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용배

운파 박경랑 소개 雲破 朴璟娘 1961년 경남 고성 출생. 중요 무형 문화재 제 7호 고성 오광대 초대 문화재이셨던 외증조부의 대를 이어 영남 춤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중견 춤꾼으로 보기 드물게 농익은 춤의 기량을 간직하고 있다. 4세에 춤에 입문 故 김창후 故 조용배 故황무봉 故김애정 故김수악 김진홍 박성희 강옥남 선생들에게 우리춤을 사사받았고 지금은 서울, 부산을 오가며 개인 공연 및 기획 공연 국악 무용 경연대회 심사 및 우리춤을 연구, 전수 ,보급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수상이력 93년 제 18회 전통 예술 경연대회 전체 종합대상 (문화체육부 장관상) 수상, 93년 제4회 대구국악제 전체 종합대상(문화체육부 장관상)수상, 94년 진주 개천 예술제 제12회 개천 한국 무용제 특장부문 대상(문화체육부 장관상)수상.. 더보기
박경랑의 스승 금산 故조용배옹 춤과 서예 대가로 전국 무대 누벼 당대 춤꾼 고성하면 ‘조한량’ 불려 조용배 그는 1929년 9월 거류면 용산리 157번지에 태어났다. 이 때부터 ‘조선의 한량 조용배’의 신화가 싹트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그는 동네 메구패를 따라다니면서 신명을 배웠다. 서당에 다닐 때는 훈장이 없는 때를 틈타 솥뚜껑, 밥그릇, 숟가락으로 농악장단을 맞추며 일찌감치 예인기질을 발산시켰다. 세인들은 한량에도 급수가 있다면 故 조용배 선생은 단연 9단이요, 가장 으뜸일 것이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춤이면 춤, 악이면 악, 그림이면 그림, 글씨면 글씨, 문장이면 문장 이 모두를 두루 섭렵했던 한량 조용배. 그는 타고난 끼를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하다 기어코 한량이라는 이름으로 승화시키면서 91년 예순셋의 일기로.. 더보기
40년 춤사위 춤을 의식 안 하니 진짜 춤이 나오더라! 40년 춤사위 춤을 의식 안 하니 진짜 춤이 나오더라! 고성 오광대 초대 무형문화재 고 김창후 선생의 외증손녀 말 배우기 전부터 춤 보고 자라 대학 때는 발레 전공 춤꾼 박경랑(50)씨의 춤사위를 처음 본 것은 2년 전 서울시 중구 필동 남산 자락에 자리 잡은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열린 한 공연에서였다. 박씨는 영남지방 기생의 춤, 영남교방청(敎坊廳)춤을 췄다. 느린 장구 장단에 맞춰 상체가 미묘하게 흔들리다가도 장구의 장단이 점차 빨라지면 박씨의 발놀림도 장단을 뒤따랐다. 춤을 추는 박씨의 손끝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신명이 묻어나왔다. 쉴 새 없이 달리던 장구 장단이 갑자기 멎자 박씨가 무대 한편으로 다가갔다. 무대의 왼편엔 도포를 입은 한 시인이 자신 앞에 놓인 화선지에 시를 쓰며 풍류를 읊고 있었다... 더보기
영남교방청춤의 미학적 특징 영남교방청춤의 미학적 특징 임 지 애 국문초록 본 논문은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에 나타난 구조적 의미와 미적특징에 관한 고찰을 시도하였다. 전통춤의 구조적, 형태적 미적고찰은 나아가 전통춤 전반의 철학적 구조 연구에 초석과 반석 및 발전의 한 영역이 되리라 사료된다. 영남교방청춤은 조선후기 민중들 삶의 모습과 예술의지가 투영되어 있는 하나의 집결체로서 민속무용의 근원적 미의식의 내재와 함께 한국적 정서를 잘 대변하고 있으므로 한국춤의 원형적 가치가 존중된다. 이 춤은 종교적인 기능보다는 오락적이며 예술적인 색채가 농후한 춤으로 발전하였고, 그 변천과정에서 기방 예인들에 의해 한층 기교적이며 세련된 춤사위를 형성하게 되어 오늘날 비중 있는 전통문화예술로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으로 추어지고 있다. 우.. 더보기
