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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破 朴璟娘

 

1961년 경남 고성 출생. 중요 무형 문화재 제 7호 고성 오광대 초대 문화재이셨던 외증조부의 대를 이어 영남 춤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중견 춤꾼으로 보기 드물게 농익은 춤의 기량을 간직하고 있다.


 

4세에 춤에 입문 故 김창후 故 조용배 故황무봉 故김애정 故김수악 김진홍 박성희 강옥남 선생들에게 우리춤을 사사받았고 지금은 서울, 부산을 오가며 개인 공연 및 기획 공연 국악 무용 경연대회 심사 및 우리춤을 연구, 전수 ,보급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수상이력

 

93년 제 18회 전통 예술 경연대회 전체 종합대상 (문화체육부 장관상) 수상, 93년 제4회 대구국악제 전체 종합대상(문화체육부 장관상)수상, 94년 진주 개천 예술제 제12회 개천 한국 무용제 특장부문 대상(문화체육부 장관상)수상, 95년 제21회 전주 대사습 놀이 무용부문 장원(문화체육부 장관상) 수상, 96년 서울 전통 공연예술경연대회 종합 최우수상(국무총리상)수상 등을 거처 97년 제 5회 서울 전통 공연예술경연대회에서 심사위원 19명의 만장일치로 대통령상을 수상 하였다.

 

활동사항

 

현재 경상남도 무형 문화제 제 21호 진주 교방굿거리춤 이수자. 중요 무형문화제 제7호 고성 오광대전수자 이며 한국 영남춤 문화 예술 연구소 대표. 박경랑 전통예술단 단장. 영남춤 보존회 대표. 국립국악원 문화학교 강사, 부산 경남정보대학 및 동서 대학교 사회교육원 전통예술과 한국무용 지도 교수로 부산에술대학 숙명여자대학교 전통문화 예술대학원 전통춤 외래지도교수로 역임한바 있으며 각종 세미나를 통해 영남 춤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박경랑의 영남 교방청춤은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받은 춤으로 지금은 박경랑에 의해 널리 알려진 춤이다. 민속학자 정상박 교수는 박경랑의 춤을 흔히 난초와 대나무에 비교하며 또한 '영남 춤의 규격속의 비규격 정형속의 비정형, 유형속의 강건 절제 속의 자유에서 박경랑의 춤의 멋을 느낀다'라고 표현했다

박경랑은 여러 명인 선생님들의 장단에 익숙해진 영남춤을 추어 왔으며 이제는 음악을 자유자재로 춤 사위에 절묘하게 조화시켜 보는 이로 하여금 전통춤의 깊이를 느끼게 하며 영남춤의 지킴이로서 이미 우리시대의 춤꾼 정동극장 명인전,팔무전,고궁명무전 등의 기획공연을 통하여 명무로서의 인정을 받고 있다.


 


 

박경랑_공연이력.hwp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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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부산 Vol 63. 2009. 9/10. 49-51쪽 배 학수(경성대 교수/ 철학) --> 블로그보기

“뭣보다 교방이라는 담장, 그 담장이 가두기엔, 너무 큰 예인이었다"(KBS 황진이). 드라마에서는 예인藝人이라고 미화된 황진이 같은 기생들은 조선 시대 궁중이나 관청의 연향宴享에서 춤과 노래를 공연했다. 이들을 관리하는 정부 기관이 교방敎坊인데, 교방은 을사조약으로 폐지되었고, 그 후 교방의 기생들은 새로 생겨난 민간 조직인 기생 조합, 권번券番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권번은 서울, 평양, 부산, 대구, 진주 등 전국 각처에 설립되어 동기童妓들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치고 화대花代를 관리했다.

강 옥남(姜玉南)은 동래 권번의 마지막 춤 선생이다. 그에게는 남기고 기록해야 할 많은 이야기가 있을 터인데 언론에 한번도 대담 기사가 실린 적이 없었다. 중간에 사람을 넣어 여러 번 부탁하여 마침내 그녀를 2009년 6월 15일 부산 서구의 새진주 식당에서 만났다.


어린 시절에 대해 얘기해 달라
.
1938년 일본 나고야 태생이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돌아가시고 대구 출신인 어머니는 자식 셋(오빠, 언니, 나)을 데리고 해방되자 귀국했다. 돈 3만원을 가지고 왔는데 환전하지 못하였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고향인 삼천포로 갔다가 부산으로 나왔다. 부산에서 부민 국민 학교를 다녔고, 가정 형편상 졸업후 학업을 중단하다. 그 당시는 딸은 공부시키지 않았다. 오빠는 동아대학을 졸업했다. 어머니는 국제 시장에서 장사를 했다.

어떻게 무용을 배우게 되었나?

16살쯤 한 순섭(여자. 서울에서 무용 학원을 하고 있다)을 권 명화 학원에서 만났다. 한 순섭의 아버지가 잘 살아서 학원을 차렸는데 거기에 이 매방을 초청하여 춤을 가르치게 되었다. 권 명화 학원에서 딱 한달을 배웠는데, 이건 무용이 아닌 것 같아 한 순섭의 권유를 따라 이 매방 학원으로 옮겼다. 이 매방, 권 명화 두 사람 모두 그 당시 부산에서 학원을 운영했다. 권 명화도 이 매방에게서 배웠다.

이 매방은 어떻게 지냈는가?

이 매방은 학원이 잘 안되어 양춤(스포츠 댄스)추는 사람에게 낮에 학원을 빌려 주었다. 이 당시에는 이렇게 안하면 운영이 안 되었다.

이 매방은 김 진홍, 조 광, 전 무영(스페인춤, 지금 양정에 있다) 등과 함께 하야리야 부대에서 가서 공연을 했다. 그리고 대영 극장에서 공연을 함께 한 기억이 있다. 이 매방, 김 진홍, 성민(이 매방의 제자이며 정 진욱의 스승이다), 그리고 내가 참가했다.

이 매방은 대신동에 어떤 부자가 학원을 차려 주어서 거기로 옮겼다. 나도 따라 갔다. 이 매방은 서울에서 전 무영을 데리고 왔다, 그는 딱춤(스페인춤)을 추는 사람이다. 어린이 시간에는 그분이 가르치고, 학부형 시간(법원장 부인, 변호사 부인 등)에는 내가 가르쳤다. 성 민이가 그 당시 군대에 있었는데, 휴가 나오면 내가 가르쳐 주었다.

강습료는 많이 받았는가?


아니다. 돈을 내라고 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춤을 배우려고 거기에 있었던 거지 돈 벌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춤을 배웠는가?

입춤, 소고춤, 승무, 살풀이 다 배웠다. 그런데 이 매방은 춤을 잘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 매방은 욕쟁이였다.

이 매방은 왜 춤을 잘 가르쳐주지 않았는가?

이 매방은 춤을 잘 추어서 멋이 있었다. 그래서 생짜(기생)들이 좋아한다. 고관 부인들도 돈 보따리를 들고 이 매방을 찾아왔다. 밤만 되면 화장을 똑딱하고 놀러 나갔다. 이 매방은 낮에 온천장, 별장, 호텔에서 기생들과 장구를 치고 놀았다. 김 진홍과 일본말을 하면서 같이 놀았다. 김 진홍은 예뻤다. 화장을 하면 여자 저리가라고 할 정도로 예뻤다.

이 매방 학원에서 언제까지 조교를 했나?

최 장술(노래)이 이 매방 학원을 그만두고 동래 온천장 권번에 춤을 가르쳐 주러 오라고 했다. 권번에 가니 기생이 120명 정도 앉아 있었다. 기생 앞에서 오디션을 보았다. 먼저 권 명화가 춤을 추고 나갔다. 기생 한 사람이 장구를 치고 나는 춤을 추었다. 권 명화가 춤을 춘 줄도 몰랐는데, 기생이 나를 선택했다. 춤 선생이 춤을 추어보이면 기생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생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내 나이 스물 한 두살 정도였다. 4.19이전 자유당 시절이었는데 선거 유세에 기생들 데리고 가서 춤을 추어 주기도 하였다.

이 매방 외 다른 스승은 없는가?

김 온경 아버지가 학원을 할 때 강 태홍(가야금)이 그 뒤에 살았다. 한 순섭을 따라 강태홍에게 놀러갔다. 강태홍은 ‘살풀이는 앉은 사위에서 울고, 승무는 염불 장단에서 완전히 중이라는 것을 객석에 보여주라’라고 하였다. 거기서 나는 많이 배웠다. 울 때는 울고, 웃을 때는 웃고, 표현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권번이란 어떤 곳인가?

기생 조합이다. 동래 호텔. 대성장, 동래 별장으로 기생이 간다. 춤추고 노래한다. 화대를 전표로 받는다. 두 방 들어가면 두장 받는다. 여기 동래 호텔인데 어느 기생 불러 주세요. 이렇게 손님이 주문한다.

권번은 4.19, 5.16과 함께 끝이 난다. 공무원이 술을 마시면 목 날아간다. 동래 권번을 운영한 사람은 이북 출신 여자이다.

기생은 무슨 일을 하나?

출근을 해서 조합장이 이름을 뒤집어 놓으면 오늘 일이 있으니 집에 가서 화장을 한다. 끝까지 이름이 그대로 있으면 공치는 날이다. 화대는 음식 값에 포함되어 있다.

기생은 방에서 상 하나 치우고 춤을 춘다. 동래 호텔은 방문이 두꺼워서 방음이 잘 된다. 단체 손님이 서울에서 많이 온다.

기생은 입춤, 살풀이, 민살풀이(수건을 들지 않고 추는 춤), 소고품을 춘다.

기생의 한이란 무엇인가?

기생 어머니가 기생을 영감에게 돈을 받고 시집을 보낸다. 아침에 남자는 가고 나서 기생은 다음날 잔치를 한다. 동기가 남자와 자고 난 후 조합에서 남자가 없는 상태에서 결혼식 피로연을 동료 기생과 하는 격이다. 이것이 기생의 한이다. 동기는 남자와 자고 나서(머리를 올리고 나서) 다음에 기생 일을 시작한다. 동기 3사람을 머리 올려 주면 극락에 간다는 말이 있다. 그 당시 기생은 가난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을 돌보아주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뜻이다.

동래 권번에서 무엇을 가르쳤나?

기생에게 조합에서 승무, 살풀이를 가르쳤다. 가르치는 기간은 기생의 소질에 따라 다르다. 춤 가르치는 사람, 악기 가르치는 사람, 소리 가르치는 선생이 따로 있었다.

공연을 한 적이 있는가?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작품 공연은 거의 하지 않았다. 지도를 많이 했다. 기생들을 데리고 온천 극장에서 한번 공연을 한 적이 있다.

동래 권번에서 얼마 동안 가르쳤나?

2,3년 있다가 공 대일(공 옥진의 아버지)의 초청으로 광주 호남 국악원에 갔다. 거기에도 주로 기생이 배웠다. 동기는 별로 없었다. 함평, 영광에서도 가르쳤다.

스승인 이 매방의 춤과 당신은 춤은 어떻게 다른가?

생음악을 잡으면 이 매방도 춤이 달라진다. 녹음된 걸로 하면 거기서 꼼짝 못한다. 순서대로 나가야 하거든. 이 매방도 생음악을 추면 떵떵 고개 짓을 한다. 그러나 녹음에 하면 그냥 못출까 싶어서 놀라서 기계적으로 춘다. 나는 항상 춤을 생음악으로 춘다.

강옥남 류의 특징은 무엇인가?

멋과 한의 춤이다. 우선 춤은 멋이 있어야 한다. 춤을 멋있게 추려면 춤 가락이 좋아야 한다. 보통 무용가들이 춤을 추면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춘다. 그런데 하나아 두우울 세에넷 네에엣 이렇게 추어야 한다. 우리 음악은 하나가 삼분박이어서 12분박이면 한 장단이다. 하나둘셋, 둘둘셋, 셋둘셋, 넷둘셋. 삼사 십이가 되어야 온박이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이 그걸 다 줄여버리고 하나 둘 셋 넷, 그냥 이렇게 춘다. 춤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같은 네 박자라도 그 안에서 열 둘을 먹든 열 여덟을 먹던 박자만 안고 가면 된다. 이렇게 추어야 멋있고, 지겹지 않다.

