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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도 박경랑 영남춤 전수관 단과반 수업안내

강좌명칭

수업시간 및 요일

수업내용

기본무반

매주 월, 수 오전 11 : 00 ∼ 12 : 30

기본무 익히기 및 전반적인 한국춤 기본춤사위 배우기

기본무반(야간)

매주 목, 금 오후 6 : 30 ∼ 7 : 30

영남교방춤반

매주 화, 금 오후 2 : 00 ∼ 3 : 30

영남교방청춤 배우기

영남교방춤반(야간)

매주 목, 금 오후 7 : 30 ∼ 9 : 00

진쇠춤반

매주 월, 수 오후 2 : 00 ∼ 3 : 30

영남진쇠춤 배우기

살풀이춤반

매주 월, 수 오후 3 : 30 ∼ 5 : 00

영남살풀이춤 배우기

진주교방굿거리춤반

매주 화, 금 오후 3 30 ∼ 5 : 00

진주교방굿거리춤 배우기

전 과정을 방학 없이 1년간 수업을 기준으로 하며, 수강관련 자세한 사항은 아래 연락처로 문의바람    :     문의 전화번호 02-702-4604

 

** 2014년 1월부터 12월까지 적용되는 수업내용입니다. 신청기간 2013년 12월 20일까지입니다.

** 과목별 신청 및 접수 / 문의 : 010 7102 0205, 010 8866 9561 02 702 4604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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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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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첫무대에 선을 보인 박경랑은 그의 외증조부 김창후에게서 춤을 배웠고 동래권번 마지막 춤선생 강옥남의 제자이다

요즘 유행을 타는 아무개이수자공연등에서 얼굴을 비춘적이 없다

교방춤을 추었다

굿거리장단이 주가되는 경상도 춤이었다

박경랑에게 “영남춤의 지킴이”라는 별명이 따라 다닌다

박경랑의 춤에서 나는 고고한 품위를 만난다

그품위를 다른말로 풀어쓰면 동작의 크기보다 밀도를 중시하는 그의 춤은 장단에서 조금 삐걱거렸지만 “40대 냉수같은 춤”이었다

휘어감기는 제몸의 버팀에 정결했고 박경랑이 한손으로 뻗어 부채를 잡는 그정중동의 묘(妙)는 굿거리장단을 때묻지 않게 소화하는 흥이요 격이었다

박경랑의 교방춤을 보면서 여러 이수자들이 이춤을 추었지만 이 “냉수같은 여인”의 허심탄회한 춤사위를 능가하지는 못했었다

5주년 공연의 백미였고 또한사람 영남춤후예의 등단이었다

평론가 진옥섭의 “고른 호흡을 불어 넣어 이음새의 틈이 보이지 않게 치밀하게 맞물림했다”는 지적에 동감한다.
 

                                            

                                                   공연과 리뷰 2009년 3월호 봄호  김영태의 무용일기중에서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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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 옻칠한 대청… 그 위에서 사뿐사뿐 선비춤

드디어 초은당에 간다. 여러 자리에서 여러 입으로 분분하게 소문이 나부꼈던 집이다. 옻칠을 아홉 차례나 하면서 돈을 종이처럼 처발랐다느니, 한강 이남의 경복궁이라느니, 부석사 무량수전의 살림집 버전이라느니! 과격하고 선정적인 소문들이었다. 금강송을 켜 옻칠한 대문 앞에 서니 얼굴에 잔뜩 웃음을 문 주인이 고무신 발로 뛰어나온다. 신만 고무신이 아니다. 명주 누비 바지저고리에 역시 솜 두고 누빈 조끼를 입었다.

지난해 파주 헤이리의 한 축제에서 그가 추는 선비춤을 구경한 적 있다. 한옥에 한복 입고 살면서 선비춤을 추는 사람. 신명 많고, 입담 좋고, 생각 굳은 이 집 주인 권오춘(61) 국어고전문화원 이사장이다. 그는 지금 전통문화의 르네상스를 위해 앞장서서 달리는 중이다. 소득 3만 달러가 되면 다들 전통정신을 찾을 수밖에 없을 텐데 막상 한옥과 한복과 한식과 전통공예가 다 사라지면 큰일 날 일 아니냐며 자신의 삶으로 철저하게 한국인의 문화를 지키겠노라고 선언한 사람이다.

