슷해야만 그 춤동작을 균등하게 감상하고 공감할 수 있다고 보아진다. 그러기에 일찍이 박경랑교방춤은 동작의 무대방향에 따른 동작의 형태미는 이미 미래를 예측하고 정해진 것 같다.

겉으로는 움직이지 않고 있는 정지 상태이면서 움직임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으며, 수많은 움직임이 하나로 집중되어 있는 상태, 즉 집중된 동작이 불러일으키는, 순간적인 일탈과 파란으로써 일상적인 시공간을 미적시공간으로 자리바꿈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다. 겉으로는 빙산의 일각만 보이면서 속으로 알 수 없는 덩어리를 숨쉬고 있는 것과 같은 침묵적 내면의 역동성이다.

1.5. Ⅳ. 결론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서로 바르게 교감하는 가운데 행복해질 수 있는 춤이며, 무참히 짓밟혀도 살아나는 끈끈한 생명력을 가지고, 삶에 대한 은근한 역동성이 눈에 거슬리지 않게 어울리는 기기묘묘한 춤으로, 약함과 강함이 조합된 중성적인 춤이다. 풍속화속에 그려진 아름답고 순박한 서민적 정서와 조선조 후기의 교방춤을 현대에 이르러 무대화시킨 운파 박경랑의 춤 무대에서 보여 지는 교감을 토대로 영남교방청춤의 내면 및 외면적 특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춤사위를 중심으로 상·하체로 구분하여 큰틀을 만들었다.

그 결과, 영남교방청춤에는 내적 에너지의 집약과 이완의 작용을 충분히 담아내어 독특한 미의식을 춤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배합하여 맺고 풀고 어르는 한국춤의 묘미를 드러내 보이고 있으며 이것은 즉흥성의 원리를 동반한다는 점이다. 즉, 영남교방청춤을 비롯한 모든 한국춤은 고유한 민족정서와 연계성을 가지므로 한국인의 심성에 내포된 한과 신명이라는 정서를 즉흥적 원리를 통해 표출하고 이것은 곧, 감정이 춤으로 보여지는 행동양식인 예(禮), 법(法), 도(道)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이러한 상호작용으로 구성되는 영남교방청춤의 흐름은 심성의 자연적 표출양식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춤의 특징은 형식상으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율동이지만 내용면으로는 풍부한 감정이 스며있으며 낙관적이다. 특히 본 논문에서 살펴 본 영남교방청춤은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자태가 드러나는 사방춤이며 몸통의 쓰임이 많고 춤사위가 원형지향적이다. 유난히 잦은걸음으로 장단을 타는 사위가 두드러짐과 동시에 몸동작이 매우 기교적이며 잔잔하면서도 엑센트를 지닌 특성과 발끝, 손끝, 손목, 허리사용 및 시선처리 등이 섬세하게 마무리되어 감칠맛을 자아내는 점 등의 특징이 강하게 표출되는 춤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춤의 네 가지 미적요소인 한과 흥 그리고 멋과 태를 고루 갖춘 춤으로 한국적 자태를 엿볼 수 있는 춤사위들로 구성되어져 있으므로 민속무용의 특질을 살펴봄에 있어 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은 충분한 연구대상이 된다고 사료된다.

이와 같이 영남교방청춤의 미적 특질에 고찰은 뿌리 깊은 한국인의 미의식을 밝히는 것과 동시에 민속춤의 한 특성을 밝혀보고 우리 민속무용의 사관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의의를 부여한다고 할 수 있다.

근대시기 이후 이른바 무대 양식화를 통해 변화, 발전되어 온 전통춤들은 오늘날 전체 춤공연문화에 있어 매우 비중 있는 위치에 놓여있다. 이 시점에 그의 영남교방청춤을 통해 또 다른 춤의 미의식을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춤에 대한 뚜렷한 가치기준을 세우는 일은 한국무용의 전통에 대한 올바른 개념정립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새로운 춤전통을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영남교방청춤 뿐 아니라 전통은 지켜가기 위하여 지켜져야 할 부분과 또, 지켜내기 위해 더해지는 점이 있어야 한다. 본 연구는 이것을 계기로 현대의 영남교방청춤 원형에 관한 기초자료로서의 의미를 갖기를 바란다.

참 고 문 헌

 

서적

김매자(1996), 한국무용사, 삼신각.

채희완(1985)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길사 p.23.

 

논문

김동민(1966), 아시아문제연구소논문집 제5집, 李朝枝女史, p.75.

김용숙(1990), 韓國女俗史, 民音社, p.264.

백재화(2004), 한국춤에 대한 예능보유자들의 형이상학적 인식, p.69.

안미아(2001), 조선조 후기 교방(敎坊)춤 특징에 관한 연구, p.5.