한의 춤은 자기가 슬픔이 많아야 한다. 살풀이에서 수건을 떨어뜨리고 주으러 갈 때 헤어진 연인처럼 생각한다. 감정을 잡고 얼굴의 표정에서 전달해야 한다. 동작 하나 하나에서 어떤 감정인지 생각해서 추도록 한다. 살풀이를 추면 관객을 울려야 한다. 못 울리면 못추는 것이다. 나는 상상하면서 춤을 추도록 한다. 나는 춤을 가르칠 때 상황을 떠 올리도록 한다. 죽고 못사는 연인과 헤어졌을 때를 상상하고. 그것을 느끼고 추라고 강조한다.

강 옥남은 올해 71세이다. 그녀는 등록된 문화재도 아니고, 대학에 자리도 없고 무용 협회에도 나가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언론도 관객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보물처럼 소중한 역사를 품고 있다. 무명의 문화재들에게도 경험과 기억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우리의 문화 유산이 풍성하게 될 것이다.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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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한량춤)

김진홍의 춤사위에는 삶의 굴곡과 달관이 흠뻑 배어 있다.

욕심 없이 깨끗한 자세로 마음을 비운다. 몸짓 하나도 조심스럽게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 무엇으로부터도 구속받지 않고 자유로워야 한다. 넘치는 것을 경계하고 모자라지 않도록 늘 춤집을 채워 넣는다.

김진홍(金眞弘ㆍ58, 1935년 4월 5일생) 씨는 혼자 춤 연습을 하면서도 자신이 춤 인생을 통해 터득한
깨달음을 소홀히 않는다.
그래서 제자들인 홍복순(洪福順ㆍ48, 조교), 박영미(朴英美ㆍ40, 학원 원장), 장선희(張善姬ㆍ36, 새한전통예술보존학원 원장),
박경랑(朴環朗ㆍ33, 리라무용학원 원장), 신치련(42, 학원 원장), 이송희(李松姬ㆍ36, 부산 시립무용단수석), 오숙례(吳淑禮ㆍ29, 시립무용단 단원), 장내훈(33, 시립무용단 수석), 홍기택(洪基澤ㆍ32, 시립무용단 수석) 씨 등도 스승 앞에서의 춤 공부가 여간 정중하고 조심스럽지 않다고 한다.

“춤은 마음으로 춰야지요. 고뇌를 통해 내연시켜 온 정신 세계를 진솔하게 드러내 관중이 느끼도록 해 주는 겁니다. 재주로 춤을 추면 기교에 지나지 않으며 진한 감동을 교감하지 못합니다.”

늘 하심(下心)하는 자세로 선후배 가리지 않고 먼저 인사하는 그. 말소리 발소리조차 조신하게 챙기는 그런 김씨가 일단 무대에 섰다 하면 관중은 몽땅 그가 의도하는 예술 세계로 빨려들고 만다. 그의 한량춤(閑良舞)에서 삶의 굴곡과 생동감을 확인하고 승무에서는 광대무변한 정적과 알 수 없는 소생심(蘇生心)을 느낀다. 명주살풀이와 민살풀이로 교차되는 살풀이 춤짓에서는 소름끼치는 정율과 해탈의 넉넉함이 안도감으로 다가오고······.

“한량춤을 추면서는 박목월의 ‘나그네’를 맞아들이고, 승무를 안고 돌 때면 조지훈의 ‘승무’를 사뿐이 즈려밟고 학을 탑니다. 살풀이를 휩싸 감을 땐 노천명의 ‘사슴’ 눈을 찾아 모가지를 어루만지고······. 이러다 보면 으레껏 정해진 공연 시간을 초과하기가 일쑤지요.”

김씨는 이매방(李梅芳)제 승무의 이수자 1호이면서 한량춤의 1인자로 손꼽히고 있다. 입춤이나 덧뵈기춤(허튼춤)을 추면서도 손가락의 곡선은 물론, 안 보이는 버선 속 발가락 움직임까지 치열한 자세와 정신으로 임한다. 마치 달관 경지가 이래야 됨을 육체 언어로 토해 내는 듯하다.

일본 오사카에서 나고 자란 김씨는 일곱 살 때 부산으로 건너오면서 ‘조선놈이 조선말도 못한다.’고 뭇매도 많이 맞았다고 한다. 아버지(김종명)가 고향인 진주를 떠나 어머니(강매결)와 함께 일본에 건너간 건 1930년 3월. 고물상을 해 큰돈을 벌었지만 ‘큰 사업’에 잘못 손대 둘러엎고 말았다. 어머니는 자홍(진홍 씨 본명)이가 독자라고 국민학교 다닐 때까지 밥주발을 들고 쫓아다니며 밥을 먹여 주었다.

“외삼촌이 진주 기생과 첩살림을 하는데 그리도 고울 수가 없었고 소리와 춤에 반했어요. 그 후에는 외숙모한테 옷고름 뜯기고 멱살잡혀 당하는 외삼촌의 망신과 머리채 휘둘리며 퉁퉁 붓도록 얻어맞은 외숙모도 목격했습니다. 어릴 적 나고 자라는 환경과 보고 들어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잘 알잖습니까.”

한영숙(살풀이) 씨와 이매방(승무) 씨의 잦은 부산 공연은 감수성 예민한 소년 김진홍을 예술 세계로 흡인시켰다. 그 때 나이 열 셋이었다. 가설 극장 에서 만난 이춘우 씨에게 청해 기본무, 입춤, 산조를 배웠고 이매방 씨가 부산에 있는 5~6년 동안 그 유명한 승무와 살풀이 산조까지 전수받는다.

그가 추는 한량춤은 서른이 넘어 당시 부산 민속보존협회장이던 문장원(文章垣ㆍ77, 인간문화재 제18호 동래야유 기능 보유자) 씨한테 사사받은 것이다. 한량춤은 원래 기방(妓房) 무용 계열로 남부 경남에서 추어 오던 무용극 형태의 춤으로 남사당패에서도 연희됐으나 1910년 전후 남사당패가 흩어지면서 넓은 잔디밭이나 마당을 이용해 흥겹게 추어 왔던 것이다.

도포에 정자관을 쓴 한량, 궁중 별관 복식의 별감, 몽두리에 색한삼을 끼고 족두리를 쓴 궁중 여기(女妓) 차림의 기생, 가사 장삼에 작은 방갓을 쓴 승려 등이 어우러져 계급 사회를 강하게 풍자하며 한바탕 웃어 제끼는 놀이극이다. 줄거리는 한량과 별감이 기생을 데리고 흥겹게 노는 자리에 파계승이 끼여들며 시작된다. 아리따운 기생에 반한 승려가 춤으로 유혹하니 기생은 한량과 별감을 등돌리고 파계승 품에 안긴다는 매우 해학적인 내용이다.

원래 한량은 직업 없이 경제적으로는 부유해 돈 잘 쓰고 만판 놀이만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그 놈, 한량이야’ 하는 나무람 속에는 가진자에 대한 은근한 야유와 함께 ‘건달’이라는 빈정거림도 담겨져 있다. 김씨는 말한다. 한량춤을 제대로 추려면 ‘한량질’을 해 봐야 하고, 승무에 몰입하기 위해선 파계승의 고뇌에 함몰돼 봐야 한다고. 매몰찬 시어미한테 정강이뼈 묻어나게 얻어맞고 부앗김에 잿물 삼켜 물에 빠져 죽은 며느리의 한을 알아야 살풀이를 제대로 삭혀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동안 김씨는 마산 김애정(1992년 작고) 씨한테 그런 한이 묻어난 살풀이를 넘겨 받았다. 한 분의 스승을 새롭게 모실 때마다 ‘나도 제자들을 똑바로 길러 내야지······.’ 하는 각오와 다짐이 들어섰다고 한다.

• 김진홍 한량춤 계보

김진홍 본문 이미지 1



출 처 : 이규원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

내용 더 자세히보기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97344&cid=3005&categoryId=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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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방무형문화재 제14호 동래한량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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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명 : 우리민속한마당 송진수의 "춤세계"

작품명 : 동래 한량춤

공연일 : 2002.5.11

출연 : 김진홍

행사장소 : 국립민속박물관 공연장

원본소장처 : 예술방송국.com(http://artsmus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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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교방청춤의 미학적 특징

임 지 애

국문초록

 

본 논문은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에 나타난 구조적 의미와 미적특징에 관한 고찰을 시도하였다. 전통춤의 구조적, 형태적 미적고찰은 나아가 전통춤 전반의 철학적 구조 연구에 초석과 반석 및 발전의 한 영역이 되리라 사료된다.

영남교방청춤은 조선후기 민중들 삶의 모습과 예술의지가 투영되어 있는 하나의 집결체로서 민속무용의 근원적 미의식의 내재와 함께 한국적 정서를 잘 대변하고 있으므로 한국춤의 원형적 가치가 존중된다. 이 춤은 종교적인 기능보다는 오락적이며 예술적인 색채가 농후한 춤으로 발전하였고, 그 변천과정에서 기방 예인들에 의해 한층 기교적이며 세련된 춤사위를 형성하게 되어 오늘날 비중 있는 전통문화예술로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으로 추어지고 있다. 우선적으로 현재적 시점에서 가까운 조선후기에 집중하여 교방춤의 발생요인을 살펴보면서 영남교방청춤이 가지는 춤사위의 특질과 형태적 측면에서 보여진 미적 특질을 고찰해 보았다.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은 전통의 의식적 환기를 일으키며 연구되어 지고 있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변혁에 상응하는 체계적인 이론의 정립이 미비하고 춤의 기록 또한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

본 연구자는 현재 운파 박경랑에 의해 추어지고 있는 영남교방청춤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작게나마 부분적인 분석과 춤의 미적분석 연구를 통하여 근원적 미의식을 발견하고자 한다. 또, 이를 살펴봄으로써 전통춤의 미의식 영역을 명확히 파악하여 다음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은 춤사위에 녹아든 예술성이 영남지방의 지역성으로 분명하게 나타났다. 삶을 지배하는 배경이 예술의 성향을 지배하듯 영남문화의 특징과 특성은 남성성으로 대변될 만큼, 투박하고 힘 있고 우직한 면이 있어 움직임적인 특징도 춤 속에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외에도 음악과의 혼연일체, 다양하고 풍부한 동작소의 존재감, 비주얼의 현대적 감각 수용, 작품의 무대 과학화, 몸 사용법의 차별화 등 움직임 면에서도 다양한 특징적 요소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은 신체의 사용법에서 기존의 전통춤이 표현해내고 고수해내는 신체운용법을 확연히 뛰어넘는 세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는 교방문화의 시작점부터 내려오는 전통이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으면서도 면면히 잘 고수해 온 영남교방청춤만의 전승의 세계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하겠다.

 

핵심어 : 영남교방청춤, 교방청, 미학적 특징, 운파 박경랑

1.1.1.

목 차

Ⅰ. 서론

Ⅲ. 영남교방청춤의 미학적 특징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1.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

2. 연구방법 및 제한점

2. 영남교방청춤의 외면적 특징

Ⅱ. 교방청춤의 개념

3. 영남교방청춤의 내면적 특징

1. 조선조 후기 교방춤 발생요인

Ⅳ. 결론

2. 교방청춤의 배경

참고문헌

3. 교방청춤의 변화양상

Abstract

1.1.

1.2. Ⅰ. 서론

1.2.1.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춤이라는 것은 인간에 의해 창조된 것이기에 그 내면에는 시대가 풀어내는 역사와 지배원리에 따른 사상적 영향, 그리고 수적으로 우월한 민중들의 소리 없는 움직임들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춤의 구조 속에서 보여 지는 특성은 민족의 정서와 시대적 배경이 바탕을 이룬다.

