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없이 깨끗한 자세로 마음을 비운다. 몸짓 하나도 조심스럽게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 무엇으로부터도 구속받지 않고 자유로워야 한다. 넘치는 것을 경계하고 모자라지 않도록 늘 춤집을 채워 넣는다.
김진홍(金眞弘ㆍ58, 1935년 4월 5일생) 씨는 혼자 춤 연습을 하면서도 자신이 춤 인생을 통해 터득한
깨달음을 소홀히 않는다.
그래서 제자들인 홍복순(洪福順ㆍ48, 조교), 박영미(朴英美ㆍ40, 학원 원장), 장선희(張善姬ㆍ36, 새한전통예술보존학원 원장), 박경랑(朴環朗ㆍ33, 리라무용학원 원장), 신치련(42, 학원 원장), 이송희(李松姬ㆍ36, 부산 시립무용단수석), 오숙례(吳淑禮ㆍ29, 시립무용단 단원), 장내훈(33, 시립무용단 수석), 홍기택(洪基澤ㆍ32, 시립무용단 수석) 씨 등도 스승 앞에서의 춤 공부가 여간 정중하고 조심스럽지 않다고 한다.
“춤은 마음으로 춰야지요. 고뇌를 통해 내연시켜 온 정신 세계를 진솔하게 드러내 관중이 느끼도록 해 주는 겁니다. 재주로 춤을 추면 기교에 지나지 않으며 진한 감동을 교감하지 못합니다.”
늘 하심(下心)하는 자세로 선후배 가리지 않고 먼저 인사하는 그. 말소리 발소리조차 조신하게 챙기는 그런 김씨가 일단 무대에 섰다 하면 관중은 몽땅 그가 의도하는 예술 세계로 빨려들고 만다. 그의 한량춤(閑良舞)에서 삶의 굴곡과 생동감을 확인하고 승무에서는 광대무변한 정적과 알 수 없는 소생심(蘇生心)을 느낀다. 명주살풀이와 민살풀이로 교차되는 살풀이 춤짓에서는 소름끼치는 정율과 해탈의 넉넉함이 안도감으로 다가오고······.
“한량춤을 추면서는 박목월의 ‘나그네’를 맞아들이고, 승무를 안고 돌 때면 조지훈의 ‘승무’를 사뿐이 즈려밟고 학을 탑니다. 살풀이를 휩싸 감을 땐 노천명의 ‘사슴’ 눈을 찾아 모가지를 어루만지고······. 이러다 보면 으레껏 정해진 공연 시간을 초과하기가 일쑤지요.”
김씨는 이매방(李梅芳)제 승무의 이수자 1호이면서 한량춤의 1인자로 손꼽히고 있다. 입춤이나 덧뵈기춤(허튼춤)을 추면서도 손가락의 곡선은 물론, 안 보이는 버선 속 발가락 움직임까지 치열한 자세와 정신으로 임한다. 마치 달관 경지가 이래야 됨을 육체 언어로 토해 내는 듯하다.
일본 오사카에서 나고 자란 김씨는 일곱 살 때 부산으로 건너오면서 ‘조선놈이 조선말도 못한다.’고 뭇매도 많이 맞았다고 한다. 아버지(김종명)가 고향인 진주를 떠나 어머니(강매결)와 함께 일본에 건너간 건 1930년 3월. 고물상을 해 큰돈을 벌었지만 ‘큰 사업’에 잘못 손대 둘러엎고 말았다. 어머니는 자홍(진홍 씨 본명)이가 독자라고 국민학교 다닐 때까지 밥주발을 들고 쫓아다니며 밥을 먹여 주었다.
“외삼촌이 진주 기생과 첩살림을 하는데 그리도 고울 수가 없었고 소리와 춤에 반했어요. 그 후에는 외숙모한테 옷고름 뜯기고 멱살잡혀 당하는 외삼촌의 망신과 머리채 휘둘리며 퉁퉁 붓도록 얻어맞은 외숙모도 목격했습니다. 어릴 적 나고 자라는 환경과 보고 들어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잘 알잖습니까.”
한영숙(살풀이) 씨와 이매방(승무) 씨의 잦은 부산 공연은 감수성 예민한 소년 김진홍을 예술 세계로 흡인시켰다. 그 때 나이 열 셋이었다. 가설 극장 에서 만난 이춘우 씨에게 청해 기본무, 입춤, 산조를 배웠고 이매방 씨가 부산에 있는 5~6년 동안 그 유명한 승무와 살풀이 산조까지 전수받는다.
그가 추는 한량춤은 서른이 넘어 당시 부산 민속보존협회장이던 문장원(文章垣ㆍ77, 인간문화재 제18호 동래야유 기능 보유자) 씨한테 사사받은 것이다. 한량춤은 원래 기방(妓房) 무용 계열로 남부 경남에서 추어 오던 무용극 형태의 춤으로 남사당패에서도 연희됐으나 1910년 전후 남사당패가 흩어지면서 넓은 잔디밭이나 마당을 이용해 흥겹게 추어 왔던 것이다.
도포에 정자관을 쓴 한량, 궁중 별관 복식의 별감, 몽두리에 색한삼을 끼고 족두리를 쓴 궁중 여기(女妓) 차림의 기생, 가사 장삼에 작은 방갓을 쓴 승려 등이 어우러져 계급 사회를 강하게 풍자하며 한바탕 웃어 제끼는 놀이극이다. 줄거리는 한량과 별감이 기생을 데리고 흥겹게 노는 자리에 파계승이 끼여들며 시작된다. 아리따운 기생에 반한 승려가 춤으로 유혹하니 기생은 한량과 별감을 등돌리고 파계승 품에 안긴다는 매우 해학적인 내용이다.
원래 한량은 직업 없이 경제적으로는 부유해 돈 잘 쓰고 만판 놀이만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그 놈, 한량이야’ 하는 나무람 속에는 가진자에 대한 은근한 야유와 함께 ‘건달’이라는 빈정거림도 담겨져 있다. 김씨는 말한다. 한량춤을 제대로 추려면 ‘한량질’을 해 봐야 하고, 승무에 몰입하기 위해선 파계승의 고뇌에 함몰돼 봐야 한다고. 매몰찬 시어미한테 정강이뼈 묻어나게 얻어맞고 부앗김에 잿물 삼켜 물에 빠져 죽은 며느리의 한을 알아야 살풀이를 제대로 삭혀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동안 김씨는 마산 김애정(1992년 작고) 씨한테 그런 한이 묻어난 살풀이를 넘겨 받았다. 한 분의 스승을 새롭게 모실 때마다 ‘나도 제자들을 똑바로 길러 내야지······.’ 하는 각오와 다짐이 들어섰다고 한다.
• 김진홍 한량춤 계보
출 처 : 이규원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
내용 더 자세히보기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97344&cid=3005&categoryId=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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