정병호(1889), 무용론, 서울六百年史, 서울특별시, p.1297.

 

정기간행물

2011, 계간 예술문화비평 제2호 가을, 한국예술문화비평가협회, 248-253.

우리춤 연구소, 춤으로 본 지역문화, 한양대학교 출판부, p.6.

 

기타

2011, 8, 4, 중요무형문화재 제 82-4호 남해안별신굿 예능보유자 정영만 선생님과의 인터뷰 중에서 발췌.

2012, 1, 30, 운파 박경랑 선생님과의 인터뷰 중에서 발췌.

ABSTRACT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Youngnam Gyobang Dance

 

Yim, Ji Ae(Dongdukuniversity)

 

This study examines structural significance and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Park Gyeongnang Youngnam Gyobang Dance. Structural, aesthetic analysis of traditional dance will contribute positively to researches on philosophical structural studies of traditional dance in general.

Youngnam Gyobang Dance reflects the life and arts of the people of Late Joseon Dynasty. It represents Korean ethos and reflects fundamental aesthetic consciousness. Youngnam Gyobang Dance evolved to be artistic and recreational dance, rather than religious dance. In the process, professional Gyobang dancers developed elegant and elaborate dance movements. This study focus on late Joseon period in search of the origin of Gyobang Dance, examining the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Youngnam Gyobang Dance.

So far, theoretical works on Woonpa Park Gyeongneng's Youngnam Gyobang Dance and records of the dance are far from comprehensive. The author attempted to analyze Youngnam Gyobang Dance performed by Woonpa Park Gyeongnang on micro-level, in search of fundamental aesthetic consciousness. The conclusion of the study can be summarized as the following:

Woonpa Park Gyeongnang's Youngnam Gyobang Dance turned the regional characteristics into artistic prope,rties. Cultural characteristics of Youngnam region, which is often thought of as masculine are reflected to the movements of the dance.

In addition, perfect harmony with music, various movements, modern sensation of visuals, scientific approaches to proscenium performance characterizes Woonpa Park Gyeongnang's Youngnam Gyobang Dance.

Especially, Woonpa Park Gyeongnang's Youngnam Gyobang Dance goes beyond the traditional limitations of body movement. This was possible because it inherits the tradition stemming from the beginnings of Gyobang culture.

 

Key : Youngnam Gyobang Dance, Gyobangcheong, aesthetic characteristic, Woonpa Park Gyeongnang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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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 특집 인터뷰

정영만 선생님 인터뷰

(2011년 춘천아트 페스티벌에서의 인터뷰)

 

interview by 백 재 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춤과 음악, 소리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참 좋은 질문이네. 이제까지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춤과 음악과 소리는 따로 구분이 되어 있는 게 아니라, 다만 동작 부분이나 눈으로 봤을 때 저건 춤이다, 소리다, 저건 음악이다 이러는 것이지. 옛날말에 우리 사설에도 나와 “노래가 나면 춤이 난다”라는 이야기가 있어. 소리 없는 춤이 어디 있고, 노래 없는 춤이 없다고, 흥이 나면 먼저 노래를 가지고 흥이 나면 몸이 움직여지잖아. 그건 자연적인 발생인거야. 사람은 자연의 순리대로 가야지 자연의 순리를 역행해서 따로 떼어간다든지 하면은 이것은 이상하다. 그 근본을 모르고 춤을 춘다는 자체가 그것은 춤이 아니다.

춤은 무언의 극인데 무언의 극을 어떻게 동작에 아무 느낌이 춘다는건지, 그러면 그건 춤이 아니다. 그래서 춤과 소리는 같이 간다. 같이 혼합되어야만 제대로 된 예술이 된다. 혼합되어야만! 춤과 소리가 없을 수가 있나? 음악도 소리에 속하지.

소리가 나야 춤이 나거든. 춤이 나야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거든. 그러니까 누군가 하는 말이 “춤을 부르는 소리”라고 하더군. 그게 맞는 말이야. 안그래요?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소리 없는 춤이 어디가 있어요? 소리가 빠르면 빠른대로 춤을 출 것이고, 늦으면 늦은대로 출 것이고, 몸 동작이란 자체가 그렇잖아요. 허나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이 춤이란 자체가 왜 춤을 출까? “왜 춤을 춰?” 이런 질문을 하면 답을 못 내려요. ‘좋으니까?’

 

좋은 것은 기본이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들리는 소리가 몸을 움직이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니까 춤을 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마음을 움직이게 하니까 춤이 추어지는 거예요. 마음에서 우러나는 춤이어야지!

 

누구는 그러더라구요. ‘춤’이라는 글자가 사람이 마음위에 서 있는 형상을 본 따서 만든 글자라구요. 그래서 춤은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고, 또 마음을 움직이게 춤을 추어야 한다고 말하더라구요.

