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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라 부르지 마라. 이것은 그냥 우리 자체다. 2007 시댄스 '판ㆍ굿'




다채로운 세계인의 무용축제인 ‘서울세계무용축제(이하 시댄스)’는 올해도 어김없이 관객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시댄스는 세계 유수의 무용단을 초청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고유의 음악과 무용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바로 12일 펼쳐진 판ㆍ굿의 공연이 바로 그것이다.
판ㆍ굿은 풍물굿의 종합적 연희를 이르는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굿’은 단순히 무당에 의해 주재되는 의례라는 모습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볼만한 것의 총체를 말한다. 즉, ‘판ㆍ굿’은 춤을 추되 소리와 한 데 어우러지게 하는 판이요, 춤을 추어 널리 뵈게 했던 옛 굿을 복원하는 굿이다. 오늘의 판ㆍ굿은 지난 2004년 시댄스에 초청되어 격찬을 받았던 ‘보다 무대화한 공연이다.

공연장 밖에서 시작된 여성농악단의 공연은 객석을 지나 무대까지도 한참을 이어진다. 유랑농악단의 마지막 세대인 이 여성농악단은 이제 나이 지긋한 우리들의 어머니가 되어있으며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었지만 이번 2007 시댄스로 다시 뭉쳤다고 한다. 몸에 ‘인’으로 박힌 리듬은 머릿속에서 생각할 틈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이들의 구성진 ‘농부가’ 한가락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보면 우리도 어쩔 수없는 한국 사람인가 보다.

이들의 텅 빈 무대는 곧 ‘오채진굿’으로 가득 메워진다. 구성진 태평소 가락에 여성농악단은 자유로움을 마음껏 만끽한다. 그 자유로움 속에 바로 질서 정연함이 있다. 동선의 규칙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이미 많은 세월로 예전과 같은 기량을 보이지 못해 아쉽다는 사회자(예술감독 진옥섭)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뛰어난 호흡을 보이고 있다. 그 균형과 불균형의 기준을 탐닉하는 것, 바로 관객의 몫이다.
베이스 없이도 시끄럽지 않고 안정된 느낌은 강약의 조절로 매우 적절하다. 그것은 이미 서로의 눈짓만으로도 최고의 공연을 선사하는 이들이 오랜 역사를 품고 있다는 그 증거이다.

이어 ‘설장구춤(유점례, 이영단)’과 ‘징춤(김정숙)’이 이어졌다. 설장고춤은 장고 2명이 빠른 호흡으로 신들린 장고 가락을 연주하며, 징춤은 징이라는 악기만이 줄 수 있는 그 여유로움과 긴 호흡이 매우 매력적이다. 특히 시연자(김정숙)의 어깨, 팔 동작과 시선처리가 더욱 그러하다. 서로의 눈짓으로 박자를 맞추는 것이 무척 경이롭다. 징의 소리처럼 묻혀있는 소리가 살아나야 풍물전체가 살아나는 것이다.

이어 밀양북춤(하용부)의 시연이 이어졌다. 북을 끈으로 매어 무릎정도에 두고 북채를 들고 사물놀이 반주에 맞춰 연주와 춤이 동시에 빠른 전개로 이어진다. 춤꾼의 호흡과 선, 표정 손끝까지 힘이 넘친다. 강,약,중간으로 설명할 수 없는 박자와 세기는 결코 서양의 오선지에 표현되어 질 수 없다. 그리고 그의 표정이 압권이다. 그 어느 누구보다 행복함에 젖어있는 그는 이미 전부를 다 가졌다. 이 세상을 큰 무대로 벌이는 진짜 한 ‘판’이다.

‘교방춤(박경랑)’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미 젊은 시절을 춤꾼으로 보내고 그 자태와 온화한 미소가 그대로 보이는 그녀의 손짓, 발짓은 기교를 부리지 않음에도 그 힘이 객석에까지 전달된다. 그녀는 넓은 무대에 혼자였지만 빈틈이 없다. 손목, 손끝, 팔, 손가락, 손에 들린 부채자루 끝까지 그 힘이 느껴진다. 호흡을 가지고 논다는 느낌이다.

이어 김운태 연출의 긴 세월의 유장함이 묻어나는 ‘채상소고춤’과 ‘부포춤(유순자)’이 이어졌다. 특히 부포춤은 상쇠가 머리에 쓴 부포의 깃털이 날리면서 사람의 얼굴 표정과도 같은 모양으로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지게 한다.

우리의 옛 놀이는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다. 오늘 펼쳐진 이들의 ‘판ㆍ굿’은 진정 자유로웠고 진짜 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잠시의 쉼도 없이 다시 장고와 북을 집어 들었던 이들의 젊은 시절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그 노래 한 자락에 다시금 힘을 얻어 일터로 나갔던 우리 옛 선조들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우리의 놀이 한 판을 ‘아트(Art)'가 아닌 ’하트(Heart)‘로 봐달라는 사회자(예술감독 진옥섭)의 농담한마디가 참으로 진짜 같다. 그냥 즐기라는 이들의 한마디가 더욱 특별히 느껴진다.


공정임기자 kong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