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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21 고성오광대

고성오광대

국악 2012. 6. 21. 14:11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이 놀이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구전자료와 학자들의 조사결과를 종합하면, 조선 말기까지 고성읍에는 관속들이 놀던 가면극이 있었고, 1910년경에 남촌파(南村派) 한량들이 통영오광대를 보고 오광대놀이를 하였고, 그 뒤 창원오광대(昌原五廣大)의 영향을 받으면서 오늘날과 같은 탈놀이로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연희자는 서민층에 속하는 주민 가운데 음악과 춤에 능하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고, 그 중에서 연장자가 주관을 하였다. 이들 연희자가 주동이 되어 일심계(一心契)를 조직하여 음력 정초에 고성 몰디 뒷산 도독골 잔디밭에서 연습을 하는 한편, 지신밟기를 하여 경비를 염출해서 음력 정월 보름날 저녁에 장터 또는 객사 마당에서 놀이를 하였다.

오광대가 인기가 있자 추석에도 논 적이 있었고, 일심계의 봄철놀이를 할 때도 밤내 자갈밭에서 놀기도 하였다. 무대는 특별한 장치가 없이 땅에서 그대로 연희하며, 악사는 놀이마당 가장자리에 앉고 관객은 그 주위를 원형으로 둘러싸고 구경한다. 조명은 놀이마당 가운데 두서너 곳에 장작불을 놓아서 밝힌다.

놀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마당은 ‘중춤’이다. 중과 각시가 굿거리장단에 맞추어서 춤을 춘다. 중이 각시를 유혹하고 각시는 마주보고 그에 응하는 요염한 춤을 춘다. 둘째마당은 ‘문둥이’로, 오그라진 손으로 소고(小鼓)를 들고 등장하여 벌벌 떨면서 문둥이의 흉내를 내며 춤을 춘다.

셋째마당은 ‘오광대’로 양반이 위엄을 부리고 마부인 말뚝이에게 인사를 강요하지만 말뚝이는 반항한다. 양반이 말뚝이를 윽박지르면 슬그머니 말을 돌려서 변명하고, 양반은 그것을 듣고 속아서 더욱 바보스럽게 된다. 다른 지방 오광대의 양반마당에 해당하는 것이다.

넷째마당은 ‘비비’이다. 비비는 무엇이든지 잘 잡아먹는 상상의 동물로 영노라고도 한다. 고성오광대에서는 호드기와 비슷한 것을 불어 ‘비―비―’하고 소리를 내며 양반을 혼내기 때문에 ‘비비’ 혹은 ‘비비촐촐이’라고 한다.

이 마당은 다른 지방 오광대의 영노마당에 해당한다. 비비가 양반을 만나 무엇이든지 잘 잡아먹는다고 위협한다. 양반은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양반이라고 하자 비비가 양반은 더 잘 잡아먹는다고 한다. 양반이 궁여지책으로 너의 할아버지라고 하니 비비는 잡아먹지 못한 채 욕설만 하고 서로 어울려 덧뵈기춤을 추고 퇴장한다.

다섯째마당은 ‘제밀주’이다. 본처인 할미가 등장하여 집을 나간 영감을 찾아다니고, 영감은 제밀주(혹은 제밀지)라는 첩을 데리고 나타난다. 제밀주가 득남하고 할미가 그 아이를 어르다가 떨어뜨려 죽여서 제밀주에게 맞아죽고 할미의 상여가 출상한다. 이것은 다른 지방 오광대의 영감·할미마당에 해당한다.

탈은 조선 후기에는 나무로 만들어 썼다고 하나 광복 이후에는 마분지를 짓이겨서 만들어 쓰다가 다시 일부 가면을 나무로 만들기도 했는데, 다른 지방에 비해 극채색(極彩色)을 많이 쓴다.