 

그건, 학자들이 해석해서하는 말이고 나는 학자 수준은 못되어서 그렇게 말은 못하고, 나는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또 우리 선생님들이 가르쳐주신 그대로 말하는거예요.

“나는 춤꾼이예요!” “나는 음악가예요!” 이런 말이 나는 참 못마땅해!

 

선생님께서 좀 전에 말씀해주셨듯이, 선생님처럼 오랜 세월 한 분야에 몸담으신 분들은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박사 논문을 선생님처럼 한평생을 예능에 몸담아 오신 예능보유자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그분들이 생각하시는 한국춤에 대한 생각을 interview하는 연구였는데, 너무 흥미롭게도 분야는 각자 다르셔도 한국춤을 생각하시는 카테고리는 일맥상통했습니다.

 

그렇지, 그래 봐야지.

 

공부하시는 분들의 이론이나 생각이 먼저 생겨난 것은 아니라고 봐요. 학자분들이 책을 통해 춤에 대해 음악에 대해 소리에 대해 많은 이론을 펼치셨지만, 그분들도 저처럼 여러 선생님들께 많이 여쭤보고 공부해서 문서화시켰기 때문에 학문적 정의가 나왔지, 실기를 하시는 선생님들보다 앞서서 여러 정의를 내놓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이런 작업(지금의 interview)을 학자들이나 또 자기 선생을 모시는 제자들이 잘못된 것은 밝혀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물론 이 세상이 잘 못되어서 그렇게 하기가 힘든데...

예를 들어 자기 선생이 볼펜을 연필이라고 했어. 그건 아니잖아. 앞에서 아부한다고 볼펜을 연필이라고 하지 말아야지. 세상이 어지러워서 그 앞에서 볼펜을 연필이라고 한단 말이지. 선생님 앞에서 ‘선생님, 이거 혹시 연필 아닐까요?’라고 정중하게 다시 여쭈어봐야지. 제대로 된 선생은 ‘어 그래..연필이었구만, 연필이야.’라고 말해주겠지만 ‘아니야. 그건 볼펜이야!’라고 밀고 나가는 선생은 상당히 선생의 자질에 문제가 있는 거지. 그런 세상이 되어서는 안되겠지.

특히나 춤에 있어서는 전공한 춤꾼... 이 전공이라는 말에, 전공했다는 말에 있어서 나는 참 아이러니한 것을 느끼는데, 난 어릴 때부터 우리 선생님한테 와서 교수나 교수될 사람이나, 박사논문 쓰는 사람들이 와서 몇 시간 취재나 인터뷰하고 가요. 잠깐 몇 시간이야... 그게 전체인 것처럼 다 퍼져서 그게 획일화가 되어서 정론화가 되어 있단 말이예요.

그러면, 물론 그 말은 맞겠지만, 그게 정말 속 맛을 알겠는가? 아니다 이거지. 그래서 춤은 춤대로 장단은 장단대로 음악은 음악대로 가는 거지. 이건 아니라 이거지! 같이 간다. 왜 같이 가느냐? 우리는 권번에서 배울 때 춤이라고 해서 따로 배우고 소리라고 해서 따로 배우고 그러지 않았어요. 소리 속에서 춤이 있었으니까! 그러면 하나만 물어보자! 춤에 호흡이 있나?

 

선생님의 질문에 일상적으로 답을 하자면 춤에 다 호흡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응, 배웠지! 그런데 호흡이 없는 게 어디 있겠어! 그러나 춤에 따르는 호흡은 아니란 말이지.

 

소리에 따르는, 소리와 함께 가는 소리와 같이 가는 호흡이 춤의 호흡이라는 말씀이신거죠?

 

그렇지! 바로 그거야. 잘 봤네. 그러니까 춤에 따로 되어 있는 호흡은 없어! 난 그것은 결론은 내린다.

소리하는 사람들이 “얼씨구나~ 어~ 어~~~으...” 소리에서 거기서 춤이 나오는 거야. 발림에서 춤이 나오는 거야! 발림이 춤이 되는거지. 그 시대에서 어느 한 사람이 “어 여기가 춤이 좋겠구나..이 사위가 좋겠구나..”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어진거야! 음악도 마찬가지야. 거기에 맞춰서 그때 그때 좋아서 지어진거야. 그걸 정리를 하는 가운데 또 교수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니까 어디에서 몇 장단에서는 호흡을 쉬고 끌어올릴 때는 호흡을 내 뱉고 뭐 이렇게 정론화 시킨 것은 잘못 된 것이지. 이건 교과서적이다. 다만 배울 때는 이래 배웠지만 다음에 할 때는 이래 하지 말아라. 이건 기본적으로만 하는 것이지 이게 다는 아니라는 것을 꼭 단서를 달아서 가르쳐주어야해!