우리민족의 특성으로 자주 등장하는 ‘한(恨)’은 한으로서 단절된 것이 아니라 한을 풀어내는 과정을 통하여 소극적인 정서와 적극적인 정서가 공존하는 상충적이고도 호환되는 이중구조로 성립되어있다. 소극적인 정서는 맺히고, 삭히고, 움켜 안는 등의 정지된 상태로 본다면 적극적인 정서는 포용하고 풀어내고 떨쳐내는 긍정적인 자세로 움직임이 많으며 적극적인 힘을 표출시켜 예술적으로 충분한 승화를 이루어 숭고의 미로 완결되어진다. 이는 춤이 단순한 행동들의 영속적 나열을 상위하며 동작과 행위에서 표출되는 상징적 의미뿐만 아니라 표출하고자 의도되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내면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교방춤은 조선후기 민중들 삶의 모습과 예술의지가 투영되어 있는 하나의 집결체로서 민속무용의 근원적 미의식을 내재하고 무엇보다 한국적 정서를 잘 대변하고 있으므로 한국춤의 원형적 가치가 존중된다. 이 춤은 종교적인 기능보다는 오락적이며 예술적인 색채가 농후한 춤으로 발전하였고 그 변천과정에서 기방 예인들에 의해 한층 기교적이며 세련된 춤사위를 형성하게 되어 오늘날 비중 있는 전통무로서 운파 박경랑에 의해 승화되고 있다.

교방춤은 한국 민속무용 가운데서도 기방춤의 대표작으로 우리춤의 멋과 태, 신명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춤으로서 춤 안에는 우리 민족의 한의 속성뿐 아니라 흥이나 신명과 같이 상반된 의미가 같은 선상에 공존하고 있다. 이와 같이 상반된 의미의 한과 신명이 어떻게 같은 춤 안에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진다.

본 연구는 한국민속춤의 특징이 무엇인가를 표명하기 위한 하나의 연구방법으로서 운파 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에 나타난 구조적 의미와 미적 특징에 관한 고찰을 시도하였다. 이는 한국민속춤의 지향하는 바를 표명함에 있어서, 현재 전통춤계의 밀도있는 춤으로 호평받는 운파 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에 나타난 구조적 의미와 미적 특징에 관한 고찰과 점진적 해석으로 한국민속춤의 본질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은 근래 들어 널리 알려지며 대중적 관심이 집중되어 지고 있기는 하나 체계적인 이론의 정립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춤의 기록은 상대적으로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 나아가 우리 민족문화의 특성을 재점검, 정비할 시대적 필요성에 기인하여 현재 운파 박경랑에 의해 추어지고 있는 영남교방청춤의 총체적 미적분석을 통하여 미래지향적인 전통춤의 지표로 삼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본 고는 운파 박경랑에 의해 추어지고 있는 영남교방청춤이 내포하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고찰하여 보고 그 춤이 상징하는 미적특질이 내포하는 바를 이끌어 내고자 하는데에 큰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영남교방청춤을 직접 체험하여 학습하는 연구자로서 본 연구를 통하여 제대로 된 춤의 표현원리의 지각과 각각의 춤사위와 춤의 흐름이 지향하는 바를 파악하여 우리춤의 생명력, 역동성, 순박함 등의 형용할 수 없는 철학적 본질을 찾고자 하며, 이로 인해 영남교방청춤의 원형을 찾고, 원활한 전통춤 보급에도 일조 할 수 있을 것이다.

 

1.2.2.

1.2.3. 2. 연구방법 및 한계

본 논문의 연구방법은 첫째, 운파 박경랑에 의해 추어지고 있는 영남교방청춤을 직접 학습하고, 춤의 상황을 기록 및 녹취하여 전체상을 파악한 뒤, 춤의 부분적 특징을 찾는데 주력하였다. 이외에도 영남교방청춤 전 과정의 이해도를 위해 ‘2009 박경랑의 춤 백의백무(白衣百舞)’ 공연영상을 보조자료로 삼았다. 또, 운파 박경랑선생과의 수차례 면접과 무대공연 및 수업참관, 평상시 관찰을 통하여 춤의 특징 및 세부사항에 대한 의문을 풀었다.

둘째, 주제와 관련 있는 참고서적 및 논문, 선행연구자료 등을 참고하였으며 관련문헌이 없는 경우에는 그 분야 전문가들과의 면담을 통해 수행하였다.

셋째, 영남교방청춤의 숙련된 춤꾼 및 학술적 연구자 3인 이상과의 지속적인 연구토론으로 삼중검증법을 택하여 연구자의 주관적 견해의 치우침에 따른 연구의 오류 범주를 좁혀 나가고자 하였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 제기된 문제점은 추후 지속적이고 저변화된 연구로 보완 해 나갈것으로 예견된다. 또한 이번 연구를 계기로 영남교방청춤 원형에 관한 다양한 후속연구가 지속적으로 시도되어지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1.3. Ⅱ. 교방청춤의 개념

 

1.3.1. 1. 조선조 후기 교방청춤 발생요인

교방기(敎坊妓)는 대부분 미(美)와 재예(才藝)를 겸비한 관청의 기생과 관비 또는 무당 등으로 된 하층민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예악의 담당기관이며 교습소였던 교방을 통하여 가무(歌舞)를 전문적으로 교습 받았다.

원래는 무녀는 신 그 자체였으나 신격과 정치권력의 분화과정에서 퇴화함으로써 신에 봉사한 무녀가 지방의 토호와 결부되어 매춘부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무녀가 되고 무악의 예능적인 면에서 익힌 예기로 권력층에 예악의 가척(歌尺), 무척(舞尺)으로 봉사하는 기녀가 되는 것이다.

기녀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궁중에 국한한 교방기(敎坊妓)가 표면적이지만 지방 관청에 속하는 기녀도 포함되었다. 그래서 지방의 큰 고을이나 감영, 주군에도 상당수의 관기가 배치되었다.

고종 때는 기녀들이 어느 시기에 못지않게 자주 진연정재를 베풀었고 출연한 기녀나 무동들은 행사가 끝나면 귀향하여 궁중에서 새로 익힌 가무를 동료들에게 전수시켰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궁중의 가무(歌舞)가 지방에서 파급된 것이다. 이렇게 창우 출신들의 무동들이 어른이 되고 그들이 교방청에 들어가 선생이 되어 기녀들에게 춤을 가르치게 된다. 이와 같이 창우 출신과 기녀들은 선비취향의 춤과 평민취향의 춤을 조화롭게 융합시켜서 근세 전통춤을 형성한 것이다.

조선후기 19세기부터는 넓은 광장이나 마당에서 추었던 것이 상업화 내지는 도시화됨에 따라 한층 공연예술로 급속히 변화하여 춤판이 옥내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하여 부잣집 대청마루를 무대화로 하는 좁은 공간에서 춤을 춤으로서 자연히 뛰는 동작이 없어지고 정적 지향의 춤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훗날 소리광대의 판소리판에서도 추는 경우가 많아짐으로서 그 춤들이 판소리와도 상호관계가 있는 공연예술로서의 고전적 춤이 된 것이다.

교방청춤은 교방청에서 다듬어졌지만 예술적으로 발전한 것은 교방이 폐지된 후의 기방(妓房)이였으므로 이른바 판소리, 가야금산조, 삼현육각과 같은 개인적 멋과 기예능이 높은 수준에 있는 춤으로 발전한 것이다. 따라서 교방청춤은 서민들의 심성과 양반들의 심성을 조화시켜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춤이라 할 수 있다.

1.3.2.

1.3.3. 2. 영남교방청춤의 배경

‘영남교방청춤’은 춤 명칭에서 보이듯이 ‘영남’이라는 지역성과 ‘교방청춤’이라는 계층성이 도드라진 춤이 만나서 형성된 명칭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예로부터 지역성이 확연히 구별되어 제 각기 발전하고 발달한 문화와 역사를 지녀왔다. 그 지역성은 땅의 기질과 사람의 기질이 시간성 위에서 변화와 대처를 탄력적으로 이끌어 냄으로 생기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춤의 특징 가운데 지역적, 시대적 특징이라고 좀 더 면밀히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영남교방청춤은 교방이라는 예능관장전문기관에서 영남의 우직스럽고 기개가 넘치는 활달함과 섬세함이 잦아들어 있는 춤의 성향을 지닌 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교방은 한마디로 전문예능인의 교육기관이자, 내·외의 연희에서 악(樂)·가(歌)·무(舞)를 담당하는 곳이었다. 이렇듯 교방은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예능기관이며 그곳에서 시대상을 반영한 악(樂)·가(歌)·무(舞)이 발전되었으며, 그 명맥을 오래도록 유지하였다고 하겠다. 나중에 권번과 기생조합으로 그 명칭과 기능이 다소 분리 발전되었지만, 예능을 관장하고, 예능을 교육하고, 예능을 향유하였던 기관이라는 점에는 상이점이 없다.

 

1.3.4. 3. 영남교방청춤의 변화양상

교방은 쉽게 말해서 정부관하소속이었기에 개성, 평양교방부터 남쪽으로 모두 소속관청이 있었다. 다만 시대적 영향으로 가장 오래 잔재해 있던 교방이 진주, 고성, 통영, 마산, 부산, 대구를 포함한 영남권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그 중 가장 최근까지 남아 있던 것이 부산 동래권번이었다. 그러기에 교방청에서 교육받은 관기들이 관기제도가 폐지되면서 여러 곳으로 권번(기생조합, 예기조합)소속의 기방으로 전속되면서 이동이 많았을 것으로 보아진다. 그런 영향으로 영남권의 교방에서 추어오던 춤사위의 흐름이 엇비슷하거나 동일한 춤사위가 많으며 박경랑의 스승 또한 이곳저곳을 다니던 이름 높던 한량이었기에 총체적인 교방의 입춤 ‘영남교방청춤’으로 명명하게 된 것이다.

영남교방청춤은 현재 운파 박경랑에 의해 활발히 보급, 전수되고 있으며 대중에게 그 인지도를 끊임없이 드넓히고 있다.

또, 영남교방청춤은 가계도의 명맥에서 영남교방청춤의 정통성을 다시 한 번 찾을 수 있겠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초대문화재였던 故 김창후 선생이 박경랑의 외증조부이며, 그의 제자 故 금산 조용배에게로 이어지는 맥을 지금은 운파 박경랑에 의해 추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운파 박경랑은 영남교방청춤의 춤사위가 여느 춤보다 어렵다는 점과 옛 멋을 찾기 위해 동래권번의 마지막 춤 선생 이었던 춘정 강옥남선생을 모셔 동고동락하면서 이 춤을 다듬고 정리하여 무대화시키는 영남교방청춤에 대한 각별한 열정과 가계도를 잇고 있다.

 

1.4. Ⅲ. 운파 박경랑 영남교방청춤의 미학적 특징

 

운파 박경랑은 경남 고성 출신으로, 1993년 제18회 전통 예술 경연대회 대상, 1994년 제12회 개천 한국무용제 특장부문 대상, 전주대사습놀이 무용부문 장원을 비롯한 다수의 수상을 거쳐 제5회 서울 전통 공연예술경연대회에서 심사위원 19명의 만장일치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명무로서의 위치를 굳혔던 운파 박경랑은 타고난 춤꾼이며 현재 영남교방춤을 보급하고 있는 명무이다. 경남고성 출신으로 고성오광대 초대 문화재였던 외증조부의 대를 이어 영남 춤의 맥을 잇고 있는 춤꾼으로 4세에 춤에 입문해 故 김창후, 故 조용배, 故 황무봉, 故 김수악, 김진홍, 박성희, 강옥남 선생에게서 전통춤과 발레 등을 사사한 운파 박경랑은 경남도립무용단, 창원시립무용단 수석단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경상남도 무형 문화재 제21호 진주 교방굿거리춤 이수자, 중요 무형문화제 제7호 고성 오광대전수자로 우리 춤의 연구·전수·보급에 노력하고 있다.

 

1.4.1. 1.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

영남교방청춤의 춤 특성을 보면 곡선이나 원형의 무대진행법을 사용하였으며 사방의 어느 방향에서도 감상할 수 있는 원형적인 춤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뒷모습을 보여주는 동작은 보통의 전통춤에서 나타나는 초연한 모습이나 담담함 또는 한을 승화시키는 미보다는 ‘뒷태’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정도로 관객을 의식하고 일면 교태스럽기까지하며, 또한 사대부의 귀족적인 취향과 멋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이 춤은 닫혀진 좁은 공간의 가까운 거리에 있는 관객의 시선을 의식한 듯 각 동작의 움직임이 짜임새 있게 명확해야 하며 많은 기교와 기술이 필요한 춤이다.

