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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파 박경랑/인터뷰

조각가 김학제교수와 인터뷰. 재즈에 살풀이를 춰봐



 가끔은 다른 영역의 예술장르와 만나는 것이 창작작업에 큰 도움이 된다.조각가 김학제(오른쪽)와 한국춤꾼 박경랑의 만남도 장르를 넘나들며 한국적 미의식을 다시 생각하고 창작작업으로 연결시키는 자리가 됐다.
재즈에 맞춰 살풀이를 춰봐 

지난 99년 '사형제 폐지를 위한 삶 권력 죽음전'에서 한국춤꾼 박경랑(41·박경랑 영남춤전수소 대표)은 망자의 넋을 달래는 살풀이를 추고 조각가 김학제(45·동아대 교수)는 생명의 저울을 그린 조각작품을 내놓았다. 그렇게 처음 만났던 두 사람이 경성대 부근 라이브재즈클럽 '몽크'에서 다시 만났다. 부산재즈클럽의 회원인 김교수가 이날 '몽크'의 라이브공연 기획을 맡았다며 자신의 '아지트'로 초대한 것이다. 

조각가와 한국춤꾼의 만남에 재즈가 다리를 놓아 그럭저럭 재미있는 그림이 됐다. 재즈의 선율이 몸속으로 휘감겨 들어온다는 느낌이 들자 기자가 농담 섞어 말을 던졌다. '재즈음악에 맞춰 살풀이를 출 수 있을까요?' 

―박경랑 / 이런 음악은 우리 자진모리 장단과 비슷하네요(다소 빠른 템포의 재즈 선율을 듣고는 앉은 자리에서 바로 춤이 나왔다. 농담처럼 말을 던졌는데 너무 진지했다. 기회가 되면 재즈음악에 맞춰 우리춤을 춰보고 싶다는데까지 진도가 나갔다). 

- 김학제 / 재즈는 굉장히 포괄적인 음악이죠. 각 지역의 민족음악을 포괄하는 재즈의 특성에 비춰보면 한국의 선율도 예외는 아니겠죠(재즈 애호가답게 한 수 거들었다). 

―박 / 한국창작춤을 서양춤에 맞추는 것보다 서양음악에 전통춤사위를 맞춰가는 것이 더 올바른 창작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한국창작춤은 방향이 없고 춤의 기틀도 잃어간다는 이야기가 많잖아요(사실 박경랑은 억척스럽게도 영남춤을 고집한다는 데서 중심이 있다. 혹자는 박경랑의 춤을 대나무가 연상되는 수려한 몸매에서 아름다운 난초의 유연한 곡선을 그려낸다해서 대와 난초에 비유하기도 한다). 

- 김 / 현대미술도 전통과 단절돼 있어요. 초상화나 풍속화 등 회화쪽에서는 여러 형태로 한국의 전통이 남아있지만 입체미술 즉 조각에서 한국적인 조형의식을 찾기란 쉽지 않아요. 기껏해야 불상 장승 토우 같은 부분이지만 한계가 있어요. 일제시대 이후 현대미술을 갑자기 수용하다보니 우리 것이 계승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구의 형식이 들어와 혼란스러운 작업을 하고 있죠. 그래도 전통춤은 나은 편 아닌가요. 

―박 / 전통춤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재야에 묻혀 있는 분들을 찾아뵙고 고증을 해내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그런 와중에 많은 토속춤들이 사라지고 있어요(그러면서 갑자기 기생문화 이야기를 꺼냈다). 왜색문화 때문에 잘못 인식돼 왔지만 그들은 정말 풍류를 알던 사람이에요. 소리면 소리, 글씨면 글씨, 춤이면 춤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죠. 저는 춤 하나밖에 모르지만…(교방문화가 우리춤의 원형을 보존한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녀의 이야기가 이해된다. 실제 그녀는 공연때마다 화류놀이하는 장면을 무대화시켜 술과 시, 춤과 노래가 어우러지는 풍류마당을 재연하고 있다). 

―박 / 우리춤의 정신을 잃은 대신 지나치게 사변적으로 무용이 흐르고 있다는 것도 문제죠. 

- 김 / 현대미술도 점차 개념화돼가고 있어요. 사고를 위한 사고를 요하는 것처럼…. 깊이와 대중성 두마리 토끼를 잡기가 쉽진 않지만 그래도 농담 섞어 제 작품의 화두는 '쉽고 깊게'라고 말하곤 해요. 한국인의 조형의식은 곡선의 미학이자 부드러움의 미학이죠. 한국인의 정서를 미술조형적으로 재해석하고 정립할 수 있는 통찰이 필요해요. 

―박 / 제가 김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던 것도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는 선생님의 작품세계 때문이었어요. 

- 김 / 99년 개인전 때 움직이는 작품을 내놓은 적이 있어요. 알몸을 한 원추꼴의 인간상이 공중에서 마치 떠도는 것 같은 느낌을 준 작품인데 정적인데서 동적인 부분을 끌어들인 것이죠. 만약 박 선생과 같이 작업할 기회가 오면 박 선생의 춤사위 움직임에 따라 내 작품도 움직이는,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지는 작품을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박 / 제 신체 움직임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도 괜찮겠지만 선생님이 만든 작품을 제가 그대로 표현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어요. 춤사위를 그린 조각작품 전시회에선 전통음악을 깔고 선생님 작품에 춤을 출 때는 재즈음악을 배경으로 깔고요.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창작본들도 나올 수 있겠지요 (재즈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기자가 끼어들 틈도 없이 전통을 거쳐 새로운 창작작업으로 진전되고 있는 중에 이날의 라이브 공연도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이상헌 기자 ttong@pusanilbo.com 



경북일보 2001.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