그래서 지금 춤꾼들이 거의 중급정도 올라가서 다, 거의 다 뭐.. 이런 춤꾼들이 누굴 가르치는데 있어서 어디에서 몇 장단 올라가서 내뱉어주고 어느 동작에서는 호흡을 팍 쉬어주고.. 이런건 말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 왜 아니냐 하면은 하다보니까 그렇게 하면 더 자연스럽게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춤을 왜 그렇게 지금 새로 정리한다는 명분하에 그 춤을 로봇식으로 만들었냐 그거지!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이거지. 예술은 자유분방하고 그 다음에 제약을 받지 말아야하고, 왜 제약된 예술을 하려고 하느냐, 다만 예(禮)는 꼭 지켜주고 도리는 지켜주어야지!

 

학교에서 오래 배우고, 교수님께 배우고 여러 강사선생님들께 배우고 했단 말이예요. 너무 오랜 시간 학교에서 공연문화를 접할 때, 순서를 정확히 배워서 옷 입듯이 정확히 배워서 MR에 맞춰서 하는 공연 문화가 너무 오랜 세월 몸에 익은거예요. 물론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공연할 때 MR을 가장 많이 썼어요. 여러 큰 선생님께도 많은 배움이 있었지만 박경랑선생님께 배움을 시작하고 나서 가장 큰 변화라고 할까, 인식의 변화라고 할까.. 그런 것을 꼽으라고 하면 소리를 춤과 연결시켜서 생각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음악을 탄다는 것이 무엇인지, 왜 춤이 MR을 떠난 음악이 소리가 춤과 연결되는지... 물론 지금 다 안다는 것은 거짓말일테고..필요성과 그렇게 한다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소리에 따라서 여기서는 이렇게 타주고, 이 소리에서는 이렇게 추어지고 저 소리가 날 때는 이렇게 추어지고 그런 굵직굵직한 것을 가르쳐주어야지. 애들에게 생각할 수 있게, 창의력을 끌어 낼 수 있게 끌고 나가야지. 원래 이런 것이 우리나라 교육인데, 옛날부터 있어왔던.. “아가 니가 한번 지어바라 .” 이렇게 가르쳐줘요. 기본만 가르쳐주고. “자~ 소삼대삼은 요렇게 요렇게 소삼이 들어가고 이럴 때는 대삼이 들어가고 얼르는 춤은 이렇게 들어가는 거다.” 이런 삼요소를 어느 학자님들은, 돌아가신 정병호 선생님께서는 그걸 정중동(靜中動)이렇게 만들어 가지고...설명하셨지.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시잖아요. ‘소리는 호남이요, 춤은 영남이다.’ 제가 워낙 모르니까 책을 통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꺼리나, 옛 어르신들의 말씀 말씀에 귀를 기울여봤는데, 이 말을 보면서 정말 영남과 호남의 특성이 다른가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우리나라는 지역별 특성이 다 각기 다르잖아요. 호남, 영남, 충청, 경기별로 다르잖아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영남지역의 특징, 그러니까 다른 지역과 구분지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특징은 어떤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굳이 특징을 말하자면, 그 지방의 문화적 관습이, 문화적 관습을 먼저 이야기하고 나서 그 지역의 특징을 말해야 해요.

네 맞아요. 문화와 역사와 관습은 항시 같이 가는 거니까요.

 

