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태홍

박경랑의 스승 동래 권번의 마지막 춤 선생, 강옥남 예술부산 Vol 63. 2009. 9/10. 49-51쪽 배 학수(경성대 교수/ 철학) --> 블로그보기 “뭣보다 교방이라는 담장, 그 담장이 가두기엔, 너무 큰 예인이었다"(KBS 황진이). 드라마에서는 예인藝人이라고 미화된 황진이 같은 기생들은 조선 시대 궁중이나 관청의 연향宴享에서 춤과 노래를 공연했다. 이들을 관리하는 정부 기관이 교방敎坊인데, 교방은 을사조약으로 폐지되었고, 그 후 교방의 기생들은 새로 생겨난 민간 조직인 기생 조합, 권번券番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권번은 서울, 평양, 부산, 대구, 진주 등 전국 각처에 설립되어 동기童妓들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치고 화대花代를 관리했다. 강 옥남(姜玉南)은 동래 권번의 마지막 춤 선생이다. 그에게는 남기고 기록해야 할 많은 이야기가 있을 터인데 언.. 더보기
진주검무,진주교방굿거리춤의 예능보유자 故 김수악 (金壽岳) 선생님 "김수악의 구음이면 헛간에 도리깨도 춤을 춘다" 우리의 전통예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가무악이 한데 어우러진 형태이다. 그리고 이 가무악의 어우러짐은 오늘날의 공연예술의 목표가 되기도 했다. 가무악 일체의 최고의 예인을 꼽으려하면 단연 첫 손가락이진주의 김수악 선생일 것이다. 김수악 선생은 열 살에 진주 권번에 입적하여 판소리는 유성준, 정정렬, 이선유, 김준섭 등의 쟁쟁한 명인들게게 다섯마당을 떼었고 기악은 김종기, 강태홍, 이순근, 박상근 등으로부터 가야금 아쟁을 배웠고, 춤은 김옥민을 통하여 발걸음을 뗀 후, 한성준에게 승무를, 김해의 김녹주에게 소고무를 물려받았다. 그리고 구한말 관기출신인 최완자에게 굿거리춤, 입춤,검무를 배웠으니 아마 고금의 국악사를 통해 김수악 선생처럼 완벽한 스승을 모신 이도.. 더보기
김애정선생의 교방수건춤 "1920년을 전후해 동래권번, 봉래권번, 부산권번이 개설되었지요. 일제시대였던 만큼, 당시 가무악이 권번에서 행해졌으니 춤과 권번은 사실상 뗄 수 없는 관계였지요. 광복 직전까지 이들 권번이 부산 전통춤의 명맥을 이었지요. 강태홍 최송학 김해월 석국향 등이 이름을 날렸지요." 이때 김해 출신으로 한국 최초로 1927년 서울에서 무용연구소를 세운 배구자는 신 무용에 눈뜬 이다. "40년대에 주목할 분은 강태홍과 김동민(김온경 이사장의 부친)이었어요. 가야금 산조의 명인이었던 강태홍은 동래권번의 예술사범으로 춤을 최초로 일반에 보급했고, 김동민은 48년 부산 서구 토성동에 부산 최초의 무용학원(민속무용연구소)을 열었지요." 광복 직후 활동했던 명인으로는 김강남월 문장원 김애정 박성옥을 꼽고 있다. 부산춤1..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