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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실선생의 소고춤 2001년 국립국악원 개관 50주년 

                                                           유튜브영상:haeseonii
사물놀이는 1979년 3월 1일과 2일 양일간에 걸쳐 민속악회 시나위에서 김덕수(장구)ㆍ이종대(북)ㆍ최태현(징)과 객원 연주자 최종실(꽹과리)이 종로구 원서동의 공간사랑에서 연주한 데서 비롯하였다. 이 연주회는 제1회 공간 전통 음악의 밤으로 제10회 민속악회 시나위 정기 연주회의 무대였다. 이들은 이후 이광수와 김용배를 영입하여 본격적으로 ‘사물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사물놀이의 출발은 기존의 농악을 축소 연행하던 관행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하였다. 특히 판굿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하는 풍물가락을 재구성하여 독립적인 음악장르로 발전시켜 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다.

사물놀이가 본격적으로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2년 6월 일본 순회 공연부터다. 이후 10월 23일과 24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World Showcase Festival’에 정부 파견 공연 단체로 참가하였다. 이로부터 한 달 후, 댈러스 시에서 개최한 ‘세계타악인협회 82년 대회(PASIC-82)’에 참석하였고, 이때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김덕수는 남사당패에서 벅구놀이의 명인으로 이름이 높던 김문학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5세 때부터 무동 노릇을 했다. 어릴 때부터 장구를 잘 쳤다고 하는데, 천부적인 재질에다 남사당패에서 만난 빼어난 스승인 양도일, 남운용, 송순갑으로부터 온갖 기예를 사사했다.

그리고 ‘신들린 꽹과리’ 김용배가 있다. 김용배는 7세에 집을 나와 당시 사당패 남운용 행중에서 최성구, 양도일 등으로부터 기예를 배웠다. 누구도 따라 하지 못했다던 김석출(金石出)의 ‘푸너리 가락’을 재현한 유일한 인물인 그는 많은 관중에게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특별한 쇠잡이로 기억된다.

함께 꽹과리를 쳤던 이광수는 김덕수처럼 아버지를 남사당패로 두어 어릴 때부터 남사당패에서 자랐다. 그는 김복섭 스님, 이성호로부터 비나리를 전수받았다.

삼천포에서 당대의 소고잡이로 인정받았던 최종실은 남사당놀이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남사당 단장이었던 최재명의 아들이다. 그는 징을 들고 김덕수패에 참여했다.
                                                                             출처:네이버지식백과
Posted by 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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