그렇지, 문화와 역사와 관습은 항상 같이 가지. 그 걸 보고나서야 왜 특징이 그렇게 생겼는가의 이유가 나오는 것이지! 이유 없는 결과는 없거든. 그래서 근본적으로 영남쪽에는 현시대로 근접해서 말하자면 서구문명을 가장 빨리 받아들이는 지리적 조건을 갖은 곳이 영남이야. 일본도 가까워. 인천도 서구문명을 받아들이기에 좋았지만 아무래도 영남쪽에는 부산이 있어서 더 쉽지 않았나. 영남쪽은 서구문물을 받아들이기에 어디 보다도 더 빨랐기에 소리나 전통 문화쪽이 더 빨리 없어져. 선호를 하지 않아. 예술이라는 자체가 얼마만큼 발전되는가는 일반사람들이 얼마만큼 선호하느냐에 따라 달렸는데, 선호가 없으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니까. 전통문화가 그 선호도가 전라도는 많아. 높아! 그런데 우리 경상도는 선호도보다는 경시풍조가 있어. 경시풍조가 만연해서... 시대적으로 정치적으로 그 경시풍조의 이유를 캐보면 더 알게 되겠지만 어쨌든 이곳 경상도에는 전통문화에 대한 선호도가 약해. 영남지역은 일반인들의 전통문화예술 선호도가 떨어져. 춤이든 소리든 이런게 많이 미천한 쪽으로 돌변하다보니까 더딘 발전을 보이고 왕성한 발전을 못했지. 반면 전라도는 많이 발전되었는데, 유독 춤만 그렇게 경상도가 발전되었느냐? 그게 아니고 고급문화는 고급문화대로, 마당문화는 마당문화대로 발전되어왔지만, 경상도에는 거의 통제부, 삼도통제사령부가 발전되어 온데에는 거기가 조선시대에 백제권이기 때문에 그 문화가 통영으로 해서 고성으로 거제, 부산 자갈치까지 그리 봐주면 되지. 그렇게 해서 소리, 춤 문화가 발전되어 올수가 있었지. 그래서 박녹주( 朴綠珠, 1906.2.15.~1979.5.26 본명 명이(命伊). 경북 선산(善山) 출생. 12세 때 박기홍(朴基洪)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고 뒤에 송만갑(宋萬甲)·정정렬(丁貞烈)·유성준(劉成俊)·김정문(金正文) 등에게 배웠다. 1937년 창극좌(唱劇座)에 입단하였으며, 1945년에는 ‘여성국악동호회’를 조직하여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인 판소리 《춘향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가, 1970년 《흥부가》의 예능보유자로 변경, 지정되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선생이 한 이야기가 있어. “통영에 가서 별신굿 소리를 듣다보니까 그 학습이 보통 공력이 아니더라. ”그 만큼 예술의 공력이 범상치 않게 발전되어 왔지만 일반인들의 선호도 측면에서 발전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맥이 끊길 뻔 했어. 자칫하면.. 그래서 춤만 겨우 남아서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였었지. 그러다가 탈춤이 먼저 문화재로 발굴이 돼. 탈춤이 발굴이 되다보니까 영남은 춤이요 호남은 소리라는 말이 나온 것 같애. 나는 거기에 상당히 거부반응을 많이 일으켜. 왜 그렇게 되었느냐 하면은 전라도에 가보면 선호가 부러울 만큼 했을 뿐이라. 물론 소리 같은 것은 전라도에 유명한 사람 많지. 그러나 우리 경상도에도 소리를 유명하신 분 많아요. 안알려져 있어서 그렇지. 이화중선(1898년∼1943년. 여류명창 중의 한 사람. 부산 출생. 김초향(金楚香)과 더불어 당시 여류 창악계의 쌍벽이었다. 17세 때 남원군 수지면 호곡리 홈실박씨 문중으로 출가하여 살던 중, 협률사(協律社)의 공연을 보고 감동하여 집을 나가 장득주(張得周)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천부적인 목소리와 재질로 몇년 만에 〈춘향가〉‧〈수궁가〉‧〈흥보가〉를 공부하였고, 서울로 와서 송만갑(宋萬甲)‧이동백(李東伯)의 지도를 받아 당시 여류명창으로서 가장 인기가 높았다.

아무리 어려운 대목도 거침없이 시원스럽게 불러 청중을 매혹시켰으나, 오히려 거침없이 쉽게 부르는 것이 감동을 덜 주는 단점이 되기도 하였다.

일제 때에 임방울(林芳蔚)과 함께 음반을 가장 많이 녹음한 명창으로 꼽히고 있다. 대동가극단을 조직하여 지방순회공연을 많이 하였고, 일본 공연도 많이 하였다.

1943년 재일교포 위문공연차 일본을 순회하던 중에 죽었다. 그녀의 장기는 〈심청가〉 중에서 ‘추월만정(秋月滿庭)’, 〈춘향가〉 중에서 ‘사랑가’였다. 출처, 참고문헌 : 朝鮮唱劇史(鄭魯湜, 朝鮮日報社, 1940) 판소리小史(朴晃, 新丘文化社, 1974), 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씨 집이 김해야.

 

역사를 보면 유명한 권번들은 다 이쪽 경상도지역에 있었잖아요.

 

다 이쪽에 있었지.

 

선생님 말씀을 듣다보니까 든 생각인데, 어느 한쪽만 치우쳐서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소리도 보면 서편제, 동편제 나뉘어서 말들 하는데, 뭐 워낙 분류를 해서 그렇지 그건 아니지! 지금, 이매방류 뭐 이렇게들 분류해서 말들 하는데 그렇게 하면 안되지. 세상이 자꾸 이렇게 변해져 버리는데.. 뭐 그렇게 분류해서 좋은 점도 있겠지. 그러나 내가 볼 때는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어느 편에 서게 되면, 편견 된 입장으로 볼 수 있다는 거지. ‘어 전라도 지방에 가면 당연히 소리가 잘할 것이고, 잘해! 경상도 지역에 가면 당연히 춤이 좋아. 춤을 잘춰!’ 그건 아니지! 그런 걸 배우는 입장에서나, 가르치는 입장에서나 이런 걸 바로 짚고 넘어가 주어야 해요.