영남교방청춤은 다른 전통춤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단박에 휘어잡는 매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춤이다. 그 매력을 살펴보면 대체로 간략하게 다음의 몇 가지를 짚어 볼 수 있다.

첫째, 음악과의 혼연일체이다. 보통 우리는 악(樂)·가(歌)·무(舞)라 칭한다. 악이 노래가, 춤이 서열화 된 것도 아니요, 어느 한 대복 처지거나 앞서거나 하지 않고 정삼각형의 도형을 이루는 것처럼, 악(樂)·가(歌)·무(舞)는 그렇게 다함께 어우러짐을 표출해야 한다.

둘째, 다양한 동작소의 존재감이다. 한국전통춤의 특징을 말할 때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부분이 반복성이다. 이 뜻의 이면에는 다양한 춤태의 부재가 숨어 있다. 다른 춤에서 쉽사리 찾아 볼 수 없는 다양한 동작소, 춤태를 지니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다양한 표현체의 개체수가 넉넉한 동작소의 저장고를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기에 다른 전통춤보다도 음악의 한 장단 안에 존재하는 춤태가 현격하게 많음을 알 수 있다.

셋째, 비주얼의 현대적 감각 수용이다. 이 부분은 전통문화예술의 미래의 존재성과 생명력을 가늠하는 중요요소이다. 느림의 미학과 경쾌함의 적절한 충족, 이 둘의 완급조절이 현시점에서 전통문화예술이 풀어내야 할 과제라고 볼 수 있겠다. 영남교방청춤은 느림으로 일관되지 않으며, 또한 빠름으로 치우치지도 않는다. 영남의 지역적 맥과 교방청춤의 맥을 살리면서도 현대 대중들의 전통문화예술을 향한 목마름과 갈증을 해소시키는 변모를 적절히 배합하는 춤태를 감각적으로 지니고 있다.

넷째, 작품의 무대 과학화이다. 현대 예술은 서구의 무대예술인 프로시니엄의 무대를 기본형으로 하여 많은 무대장비의 첨단 과학화를 수용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는 춤이 되고자 노력하는 춤이 영남교방청춤이다. 안방문화의 사방위 방향성을 고려하는 춤태에서 프로시니엄 무대로의 전환을 고려하는 춤태로의 다각적 변화를 이룬 춤이다. 프로시니엄 무대의 특성과 관객의 시선을 전적으로 고려하여 몸 방향과 팔 사용법에 사선의 선사용을 감각적으로 이루어냈으며, 시선의 사용 역시 맞물려가며 춤꾼의 신체활용도가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영남의 활달함에 남성성과 섬세함의 여성성을 내포하게 되었다.

다섯째, 네 번째 항목의 세부적인 설명이라 할 수 있겠는데, 몸 사용법의 차별화이다.

 

1.4.2. 2.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의 외형미

영남교방청춤은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야 하며, 곡선과 직선의 조화, 여성미와 남성미를 표출하며 몸통 전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춤의 강·약이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 즉, 다른 교방춤과는 달리 활달하면서도 휘감아 들어가는 허리의 곡선, 어깨의 곡선미가 여성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춤이다. 또, 호흡은 소리의 호흡과 동일하게 하여야 한다.

판소리의 호흡법과 민요풍의 토속적인 호흡법이 병행되어 단전에서부터 공굴려 깊이 있게 끌어 올리면서 대삼소삼(大三小三)에서 다시 호흡의 세분법이 음악의 세분법과 일치하여야 움직이는 듯, 정지되는 듯 하는 이 춤의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다.

시선은 어느 춤이나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이춤은 반드시 시선을 던지면서 가며, 턱선과 어깨선이 거의 일치되면서 자연적으로 턱선이 낮게 드리워지고 다소곳한 느낌이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렇게 할 때 몸의 동작선도 곡선미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영남교방청춤의 여러 특징 중 외면적 특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춤사위를 중심으로 크게 상·하체의 움직임으로 구분하면서 의상이 주는 외형미를 주력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상체

① 상체의 손사위 : 활궁체 사위, ,, 훼치기 사위, 터벌림사위(일자로 뻗기형, 사선형), 휘몰이사위, 학체사위, 버들가지사위, 회뿌림사위 등이 상체 손사위의 위주이며

손동작들은 두 팔을 펼치며 크게 추어야하며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손목놀음 또한 이 춤의 주된 특징들이다.

② 어깨 사용법 : 신체역학 측면에서의 어깨는 팔과 몸통을 이어주는 이음새 역할과 함께 팔의 지지대 역할을 수행하는 중요부위이다. 영남교방청춤은 사선의 팔사용의 기본형을 어깨에서부터 다르게 사용한다. 어깨를 누르면서 가하는 롤링의 변화는 팔의 각도와 높이를 조절하게 된다. 이 점이 좀 더 시원한 상체의 표현, 활달함과 섬세함이 교차 표현되는 점이며, 안정감 있는 상체의 고저 변화를 이끌어 낸다.,

③ 시선과 턱과 어깨의 조합 : 영남교방청춤에서 시선과 턱과 어깨의 세 신체 부위는 동작 가운데 합일점을 보여주는 부분이 등장한다. 시선을 지향하는 춤태 가운데 시선과 턱과 어깨의 합일점을 보여주는 동작에서 관객이 느끼는 감정은 다소곳함과 세련미의 공존일 것이다. 춤의 향기를 담당하는 듯 한 이 세 신체부위의 합일은 고혹적인 매력을 내적발산하는 영남교방청춤의 일등공신과도 같은 부분이라고 본다.

④ 허리사용법의 다양화 : 다양한 춤사위의 급감과 함께 신체 부위의 사용법, 빈도의 급감이 허리사용법이다. 신체 중심의 정점인 허리사용법은 다른 춤에서는 이제는 보기 드문 신체 활용법이 되어버렸지만 영남교방청춤에서는 세밀하게 잘 나타나 있다. 활궁체사위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사선의 방향성에 또 다른 매력을 첨가하는 신체 사용법이 허리사용법이라고 하겠다. 허리 양 옆의 굴곡 있는 선의 사용법이 쉬운 신체사용법은 아닌 것처럼 다양한 허리사용법의 백미는 고혹적 매력의 발산을 넘는 광풍매력의 발산이라고 칭할 만큼 관객에게 색다른 깊이가 있다.

몸을 사용하는 법에 있어서 교방청춤은 굉장한 유연함을 필요로 한다. 하체는 객석정면을 향하고 허리를 비틀어 상체는 감았던 손을 천천히 펴면서 태극을 그려내며 천천히 회전하는 동작을 비롯하여 모든 동작소에는 유연함이 요구됨을 알 수 있다. 또, 유연함에 이어 자진모리의 빠른 장단에서는 흥과 신명이 어우러지는 동적인 동작을 연출하여 민첩한 기교 역시 요구되는 춤이다.

⑤ 손목사용 : 맺고 풀고 어르는 동작을 넘어 강·약의 완급조절이 손목과 손끝에서 나타나는데, 손목의 사용법에 각도가 부여됨으로 그 묘미가 살아난다. 역시 여느 춤에서는 쉽게 만나기 힘든, 풀고 조이고의 자연스러움의 교차가 손목에서 나타난다.

2) 하체

① 하체움직임 : 교방이라는 의미와 함께 안방춤이였기 때문에 아주 좁은 공간에서 얼마나 춤의 묘미를 살리며 보는 이의 마음을 앗아갈 수 있고 흥과 멋을 전해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러기에 아주 미세한 버선발의 움직임과 섬세한 디딤과 작은 움직임을 주는 발디딤은 작은 동선을 이용하면서 크게 보이는 굴신법과 호흡법을 일치 시키는 순간 미묘한 동선의 차이가 나타나는 춤이다.

② 발목 사용범위 강화 : 일반적인 춤보다는 발목사용에 있어서 각도의 범위가 큰 편이다. 이러한 사용법은 급격한 신체의 높낮이를 줄여줄 뿐만 아니라, 무릎에 가해지는 하중을 분산시키는 효과도 있다. 물 흐르듯이 안정감 있게 변모하는 신체중심과 신체의 고저 변화는 각이 큰 발목의 사용법에서 찾을 수 있는 점이다.

③ 발바닥의 세분법 : 발은 다리의 자유로운 이동과 지지에 첫 단계와 같다. 이러한 첫 단계의 발에서 발바닥의 세분법은 춤의 중심을 좀 더 잘게(여러개) 쪼개어 사용할 수 있을뿐더러, 이로 인해 춤의 안정성이 더 강화되고, 호흡 또한 세밀하게 표현 할 수 있게 되는 원천의 힘이다. 영남교방청춤에서 발바닥의 세분화된 표현법은 어찌 보면 다양한 동작소와 맞물려있기에, 다양성의 동작소, 춤사위를 소화해 낼 수 있는 원천이라고 본다.

④ 발의 움직임 : 발사위에 있어서는 발을 들어 살짝 돌려 뒤로 딛는 동작을 비롯하여 디딜방아 사위, 좌·우 달걸음사위, 홍두깨걸음사위, 덧배김사위, 외발들기사위, 용트림사위(용이 물에서 몸을 휘감아 돌며 승천하는 느낌의 공회전하는 동작)가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첫 박에 솟아올라 잔걸음으로 걸으면서 숨을 내려 앉혀 다시 첫 박에 맺는 것으로 관객의 춤의 즐거움, 호흡의 맛과 멋을 동시에 보고 느낄 수 있게 하여 준다.

⑤ 신체 각 부위 : 영남교방청춤은 춤 안에서도 즉흥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흐르는 대로 춤은 추어야한다. 몸의 흐름을 느낄 수 있어야 하며, 춤을 추는 사람이 어느 한 부분이라도 매끄럽지 못함을 느낀다면 영남교방청춤 안에서 그것은 정확한 동작의 완성도가 결여된 것이다. 몸의 중심인 골반이 빠지면 춤의 자세는 흐트러진 상태이기에 골반을 시작하여 등은 곧아야하며 가슴(흉부)은 안으로 감기우고 어깨선은 흘러야 하며, 상·하체가 동작의 형태미를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고는 특별한 동작 외에는 분리되면 되어서는 안된다. 발끝에서 머리까지 모든 신체의 기운이 같이 흘러야 정확하게 맥의 풀고 맺음을 확연하게 표현할 수 있다. 천박하지 않으면서도 교태미가 흘러나와야 하며 춤을 보면서 마음을 앗아 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의 특성을 살펴보면 먼저 무대를 철저하게 의식하고 항상 관객을 존중하는 면을 찾아 볼 수 있다. 무대진행법에 있어서 무대 중앙에서 시작하여 긴장감 있게 천천히 제자리에서 추다가 오른쪽 사선 방향으로 전진하고 다시 무대 중앙으로 왼쪽 사선 방향으로 전진한다. 다시 무대 중앙에서 무대 중앙 정면으로 전진하다 다시 제자리로 이동하는 등 대부분의 관객을 향한 사선이나 직선, 원형을 사용하여 관객이 춤을 감상하기에 가장 편안한 선을 사용하고 있어 관객을 존중한 춤이라는 점을 확인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단순한 선을 사용하는 무대 사용법은 영남교방청춤을 더 깨끗하고 담백한 맛을 느끼게 하는 반면에 꼿꼿함과 숭고함이 함께 깃들어 있어 깊이 있고, 감성적이다.

