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 옻칠한 대청… 그 위에서 사뿐사뿐 선비춤
드디어 초은당에 간다. 여러 자리에서 여러 입으로 분분하게 소문이 나부꼈던 집이다. 옻칠을 아홉 차례나 하면서 돈을 종이처럼 처발랐다느니, 한강 이남의 경복궁이라느니, 부석사 무량수전의 살림집 버전이라느니! 과격하고 선정적인 소문들이었다. 금강송을 켜 옻칠한 대문 앞에 서니 얼굴에 잔뜩 웃음을 문 주인이 고무신 발로 뛰어나온다. 신만 고무신이 아니다. 명주 누비 바지저고리에 역시 솜 두고 누빈 조끼를 입었다.
지난해 파주 헤이리의 한 축제에서 그가 추는 선비춤을 구경한 적 있다. 한옥에 한복 입고 살면서 선비춤을 추는 사람. 신명 많고, 입담 좋고, 생각 굳은 이 집 주인 권오춘(61) 국어고전문화원 이사장이다. 그는 지금 전통문화의 르네상스를 위해 앞장서서 달리는 중이다. 소득 3만 달러가 되면 다들 전통정신을 찾을 수밖에 없을 텐데 막상 한옥과 한복과 한식과 전통공예가 다 사라지면 큰일 날 일 아니냐며 자신의 삶으로 철저하게 한국인의 문화를 지키겠노라고 선언한 사람이다.
“한옥에 살면 불편한 줄 알지만 막상 익숙해지면 심신이 아주 편안해져요. 이렇게 과학적이고 인간을 깊이 이해하는 건축양식이 있었던가 새삼 놀랍니다. 남방문화인 마루와 북방문화인 구들이 만난 것도 그렇지만, 창호지·문얼굴·창호의 치수 같은 것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휴머니즘에 입각해 있는지요. 한옥은 우주 철학을 포괄하는 집이에요. 추녀의 원·기둥과 마루와 방 마루의 네모, 지붕의 세모가 합해 원방각(圓方角) 천지인(天地人) 철학을 품고 있습니다. 한복 또한 마찬가지예요. 집과 옷이 우주 원리에 두루 부합해요. 사람도 소우주니 집에 들어앉으면 성품이 활달해질 수밖에! 그러면서 또 언행은 신중하게 만들거든요.”
그의 한옥과 한복 예찬은 기운차고 재미있고 격조 있고 끝 간 데를 모른다. 그는 안동권씨 부정공파 35대 손으로 경북 안동에서 나고 자랐다. 태생적으로 선비정신이 몸에 밴 사람이다. 10여 년 전에는 하회 마을 인근 구담 마을에 60칸짜리 ‘구담정사’를 장만해 어머니를 모셨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이곳 양평의 북한강 물길은 안동의 낙동강까지 닿았었다. 배를 타고 그렇게 흘러간 기록이 여기저기 보인다. 지금 여기 양수리 북한강가 초은당 앞을 맴도는 전통문화의 물길이 안동 하회에 이르러 구담정사까지 흘러가기를 그는 꿈꾼다.
초은당은 본채 27칸, 별채 3칸 해서 모두 서른 칸의 집이다. 깔고 앉은 대지는 3300㎡(1000평). 마당 초입에는 들어서는 사람을 향해 절을 하는 형상의 향나무를 심었다. 또 봉화에서 가져온 금강송을 심었고, 마당으로 올라서는 계단은 문경에서 실어나른 목화문석으로 만들었다. 들여다보면 돌 속에 목화 송이가 툭툭 벙근다. 대문 앞엔 한쪽엔 초(招), 다른 쪽엔 은(隱)이라고 새겨진 와당을 박아넣었다. 초은은 숨어있는 사람을 부른다는 의미의 당호이고, 집주인 권오춘의 호다. 한복 입고 한옥에 사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몇 해 전 그는 영남춤의 명인인 박경랑 선생을 모셔와 선비춤을 배웠다. 손이 오면 거울같이 윤나는 대청에서 그는 너울너울 선비춤을 춘다.
'회원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명옥명무,“웅천골에 나리는 영남춤 그리고 그리움”(영남교방총춤 보존회 경남지회장) (0) | 2013.08.17 |
---|---|
영남춤보존회 부산공연후 사진 (0) | 2013.01.31 |
염춘숙의 강화춤사랑 - '북춤' (0) | 2012.10.20 |
2012박선영의 춤 인쇄물 (0) | 2012.07.10 |
'춤꾼' 염춘숙 "전통무용 계승에 보람"(보존회 강화군지부장) (0) | 2012.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