우리는 기성세대잖아. 기성세대는 무언가? 기성세대는 자기입장을 구축하는 자기를 위한 욕심이 아무래도 많은 집단인데, 그 아래에서 이렇게 구분되는 분류가 나오는게 아닌가? 생각해요. 정론화 시키는 이론화 시키는 입장에서만 바라보다보니까, 손쉽게 ‘호남은 소리요, 영남은 춤이다.’라는 말이 나온 것 같아요. 영남쪽에 춤이 발달했다..춤이 발달했다. 발달이라는 용어 자체가 나는 거부반응이 일어나요.

‘소리문화는 영남도 있었지만 오히려 더 선호가 되고 호남은 발달되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고 생각해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영남지역의 특징, 그러니까 호남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영남지역만의 예술적 특징, 영남만이 갖고 있는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그 장점은 영남지역의 예술의 장점은... 문화는 마을, 사람들이 사는 마을의 문화적 관습 이런 것들이 다 영향을 받거든. 말, 행동 같은 문화적 요소들이 영향을 끼친단 말이예요. 경상도 말씨가 어때요? 굉장히 우직스럽지?

 

네.

 

그러니까 경상도는 말씨 자체가 우조.

 

우조? 우조가 뭐예요?

 

우조가 굵직한 소리를 우조라고 하거든. 그러니까 우조의 소리 형태가 잔잔할 때는 잔잔하지만은 그러니까 춤도 아주 영향을 많이 받지. 아주 섬세한 부분도 있지만 아주 우직스럽게 추어 나가는 부분도 있지. 이건 말씨와 같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말하자면 음악이, 소리가... 우리는 “밥 먹으러 가자~!!” “음악~!” 이렇게 턱 단박에 자르지? 춤도 턱 맺지? 그렇지? 덧배기, 배김사위 있지? 이런 게 특징이라!

예를 들어, 똑같은 선생 밑에서 춤을 배우더라도 전라도 사람은 전라도 사람만의 특징이 나와. 부드러워~ 나긋나긋하고, 물론 경상도에는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면도 있지만 아주 우직스럽게 확 차고 나가는 것도 있어. 그런게 지방색에 따라 다 틀리지. 소리도 마찬가지야. 어떤 예술적 요소가 자기 지방색을 낸다는 것이지. 그게 특징이야. 다른 것은 없어!

함경도 사람을 데려다가 경상도 소리를 가르치면 경상도 소리를 다할 것 같나?

함경도 소리가 보태져.

  

   

선생님 권번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권번 이야기전에 교방이야기를 해줄께.

 

그럼 권번하고 교방의 차이점을 말씀해주세요.

 

쉽게 이야기해서 권번은 보수적이야. 국가의 녹을 먹고 나라에서 기생을 키운 자리거든. 거기에 교육하고..딱딱해. 정악처럼... 교방에서 굿거리춤이 있었는가? 없어. 권번은 음악은 정악이야. 딱딱해. 제도화된 춤이 없어. 굿거리라는 자체가 무속에서 나온거거든. 굿거리라는 자체가 굿의 거리라는 말이거든. 굿에 많이 쓰이는 장단이름이 굿거리장단이 된거야. 모든게 세습문화에서 전부 전파되었다고 보면 돼. 모든 춤, 소리, 장단이 모두 전파되었다고 보면 돼. 굿거리는 무엇이냐? 굿은 있는 그래도 판을 벌리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거리라는 자체는 한 과장을 말해. 일장, 이장, 삼장.. 한거리, 두거리.. 이게 장단 이름이 되었지.

그래서 음악과 춤을 같이 알아야 한다는거야. 춤꾼이 음악을 모르다는게 말이 안돼.

 

제 경우만 돌아보아도 음악을 알아야 춤을 제대로 알 수 있는게, 그 교육이 처음부터 제대로 되지를 못했습니다. 음악과 함께 춤을 이해하고 배워야 하는데, 음악보다는 춤이 위에 있다고 잘못 인식하면서 지냈습니다. 음악을 알아야 춤을 더 잘 알아갈수 있는데....물론 몰라서 못가르쳐주시는 선생님들이 태반이예요. 지금의 대학교육을 담당하시는 여러선생님들이... 소위 말해서 장단하나 제대로 못쳐요.

 

우리나라 제도가 잘못된게, 우리나라 국악원도 생기고 좋아... 그런데 무용과 선생이 관현악과 가서 춤을 가르치고 관현악과 선생이 무용과가서 음악을 가르쳐야돼. 우리는 그렇게 배웠거든. 종합적으로...

 

물론 국악원이 그런 시스템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국악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의 무용과도 마찬가지야. 국악과에서 해금하는 놈이 해금만 하는거..이건 아니거든. 이건 서양방식이라...