박경랑의 외증조부 故김창후옹 1887년(고종 24)∼196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固城五廣大)〉의 예능보유자. 경상남도 고성에서 태어나 고성읍 동외동에서 살았다.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였고 이군찬에게서 〈고성오광대〉를 배웠고, 정화경‧이윤화‧이태준‧김성범에게서 배워 원양반역을 잘하였다. 1964년 12월에 〈고성오광대〉 원양반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후계자로 배갑문(裵甲文)‧이윤수(李允洙)‧최규칠(崔奎七)‧조용배(趙容培)‧최인순(崔仁淳) 등이 있다. 출처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조용배와 천세봉의 전설 하지만 고성엔 희한하게도 어느 시절 어느 난국에도 언제나 ‘춤에 환장한 영감’ 한둘이 반드시 있었다. 그들이 오광대 춤을 끈질기게 이어갔다. 권번 춤선생이던 김창후(1887~1965), 홍성락(1887~1970),.. 더보기
춤 안에 깃들인 춤의 이야기 (김해 백의백무) 춤 안에 깃들인 춤의 이야기 ‘2009 박경랑의 춤 백의백무’ 김해 공연 경남 고성 출신으로 고성오광대 초대 문화재였던 외증조부의 대를 이어 영남 춤의 맥을 잇고 있는 춤꾼 박경랑이 김해 무대에 오른다. 오는 15일 오후 7시 30분에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에서 열리는 ‘박경랑의 춤 백의백무(白衣百舞)’는 우리 춤의 맥과 특징을 감동과 신명의 한마당으로 풀어내는 춤판으로 지난해 서울에서의 공연은 TV를 통해서도 방영된 바 있다.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최종민 교수가 해설을 맡았으며, 박경랑이 화려한 의상 대신 흰 옷을 입고 우리 춤의 정갈함과 한(恨)의 정서를 표현할 예정이다. 중요 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놀이를 각색한 문둥북춤, 기생들에게 가르쳤던 영남 교방춤, 장녹수와 연산군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사랑.. 더보기
박경랑의 춤살이 '폐인'들 거느린 '꾼' 박경랑의 춤살이 '폐인'들 거느린 '꾼' 국제신문 2006-06-28 20:29 박경랑은 1961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고성오광대 초대 인간문화재인 고 김창후 선생이 그의 외조부. 그래서 그는 네 살 때부터 외할아버지로부터 춤추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박 씨는 어릴 적 고성과 부산을 오가며 초 중 고교를 다니다 세종대 무용학과에 들어가 본격적인 춤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박 씨는 외조부가 돌아가신 뒤 할아버지의 수제자인 조용배(작고) 선생에게 고성오광대 문동북춤과 허튼덧뵈기춤·승무·영남교방춤 등을 사사했다. 그리고 황무봉(작고) 선생께 살풀이·검무·화관무·춘앵무·부채춤·오고무를 배웠다. 이어 김진홍 선생에게서 이매방류의 전통춤인 승무·살풀이·입춤을, 강옥남 선생으로부터도 승무·살풀이와 허튼춤을, 김수.. 더보기
박경랑무용단 대만세계등축제2(폐막공연커튼콜) 한국영남춤문화예술연구소 산하단체 “박경랑전통무용단” 박경랑전통무용단의 단장 박경랑은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받은 영남 교방청춤으로 널리 알려진 춤꾼이다. 4세에 춤에 입문 故 김창후 故 조용배 故황무봉 故김수악 김진홍 박성희 강옥남 선생들에게 우리춤을 사사받았고 지금은 서울, 부산을 오가며 개인 공연 및 기획 공연 국악 무용 경연대회 심사 및 우리춤을 연구, 전수 ,보급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93년 제 18회 전통 예술 경연대회 전체 종합대상 (문화체육부 장관상) 수상, 93년 제4회 대구국악제 전체 종합대상(문화체육부 장관상)수상, 94년 진주 개천 예술제 제12회 개천 한국 무용제 특장부문 대상(문화체육부 장관상)수상, 95년 제21회 전주 대사습 놀이 무용부문 장원(문화체육부 장관상) 수상, 9..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