 

3) 의상

이 춤의 춤사위에서 가장 두드러진 동작은 부채를 드는 장면이다. 무대 중앙에서 부채를 들어 춤을 추는 것은 이 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와 함께 이 춤의 외형적인 미는 의상과 부채의 관계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사진 1, 2>와 같이 춤의 의상을 살펴보면 운파 박경랑은 검정 겉치마에 노란저고리를 주의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공연의 의미와 계절별로 색을 달리 할 수 있다. 세부적으로는 속바지 두벌, 허리 묶는 속치마 두 벌, 겉치마, 저고리, 천노리개를 덧댄다. 다른 민속무용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데, 검정치마에 노란 저고리와 천노리개를 매치하는 것은 시각적 미를 보여주기 위함이며 색사로 수를 놓은 천노리개를 더함으로 복식의 미를 더 화려하게 장식한다. 또, 춤에 사용되는 부채는 교방에서 전해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바탕으로 특징적으로 사용하였으며, 글체는 놀음판에서 선비가 춤을 보고 써주었을것을 전제하에 운파 박경랑이 고정이미지화 시켰다. ‘황룡백학무(黃龍氣白鶴舞)’ 라는 의미로 ‘황용의 날아갈 듯 한 기운을 받아 백학이 춤춘다.’ 또는 ‘백학이 용과 같이 힘찬 기운으로 춤추며 움직이라’는 뜻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춤은 기운으로 추는 것이고, 힘으로 추는 것이 아니며 또한 백학처럼 부드럽게 긴 선을 나타내며 곡선과 유연함을 가르친 뜻이다. 또한 이면에는 사랑의 정표를 상징하기도 하며 부채를 살짝 펴고 얼굴을 가리면서 이어지는 동작의 의미는 여러 가지의 상징점이 내포되어 있다. 순백의 기면(器面) 위에 코발트계의 청색 안료로 그림을 그려 만들어냈던 청화백자와 같이 부채를 펴 들어 얼굴을 가리며 이어지는 동작들은 단아하면서도 화려하고 도도한 품위가 흐르는 청화백자와 같다. 지나치지도 않고 너무 쳐지지도 않으며 언제나 중도를 지켜 균형을 잃지 않는다.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은 우리의 토속 맛이 절로 베어 나오며 교방의 멋이 진하게 우러나오는 춤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의상에서도 볼거리를 제공하는 이 춤은 흐르는 듯 한 유연한 선이 춤동작의 민첩함을 더하고, 자태를 뽐내듯 강렬한 빛을 발하는 청화백자와 같이 그 당당함이 기방예술문화의 영향을 받아 오랫동안 숙련된 고도의 춤 동작과 기술, 그리고 화려하고 귀족취향적인 면도 보여주고 있다.

 

<사진 1, 2>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

 

1.4.3. 3.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의 내면미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은 드러나지 않고 삭혀도 내면에 흐르고, 젖어드는 멋과 흥이 호기심을 알 듯, 말 듯 유발해야한다. 상대방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내면의 감정표출이 분명해야하며 각자의 생각에서 보이지 않는 내면의 속내음이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내면미가 있어야 한다.

어떤 이는 박경랑의 춤을 “살아있는 영혼이었고 그 춤이 만들어 내는 절정과 내적 에너지는 관객의 혼을 끌어 올린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교방청춤을 비롯하여 춤을 추는 사람은 예(禮), 법(法), 도(道)를 갖춘 의식 있는 춤이 되어야하며, 기품이 있어야 한다고 운파 박경랑은 언급했다. 춤은 수련의 내공을 쌓아 이루어지기 때문에 예(禮), 법(法), 도(道)에 따른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 했다. 또, 천박한 이미지를 주어서는 안되기에 조선의 기생들은 가(歌), 무(舞), 악(樂), 시(詩), 서(書), 화(畵)를 잘 아는 사람이 많았다. 그 때문에 선비들과의 교류가 가능하였듯이 모든 예능적인 면에 기예능이 높은 수준에 있어야 했다.

 

1) 정서적 측면

이제까지 언급한 내용들을 전제로 영남교방청춤의 미적 특질을 살펴본다면 첫째, 영남교방청춤은 언어의 본질처럼 기방적인 것이며, 기교가 넘친다. 둘째, 춤사위에 녹아든 예술성은 지방색(지역성)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셋째, 우리춤의 기본 정신인 예(禮), 법(法), 도(道의 세계가 내포되어 있다. 넷째, 다양한 동작소의 존재감. 다섯째, 몸 사용법의 차별화 등 움직임면에서도 다양한 특징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위에서 살펴본 미적 특질 가운데 영남교방청춤의 내면세계에 함축된 정서적 측면을 언급해보는 것은 한국 민속무용의 특징을 밝혀보는 과제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민족정서를 표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심리학자 데이비츠(Davitz)는 “정서의 정의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정서의 본질 때문에 대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정서의 의미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으나 본 논문에서는 정서의 정의를 ‘행동하게끔 동기를 부여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외적표현과 내적 감각과 관련된 복합된 인식상태’로 규정짓고자 한다. 이에 따라서 민족정서를 춤으로 그 민족이 고유하게 간직하고 있는 정서라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성에 나타나는 한과 신명은 우리민족의 고유한 민족정서라 할 수 있는가?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무수한 외세의 침입 속에서 한이 맺힌 민족이며, 양반제도, 노비제도 등을 통해 사회의 하층계급 또한 한을 간직한 채 살아 왔으며, 남존여비의 불평등한 가치관 속에서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한이 있었다.

계층적인 핍박과 문화적인 억압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주어진 사회의 멍이 되고 맺힘이 된다. 즉 응어리진 사회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운파 박경랑은 춤으로서의 심리적인 해방감, 생리적인 발산에 사회적 자유 등과 같은 풀림의 현상이 극대화되는 현장에서 다 같이 해결 될 수 있음을 뜻하여 영남교방청춤을 재구성하게 되었다. 즉, 춤을 통해 한이 풀리고 흥이 있고, 정이 되살아나고 신명이 솟는다. 영남교방청춤의 기능은 종교성보다는 오락적이며, 예술적 색채가 농후한 춤으로 형성하게 되어 오늘날 비중 있는 전통무로서 추어지고 있다. 우리춤의 미적 특질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요소인 소위 예(禮), 법(法), 도(道)의 모습을 현시한다. 또한,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은 곧장 정(靜)·동(動)의 관계에 조용된다. 고요하면서 그 고요가 단순한 죽음의 고요가 아니라 무수한 생명력을 내포하는 역동적 고요, 곧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그 움직임 속에 무한한 고요를 내포한 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마음, 갖은 뜻을 다해 추는 춤”이라 그는 언급하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저절로 베어 나오게끔 자연적인 멋으로 추어져야 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 밖에도 “직접 춤을 추는 춤사위의 태도는 다소곳하면서, 정갈하고, 단아하면서도 도도하게 버들가지가 거센 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바람에 거센 파도가 일어도 부서지지(흐트러지지 않는)않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마음으로 추어야한다.”는 그의 말 속에서 춤의 미적 특질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영남교방청춤은 무기교의 기교라는 한국적 자연주의를 즉흥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며 ‘고요’과 ‘움직임’의 역설적 관계는 정서적 측면에서 보여 지는 영남교방청춤의 미적 특질임을 알 수 있다.

 

2) 지역적 측면

영남이라는 지역의 명칭은 경상도 지역을 뜻하는데, 경상도 지역은 동쪽과 남쪽이 바다와 접하고 있으며 내륙은 해안선과 일직선으로 뻗어 내린 태백산맥과 태백산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소백산맥에 의하여 한반도의 중·서부지역과 나누어지므로 영남지역이라고 불린다. 산세가 험준한 소백산맥은 강원도, 충청북도, 전라북도와의 경계를 이룬다. 또한 조령의 남쪽 대덕산 부근에서 동쪽으로 뻗은 가야산맥은 경북과 경남을 가르는 역할을 한다. 태백, 소백산맥과 그리고 낙동과 그 지류들에 의해 영남지역은 크고 작은 분지와 평야가 많이 형성되어 있다. 이들 지역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비교적 좋은 환경이 되었으나 외부와의 교통이 불편하였기 때문에 외래문화와의 유입은 반도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는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영남지역의 이러한 지리적 특징으로 선사시대부터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문화적 특성과 전통을 갖게 되었을 것을 간주된다.

이렇듯 영남지역의 예술성향은 지역적 특성에 의해 오랜 시간 개별적으로 변모되어온 그들만의 특성화가 되어 오늘까지 영남의 대표적 성격을 지배해왔다.

영남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지니는 춤사위의 특질과 미의식은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사료된다.

우선적으로 경상도라는 지역은 야류를 비롯한 경남농악, 학춤, 한량무 등이 발달되었던 지역이다. 또한 이와 더불어 많은 예능인들이 배출되어 우리나라의 전통예술 또한 널리 보급,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한다.

영남지역의 음악적 특징을 살펴보면 정교하고 감칠맛이 있으며, 부드럽고 굴곡이 많고 남성적인 수식과 기교가 많다. 또 장구장단의 경우 장단의 붙임새에 변화가 많으며 사설과 장단이 서로 엇물리는 엇붙임을 많이 쓴다.

해안지방에 위치한 영남지역은 지방색이 강하여 농악에서의 가락도 상당히 빨리 몰아내며, 진모리(덧뵈기) 가락이 많고 빨라서 전체적으로 씩씩한 느낌을 준다. 그와 함께 향토적이며 소박함을 내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듯 영남지역은 보통 음악이나 춤에 있어서 생동감과 뛰어난 짜임새를 갖추고 있다. 춤동작은 나긋나긋하기보다 민첩하며 세련된 편으로 개인놀음이 발달해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러한 소리의 특징과 같이 춤에 있어서도 잔기교가 많고 변화가 다양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흥미로움을 자아내며 엑센트가 강하게 표출되어 부드러움이 있으면서도 굴곡이 많아 전체적 흐름이 단순함과 평면적인 선율보다는 입체적 선율로 보여 지는 것이 특징이다.

예술성은 지방색(지역성)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삶을 지배하는 배경이 예술의 성향을 지배한다. 이렇듯 영남지역의 예술성향은 지역적 특성에 의해 오랜 시간 개별적으로 변모되어온 그들만의 특성화가 되어 오늘까지 영남의 대표적 성격을 지배해왔다. 한마디로 영남문화의 특징과 특성은 남성성으로 대변될 만큼, 투박하고 힘 있고 우직한 면이 있다.

이러한 음악의 지역적 특성들이 춤에서도 그 지역색으로 여실히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은 영남지역의 지역성이 내포된 잔잔하면서도 엑센트를 지닌 특성과 감칠맛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충동질하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또, 고도로 다듬어진 전형적인 기방예술의 산물로서 춤사위의 기교가 뛰어나며 한과 멋과 흥을 다른 어떤 춤보다 몸의 사용이 많고 춤사위가 원형지향적임을 알 수 있다.

춤의 기법에서도 호흡을 맺고 푸는 춤사위의 빈도수가 많이 드러나는 점, 그 외에 발끝, 손끝, 시선, 몸통사용 등 섬세하게 마무리 되어지는 점 등의 특징이 강하게 표출되는 춤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다른 교방춤에 비해 춤사위가 많고 까다로운 편으로서 부채의 테크닉과 발놀음이 고도의 기교를 요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듯 그의 춤의 멋은 정교한 발디딤과 다양한 몸 사용법에 있으며 깊은 단전에서부터 에너지를 출발시키고 절제하는 호흡은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에서 느낄 수 있는 우아미와 절제미를 나타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

특히 내면적 상징성은 호흡과 발디딤을 통해 표출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호흡과 발디딤은 이 춤의 정적인 특성에 역동성을 더해주는 요인으로서 발디딤은 발뒤꿈치, 발끝, 발허리의 세부분이 각각 섬세하게 움직여져 선명한 정확도를 보여준다.

또, 용트림사위를 보면 용의 용트림처럼 세찬 힘으로 곡선을 그리기도 하는 남성성과 학체사위와 같이 새의 날개짓처럼 가볍게 허공을 가르기도 하는 여성성의 교태로움이 더하여 남성성의 힘 있고 우직한 면과 여성성의 기교스러움이 모두 갖춰진 복합적 요소를 잘 조화시킨 춤태가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영남교방청춤은 영남지역의 특징이 잘 어우러져, 음과 양이 잘 조화된 춤이며 여성적이지도 남성적이지도 않게 한쪽으로 쏠린 춤사위가 아니며 상체는 남성적인 활달함이 강조되고 하체는 여성적인 섬세함이 강조되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춤이라 일컫는다. 그러면서 도도하고 가볍지 않고 무게가 있으면서도 둔탁하지 않는 춤이다. 또한 무엇보다 이러한 영남지역의 특성은 곧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의 춤의 특성과 밀접한 연계성을 지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3) 형태적 측면

교방청춤, 안방의 춤은 무대의 격식이 없는 춤이었으나 보는 이가 자리한 각도에 따라 각각 다른 느낌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무대화 되어가는 우리전통공연은 극장형식에 맞추어 삼면(앞, 양측면)에 따른 춤의 감상척도가 거의 비슷해야만 그 춤동작을 균등하게 감상하고 공감할 수 있다고 보아진다. 그러기에 일찍이 박경랑교방춤은 동작의 무대방향에 따른 동작의 형태미는 이미 미래를 예측하고 정해진 것 같다.