현재 사용하는 탈은 문둥이·말뚝이·원양반·청제양반·적제양반·백제양반·흑제양반·홍백양반·종가도령·비비·비비양반·중·각시·영감·할미·제밀주·마당쇠 등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쓰고, 봉사·상주·상두꾼은 탈을 쓰지 않는다. 현재 사용하는 나무로 만든 탈은 마분지로 만든 것보다 사실적으로 변모하였다.

춤의 반주음악으로는 주로 굿거리장단이 쓰이고, 반주악기는 원래 피리·젓대·해금·가야금·거문고·장구·북·꽹과리 등이었다고 하나 근년에는 꽹과리·징·장구·북 등 농악기를 사용하고 있다.

춤은 ‘덧베기춤’이라고 부르는데, 배역에 따라서 그 인물의 성격이 춤으로 표현되어 종류가 나눠진다. 즉, 말뚝이 춤은 동작이 크고 도약이 심하고 베김새가 힘찬 건무(健舞)이고, 양반춤은 유연한 춤사위를 보인다.

문둥이춤은 문둥이가 파리 잡아먹는 모습 등 그 생태를 익살스럽게 표현한다. 제밀주와 소무의 춤은 남성이 추지만 맵시를 부리는 여성무를 추고, 할미춤은 팔을 크게 벌리고 엉덩이를 심하게 흔들며 외설적인 동작으로 익살스럽게 춘다.

극의 줄거리는 항상 같지만 대사는 엄격히 고정된 것이 아니고 연희자의 흥취와 관객의 반응에 따라서 놀이할 때마다 첨삭되는데, 연희자였던 천세봉(千世鳳)의 필사본 <오광대흥유순서급자담 五廣大興遊順序及諮談>과 그것을 옮겨쓴 것으로 보이는 홍성락(洪成洛)의 같은 이름의 필사본에는 놀이마당의 순서가 위와 같이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는 첫째마당 문둥북춤, 둘째마당 오광대, 셋째마당 비비, 넷째마당 중춤, 다섯째마당 제밀주로 연희하고 있다.

노래는 극의 줄거리와 직접 관계가 없는 내용의 시조·잡가·민요 등을 극을 전개하면서 필요에 따라 부른다. 노는 순서도 고정되지 않아 놀이할 때에 따라서 바뀌기도 한다.

1930년경 일제의 금지로 중단되었다가 광복 후 재연하여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69년 사단법인 고성오광대연수회를 만들었고, 1973년 고성오광대 전수회관을 마련하였다.

역대 예능보유자로는 김창후(金昌後, 양반)·천세봉(가면제작)·배갑문(裵甲文, 원양반)·홍익수(洪益洙 또는 成洛, 문둥이)·남상국(南相國, 장구)·최응두(崔應斗, 연출지도) 등이 있었다.

 

<기본>: 청노새 -> 큰걸음 -> 잔걸음 -> 뒤로 큰걸음 -> 뒤로 잔걸음 -> 일차뛰기 -> 이쁜짓 -> 잔걸음(어깨 흔들며 걷기) -> 이차뛰기(가위뛰기) -> 도포말기 -> 삼차뛰기 -> 사선 -> 찍기 -> 베기기 -> 달맞이 -> 큰걸음 -> 변형 잔걸음 -> 뛰어 앉기 -> 서서 베기기 -> 사선 -> 엉덩이치기 -> 변형 큰걸음 -> 변형 잔걸음 -> 앉아 베기기 -> 변형 잔걸음 -> 덧베기

조선시대 정월 대보름에 놀았으며 뒤에는 봄, 가을 놀이로 놀았다

제1과장에서는 문둥이가 북춤을 구성지게 추고

제2과장에서는 양반이 춤을 추는데 하인 말뚝이가 양반을 조롱하고

제3과장에서는 괴물 비비가 양반을 잡아먹고

제4과장에서는 중이 선녀를 희롱하고

제5과장에서는 큰어미가 작은 어미(첩)와 영감을 두고 싸우다가 죽게 되니 상여가 나간다.

탈과 춤사위 연기 놀이구성이 소박하여 옛 경상도 탈놀음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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