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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9 08 안동 문화예술회관 국악공연 풍류  
사진출처 : 까페 고타야 ( 古陀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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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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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랑의 춤

21세기 한국 전통무용의 창조, 풍류의 춤, 서사의 춤


배학수 / 경성대 철학과 교수


이 선생! 어제 잘 들어가셨나요? 저는 뒤풀이에 갔다가 너무 많이 먹고 마셨나 봅니다. 아직 머리가 띵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박경랑의 뒤풀이는 그냥 먹고 마시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가끔 공연 뒤풀이에 가 보면 결혼식 음식점에 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결혼 음식점에서 하객들은 신랑 신부에 대해서 예쁘다는 둥, 너무 키가 작다는 둥 시시한 말을 몇 마디 주고받고는, 결혼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자신들의 이야기에 몰두하지 않습니까? 무용 공연 뒤풀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석자들은 그날의 공연에 대해서는 좋았다 재미있었다는 식의 간단한 평가만 던지고 공연이나 발표자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자신들의 교제에 전념하죠. 그러나 박경랑의 뒤풀이는 특이합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거기서 박경랑이 춤을 춥니다. 분장은 지우고 의상은 평복이고 살풀이 수건은 없지만, 두루마리 휴지를 말아들고도, 접시를 입에 물고도 살풀이를 춥니다. 다른 출연자들도 나름의 재주를 보여주는 일도 많기 때문에 뒤풀이 모임은 무대 공연이 방 안으로 들어온 미니 공연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박경랑의 뒤풀이는 손님이 춤을 바로 가까이서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공연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 특별한 뒤풀이는 박경랑의 '풍류 마당' 자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풍류 마당이란 박경랑이 자주 추는 교방무용을 말합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기생들과 어울려 노는 교방 문화는 박경랑의 풍류 마당에서 새롭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기생들은 노래 부르고, 춤 추고, 선비들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립니다. 선비들이 먼 길을 떠날 때는 마음을 두는 기생의 치마에 그림을 그려서 정표를 남깁니다. 2001년 진주 공연에서는 박경랑의 부채에 서예가가 한시를 쓰고, 치마폭에 그림을 그리더군요. 박경랑은 그 부채로 춤에 화려함을 더하고, 그 치마를 흔들며 관객을 아찔한 혼란으로 몰아넣더군요.

교방무용에서는 성의 매력이 흘러 넘칩니다. 왼손으로 치마를 치켜들며 오른발을 살짝 내어 미는 것은 여성의 성적 상징을 슬쩍 보여주어 남자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듯하고, 팔을 세우며 오른쪽으로 사뿐 돌아가는 것은 남자에게 연정의 눈빛을 흘리면서도 외면하는 척하여 남자 마음을 애태우는 듯하고, 부채를 펼치는 부드러운 손길은 마치 저고리를 푸는 것처럼 야릇한 상상을 일으킵니다. 저는 지금껏 스트립쇼나 다름없이 벗어 던지는 무용을 예술인 양 포장하는 사이비 작품을 많이 보았지만, 박경랑의 교방무용처럼 성적 매력이 넘치는 춤은 없었습니다. 노출의 정도와 직접성이 성적 유혹의 정도와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방무용의 성적 표출 때문에 박경랑의 춤은 질이 낮은 것처럼 비난받기도 합니다. 비판자들은 박경랑의 무용이 이미 사라진 기생방을 현대의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저는 박경랑에게 그 점을 물어 보았습니다. "기생은 하류이고

 예술은 상류라면, 기생춤은 저질이 아닌가요? 당신은 왜 그런 품위 없는 춤을 추십니까? 박경랑은 자부심 가득한 답변을 주었습니다. "한국 전통무용 중에서 기방무용 아닌 것이 있나요? 승무, 살풀이, 태평무, 모두 기방에서 전승된 거예요. 대학에 계신 분들이 아무리 근엄한 척 하여도 한국 무용이 교방 예술가를 거쳐서 우리에게 넘어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답니다." 한국 전통무용은 기생들이 배우고 추면서 현대에 전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기방 예술의 기교와 구성을 살리는 춤이 한국 무용의 정통이라는 점에 대하여 박경랑은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선생! 박경랑의 춤이 기생춤의 냄새가 나기 때문에 저질이라는 비판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럼 문둥이춤이나 병신춤은 모두 다 무대에 올려서는 안 되는 저질 춤이 아닌가요? 어떤 춤이 저질인지 예술적 가치가 있는지는 춤이 묘사하는 대상이 사회에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임금춤이 노예춤 보다 당연히 수준이 높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더구나 무용가가 기생춤을 춘다고 기생처럼 천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왕비춤을 춘다고 왕비처럼 품위가 생기는 것은 전혀 아니죠.