겉으로는 움직이지 않고 있는 정지 상태이면서 움직임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으며, 수많은 움직임이 하나로 집중되어 있는 상태, 즉 집중된 동작이 불러일으키는, 순간적인 일탈과 파란으로써 일상적인 시공간을 미적시공간으로 자리바꿈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다. 겉으로는 빙산의 일각만 보이면서 속으로 알 수 없는 덩어리를 숨쉬고 있는 것과 같은 침묵적 내면의 역동성이다.

1.5. Ⅳ. 결론

 

운파 박경랑의 영남교방청춤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서로 바르게 교감하는 가운데 행복해질 수 있는 춤이며, 무참히 짓밟혀도 살아나는 끈끈한 생명력을 가지고, 삶에 대한 은근한 역동성이 눈에 거슬리지 않게 어울리는 기기묘묘한 춤으로, 약함과 강함이 조합된 중성적인 춤이다. 풍속화속에 그려진 아름답고 순박한 서민적 정서와 조선조 후기의 교방춤을 현대에 이르러 무대화시킨 운파 박경랑의 춤 무대에서 보여 지는 교감을 토대로 영남교방청춤의 내면 및 외면적 특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춤사위를 중심으로 상·하체로 구분하여 큰틀을 만들었다.

그 결과, 영남교방청춤에는 내적 에너지의 집약과 이완의 작용을 충분히 담아내어 독특한 미의식을 춤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배합하여 맺고 풀고 어르는 한국춤의 묘미를 드러내 보이고 있으며 이것은 즉흥성의 원리를 동반한다는 점이다. 즉, 영남교방청춤을 비롯한 모든 한국춤은 고유한 민족정서와 연계성을 가지므로 한국인의 심성에 내포된 한과 신명이라는 정서를 즉흥적 원리를 통해 표출하고 이것은 곧, 감정이 춤으로 보여지는 행동양식인 예(禮), 법(法), 도(道)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이러한 상호작용으로 구성되는 영남교방청춤의 흐름은 심성의 자연적 표출양식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춤의 특징은 형식상으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율동이지만 내용면으로는 풍부한 감정이 스며있으며 낙관적이다. 특히 본 논문에서 살펴 본 영남교방청춤은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자태가 드러나는 사방춤이며 몸통의 쓰임이 많고 춤사위가 원형지향적이다. 유난히 잦은걸음으로 장단을 타는 사위가 두드러짐과 동시에 몸동작이 매우 기교적이며 잔잔하면서도 엑센트를 지닌 특성과 발끝, 손끝, 손목, 허리사용 및 시선처리 등이 섬세하게 마무리되어 감칠맛을 자아내는 점 등의 특징이 강하게 표출되는 춤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춤의 네 가지 미적요소인 한과 흥 그리고 멋과 태를 고루 갖춘 춤으로 한국적 자태를 엿볼 수 있는 춤사위들로 구성되어져 있으므로 민속무용의 특질을 살펴봄에 있어 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은 충분한 연구대상이 된다고 사료된다.

이와 같이 영남교방청춤의 미적 특질에 고찰은 뿌리 깊은 한국인의 미의식을 밝히는 것과 동시에 민속춤의 한 특성을 밝혀보고 우리 민속무용의 사관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의의를 부여한다고 할 수 있다.

근대시기 이후 이른바 무대 양식화를 통해 변화, 발전되어 온 전통춤들은 오늘날 전체 춤공연문화에 있어 매우 비중 있는 위치에 놓여있다. 이 시점에 그의 영남교방청춤을 통해 또 다른 춤의 미의식을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춤에 대한 뚜렷한 가치기준을 세우는 일은 한국무용의 전통에 대한 올바른 개념정립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새로운 춤전통을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영남교방청춤 뿐 아니라 전통은 지켜가기 위하여 지켜져야 할 부분과 또, 지켜내기 위해 더해지는 점이 있어야 한다. 본 연구는 이것을 계기로 현대의 영남교방청춤 원형에 관한 기초자료로서의 의미를 갖기를 바란다.

참 고 문 헌

 

서적

김매자(1996), 한국무용사, 삼신각.

채희완(1985)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길사 p.23.

 

논문

김동민(1966), 아시아문제연구소논문집 제5집, 李朝枝女史, p.75.

김용숙(1990), 韓國女俗史, 民音社, p.264.

백재화(2004), 한국춤에 대한 예능보유자들의 형이상학적 인식, p.69.

안미아(2001), 조선조 후기 교방(敎坊)춤 특징에 관한 연구, p.5.

정병호(1889), 무용론, 서울六百年史, 서울특별시, p.1297.

 

정기간행물

2011, 계간 예술문화비평 제2호 가을, 한국예술문화비평가협회, 248-253.

우리춤 연구소, 춤으로 본 지역문화, 한양대학교 출판부, p.6.

 

기타

2011, 8, 4, 중요무형문화재 제 82-4호 남해안별신굿 예능보유자 정영만 선생님과의 인터뷰 중에서 발췌.

2012, 1, 30, 운파 박경랑 선생님과의 인터뷰 중에서 발췌.

ABSTRACT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Youngnam Gyobang Dance

 

Yim, Ji Ae(Dongdukuniversity)

 

This study examines structural significance and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Park Gyeongnang Youngnam Gyobang Dance. Structural, aesthetic analysis of traditional dance will contribute positively to researches on philosophical structural studies of traditional dance in general.

Youngnam Gyobang Dance reflects the life and arts of the people of Late Joseon Dynasty. It represents Korean ethos and reflects fundamental aesthetic consciousness. Youngnam Gyobang Dance evolved to be artistic and recreational dance, rather than religious dance. In the process, professional Gyobang dancers developed elegant and elaborate dance movements. This study focus on late Joseon period in search of the origin of Gyobang Dance, examining the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Youngnam Gyobang Dance.

So far, theoretical works on Woonpa Park Gyeongneng's Youngnam Gyobang Dance and records of the dance are far from comprehensive. The author attempted to analyze Youngnam Gyobang Dance performed by Woonpa Park Gyeongnang on micro-level, in search of fundamental aesthetic consciousness. The conclusion of the study can be summarized as the following:

Woonpa Park Gyeongnang's Youngnam Gyobang Dance turned the regional characteristics into artistic prope,rties. Cultural characteristics of Youngnam region, which is often thought of as masculine are reflected to the movements of the dance.

In addition, perfect harmony with music, various movements, modern sensation of visuals, scientific approaches to proscenium performance characterizes Woonpa Park Gyeongnang's Youngnam Gyobang Dance.

Especially, Woonpa Park Gyeongnang's Youngnam Gyobang Dance goes beyond the traditional limitations of body movement. This was possible because it inherits the tradition stemming from the beginnings of Gyobang culture.

 

Key : Youngnam Gyobang Dance, Gyobangcheong, aesthetic characteristic, Woonpa Park Gyeongnang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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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운(浮雲) 김진홍(72·김진홍전통춤연구회 예술감독)은 손바닥으로 감은 두 눈을 마구 두드렸다. 뜬구름처럼 욕심없이, 기약없이 춤만 춰온 60년 세월. 춤 이야기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예인. 기자 앞에서 더 이상의 눈물을 자제하며 제자가 건네준 수건으로 두 눈을 꼭꼭 누른다. 춤에 빠져, 춤에 미쳐, 춤만 알고 살아온 세월을 가슴에서 꺼낼 때마다 순수함이 묻어났다.

# 화려한 세계를 탐한 3대 독자

김진홍은 김종명과 강매결의 3대 독자로 부산 범일동에서 출생했다. 4살 위인 누나 김연홍과 남매였다.

출생 직후 가족은 일본 오사카로 이주했다. 세상을 향한 아버지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모친은 하숙을 쳤고 아버지는 고물상을 했다. 밤에는 가족끼리 공연장에 갔다. 김진홍의 고백. “그런데 아들이 춤추는 건 싫어하셨습니다. 예술을 업으로 하면 가난해진다며 못하게 하셨어요. 6·25전쟁 당시 제가 출연하는 공연초대권을 부모님께 드렸는데, 무대에서 춤춘 이가 저인 줄 모르고 ‘젊은 남자가 춤을 잘추더라’하시는 거예요. 나중에 이매방 선생이 부모님께 ‘그 남자가 아드님이셨다’고 알렸죠. 아버님께선 그때 당신의 꿈을 포기하시고 저를 놓아주셨습니다.”

다시 3살의 김진홍. 일본 다카라스카 소녀가극단 공연을 봤는데, 무대 위 선녀가 옆으로 누워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고 진홍은 신기하기만 했다. 프랑스 영화 ‘백조의 죽음’을 비롯해 발레 영화 ‘빈사의 백조’, 일본 가부키, 악극단의 버라이어티쇼 등…. 어린 진홍은 남들이 일생 해도 못할 문화를 누렸다.

“한살부터 일곱살까지 멋진 구경만 하다 한국에 오니, 아이들 옷소매는 콧물을 닦아 반질반질 딱딱하고, 전차 밑바닥은 구멍이 나있어요. 현실을 잊고 싶어 공연보러 많이 다녔죠.”

부산 동아중학교 입학 후에는 영화감상과 노래가 취미였다. ‘카라반’ ‘카르멘’을 보고 급우들에 둘러싸여 영화이야기를 하면 담임선생에게 고자질하는 친구가 있었다. 중학생에겐 금지된 영화관람. 진홍은 복도에 손들고 벌 서면서 ‘예술을 아는 애’로 유명해졌다.

“학예회때 ‘산타루치아’ 등을 부르면 인기가 좋았습니다. 음악부 선배들이 손수건에 귀한 양과자를 싸주면서 음악부에 가입하라고 꼬드기곤 했어요. 그런데 변성기로 노래를 못부르게 되자 상급생들이 긴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라고 하대요. 저를 가만두지 않더군요. 하하하….”

# 남방춤에 빠진 일급 타자수

피아노를 연습할 때 6·25전쟁이 터졌다. 등교한 진홍이 복도를 지나가는데 교실마다 피란민들로 꽉 차있어 전쟁난 걸 알았다. 학교가 문을 닫자 손가락을 쉬게 하지 말라는 선배들의 충고로 타자를 배웠다. 타자솜씨가 좋은 그는 미군부대 타자수로 취직, 목공부들 출퇴근 일수에 따라 액수가 정해지는 급여봉투를 작성했다. 소문은 빨랐다. 부대에서 타자를 가장 빨리 치는 미군과 진홍의 대결. “제가 영어는 몰라도 알파벳을 보는 대로 빨리 쳤더니 미군 타자수와 비겼어요. 그날 저녁 목공부 담당 미군장교와 장교클럽에서 돈가스를 먹었습니다. 일본에서 먹었던, 귀한 음식이었죠. 그때 미8군 쇼도 보았어요.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이난영도 한국노래와 영어노래를 부르고 그 아들과 딸로 구성된 8명 밴드도 출연해 노래하더군요.”

동래 한량춤

노래에 이어 타부음악에 맞춘 춤이 공연됐다. ‘타부라의 리듬’이라는 남방춤을 여성무용수가 추는데 신비스러운 음악에 맞춰 손목도 잘 꺾고 목도 잘 꺾었다. 황홀한 전율. 집으로 돌아간 진홍은 거울 앞에서 그 춤을 흉내냈다. 열네살 때였다. 타자칠 때도 그 춤만 머리에서 맴돌았다. 부대에선 발레영화 ‘분홍신’, 뮤지컬 영화 ‘파리의 아메리카인’ ‘화이트 크리스마스’ ‘스타탄생’을 보며 춤출 결심을 굳혔다. 누가 알았을까. 미8군 장교클럽에서 김진홍의 춤운명이 이미 시작됐음을.