먼저 집 이야기부터! 초은당이 앉은 곳은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야트막한 언덕이다. 눈앞에 북한강 줄기가 펼쳐지고 뒤로는 둥두렷한 산이 막아서 있다. 좌우로는 거인의 두 팔인 양 산줄기가 흘러내려와 집터를 포근하게 껴안는 형국이다. 풍수를 모르는 까막눈의 입에서도 ‘배산임수’ ‘좌청룡우백호’ 같은 말이 절로 튀어나올 길지다. 원래 이 집은 문화재 전문위원이기도 한, 홍근옥 명지대 공예과 교수가 박물관을 할 요량으로 맘먹고 지었다고 한다. 도집례(都執禮·의례를 맡아보는 사람)는 봉정사 극락전, 백제문화단지 같은 국보급 문화재를 복원했던 인간문화재 최기영 선생이 맡았다. 그런데 짓는 중에 그만 외환위기가 터졌다. 급히 새 주인을 물색하던 홍 교수와 마땅한 한옥을 찾고 있던 권 이사장이 만났다. “이 집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계약하자고 했어요. 당시 집사람은 미국에 머물던 중이었는데 전화로 상의했더니 한옥에 살겠거든 이혼하자고 하데요. 금방 설득할 일은 아니다 싶어 일단 계약부터 했지요.” 그때가 2004년이었다. 당시 사지 말라던 부인이 이젠 팔지 말라고 한다니, 그의 설득 작업이 효과가 있었던 듯싶다. 그러나 아직 100% 성공은 아니다. 부인은 잠실의 아파트에 살고 양평집엔 사랑주인만 일주일에 삼사 일씩 혼자 내려와 맥반석 구들 위로 군불 때면서 살고 있다. 한옥이 현대 한국인에게, 특히 살림을 맡은 안주인에게 얼마나 천대 받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현실이다.

 “한옥에 살면 불편한 줄 알지만 막상 익숙해지면 심신이 아주 편안해져요. 이렇게 과학적이고 인간을 깊이 이해하는 건축양식이 있었던가 새삼 놀랍니다. 남방문화인 마루와 북방문화인 구들이 만난 것도 그렇지만, 창호지·문얼굴·창호의 치수 같은 것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휴머니즘에 입각해 있는지요. 한옥은 우주 철학을 포괄하는 집이에요. 추녀의 원·기둥과 마루와 방 마루의 네모, 지붕의 세모가 합해 원방각(圓方角) 천지인(天地人) 철학을 품고 있습니다. 한복 또한 마찬가지예요. 집과 옷이 우주 원리에 두루 부합해요. 사람도 소우주니 집에 들어앉으면 성품이 활달해질 수밖에! 그러면서 또 언행은 신중하게 만들거든요.”

초은당 지붕은 여느 한옥과는 다르다. 처마가 길게 빠져나와 기와지붕이 내려앉은 모습이 새가 비상하는 형상이되 이건 까막까치 같은 잡새의 날개가 아니다. 적어도 독수리나 봉황쯤은 될 듯하다. “처마가 긴 것은 고려시대 건축양식이랍니다. 남성적이고 우람하지요.” 그 한옥을 그냥 두지 않고 그는 공들여 옻칠을 했다. 그냥 옻칠 정도가 아니라 인간문화재 옻칠장인 정수화씨를 초빙해 기둥엔 아홉 번, 바닥엔 다섯 번씩 덧발랐다. 초은당은 그래서 마루장도 기둥도 빛을 반사하는 거울면이 됐다. “옻칠은 세계에 자랑할 우리 보물입니다. 옻칠을 제대로 하면 불에 타지도 않고 원적외선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나온답니다. 옻나무로 차를 달여 먹으면 조기엔 암도 치료할 수 있대요. 유리컵에 우유를 담아놓으면 하루를 넘기지 못하지만 옻칠한 나무 컵에 우유를 담으면 일주일을 가도 상하지 않는 걸 내 눈으로 봤으니깐요.”

 그의 한옥과 한복 예찬은 기운차고 재미있고 격조 있고 끝 간 데를 모른다. 그는 안동권씨 부정공파 35대 손으로 경북 안동에서 나고 자랐다. 태생적으로 선비정신이 몸에 밴 사람이다. 10여 년 전에는 하회 마을 인근 구담 마을에 60칸짜리 ‘구담정사’를 장만해 어머니를 모셨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이곳 양평의 북한강 물길은 안동의 낙동강까지 닿았었다. 배를 타고 그렇게 흘러간 기록이 여기저기 보인다. 지금 여기 양수리 북한강가 초은당 앞을 맴도는 전통문화의 물길이 안동 하회에 이르러 구담정사까지 흘러가기를 그는 꿈꾼다.