교방무용의 가치 평가는 교방무용이 현대 사회에서 차지하는 의미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저는 교방무용의 매력은 현대인에게 풍류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에는 풍류가 없습니다. 풍류는 단순히 노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그 차이는 교양과 자제입니다. 아무런 지식과 훈련도 없이 누구라도 즐길 수 있는 술자리나, 광란의 댄스 파티는 풍류가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절제와 교양이 요구되는 놀이를 싫어합니다. 통제와 지식은 돈 버는 데에 필요한 것이지, 놀 때에는 그냥 아무렇게나 즐겨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교방무용을 구성하는 춤과 노래, 그림, 문학은 아무나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을 즐기기 위해서는 교육과 훈련, 그리고 자기 통제가 필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교방무용은 노동과 레저라는 양 극단의 현대 사회에서 새로운 놀이 문화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풍류 마당이 옛날의 기방 문화를 무대에 재현함으로써 현대에 풍류의 가치를 재고하게 만들었다면, 박경랑은 전통무용을 조금 바꾸어 현대 대중의 감각에 맞게 새롭게 구성하기도 합니다. 원래 승무나 살풀이에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박경랑은 전통무용에 특정한 상황을 약간 부여하여 작품에 스토리를 일으킵니다.

어제 '천궁'(2006. 6. 26 부산문화회관 대강당)이라는 작품은 살풀이입니다. 그런데 뒤에 무엇이 있었던가요? 호국 영령에게 바친다는 내용의 문장이 배경에 걸려 있고, 바닥에 하얀 꽃이 놓여 있어서 어제의 살풀이는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바친 고귀한 사람들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춤이 되었습니다.

2001년 진주 공연에서는 살풀이가 다른 맥락 속에서 나타납니다. 고성오광대 제밀주 과장에서 큰어미가 죽고 상여가 나갑니다. 박경랑의 살풀이는 이 상여 앞에서 벌어집니다. 그러면 이때의 살풀이는 젊은 여자에게 남편을 빼앗긴 나이든 여자의 원한을 위로하는 춤이 됩니다.

2005년 서울 공연에서는 살풀이의 상황이 다시 바뀝니다. 이때는 황진이를 짝사랑하다가 죽은 순진한 청년의 상여를 배경으로 살풀이가 공연됩니다. 그럼 이 살풀이는 사랑의 상처로 고뇌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춤이 됩니다. 이런 기법은 승무에서도 사용됩니다.

2001년 진주 공연에서 승무의 앞부분에 두 줄로 늘어서서 공부하는 부처님들이 오페라의 서곡처럼 등장합니다. 그래서 승무가 막연한 한의 춤이 아니라 공부에 정진하지만 속세의 인연을 잘 끊지 못하는 학승의 고민을 표출하는 춤이 되어 버립니다. 박경랑은 보통 사람에게 지루한 승무에 이렇게 서두를 갖다 붙여 승무의 추상성을 구체화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살을 푼다는 것은 현대인에게는 너무 먼, 잡히지 않는 모호한 말입니다. 그러나 박경랑은 전통무용을 특정한 상황 속에 투입하여 전통 무용의 추상성을 절묘하게 구체화하였습니다.