 

그렇게 배움을 끌어간다면 음악의 이해도, 춤을 향한 이해도가 함께 발전해서 좋을텐데요..

 

그러니까 이해도도 떨어질뿐더러, 집약된 예술문화가 안돼. 나는 권번에서 배웠던거하고 사회 나와서 보는게 이해가 안됐어. 춤을 추는 아이가 구음하나 제대로 못하고, 장단치는 놈이 춤도 제대로 못춰.

 

일례로 모대학은 한국무용전공자가 4년 내내 졸업할때까지 장구채 한번 못잡아보고 장구한번 못 쳐보고 졸업한대요. 장구장단, 북장단을 왜 배워야하냐고 교수가 말했대요.

 

그게 무슨 대학이고, 장단치다가 흥이 돋우면 뛰어나와야지, 춤도 추는 그러는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춤도 못춰. 환경에 지배를 받거든. 피리, 대금도 주변환경에 지배를 받거든. 소리로서 춤을 춰야하고, 몸으로서 음악을 할 줄 알아야 하거든. 이런건 지금 꼬맹이들한테 어찌 해야할거고, 이해를 못해. 손자 같은 아이들은 놓고 무슨 이야기를 할꺼나. 이런 이야기를 하면 지금의 자기교수들을 욕하는 꼴 밖에 안되는데...

 

선생님, 저도 지금보다 어릴적에 지금의 말씀을 들었다면 이해를 못했을꺼에요. 대학의 교수가 되면, 어찌보면 항해사와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해요. 배를 좋은곳으로 안전하게 운행을 잘하면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교수라는 자리는 너무 좋은 선생님들을 모셔다가 좋은 교육을 학생들이 받을 수 있도록 조정하는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교수들이 좋은 선생님들을 모셔다가 교육하는걸 꺼려해요. 자신의 실력과 비교되고 아이들에게 자신이 최고가 아니라는걸 보여주게 될까바...그런 하찮은 이유때문에 아이들은 4년 내내, 너무 좋은 선생님들을 뒤꼭지도 못쳐다보고 또한 좋은 교수법을 지닌 선생님들을 못 만나보고 졸업하는거 같아요.

 

나는 대학교수는 교수다워야해. 가르치는 방법을, 잘 가르쳐주는 방법을, 한마디로 전달자가 되어야해. 좋은 선생님을 모셔다가 가르침을 베풀때 자신의 실력이 들통난다는 생각을 버리고 같이 배우는 입장으로 ‘애들아, 이렇게 좋은 선생님들이 계시단다. 이렇게 좋은걸 잘 배워라’라고 말해주어야해.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선생님을 평생에 한번 만나볼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게 너무 가슴 아파요.

 

내가 이런말하면 아주 모나게 내려깐다..하겠지만, 양심적으로 말하는거야. 물론 나도 말한걸 다 실행하지는 못하지만, 실행할려고 노력한 사람이야. 우리나라에 교육에 적극적으로 실행해야한다고 생각해.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물은 흘러가는대로 놔두어야 한다’ 그러는데 이런 생각이 일제강점기때 나온거야. 일본놈들의 근성을 본받아서 그리해. 그때의 아주 몹쓸 배경이 있어서 그래. 못된 관습이 고대로 남아 있어. 그래서 시대적 배경은 환경의 지배한다는 말이 맞아.

 

그럼 선생님, 권번과 교방은 차이점이 뭐예요?

 

권번은 민간에서 쉽게 이야기해서 기생조합이라고 하지. 나중에는 예기조합이라고 하거든. 쉽게 말하면 요즘 춤패, 마루니..그런 형태가 각 고을마다 있었어.

꼭 예를 들자면 교방은 지금의 국악원처럼 나라에서 운영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고, 권번은 뜻 맞는 예인들이 모여서 지역별 예술연합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서로 전달하고 배우고, 사실은 교방에 있던 사람이 권번에 있던 사람이고 쉽게 말하면 국립국악원에 있으면서 개인단체에도 속해 있고 그런거야. 교방에서는 딱딱한 획인한 문화행사가 많았지만, 권번은 그것보다는 자유로운면이 있었으니까.

교육은 혹독하다.

 

예술은 그 혹독한 훈련의 시간을 거쳐야하는것 같아요. 필수적인것 같아요. 그래야지 예술은 입을수 있고, 그 다음에 자기색을 낼 수 있으니까요.

 

나이먹은 사람들은 퇴기라해서 활동을 안해. 그리고 일정한 나이가 되면 젊은 사람들을 위해 물러나. ‘그래 네가 노름을 좀 할 줄 아네.. 이제부터 네가 해라~’그러면서 물러나. 지금처럼 늙었는데도 죽도록 물고 늘어지지는 않아.