 초은당은 본채 27칸, 별채 3칸 해서 모두 서른 칸의 집이다. 깔고 앉은 대지는 3300㎡(1000평). 마당 초입에는 들어서는 사람을 향해 절을 하는 형상의 향나무를 심었다. 또 봉화에서 가져온 금강송을 심었고, 마당으로 올라서는 계단은 문경에서 실어나른 목화문석으로 만들었다. 들여다보면 돌 속에 목화 송이가 툭툭 벙근다. 대문 앞엔 한쪽엔 초(招), 다른 쪽엔 은(隱)이라고 새겨진 와당을 박아넣었다. 초은은 숨어있는 사람을 부른다는 의미의 당호이고, 집주인 권오춘의 호다. 한복 입고 한옥에 사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몇 해 전 그는 영남춤의 명인인 박경랑 선생을 모셔와 선비춤을 배웠다. 손이 오면 거울같이 윤나는 대청에서 그는 너울너울 선비춤을 춘다.

지난가을엔 바깥 담을 새로 둘렀다. 거기엔 검은 빛이 감도는 보령 오석을 썼다. “산성을 쌓는 방식으로 담을 쌓았어요. 담장 위에 늘어놓은 흙인형은 인연 깊은 도예가 박종식이 만들어서 구운 겁니다. 인간의 벼라별 동작이 다 담겨 있지요. 봄이 오면 바닥에 조선꽃들을 심을 겁니다. 바닥에 깔린 벽돌도 박종식의 작품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게 모두 한국 전통 문양을 벽돌 위에 복원한 겁니다.” 지면이 모자라 그의 한국문화 사랑을 일일이 기록하지 못함이 아쉬울 뿐이다.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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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남춤문화예술연구소 산하단체 “박경랑전통무용단”

 

박경랑전통무용단의 단장 박경랑은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받은 영남 교방청춤으로 널리 알려진 춤꾼이다.

4세에 춤에 입문 故 김창후 故 조용배 故황무봉 故김수악 김진홍 박성희 강옥남 선생들에게 우리춤을 사사받았고 지금은 서울, 부산을 오가며 개인 공연 및 기획 공연 국악 무용 경연대회 심사 및 우리춤을 연구, 전수 ,보급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93년 제 18회 전통 예술 경연대회 전체 종합대상 (문화체육부 장관상) 수상, 93년 제4회 대구국악제 전체 종합대상(문화체육부 장관상)수상, 94년 진주 개천 예술제 제12회 개천 한국 무용제 특장부문 대상(문화체육부 장관상)수상, 95년 제21회 전주 대사습 놀이 무용부문 장원(문화체육부 장관상) 수상, 96년 서울 전통 공연예술경연대회 종합 최우수상(국무총리상)수상 등을 거처 97년 제 5회 서울 전통 공연예술경연대회에서 심사위원 19명의 만장일치로 대통령상을 수상 하였으며, 현재 경상남도 무형 문화제 제 21호 진주 교방굿거리춤 이수자. 중요 무형문화제 제7호 고성 오광대전수자 이며 한국 영남춤 문화 예술 연구소 대표. 박경랑 전통예술단 단장. 영남춤 보존회 대표. 국립국악원 문화학교 강사, 부산 경남정보대학 및 동서 대학교 사회교육원 전통예술과 한국무용 지도 교수로 숙명여자대학교 전통문화 예술대학원 전통춤 외래지도교수로 제직 중이며 각 세미나를 통해 영남 춤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주요 국내·외 공연 연보

 

단장 박경랑을 주축으로 2000년부터 결성된 ‘박경랑전통무용단’은 국내 공연은 물론 일본, 중국 및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등 세계 각국에서 활발한 예술활동을 펼치며 문화강국으로의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전통문화단체입니다.

국내주요 활동상황 : 국립국악원 공원, 남산국악당 공연,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공연 등 다수의 괄목할만한 무대에서 활발한 예술활동을 펼침

국외주요활동상황 : 베트남 공연, 일본 오사카 공연, 일본 요미우리신문사 초청공연, 일본 아시이 초청공연, 북간도 초청공연, 미국덴버공연, 아랍 에미레이트공연, 이스라엘 민속춤 공연등 다수의 공연 참가 경력이 있는 우수한 전통문화예술단체입니다.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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