“1951년 범일동 3·1극장에서 무용콩쿠르가 열린대요. 참을 수 없더군요. 남방춤을 추려고 누나에게 하늘하늘한 인조천으로 밑이 퍼지는 바지를 만들어달라 하고 초록색 셔츠에 허리끈을 묶고 그물같은 천으로 터번을 만들어 썼습니다. 뿐인가요. 미군부대 통조림 깡통을 동그랗게 오린 후 실에 꿰어 목걸이로 만들고 춤을 추었죠. 사실 춤은 신경쓰지 않았어요. 그저 타부음악 멜로디에 빠져 춤을 추었죠. 입상했어요. 기대도 안했는데….”

콩쿠르가 ‘문제’였다. 해병대 군악대도 진홍에게 연락을 취해 전방순회공연을 가자고 했다. 그는 더 이상 일급 타자수가 아니었다. 춤추며 전방을 돌았다. 산중에서 얼음 깨어 세수하고 머리감는 데도 춤이 좋았다.

# 고교진학을 포기하고 이룬 김진홍류 명무

당시 진홍의 춤을 본 악사들은 ‘군예대에서 활동하는 이매방과 진홍이 많이 닮았다’며 이매방을 아느냐고 묻곤 했다. 휴전후 김진홍은 이매방을 만났다. 이매방은 부산 영주동에서 2층 다다미방을 개조해 무용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부산진시장 가설무대에서 펼쳐진 명인명창대회의 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 출연자 대기실에서 명창 임방울과 환담을 나누던 이매방. 그저 놀러 온 줄 착각할 정도로 긴장감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진홍에게 ‘잠깐 있어라’ 하더니 학원에서 의상을 가져와 입고 무대에 오르는데,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흰 장삼, 흰 고깔, 흰 버선, 흰 바지저고리 차림에 홍가사를 걸치고 ‘승무’를 추시는데, 발 맵시가 너무 멋져요. 장삼을 뿌리지 않고 가만히 놀리는 정중동의 느낌도 학처럼, 하얀 나비처럼 고고했습니다. ‘아, 내가 기다리던 춤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감동에 겨워 이매방춤을 적극적으로 배우게 됐죠.”

동네 엄마들을 모집해 이매방 학원에서 춤을 배우게 하고 방학에는 여교사들에게 춤강습을 권했다. 대신 김진홍은 무료로 이매방을 사사했다. 6·25직후에는 친구처럼 지냈다. ‘고향벗은 5년, 객지벗은 10년’이라고, 술을 함께 마시고 담배도 같이 피웠다.

“이매방 선생에게 승무와 살풀이를 배우고 부산 무용평론가 고 강이문에게 3년동안 무대 공간구성, 연극적 요소, 작품구성 등 무용이론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춤공부만 했다. 춤 이외에는 알아야 할 것도, 알 필요도 없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이유. 너무 단순하다. 무대에서 춤춰야 하는데 빡빡대머리로는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진학도, 결혼도 하지 않고 춤만 추었으니 교류하는 이가 없지요. 여기서(범일동 무용학원) 30년 살아도 아는 이가 없어요. 그래도 고독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있고, 음악듣고 소설과 시를 읽고….”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살풀이춤’, 제97호 ‘승무’ 이수자이며,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이매방의 예혼을 잇는 제1호 제자이다. 스승 이춘우의 춤기본과 산조춤, 문장원의 동래 한량춤과 동래 입춤, 박동진·김소희의 소리도 배웠다. 김소희는 ‘예술은 모방이 아니다. 스승을 따라하면 원숭이지 예술이 아니다’라고 했었다.

이매방의 최고 제자임에도 이매방의 춤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춤향기를 품게 된 후 그는 김진홍류 승무와 살풀이 춤을 집대성했다. 스승으로부터의 독립. 의도적이진 않았지만 자신만의 춤길을 찾게 됐다. 무용평론가 채희완은 그의 ‘승무’를 ‘하늘과 내통하는 장삼자락의 춤’이라 평했다. 그의 살풀이춤은 정중동의 춤. 추는 듯 안추는 듯, 춤 혈은 흐르듯이, 춤 맥은 일정한 끊어짐으로 엮어져 있다.

1979년에는 동래에서 문장원의 춤을 보고 무용선비의 경지를 느낀 그는 문장원의 ‘동래한량춤’에 몰입했다. 부운의 한량춤은 활발하면서도 젊잖다. 겸손하면서도 은근하다. 현재 그는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14호 동래한량춤 예능보유자 지정을 신청한 상태이다.

# 하늘과 닿아있는 무심의 춤

부운의 춤 키워드는 ‘무심(無心)’이다. ‘김진홍춤에 격이 살아있다’는 평. 생각하며 추는 춤이 아니고, 생각없이 마음을 비우고 추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의 ‘무심’은 삶의 체험과 통한다. 고상한 춤을 추기 위해 뽕짝이나 팝송을 거부하는 건 안될 일. 고통, 배고픔, 슬픔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이 무심의 춤과 만나야 예술이라고 했다.

그가 제자들에게 하는 잔소리에도 ‘무심’이 화두로 담겨 있다. ‘추는 춤 말고 추어지는 춤’을 추라고 강조한다. 몸에서 우러나오는 춤을 추라고 잔소리한다. 같은 춤을 추어도 일곱, 여덟번은 추어야 자연스러운 감정이 살아난다고 했다.

“감정표현을 위해 한국무용가들은 아래로 시선을 두는데 외국 영화에선 배우들이 시선을 위로 하더군요. 저도 시선을 하늘쪽에 두고 춤춥니다. 그리고 대부분 웃거나 슬픈 표정 등 얼굴에 표정을 많이 두는데 저는 내면의 감정을 보여주지 않고 무표정한 채 춤추는 걸 좋아합니다.”

무표정한 무대 위 얼굴처럼 그는 ‘무뚝뚝하고 사교성은 제로’라고 고백한다. 이사람 저사람 비위 맞추다보면 춤출 때 에너지를 모을 수 없어 그렇다고 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대신 혼자 하늘을 향해 시선을 주다보니 호를 작명하는 분이 제 호를 ‘부운’이라고 지어주었습니다. 이름도 원래 김자홍인데 그 분이 제 관상을 보고 김진홍(眞弘)으로 하래요. 호적도 고쳤죠.”

그런데 요즘처럼 몸이 지치다 보면 이름을 고쳐도 소용없는 듯하다. 왼쪽 무릎뒤 신경통 때문에 허리까지 아프다. 물리치료를 받는데 나이 때문인지 큰 차도는 없다.

“이상하지요. 죽기살기로 무대에 나가면 아무도 아픈 사람인 줄 모릅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몸이 아픈데 춤추면 잊어요. 나 원 참….”

춤도 인간의 일이어서 고단하련만… 부운은 그저 무심의 춤을 고집한다. 삶의 체험을 무심으로 보듬고 춤추기. 참 힘들다. 그래도 가장 높은 곳에 뜬구름이 어두운 밤에는 가장 빛나기에 부운의 춤여정, 아름답다.

-30년 넘게 학원서 숙식 “자는 시간이 아까워요”-

부운 김진홍에겐 제자들과 함께 춤을 연습하고 춤을 창작하는 범일동 무용학원이 유일한 자랑거리다. 김진홍 전통춤 연구회가 자리한 춤 공간인 만큼 그의 전부이기도 하다.

무용학원은 1955년 부산 범일동에서 시작했다. 학원 정식인가가 난 62년부터는 부산 교통부에 학원을 개설했다. 그후 70년대 중반 부산 진시장으로 학원을 옮겼고, 다시 범일동 자유시장에서 학원을 경영하며 고 강이문에게 춤 이론을 배웠다. 지금의 학원은 70년대 후반 위치가 좋아 입주했다. 요즘처럼 공구상 골목이 아니었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해 냉·난방비가 절약됐다. 학원 전체 규모는 48평. 춤 연습하는 마루 면적은 20평 남짓이다. 부운 김진홍은 30년 이상 20평 마루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겨울밤에는 옷 좀 껴입고 자면 되고…’ ‘여름에는 시원해서 좋았다.’ 그는 30여년 전부터 조방(조선방직)터를 맴돌고 있는 셈이다.

김진홍 무용학원은 동네 무용교습소처럼 초보자나 아마추어 무용가들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무용 교사들과 전문 무용수들이 전통춤을 연마한다. 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학원에 찾아갔을 때도 김갑용씨(42)와 김필분씨(51)가 스승의 춤을 연마하고 있었다. 부운은 미혼으로 혼자 살아왔지만 제자들이 자식이다. 13살부터 30년 동안 스승을 아버지로 존경해 온 양아들 김갑용씨와 며느리 서정숙씨(41·부산시립무용단 총무)가 한국무용을 전공했고 서정숙씨의 올케 두 명도 한국무용가이다.

“부모님 모시고 집에서 살 때도 한 달에 하루쯤 집에 들어갔을 겁니다. 제가 50줄에 접어들었을 때 부친은 78세, 모친은 81세로 돌아가셨는데…. 맘껏 춤출 수 있고 제자들에게 춤 가르칠 수 있는 학원 공간이 좋았습니다. 제 꿈이 무용학원에서 하루가 다 가도록 가르치고 먹고 자는 건데, 그 소원대로 학원에서 살고 있어요. 자다가도 춤추고 싶으면 금방 춤출 수 있잖아요. 춤과 생활이 한 공간에 공존한다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겨울에는 추워도 솜바지 입고 자면 되고요. 학원 근처에 공구상 사람들이 일 끝내고 고단함을 푸는 주점이 있고 노래방이 있어요. 주위에서 노랫소리 나고 사람들이 밤 늦게까지 다니기 때문에 저도 새벽 2시 30분쯤 잠을 청하고 오전 11시쯤 일어납니다. 사실 주위환경 탓을 하지만 솔직히 저는 그냥 자기가 싫어서 늦게 잡니다. 자는 시간이 아까워요. 물론 눈 뜨고 있어도 별로 할 일은 없는데… 그래서 몸이 많이 상했어요. 어쨌든 저는 몸이 망가져도 좋으니 춤 잘추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기도합니다. 다른 이들은 몸 망가질 만큼 춤 잘추게 해달라고는 기도하지 않을 거예요. 하하하….”

무용학원의 공간은 언제나 그의 요람이었다. 저녁까지 한국무용을 가르치던 공간이 밤에는 문화와 예술을 논하는 교류의 장이 되곤 했다. 학원에서 거의 격일로 술을 마셨고 마음맞는 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도 했다. 고 황무봉, 고 강이문 등과 함께 반되들이 소주 두 병씩을 마시고도 모자라 빈
대떡집 ‘만리장성’으로 몰려가곤 했다. 20여년 전 황달에 걸려 매일 한갑씩 피우던 담배와 술을 끊기 전까지 그랬다.

김진홍 이력

1935년 부산 범일동 김종명과 강매결의 3대독자로 출생
1948년 부산 부산 동아중학교 입학·51년 졸업
1962년 부산 경남고 출강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27호 승무 이수자
1993년 부산 경성대 무용과 출강
1993~94년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겸 상임안무자
1994 한국무용협회 부산지회장
1996~2000년 부산민속예술보존회 이사
199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97호 살풀이춤 이수자
200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출강

<수상>
부산시장 감사장(1977년), 부산광역시 문화상(1987년), 제 9회 전주 대사습 무용부문 장원(1983년), 제 33회 진주 개천예술제 특장부문 최우수상("), 춤의해 운영위원장 감사패(1992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감사패("), 국립민속박물관 감사장(1998년), 광주광역시장 공로패("), 일본 후쿠오카 남장원주지 감사장(1999년)


〈유인화 선임기자|부산에서 rhe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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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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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 한량춤의 1인자 김진홍씨(.1935~ )는 부산춤계의 흐름을 더듬어갈 때 1.5세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인물이다.