 

선생님 ‘신청’이라는 권번같은 곳이 있었어요?

 

신청이라는 자체가 무당도 키우고, 채선무도 키우고, 기생도 키우고... 매나 소리나고 하던 곳이니까, 통영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권번, 뭐 그런 이름이 ‘신청’이지.

 

선생님, 여기서 공부하셨어요?

 

공부한게 아니고.... 여기서 그냥 살았지.. 허허

 

아...강아지도 과일 안물어 가는 곳이요?(평소에 우스개소리로 정영만 선생님께서는 어릴적 굿판에서 살다시피해서 집에 과일과 떡이 너무 흔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들은 귀하게 보는 과일과 떡이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별만 귀하게 안쳐다보았다는 농담을 잘 하셨다.)

 

허허...... 그렇지.

 

저는 책에서 봤을때 동래권번, 이런걸 봤는데 신청은 처음 봤어요.

 

통영권번이나 부산에 동래권번이나 룰은 그게 다 비슷비슷해요. 동래권번이 70년때 중반까지 있었지. 가장 늦게까지 있었지. 신청권번 그 비슷하게 없어졌지. 동래권번이 없어지기전에 신청이 없어졌으니까...

 

신청권번에 대한 자료가 어디 있을까요?

 

자료가 거의 전무한 상태다. 사진 몇장 남아있고.., 사람들 명단이라든지, 회원들 명단이 다 있었는데 다 사라져 버렸다. 불에 사라져버렸다.

 

왜 사라져버렸어요?

 

글쎄, 다 불에 사라져서 없어졌다. 불에 타 버렸다고...

 

너무 중요한 자료인데, 왜 불에 타 버렸을까요?

 

뭐, 중요한 거라고....불에 타버렸지.

 

지금은 너무 중요한 자료이잖아요. 그때 당시에 활동하셨던 분들의 이야기도 그렇고...

 

그래도 그 자리며 그런거 내가 다 알고 있지.

옛날에 권번출신이나 권번에서 배운 사람들은, 우리끼리 쓰는 ‘변’을 써. ‘변’을 모르면 우리끼리는 치지를 않아. 인정을 안해. 기생은 생자라고 하고, 여자를 아줌라고 해주고 시집안간 여자는 자동이라고 해주고, 디딤이라는 말도 우리 ‘변어’에서 나온말이야.

‘참, 육갑사람 좋다’, ‘손짓 잘한다...’ 이런 용어를 쓰는 사람이 별로 없어. 나이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권번출신하고 아닌사람하고는 구별이 돼.

옥섭이가 나한테 ‘저 사람 권번 출신 맞아? 나랑 한번 같이 가보자~’해서 가서 몇마디 나눠보면 대번에 알아. 진짜인지 가짜인지...

 

권번에서 쓰는 용어가 뭐가 있을까요?

 

권번에서 쓰는 용어? 다 똑같다. 전국적으로 통일이 되어있다. 무당, 기생 이런 사람들이 쓰는 거하고 똑같아. 강신무는 엉터리다. 무당 아니라고 봐.

 

예전에는 이북은 강신무고 남한은 세습무잖아요.

난 강신쪽은 인정안한다. 제대로 배운 사람은 괜찮은데, 대부분이 엉터리다. 왜 이 굿을 하는지 그 자체를 몰라. 신이 시켜서 한대...

 

아, 맞다. 위쪽이 강신이고 아랫쪽이 세습이였는데, 지금은 다 아래지방도 강신이 많아졌죠? 내림굿 받고 하는게 강신이죠? 선생님 말씀대로 어릴적부터 알든 모른든 보면서 자라면서 배운게 참 많은 영향을 미칠텐데...하루아침에 되는게 아니라서~

 

우리쪽은 정치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지. 물론 나도 정치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러다 보니까 주눅도 많이 들고, 욕하는것도 많이 잃어버렸지....

여자 성기를 보성이라고 하고 남자 성기를 장식기라고 하고...

 

보통은 국어국문학과, 민속학과 이쪽 선생님들이 그런 연구를 많이 하시잖아요.

 

많이들 할려고 하지, 와서 물어보면 대답을 많이 해주지...굳이 찾아다니면서 해줄 필요는 없고..

 

그 분들이 오셔서 많이 연구하고, 정립을 해주셔야죠. 선생님대가 지나면 묻힐 이야기들이잖아요.

 

내대(代가) 지나면 없어져버리고 말지. 이제 되었나?

 

네에, 하루아침에 다 여쭈어볼수가 없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여쭈어보겠습니다. 너무 많은걸 지니고 계신 선생님이라서 하루, 하루 찾아뵈면서 여쭙고 알아갈게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소중한 이야기 너무 감사했습니다.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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