박경랑의 풍류와 서사의 춤에 대하여 전통성을 따지는 사람들은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전통무용이 아니라 박경랑이 제 멋대로 바꾼 것이라고 비난하는 말이 나올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춤의 동작에 대해서는 아무도 전통성에 의심을 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한국 전통무용 동작의 본질은 '작은 것 속에서 거대한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박 경랑의 춤동작을 보면, 당기는 작은 손에 수천 근의 삶의 무게가 걸려 있는 듯하고, 슬며시 돌아서는 어깨에는 사랑하는 남자를 아내에게 돌려보내는 기생의 엄청난 몸부림이 담겨 있고, 잔잔하게 내려앉는 무릎에는 거부할 수 없는 좌절이 암시되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동작 속에 측량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을 움켜 넣는 한국 전통무용의 본질은 박경랑의 춤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이 선생! 박경랑의 춤은 전통이면서 창작입니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전통을 받아들이되 재창조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말은 매끄럽지만 실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 방도는 모릅니다. 사람들은 경복궁의 박물관처럼 현대식 건물에다가 기와를 덮어놓고 전통의 현대적 창조라고들 떠듭니다. 무용에도 이런 얼치기가 많습니다. 한복을 입고 자세나 동작은 현대무용으로 춘다든지, 발레도 하지요. 이런 것은 모두 현대무용이나 발레이지 전통 무용의 현대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통무용의 진정한 현대화는 동작의 전통성을 간직하면서도 현대에 결여된 풍류의 의미를 제시하거나 현대 상황에 어울리는 선명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박경랑의 춤 같은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박경랑의 춤은 21세기 한국 전통무용의 전형일 것입니다.

이 선생! 어제는 공연 끝나고 너무 황급히 헤어져서 서로 감상을 나눌 시간이 없었습니다. 밤 10시는 남자에게는 아직 여유가 있지만, 여자에게는 늦은 시간인가 봅니다. 현대 사회에서 남자와 여자의 평등과 우정 같은 주제들도 좋지 않습니까? 박경랑의 무용에서 더욱 현대스런 주제도 우리 기대하여 봅시다.

[출처] 풍류의 춤: 박경랑|작성자 배학수 「예술부산 Vol.44. 2006년 7/8월호」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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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랑의 2011 풍류 동행

-부산 예술 회관 개관 기념 축하 공연(2011. 5. 15. 부산 예술 회관 공연장)

 

배학수(경성대 교수)

 

선비의 아쟁 소리에 반해 기생은 춤을 춘다. 처음에는 열없게 움직이던 기생은 선비의 마음이 오는 것을 알고는, 목놀림의 교태로 선비를 유혹하고, 사랑의 기쁨을 뿜어낸다. 선비는 기생의 머리를 얹어주고 떠나간다. 이별할 때 선비는 마음을 함께 맺는다는 의미로 ‘동심결’(同心結)을 수건에 써서 기생에게 남긴다. 이날 박경랑은 교방청춤에 이런 사연을 담았다.

박경랑은 전통 무용의 추상성을 구체화하는 데 능하다. 교방청춤이 꼭 이런 사랑이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특정한 상황을 작품에 부여함으로써 일반 관객이 그 춤의 진행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선비와 기생의 이야기는 수건춤으로 이어진다. 기생은 선비가 남긴 사랑의 징표를 안고 그리움의 춤을 춘다. 수건을 두 손으로 받들 때는 기다리는 희망이지만, 한 손으로 뿌릴 때는 미련을 거두려는 의지이다. 마지막 부분에 기생은 탈자적 회전으로 다시 만날 그날의 환상을 펼쳐낸다.

수건춤처럼 박경랑의 문둥북춤에는 두 세계가 얽혀 있다. 하나는 천병으로 고생하며 살아가는 현세이며 다른 하나는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고 싶은 내세이다. 사람은 누구나 육체적, 정신적 결함이 있기 때문에 이 춤은 초월을 꿈꾸는 모든 인간의 영혼을 위로하는 보편적 호소력이 있었다.

그러나 교방청춤은 반주와 춤이 따로 놀아 작품의 정서가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다. 박대성은 춤은 보지 않고 자신만의 아쟁 산조에 심취했고, 박경랑 역시 그 음악에 춤을 맞추는데 실패했다.

공연장 무대 바닥에는 고무판이 깔려있지 않아 문둥북춤을 출 때 무용수가 미끄러져 넘어질 뻔하였다. 예술회관이 개관한지 몇 달 되지 않아 준비가 부족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무용 공연을 초청하려면 댄스 플로어 정도는 갖추어야 하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로 불만이 많은 관객은 박경랑의 다음 공연을 기다려야 한다.

[예술부산 Vol. 73. 2011. 5/6. 35 쪽]

  

[출처]박경랑의 2011 풍류 동행|작성자배학수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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