초창기 부산춤이 몇몇 선구자들에 의해 막 자리를 잡아갈 즈음 춤 하나 잘추는 신인으로 등장한 그는 50여년간 이 고장을 지키면서 부산 전통춤의 맥을 꿋꿋이 이어가고 있다.

부산의 춤을 이야기할 때 그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연륜이 덧씌여진 춤사위가 "가장 이 고장 춤답다"는 평가로 대변할 수 있다.

이 고장의 춤은 어떤 것인가.

그는 "안으로 삭일수 있는 춤,내재율과 내면세계가 깊이있고 무게있게 녹아나는 춤"으로 부산춤(혹은 영남춤)을 정의한다.

산뜻하고 깨끗한 중부지방의 춤과 솔직담백하게 감정처리를 하는 전라도 지방의 춤에 비해 이 고장의 춤은 멋과 흥,한을 마음으로 삭여서 추는 춤이라는 것이다.

김씨가,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끊임없는 상념의 길 인 춤의 세계에 접어 든 것은 51년 삼일극장에서 열렸던 무용콩쿠르에 입상한 것이 큰 계기가 되었다.

35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4세 때부터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그곳의 소녀가극단공연과 뮤지컬 영화,극장무대의 공연을 접하면서 예술적 감성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노래와 피아노에도 소질을 보였던 어린 소년은 독학으로 콩쿠르에 입상한 후부터 여러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춤꾼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오늘날 그의 춤이 있기까지 크게 영향을 미쳤던 스승들로 김씨는 이춘우 이매방 문장원 박동진 김소희선생을 든다.

춤의 기본과 허튼춤은 춘우선생,승무와 살풀이는 매방선생,한량춤과 덧배기춤은 장원선생을 좇았던 그는 명창 박동진선생과 김소희선생을 대하면서 흐트러짐없는 그들의 치열한 예술가 정신에 크게 감명받았다고 한다.

"마음으로 삭였던 정신세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것이 바로 춤"이듯,그는 단순한 테크닉의 습득에만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춤집을 채워갈 수 있는 정신적 풍요함도 동시에 갖추어 나갔다.

한량춤 에 관한한 독보적인 위치를 인정받고 있는 그는 승무 살풀이 지전춤 에 있어서도 수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통춤은 창작과는 달리 같은 춤사위의 반복인 것 같지만 추면 출수록 어렵다고 춤꾼들은 한결같이 말한다.춤을 출 때마다 춤꾼의 마음상태가 다르고 정신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춤꾼이 된 원죄 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도 춤을 출 때마다 마음을 한결같이 다잡지 못하는 번뇌에는 별 차이가 없다.

50년이 넘게 춤을 추어온 그는 춤을 출 때마다 하나의 시를 떠올린다.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남성적인 춤으로 활달한 느낌이 나야 제맛인 한량춤 을 출 때면 박목월의 <나그네>가 되고,애잔하고 절제된 동작과 마음이 기본요소인 살풀이 를 출 때면 노천명의,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 <사슴>을 떠올린다.긴 장삼 공중에 흩뿌리며 그 움직임으로 자유와 영원을 상징하고 한 획,한 줄 붓으로 공간을 그리듯,선의 의미가 움직임의 극치를 이루는 승무 를 출 때면 역시 조지훈의 시 <승무>를 떠올리는 것이 제격이라고 한다.

이순을 넘어선 나이.

잘보이기 위해 추었던 춤,관객에 몰입해 추던 춤은 이제 춤에 안겨 음악에 몸을 맡기고 나에게 몰입하는 춤으로 원숙함을 더해가고 있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춤 마음을 비움으로써 편안하게 출 수 있는 춤 추어지는 춤보다 우러나는 춤 을 추리라는 그의 마음은 김진홍 전통춤 연구회 회원을 비롯한 제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지고 있다.

강호경(무용협 김해시지부장) 최성희(" 강원도지부장) 박성희(" 경남부지부장) 홍복순 박영미 장선희 박경랑씨 등이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춤을 접해야 제대로 된 춤을 출 수있다"는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다.

어느덧 부산춤의 원로로 자리하고 있는 그는 요즘도 재목이 아닌데 춤을 추고 있는 건 아닌지,춤꾼으로서 손색이 없는지,과연 제대로 된 춤을 추고 있는 지 혼란스러움이 더해간다고 한다.또 끝도 없고 답도 없는 춤의 길이 초조하고 불안하게 다가와 일탈 하고 싶은 마음도 문득문득 든다고 한다.

하지만 춤이 있는 언저리 어디에서건 혼신을 다해 춤사위를 펼쳐내고자 하는 김씨의 이같은 치열한 예술혼이 이 고장에 자리하기에 부산춤 의 뿌리는 더욱 단단히 굳어지는 것이다.

그는 부산춤계 1세대와 2세대를 잇는 튼튼가교로서 부산 전통춤의 텃밭을 일구고 가꾸어 왔으며 이 지방의 춤을 대표하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하고 있다.

부산일보 <노정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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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안에 깃들인 춤의 이야기
‘2009 박경랑의 춤 백의백무’ 김해 공연

경남 고성 출신으로 고성오광대 초대 문화재였던 외증조부의 대를 이어 영남 춤의 맥을 잇고 있는 춤꾼 박경랑이 김해 무대에 오른다.
오는 15일 오후 7시 30분에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에서 열리는 ‘박경랑의 춤 백의백무(白衣百舞)’는 우리 춤의 맥과 특징을 감동과 신명의 한마당으로 풀어내는 춤판으로 지난해 서울에서의 공연은 TV를 통해서도 방영된 바 있다.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최종민 교수가 해설을 맡았으며, 박경랑이 화려한 의상 대신 흰 옷을 입고 우리 춤의 정갈함과 한(恨)의 정서를 표현할 예정이다.
중요 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놀이를 각색한 문둥북춤, 기생들에게 가르쳤던 영남 교방춤, 장녹수와 연산군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사랑춤, 살풀이춤 등을 공연한다.
특별출연으로 밀양북춤의 하용부, 동래한량춤의 김진홍, 남해안별신굿의 정영만 선생, 고성탈박물관 이도열 관장이 함께 하고 영남춤 보존회 회원들의 선비춤, 성주풀이춤, 장고춤, 채선무와 왕기철·박애리 명창의 판소리 공연도 곁들여진다.
박용재 평론가는 이번 공연을 두고 “그녀의 춤은 살아있는 영혼이었고 그 춤이 만들어 내는 절정과 내적 에너지는 관객의 혼을 끌어 올린다”고 평가했다.
한편, 4세에 춤에 입문해 고 김창후, 고 조용배, 고 황무봉, 고 김수악, 김진홍, 박성희, 강옥남 선생에게서 전통춤과 발레 등을 사사한 박경랑은 경남도립무용단, 창원시립무용단 수석단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경상남도 무형 문화재 제 21호 진주 교방굿거리춤 이수자. 중요 무형문화제 제7호 고성 오광대전수자로 우리 춤의 연구·전수·보급에 노력하고 있다.
특히 지난 93년 제18회 전통 예술 경연대회 대상, 94년 제12회 개천 한국 무용제 특장부문 대상을 비롯한 다수의 수상을 거쳐 제5회 서울 전통 공연예술경연대회에서 심사위원 19명의 만장일치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명무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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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랑의 춤살이 '폐인'들 거느린 '꾼'

국제신문 2006-06-28 20:29

박경랑은 1961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고성오광대 초대 인간문화재인 고 김창후 선생이 그의 외조부. 그래서 그는 네 살 때부터 외할아버지로부터 춤추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박 씨는 어릴 적 고성과 부산을 오가며 초 중 고교를 다니다 세종대 무용학과에 들어가 본격적인 춤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박 씨는 외조부가 돌아가신 뒤 할아버지의 수제자인 조용배(작고) 선생에게 고성오광대 문동북춤과 허튼덧뵈기춤·승무·영남교방춤 등을 사사했다. 그리고 황무봉(작고) 선생께 살풀이·검무·화관무·춘앵무·부채춤·오고무를 배웠다. 이어 김진홍 선생에게서 이매방류의 전통춤인 승무·살풀이·입춤을, 강옥남 선생으로부터도 승무·살풀이와 허튼춤을, 김수악 선생에게서 진주굿거리춤을 사사하는 등 거의 모든 영남춤 대가들의 춤을 섭렵했다.

개천무용제·전주대사습 등 많은 경연대회에서 대상이나 장원을 휩쓴 그는 1997년 서울전통공연예술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것을 끝으로 경연대회 참가를 접었다. 명실공이 '춤'을 인가 받았기 때문.

박 씨는 1993년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처음으로 '박경랑의 춤'을 선보인 뒤 지금까지 100회가 넘는 공연을 가졌다. 이스라엘 세계민속춤 페스티벌에 한국대표로 참가하는 등 해외 순회공연도 수없이 많이 가졌다.

그는 전통을 기본으로, 늘 연구하고 개척하는 춤살이를 하고 있다. 올들어 서울 김해 창원에 이어 지난 26일 부산무대까지 순회공연한 '박경랑과 광대들의 놀음'은 그가 고안한 퓨전작품. 살풀이춤도 지난 3월(서울)엔 '황진이의 넋'을 주제로 했고, 5월(김해)엔 음력 4월 초파일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는 뜻에서 '그리움, 하늘 가는 길'로, 이번엔 보훈의 달을 맞아 '호국영령을 기리며'로 주제를 잡았다. 이 때문에 마니아와 팬들을 몰고 다닐 정도로 인기를 끌며 팬 후원회까지 두고 있다. 전통문화예술학교, 경남정보대·동서대 사회교육원 전통민속예술학과 지도교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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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남춤문화예술연구소 산하단체 “박경랑전통무용단”

 

박경랑전통무용단의 단장 박경랑은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받은 영남 교방청춤으로 널리 알려진 춤꾼이다.

4세에 춤에 입문 故 김창후 故 조용배 故황무봉 故김수악 김진홍 박성희 강옥남 선생들에게 우리춤을 사사받았고 지금은 서울, 부산을 오가며 개인 공연 및 기획 공연 국악 무용 경연대회 심사 및 우리춤을 연구, 전수 ,보급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93년 제 18회 전통 예술 경연대회 전체 종합대상 (문화체육부 장관상) 수상, 93년 제4회 대구국악제 전체 종합대상(문화체육부 장관상)수상, 94년 진주 개천 예술제 제12회 개천 한국 무용제 특장부문 대상(문화체육부 장관상)수상, 95년 제21회 전주 대사습 놀이 무용부문 장원(문화체육부 장관상) 수상, 96년 서울 전통 공연예술경연대회 종합 최우수상(국무총리상)수상 등을 거처 97년 제 5회 서울 전통 공연예술경연대회에서 심사위원 19명의 만장일치로 대통령상을 수상 하였으며, 현재 경상남도 무형 문화제 제 21호 진주 교방굿거리춤 이수자. 중요 무형문화제 제7호 고성 오광대전수자 이며 한국 영남춤 문화 예술 연구소 대표. 박경랑 전통예술단 단장. 영남춤 보존회 대표. 국립국악원 문화학교 강사, 부산 경남정보대학 및 동서 대학교 사회교육원 전통예술과 한국무용 지도 교수로 숙명여자대학교 전통문화 예술대학원 전통춤 외래지도교수로 제직 중이며 각 세미나를 통해 영남 춤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주요 국내·외 공연 연보

 

단장 박경랑을 주축으로 2000년부터 결성된 ‘박경랑전통무용단’은 국내 공연은 물론 일본, 중국 및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등 세계 각국에서 활발한 예술활동을 펼치며 문화강국으로의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전통문화단체입니다.

국내주요 활동상황 : 국립국악원 공원, 남산국악당 공연,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공연 등 다수의 괄목할만한 무대에서 활발한 예술활동을 펼침

국외주요활동상황 : 베트남 공연, 일본 오사카 공연, 일본 요미우리신문사 초청공연, 일본 아시이 초청공연, 북간도 초청공연, 미국덴버공연, 아랍 에미레이트공연, 이스라엘 민속춤 공연등 다수의 공연 참가 경력이 있는 우수한 전통문화예술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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